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까지도 지독하게 배척해온 조몬계열을 마치 자신들의 뿌리인냥 내세우는거 보면 처량하기까지 하다 일본인의 자기 정체성, 근본에 대한 처절한 열등감을 접할때마다 동정심을 느낀다
@bamas266 күн бұрын
고대 사료가 없기 때문에 일본서기를 분석하는게 요새 트랜드라고 합니다. 일본서기에 백제의 전투 기록이 초기에 안나온다고 합니다. 신라와 고구려는 나와도.. 강단에서는 이를 백제로 본다고 합니다. 즉, 백제가 망하고 일본에서 백제 3서가 편찬되고 이후 일본서기 만들때 사료를 모았는데 이때 천왕중심으로 수정을 했다고 합니다. 일본도 고대 사서가 없으니 각 가문의 구전되는 내용과 약간의 기록을 모아서 만든 것이죠. 이때 편찬자의 의도대로 된것의 원형을 사료 비파으로 찾겠다는 것입니다. 옹색하죠.. 너무 없으니까.. 우리는 사료가.. 이것은 문자가 없던 민족 누구나 겪는 문제입니다. 하여간 이게 트랜드라고 합니다. 요새 강단에서는.. 뭐.. 동화책쓰는 유사 역사학보다는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말하면 비파형동검은 고조선 표지 유물이 아닙니다. 우리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일본은 가야를 임나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임나 일본부를 폐기 했다고 하는지..
@rumomat.7 күн бұрын
嘘
@stephenlucas22018 күн бұрын
It’s so nice to hear northeast part of Asian history . Thank you so so much!
송서 "조제무사지절(詔除武使持節, 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 安東大將軍, 倭王)" 순제(舜帝)는 위 표에 따라 조서를 내려 무(武)를 사지절(使持節), 도독(都督)으로 삼고 왜-신라-임나-가야-진한-진한-모한(慕韓)의 육국군사(六國軍事), 안동대군(安東大君)으로 삼았다. 왜왕에 책봉하고, 왜국이 송에 조공을 바치고, 송이 왜왕(무)에게 백제를 제외한 한반도 및 왜의 6국 지배를 인정했다. ⚫남제서(南齊書) 열전(列傳) 제39권 반(蛮) 동남이(東南夷) "倭國, 在帶方東南大海島中、漢末以來、立女王。 土俗已見前史. 建元元年, 진신제사持節, 都督倭新羅任那加羅秦韓慕韓六國諸軍事, 安東大將軍, 倭王武號爲鎮東將軍." 왜국관계는 『동남이전에 기록되어 있다. 479년 왜국의 사신을 기록하고, 왜왕무를 사절도독 왜-신라-임나-임나-가라-진한-진한-모한 육국 제군사 안동대장에서 칭호를 진동대장으로 승격시킨 것 등이 기록되어 있다. 양직공도 斯羅國(신라)에 대한 설명 "斯羅國,本東夷辰韓之小國也。 魏時曰新羅,宋時曰斯羅,其實一也。 或屬韓或屬倭,國王不能自通使聘。 普通二年,其王名募秦,始使隨百濟奉表献方物。 其國有城,號曰健年。 其俗與高麗相類。 無文字,刻木為範,言語待百濟而後通焉" 斯羅國은 원래 동이(東夷)의 진한(辰韓)나라 중의 한 소국이었다. 위나라 시대에는 신라라고 불렀고, 유송 시대에는 신라라고 불렀으나 같은 나라이다. 어떤 때는 한에 복속하고 어떤 때는 왜에 복속하여 왕이 사신을 파견할 수 없었다고 한다. 보통 2년(521년) 모진왕(법흥왕)이 처음으로 백제에 사신을 파견하여 조공을 바쳤다. 신라에는 건년성(健年城)이라는 성이 있었고, 풍속은 고려와 유사하여 문자는 없고 나무를 새겨서 본으로 삼았다(목간). 백제의 통역으로 양과 대화를 나누었다. 수서(隋書) 권81 열전(列傳) 제46 동이국(東夷 俀國) "新羅 百濟皆以倭爲大國 多珎物 並敬仰之 恒通使往來" 신라・백제는 모두 왜를 대국으로 삼아 진귀한 물건이 많았고, 이를 공경하여 항시 사신이 왕래하였다. 또한 이를 존경하여 항시 사신을 보내어 왕래하였다.
@XiJinping-y6oАй бұрын
벼의 유전자 한반도에는 없는 벼 유전자(RM1-b 유전자)가 일본에 존재한다. 오사카의 이케가미소네 유적과 나라의 당고(唐古)・키(鍵) 유적에서 출토된 2200여 년 전의 야요이 쌀의 DNA를 분석한 결과, 한반도에 존재하지 않는 중국 고유의 벼 품종이 섞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벼가 한반도를 거치지 않고 직접 일본으로 전파된 경로가 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증거다. 벼의 다양성 일본에는 위도가 높은 지역에서 일찍 개화하는 '조생종' 벼부터 늦게 개화하는 '만생종' 벼까지 다양한 품종이 있다. 논벼농사가 한반도에서 전래된 것이라면, 고산지대이기 때문에 '조생종'의 품종일 것이다. 그러나 조생 품종에서 (돌연변이 등으로) 만생 품종이 탄생하는 것은 이론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없다(만생에서 조생이 탄생하는 경우는 있다). 일본의 벼의 다양성은 위도가 높은 한반도를 경유한 것 외에 적어도 위도가 더 낮은 지역으로부터 '만생' 품종의 유입을 가정하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다.
@XiJinping-y6oАй бұрын
The same volcanic ash layer, found only beneath the characteristic orange volcanic ash layer at sites in Kyushu, is called akahoya in Miyazaki and imogo in Hitoyoshi. Similar volcanic ash is also found in the Chubu region, far from Kyushu. And when the thickness of this volcanic ash layer, which is widely distributed in the Japanese archipelago south of the Tohoku region, was examined, it was found that the source of the eruption was the Kikai caldera. This volcanic ash was deposited 7345 years ago. In southern Kyushu, it is more than 30 cm thick. This amount of ashfall would completely destroy the forests, and it would take more than 200 years for them to recover. The volcanic ash from the Kikai Caldera made it impossible for the Jomon people of Kyushu to procure food. They then crossed over to the continent. On the Korean Peninsula mainland, no remains from about 12,000 to 7,000 years ago have been found. The Korean peninsula was uninhabited for the last 5,000 years. The oldest Neolithic site in Korea and North Korea is the Gosan-ri site on Jeju Island, dated to about 10,000 to 7,000 years ago. At this Jeju site, ridge-shaped earthenware and tongue-shaped cusps have been found, and similar artifacts have been found in Japan. Jeju Island is located near Tsushima Island, which is almost exactly like Japan, and was uninhabited until 7,000 years ago, when suddenly earthenware with a comb-shaped design was discovered. It is more natural to assume that the Jomon people who moved to the Korean peninsula made the comb-shaped earthenware in Korea.
@XiJinping-y6oАй бұрын
비문은 '갑인년 구월 이십구일 을유'(서기 414년 10월 28일)에 세웠다고 한다. 1880년 청나라 집안의 농민이 발견하고 이듬해 관월산(關月山)이 탁본을 만들었다. 百殘,新羅舊是屬民,由來朝貢,而倭以辛卯年來,渡海破百殘,□□新羅,以為臣民。 以六年丙申,王躬率水軍討利殘國軍□□。 ...百殘王困,逼獻出男女生白一千人,細布千匝,歸王自誓,從今以後,永為奴客。 ...九年己亥,百殘違誓與倭和通。 王巡下平穰,而新羅遣使白王云,倭人滿其國境,潰破城池,以奴客為民,歸王請命。 ...十年庚子,教遣步騎五萬,往救新羅,從男居城至新羅城,倭滿其中。 官兵方至,倭賊退。 백제-신라는 원래 고구려에 복속된 백성으로 지금까지 고구려에 조공을 바쳐왔다. 그런데 왜가 신묘년(391년) 이후 바다를 건너 쳐들어와 백제, 신라 등을 쳐부수고 신민으로 삼았다. 이에 호태왕은 396년 직접 수군을 이끌고 백제를 토벌했다. ...백제왕은 곤경에 처하여 호태왕에게 항복하고 스스로 맹세하였다. "앞으로는 영원히 당신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 ...39년, 백제가 앞의 맹세를 어기고 왜와 통하게 되자 호태왕은 평양으로 갔다. 그때 신라가 사신을 보내어 호태왕에게 말했다. "왜인들이 국경지대에 넘쳐나서 성을 함락시키고 신라를 왜의 백성으로 만들었습니다. 우리는 왕을 따라 그 지시를 따르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40년, 호태왕은 보병과 기병 합쳐 5만 명의 군사를 파견해 신라를 구하게 했다. 그 군대가 남거성에서 신라성으로 가보니 왜병이 가득 차 있었는데, 고구려군이 도착하자 후퇴했다. - 호태왕비
@XiJinping-y6oАй бұрын
"삼국사기』에는 일본 열도에서 건너온 현자가 2대 왕의 장녀를 빼앗아 의붓동생인 3대 왕이 죽은 후 4대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 현자의 성은 '석(昔)', 이름은 '탈해(脫解)다카이 타레(田禮)'이다. 탈해본타바나국 출신이다. 其國在倭国東北一千里(탈해는 원래 다바나 타바나국에서 태어났다. 그 나라는 일본의 동북 1천리 떨어진 곳에 있다.) "수서(隋書) 동이전(東夷傳)에 "百濟之先, 出自高麗國(백제지선, 출신고려국. 其人雜有新羅, 高麗, 倭等, 亦有中國人(백제의 조상은 신라, 고려, 왜 등 중국인이었다). (백제의 조상은 고구려에서 나왔다. 그곳에는 신라 사람, 고구려 사람, 왜인 등이 섞여 있고, 중국인들도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일본서기』에도 백제에 병사와 노동자를 파견한 기록이 있다. 왜계씨(과노씨, 물부씨, 기씨 등)를 가진 인물이 백제의 관직(덕률, 나률)을 맡고 있는 것으로 판별된다. 상부덕률과야지주, 물부련나률용가다, 기신나률야마사 등 왜계 백제 관료로 확인할 수 있는 인물은, 호적압산(穂積押山) 斯那奴阿比多 기야마사 莫哥武牟(모고무토모) 斯那奴次酒(斯那奴次酒) 물부용가다 許勢哥麻 物部哥非 과야신라 物部烏 日羅 고고학적으로도 백제 후반기 그 지배하에 들어간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일본식 고분이 발견되고 있다. 또한 고구려의 수도였던 마루도 부근에는 광개토대왕비라는 돌로 만든 비문이 있어 일본이 고구려와 싸웠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391년 仁徳天皇(인덕천황) 시대에 일본은 조선 남부의 철자원과 선진 기술 획득을 목적으로 한반도 북쪽을 지배하고 있던 고구려와 교전을 벌였다.)
@XiJinping-y6oАй бұрын
규슈의 유적지에서 특징적인 주황색 화산재층 아래에서만 발견되는 이 화산재층은 미야자키에서는 아카호야, 히토요시에서는 이모고라고 불린다. 규슈에서 멀리 떨어진 중부 지방에서도 비슷한 화산재가 발견된다. 그리고 도호쿠 이남의 일본 열도에 넓게 분포하는 이 화산재층의 두께를 조사한 결과, 그 분출원이 오니카이 칼데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화산재는 7345년 전에 쌓인 것이다. 규슈 남부에서는 30센티미터 이상의 두께가 있다. 이 정도의 화산재가 내리면 숲은 완전히 파괴되고, 그 회복에는 20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오니카이 칼데라의 화산재로 인해 규슈의 조몬인들은 식량을 조달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대륙으로 건너갔다. 한반도 본토에서는 약 12000~7000년 전의 유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이 약 5000년 동안 한반도는 무인도였던 것이다. 한국-북한에서 가장 오래된 신석기시대 유적은 제주도 고산리 유적지로 약 10000년 전~7000년 전으로 추정된다. 이 제주도 유적에서는 융기문 토기나 유두형 토기가 발견되었는데, 일본에도 비슷한 유물이 있다. 제주도는 대마도 근처에 있어 거의 일본이라고 봐도 무방한 곳인데, 7000년 전까지 사람이 살지 않다가 갑자기 빗살무늬토기가 발견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도 조선의 빗살무늬 토기를 만든 것은 한반도에 걸친 조몬인이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