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주동은 원래 신학생도 그리고 학생들, 청년들도 많았죠 이중호신부가 출신 1대인데 이후 신학생들이 쭉쭉 있었죠 교구면 교구 수도회면 수도회 워낙 브랜드 성당이라 복사단 출신들이 거의 그 과정인 것 같네요90년대 그 아이들 장난꾸러기에 순수한 아이들이었는데 나중에 보니 쭉 다들 못가고 다른 성소로 갔죠 우리 아이들 그당시. 우리들의작은이야기 문학의밤 참 잘했죠 고생했던 그걸위해 한달반여 기간 염주동은 그리고 염주사 있었어요 고려때 부터 하지만 해방후 불에타 현재 그터와 그당시때 불상 조계종 소유 터 개인 사유지 터만 남아있죠 이석 신부를 차라리 들어오라했으면 더 많은 추억을 염주동 되새겨줬을 것 같은데 김안식 신부가 3남매 막둥이 같은데 그때는 막내 학생이어서 어려서라 여기만 생각이나네요 김영민 당시신학생 김현열박원석이학생들도 생각나고 오랜만에 서울에서도 당시 즐거웠던 이분들로 인해 추억 새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