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한 열조 소열황제 현덕 유비: 승상...승상...제갈승상! 짐은 본디 한미한 가정에 나서 돗자리를 팔며 생계를 이어왔소. 비록 돗자리를 짜서 파는 처지이나 나는 고조황제의 자손이니 한실중흥이 어찌 남의 일이겠소? 하물며 4백년 왕업의 도를 지키고 한실의 중흥에 짐이 참여하였으니 이것이 어찌 그저 우연이겠소? 짐은 운장, 익덕. 조자룡과 더불어 황건의 난 이후 분연히 일어나 대의를 품어왔었소이다. 그러다 승상이 신선과 같다 하여 양양의 융중에서 밭갈던 승상을 세번 찾아가 예를 행하였소. 당시 승상은 약관을 넘긴 스물일곱 청년이었으니 그 풍모와 재주를 보건대 가까운 시기로는 고구려의 을파소에 견줄만 하며 멀리는 전국시대 악의에 견주어도 부족함이 없다 할 것이오. 아아! 승상은 세번 찾아 간 부덕한 짐에게 융중대책을 건넸으니 이는 필시 황천의 보우하심이오. 승상이 진단한 천하의 형세가 세 솥발과 같다고 했으니 돌이켜보건대 그 말은 틀림없이 땅에 떨어지지 않았소. 그대가 스스로를 일컫어 악의와 같다 함에 악의의 재주를 능가함이 있으며 부열과 이윤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소. 더욱이 태공망(여상 강태공)의 경륜에 비추어도 결코 승상의 경륜은 결코 부족함이 없다 할 것이오. 승상의 지략에 따라 우리는 서쪽 귀퉁이인 한중을 점거하여 고조황제께서 왕업을 시작하셨던 그 땅에서 그 사업을 계승하였으니 이또한 어찌 황천의 뜻과 보우가 아니겠소? 아아~짐은 이르노니 오로지 승상에게 나라일을 전임케 하고 황사(황제의 스승)와 태자의 상보가 되게 하였소. 다만 이것이 승상에게 큰 짐을 지어준 것 같아 실로 미안하기 짝이 없소. 이릉의 싸움 이후 피폐해진 국사이거니와, 특히 짐의 통지(아픈 손가락)인 태자를 승상에게 떠맡겼으니 짐의 부덕함은 이루말할 수 없구려. 승상에게 이제 군국정사를 일임한 바 혹여라도 내 자식이 못나고 어리석어 나라일을 그르친다면 승상이 대신하여 그 자리에 올라도 짐은 가히 원망하지 않겠소. 승상이 실로 국가의 주석일지니, 고토를 수복하고 천하의 귀일이 달린 대업을 성취할 것을 의심치 않소. 승상...승상..제갈승상! 부디 이 사업을 저버리지 말아주시오. 간곡히 청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