Пікірлер
@스타시퀀스
@스타시퀀스 2 күн бұрын
우리가 활쏘고 기마잖아 최초 스키도 한국에서 유래
@jskim4037
@jskim4037 5 күн бұрын
노마드 선생님 귀한영상 감사합니다
@user-fr8rr8mm7v
@user-fr8rr8mm7v 6 күн бұрын
위구르를 돌궐이라기보다는 같은 중세시베리아어파로 보시면 적절할 것 같습니다. 위구르는 돌궐이 세워지기 전부터 돌궐어화자들과 사이가 안좋았기에...
@zelme13
@zelme13 13 күн бұрын
시팔아 깨를 애들은 다 무서워해요 바보야 18
@zelme13
@zelme13 13 күн бұрын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네요!!!! 역사도 모르는데... 진기스칸이 왜 자끼가 몽골이라고 했습니까!!!! 몽골인중에 유목하지 않는 사람 한개도 없습니다!!!!!! 완전히 바보같은 새끼네!!!!!! 18...
@zelme13
@zelme13 13 күн бұрын
캉들은 정보다 몽골말로 되있습니다!!!!!
@zelme13
@zelme13 13 күн бұрын
뭘 잘못된 것이다!!!! 몽골은 넓고 커요!!! 보리야트,오이라트, 두르베트,다리강가,위구르 땡땡이 이십몇 가지 있습니다!!!!! 부산 사람,북한 사람, 서울 사람을 다른 사람로 보면 되겠습니가!!!!
@이길우-x5j
@이길우-x5j 14 күн бұрын
장비 케릭터가 왜인입니다.
@user-ox5uz1xe9h
@user-ox5uz1xe9h 17 күн бұрын
이야~~ 재밌다~~~
@jasonjung395
@jasonjung395 18 күн бұрын
상상의 지도들...
@soonilyun2657
@soonilyun2657 19 күн бұрын
주나라가 좋은 곳이라는 논리가 이 지도를 봐도 모르겠네요.. 지도가 너무 구려요.
@웰치스오렌지
@웰치스오렌지 26 күн бұрын
저렇게 힘들게 겨우 침략해서 몇백명밖에 없는 군사들에 항복했던 유선이 한심해 죽겠네요.ㅋ
@hrcustom
@hrcustom Ай бұрын
개괄적 설명이라 하지만 삼국지를 얘기하면서 형주(특히 양양), 한수(漢水)가 빠진건 아쉽네요. 당시 남중국-북중국(중원)을 잇는 거진 유일한 육지-수운 통로이자 군사적 요충지락서 한수 중류의 양양을 관우가 공략했을 때 조조가 쫄은 이유기도 한데. 여기를 뺐기면 한수 지류로 이어진 남양(완), 허창(허도) 등의 수비가 허벌창이 되니.
@mehdong
@mehdong Ай бұрын
( 연속극 속의) 합려의 사진이 아니라 손무의 사진을 사용하셨네요.
@niceonsonny8236
@niceonsonny8236 Ай бұрын
언제 들어도 재밌네요.
@user-hz8mx9ds6e
@user-hz8mx9ds6e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mq4cc5wt8d
@user-mq4cc5wt8d Ай бұрын
처음 방송했을 때 너무 재미있어서 한 회, 한 회를 기다렸던 때가 기억납니다. 다시 들어도 역시 너무 재미있습니다. 좋은 방송, 감사합니다.
@user-bv2og9st8t
@user-bv2og9st8t Ай бұрын
스키타이는 멸망시기 bc4c경 대흥안령을 넘어 북부여로 철제련 기술을 갖고 들어온것으로 추정한다 그들의 일부는 남하하여 신라지방 으로 진춣하여 신라의 지배층이 되어 Skitai를 당시한자어 차음으로 昔脫解로 표기된것으로 본다. 신라지배층으로 추정되는 적석목곽 분이 동예시 추암동에서 당시의 인골이 발견되어 DNA를 조사한결과 조사자들이 깜짝놀랐다 그인골은 현재 몽골인도 아니고 서몽골 흉노와 Skitai 와 가까운 것으로 판명되어 신라의 지배층은 당시 외모가 백인계열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tv-rv2fy
@tv-rv2fy Ай бұрын
kzbin.info/www/bejne/d6unomitqd2DnpYsi=yHPBGsP6E4bhNKyY
@DOOM_HWANG_CHA
@DOOM_HWANG_CHA 2 ай бұрын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사마충
@사마충 2 ай бұрын
오 이제 알게됐네요 지도보면서 노른자땅은 다 듣보나라네? 궁금했었는데,,,그런 이유가 ㄷㄷㄷ
@user-kr8yr3zv9f
@user-kr8yr3zv9f 2 ай бұрын
좋은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우짜-o3b
@우짜-o3b 2 ай бұрын
재밌게 잘 봤습니다~~~~~ 영상 다 보고 삼국지 다시 볼 예정입니다 ㅎ
@우짜-o3b
@우짜-o3b 2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okeyjjang
@okeyjjang 3 ай бұрын
한신은 주군에 죽임 당했지만 제갈량은 천수를 누렸지....제갈량 승!!
@user-uf2eb6ts7j
@user-uf2eb6ts7j 3 ай бұрын
중국 역사상 한번의 삼국시대 패왕 조조 불세출의 대영웅 유비는 한수아래 손권은 두수아래
@user-uf2eb6ts7j
@user-uf2eb6ts7j 3 ай бұрын
조조보다 뛰어난 영웅은 아직 누구도 나타나지 않았고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것이다
@user-uf2eb6ts7j
@user-uf2eb6ts7j 3 ай бұрын
주인공 조조를 부각시켜주는 각색된 조연 유관장 과 제갈량
@user-uf2eb6ts7j
@user-uf2eb6ts7j 3 ай бұрын
7전8기의 정신력 유비
@user-uf2eb6ts7j
@user-uf2eb6ts7j 3 ай бұрын
중국사 불세출의 영웅 조조
@caitlyn2501
@caitlyn2501 3 ай бұрын
마속이 한중밖에 중원으로 가는길이 세번째길은 없다고 했는데
@user-xr2pb2tl9k
@user-xr2pb2tl9k 3 ай бұрын
역사학자들 정신병자들 사기꾼 삼국사기 삼국유사 다소설이고 옛날에 민족이 어디잇냐 마한진한변한 낙랑 은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3 ай бұрын
1388년 음력 7월 12일 명이 북평에 행도를 설치 (비로소 도착하였음을 알림).~새로운 요서,요동의 시작 음력 7월 22일 명이 산해위를 설치. (드디어 새로운 만주의 시작) 음력 9월 15일 8개 점령지에 대한 분봉 (秦王,晉王,周王,楚王,齊王,湘王,魯王,潭王) 분봉된 8개 지역을 점령하기 1년전의 요서 요동이 그 당시의 요서 요동.
@user-rq8rh3si3m
@user-rq8rh3si3m 3 ай бұрын
왕건이 쿠데타 안하고 궁예가 그대로 갔으면 우리는 어떤 역사를 이어갔을지 궁금함 본디 우리 뿌리는 韓에 있지만 그 갈래가 고구려백제 신라가야로 이분된다고 볼 수 있는데 이하 줄이겠다
@김자운
@김자운 3 ай бұрын
삼국타 지리와 역사
@사마충
@사마충 3 ай бұрын
고초의 초가 저 한자였네 새로운 거 알고 갑니다
@사마충
@사마충 3 ай бұрын
장강이 황하보다 더 길지 않나요?
@goroke99
@goroke99 3 ай бұрын
선생님 더이상 업로드안하시나요
@soulseek2r760
@soulseek2r760 3 ай бұрын
“촉”이라는 글자 자체도 험준한 산세의 모양을 나타내는 것 같아요 ㅎㅎ
@user-sb2tz9hk2h
@user-sb2tz9hk2h 3 ай бұрын
진순신 중국사 3권 245면 읽고 있는중...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youngilchoi3761
@youngilchoi3761 4 ай бұрын
노마드 인문학이 최고다
@youngilchoi3761
@youngilchoi3761 4 ай бұрын
이 공자가 주공을 그냥 해석한 것에 불과하구나 주공을 알아야 중국을 알고 유교문화를 알수있는구나 엄청난 선생님이시네요
@이석주-c3t
@이석주-c3t 4 ай бұрын
최고의 설명 이해 충분
@andrewoh7360
@andrewoh7360 4 ай бұрын
成都
@jcp61
@jcp61 4 ай бұрын
인도인도 신라의 지배층이었으니 흉노에 이어 인도인도 부탁힙니다.
@hunnny7475
@hunnny7475 4 ай бұрын
지나가다가 한 말씀하고 가겠습니다. 문무왕 비문에서 신라 김씨의 시조를 '김일제'라고 한 것을 '흉노족 출신'이라는 열등감을 감추기 위한 '사대주의적 사고방식'이라고 하셨는데 왜 굳이 중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왕망'의 세력인 '김일제' 계열을 시조라고 했을까요? 고구려 백제는 이미 3,4세기에 중국법제를 받아들여 선진화(?)를 했는데 사대주의적(?)인 신라는 왜 6세기 경에나 중국문물을 받아들였을까요? 중국인들이 조상으로 여기는 황제나 소호금천에 대해서도 여전히 중국인의 시조가 아닌 북방민족의 시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점 아십니까? 한국인이 아니라 중앙아시아 여러나라에서도 같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인동 장'씨인데 최근 발견된 족보에 보면 그 먼 시조를 헌제와 연관시키고 단군까지 이어지고 있더군요. 중국에서 한반도로 넘어왔으나 중국의 한족이라고는 하지 않습니다. 다시말해 문무왕의 비문은 '일본(왜)'에 대한 수호를 나타낸 것이 아니라 '중국'으로부터의 수호'를 다짐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신라는 사대주의적 한화정책을 편 것이 아니라, '반중 정책'을 편 것이라는 것이지요. 3,4세기 '소빙하' 시대에 북방민족이 남하 하였고 그로인한 대 혼란기가 지나면서 흉노가 몰락하고 초원길이 막히면서 6세기 경부터 신라는 어쩔 수 없이 중국문물을 받아들였다고 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북위나 수 당의 건국세력인 '선비족'의 경우는 적극적인 한화정책을 펼쳤지만, 원나라나 금나라 청나라의 경우 그 반대의 정책을 펼쳤습니다. 흉노(몰골어로 훈누)들도 역시 자신들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고 있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한무제가 그들 고유의 (한화하지 않은)제천행사를 보고 '김씨'성을 하사한 것을 보면 더 명확한 것 같습니다. 마립간 시대의 '쿠르간'들 하며 그 부장품 및 왕의 친위대(화랑), 화백제도, 골품제도 등 거의 모든 것이 '북방정복왕조'의 체제일 수 밖에 없는데 어찌 '한화된 흉노인'이라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원균-x2r
@이원균-x2r 4 ай бұрын
주공은 무왕의 삼촌이 아니라, 무왕의 동생입니다. 무왕 희발의 아들인 성왕 희송의 숙부가 주공 희단입니다.
@user-ld9uz2hl3j
@user-ld9uz2hl3j 4 ай бұрын
박혁거세가 중국 진시황제요 중국에서 한국으로 넘아왔어요
@user-ld9uz2hl3j
@user-ld9uz2hl3j 4 ай бұрын
무슨스키이뇨 모르면 헛소리하지말아요 옛날에 차가 있었느냐 무식하지말하 요 그대는 한국을 욕하면 말아요 본인이 그때 사람이뇨
@user-ei1gy8fv5b
@user-ei1gy8fv5b 4 ай бұрын
뭔 근소리여 하북 점령에서 끝냈고 나머지는 유비 부풀리는 서사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