―6월 항쟁시 전두환 명령에 따랐나. “그럴 순 없었다. 정권이 왔다 갔다 할 사안이었다. 전두환의 형(兄)인 경찰 출신 전기환 씨와 평소 친분이 있어 명동성당에 경찰을 투입하기 어려운 이유를 각하에게 설명해 달라고 부탁했다. 다음 날 청와대 회의에 갔는데 각하가 불쑥 ‘이 중에 말이지. 안일주의가 있어’라고 말해 참석한 참모들이 잔뜩 긴장했다. 그러곤 ‘명동성당을 경찰력으로 진압하려는 건 취소하라’고 했다.” 권복경 전 본부장은 6월 민주항쟁 직후 급증한 노사분규 대처 과정에서의 비화도 들려줬다.
@Ilikepeoplewholikeme15 күн бұрын
* 1987년 6월 항쟁시 권복경 치안총수 회고 ㅡ 동아일보 인터뷰 문) 6월 항쟁시 전두환이 '중대 결정'을 왜 쉽게 바꿨을까. “좀 의아했지만 다행스러웠다. 전두환이 다른 참모들에게서 ‘경찰로는 시위 막는 데 한계가 있다’는 보고를 받고, 군 출동 명령을 내렸다가 경찰 의견을 뒤늦게 물어보고, 결정을 바꾼 것 같았다. 당시 육군에 따르면 이미 그 시간에 의정부 주둔 26사단 병력이 부산행 열차를 타기 위해 트럭으로 의정부역으로 이동하고 있었다고 한다. 군 출동이 취소되자 회의에 와 있던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내 손을 잡고 ‘경찰력으로 막기로 한 거 잘했다’며 고마워했다.” 권복경 전 치안본부장은 당시 전두환이 명동성당 경찰력 투입을 명령했다 고 털어놓았다. “87. 6월 14일 아침이었다. 각하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와 ‘명동성당에 학생들 시위하고 있지? 경찰력 투입해서 진압해’라고 지시했다. 나는 깜짝 놀라 ‘각하, 명동성당에는 들어가면 안 됩니다’라고 만류했다. 전두환는 또다시 ‘왜 못 들어가. 진압해’라고 명령했다. 6월 민주항쟁 당시 명동성당은 ‘시위대의 심장’ 같은 곳이었다. 거기서 진압을 하려면 시위대가 숨어 있을 만한 사제실이나 수녀실까지 다 때려 부숴야 한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은 경찰 진입 계획을 전해 듣고 ‘성당에 들어오려면 나를 밟고 지나가라’며 강하게 반대했다고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