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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0524 무아와 비아 논쟁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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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user-ep3hn6gn9i
@user-ep3hn6gn9i 6 күн бұрын
나가르주님 인가요 고구마같은 느낌 계속 자기개념을 말하면서 상대가 규정한다고 같은 말을 반복 바나나가 노랗다는 사실을 나는 아니다 라고 하는 사람에게 무슨말을 더할까요 답답하네요
@user-ev1cn9bp5v
@user-ev1cn9bp5v 20 күн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kt9pl9zd3y
@user-kt9pl9zd3y 20 күн бұрын
오늘 또 다시 들었습니다.
@jungchaeheejung8207
@jungchaeheejung8207 24 күн бұрын
괜찮네요. 무심코 들리는 냉장고소리(의식되지 않음)ㅡ소위 본각, 알아지고 있으나 말아채지 못함, '무슨 소리'가 있음을 알아차림ㅡ소위 시각, 현랑('냉장고' 소리인 줄은 모름) '냉장고' 소리인 줄을 암ㅡ생각의 시작, 비량의 시작.
@user-ml6ds6wt8i
@user-ml6ds6wt8i 24 күн бұрын
1. 본각과 시각은 같은 경험인가요? 다른 경험인가요? 2. 현량과 비량은 같은 경험인가요? 다른 경험인가요?
@user-tj9ds9cp8h
@user-tj9ds9cp8h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ci9xp3gz5c
@user-ci9xp3gz5c Ай бұрын
다시태어났다 생각하시고 다시 생각해보세요
@sungchang705
@sungchang705 Ай бұрын
참~인내심 좋의시네요..질문 냐용이 뭐래~
@user-sz2pu3tl6t
@user-sz2pu3tl6t Ай бұрын
감로안 입니다. 저는 이럴때 무주 입니다.^^
@user-zk5kq5ro7r
@user-zk5kq5ro7r Ай бұрын
통쾌한 법의 연기! 참으로 시원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무~아미타불 합장
@91op83
@91op83 Ай бұрын
🙏🏼🙏🏼🙏🏼⚘️
@user-my7fb5zw8o
@user-my7fb5zw8o Ай бұрын
연기법이 어렵게만 느껴졌었는데 삶이 어떻게 살아지고 연기되는지 쉽게 설명해주시니 이해도 잘되는것 같아요. 규정되고 판단된 고정관념의 과거 경험된 생각이 삶의 괴로움이 되니, 삶의 괴로움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매순간순간 깨어있음 밖에 없네요. 깨어있어야 알수있으니까요~생각에 빠져있고서는 절대 알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내가 '나' 임을 규정한다는것도 착각임이 느껴집니다. 건강하시기를 !!!
@user-zh8go8cs7k
@user-zh8go8cs7k Ай бұрын
법사님의 뜻을 전하기에는 묻는 분의 수준이 너무 심합니다! 어떤 이들은 시간을 내어 법문을 들이니, 많은 이들에게 진심을 알리려면, 방편으로라도, 질문자의 수준을 고려하셨으면 합니다.
@91op83
@91op83 Ай бұрын
🙏🏼🙏🏼🙏🏼
@user-ih6eu5gj4t
@user-ih6eu5gj4t Ай бұрын
질문자가 발표할땐 경청자는 의견을 끼어들지말고 듣는겁니다. 한마디할때마다 시비하면서 자꾸 잘라먹고 논쟁하는 저사람은 저 아상이 있는한 천년이라도 깨닫기 힘듦.
@user-ti7hf5ps4m
@user-ti7hf5ps4m 2 ай бұрын
자유~로운 삶에 대해서 알아졌습니다. 감사합니다.
@jungchaeheejung8207
@jungchaeheejung8207 2 ай бұрын
오온 외(안이든, 밖이든)에 영구불멸의 아트만, 참나가 있지는 않다는 것이 유신견 타파이고, 그 자세한 논증이 중론에 나오지요. 참나론자들은 오온 외에 아트만이 있다고 주장하고, 부처님과 용수는 유신견 타파, 중론으로 그것을 논박하는거지요.
@jungchaeheejung8207
@jungchaeheejung8207 2 ай бұрын
비아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밀린다왕문경의 수레의 비유, 와지라경의 마차의 비유 등을 이해할 능력이 안되기 때문에, 무아상경의 의미를 이해못하는 거로서, 소위 근기의 문제이지요. 밀린다왕문경의 수레의 비유를 통찰, 이해할 수 있으면 무아란 것이 간단히 이해되지요.
@user-zu9sb6jm5m
@user-zu9sb6jm5m 2 ай бұрын
듣는 순간 첫째 둘째 셋째로 문제점이 파악되는 능력 부럽.
@user-fk4gf4tn1s
@user-fk4gf4tn1s 2 ай бұрын
20대 등장~~ 너무 밝고 좋아요 ^^
@user-hy3bd1zy5g
@user-hy3bd1zy5g 2 ай бұрын
두분께 감사드립니다 😊
@태현스님tv
@태현스님tv 2 ай бұрын
상태만 있다는 말을자꾸 강조하면 유물론적 자이나교의 주장과 동일한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오류는 리더가 논리(개념)를 중심으로 진리를 이해시키려는 의도 빠져있을 때 일어나는 대표적인 혼돈입니다
@user-wm3yy9ks1w
@user-wm3yy9ks1w 2 ай бұрын
훌륭한 법문을 듣게 해주신 거사님 감사합니다
@seokbokang
@seokbokang 3 ай бұрын
순룬 사야도의 핵심 가르침 감사합니다.사두 사두 사두 ~~
@user-ic4cz1fn8l
@user-ic4cz1fn8l 3 ай бұрын
어릴때부터 불안강박증이 심한데 정신과 오래 다녀도 호전 안되고 사람 미치겟네요. 생각과 감정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니깐요
@user-ic4cz1fn8l
@user-ic4cz1fn8l 3 ай бұрын
진짜 나라는 게 무엇인지 몸과 마음의 병으로 너무 괴롭네요. 하필 아플때 사랑하는 가족이 다 하늘나라 가고 ㅠ
@user-wi7kx8ux9w
@user-wi7kx8ux9w 3 ай бұрын
'곽부쌍시'가 아니라' 곽시쌍부' 입니다.
@user-ml6ds6wt8i
@user-ml6ds6wt8i 3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to6xy7us8k
@user-to6xy7us8k 4 ай бұрын
이유는 없고 따지기만 하내요 도반님들은 법담을 나누려는 건지 따지고싶은건지 .......
@user-px2kk8jy6p
@user-px2kk8jy6p 4 ай бұрын
원자의 전자가 확률적으로 우주 끝에 있을 확률이 0에 가깝지만 0은 아니라네요. 즉 원자의 크기(양성자+전자)가 우주의 크기만큼의 가능성은 있다는거죠! 그럼 우주만물이 중첩되어 있는건가요;;;;
@user-jf7dk1pv3g
@user-jf7dk1pv3g 4 ай бұрын
모조리 헛소린 줄 어느 때에 알랑가~ 양심이라도 있음 뗄 치울낀데...
@user-hy4cl4fy3m
@user-hy4cl4fy3m 4 ай бұрын
❤❤법문에 대한 소감❤❤ 생각이 무분별인데 생각으로 진리를 분별하려고 하니 무지아닐까요? 진리는 생각이 아니며 생각이 진리입니다.
@user-ml6ds6wt8i
@user-ml6ds6wt8i 4 ай бұрын
생각으로 진리를 분별함이 아니라 생각대로라고 할 수 있느냐는 규정할 수 없음에 대한 대화 아닌가요? 그렇게 규정없는 경험상태(중도)가 되어지면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일어나겠지요!!! 오히려 님이 생각으로 법담을 분별하고 있으니 진리가 깨달아지기는 요원하겠네요!!!
@tigereasy6925
@tigereasy6925 4 ай бұрын
우보와 우보 도장 도반과의 최종 문답 정리 타이거가 지적한 우보의 핵심 모순은 " 우보는 빛, 공기 등의 운동을 부정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보임, 들림의 사실, 실제 경험은 가능한가? " 입니다. 또한 우보는 오직 이 사실, 실제 경험을 통해서만 자각과 깨달음이 일어난다고 거듭 주장해 왔지요... 지금까지 우보와 우보 도장 도반들은 거듭된 모순 지적에 대해 어떤 해명의 말, 글이 없습니다. 우보의 법문은 모순이 있는, 엉터리 법문이라고 지적을 하며 거듭 답변을 요청했음에도, 부차적인 문제에 대한 응답은 있지만, 왜 누구 하나 핵심 모순에 대해 답하는 사람이 없을까요? 이 침묵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소하거나, 엉터리 비판이라 답변할만 가치가 없는 지적이기 때문에 무응답인가요? 아니면 침묵을 통해 모순임을 인정한다는 것인가요? 수행자라면 모름직이 정직해야 할 것입니다. 모순이 있다라고 비판을 받았을 때, 모순이 없다면 모순으로 보이지만 이런~ 이치에서 모순이 아니다...라고 답변하거나 모순이 있다면, 모순으로 인정한다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중생들은 자신의 잘못, 실수, 오류를 인정하기 어렵지만, 진리와 법을 추구하는 수행자라면 마땅히 정직해야 하지 않을까요... 남에게는 파사현정의 깃발을 휘두르며, 말로 진리와 법을 떠들기는 쉬워도, 자신이 대상이 되는 실제 상황에서 그 말대로 실천하기는 어려운 일인가 봅니다...
@user-ml6ds6wt8i
@user-ml6ds6wt8i 4 ай бұрын
이미 답변에 해당하는 우보거사의 법담이 많이 있어서 듣고도 모르는 청맹과니한테 굳이 또 답변을 할 필요가 없겠지만, [그냥그대로 행복하기] 카페에 달리는 댓글이라도 중계해 드리지요!!! 먼저 일단 참고해 보세요!!! kzbin.info/www/bejne/fnzMgqqYpbqlrNE
@user-ml6ds6wt8i
@user-ml6ds6wt8i 4 ай бұрын
타이거이지님의 댓글을 [그냥그대로 행복하기] 카페에 올렸더니 이런 댓글이 달렸네요!!!(그 외에도 다른 댓글들이 달려 있으니 혹시 관심있는 수행자는 거기로 가셔서 확인해 보시길...) tatata20 이런 꼴통새끼도 있네~~~ 우보거사는 누누히 얘기했건만 지가 못알아들으면서 오히려 우보거사를 탓하고 있다니..... 지가 색안경을 끼어서 빨같게 보이는줄 모르고, 빨간게 아니라 희다고 하는 우보거사 보고 미쳤다고 하는 꼴값을 떨고 있는 주제에, 주둥이는 거칠어 온갖 험담을 해대고 있으니, 그 구업을 어떻게 받을지 쯧쯧쯧~~~ 이미 무지라는 색안경이 몸과 하나가 되어버려 말해줘도, 그래서 우보거사가 상대해 주지 않은거겠지만, 귓구멍으로 들어가지 않겠지만, 원래 이런 일이란 남을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인연따라 되어지는 일이니, 또 한번 (헛)수고해 보겠다~~~ 님은 " 우보는 빛, 공기 등의 운동을 부정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보임, 들림의 사실, 실제 경험은 가능한가? "라고 반문하는데, 그러면서 중론의 관거래품에서 운동(오고 감)을 부정하지 않는다 했는데, 삼척동자가 읽어봐도 중론의 관거래품은 오고 감이라는, 움직임이라는 거동 또는 동작(운동)은 없다(사실, 실제가 아니다)고 했다는걸 알텐데, 미친 놈이 아니고야 어떻게 운동을 부정하지 않았다는 이해가 나올 수 있는거지? 님의 말대로 빛이 운동한다면, 공이 여기서 튀어 저기로 가는 그러함과 같은 현상일텐데, 그렇다면 성냥불빛은 여기서 일어나 저기로 감(움직임이라는 운동)으로써 여기는 더이상 없고 저기에 있어야 된다는 말과 같을텐데, 불빛은 여기에 없으면 저기도 없으니 빛의 움직임이라는 운동이 있다는 말은 모순되는 말로써, 경험에 맞지 않는 미친놈의 생각일 뿐이지 않나요? 그럼에도 어떻게 보임이라는 경험이 실제할 수 있는가? 만약 빛이 운동한다면 오히려 실제 경험이 어렵게(아니 있을 수 없게)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빛이 정통으로 내 눈으로 오지 않거나 다른 무엇에 의해 시야가 가려진다면 빛을 볼 수 없게 되겠지......왜냐하면 그럴경우면 빛은 다른 곳으로 움직여 갈테니 말이지(양자물리학적으로 말하자면, 빛이 실체(입자)라면 직진 움직임(운동)할 수 밖에 없을테니)~~~ 그럼에도 빛을 경험할 수 있다는건 빛은 실체가 아니어서 움직임(운동)은 없지만, 소위 연기라 이름하는 그러함(양자물리학에서는 파동이라 함)으로 가능하게 되는거지~~~ 우보거사는 그런 이치를 물결비유로 잘 설명하고 있는데, 무지한 님인지 놈인지가 못알아들을 뿐 아닌가? 우보거사는 물결비유 뿐만 아니라 다른 수많은 법담에서도 그러한 경험의 이치를 말하고 있건만, 귓구멍을 폼으로 달고 있는 님이 못들을 뿐 아닌가? 또 님은 "우보는 오직 이 사실, 실제 경험을 통해서만 자각과 깨달음이 일어난다고 거듭 주장"한다고 했는데, 우보거사의 그런 주장은 너무나 당연한거 아닌가? 실제 경험없이, 또는 실제 경험을 통하지 않고 어떻게 깨달을 수 있을까? 부처님의 초전법륜경과 호흡수행경과 대념처경만 봐도, 우보거사가 말하는 그런 경험으로 깨달음이 생기게 된다고 말씀하시지 않은가? 눈이 있고 귀가 있다면 누구나 확인할 수 있는 사실 아닌가? 다만 무지한 님이 우보거사의 <실제경험>이라는 말을 <실재경험>이라고 오해하여 벌어진 해프닝 아닐까?(그래도 그렇다면 불행중 다행한 일이지만...) 우보거사의 <실제경험>에서 <실제>란 실체 경험을 말하는게 아니라, 금강경의 무주상(생각내용대로라는 착각 없음)이라는 표현과 육조 혜능스님의 무상(생각내용대로라는 착각 없음)이라는 표현과 팔정도의 정념이라는 표현의 우보거사식 표현으로, 그러한 <실제경험>은 무상이고 무아라고 표현되는 그러한 <사실> 경험을 말하는건데, 그렇다는건 우보거사 법담의 곳곳에서 드러나 있지 않은가? 역시 귓구멍 닫고 눈구멍 닫고 자기 생각(무지)에 빠져있는 님은 모르겠지만...그래서 저런 어처구니없는 무지한 막말이 나온거겠지만...... 암튼 이 타타타가 보기에 님의 무지로 인하여 일어난 해프닝일 뿐이니, 귀가 있으면 듣고, 눈이 있으면 보시요~~~ 그럼에도 지금까지의 님처럼 그렇게 빡빡 우기면, 누가 있어 님을 깨워주리요..... 아마 부처님이 오셔도 불가능한 일일테지요~~~ 그럴때 쓰는 말이 <구제불능>이라는 말이요, 그러니까 <구제불능>이라는 말은 우보거사에게는 당치않는 말이고 님에게 가당한 말이라는 말이요~~~
@user-uy2dx2hu2j
@user-uy2dx2hu2j 5 ай бұрын
카페에 소감을 나눠보라해서 본 소감을 유튜브 댓글로 나마 올립니다. 저가 보기에 타이거님은 이 점을 오해하고 계신것 같습니다. 타이거님은 거사님이 운동을 게속해서 "부정"하고 계시다고 말씀하시는데 저가 보기에 거사님은 운동을 "부정"한게 아니라 운동이라고 이름하는 "현상"의 사실은 무엇이고 어떠한가에 대한 말씀이십니다.만약 부정하신게 있다면 중생들이 말하는 그런 내용(상) 그대로의 운동이 아니다라는 말씀이셨겠죠 바로 영화관의 예시가 그러하고 태양과 썬글라스와 빛의 예시가 그러합니다 그 설명에서 충분히 타이거님께서 문제제기하는 부분에 대해서 설명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이 댓글에 더 토를 달아 설명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거사님은 우리가 움직임(운동) 같은 경험이될 때 영화관의 예시로써 움직임(운동)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사실과 사실이 어떠한지와 태양과 썬글라스와 빛의 예시로써 우리들에게 감각되어지는 그 현상에 대한 사실이 무엇인지와 어떠한지 대해서 구체적인 답변이 다 되었다고 보이는데 아니라고만 하시니 참으로 이상하지 않을 수 없군요!!!
@tigereasy6925
@tigereasy6925 5 ай бұрын
" 저가 보기에 거사님은 운동을 "부정"한게 아니라 ..." 아닙니다. 만일 우보의 말을 그렇게 들으셨다면 잘못 들으신 겁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님 스스로 멋대로 들은 겁니다. 동영상을 똑바로 다시 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우보는 불래불거의 낙처를 말 그대로 오지도 않고 가지도 않는다, 옴도 없고 감도 없다, 즉 운동이 없다 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수 없이 이 말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님은 이렇게 본인 도장의 사부의 말을 외부인 보다 똑 바로 알아 듣지 못하면... 우보에게 혼 좀 나야 할 듯요...ㅎ 나 같으면 이런 쉬운 얘기도 이렇게 못알아 들으면 바로 방 타작 들어갑니다... ㅎ 사부의 말도 제대로 알아 듣지 못한 문하생과는 더 이상 대화고 싶지 않네요... 죄송합니다...
@user-pi4dc3ju1z
@user-pi4dc3ju1z 4 ай бұрын
@@tigereasy6925 타이거님 움직임(이동=운동)이란 게 있어서 움직임이라 할까요? 단지, 이름이 아니구요? 이름이 운동이란 말은 개념이라는 거죠? 그런데 타이거 님은 움직임이란 게 마치 보편적 진리인 양 실체화 하면서 생각에 빠져 있는 줄 모르시고 호들갑을 떨고 계신 게 아닌지? 움직임이란 움직이지 않음을 염두에 둘 때 생겨나는 개념이란 말씀입니다. 즉 움직이지 않음이 없다면 움직임이 어떻게 있을 수 있겠습니까? 예를 들어 아파트 구경을 갔는데 방이 크 보인다는 생각이 든단 말이죠 어떻게 크다는 생각이 일어날까요? 작은 방을 염두에 뒀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실제 큰 방과 작은 방이 있나요? 의존적이며 조건적이죠 그래서 큰 방과 작은 방은 공하다(실체가 없다) 라고 하지요 마찬가지로 움직임과 움직이지 않음도 그렇치 않을까요? 보임이 있을때는 보임이 어떠하다는 생각이 함께 합니다 크다 작다, 붉다 푸르다, 그렇죠? 크고 작은 게 있나요? 푸르고 붉은 게 있나요? 그렇듯 움직임이란 생각을 사실이라 착각하고 계시니 보임과 들림은 움직임의 결과다라는 생각이 드시는 겁니다. 이름하여 세상은, 보이는 대로가 아니고 들리는 대로가 아니고 생각대로가 아닙니다. 그래서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라 라는 말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낸다는 다른 이름이 보임이고 들림이라는
@user-uy2dx2hu2j
@user-uy2dx2hu2j 5 ай бұрын
저번 "어느 수행자와의 대화(선수행과 우보거사의 중도위빠사나수행)"에서도 거사님이 설명을 해주신 부분이지만 그 영상 댓글에서는 저가 언급하지는 않았던 부분인데 먼가 그 부분까지도 다시 한번 관련영상을 올려서 점검이 되어지도록하는 그런 영상인 것 같이 느껴져서 좋네요 들어보니 영상의 핵심은 위빠사나나 선이냐가 중요한게 아니라 스스로의 경험상태가 어떠냐의 문제다라는 말씀이 핵심인 영상 같습니다. 부처님은 부처님의 스스로의 경험상태를 이름하여 "중도"라고 이름하셨을뿐 "중도"가 따로 있어서 "중도"라고 말한게 아니지요 위빠사나와 선도 그러한 맥락 나온 표현들이니 표현, 말이 중요한게 아니라 스스로의 경험상태가 어떠냐가 중요한 핵심이겠지요 그러니 먼가 미혹하거나 혼란스럽다면 스스로의 경험상태가 어떠냐의 점검이 있어야될 문제이지 다른걸 탓할 문제가 아니겠지요
@user-uy2dx2hu2j
@user-uy2dx2hu2j 5 ай бұрын
가끔 생각이 나면 들어와서 영상을 들어보고 있는데 선수행에서 "의문 덩어리가 되어라"라는 말을 듣고 수행자들이 의문 덩어리인 상태일려고 또는 간절한 상태일려는 욕심 상태로 되기 쉽상이기 때문에 "의문 덩어리가 되어라"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선수행에서 가르키는 점까지 모두 고려하여 그러한 경험적인 이해로 수행자들이 그 자체로 욕심이되지않게 알아지는 그대로, 경험되는 그대로라는 말씀이 나오는 이치로 도라는 상태가 온전해지면 보이고 들리고 느껴질 때와 동작이 일어난다는 경험상태가 차이가 없어진다는 말에 별로 공감이되지 않는 저가 혹시나 "하는것 같은 느낌"이 나지 않아야된다는 욕심으로 수행을 할려고 경험을 없앨려고하는 함이있는 욕심상태가 될 수도 있기에 한다는 생각이 들어도 사실이 아니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도 그러한 느낌이 알아지면 알아지는 그대로여야 실제의 삶에 경험이고 그러함이 수행상태다라고 그 자체로 욕심이 되지 않게 말씀해주시는 세심함이 알아져서 스스로 많은 점검이되고 아주 좋네요~
@user-ig2gq8nr9p
@user-ig2gq8nr9p 5 ай бұрын
진리의 말씀
@user-tj9ds9cp8h
@user-tj9ds9cp8h 5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user-tj9ds9cp8h
@user-tj9ds9cp8h 5 ай бұрын
이 몸에 실체가 없이 연기에 의해 일어나고 사라짐으로 자아가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지개라는 현상에서 깨달음을 알았습니다.
@user-mh2jy9yr7f
@user-mh2jy9yr7f 6 ай бұрын
공을 실제로 체험해보는 방법이 유일합니다. 언어나 문자로써 설명을 하려면, 더 복잡하고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세상 만물은 인연따라서 일어났다가 그 인연이 변화하면 다른 모습을 보이거나, 감각적으로 인식할 수 없는 에너지로 변화하는 과정의 연속이므로, 고정된 실체가 없다는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이를 두고, 논리적으로 있다 없다 할 수 없는 성질이라고 생각합니다.
@user-wy5mu7cl9c
@user-wy5mu7cl9c 6 ай бұрын
인정받고자하는욕망.. 그것이바로 요즘말하는 관종 이겠지요.. 그래서 종교는 무조건 욕심입니다.. 뭔가 바라는마음 그것이 종교이고 종교는 인간의 그마음을 이용하는 도구가됩니다. 석가는 탐욕의 끝판왕입니다. 그의욕심이 너무나 크기때문입니다. 도를닦고 중생을구제하고.무의이치를 깨닫겠다는 것은 욕심입니다. 부처가 중선봉행 제악막작 이라고 말하는것도 욕심입니다.. 깨어있어야 한다는것도 욕심입니다. 무언가를 원한다고하건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려하는것 또한 욕심입니다. 고로 세상을 욕심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정도의 차이일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