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연세대’에서…20년 만의 편지 [한겨레 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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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TV

7 жыл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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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8월 20일 서울 연세대학교. 한국대학총학생연합(한총련)이 주축이 된 대학생들이 8월 14일부터 시작한 제7차 범민족대회가 끝을 맺지 못하고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범민족대회를 불허한 경찰은 연세대 주변을 원천봉쇄했다. 학생들은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대회가 끝난 8월15일 오후 경찰은 봉쇄를 풀지 않고 학생들의 귀가 길을 막았다. 대규모 병력을 학교 안으로 투입해 대대적인 검거 작전을 벌였다. 학교 안에 몰린 학생들은 건물을 점거하고 뜻하지 않은 농성에 들어갔다. 4박5일간의 농성은 20일 새벽, 경찰이 헬기를 동원한 진압작전으로 끝이 났다. 과학관, 종합관 등 건물 곳곳에 불이 붙었고, 성한 유리창이 없을 정도로 학교는 폐허가 되었다. 학생 5,848명이 연행되었고, 462명 구속, 3,341명 불구속, 373명이 즉심에 회부되었다.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연행자와 구속자를 기록했다. 진압 작전에 투입된 경찰도 피해가 컸다. 900여명이 다쳤고, 당시 20살이던 김종희 이경이 돌에 맞아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현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남긴 사건이었다. 80~90년대를 풍미했던 학생운동은 이 사건을 계기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렀다. 모두의 침묵 속에 ‘96년 연세대’는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이 사건의 정치적 의미, 사회적 의미를 해석하는 것은 잠시 미뤄 두자. 96년 8월 그 자리에 있었던 그들, 그들은 누구였을까? 그들은 왜 그날의 사건을 말하지 못하는가?
말하지 못하는 기억, 봉인되거나 억압된 기억... 1996년 연세대에서 20년 만에 편지가 왔다. 우리는 왜 아픈 역사를 말해야 하는가? 그것은 오늘 우리에게 무슨 의미일까?
○ 제작진
-기획·취재: 이재만 출연: 김영희
-종합 편집: 문석진
-카메라: 박종찬 조소영
-자료 사진: 한겨레 사진 아카이브(강재훈 이정우 곽윤섭 김진수 강창광 윤운식 이종근)
-자료 영상: MBC 뉴스, AP 아카이브(유튜브 갈무리)
-BGM: ‘바위처럼’, ‘전화카드 한 장’ (꽃다지 1집 -1994년)
-연출: 박종찬 조소영
○ 참고 자료
-[박찬수의 NL 현대사] 대중은 사라지고 교조적인 이념만 남았다
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762503.html
-[왜냐면] 1996년 8월 연세대에 있었던 이들에게 / 안진걸
www.hani.co.kr/arti/opinion/because/756797.html
○ 장소 제공
-복합문화공간 카페마주(blog.naver.com/majuhaja)

Пікірлер: 181
@user-jf4zw9rg9y
@user-jf4zw9rg9y Жыл бұрын
96년 한총련은 무슨 대의가 있고 왜 데모 했는지도 모르겠음 내친구 아무것도 모르고 연대에 갗쳐서 경찰 죽인 것 밖에 없다고 ㄷㄷ
@user-ur3zw8zc1w
@user-ur3zw8zc1w 4 ай бұрын
도대체 무슨 정의랑 대의가 있어서 폭력 시위까지 해야했는지 묻고싶네요 제 동기는 대학생들에게 둘러 싸여 파이프에 다리를 잘못 맞아 불구가 돼었고 동의대 사건 기억 하시나요? 여러명의 경찰 의경이 불에타 죽었습니다
@user-ix1ht4nq4j
@user-ix1ht4nq4j Жыл бұрын
이때 시위는 도대체 명분이 뭐임? 시위 영상보면 무슨 연방제 통일하자느니 남북통일 이라느니 죄다 그 방향 같던데 이게 군부독재랑 뭔 상관이고, 무슨 대의가 있는지....
@tokkoutai-fb6ul
@tokkoutai-fb6ul 4 ай бұрын
연방제 통일과 반미시위 민족의 반역자 김영삼
@May5th921
@May5th921 4 ай бұрын
일제 36년 식민지사절 독립운동 하던 자들에게 했던 그들의 이야기도 뭣때문에 독립운동하냐.. 참 세상 이기적으로 사는게 편하죠.
@user-mr-aing
@user-mr-aing 3 ай бұрын
저 시위는 그냥 이익집단들인거라고밖에 안보임. 결국 이 집단이. 이후에도 사건 일으키다가 이적단체로 분류된거 보면..
@May5th921
@May5th921 3 ай бұрын
@@user-mr-aing 뭐눈엔 뭐만보임
@user-mr-aing
@user-mr-aing 3 ай бұрын
@@May5th921 80년대에는 명분이라는게 있었는데 이건 도대체 무슨 정의랑 명분의랑 대의가 있어서 폭력시위를 했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뭐 저때 이후로 학생운동이 몰락했지만.
@user-sg3hx8ro6u
@user-sg3hx8ro6u 2 жыл бұрын
7살때 엄마 손잡고 할아버지 위독하시다고 세브란스병원 가다가 할아버지보다 내가 먼저 뒤질뻔 했음 화염병을 던지고 폭도도 그런 폭도가 없었음 ㅋㅋ 저게 뭔 자랑이라고 무슨 독립운동했냐? ㅋㅋ
@Mr.son-
@Mr.son- 11 ай бұрын
ㅋㅋㅋㅋㅋ 34 아재됐것네
@Km8199Park
@Km8199Park 10 ай бұрын
저 여자 미쳤냐? 무슨 독립운동했냐? 기동대 희생자에게 애도를.
@Felipe-pe6ce
@Felipe-pe6ce Ай бұрын
전•의경과 백골단을 비롯한 직업 경찰의 헌신에 감사합니다. 혹여나 저때 북한을 추종해 폭동에 참여했다면 그럼에도 자유대한민국이었기에 살아나갈 수 있단 것에 감사함을 느끼세요.
@davidpark8093
@davidpark8093 4 ай бұрын
한겨례 정말 이게 옳은 방향으로 영상 편집 한것입니까?
@okkchk
@okkchk 7 жыл бұрын
처절하고 장렬했던 기억... 뜨거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는 것처럼 학생시위는 사그라들고 말았다.
@Piz_ZZa
@Piz_ZZa 3 жыл бұрын
연세대 사태를 빨아주네 ㅋㅋㅋ
@seankim7869
@seankim7869 2 жыл бұрын
ㄹㅇ명불허전 한걸레...지네들이 욕하는 조선,중앙,동아보다 나은게 뭔지 모르겠음
@user-ib8kr1hv9h
@user-ib8kr1hv9h Жыл бұрын
걍 폭동을 옹호한다고 보여지네요
@user-zs1wt4rb5u
@user-zs1wt4rb5u 4 жыл бұрын
어디 정부에 당당히 요구해 보시죠. 이 사태를 민주화 운동으로 인정해 달라고. 그리고 당시 가담한 한총련 간부부터 말단 참여 학생들까지 전부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해 달라고요.
@user-ib8kr1hv9h
@user-ib8kr1hv9h Жыл бұрын
저 당시 한총련 대장은 마지막날 작전 들어갔을때 몰래 도망갔어요
@user-sd2ep5cr3u
@user-sd2ep5cr3u 3 жыл бұрын
96년도면 김영삼 아닌가? 근데 왜 시위하냐 ㅋㅋㅋㅋㅋ
@rustamantonov1527
@rustamantonov1527 Жыл бұрын
저때 이후로 학생운동이 망해가기 시작했던 때임
@YongsanWildboar
@YongsanWildboar 10 ай бұрын
김영삼이 군부독재와 손 잡고 대통령이 된 사람이니까
@junsupark9607
@junsupark9607 6 ай бұрын
최소한 김영삼 염색으로 검색해보세요
@el-uf3gu
@el-uf3gu Ай бұрын
운동권이 원래 ys하면 부들부들하는 경향이 있더군요. 그리고 지금도 상도동계나 다른 보수쪽에서도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걸 1도 생각 안하고 보수=친독재 프레임을 씌우니(더 웃긴 건 몇 몇 극우단체나 유튜버들이 여기 걸려넘어져서 진짜 친독재주의로 흘러함)
@user-dh9pp2lx3j
@user-dh9pp2lx3j 2 жыл бұрын
저도 저곳에 있었죠 의경으로 ㅋㅋㅋ 개고생했음
@user-kx3mr6ov5o
@user-kx3mr6ov5o 2 жыл бұрын
지원오셨군요 ㅋ 저는 종로에있었는데 동기놈 다리가 망가지고 성수동에서 동료가 숨졌었지요. 가슴아픈 추억
@user-ib8kr1hv9h
@user-ib8kr1hv9h Жыл бұрын
부산 중대셨군요~ㅎㅎ
@user-xu1lh6vf7d
@user-xu1lh6vf7d 5 ай бұрын
건물옥상에서 80kg실외기 의경에게 던져 사망하게한범죄자들.. 입으로는 정의를 외치지만 위선자들이다 군부독제시대엔 명분이라도있엇지~
@laurentan4020
@laurentan4020 5 жыл бұрын
보도사진 전공과제하러 오른쪽 팔뚝에 press녹색띠 두르고 저기 있던 사람이다. 시위첫날부터 5500명이 연행되던 마지막날까지 연대안에서 경찰들의 만행을 알리려고 카메라 2대, 흑백필름 30롤들고 시위대, 특히 사수대를 따라 다니며 열심히도 사진을 찍었다. 2일째되는 날부터 뭔가 잘못된거라고 느낀게 전경을 노리고 던지던 화염병과 전경들의 진압봉보다 더 긴 쇠파이프를 들고 우리와 같은 또래였던 전경들을 무자비하게 때리던 사수대를 보고 한총련이 정말 무서운 집단이라는걸 깨닫고 학생들이 아니라 매맞고 옷에 불이붙어 비명을 지르던 경찰들을 위해 사진을 찍었다. 마지막날 나도 세브란스쪽으로 도망치다 결국엔 경찰들에게 잡혀서 서대문서로 연행됐고 어떤 형사가 내가 갖고 있던 18롤의 필름을 폐기하려 하기에 절대 폐기하지말고 현상,인화해서 거기에 나온 살인마들을 검거하시는게 어떻겠냐고 했던 기억이 난다. 한겨레,미디어오늘 정말 이건 아니지 않나? 저때 아무이유없이 옥상에서 떨어지는 바위를 맞고 죽은 전경이 있었다. 진압경찰들이 어떤 학생을 죽였나? 진짜 한겨레,미디어오늘 니네가 진정한 언론사라면 저런걸 미화시키지 말아야지...이젠 하다하다 경찰 죽인 난동자들을 민주투사로 미화시키는 작업까지하냐? 니네가 조중동과 다른게 도대체 뭐냐? 진짜 무섭다. 폭력시위를 미화하고 북한에 절대 충성하고 북한에 협조하던 한총련을 두둔하는걸 넘어 미화시키는 정신나간 새끼들아
@user-kx3mr6ov5o
@user-kx3mr6ov5o 2 жыл бұрын
홍대에서 전의경 두분이 화염으로 가셨고 연세대에서 돌맞아 돌아가신 몇분, 대학생에 쫏기다 후진하는 향차에 깔려 사망한 성수동 기동대, 성대 뒷길에서 우리부대 퇴각하고 교대한 부대원들 화상자 다수.. 맥주병에 모래,시너,페인트,설탕은 왜 넣어 던졌어요? 무슨 명분으로? 지금 50좀 넘으셨겠네들..반성하면서 사시고 당시를 미화하지말라. 학생운동은 6.29이후 없다.
@user-qd4to9cc1f
@user-qd4to9cc1f Жыл бұрын
병신 당신들은 전경 쇠파이프폭행 자랑 전경 학생폭행 불륜 인가요 당신 부인 또는 남편 불륜 정당한가요
@junsupark9607
@junsupark9607 6 ай бұрын
거짓말도 좀 가려가면서해라 전공학생인데 그때 프레스를 줬다고 4대 중앙매체도 허가된 인원이외에 연대근처 접근도 안되게 때려맞던 시기이다 그때 PC통신으로 여러 통신이 있었어도 태반은 아예 연대 근처는 가지고 못했는데 어디 전공프레스로 접근했다는 거짓을 말하는지 불만있음 얼굴까고 만나자
@user-realme1
@user-realme1 4 ай бұрын
저 현장에 의경으로 있던 사람이다 저분말 틀린거 하나도 없다 알기는 하나? 저때 당시에 뿌려진 인쇄물을 보면 북한에서 뿌렸다고해도 믿을정도였다 연대사태때 의경이 몇명이 죽었는데 불구가 얼마나 됐는데 그런건 왜? 당연한거냐?
@user-vf5ms9si9r
@user-vf5ms9si9r 4 ай бұрын
연세대 한총련 총회 집회 출범식 인천 기동 7중대 의경 군복무했으며 96년 연세대 한총련 총회 시위대에 출동 나갔으며 신촌에서 한달넘게 버스 에서 길바닥에서 자고먹고 데모막고 버스(닭장차) 타면 편히 잠자는게 아니고 고참들에게 모진 구타와 가혹행위 로 진짜 죽을 만큼 힘들었네요~ 28년이 지난 지금 그 당시 그현장과 시위 상황이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네요 ㅜㅜㅜ
@user-dd9mg6bo4b
@user-dd9mg6bo4b 2 жыл бұрын
연세대 사태 이후에 1997년 프락치 사건으로 무고한 시민이 2명이나 학생들의 고문에 의해 죽었으니.. 그때부터 학생운동이 망하게 된 거임.. 프락치면 가두면 그만이지... 뭐하러 고문까지 하고 죽이냐고.. 그게 학생이냐?? 살인마 이지,,,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경찰 프락치도 아니었음.. 연세대 사태 때문이 아니라고...
@JuanCarlos-dz7wc
@JuanCarlos-dz7wc 2 жыл бұрын
민주건달 들 저때 여학생들 가둬두고 못나가게함 생리대도 없고 여자들 개고생했는데 대가리들은 진압전에 다 도망감 ㅋㅋㅋ 그게 민주건달들 사상 나는 출세를 위해 데모를 한다가 정확하다 !!!
@user-qd4to9cc1f
@user-qd4to9cc1f 4 жыл бұрын
궁금해요 왜 시위용품을 학교비품을 사용해요 자기돈 으로 사면되는데
@user-xu1lh6vf7d
@user-xu1lh6vf7d 5 ай бұрын
졸업 한취직못한 프로 시위가들의 생활비 입니다
@user-um1vw4kw9s
@user-um1vw4kw9s 3 жыл бұрын
어떤 미사여구를 쓰더라도 그때 학생운동은 그냥 폭력배들의 땡깡 그이상도 그이하도 아니었다.
@user-ib8kr1hv9h
@user-ib8kr1hv9h Жыл бұрын
그때는 민주화 운동은 절대로 아니며 단순 폭련난동입니다.저때 전의경 선배님들 상황나가서는 시위대 때문에 고생하시고 부대 들어와서는 중대 열외 밑으로 날라차기 맞고 지내셨고 엄청 고생하셨던 시기죠.
@stormsnow367
@stormsnow367 4 жыл бұрын
1996년에 왜? 왜그랬어여?
@YounChulShin
@YounChulShin Жыл бұрын
학생운동 폭력적이고, 폐쇄적이고, 파벌적이고, 반인권적입니다. 미화하려고 하지 마세요.
@junsupark9607
@junsupark9607 6 ай бұрын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버러지 같이 살아도 인생입니다
@user-no6rf6ho6r
@user-no6rf6ho6r 3 жыл бұрын
그들과의 이별 이야기
@ninanolee5418
@ninanolee5418 2 жыл бұрын
아니 한마디만합시다 뭘위해서 데모했소 자유 통일 전 1992~1994진압 흠~ 홍대 서강대 연대 전담진압중대요 너그들은 그런말하모안대 아무거또모르고 선배가 시키모 했잔아 말참잘하네 옆에있으면 캐쌍욕을~^^
@kanfvorns
@kanfvorns 6 жыл бұрын
나 영상속 교수분 96연대 건물 에서 만난듯
@kanfvorns
@kanfvorns 7 жыл бұрын
96년 새내기때..사상 이념 그런거보단 대학1학년때의 추억 .기억 .아련한 그리움뿐 .. 97년도를 거치며 학생운동의 막바지 호흡기 떼버린 사건., 정치적인걸 떠나 이후 대학 생활의 많은 변화를 줘버린 안타까운 사건이지. 대학의 낭만과 봉사 추억은 사라져버린..
@sosong8688
@sosong8688 3 жыл бұрын
학교를 강간한 주체가 그 학교 구성원들이었지. 과학관 화석을 무기로 던지고, 자기 학교 자기가 불태우고
@user-ni1xv9ix3l
@user-ni1xv9ix3l Жыл бұрын
전 학생운동이 96년 이후 이전과 다르다 생각합니다 당신은 96학번입니까? 아님 93학번이전 입니까?
@user-fz9ki5nd1n
@user-fz9ki5nd1n 2 жыл бұрын
도대체 왜그런거죠? 이해가 안되
@davidpark8093
@davidpark8093 4 ай бұрын
범민련 이적단체, 주체사상 주사파 추종자들. 전대협 사그라들고 한총련으로 슬슬 바껴서 완전 이적행위로 핏물이 그윽. 정말 환장할 시기.
@juho_juhapark4830
@juho_juhapark4830 7 жыл бұрын
북문에 있다 정문으로 들어온 그 후배 분은 자신의 학교(연대)가 강간당했다고는 생각 하면서, 동료 (김종이) 가 종합관에서 피워보지도 못한 그 어린나이에 죽어간 슬픔은 이야기 하지 않던가요?
@Freedom-Mickelson
@Freedom-Mickelson Жыл бұрын
그러게요. 정작 학교를 그지경으로 부시고 불태운건 한총련 사수대 놈들인데 마치 경찰과 공동 책임인양 두루 뭉수리하게 표현 하셨네요. 마지막날 종합관에서 중상 당하고 결국 순직 소식 들었을때 저도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영결식도 참석했지요. 1기동대 소속이고 96년 4월 전입자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좋은곳에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user-ib8kr1hv9h
@user-ib8kr1hv9h Жыл бұрын
완전 적반하장이네요~ 그 당시 기대마안에서 덜 쳐맞았구만요~
@ivwhjsusvw967
@ivwhjsusvw967 6 ай бұрын
96학번입니다 청춘은 반항이고 저항이죠 그 정점이 지나고 IMF가 찾아온겁니다 그리고 금융위기를 지나오며 한국의 저출산과 초고령화가 시작되었습니다
@user-dh9pp2lx3j
@user-dh9pp2lx3j 6 ай бұрын
연방제 통일을 위한 데모
@junsupark9607
@junsupark9607 6 ай бұрын
네 이해합니다 그들이 우리를 방패막이로 이용했죠
@Freedom-Mickelson
@Freedom-Mickelson Жыл бұрын
저때 11일간 제대로 씻지도 먹지도 자지도 못 한거 아직도 치가 떨린다. 한총련. 5:14 학생들 머리끄댕이 잡고 프라스틱 봉으로 때리는 장면은 올리시고 의경들 도망 못가게 구석으로 몰아넣고 화염병 일제히 까는거, 붙잡힌 의경들 하이바 벗겨 놓고 쇠파이프로 찍어서 피 철철 나는거, 기절한 의경 얼굴 짓 밟는거는 안 올리셨네요. 특히 저 날은 전입 넉달도 안 된 의경이 위에서 던진 냉장고 맞고 중상 입었다는 소식에 대원들이 더 흥분한 날 입니다.며칠 후 결국 순직 했고요. 부상당한 대원 데리고 경찰병원 갔더니 병실이 없어서 복도나 로비에 누워있던 대원들도 엄청 많았어요. 연세대학교 학우들과 학교 인근 주민들 또한 큰 피해자 였지요, 잘 모르고 행사에 동원 됐던 타학교 저학년 학생들 대다수도 피해자 이고요. 하지만 부끄러워 해야 할 자들은 분명히 있습니다. 한총련 지도부와 사수대 놈들 평생 부끄러워 해야지요.96년 한총련 사태는 절대 민주화운동 속에 녹아 들어서는 안 됩니다.
@user-oh4jp9ru6j
@user-oh4jp9ru6j 5 ай бұрын
우리중대 보름만에 돌아왔음 ㅋㅋㅋ 그때를 아십니까 다됐네
@Berserker195
@Berserker195 2 ай бұрын
원래 사람들은 자기들에게 유리한 것만 자랑하는게 사람 심리죠.
@user-wy6lw2yv9x
@user-wy6lw2yv9x 3 жыл бұрын
영사미때
@jinhwieom6257
@jinhwieom6257 Жыл бұрын
저도 의경으로 기동대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대학생으로 반대쪽 전의경으로도 많은 할말이 있을 그런 시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며 술자리에서 말하곤 하는데.. 서로 나쁘게만 보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lililllo
@lililllo 5 ай бұрын
군입대전 촌놈이 설 놀러 갔다가 당신들 약 20여명에게 둘러싸여 맞아 죽을뻔한 1인입니다 당신들 마치 미친개처럼 보였어요
@toorion7413
@toorion7413 2 жыл бұрын
그 시절 현장에 있던 나, 많은것을 생각나게 한다
@faint8948
@faint8948 Жыл бұрын
죽울떄까지 반성해라
@user-rc9hn4wu8g
@user-rc9hn4wu8g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ㅋㅋㅋ자랑이노??
@user-ne7wz7ed3k
@user-ne7wz7ed3k 10 ай бұрын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당신들이 했던 행위들도 같이 이야기해야 형평성이 맞지 않나요?. 왜 당한 영상들만 올리고 있습니까. 96년 연대에서 당신들이 두들겨 팼던 전의경들 영상도 올려야 할 거고 당신들이 옥상에서 던진 물건에 맞아 순직한 김종희 상경도 같이 이야기를 해야지요. 당신들이 그토록 저주하던 고문 치사를 97년 한양대에서 자행했던 것도 알려야 하고요. 민간인을 프락치로 몰아 고문하고 때려 죽인 당신들은 힘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그렇게 사람 죽인 악마들이 감형 받아 원래 받았던 형기도 다 못 채웠는데 그것도 알려야 하고요.
@junsupark9607
@junsupark9607 6 ай бұрын
그렇게 잘 알면 모든 이야기를 해주세요 당시 분신자살로 살해된 대학생 이야기들을
@user-ne7wz7ed3k
@user-ne7wz7ed3k 6 ай бұрын
@@junsupark9607 마치 학생들만 피해자라는 일방적인 주장은 하지 말라는 게 요지입니다. 그렇게 정의를 부르짖던 학생들이 왜 자기들 손에 죽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않나요?
@kanfvorns
@kanfvorns 3 ай бұрын
너 의경이냐? 이해 못 할거면 질문을 하지마!! 대학생과 경찰의 충돌 조건이 뭐라고 생각하냐? 가만 있는 공권력에 학생들이 폭력을 가해? 한국의 공권력이 빙다리 핫바지냐? 두들겨 맞은 공권력이 쪽팔린줄 알아야지 어린 학생들에게 처 맞은 이야기를 뭐 잘났다고 까발려야 하지? 시위의 목적이 폭력이 아니기에 언급을 하지 않는다는 정도는 눈치를 챙겨야지 아후 이런것도 이해 못 하는 세대에게 뭔 얘길 하겄어 당시 얘기를 꺼내려거든 폭력에 촛점을 두지말고 그 발단 내용부터 묻는게 순서지. 니들 논리 김영삼정부 문민정부 들어섰다? 5공정부와 손잡은 변절자 김영삼의3당 합당의 말로는 imf를 몰고 왔다 나 같으면 군사정권과 결탁한 정부를 문민정부 라말하기도 쪽팔리겄다.. 이정도는 사전지식을 깔고 당시 대학생들의 행동을 까대려면 공부좀하고 따지든가 아니다 묻지도 마라 그냥 니들 같은 애들은 백날 알려줘도.. 민주정부 밑에서 데모는 왜 하나요? 이딴 소리나 하지 집회 결사의 자유 란 항목 부터 삭제하라면 좀 똑똑하네 하겄다만. 니들과 말을 섞는게 말이 안되지
@setau4312
@setau4312 4 жыл бұрын
이 행사를 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20년만의 편지 아무도 기념하지도 반성하지도 않았던 이날을 그래도 이렇게 해주셨네요 담에는 언제 이런 행사가 있을까요 가보고싶네요
@kimkyoungha4124
@kimkyoungha4124 6 жыл бұрын
폭력에대한폭력 일주일의기억
@user-nx5uh9he6y
@user-nx5uh9he6y 5 ай бұрын
내친구죽다살아남 -->의경
@kimkyoungha4124
@kimkyoungha4124 6 жыл бұрын
살아있음이그런것
@sk8ciov7
@sk8ciov7 4 жыл бұрын
믿거한
@csi2203
@csi2203 Жыл бұрын
지금의 연세대와 96년 연세대
@Say_KIM
@Say_KIM 6 жыл бұрын
난 어렸을때 대학교가면 다 죽는건줄 알았다. TV에서 보여지던 대학생의 모습은 어렸을적 나에겐 폭력적이고, 지저분한 사람들로만 보였다. 20여년이 지나서 나도 군대 다녀오고, 대학교 졸업하고, 회사생활 하고 이 영상을 보니 어렸을적 그 때 들었던 생각에 몇가지가 더 추가된다. 당신들한테 고한다. 당신들의 어리석은 행동을 미화하고, 정당화 하지말라. 당신들의 폭력적인 모습에 어렸을적에는 대학생은 무찔러야할 악역으로 보였고, 경찰은 그런 악과 맞서 싸우는 히어로로 보였다. 물론 나도 한때는 대학생이었지만 학생운동 망해버리고, 내 미래를 위해 한땀한땀 커리어를 쌓는 대학생이었지, 당신들처럼 중2병에 걸려서 나대고 다니다가 경찰에게 쳐맞는 그런 등신들이 아니었다. 경찰분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user-xk7md2tq7x
@user-xk7md2tq7x 4 жыл бұрын
한겨레 이 사태까지 옹호함?? 어처구니 없어 ㅋ
@user-lf5qv4pi2t
@user-lf5qv4pi2t 6 жыл бұрын
1996년 봄 경영학과 노수석 학우의 죽음에서 시작된 또 다른 슬픈 역사!
@kimkyoungha4124
@kimkyoungha4124 6 жыл бұрын
을 할수있었기에 의미있다
@tokkoutai-fb6ul
@tokkoutai-fb6ul 4 ай бұрын
토나온다.
@alvinpark4030
@alvinpark4030 2 жыл бұрын
그자리에 있었습니다. 노수석 학우의 죽음으로 많은 대학생과 시민, 전의경들이 고생하것을 기억합니다. 마지막 이념문제의 끝자락을 잡은 학생들도 있었고 의무감으로 그것을 진압하는 전의경이 있었습니다. 서대문 경찰서 유치장에 넘쳐나는 저희또래 친구들이 또한 취사반에도 전투화에 짓밟힌 학생들이 있었으며, 경찰서 옥상에는 당시 대학생들의 압류품들이 가득 있었습니다. 그당시 정확한 정보가 있는게 아니어서 서로의 입장에서 반대쪽은 나쁜사람들로만 기억하는 당시 현실이 지금 생각해보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합니다. 국가가 여전희 잘못되어 있었다는것이 바른표현이 아닐런지요. 당시 희생된 분의 삼가 고인의 명복을 기립니다.
@user-jw6rv1dw6u
@user-jw6rv1dw6u 6 жыл бұрын
북종
@casanomada8535
@casanomada8535 6 жыл бұрын
정치적 폭력투쟁이 최소한 그리고 불가피한 상황에서 이루어질때 정당성을 갖지 않을까? 조직적이고 행사성이 되었다면 양측다 지루할뿐! 광주도청의 열사와 체게바라 까밀로 또레스 신부님역시 자신의 죽음의 순간까지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쉽게 평가했다면 미안하이. 그러나 그들이 왜 쏘지않고 휘두르지 않고 죽음을 받아들였을까
@luchador2111
@luchador2111 Жыл бұрын
CA, NL, PD, NLPDR 민족해방 민중민주주의 혁명과업 위수김동 ~ 친지김동~~ 그 시절 그들이 외쳤던 메아리들.....
@diskfull
@diskfull 7 жыл бұрын
많이 아팠을 96년 기억을 가진 후배들에게, 그래도 너희는 옳았고 진심으로 응원한다고 전하고 싶다. - 87년 기억을 가진 사람이.
@diskfull
@diskfull 7 жыл бұрын
쯧쯧.. 무엇이든 좌우로 나눠보며 그렇게 악다구니 안써도 된다네. 세상은 돌고돌아 바른 길 찾아가게 되어있으니..
@user-gd5tj7tv8v
@user-gd5tj7tv8v 7 жыл бұрын
Ki-Won Ryoo 많이 아팠을 96년의 기억을 가진 선임 분들에게, 선임분들은 한총련 처단을 위해 힘내셧습니다 그리고 한총련에게 죽임 당하신 연세대 학생 김종희 일경님께도 명복을 빕니다. -의경 997기 후임 한명이.
@higherwindow87
@higherwindow87 6 жыл бұрын
Ki-Won Ryoo 창피한 역삽니다. 반성하세요.
@user-fp3rm4jv7v
@user-fp3rm4jv7v 6 жыл бұрын
96년 연대사건에 투입되었던 기동대의경으로써 한마디만 할께요 연대사거리에서 "난 악마를 보았다"
@koreaball7136
@koreaball7136 6 жыл бұрын
빨갱이 쓰레기 새끼 ㅋㅋㅋㅋㅋㅋ
@user-sn4ke5cq2p
@user-sn4ke5cq2p 2 жыл бұрын
왜 이것이 부끄러운 것인가? 당시 난 남총련소속으로 많은 폭력투쟁을 하였다.. 근데 사실대로 말하자. 우리가 먼저 폭력을 사용한것인가? 그들에 폭력에 대항했던것이다. 물론 폭력은 잘못되었다. 하지만 우린 대열을 보호해야했고 모두가 잘못없이 잡혀가 매맞고 죄를 뒤집어쓰고 빨갱이로 몰릴수 없었다. 아직도 생생하다. 14일 연대뒷산을 올라 진입을 시도 했는데 그때 막고 있던 전경 1개 중대를 폭행하지 않고 차량에서 못나오게 하고 진입했다 근데 산꼭대기에서 페포를 쏘고 돌맹이를 굴리고 던지고.. 그돌은 짱돌이 아니라 바위였다 체루탄에 쉼을 쉴수가 없어 땅을 파고 머리를 묻어 숨을 쉬는데 그런 바위들이 머리 옆으로 수도 없이 날아왔다. 어쩔수 없이 우리 후퇴하여 한양대로 이동했다. 다음날 아침 신문에 우리가 차량을 불지르고 전경들을 쇄파이프로 폭행했다고 나왔다 억울해다 자작 극이였다... 우린 아침일찍 연대 진입을 시도 했다. 전경과 대치상황에서 전경 방패부대 뒤레서 돌들이 날아왔다. 백골단 사복경찰들이었다. 돌은 다름아닌 건물 바닦의 대리석이었다 날카롭고 당당한 그것 하지만 우린 보호장비 하나없이 맨몸으로 투쟁했다. 옆에서 두명의 친구가 쓰러졌다 한친구는 손가락을 맞아 손가락이 뭉개져 연대 세브란스에서.치료가 암된디거 했고 한친구는 얼굴을 맞아 입고 코가 함몰되었다.. 연세대 안에서는 더 힘들었다. 우리가 폭력 투쟁을 했다고 하나.. 그들이 축재릉 하고있는 곳으로 쳐들어와 공권력을 사용하고 우리를 탄압했기에 우리는 투쟁했다. 난 이한열 열사가 죽었듯이 직격탄에 맞아 기절했다. 다행히 뼈가 튼튼해 함몰이나.골잘은 없었지만 입안은 갈기갈기 텨져 완젼 피부가 텨져 갈기갈기 ㅠㅠ 소독을 할수도 치료를 받을수도 없었다. 살기 위해 빨간 소독약 화장실 청소에 사용하는 요오드 반병을 받아 소독했다. ..그들은 나가는 이들을 잡아 옷을 볃겨 운동장에 무룹을 꿇렸다.. 집으로 가겠다. 축제에 참삭한것 뿐이다 근데 그들은 폭도로 몰고 언론을 장학했다.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그냥 도구일 뿐이였다. 안에 있을때 주변 상가 김밥 아주머니가 밤새 김밥을 싸서 보내 주시면 전경들을 시켜 김밥에 채루액을 부어버리는 짓을 했던 경찰들.. 인권은 없었다. 잡히면 안되었다. 난 직격탄을 맞은후 사수대에서 대열로 이동하였고 다음날 체포되었다. 전경차 안에서 쉬도 없이 방패와 군화 방망이로 맞았고 경찰서에 와서는 남총련이란 이유로 세벽 4시까지 잠을 재우지 않았고.. 옆에 두고 동지들 매때리는것을 보게 했다. 4시 난 그방에거 마지막으로 취조를 받았고 취조도 하기 전부터 30분가량 구타를 당했다. 그리고 30분가량 취조하고 구치소에 같혔다. 그날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을것 같다.
@thejoshuatree1911
@thejoshuatree1911 11 ай бұрын
와 진짜 빨갱이가 여기있네
@Berserker195
@Berserker195 7 ай бұрын
응 헛소리 하지마. 어딜가도 경찰이 먼저 때리는 적은 없어 나도 너네 부류들 시위하는 거 자주 봤었는데 한결같이 니들이 시비걸고 폭력 휘두르더만 경찰들이 경고부터 먼저 하고 진압 들어간다. 그 사이에도 니들은 막대기 들고 경찰들 위협하면서 나대고 있었고.
@junsupark9607
@junsupark9607 6 ай бұрын
​@@Berserker195응 넌 경찰가서 두드려맞아야 정신차여
@user-df5lu1od9o
@user-df5lu1od9o Ай бұрын
화염병만 존나 잘던지더만 니들이 반대로 화염병 맞아봐라 그리고 쇠파이프로 전경들 존나 후드려패드만 그날 니들 미국이면 총맞아 다디졌어야됬다 죽고 불구되고 다친전경들이 얼마나 많은데 개소리하냐
@user-jy6zc3xo6v
@user-jy6zc3xo6v 6 жыл бұрын
자신의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종북,빨갱이 몰아가는게 벌써 60년이 넘었어요...자유민주주의가 자신과 다른사람을 인정하는 자유와 국민이 국가의 주인인 민주를 빼면 그게 자유민주주의입니까?이제 어리석은짓 그만하고 서로 존중하는 성숙한 민주주의 합시다
@user-qk2mv8zn2z
@user-qk2mv8zn2z 3 жыл бұрын
그새끼들은 원래 그래요 자기랑 말안맞으면 빨갱이라고...
@mintizend
@mintizend 2 жыл бұрын
근데 한총련 사태는 빨갱이들이 일으킨 사건은 맞음 주한미군 철수,고려연방제 통일 주장하는 거 보면
@user-fh7bq2fb4s
@user-fh7bq2fb4s 4 жыл бұрын
전경이 죽은 건 솔직히 충격이었고 너무 맘 아팠다. 가까운 초등학교에 학생들이 잡혀있다고 하여 학부모들과 달려갔었다. 운동장에 쭈그리고 있던 아이들은 모두 머릴 숙이고 있는데 흰색티셔츠엔 군화발자국들이 선명하게 찍혀있고 머리는 살발이 된 대학생들을 우리가 보고 있어도 군화발로 백골단이 차더군요. 입에 담지도 못할 성희롱을 끊임없이 하고. 물과 전기도 끊고 위생용품 전달도 안 되고. 헬기로 최루액을 소방진화하듯이 뿌리고. 우리 눈앞에서 손에 아무것도 들지 않은 아이들을 떼로 몰려가서 때리고 발로 차고. 언론은 매일 200명, 300명의 주사파가 모여있다며. 통일한마당 축제였던 자리는 피와 눈물과 폭력의 장이 되었다. 기성세대는 비난만했지 누구하나 저 아이들에게 손내밀고 대화하자고 하지 않았다.
@user-vo7ef6gs9l
@user-vo7ef6gs9l 2 жыл бұрын
니가 그 쓰레기구나
@seankim7869
@seankim7869 2 жыл бұрын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명분없는 시위나 쳐 했으니까 그딴 수모를 겪은건데 당해도 싸지ㅉㅉ
@Freedom-Mickelson
@Freedom-Mickelson Жыл бұрын
그래도 뒤진 학생 새끼들은 한명도 없었지요. 당신도 8월의 땡볕 속에 일주일 동안 진압복 벗지도 못하고 발도 못 씻어서 온몸에 땀띠나고 누워서 1분도 못 잔 상태라면 어떻게 했을지 상상해 보세요. 그때의 의경들도 20살~23살 이었습니다. 사망한 대원들도 있었고 평생 장애로 고통받는 분들도 부지기수 입니다. 유튜브에 당시 AP통신 영상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왜 학생들 당한거만 생각하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junsupark9607
@junsupark9607 6 ай бұрын
​@@seankim7869어 이거 택시운전사에서 송강호가 한말아닌가
@user-fh7bq2fb4s
@user-fh7bq2fb4s 4 жыл бұрын
한계레도 이 당시 거짓을 많이 보도했다. 지금도 기억난다. 학교에 500명 극좌파 주사파학생이 있다며. 전경만 고생한 검 같지. 저때 저녁에 아이들 모두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저녁에 연대에서 만난 동생의 짐을 받고 만나서 이야기하고 잠시 후 보자고 했는데. 극우들. 백골들. 여학생을 노골적으로 성추행햇다. 96년 연대를 직접 보지 못했다면 욕하지 마세요. 연대 앞에. 있던 우리 보호자들이 모두 목격자였다. 정말 끔찍했다. 누가 저 학생들을 저렇게 몰아세웠나요. 언론과 극우였어요. 인문관 가까운 건물 옥상에 하루는 올라가게 해주어 보호자들이 몰려갔었는데 건물 전체가 최루액으로 눈이 내린 듯 했다. 기성세대들 모두 귀막고 대화단절하고 영삼이는 자신의 레임덕을 연대사건으로 막고 싶었는지도. 무능했던 영삼이.
@user3320alspo
@user3320alspo 4 жыл бұрын
또래였을 의경들에게 쇠파이프 휘둘러대고 결국 한개소대는 중상자 속출이 중대장도 병원호송. 그런 모습은 못보셨나봐요? 뒤에서 쳐다보는것과 그 시위현장 한복판에서 겪는것은 달라요. 보고싶은것만 보지마시고 사실만 보세요. 그당시 한총련의 말만듣고 경찰을 가해자로 몰아세우는건 시위대가 아닌 진압부대로 그현장에 서있던 청춘들에 대한 모독입니다.
@user-vo7ef6gs9l
@user-vo7ef6gs9l 2 жыл бұрын
진짜 빨갱이들이 있구나.
@user-dz7jm3pn4p
@user-dz7jm3pn4p 2 жыл бұрын
전경때려죽인 살인자 세끼 들이 아가리 잘도터네
@junsupark9607
@junsupark9607 6 ай бұрын
​@@user3320alspo아 여기 병신 추기요
@yoon6531
@yoon6531 7 жыл бұрын
학생들 집에 못가게 하고 폭력시위한것은 잘한것은 아니죠. 역사적 정치적 의미없는 명분없는 폭력시위
@KAMI7632
@KAMI7632 Жыл бұрын
저도 그때 전경으로 근무했고 데모 진압 하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진짜 영문도 모른채 출동하고 출동하니 대학생들이 쇠파이프 화염병 들고 우리에게 공격하고 우린 그걸 보며 흥분하고 아메리카 핏불이 먹잇감 보면 달려드는 딱 그런거였어요 그들도 우리도 첨 보는 사이잖아요 우린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는 말단 군인이었고 그들은 그들의 뜻을 관철시키려는데 정부가 억압하니 밖으로 나온것이죠 솔직히 그때 진압하면서도 전 이런생각 했었어요 이 데모와 데모진압은 정부 때문이다.. 정부가 그들의 목소리를 억압하니 그들이 길거리로 나온거고 그들을 막기위해 정부는 우리를 풀어서 진압했죠 우린 개 였어요.. 정부가 잘 못한 댓가를 우리가 대신 처벌받는거죠 맞고 머리깨지고 얼굴터지고.. 이게 정치인들이 맞아야 할 몽둥이에 전의경이 대신 맞은거죠.. 뭐 어찌됐건 난 그때 대학생들 이해했습니다 전 그땐 데모진압을 했었던 전경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반대입니다 울산H자동차 근무 하면서 이젠 제가 먹고살기위해 데모를 하게 되더군요.. 여러분 이 모든 상황은 얄팍한 정치인들이 만든 상황입니다
БАБУШКИН КОМПОТ В СОЛ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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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АН АНДРЕ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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Опасность фирменной зарядки Ap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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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Crast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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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S TH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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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tan por A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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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t and Furious: New Zeala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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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w Ridiculo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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БАБУШКИН КОМПОТ В СОЛ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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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АН АНДРЕ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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