Рет қаралды 14
1-2절. 오늘 본문에는 용(사탄)의 하수인으로 두 짐승이 나오는데 첫 번째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왔다고 했습니다. 이 첫 번째 짐승의 모습은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으로서 용의 모습과 동일합니다.(12:3) 이는 곧 이 짐승이 용(사탄)의 지시를 받아 교회와 신자들을 공격하는 하수인임을 의미합니다. 이 짐승의 열 뿔에는 열 왕관이 있고, 표범과 비슷한 짐승인데 발은 곰의 발 같고, 입은 사자의 입 같은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짐승의 모습은 다니엘서 7:1-8. 다니엘이 본 네 짐승의 환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본 네 짐승은 네 왕국, 즉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괴롭혔던 바벨론, 메데 바사, 헬라, 로마 등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요, 뿔에는 왕관이 있다는 것은 용이 그에게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권세를 주었다는 말씀과 연관된 표현으로 짐승이 강력한 힘과 권세를 가진 존재임을 나타내줍니다. 그리고 그 머리에 신성 모독하는 이름이 있었다는 것은 짐승이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앉음으로써 하나님을 모독하고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입니다. 이 짐승이 구체적으로 로마 황제, 특히 네로 황제나 도미티안 황제를 지칭한다는 해석이 있으나 대체적으로는 장차 나타날 적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해석합니다.
3-4절. 여기서 짐승의 머리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는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지는 않으나 이것은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창 3:15)라는 말씀과 연관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사단과 그의 세력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생애, 십자가와 부활, 승천을 통해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는 것입니다(계 12:5,7.8). 사탄 마귀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머리를 상하게 되었으나 완전히 죽지는 않았고 마지막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사탄의 하수인인 적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승리를 모방하여 인간들을 속인다는 것입니다. 즉 그는 권세를 거의 잃을 뻔했다가 기적적으로 권세를 되찾는 것처럼 꾸며서 사람들을 속이는 술수를 부리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고후 11:14-15. “14.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니라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5. 그러므로 사탄의 일꾼들도 자기를 의의 일꾼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니니라. 그들의 마지막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
5-6절.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았다는 것은 적그리스도의 권세가 자기의 것이 아니고 한시적으로 제한된 기간 동안 활동하도록 허락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볼 때 대개 이단인 적그리스도들이 200년-300년 정도 지속되다가 소멸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교만한 말과 신성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입을 받아 하나님을 비방하고 우리 신자들을 비방하는 것이 적그리스도가 주로 하는 일일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가지고 세상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불신자들이나 불신 가족들과 불신 세상 동료들과 생활 방식이 달라서 서로 불편하게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탄의 종들이 이를 이용하여 신자들과 교회를 비난하여 넘어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는 신앙의 수준이 다르고 성격과 생활 방식이 조금씩 다른 신자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래서 마귀가 이 틈을 이용하여 신자들끼리 서로 비난하게 하여 이간질시키고, 교회의 약점을 비난하여 불신을 갖도록 해서 교회를 파괴시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왜곡시켜서 불신에 빠지게 하기도 합니다. 그 당시 성만찬을 예수님의 피를 마시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것을 기독교인이 사람의 피를 마시는 원시인이라고 비난한다는 것입니다.
7-8절.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이 말은 사탄 마귀가 그만큼 강하여 우리 신자들을 공격하여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자들이 믿음으로 살지만 사탄 마귀의 공격으로 인해 넘어지는 경우가 있고, 그래서 고난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못한 세상 사람들은 짐승, 즉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하며 섬기게 됩니다. 짐승에게 경배한다는 것은 그 당시 로마 황제에게 경배하고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자들이 사탄 마귀의 공격으로 쉽게 넘어질 수 있는 자기의 연약함을 인식하고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과 말씀을 믿고 의지하면 사탄 마귀를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연약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사탄 마귀에게 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알지 못하면 계속해서 사탄 마귀의 지배를 받으면서 종노릇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라고 기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면 적그리스도, 사탄 마귀의 공격을 이기기 위해서 우리 신자들에게 필요한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9-10절. 첫째는 말씀을 들을 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검 곧 말씀으로 사탄 마귀의 공격을 이길 수 있습니다.(엡 6:17) 그래서 우리 신자들은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탄 마귀는 말씀을 듣지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오늘날 많은 말씀들이 들리고 있습니다. 다만 들을 귀가 있는 자들만이 자기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영접하고 마음에 새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들을 귀가 있다는 것은 영적인 소원을 가지고 좋은 마음밭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자들이 자기의 삶을 하나님의 주권에 맡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스테반과 요한의 형제 야고보가 죽임을 당하는데 주님께서 베드로는 감옥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이는 베드로가 할 일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순교를 당할 자는 순교를 당하게 하시고 생명을 보호해 줄 자는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즉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탄 마귀는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의심하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절대적으로 믿고 사탄의 공격을 물리쳐야 합니다. 셋째는 우리 신자들은 인내와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탄 마귀의 공격으로 인한 고난은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허용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것은 우리 신자들에게 고난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신자들은 사탄 마귀의 공격으로 인해서 고난을 당하면 우리를 위한 주님의 고난을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십자가에서 고난당하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리고 고난이 우리 신자들의 믿음을 연단하여 성장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게 됩니다.(롬 5:4)
11-12절. 첫 번째 짐승은 바다에서 나왔는데 두 번째 짐승은 땅에서 올라왔습니다. 땅과 바다는 하늘과 대조되는 말로서 사탄 마귀가 지배하는 죄악된 세상을 의미합니다. 이 짐승은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했습니다. 이는 곧 모습은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모방하고 있는데 말은 사탄 마귀의 말을 하고 있는 전형적인 적그리스도의 모습니다.
13-15절.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게 하는 것은 구약 시대에 위대한 선지자였던 엘리야를 연상하게 합니다. 둘째 짐승은 이처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큰 이적을 행하여 자기의 능력을 과시합니다. 즉 사람들 앞에 자기가 위대한 선지자로 가장하여 속이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단 사상, 적그리스도들도 사람들이 미혹당할 만한 능력을 행사합니다. 그리고 ‘우상을 만들라’고 한 것은 짐승 즉 적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경배를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칼에 맞았다가 상처를 입고서도 살아난 그 짐승’이란 곧 짐승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처럼 가장하여 사람들을 속인다는 것입니다. 즉 자기가 마치 그리스도인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고 존경과 예배를 받으려고 하는 것이 거짓 그리스도, 적그리스도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죽인다고 했습니다. 그 당시 로마시대에 황제숭배를 거부하다가 교회와 신자들이 박해를 받고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말이고, 종말에 많은 순교자들이 나올 것이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런 상황 가운데 그 당시 교회와 신자들에게 인내와 믿음으로 승리할 것을 격려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종말에 있을 사탄 마귀의 발악으로 인해서 박해를 받을 교회와 신자들에게 주시는 격려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16-18절. 여기서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사람의 오른손은 힘과 능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손에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짐승 즉 사탄 마귀에게 속한 자로서 사탄 마귀의 통제 아래에서 활동하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마는 사람의 인격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는다는 것은 전인격적으로 짐승을 추종하고 경배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표는 짐승의 이름을 나타내는 숫자의 낙인이 찍혀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곧 짐승의 이름을 숫자로 나타낸 것을 말하는데 이런 방법을 ‘게마트리아(gematria)’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사람의 수니‘라는 말은 ‘그 숫자는 사람의 이름을 표시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육백육십육’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먼저 문자적인 해석은 그 당시 기독교를 박해하고 신적인 숭배를 받고자 했던 로마 황제 네로나 도미티안을 상징하는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육백육십육’의 상징적인 해석으로서 6은 사람을 상징하는 숫자이고 7은 하나님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그래서 6을 세 번 반복한 것은 인간 혹은 인본주의적인 삼위일체, 즉 하나님의 삼위일체를 모방한 가짜 삼위일체를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짐승의 수 666’은 불완전한 자로서 완전한 자인 하나님의 지위를 노리고 도전하는 세력임을 나타낸다는 것입니다. 즉 사탄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을 속이고 하나님처럼 경배를 받으려고 한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