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우리는 그 당시엔 어떤 게 진정한 사랑인지,위함인지,옳은 일인지 모르는 것 같아요. 다 잘 하는 것 같지만 입장이 다르니까요. 그래도 말기 암이 고통스럽다는데 아버지 친구 의사는 진통 주사라도 권하지 않았을까요? 고통을 견디기는 것도 지켜 보는 것도 힘들 것 같아요. 슬프네요~ 감사합니다.
@작은나무-g7t23 күн бұрын
문학애호가...고통스럽고 고독한 작업, 창조적 능력..글 쓰는 고통을 생각합니다..그리운 박완서 선생님😢❤❤❤❤ 잘 들었습니다...모래알 만한 진실...
@한금자-d5v25 күн бұрын
감사합니다.
@한금자-d5v26 күн бұрын
감사합니다.
@한금자-d5v26 күн бұрын
감사합니다.
@미현-q5q26 күн бұрын
재밌게 잘 들었어요^^
@한금자-d5v26 күн бұрын
감사합니다.
@한금자-d5v26 күн бұрын
감사합니다.
@honeyrain-audiobook26 күн бұрын
앗 너무 감사해요 ~~이렇게 사랑해주시니 힘내야겠네요~!!!진심으로 감사합니다
@한금자-d5v24 күн бұрын
@@honeyrain-audiobook 넘 약소합니다. 좋은 작품을 성우보다 더 실감나게 그러나 오버하지 않고 다역으로 재밌게 들려주셔서 늘 감사하게 잘 듣고 있답니다. 감사합니다.^^
@공유공업용재봉틀26 күн бұрын
겉의 화려함 보다 내면을 소박함을 추구 하고픈 사람 입니다. 잘 듣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임연이-w1p26 күн бұрын
예,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잘ㄷ드을깨요🎉
@레루-z2x29 күн бұрын
목소리 좋아요. 잠으로 스트레스 푸는게 비슷하네요
@꽃다지-e9kАй бұрын
띄워쉬는 끝음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서 무겁게 들립니다.
@조민식-z2pАй бұрын
꿀비님. 요즘 무슨 일 있으신가요. 예쁜 목소리 또 듣고 싶네요. ㅠㅠ
@이현주-r2dАй бұрын
성우이신듯 실감남게 읽으시네요. 박완서작가님 필력이 감동적입니다.
@이숙희-o2pАй бұрын
평범한 우리네 삶을 그린 박완서님의 글은 어느 책이나 듣고 읽기가 편안 스토리져 꿀비님 감사히 즐청 합니다
@최해옥-j9q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지금 손목 수술후 회복중이라 책을 읽지 못하고 있는데 꿀비님 채널을 우연히 만났네요~ 잔잔하면서도 진한 감동을 주시는 아름다운 목소리에 아픔도 잠시 잊고 50대 후반에 접어든 나이에도 그 시절 낭만이 아련히 떠올라 이 긴밤도 견딜만 하게 되는군요~
@채리-f1k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아주리Ай бұрын
잠을 잔다 하셨는데 잠이 오나요? 저는 잠이 않와요
@살구-w7jАй бұрын
감동, 재미, 궁금 종합판이어요... 1970년 무렵 배경... 1975년 국1, 국민학생 시절을 떠올리며 들으니 흥미진진.. 울동네 오시던 보따리 옷장수(항상 흰 마스크를 쓰고 있어, 어린 생각에 합죽이인가 여겼지만, 여쭤보지는 못했네요..), 아버지 몰래 화장품 장사한테 쌀 주고 크림 사신 엄마, 비포장 도로에 차 지나가면 흙먼지 겁나게 일고...
@살구-w7jАй бұрын
어느 댓글처럼 라디오 듣는 거 같아요.. 좋아요.. 고무신 엿 바꿔 먹었다는 말에 웃음이... 75년(국1)~77년도 사이에, 경기도 리 단위 마을에 살 때, 엿장수 와서 하얀 엿 사먹은 기억이 흐릿하게 나네요...비료푸대 갖다주고 엿바꿔 먹은... 나무 엿판 하얀 헝겊으로 끈 해서 목에 걸고... 형이랑 엿 분질러 엿구멍 크기 재보구... 여름에 아이스께끼 장수도 오구... 그 이후론 엿장수, 아이스께끼 장수 안보이고... 3학년 때까지 가게 구경 못해봄.. 한 3km 떨어진 국민학교 앞에 코딱지 만한 문방구 겸 가게 딱 하나 있었지...4km 떨어진 면에 나가야 가게 있었으니... 이 후 동네 차 씨 성의 여자애 집에서 과자랑 여러가지 갖다놓구 팔기도 했었지.. 과자 사러 몇 번 갔었구나...잊었던 기억..ㅠ. 아버지, 엄마 싸움 할 때 " 어디서 앙살이야??!"며 다투시던 장면...
@살구-w7jАй бұрын
실감 나는 낭독, 귀에 쏙쏙 들어오네요... "상실의 아픔"은 겪고 싶지 않은 감정... 화자의 자식들, "창"자 돌림이네요... ㅋ "여북해야"... 70년 대 후반 국민학생 시절, 엄마 아부지 많이 사용하시던 말을 들어보네요.. 동네 다른 분들도 쓰시고... 큰집에 제사 지내러 가면, 자정 무렵 너무 졸려 금새 잠들어버려 등에 업혀 집에 온 게 생각나네요... 큰집, 첫째, 셋째할머니네, 작은할머니네까지 아버지 따라 제사 지내러 다닌 기억...큰엄마가 만든 수수부꾸미... 그 때 딱 한번 먹어보구 그 뒤론 없었던 듯... 정말 맛있었는데... 큰엄마한테 하시던 할머니의 욕, 급살 맞을 년, 우라질 년... 듣고 싶다... 유모차 나오기 전,, 애기들 포대기로 업고 다니던 모습, 동네 할아버지, 할매들께선 지팡이 짚으시고... 물건이란 물건은 죄다 똬리 받쳐 머리에 이고 지고...새참 내갈 때 고무다라, 소쿠리에 밥과 반찬 넣어 머리에 이고 논두렁 걸어오고... 마을회관에서 꽹과리, 장구, 동네 형님들이 꺼내던 건지 보관하려 했던건지 하던 장면이 생각나고... 87년 서울 곳곳 최루탄 냄새 지독했지... 콧물 쏙... 종로, 시청 지나던 버스 안에서도 최루탄 가스로 고역이었지... "제사....장만하는 것보다 버리는 게 더 중요하다" 공감 가는 대목... "검불" 잊혀진 단어...
@살구-w7jАй бұрын
국민학교 때 엄마가 감자 쪄주면, 대접에 찐감자 네다섯개 넣고, 설탕도 한숟갈 정도 뿌린 후 으깬 다음 막 퍼먹은 생각이 난다... 나박김치 국물 마시며, 또 열무김치랑 같이 먹으면 그렇게 맛있었는데... "봉당" 이란 말, 어릴 때 자주 썼었지요.. 원래 뜻과는 다르게, 우물가 옆 안마당을 봉당이라 부른 듯.. 시궁창 옆 쪽에 한 키 높이 이상으로 두엄(퇴비)을 쌓았었지... 삽쇠(삽 처럼 생겼으나, 삼지창 모양이라 퇴비를 떠서 리어카에 옮겨 싣기가 수월한 농기구)로 퇴비 떠서 아버지랑 밭에다 뿌리던 생각이난다.. 퇴비 한 삽 뜨면 하얀 김이 모락모락, 그 냄새도 그리 나쁘지 않은 특별했던 냄새였지..
@나명옥-n3sАй бұрын
저도 잡니다 자고나서 생각하자하고
@소년의꿈-o1rАй бұрын
잘 들었습니다. 고맙습니다. 나의 집, 나의 남편 나에게 .. 조금 어색하게 들립니다. 내 집,내 남편, 내게.. 이렇게 낭독하시는 것 이 좋을 듯 합니다.
@mocha__81Ай бұрын
목소리가 정말 좋으셔서 책의 내용이 쏙쏙 들어오네요. 어쩐지 행복한세상에 나오는 성우님 목소리와 비슷하신것도 같고 너무 편안한거 같아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