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ікірлер
@유선영-q6p
@유선영-q6p 3 сағат бұрын
고대시대 한국역사를 알기위해서는 유물 지형 기후 고인골 유전학등등 너무 많은지식이 필요하더군요. 대단하십니다. 앞으로 이런학문에 국가적으로 연구비가 많이 책정됬으면 좋겠습니다.
@raisestone9894
@raisestone9894 3 сағат бұрын
옥저, 오호츠크, 사할린 한 문화권역이었음을 이해가 되는 설명입니다. 썰매로 왕래하는,,,와우
@user-vk5vw2hw7z
@user-vk5vw2hw7z 5 сағат бұрын
저거 우리땅이다.
@user-xk5ju1mn7j
@user-xk5ju1mn7j 5 сағат бұрын
중국인은 진짜 추상적인 것과 먼 곳에 있죠
@최준철-c6n
@최준철-c6n 8 сағат бұрын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해 주는 유익한 영상이었습니다
@user-tg2mo5ds1i
@user-tg2mo5ds1i 9 сағат бұрын
요즘 학림 tv보는 재미로 지냅니다. UFO 나 선사시대의 모든 의문점을 해소하며 인류 문명의 의문점을 설명해 줍니다.
@sunnydays8322
@sunnydays8322 9 сағат бұрын
대단한 연구조사 입니다. 그래픽도 정말 적절합니다.
@Goldnomad
@Goldnomad Күн бұрын
고맙습니다~
@user-gw3gb5yg4p
@user-gw3gb5yg4p Күн бұрын
정말, 엄청나게 좋은 영상입니다. 학생이나 연구자들 뿐만아니라 일반인의 평생교육에 크게 이바지하시는 것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user-vy1xt5oe3o
@user-vy1xt5oe3o Күн бұрын
한반도 주변의 지형 형성과 선사시대 생활 방식 잘 보고 갑니다
@gogump9993
@gogump9993 Күн бұрын
쿠로시오 난류가 좁은 대한해협을 지나면서, 이를 지나는 고래를 잡기 위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포경문화, 주거지였던 한반도 석회암동굴 동굴 지대. 자연스럽게 설명이 되는 군요. 다만, 흑요석 무기로 으로 무장한 석기인들이 포경을 2만년전에 하려면 흑요석 무기가 그 시대에 등장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어떻게 증명할까요 ? 6~7천년 전이라면 흑요석무기가 등장했을 텐데, 이 때는 간빙기 시대로 대한해협은 지금과 비슷한 폭을 가졌을 것이어서 고래가 좁은 곳에 한꺼번에 몰려드는 상황은 아니지 않을까 합니다.
@user-no2uj8qw5v
@user-no2uj8qw5v Күн бұрын
이분 태산군주 아닌가요?
@ptahoteff
@ptahoteff Күн бұрын
태산군주가 누굽니까?
@검프-n6p
@검프-n6p Күн бұрын
해양의 순환 시스템은 고려 하셨던데 혹시 당시에 지축의 기울기는 고려를 해보셨는지요 지금과는 지축의 기울기가 달라서 적도선이 지금과는 달랐을것인데ᆢ
@baccusjoo8684
@baccusjoo8684 Күн бұрын
지축 기울기도 알수있었으면 아주 좋겠네요,
@user-jj4hh2lc7b
@user-jj4hh2lc7b Күн бұрын
1652년 청-러 분쟁이 발생하고 1654년 청 순치제가 조선 효종에게 조총병 100명을 보내라고해서 변급 장군이 1차 나선정벌과 1658년 신유 장군이 2차 조총병 200명으로 참전해 하바로프흐크 인근에서 싸우게 되죠. 1689년 청-러의 네르친스크 조약이 강희제 때 체결되죠.
@yckim4901
@yckim4901 Күн бұрын
나라가 바뀌었네
@user-ir3gm7gk9l
@user-ir3gm7gk9l Күн бұрын
😮
@user-ir3gm7gk9l
@user-ir3gm7gk9l Күн бұрын
정말 좋은 내용입니다. 감사~~
@Sabjeal
@Sabjeal 2 күн бұрын
유럽에 불교가 저때 벌써 들어간지 몰랐네요
@syn940
@syn940 2 күн бұрын
알고 보면 내 부모 조상 아님이 없다 !!
@user-zr4zp8vc4z
@user-zr4zp8vc4z 2 күн бұрын
우리땅이었으니알지
@ptahoteff
@ptahoteff 3 күн бұрын
근데 저 시대 순다랜드는 그리 덥지 않았을텐데?
@칼과피리의노래
@칼과피리의노래 3 күн бұрын
마리산...머리산이라는 뜻이 확실하네요...ㅠㅠ 마음이 막 벅차오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교육이 필요합니다
@DltptkddldnldpsirkdlTek
@DltptkddldnldpsirkdlTek 3 күн бұрын
중국 민간 박물관에서 먼저 전시했어요
@user-jz8up1rf3x
@user-jz8up1rf3x 4 күн бұрын
단장이 이런 뜻을가지고 있었군요 단장은 지명으로 알고있었는데 감사합니다
@user-lt4ob3pz3d
@user-lt4ob3pz3d 4 күн бұрын
널리 퍼져라
@zzackfot
@zzackfot 4 күн бұрын
마니산 설명에 조선시대때 지어졌다고 적혀있었는데
@simonlee8154
@simonlee8154 4 күн бұрын
서해바다가 혹 노아의 방주시기랑 맞아 떨어질것같은...
@jinsoohan2198
@jinsoohan2198 4 күн бұрын
그동안 긴가 민가하면서 지도로만 봐서는 잘 몰랐던 것들이...3D로 같이 설명해주시니...이해가 되고, 누구라도 그런 루트를 선택하고 살아갔을 듯 합니다. 이제사 그동안 설명해주신 것들이 이해가 됩니다. 한반도가 얼마나 살기 좋은 땅이었는지...고구려가 왜 중원땅을 점령하지 않고 지냈는지 등등....정말 깊은 감사드립니다...^^...좋아요!!!
@DltptkddldnldpsirkdlTek
@DltptkddldnldpsirkdlTek 5 күн бұрын
이 향로와 똑같은 게 황하강하류쪽에서 출토되어서 민간박물관에 전시된걸 방송에서 봤는데요.
@diamondheart9210
@diamondheart9210 5 күн бұрын
1. 아주 옛날부터 동해를 동해라고 불렀는데 이렇게 보니 이해가 되네요. 2. 고대 삼국 시절 중국 동부와 한반도가 바다 건너 하나의 문화권이었던 것도 이해가 되네요.
@user-lt4ob3pz3d
@user-lt4ob3pz3d 5 күн бұрын
항상 궁금했었는데 이제야 풀립니다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korea4489
@korea4489 5 күн бұрын
평야가 광할합니다. 황화와 비추어 면적은 지지 않는 듯 합니다.
@user-rk3td9cn1n
@user-rk3td9cn1n 5 күн бұрын
오.. 기원전에 부처님의 말씀이 야만의 땅 브리티시섬 까지 전파되었다니 .. 그런데 켈트족 야만인들이 이해나 햇을런지요.? 예수가 잃어버린 10년간 티베트에서 불교를 배웟다는 .. 예수의 불제자설의 뒷받침 .?
@user-lw3gc8zz9t
@user-lw3gc8zz9t 5 күн бұрын
유전개발하듯이 서해유물을 개발해서 관광상품으로! 앞으로는 기후변동에 시달릴 테니까 해저 생활을 할 각오로 심해 개발을 해서 여름과 겨울을!
@ghsehs
@ghsehs 4 күн бұрын
아마도,발해,서해 얕은바다 밑에는 무수한 유물이 있을것!
@user-lt4ob3pz3d
@user-lt4ob3pz3d 5 күн бұрын
그렇구나. 이런 사실이 숨어 있었군요.
@myoyou
@myoyou 5 күн бұрын
발해만이 북경 밑에 있다면 발해는 그 근처에 있는 게 아닌가요?
@wjyoun
@wjyoun 5 күн бұрын
역사학자신가? 지리학자신가?
@user-fn1pb6uo5m
@user-fn1pb6uo5m 5 күн бұрын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서 소개 해 봅니다. '일제 시대 때 영산강에서 다리를 놓기 위해 강 밑을 파내려 갔다. 튼튼한 지반이 나와야 건설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계속 팠으나 나오지 않았다. 20길 정도를 팠을 때 아름드리 참나무 수백 그루가 침향목 상태로 발견 되었다. 그 나무는 10길 정도 크기였다. 그 나무 몇 그루를 일제가 가지고 갔다' 강 바닥이 육지 였던 시대를 보여주는 사례 같아서 소개 해 봅니다. 봉우사상을 찾아서(59) - 1990.06 백두산 천제기행 22분 37초 부터 입니다.
@user-uw9bl1tj3b
@user-uw9bl1tj3b 5 күн бұрын
황하도 수풀이 우거진 온대림이었고 장강은 열대우림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지나대륙은 훗날 대대적 개간이 있기 전까지는 자연의 생태계가 살아있고 인간은 드문드문 떨어져 군집하여 살았습니다. 그래서 산해경 등 고서에는 숲이나 강의 동식물이 언급이 됩니다. 지나대륙은 인간이 아닌 자연이 주인인 곳이었죠.
@badapic
@badapic 6 күн бұрын
☘ 마리산에는 단군왕검이 운사 배달신에게 명하여 <제천단>을 세웠고요, 별을 관찰하는 <참성단>은 <수도>에 세우는 것이 정상이므로 <제천단> 세운 1년 뒤 <진조선>의 수도인 <현 홍산문명 지역>에 세웠습니다. 이 참성단은 인하대 복기대 교수 일행이 발견하여 발표한 바 있습니다. <삼랑성>과 단군의 세 아들은 <삼랑>을 모르는 사가들의 오해이고요, <삼랑> 자체가 <삼신>을 수호하는 관직입니다. <제천단>을 지키는 <삼랑>조직이 거기에 머물면서 제천단을 지킵니다.
@user-wp2hm2qz9t
@user-wp2hm2qz9t 6 күн бұрын
우리가 통치안한지 얼마나 됐다고 사막을 만들어놨네
@cosmosl1974
@cosmosl1974 6 күн бұрын
만주에서 요동이 방어 최적지인데 이런땅을 포기한게 아깝네
@robinkim920
@robinkim920 6 күн бұрын
일본까지 포함해라
@donghwiparam
@donghwiparam 6 күн бұрын
혹시 지도 이미지는 어디서 가져오시는걸까요?
@user-bf6fv1cu3y
@user-bf6fv1cu3y 6 күн бұрын
한민족은 옛날부터 마을에서 덕망이 높고, 학식이 풍부하며, 백성을 위해 헌신하는 지도층을 선비(鮮卑) 라고 호칭했습니다 / 鮮卑는 (고울 鮮), (낮을 卑) 로 표기하며, 정치와 당파싸움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관직에 출사하지 않고, 낮은 곳에서 서민들을 이끌며 선(鮮)한 일을 했었고, 이를 선비문화(鮮卑文化)라고 합니다. 세계 최초 자포니카(japonica)벼 재배는 BC 15,000년 충북 청원군 소로리 유적입니다 / 열대기후 품종 인디카(indica)벼 재배는 BC7,000년 중국 양자강 하구 허무두(河姆渡)문화에서 논농사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 중국 황하 북부 밀농사는 BC 5,000년 양사오(仰韶)문화 유적에서 발견되었고, 터키 아나톨리아(Anatolia)에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합니다. BC 96세기부터 3천년간 한반도에서 신석기문화를 발전시켜왔던 한족(韓族)들은 BC 62세기 요하유역에서 모계사회(母系社會)을 영위하던 예맥족(濊貊族)을 개화(開化)시키기 위해 선비(鮮卑)들을 파견했고, 각급 마을을 지배하던 무녀(巫女)들 보다 비교우위에 문물을 전달하면서 흥릉와(興陵漥)문화를 일구었고, BC 45세기 홍산(紅山)문화을 탄생시켰습니다 / BC 28세기 요서지역의 맥족(貊族)들이 청동기 문물을 앞세워, 황하유역으로 남하하면서 용산(龍山)문화를 일구었고, 하-상-주(夏-商-周)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선비문화(鮮卑文化)는 BC 16세기 동이족(東夷族)이 황하유역에 상(商)나라을 건국하고 넓은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 문무(文武)를 겸비한 선비(鮮卑)들을 변방 각지로 파견하면서 시작되었고, 상(商)나라가 패망하면서 지역별 제후들이 군웅활거(群雄滑車) 했고, 500년간의 춘추시대(春秋時代) 와 200년간의 전국시대(戰國時代)의 거쳐, BC 221년 황하 상류 선비(鮮卑)들이 다시 세운 [진(秦) (벼슬이름 秦)]나라가 지역별 제후국들을 제압하며 중원을 장악했고, 전한(前漢)(BC206~AD23) 과 후한(後漢)(AD25~AD220)을 거쳐 지역별 선비가문(鮮卑家門)들이 연대하여 [수(隨) 따를 隨]나라, 당(唐)나라를 건국했습니다. BC 23세기 요동지역의 예족(濊族)은 요서지역을 통합하면서, 한반도 한족(韓族)과 연대하여 [조선(朝鮮) (아침 朝, 고울 鮮)]을 건국했고, 요동지역을 진한(振韓), 한반도를 마한(馬韓), 요서지역을 번한(番韓)이라 했으며, 2천년간 1代에서 43代 단군(檀君)이 통치했습니다 한민족은 지난 5천년간 천손(天孫)[하늘 천(天), 자손 손(孫)]사상을 갖고 있었고, 인내천(人乃天)사상은 한민족 DNA에 깊이 새겨져 있으며, 대한민국은 1948년 건국 이후 매년 10월 3일 개천절(開天節)을 법정공휴일로 지정하고, 한민족 시조 단군(檀君)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인류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인내천(人乃天)사상을 기반으로 ”민주주의“제도를 만들었고, “인간이 곧 하늘이다”라는 신념으로 인권(人權)을 우선하는 헌법과 법률을 제정하여 국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1948년 제정된 대한민국 헌법 제1조 ①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②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BC 11세기 황하 상류 선비(鮮卑)가 세운 주(周)나라가 목야대전(牧野大戰)에서 상(商)나라을 겪파하면서 황하 중하류를 장악했으며, 남하했던 맥족(貊族)의 상(商)나라 유민들이 요서지역으로 복귀하면서 세운 기자조선(箕子朝鮮)은, 요동지역 예족(濊族)과 갈등을 빛었고, BC 1세기부터 예족(濊族)의 유민들이 한반도로 남하 하면서 백제, 가야, 신라, 왜, 일본을 건국했으며, 맥족(貊族)은 고구려, 발해, 요, 금, 청을 건국했습니다. 통일신라, 고려, 이씨 조선시대에도 선비문화(鮮卑文化)는 풀뿌리 민주주의 역할을 했으며, 수많은 외세의 침략에 맞서 의병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고,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에서도 나라를 구한 세력이 선비(鮮卑)들입니다. 언어와 문자는 서로 맞아야 하는데, 중국말과 한자(漢字)는 서로 맞는 것일까요 ? / 중국인들이 현재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간체자(简体字)는 중국 공산당이 1956년 창안한 유사 한자(漢字)이며, 일반 서민들에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 보급했습니다. 중국 원주민 화하족(華夏族)은 원래 문자가 없었고, BC 28세기 요서지역의 예맥족(濊貊族)들이 청동기 문물을 앞세워, 황하유역으로 남하하면서 용산(龍山)문화를 일구었고, 하-상-주(夏-商-周)나라를 건국하면서 문자를 전파했습니다 / 그러나 원주민 화하족(華夏族) 언어 와 문자가 서로 맞지 않았고, 따라서 문자는 동이족(東夷族)과 선비족(鮮卑族) 상류 지배계층만 사용했습니다. 한자(漢字)는 BC 16세기 동이족(東夷族)이 황하유역에 건국한 商나라부터 사용한 갑골문자(甲骨文字)가 금문(金文), 전서(篆書), 예서(隸書), 초서(草書), 해서(楷書), 행서(行書)로 변화되어왔습니다 / BC 1세기 漢나라 書記들이 사용하던 사무적인 글자체 예서(隸書)를 한자(漢字)라고 합니다 / 중국인들이 현재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간체자(简体字)는 중국 공산당이 창안한 유사 한자(漢字)로써, 1956년 「한자간화방안(漢字簡化方案)」이 발표된 후 몇 년 동안의 연구를 거쳐, 1964년 「간화자총표(簡化字總表)」가 발표되었고, 중국과 싱가포르에서만 사용합니다 / 그러나 AD 21세기 현재 한국, 일본, 대만, 해외 화교 등 한자(漢字)문화권은 전통 정체자(正體字)을 사용합니다. 한국은 1443년 세종대왕께서 일반 서민들에 문맹률을 낮추기 위해 한글을 창제하셨고, 지난 600년간 언어와 문자를 통일했으며, 현재 한글을 기본 언어 문자로 사용하면서, 동음이어(同音二語)에서만 한자(漢字)를 병행 사용하며,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합니다.
@tomj6434
@tomj6434 6 күн бұрын
가능하시다면, 향후에, 레고 랜드 사태로 세상에 그 실체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춘천 중도 구,신석기 문화 유적지]와의 연관 강의도 해주시면 기존에 알려진 세계 4대 문화의 탄생에 선행(先行)하는 [한반도(韓半島) 한강(漢江)문화(文化)]의 재야 사학계 주장에 대한 시비를 가리는 데 매우 큰 기여가 되실 것 같습니다. 학림 tv 강사님의 건강과 건승하심을 늘 기원드리겠습니다.
@Hyun-min
@Hyun-min 6 күн бұрын
위 지도는 어디서 구할수 있나요?
@jinsoohan2198
@jinsoohan2198 6 күн бұрын
강수향분포에 따른 분석이...참 인상적입니다. 과학적이기도 하니...많이 배우고 갑니다. 좋아요 구독!
@삼산서민
@삼산서민 6 күн бұрын
울랑부통을 갈 예정인데 적당한 때 좋은 정보를 찾았습니다..^^
@JKJ0509
@JKJ0509 6 күн бұрын
⁠일제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기로 방침을 정하고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편수회’라는 기관을 설치하고 막대한 예산을 들여 우리 역사를 왜곡하는 작업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한국인 역사학자들이 참여했는데 대표적인 인물이 이병도, 신석호입니다 이들은 친일파 역사학자들인데 해방후 민족주의 역사학자들은 독립운동가들이었기 때문에 다 제거되거나 납북되어서 남한의 역사학계는 이들 식민사학자들만 남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일제의 식민사관을 그대로 계승해서 왜곡된 우리 역사를 가르쳤고 그들의 제자들도 식민사학을 배워서 또다시 그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의 제자들은 다시 그들의 제자들에게 식민사학을 가르치고.... 그 결과 우리는 잘못된 역사를 배워온 것입니다 현재 역사 교과서에 이렇게 나옵니다 <고구려는 태조왕때 중앙집권체제를 마련했고, 고국천왕때부터 부자 세습을 했다. 백제는 고이왕때 중앙집권체제를 마련했고, 근초고왕때부터 부자 세습을 했다. 신라는 내물왕때 중앙집권체제를 마련했고, 눌지왕때부터 부자 세습을 했다.> 고구려의 시조인 추모왕(주몽)은 아들인 유리왕에게 왕위를 물려줬고, 유리왕 역시 아들인 대무신왕에게 왕위를 물려줬습니다 즉 고구려는 건국했을때부터 부자 세습을 했습니다 그런데 왜 교과서에는 고국천왕때부터 부자 세습을 했다고 되어 있을까요? 바로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몽, 온조, 박혁거세가 고구려, 백제, 신라를 건국했다는것은 다 거짓이고, 주몽, 유리왕, 대무신왕으로 이어지는 고구려 왕위의 부자 세습도 다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백제도 건국때부터 온조왕, 다루왕, 기루왕으로 부자 세습이 되는데 이것도 다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일제는 임나일본부를 조작하기 위해 삼국사기가 가짜라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고구려는 태조왕때, 백제는 고이왕때, 신라는 내물왕때 건국됐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해방후에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의 제자들인 이병도, 신석호 등이 한국의 역사학계를 장악했고, 이들이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계승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도 국적이 우리와 같은 한국인이라서 대놓고 그런 주장을 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태조왕, 고이왕, 내물왕이 건국했다>라는 것을 <태조왕, 고이왕, 내물왕때 중앙집권체제를 마련했다>라고 말을 살짝 바꾼것입니다 따라서 외견상으로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BC 1세기에 건국되었다고 주장하는듯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속으로는 삼국사기 초기 기록 불신론을 따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고구려와 백제는 건국때부터 부자 세습을 했는데 교과서에는 아직도 고국천왕과 근초고왕때부터 부자 세습을 했다고 기술되어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태조왕, 고이왕, 내물왕 이전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했다는 것일까요? 한국의 주류 역사학자들은 이때 세 나라가 자그마한 도시 국가에 불과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나라다운 나라도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반도 남부에는 무엇이 있었다는 것일까요? 바로 삼한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마한 54개국, 진한 12개국, 변한 12개국이 한반도 남부에 우글거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야마토 왜가 한반도 남부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해서 지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임나일본부의 존재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삼국사기에는 뭐라고 기술되어있는지 아십니까? 백제의 온조왕이 마한을 정복했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삼국사기 초기 기록은 가짜이므로 온조왕의 마한 정복은 거짓이고, 근초고왕때 가서야 백제가 마한을 정복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없습니다 무조건 일제 식민사관만이 옳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 생활에서 대화를 할때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은 말의 앞뒤가 맞는지를 판단하는 겁니다 사람이 아무리 거짓말로 완벽하게 상대방을 속이려 해도 어딘가는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게 되니까요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제가 아무리 우리 역사를 왜곡했더라도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사료에는 고구려, 백제가 건국 되었을때부터 왕위가 부자 세습 되었다고 기술되어 있는데도 고국천왕과 근초고왕때부터 부자 세습을 했다는 모순된 주장을 하고, 사료에는 온조왕이 마한을 정복했다고 기술되어있는데도 근초고왕때 정복했다는 모순된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앞뒤가 맞지 않으니 학생들이 역사를 골치 아픈 암기 과목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으면 이해만 하면 되는데 앞뒤가 맞지 않으니 외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사료에는 고구려와 백제의 영토가 대륙에도 있다고 나오는데 한국의 주류 역사학계는 그러한 사료들을 부정합니다 그러한 사료들을 부정할 수 밖에 없는 다른 사료적 근거가 있는거 아니냐고요? 그딴거 없습니다 그냥 "우리가 그렇다면 그런줄 알아 뭔 말이 많아"라는 식입니다 일제가 왜곡해놓은 틀에서 벗어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료에 나오는 것도 가르치지 않고 그냥 지나치니 역사를 주먹구구식으로 가르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전 세계에서 이런 역사를 가르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이러니까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길보다는 개인의 이익과 영달만 좇는 매국노들이 아직까지도 득세하는 것이고 한국 정치가 혼란스러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