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군란에서 한가지 잘못되었다면 일본공사관 공격과 일본군 교관은 포로로 잡되 죽이진 말았어야 했었음 (비슷한 예시중 하나가 아프가니스탄 헤라트 지역에서 폭동진압하던 아프간군대가 되래 폭도들과 합류후 소련군 군사고문단과 가족 그리고 소련인들을 학살을 저질러 시체를 모욕하는 행위를 저지름, 당연히 소련에서는 구실이 생겨서 이것도 소련이 아프간침공하게된 시발점으로 만듬)
@megastaygmybuildingmega9427Ай бұрын
자기 민족을 노비로 썼던 이상한 나라
@둠상필-c7zАй бұрын
세계 어느나라다 저 시대때는 자국민을 노예로 썼는데.
@hypergyanko1405Ай бұрын
kzbin.info/www/bejne/eXK6eaKqmJKNjrc 임오군란이 일어난 진짜 이유
@농부근성-j7uАй бұрын
백제가 너무 빨리 망했음 내부분열때문에
@삼족오-n7f2 ай бұрын
빠진 내용 ㅡ 경복궁에 있을 때는 최상단의 보주가 있었으나, 박물관으로 옮기는 과정에 보주가 사라졌음. 누가 슬쩍했나?
@MoreNmore_snsdАй бұрын
잉? 이건 조사해야지...문체부장관 유인촌 뭐하니 조사좀 해봐라
@sfk10312 ай бұрын
외국은 다층건물이 많은데 한국만 1.5층이상 절대로 안된다는 역사학자들이 문제지. 일본은 왜성 널렸는데 삼국시대에는 없었을까? 좁은 면적에 호위무사들이 살았을땐데 절에 마굿간이 왜 필요할까?
@brunona91622 ай бұрын
아픈 역사도 우리의 역사~~ 수치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 기억하고 새겨서 언젠간 간첩들 프랑스처럼 단두대로 처단할 날이 오기를~~
@준호아빠2 ай бұрын
중국의 식민지배당시 명나라총독부 청나라 총독부가 갖쎄벼간 인간과 동산들이 어마무시한데 원 금 명 후금 이 쎄벼간거는 일본보다 더한데 그들은 약탈 일본은 합방 조선의 무능함 중국에 총독부 식민지 간섭 무기도 못가지지게 500년간 간섭 군인도 무기 개발도 못하게 간섭 하고 조선의 무능함을 알려라. 중국의 속국이면서 중국은 왜 한마디도 못하는 벙어리가 이리많아? 언제까지 중국에 한마디도 못까는 한국인을 봐야되노 유행따라 짖거리지말고 중국 욕 못하면 일본 욕하지마라. 조선은 중국에 인간도 상납하며 미게한 나라임 인권이라고는 없는 나라임 국민이 국민을 노예로 무인금에 강제 노가다를 대를이어 500년간 지속해온 악독한 나라임
@K강상2 ай бұрын
어느시대든 매국노들은 잘 처먹고 잘사는 듯...
@화이팅-t2q2 ай бұрын
조선 총독부는 때려부수었으면서 왜 몽골 황실을 위해 세워진 탑은 부수지 않는가?
@봉팔이-h8g2 ай бұрын
반일감정은 있어도 반몽감정은 없으니까요
@이창석-k1f2 ай бұрын
일제는 극악 무도한 놈들임.
@이창석-k1f2 ай бұрын
일제는 망하는게 아니라 지구상에 없어져야할 족속.
@신시풍백2 ай бұрын
경천사탑이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본궁을 떡 하니 가렸나요? 경천사탑이 수탈과 식민지배를 상징하나요? 정말로 저 두개가 동등하게 비교해야할 것으로 생각하는건가요?
@화이팅-t2q2 ай бұрын
@@신시풍백 몽골이 일제보다 훨씬 더 수탈 심했는데?
@MrParksangjoon2 ай бұрын
매국노는 천년이 걸리더라도 척살 해야 나라의 미래가 있는 법...
@강석덕-w4z2 ай бұрын
못된놈 에식진
@콩아지-s8p2 ай бұрын
강의 이해하기 쉽게 잘하십니다^^
@기계-e7n2 ай бұрын
백제가 당하는동안 고구려지원군은 뭐하고있었나요??
@TodayHistory242 ай бұрын
■고구려는 640년대부터 멸망에 이르는 668년까지 당나라와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당나라가 고구려의 주적이었죠. 백제가 멸망한 것은 꽤나 순식간이었고, 이때도 고구려는 당나라를 상대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백제가 멸망한 이후 당나라는 나제동맹을 맺은 신라까지 가세해 고구려를 공격합니다. 하지만 당시 고구려의 실질적인 집권자 연개소문이 잘 막아냈는데요. 그러던 664년(추정) 연개소문이 사망하면서 아들들 간의 권력다툼이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이 혼란 속에 계속해서 공격해오는 신라-당나라 연합군을 막아내지 못하고 결국 668년 고구려까지 멸망합니다.
@純粋な男-d8r2 ай бұрын
많은 역사학자들은 고구려가 백제를 측면 지원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조차 없이 백제가 너무 빨리 멸망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純粋な男-d8r2 ай бұрын
그리고 전해인 659년에 3월과 11월 2차례나 당은 중앙병력을 동원하여 요동 지역에서 공세를 이어가고 있었으니, 고구려로서는 서부전선에 잔뜩 경계를 집중하고 있었던 터라 남부전선에 대해서는 별다른 군사력을 배치하지 않았을거라네요 사실 남부전선은 불과 5년 전인 655년에 고구려가 백제, 말갈과 더불어 신라 북변의 33성을 탈취하는 성과를 거둔 바가 있어, 다소 느긋한 형세였습니다
@퍼식2 ай бұрын
애초에 고구려가 지원하지 못하게 당나라가 요동쪽에 보낸 군대도 있엇음
@2갓준2 ай бұрын
몽골지배기
@정영선-e8o9y3 ай бұрын
노비 부리던 양반족들 자손대대손손 저주를 받아라,
@선산향교3 ай бұрын
노비 부리던 양반들 다 지옥 축생 갔습니다 ⛔️⛔️⛔️⛔️⛔️
@김도형-q5d3 ай бұрын
헬조선~~전주이씨 반성하라!ㅇ진성 이성계직속
@young-kv6lf3 ай бұрын
역사를 바로 가르치세요. 신라는 3국통일 안 햇음. 고구려와 백제를 당에 넘긴 한민족의 배반자. 나중에 백제유민의 도움으로 백제의 구영토탈환. 백제유민이 당나라쥬둔군 넘 싫어햇다고. 지도를 보세요! 나당연합이후, 신라눈 여전히 한반도동남부에 꼬라져 앗다가, 나중 한강이남으로 지도 그려가며 3국통이뢧다...가증쓰럽기가. 어휴 저 김춘추 이명박... 피는 못 속여.
@Isfj-s1p3 ай бұрын
역시 통수전문 즌라더 백제
@서성균-o4i3 ай бұрын
일본,중국과..조선이 만들어낸 소설일뿐.
@김태조-k5z3 ай бұрын
질만했을 졌지.
@부산카카시-e2i3 ай бұрын
예로부터 매국노는 잘만사는구나...
@박길용-n9p3 ай бұрын
그래서 백제는 대륙에 이었다.^^ 논리적으로 한반도에는 백제는 없었다
@muto-j5e3 ай бұрын
저땐 지방세력이 보기에 왕권은 그냥 딴나라 잖어?
@아무개-u2i3 ай бұрын
저게 세계 제일 향로 인거 아시나요....역사를 아세요
@카네기-l8d3 ай бұрын
ㅎㅎㅎ 네들이 그때를 살아봤어 꾸며진 거짓역사 웃기다
@edgaryi76373 ай бұрын
중국역사에 기록된 진실이야 멍청아 확인도 안하고 거짓역사라고 시부리네
@기타누락자-d1y4 ай бұрын
예식진 전라도 사람 아니구나.
@이자중4 ай бұрын
연개소문 아들도 있습니다.
@예은-o3g4z4 ай бұрын
예식진=이완용=윤석ㅇ
@goindol-eu1yo4 ай бұрын
백제는 660년 중국 산동지역에서 나당연합군에 의해 망했습니다.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 사학계는 알고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주활동 무대는 중국 동부지역이고, 한반도는 고구려와 왕망의 신라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산서성, 요동지역(황하 이북지역)의 지배자였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도록하겠습니다. <梁書(양서)>, <南史(남사)>의 기록에 고구려는 사방 2천리이며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며 도읍지는 환도산의 꼬리부분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요산은 산서성 지역입니다. <삼국사 기록>에 "고구려 모본왕때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점령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중국 태행산맥 즉 산서성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 .................................................................. 또한 2개의 신라 기록이 삼국유사등 몇몇 기록이 등장합니다. <한반도 신라>는 후한시대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망하고, 이 세력이 고구려에 투항하여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신라가 세워졌고,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왕의 호칭을 마립간이라 했으며, <대륙신라>는 진나라 유민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백제에 의탁하니, 백제(초기 백제의 위치 : 낙양, 숭산, 태산 일대)가 동쪽 땅(산동반도 일대, 양자강 안휘성 일대)을 할해하여 내줘서 그곳에 세워진 대륙신라.(왕 칭호) 이 두개의 신라가 있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를 짜집기하면서 2개의 신라기록을 하나로 합치면서 엉망이 된것입니다. ""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즉 대륙에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에 있었던 졸본부여. 졸본부여에서 남하하여 산서성, 황하이북 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고,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다스렸던 고구려. 졸존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황하인근의 하북지역, 하남지역으로 이주한 소서노 세력의 백제. 진나라 유민이 백제땅으로 이주하여, 나라를 세운 백제의 동쪽땅. 즉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양자강 이남지역에 있었던 대륙가라와 왜국.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참고) .........................................................................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의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충남 공주가 웅진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부여가 사비였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금강이 백마강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번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조선 초기, 일제강점기때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소정방은 서해를 타고 부여에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서안에서 황하를 군수물자 땟목을 타고 황하 하류, 황산(황하 옆에 있는산 황산) 인근에 덕물도(가탐도리기 참고)라는 섬에 집결하여, 황산벌(황하 강가옆)에서 전투를 한것입니다. 그당시 사서기록을 보면 황하를 海라 기록했습니다. 중국 산동지역에는 지금도 백마강, 황하옆 황산(벌), 웅진성, 사비, 탄현, 제녕, 제남 그리고 양자강 안휘성 인근에 경주, 팔공산, 함산, 낭산, 계림, 9층목탑, 박혁거세 묘와 후손들이 사는 마을 등등 고구려,백제,신라의 지명과 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신라무덤은 왕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몰라 전부 "총"입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기회되면 직접가서 보세요. 사마왕의 지석은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것처럼 지석에 구멍이 나있고, 글씨체도 부인 지석과 다르게 조잡하게 씌여있으며, 왕릉의 위치는 옆의 고분들 사이에 끼여있는 형세로서 왕의 무덤이라 할수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어 되메어진것을 1971년 다시 발굴했던 것이며, 발굴당시 이미 내부는 어지럽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부인의 관 밑에서 발견된 반지에는 왕비가 아니고 다리작 부인이라는 글씨가 씌여있으며, 다리작은 고구려계 대부인이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 부여와 정림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사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소정방이 썼다는 석탑의 대당평백제비는 사서 기록과 다르며,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당서 기록에는 탑이 아니고 비석에 승전내용을 기록한것으로 되어 있으며, 위치 또한 다릅니다. ..................................................................... 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하북지역,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중국측 사서인 "사고전서", "명의고" 기록> 산동의 구이가 조선이다.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조상의 나라, 동이. 그곳이 바로 산동지역을 주무대로 했던 고조선이다. <"우공추지" 기록> 동이 9족이 곧 "우이"이고, 우이가 곧 "조선"이다. <"사서혹문" 기록> 구이는 현토, 낙랑, 구려를 말한다. <"구당서" 기록>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때, 김춘추를 "우이도" 행군총관 으로 임명합니다. 그 "우이도"가 바로 백제가 있었던지역이고, 과거 산동지역 우이의 땅입니다. 또한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참고로 거란은 지금의 중국 산서성지역에 있던 나라입니다. 북경 서쪽 태행산맥에 자리잡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거란이 고구려가 차지했었던 산서성 지역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라고 자칭했던 것입니다.(서희 담판) 발해가 망한이후 북경유역은 고려의 땅이 되었고,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바로 하북성과 산서성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전투지역: 안문관, 흥화진, 통주 등등 전부 하북성, 산서성 지역임) 참고로 사서기록을 보면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때도 그랬고, 발해를 공격할때도 태행산맥 동쪽 석문(석가장)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바로 북경 서쪽, 즉 황하이북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북경), 그 오른쪽에(개주, 개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신라인 김함보가 건국했던 김(금)나라는 중원에 진출했다가 원나라에 패배하고,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중국 중부지역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고려의 남경(양가강 유역)에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입니다. 여러분이 많이 보시는 위키백과 내용들은 사실과 다른 내용들이 많습니다. 꼭 걸러서 보시길 바랍니다. 진짜역사는 사서를 해석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hyunchangkim47834 ай бұрын
북쪽 김씨 3부자보다 더하랴?
@도력신불님4 ай бұрын
감정가는 얼마나 될까요 약 1,300만 원 정도 되나요
@TodayHistory244 ай бұрын
KBS 프로그램 <TV쇼 진품명품> 1000회 특집 방송에서 국보'급' 고려청자가 나온 적이 있습니다. 감정가는 25억이 책정되었습니다. 물론 감정가는 실제 가치와 차이가 날 수 있고, 도자기와 향로는 다른 유형의 문화유산입니다. 하지만 국보가 아닌 국보급이 25억이 책정된 것을 볼 때 백제금동대향로는 책정불가의 가치를 지닐 것으로 생각합니다 :-)
@youngjinlee51094 ай бұрын
백제이 대부분의 유물은 중국의 동해안과 일본큐슈지역에 흩어져 있다. 도굴되어 세상에 나오지 못한 수많은 유물들을 다 찾을 날 이 있을까?
@cosmosl19744 ай бұрын
백제 담로 22개가 해외에 있기 때문에 백제문화는 아시아 전체를 조화롭게 만든것임
@TV-qv8xm4 ай бұрын
우연히알고리즘으로 보게되었는데 너무좋네요 역덕은 추천 구독하고갑니다
@특검불통시양심에따라4 ай бұрын
묘사를 현실감있게 다큐를 만들었네요
@521Qom-gv8ke4 ай бұрын
백제와 고구려는 같은 혈통 민족이죠...형제자매가 분가해서 각자 가정을 꾸린것과 같은 이치... 언어도 같고 외모도 정통 북방몽골황인이고.....반면 신라는 완전 다른민족...왕족과 귀족층은 스키타이 백인혈통..신라가 골품제로 성골 진골 구분한것도 이런연유..화랑이 얼굴을 하얗게 분장한것도 그렇고....신라의 혈통은 현대국가로 보면 지금의 유럽 헝가리와 가까운 혈통..실제로 헝가리에서 매년 열리는 아틸라왕 기리는 축제에 신라를 대표해 한국이 참가했는데 주최측이 저멀리 신라에서 우리형제가 왔다고 소개함... 고로 백제 고구려와ㅡ신라는 당시ㅡ같은 민족 개념이 없었다고 봐야함
@user-wzzang4 ай бұрын
저게 우리가 흔히 "좆 빠진다" 라는 말이 바로 저 곤장으로 인한것이였습니다.
@brandonlee33274 ай бұрын
폭행을 일삼는 놈들은 필히 곤장형으로 다스려야 함. 정치꾼들도! 죽기 직전까지 때려서!
@guckhaepark17334 ай бұрын
중국은 문화대혁명으로 모든 문화는 사라졌다. 무식한 지도자는 문화를 다 없애 국민을 무식자로 만들어야 지배하기 쉽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