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전경, 여름의 전경, 가을의 전경 모두 궁금합니다.. 찍어서 올려주실거죠? 현재 드론촬영담당하시는 분이 잘 날리신다고 들었어요. 소문으로요. 감사합니다.
@쿠크다스-r6y3 ай бұрын
난 왜 이 시절을 몰랐을까.. 이제 왜 이 아이들을 좋아하게 된 걸까ㅠㅠㅠㅠㅠ
@최대석-i2l4 ай бұрын
와우🎉🎉🎉이곳에도 다녀5셨군용!^^❤
@최대석-i2l4 ай бұрын
예그니 나주에도 다녀오셨군요!^😊❤🎉
@sunlee35114 ай бұрын
멋진 영상, 숨이 멎는 감동이었습니다. 죽은 이들을 위한 진혼곡으로 느껴지더군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하이엘문5 ай бұрын
기대됩니다 ㅎㅎ
@user-wzzang5 ай бұрын
빨리복원하자
@cijjeehh23026 ай бұрын
임라의 역사
@니가알아내가알아6 ай бұрын
장보고가 살해된 곳이 (청해진)완도인가요? (청해진 ) 중국인가요? 유적지에 유물은 완도에 있다지만 장보고의 무덤은 어디에 있나요? 무덤이 없다면 살해된 후 바다에 버려졌는지요....
@Jeong-eun6 ай бұрын
문화 유산은 날조된 가짜들이다
@Jeong-eun6 ай бұрын
국보는 사기냐 날조된 국보
@Jeong-eun6 ай бұрын
국보는 사기다
@Bang9sukJukebox7 ай бұрын
또 와쥬세요 올해 공연두 ❤
@kwoneunjootv63597 ай бұрын
안녕하세요 ㅎㅎ 😊 저도 이번에 다녀 왔네요 넘 잘 해 놨어요 몆년 전하고 많이 달라 졌어요 ㅋㅋ
@kwoneunjootv63597 ай бұрын
안녕하세요 ㅎㅎ 😊
@minsung-jp3ll2bk4l7 ай бұрын
0:01 로보카폴리
@jeongseok_yechani10 ай бұрын
나주박물관 이 날 첨 가봤는데 진짜 핑크뮬리랑 코스모스가 정말 예뻤어요🥰 박물관이 이렇게 예쁘다니!❤ 루시덕분에 나주의 예쁜 곳을 하나 알아간 날이였어요 데이트코스로 강추! 그리고 이 날 루시가 불러줬던 buddy랑 one by one 그리고 해가 뜨는 밤이 진짜 가을분위기랑 찰떡이어서 힐링잔뜩한 하루였답니다 아침 일찍부터 나주 간 나 매우 칭찬해👏👏👏 나주박물관 루시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불러주세요~🥰💕
@WalwalQTO10 ай бұрын
진짜 자연광에서 연주하는 루시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 날 것 같아요ㅠㅠㅜ
@루시라는비타민10 ай бұрын
상엽아.. 애드리브 무슨 일이에요..?😮😮 루시+자연광 조합은 진짜 최고된다ㅠㅠㅠ 저 날 내가 갔어야 해…. 이 영상으로 다가올 봄이 더 기대 돼🩵🩵
수메르(肅辰) 문명, 이집트 피라미드 문명을 건설한 주체는 배달겨레 즉, 古전라인 인류문명이 처음 시작된 곳은 여수반도, 고흥반도로 전하는데 대채로 여수, 순천, 고흥에서 문명과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인류최초의 문명국인 제석환인(帝釋桓因)의 나라인 진국(辰國)의 고불교(古佛敎) 유적이 고인돌 유적이다. 황해도는 환인제석의 아드님이신 환웅성조(桓雄聖祖)의 나라인 '진번진국(眞藩眞國)'이고, 그 위쪽으로 평안도 이북이 환웅성조의 아드님이신 단군성조(檀君聖祖)의 나라인 단군조선(檀君朝鮮)이다. 단군조선은 중원대륙으로 영토를 넓혀서 훗날 은나라가 되어 중국 전역을 영토로 하였다. 주나라의 건국으로 단군조선(=은나라)는 중원대륙을 잃었으나 역시 단군의 나라인 주나라가 중원의 역사를 이어갔다. 고인돌은 조식수련도량(調息修鍊道場)으로서 상고시대 사원(寺院)이다. 전남은 전세계 고인돌의 1/3이 있다. 그리고 금속문명 태동지임을 증명하는 유물이 비파형동검인데 한국에서 출토된 비파형 동검의 90%가 여수석유화학공단 조성 중에 지표조사에서 출토된 것이다. 세계최대의 비파형동검도 이곳에서 출토되었다. 인류문명은 3만년 전에 출현한 O3a3 P210 부계유전자 - 묘족 부계유전자 - 집단에 의해서 시작되었는데 전남에서 출발하여 세계로 진출하게 되어서 오늘날까지 전세계에 고인돌유적이 남게 된 것이다. 중국은 산서성 남부지역에 2500년 전에 거주했던 사람들을 중화민족으로 즉, 하화족(夏華族)의 표준으로 설정하였는데, 이들 중 일부가 전국시대에 전남으로 유입되었고, 다시 전남에서 일본열도로 진출하여 오늘날 일본의 귀족인 화족(華族)이 된 것이다. 그래서 상고시대 한국인=하화족(夏華族, 중국 상고 8대 귀족성 씨족)=일본귀족(華族)이기 때문에 한중일은 예로부터 동원(同源)이라고 한다. 상고시대에 전라도에서 태어난 임금님을 '환인(桓因', ' '환웅(桓雄)' '단군(檀君)'이라고 했다. '환(桓)'은 '환하다'의 음차표기이고 '檀(밝달 단)' 역사 '밝은 뜰'을 음차표기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ᄇᆞᆰᄯᆞᆯ(日本)'에서 유래한 임금님이라는 뜻이다. 중국 문헌에 주나라 임금님을 '단군'으로 기록한 것이 있는데 바로 여기에 이유가 있다. 배달겨레(전라도 고인돌 유골인)=화하족(고대중원인)=일본화족(일본귀족)의 부계유전자는 O3a3 P201이다.이 유전자는 동이족인 묘족(苗族) 유전자이다. 한국왜국(韓國倭國), 일본왜국(日本倭國)을 대표하는 유적은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이다. 일정 때 일본학자에 의하여 조사된 바로는 전남에 약 250여기의 전방후원분이 존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고 한다. 현재 나주에 있는 국립박물관 인근의 전방후원분은 일본천황족의 릉으로 현재까지 일본 천황족의 참배가 이뤄지고 있는 유적이다. 이곳 유적의 성격에 대해서는 해당 지역에서는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사실(史實)이다.호남은 고대에 왜국(倭國)이며 마한이 아니다. 그리고 백제도 아니다. 나아가 마한과 백제는 왜국의 속국이다.전방후원분의 해자 모양은 해가 돋는 모양인 금강의 모습을 모사한 것이다. 전방후원분의 크기는 대체로 200~500m 수준이며 한국 전국에 분포하며 일본에는 3,000~5,000 여기가 있다. 전라도에 왜국이 건국되기 전에는 진국(辰國)이 있었는데 이 나라가 바로 "배달국"이다. 한국의 최초의 국호가 "진국(辰國)"인 이유는 한반도를 거꾸로 보면 용이 승천하는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국(辰國)의 도성은 '삼산이수(三山二水)'의 고장인 순천(順天)으로 옛적 지명이 바로 평양(平陽)이다.말하자면 원조 '평양'이 순천시이다. 순천시의 삼산(三山)이 최초의 삼위태백(三危太伯)이며 이것은 '피라미드'의 원형이며, 순천 봉화산이 사자(獅子) 모습의 산인데 이것이 '스핑크스' 원형이다.한반도는 거꾸로 보면 '사자' '호랑이' '말' '닭' '새' 등의 모습이고 여성이 앉아 있는 모습이다. 한반도를 옆으로 보면 '나비' 모양이다.고래로부터 전하는 신수(神獸)는 대체로 한반도를 은유한 것이다. 기자의 大피라미드 군(群)은 순천의 삼산을 은유한 건축물이고, 大피라미드의 네 갱도가 가르키는 별자리는 한반도이다. "오리온 자리"는 '나비' 모양인데 한반도를 바로 하여 대칭 이동하여 나란하게 그리면 한반도는 '나비'가 된다. "작은곰 자리"는 한반도를 거꾸로 보면 한 마리의 '곰(熊)' 모습을 하고 있는 것에 착안한 것이다. 한반도는 옆으로 보면 '국자' 모양인데 이는 북두칠성의 모양이다."용 자리"는 한반도를 거꾸로 보면 '용(龍)'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리우스 성"은 태양을 상징하는 것으로 태양이 떠오르는 모습의 금강을 가르킨다. '용'은 구사설(九似設)에서 머리는 낙타, 뿔은 사슴, 눈은 토끼, 귀는 소, 코는 돼지, 목덜미에서 몸통은 뱀, 배는 조개, 비늘은 물고기, 발톱은 매, 다리와 손바닥은 호랑이와 비슷하다고 하였는데 이는 다 한반도의 모습을 은유한 것으로 한반도 지도를 이리 저리 움직이면서 보면 구사에 거론한 동물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끝으로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대해서 말해 보겠다. 환단고기는 일본 황실도서관인 정창원(正倉院)에 보관되어 있는 트럭 한 대 분량의 거대한 역사서라고 한다. 이것을 직적 본 사람들이 일제시대 3천재라고 하는 이병도, 이광수, 최남선이라고 한다.환단고기는 전라도를 본령으로 하고 순천(順天)을 도성으로 하는 환국(桓國=배달국, 황해도 이남이 세력 범위)과 단군조선(檀郡朝鮮=은나라)의 역사를 정리한 사서라고 전해진다. 전라도의 역사를 언제까지 소급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은 과학적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지만 적어도 몇 만년의 역사로 소급하는 장대한 역사임은 이견이 없을 것이다.정창원 환단고기의 공개로 전라도의 찬란한 상고사, 고대사가 정리되어서,전라도가 인류최초의 문명발상지이며,전라도가 인류역사의 최초 시작점이며,전라도가 피라미드를 포함한 세계 거석문명의 탯자리임을 세계역사학회에 공인되어 대한민국의 진정한 세계만방의 어버이 나라로 존숭(尊崇)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junseungwi5986 Жыл бұрын
고대에 황해도 이남은 왜국(倭國)의 세력범위이며 왜국(倭國)의 본령은 금강이남 즉, 호남 한반도 왜국의 본령을 알아보겠다. [삼국사기 온조왕] 二十四年秋七月. 王作熊川柵. 馬韓王遣使責讓曰. 王初渡河. 無所容足. 吾割東北一百里之地安之. 其待王不爲不厚. 宣思有以報之. 今以國完民聚. 謂莫與我敵. 大設城池. 侵犯我封疆. 其與義何. 王慙. 遂壤其柵 24년 7월에 왕은 웅천책(熊川柵)을 축조하니 마한왕(馬韓王)은 사신을 백제로 파견하여 책망하기를, 왕이 처음 강을 넘어 왔을 때는 발들일 곳이 없으므로 내가 (웅천강의) 동북방 100여리의 땅을 갈라주지 아니하였는가. 왕에 대한 대우도 후하게 하였으니 마땅히 이의 보답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지금 국가를 이루고 백성이 모이자 우리를 적으로 대하여 성과 해자(垓字)를 크게 설비하여 우리 강토를 침범하니 그 도리인가 하였다. 왕이 부끄러워하며 곧 (웅천)책을 헐었다.) - 이 기록에는 전라도 왜국이 마한으로 기록되어 있음 - [일본서기 웅략천황] 二十年冬, 高麗王大發軍兵, 伐盡百濟. 이십년 겨울 고려왕은 크게 군사를 일으켜 백제를 공격하여 진멸하였다. 二十一年 春三月,天皇聞百濟爲高麗所破以久麻那利賜汶洲王,救汶洲王,救興其國 21년 봄 삼월, 천황은 백제가 고려에 공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구마나리(久麻那利)를 문주왕에게 주어 문주왕을 구하고 그 나라를 구하였다. 久麻那利者,任那國下 치呼里縣之別邑也. 久麻那利 (구마나리=공주)는 곳은 임나국(任那國)에 속하는 치호리현의 한 邑이다.)황해도(帶方)를 본령으로 하는 백제가 고구려의 남하로 망하면 왜국의 천황이 충청지역의 땅을 내어주어 부흥을 할 수 있도록 했다는 기록이다.그러면 일본이 건국된 곳의 기록을 보겠다. [日本書紀 神代紀 下] 1.皇孫乃離天磐座...且排分天八重雲 稜威之道別道別而 天降於日向襲之高千穗峯矣. 황손은 '천반좌(天磐座)'를 떠나서... 천팔중운을 물리치고 그 위엄으로 길을 헤치고 개척하여 일향의 습(日向襲)의 고천수봉(高千穗峯)에 이르렀다. 旣而皇孫遊行之狀世者 則自 槵日二上天浮橋 入於浮渚在平處(...) 而膂肉之空國 自頓丘覓國行去(...)到 於吾田長屋笠狹之碕矣. 황손은 환일(槵日)의 두 산 위에 떠있는 다리를 걸어 내려와 평평한 물가에 내려.."여육의 공국(膂肉之空國"의 언덕을 지나 나라를 구하기 위하여 걸어서 오전장옥입협(吾田長屋笠狹)의 굽은 물가에 도착하였다. 2. 故天津彦火瓊瓊杵尊 降到於日向槵日高千穗之峯... 而膂肉之胸副國 自頓矩覓國行去 立於浮渚在平. 乃召國主事勝國勝長狹而訪之 對曰 是有國也 그러므로 천진어화경경저존(天津彦火瓊瓊杵尊)은 일향(日向) 환일(槵日)의 고천수(高千穗)의 봉우리에 하강하여..."여육의 흉부국(膂肉之胸副國)의 언덕을 지나 나라를 찾으면서 물가에 있는 평지에 내려섰다. 그래서 그 나라의 수장 사승국승장협(事勝國勝長狹)을 불러서 “나라가 있느냐” 하고 물었다.) 3. 而立天孫之前 遊行降來 到於日向襲之高千穗 槵日二上峯天浮橋 而立於浮杵在平地 膂肉空國 自頓丘覓國行去~ 천손의 앞에 유행하여 내려와서 일향(日向)에 도착하여 고천수혜(高千穗)와 환일(槵日)의 두 상봉(上峯)의 천부교(天浮橋)를 걸어서 물가 평지에 내려서, "여육의 공국(膂肉空國)" 언덕을 지나 나라를 찾아 나섰다. 위 기록은 일본의 최초의 천황이 나라를 세우는 장면을 기록한 것이다. 이 곳을 보면 '등골뼈의 바깥 쪽에 붙은 살'이란 뜻의 '여육(膂肉)'이라는 단어가 공통으로 보인다. 첫째 기록 : 膂肉之空國(여육의 공국) 둘째 기록 : 膂肉之胸副國(여육의 흉부국) 셋째 기록 : 膂肉空國(여육공국) '空國'을 고어로 읽으면 [구무누리]인데 이것이 모음이 교체되어 [구마나리]로 바뀐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즉 공주(구마나리) 일대를 말하는 것이다. '구마나리'는 차현-소백-금강이 이루는 구마검처럼 생긴 땅을 말한다. 훈요십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훈요십조] 八曰, 車峴以南, 公州江外, 山形地勢 並趨背逆, 人心亦然, 彼下州郡人... 여덟째는 차현 남쪽으로부터 공주강 외곽(금강이 북쪽으로 원을 그리면서 흐르므로 외(外)란 외곽 즉 금강의 이북 지역을 말함)은 산의 모양과 땅의 형세가 나란하게 뻗어 내려 등을 거꾸로 하고 있는 모양이라 인심 또한 그러하니, 이곳에 포함된 주군 사람들은... ( '下'는 포함된다라는 뜻의 한문의 일반적 서술이다) 차령-소백산-금강을 이어보면 척추뼈의 아래 부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금강을 척추의 단면으로 보면 금강 이북이 척추의 바깥쪽이다. 그러니 여육의 공국(膂肉之空國)은 "등골뼈 바깥부분에 붙은 살 모양의 공지(空地, 두 나라간 완충지)인 나라"라는 뜻임을 알 수 있다. 한국민족을 '배달겨레' 'ᄇᆞᆰᄯᆞᆯ족'이라고 하는 여기서 '배달(培는 'ᄇᆞᆰ(日)'의 고어)' 'ᄇᆞᆰᄯᆞᆯ'은 해가 돋는 모양을 하고 있는 금강 이남 즉 호남을 말한다. 고어로 "ᄯᆞᆯ"은 '계집(女)'과 '뿌리(本)'를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배달' 'ᄇᆞᆰᄯᆞᆯ'의 한자표기가 곧 "日本"이다. 금강이남과 낙동강 하류 이남 지역을 핵심지역으로 하는 한국의 왜국(倭國)은 고구려의 남진으로 도성을 나주에서 큐슈로 옮긴 후에 다시 한반도의 남부지역을 회복하여 호남은 '일본(日本)'이 되고 경남의 낙동강 이남 지역은 '가라(加羅)'가 된 것이다. 그래서 일본은 국호가 한국에서 나간 것이라고 기록하고 그렇게 가르친다. (注: "임나(任羅)"는 행정관인 "사(司"를 파견하고 자치를 허용하는 지역)
@junseungwi5986 Жыл бұрын
일본의 전신인 한국 왜국은 맨 처음 호남에 건국 사학에 처음 입문하는 사람들은 "왜국"이 여기 저기에서 볼 수 있어서 혼란을 겪는다. 그래서 초습자에게는 고대사에 대한 약간의 '팁'이 필요하게 된다. [구당서(舊唐書)] 日本國者,倭國之別種也。 일본국(日本國)은 왜국(倭國)의 하나인데 종족이 다르다. 以其國在日邊,故以日本為名 그 나라가 해 모양의 경계 안에 있었으므로 日本이라고 이름을 하였다. 或曰:倭國自惡其名不雅,改為日本 또한, 왜국(倭國)이 스스로 그 나라의 이름이 고상하지 않다 하여 일본으로 고쳤다고 한다. 或云:日本舊小國,併倭國之地. 倭國者, 古倭奴國也. 또한, 일본은 옛적에 작은 나라였는데 왜국의 땅을 병탄하였다고 한다. 왜국이라 함은 옛적 왜노국(倭奴國)을 말한다. 去京師一萬四千裏, 在新羅東南大海中. 依山島而居, 東西五月行, 南北三月行. 世與中國通. 倭國古倭奴國也. 京師로부터 1만 4천리 거리로 신라 동남쪽 큰 바다 가운데 있다. 섬들에 의지하여 나라를 이루고 있는데 동서로 5월행 남북은 3월행이다. 세세연연 중국과 통하였는데, 왜국이라 함은 옛적 왜노국이다. 부연하면, 해모양의 금강 이남에 있었던 나주를 800년 도성으로 했던 왜국이 본래 아이누(倭奴)의 나라였던 일본열도인 왜노국(倭奴國)을 점령하여 왜국의 영토로 하였는데 나중에 국호를 일본으로 고쳤다는 것이다. [당회요(唐會要)] 王溥 (922년 ~ 982년) 저술 倭國古倭奴國也. 在新羅東南. 居大海之中. 왜국은 옛 왜노국이다. 신라 동남쪽의 대해 가운데 있다. 北限大海. 西北接百濟. 正北低新羅. 南與越州相接 북쪽은 대해와 경계하고, 서북쪽은 백제와 접하고 정북은 신라에 다다른다. 남쪽은 월주(越州)와 접한다. 두번째 문장을 부연하면, 일본열도는 북쪽으로 큰 바다와 경계하고 있고, (큐슈를 기준점으로 보면) 서북쪽 방향의 한반도 영토는 백제와 접하고, 정북쪽 방향으로 가면 신라에 닿아 있다는 말이다. 즉 도성을 일본열도로 옮겨간 왜국의 한반도 영토는 백제의 남쪽과 신라의 남쪽에 있다는 것이다.월주(越州)는 상하이 인근에 있는 소흥시(紹興市)인데 남중국의 또 다른 왜국이 국경을 맞대고 있다는 것이다. 이곳의 왜국은 대체로 남월(南越)로 보면되는데 현재의 광동성, 광서성, 북베트남을 영토로 하였다. 간단히 말하자면 해남도(海南島)와 해남도 인근의 대륙영역이다. [한서(漢書)] 반고(班固 32년 ~ 92년) 저술 “樂浪海中有倭人, 分爲百餘國, 以歲時來獻見云. ”낙랑(樂浪)의 해중(海中)에 왜인(倭人)이 있는데 나뉘어서 백 여 국이 되었는데 때때로 와서 헌상하고 (황제를) 알현하였다. - 참고 : 박달(朴達, 한자표기가 日本)"= "배달(培達)" =조선(朝鮮)"="낙랑(樂浪)" 등은 "해가 떠오르는 모습의 금강 이남의 땅, 즉 호남을 말하는 것임 -부연하면 한국을 '낙랑(樂浪)'으로 보고서 기록한 것인데 '해중(海中)'이라고 부른 곳은 크게는 한반도 남부지역, 좁게로는 호남을 말한다. '해중(海中)'의 뜻은 중국에서 한국을 보면 바다 속의 나라인데 즉, '바다 속에 있는 중국(천자국)'이라는 뜻이다. 『삼국지(三國志)』 진수(陳壽 233~297) 편찬 “倭人在帶方東南大海之中”' 왜인(倭人)'이 '대방(帶方)' 동남쪽 '대해지중(大海之中)'에 있다.부연하면 '대해지중(大海之中)'은 역시 한국을 가르킨다. 『위략(魏略)』 倭在帶方東南大海中, 依山島爲國, 度海千里, 復有國, 皆倭種. '왜국(倭國)'이 대방(帶方,황해도) 동남쪽 대해중(大海中)에 있는데 산도(山島:다도해)에 의지하여 나라를 이루었는데, 바다를 건너 천리를 가면 다시 나라가 있는데 모두 왜국 갈래의 나라다. [후한서(後漢書)] 범엽(范曄: 398~446) 편찬 建武中元二年 倭奴國奉貢朝賀 使人自稱大夫 倭國之極南界也 光武賜以印綬. 건무중원 2년(57)에 - 후한 광무제 - 왜노국이 공물을 바치고 알현했다. 사절은 스스로 대부(大夫)라고 하였는데 왜국의 가장 남쪽 경계이다. 광무제는 인수를 내렸다. 부연하면, 일본열도인 왜노국의 사신이 조공을 하였는데 이곳은 왜국의 가장 남쪽 경계라는 뜻으로 지금의 큐슈의 북쪽의 일부가 전라도 왜국의 영토였고 이곳을 중심으로 일본열도 즉 왜노국을 간접통치했음을 알 수 있다. [양서(梁書)] 636년 완간 倭者 自云太伯之後 俗皆文身 왜(倭)는 스스로 태백(太伯 - 오태백) 후예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모두 몸에 문신을 새긴다. 去帶方萬二千餘里 大抵在會稽之東 相去絕遠 대방(帶方)으로 가면 만 이천 여 리 떨어져 있는데, 크게 봐서 회계(會稽) 동쪽에 있는데. 회계와 왜는 서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부연하면, 주나라의 창업군주인 주문왕(周文王)의 백부인 태백(太伯)을 왜인들은 시조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왜(큐슈)는 대방(황해도)으로 가면 12,000리인데 크게 보면 오늘날 상하이 지역인 '회계(會稽)'의 동쪽에 있는데 이곳은 일본열도와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양서 계속...) 從帶方至倭 循海水行 歷韓國 乍東乍南七千餘里 始度一海 海闊千餘里 名瀚海 至一支國 又度一海千餘里 名未盧國 대방(帶方)에서 왜(倭)로 가려면 배를 타고 바다를 따라 가야 한다. 한국(韓國)을 지나 때로는 동쪽으로 때로는 남쪽으로 칠천여 리를 가다가 처음으로 바다를 하나 건넌다. 그 바다는 너비가 천여 리인데 이름을 한해(瀚海:남해바다)라고 한다. (바다를 건너면) 일지국(一支國)이 나온다. 또 천 여 리 되는 바다를 하나 건넌다. 미로국(未盧國)이 나온다. 부연하면, 황해도에서 해안선을 따라 8천리를 가서 천리 바다를 건너면 큐슈의 미로국에 도달한다는 것이다. 미로국에서 다시 3천리를 가면 왜왕의 나라가 있는 곳으로 알려주는데 지금의 간사이지역으로 도쿄를 상정해볼 수 있겠다. 왜국은 처음에 큐슈에 있다가 영토를 확장하여 간사이쪽으로 간 것으로 북상해 간 것을 알 수 있다. - 시대에 따라 '里'의 길이가 다른데 해안을 따라서 황해도에서 부산 정도가 8천리라고 하여 어림잡아 짐작을 하면 됨 -
@action6140 Жыл бұрын
너무나 멋지다.
@TheNautilusNemo Жыл бұрын
알고리즘아 일 좀 해라
@몽실토실 Жыл бұрын
공연이 언제인가요?
@설향-h8y Жыл бұрын
나주는 백제가 점령하기전에 이미 강력한 고대 세력이 형성돼서 독특한 무덤군이 출토돼고 큰 평야와 영산강을 통한 동아시아 무역의 활달해서 줄곧 큰 지방이었고 신라가 통일한에 나주에 9주중 하나인 발라주를 설치했으나 훗날 강등돼여 무진주에 편입 고려시대에 삼별초의 대몽 항쟁시에 엄청난 물적 인적 자원을 제공하여 대몽 전쟁을 가능하게 했고 일제대 군산과 더불어 곡물 수탈의 거점이였고 한국전쟁후 1960년 농업사회 일때 인구가 22만으로 밀집지역 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