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erican Professor DEBUNKS Major Myths About Korean Surna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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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rog Outside the Well

The Frog Outside the Well

Күн бұрын

Пікірлер: 105
@lycos888
@lycos888 5 күн бұрын
서양의 family name 개념으로 보면 한국인의 성씨는 사실 김이박이 아니고 본관까지 따져야 하는데 일본이 조선호적령 도입하면서 본관은 서류에만 기재하고 김이박 등이 성씨처럼 돼 버렸죠.
@sung9543
@sung9543 5 күн бұрын
객관성 있는 의견 이십니다. 인류로서의 과정을 부풀려서도 감춰서도 안되고, 단지 지금까지 이런 국가가 만들어진 연유를 알게되면 인간사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큰 선비로 대접하고 싶고 존경합니다.
@WorldReserveCurrency
@WorldReserveCurrency 4 күн бұрын
So thankful to you Professor for sharing your knowledge Professor!
@user-ge2kq7je2g
@user-ge2kq7je2g 5 күн бұрын
환갑잔치가고싶어요 ㅋㅋ
@이희윤-n3y
@이희윤-n3y 4 күн бұрын
환갑은 무슨 고희도 지나셨을것 같은데..
@user-ge2kq7je2g
@user-ge2kq7je2g 4 күн бұрын
​@@이희윤-n3yㅠㅠ왜그러세요
@나그네-o3v
@나그네-o3v 5 күн бұрын
우리말(한국어) 어휘의 약 60%가 한자어인 마당에 중,고등 한자 교육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한자어의 장점은 긴 의미를 짧게 함축하는 점에 있는데 그런 한자어의 잇점이 전혀 없는 일상의 한자어들은 의식적으로 우리 어휘로 바꿔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오늘/금일, 비올때/우천시, 점심?/중식, 나중에/추후, 깊은/심심한, 부끄러움/자괴감 달걀/계란 등... 이런 단어들은 선배 세대가 먼저 의식적으로 안 쓰려고 노력 합시다. 부산 항 /부산 나루 - 어색하시죠? 이런식으로사라집니다. 또 순수 한국어가 있는 것은 그것들을 잊어버리지 않게 사용을 권장 합니다. 사투리는 사라지고 한자식 문어체는 표준말을 대체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리말로 바꿀 수 있는 표현 찾는 노력은 일반인도 하겠지만 연구하는 정부 기관이 더 노력해야 되는 것 아닌가요? 고마워 -고맙습니다 = 감사해? 감사합니다 - 한문에서 따온 문서에서 사용되던 말이 어느 순간 일상 생활 언어로 되고 있습니다. 일본이 침략 시기에 한국어 파괴를 엄청 해 놓은 생각이 듭니다. 일본 식의 한자를 번역한 한국어?? 무엇이든 중화가 지식인을 자랑하는 건 줄 알던 조선시대 사대주의부터 일제 침략시대 순 일본말과 근대 사회까지.... 그리고 공사 현장 이나 방송가 등에는... 변형도 아닌 순 일본어가 너무 많습니다. 우리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 비오다/비내리다/비떨어지다/비 흩날리다, 가랑비/이슬비/안개비/소나기/소낙비 등... 옛 문헌을 해독하는 고고학자나 역사학자만 문어체는 알아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냥 이참에 문어체도 대체 가능한 게 있다면 굳이 오늘/금일, 고마워요/감사해요 -이런 아무런 문제 없는 것들은 바뀌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바램)입니다. 한문을 알아야 되는 건 맞지만... 우리말로 아무런 문제없는 단어까지 점점 더 사라질까 두렵기도 합니다. 문어체가 실생활까지 계속 구어체로 사용되는 걸 인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저는 헌법이나 공문서를 한자로 어렵게 만드는 것과 언어 생활까지 문어체로 하는 것이 조선 시대 양반들이 한글 사용을 안 하고, 못하게 한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 됩니다. 참고로 외국 선진국에선 공문서 나 문서 쉽게 쓰고 이해되도록 하는 사회 운동과 tv다큐멘터리도 있습니다. 토착화 된 일본어와 일제 침략시대의 한자 번역과 한자나 영어도 쓸 수 밖에 없는 것은 써야겠지만 아닌 것도 많이 쓰고 있으니 말입니다
@classickdramaclips
@classickdramaclips 4 күн бұрын
18 번… vestiges of japanese occupation…also 도장…
@vcapell4370
@vcapell4370 3 күн бұрын
2천년 전 고구려 땅이안쓰고 지로 쓰고 , 백제 도시건설시 상부.하부. 중부라 하였습니다. 닐본이 고대로 따라쓰고, 신라이두.갑골문자 탄생이후 2천년 넘게 쓰던 우리 언어를 중화 공영어를 중국 고유문자로 볼 이유도 없고. 안불편 합니다. 우리말에 중화공영어도 있고 순우리말도 있는거죠. 말죽거리.
@user-ri2vp7qt7f
@user-ri2vp7qt7f 3 күн бұрын
금일을 금요일 중식을 중화요리로 아는 무식함보다는 한자어를 음만 듣고도 이해하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우리말과 한자어를 다 알아야 합니다.
@잊지마스크
@잊지마스크 4 күн бұрын
90퍼센트 노비도 거짓이었네요 ;;
@이태영-q5x
@이태영-q5x 4 күн бұрын
당연히 거짓이죠 말이 안 되잖아요 세금도 군역도 안 하는 인구가 구십이면.. 나머지 십프로가 양반인데 누구한테 세금을 걷고 군역을 하게 합니까 구십프로는 보통 일배에서 언급하는 내용인데 한국 까려고 양반 빼고 다 노예!! 라고 말하던 게 노예 90프로로 바뀐 겁니다 누가 옆에서 노예 90이라고 하면 일베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보통 90 70 60 50으로 이야기 하긴 합니다만 어떤 근거가 있는 건 아니며 양반 10 빼고 노예 양반 30 빼고 노예 그냥 절반은 노예의 다른 표현입니다
@김영원-w3q
@김영원-w3q 4 күн бұрын
노비는....일종의 회사원 개념이기도 했어요. 외거노비와 솔거노비..... 외거노비는...밖에 자기집에서 출퇴근 하면서...월급 받던 사람들....현대 직장인들은 모두 노비에 해당하는 겁니다. 돈이 많아서 양반주인한테 꿔주고 이자받던 노비도 있었습니다. 노비직을 선택했던 사람들은....세금을 안내려고 선택한 측면도 큽니다.
@TyoungG
@TyoungG 4 күн бұрын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함?.. 농업사회에 농사짓는 사람들이 노예임?.. 노예가 세금내고 소작하는거 봤음?.. 조선시대 노예는 어떤식으로든 양반이 소유하면 노예가 됐음... 그걸 풀어주면 평민이 됐고.... 그 소유할수 있는 사람은 조상이 죄를 지은사람이라든지 그들의가족 이라할수있는데 노예를 소유한 양반이 그걸 풀어줄수도 있었음...그래서 예전 영화보면 결혼한 노예를 풀어줘 자유롭게 살수 있게 해준 경우들도 나옴.... 그러니까 노예가 90% 말도안되는 말은 친일파들이 한국인들은 다 노예였다 주장하고 싶어 선동하는거임...
@잊지마스크
@잊지마스크 4 күн бұрын
@@김영원-w3q 공감되는 말씀 감사합니다 ^^
@heoungminkim1108
@heoungminkim1108 4 күн бұрын
수년간의 연구성과를 공유하시는데도 통념만을 근거로해서 반박하시는 분들이 많나 보네요
@TheFrogOutsidetheWell
@TheFrogOutsidetheWell 4 күн бұрын
네, 그것은 바로 싸움이죠.
@never-er
@never-er 4 күн бұрын
족보가 많이팔린 본관이 있고 아닌 본관이 있습니다. 조선전기와 조선후기 인구수를 비교해보면 됩니다. 윤씨를 예로들면 파평윤씨는 조선전기 5만명이 채안됐는데 조선후기를 거쳐 현재 100만명이 넘어가죠. 반면 해평윤씨는 조선전기에 1만명 현재도 2만명 남짓입니다. 조선초에서 현재까지 인구성장을 감안해도 전체인구에서 차지하는 지분이 큰차이가 없는거죠. 다시말해 해평윤씨는 파평윤씨에 비해 진짜 양반일 가능성이 훨씬 높은겁니다. 이런식으로 같은성씨라도 본관마다 족보가 많이 팔린성씨가 있고 아닌성씨가 있어서 찐양반일확률을 계산해볼수도 있습니다
@김범휘-z2t
@김범휘-z2t 4 күн бұрын
과거 급제자 나올확률이 사람이 많을수록 높은게 맞지 적을수록 찐양반이요? 귀족입니까? ㅋㅋㅋ 무슨 고대 세습귀족들 씨족보인줄 ㅋ 종가의 대종만 찐양반임? ㅋㅋㅋ
@never-er
@never-er 4 күн бұрын
@@김범휘-z2t 니말대로 급제비율을 계산하려면 성씨별인구수를 알아야 하는데 그건 어떻게 계산하지? 잘모르나본데 현재는 전국민이 양반인줄 알고살지만 조선시대 과거시험을 치룰수있는 진짜 양반의 비율은 2%가 채 안됐었음
@never-er
@never-er 4 күн бұрын
@@김범휘-z2t 내 논리를 반박하는 니 댓글 자체가 모순임. 현재인구의 98%는 조선후기 말기에 족보사서 성씨를 얻었음. 극소수 양반을 제하면 한반도 인구 대다수는 급제율을 계산할 수 없음. 과거를 볼 자격도 없었으니까
@김범휘-z2t
@김범휘-z2t 4 күн бұрын
@@never-er 이건 뭔 멍청한소리지? 니말하듯 니말이 모순덩어리 그 잡채 ㅋㅋ 계산한 근거를 못찾는데 과거를 치룰수있는 진짜 양반비율 2%는 뭔기준으로 쓴거임? 본인이 말하는게 모순덩어린데 내로남불 대박일세 ㅋㅋ 현제 공무원 비율이 2퍼니까 현역양반비율 2퍼일순 있겠네 ㅋㅋㅋㅋ
@Bi99334
@Bi99334 4 күн бұрын
​@@never-er본인은 그럴듯 해보인다고 생각할 방법이겠지만 오류에 빠질 가능성이 많은 방법임 1만이라는 표본은 절대 많은수도 아니고 이기 표본으로 세대 증폭률을 따지는건 바보같은일임 그리고 같은 성씨가 집성을 이루는 구조가 많았던 중세근대시대에는 특정한 이슈들로 한번 변수가 생기면 그 등락폭도 매우 클수밖에 없고 마지막으로 양반일 확률이라는건 지금시대에 그냥 자기 하찮은 인생에 훈장이라도 생기길 바라는 허영심임
@lkm2458
@lkm2458 Күн бұрын
제가 듣기로는 조선시대 전기부터 여자노비와 양반남자 사이에 낳은 서자는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 노비로 구분되었다고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조선 전기보다 후기에 갈수록 노비의 비율이 너무 팽창해서 관리하기가 어려운 지경까지 갔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조선 후기에는 서자신분때문에 사회적으로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고 하던데.. 오히려 고려시대 때에는 신분이 이동이 가능해서 노비신분을 벗어날 확률이 높았지만 조선시대부터는 노비가 확장됐다고 하던데.. 제가 잘못알고있는건지 궁금합니다. 방금 챗gpt한테도 물어봤는데 비슷한 답변을 주더라구요
@TheFrogOutsidetheWell
@TheFrogOutsidetheWell Күн бұрын
댓글을 써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문서를 보고 경험을 통해 반대 관점을 얻었습니다. 저는 왕조가 진행되는 동안 노비의 수가 감소하는 것을 봅니다. 물론 어려운 시기에는 증가했지만, 일반적인 추세는 특히 18세기에 노비의 수가 감소했고 19세기에는 극적으로 감소했습니다. 이에 대한 저의 생각은 "호적", 즉 3년마다 실시하는 인구 조사 기록에 대한 연구에 근거합니다. "도망 노비”의 수는 18세기에 감소했고 19세기에는 더욱 감소했습니다. 양반과 가난한 양반은 점점 더 작은 노비를 소유했습니다. 양반 가족의 규모는 증가했지만 노예의 소유는 감소했습니다. 조선 초기에는 결혼과 충성(공신)으로 왕과 가까운 사람들이 노비를 엄청나게 많이 소유했지만, 재산을 동등하게 상속에 분배하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노비의 소유는 분할되어 점점 더 작아졌습니다. 그리고 경제적 다양성으로 인해 도망간 노비가 평민으로 행세하고 사업에 관여하게 되면서 노비 소유가 훨씬 더 극적으로 감소했습니다. 저는 추세선을 양반 신분의 상속자 인구 증가, 일부 가난한 양반 포함, 그리고 노비 수 감소로 봅니다.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본] Thank you for your note. My experience with the documents gives me the opposite point of view -- I see the slaves declining in number over the run of the dynasty. Of course, there were increases at times of hardship, but the general trend was for the slave numbers to decline especially and the 18th century, and dramatically in the 19th century. My thinking on this is based on my study of the "hojeok" -- the triennial census records. The numbers of "runaway" slaves decreases dramatically in the 18th and more so in the 19th centuries. The yangban, and poor yangban, held smaller and smaller slaves. The yangban family sizes increased, but the slave holdings decreased. In early Joseon, those close to the king in marriage and in loyal support (gongshin) had huge numbers of slaves, but with equal divisions of property, over time the slave holds were divided and became smaller and smaller. And then the runaways, resulting from economic diversity -- a runaway slave could pass as a commoner and become involved in business -- decreased the slave holding even more dramatically. I see the trend lines as increasing population of heirs to yangban status, including some quite poor yangban, and decreasing numbers of slaves. Thank you for writing.
@lkm2458
@lkm2458 Күн бұрын
@@TheFrogOutsidetheWell 친절한 답변 감사합니다. 제가 알던 지식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요
@polarbearhip
@polarbearhip 2 күн бұрын
저도 환갑잔치 가고 싶어요 ㅋㅋㅋ
@classickdramaclips
@classickdramaclips 4 күн бұрын
Prof Peterson…is it true that in most caste system…including Korea…many lower class citizens adopted the last surname of their ostensible master??? I am most likely a descendent of a slave??? When did caste system end in Korea…during Japanese occupation??? I have so many questions…any classes I may audit that you teach??? Thank you…
@이태영-q5x
@이태영-q5x 4 күн бұрын
카스트 제도는 한국에 없었습니다 조선 특유의 신분제가 있긴 하나 자유민과 천민으로 구별 되어지며 시기에 따라 그 비율은 달라졌습니다 이를 “양천제”라 하였습니다 일반적으로 대다수는 자유민이었습니다 허나 조선은 고위 공무원직을 과거라는 시험으로 선발하였는데 이들을 양반이라고 불렀으며 이들이 타문화권인 귀족 처럼 실질적 정치 지배권을 가졌습미다 이를 반상제라 하였습니다 즉, 법적으로는 양천제를 기반으로 하고 문화적으로는 반상제가 시대상에 따라 변화하며 나타났습니다
@TheFrogOutsidetheWell
@TheFrogOutsidetheWell 4 күн бұрын
Thank you for your interest in taking a class from me -- I'm retired but I teach segments of classes, ten, fifteen minutes at a time on KZbin. I have over 250 videos on KZbin -- maybe that's like a semester of lectures. Take a look at my older videos -- I think of each video as film that can be shown in a classroom.
@이태영-q5x
@이태영-q5x 4 күн бұрын
@@classickdramaclips There was no Caste system. There is status system which is the unique of the Joseon. There are two classes. One is free man and the other is the lowest class people. The rate of their number was changed as the situation. Most people was belong to free man. The system is called by 양천제. However there is another system which called by 반상제. 반상제 was applied by the culture situation. So the form of the system was changed as the social situation. the high class officers (they are called 양반) were selected by the state examination. the examination was supervised by the central government. 양반들 had the power of other countries’s aristocrat. So there was two style of social class system. 양천제 is the legal system. 반상제 is the cultural system. Two types of the system is compounded in the Joseon.
@songlee4626
@songlee4626 4 күн бұрын
교수님 참으로 해박하십니다.
@TheFrogOutsidetheWell
@TheFrogOutsidetheWell 4 күн бұрын
감사합니다.
@abandonedmann
@abandonedmann 3 күн бұрын
Hi, Chad.
@classickdramaclips
@classickdramaclips 4 күн бұрын
Prof Peterson…slightly different topic here…during Joseon era…cities far way away from Kings Palace…how were they governed??? Hands off approach??? Especially northern cities toward China and Manchuria??? Was this 장거리 one of the main reasons the north favoring socialism - removal of class system…after WW2 and eventually differences in ideology from southern Korea…and the split of Korea??? So many questions …thank you for your time…a song I remember as a child back in 70’s….’이 나라 살리는 통일..’
@이태영-q5x
@이태영-q5x 4 күн бұрын
조선 시대에는 과거(시험)를 통해 선발된 중앙 관료가 파견 되어 통치하였습니다 이 때 관료들은 자신의 출생지와 관계 없는 지역에 파견 되었고 일정기간 지나면 다른 관료로 변경 되어 파견 되었습니다 There was the state examination in the Joseon. The high class officers were selected by The examination . They were sent to local society and governed that area by the law. (That local societies are not related to them) After they were sent sever years, they were changed new officers.
@이태영-q5x
@이태영-q5x 4 күн бұрын
북한의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군의 북한 지역 주둔과 남한지역 미군 주둔과 관련이 있으며 조선시대와는 별개 입니다 North Korea’s Communism is not related to The Joseon. That is related to situation after ww 2, the Soviet Union and USA whci country was stationed in their land.
@classickdramaclips
@classickdramaclips 4 күн бұрын
@@이태영-q5x thank for for this information…are you a professor by chance? I am planning on retuning to Korea when I retire, and learn more about Korean history…Korea is calling me after 45 years…any schools you recommend? Once again thank you.
@이태영-q5x
@이태영-q5x 4 күн бұрын
@@classickdramaclips I am sorry, I am not a professor. All Korean students lean about these history at middle school of public education curriculum. So, after you are retired, if you come to Korea, It will be not difficult to get chance to learn the history of Korea you are curious. This channel has lots of Korean history contents with English subtitles. So, look around this channel, I sure you can satisfy your interests.
@TheFrogOutsidetheWell
@TheFrogOutsidetheWell 4 күн бұрын
@@이태영-q5xThank you for recommending my channel. I mean for it to be a teaching tool.
@ihlee7982
@ihlee7982 3 күн бұрын
원주 이씨❤
@김동균-t8u5j
@김동균-t8u5j 4 күн бұрын
조선 초기 양반 비율이 5%이고, 조선 후기에는 그 비율이 50%라고 한다면, 양반兩班의 개념을 좀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양반을 재벌財閥로 바꾸어 볼 때, 우리나라의 재벌이 50%라고 한다면, 이는 중산층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양반의 의미가 변화한 것이라면, 조선 중기를 넘어가면서 나라에 공적이 있는 인물의 후손으로 형성되는 문벌門閥이 양반의 실질을 구성하는 형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갑신정변에서 김옥균은 신분체 철폐를 천명하면서 문벌 폐지를 첫 번째로 언급하고 있다. 1910년 일본이 실시한 전국 호구 조사에서 양반 비율이 2%를 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100대 재벌 비율이 소수점임을 감안하면 조선 중후기의 양반 실질 비율을 가늠해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JaeyoungLee-c4q
@JaeyoungLee-c4q 4 күн бұрын
혹시 교수님이 쓰신 책이 있을까요? 교수님의 시각을 책으로 보고싶습니다.
@TheFrogOutsidetheWell
@TheFrogOutsidetheWell 4 күн бұрын
넥스스 출판소. “우물밖에 개구리 보는 한국사“. 일조각: ”유교사회 의 창출 (ebook). 영어된 책도 몇권 등등
@user-2.24
@user-2.24 4 күн бұрын
저는 김해 김씨(가)입니다. 김수로왕 후손이구요. 특이한건 김해 김씨들은 특정 부위에 점이 있어요. 아마 김해 김씨후손분들은 공감하실겁니다. 지금의 한국은 가문은 중요하진 않지만 유전학적으론 연결되어 있는듯 합니다.늘 한국전통에 관심가져주시는 교수님 감사드리고 존경합니다!!
@helloareyouthere
@helloareyouthere 4 күн бұрын
저는 왼쪽 위둔부에 쪼마낳게 별모양 점이 있는데 혹시?
@이태영-q5x
@이태영-q5x 4 күн бұрын
김수로면 2천 년 전쯤인가?
@공산당은어째서족보를
@공산당은어째서족보를 4 күн бұрын
1910~1945년의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당시의 바램대로 인식이 변질된 걸 고치지 못하고 있는것 부터가 웃기긴 합니다만 다들 개그맨인듯 ㅋ 씨와 성을 구분 못하니... 성은 종족집단을 일컫는 것으로 씨족 집단을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양반을 계급처럼 이야기하는것도 웃긴데 성을 가지고 노비네 어쩌네 하는거 보면 웃다 죽것음 ㅋ
@Bi99334
@Bi99334 4 күн бұрын
성씨가 합쳐진지가 천년도 넘었는데 어느시대에서 어셨나요
@공산당은어째서족보를
@공산당은어째서족보를 4 күн бұрын
@@Bi99334 1910~1945년사이 반도인 전부 폐성창씨한거 아님? ㅋ
@road_star_go_로스고
@road_star_go_로스고 4 күн бұрын
90퍼는 아니어도 50퍼 이상이 노비이고 나머지는 중인이라 하지만 상태가 거의 준노비 상황이 아니었나요? 또한 외국의.너예와 달리 자국민을 노비와 해서 부려 먹었다는 점에 대해 광장히 비판 받아야 하며 우리 스스로도 반성 해야 할 문제라 봅니다. 조선 귀족들은 자국민의 배르루불려 즈기 위한 정복 등을 생갈도 못하고 외세에 털리거나 자국민을 노비화 시켜 고생 시킨 최악의 시대였다는 점에 대한 비판은 면하가 어렵죠. 이갈 식민지허ㅏ한 일본이 왜곡햏다고 하는 건 오히려 약사를 왜곡하기 위해 식민지를 시킨이들에게 떠 넘기는 거죠..스페인이 일본에 안 들아어고, 서양 선료사가 일본에 안 들아왔다면 조선은 글자도 머르고 사는 이들의 대다수였고, 그로인해 사고의 폭이 좁아져 노비러만 살다 모두들 즉었겠죠..
@이태영-q5x
@이태영-q5x 4 күн бұрын
염.병하네 진짜
@outhm8928
@outhm8928 4 күн бұрын
50퍼센트는 과장되거나 일시적인 수치입니다. 그리고 자국민 노비 즉 노예나 농노는 18-9세기 이전 다른 나라에서도 있었습니다. 서양 선교사들을 받아들여야 한다면 굳이 일본을 거칠 필요는 없으며, 서양의 의료는 일본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서양인이 만든 것입니다.
@outhm8928
@outhm8928 4 күн бұрын
글자가 현재와 같이 널리 보급된것은 일제강점기 이후입니다.
@outhm8928
@outhm8928 4 күн бұрын
미국에 있던 아일랜드 흑인 노예들도 자국민이 맞습니다. 그럼 미국은 자국민을 노예로 부렸는데 왜 초강대국이 되었을까요? 인간만큼 동족을 학대하고 부려먹는 동물은 왜 지구를 지배할까요? 어떤집단의 발전과 쇠퇴는 다양한 여건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18-19세기에 일본에게 유리한 여건이 많았던 것 뿐입니다.
@outhm8928
@outhm8928 4 күн бұрын
어디를 정복하나요? 일본? 중국? 만주? 일본과 중국은 정복할 만한 여건이 안되고, 만주는 정복을 한다 해도 개간을 해서 써먹기 어려운 땅입니다.
@비파나무-j8f
@비파나무-j8f 4 күн бұрын
한국의 성씨를 비하하려는 의도의 식민사관도 나쁘지만, 일본에 의한 한국의 신분제도 철폐는 인정해야할 모순입니다. 노비들이 주인의 성씨를 따르는 건 미국 흑인 노예들과 같군요. 누가 가짜 족보인지 따지고싶지 않은 건 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The value of a man is not in his skin, that we should touch him. - Henry David Thoreau 《Walden》 Chapter 5: Solitude
@이태영-q5x
@이태영-q5x 4 күн бұрын
염병
@outhm8928
@outhm8928 4 күн бұрын
한국의 신분제도 철폐는 일본의 간섭이 적었던 1차 갑오개혁 때였고 노비 세습제는 그 이전부터 폐지 되었으나 완전히 없어진 건 6.25와 경제개발 입니다. 즉 일본에 의했다는 건 인정할 것도 없고 제대로 된 증거도 없고 객관적인 주장도 아닙니다. 일본은 90년대에도 자국민 천민 명단을 만들어 블랙리스트로 뿌렸습니다.
@outhm8928
@outhm8928 4 күн бұрын
단순히 일제를 좋게 보는 것은 일제에 치우친 주장이지 인정해야 할 모순이 아닙니다.
@outhm8928
@outhm8928 4 күн бұрын
신분제는 일제의 영향력이 적었던 1차 갑오개혁 때 폐지되었고 노비 세습제는 그 이전에 폐지되었으며 실질적으로 없어진 건 6.25와 산업화입니다. 일본이 옳다고 믿는 것은 일본에 편향된 주장이지 인정해야 할 모순이 아닙니다.
@kkim776
@kkim776 2 күн бұрын
닌 한국사부터 다시 배우고 아는척 해라 갑오경장 내용도 모르는 인간이 뭘 논하냐 ㅋㅋㅋ
@진종이-n3q
@진종이-n3q 4 күн бұрын
성씨를 따져 올라가면 조상은 다 중국사람ㅋㅋ
@이태영-q5x
@이태영-q5x 4 күн бұрын
염병
@classiczin9864
@classiczin9864 4 күн бұрын
그건 한민족 보다 역사가 짧은 중국 한족의 개망상이고 한민족의 성씨는 고조선 부터 족보에 기록이 남아 있다
@kimtaiyoung2020
@kimtaiyoung2020 4 күн бұрын
👍🏻👍🏻👍🏻👍🏻👍🏻👍🏻❤️❤️🌈🌈
@classiczin9864
@classiczin9864 4 күн бұрын
조선 초기 전주 이씨 왕가 자손의 족보가 아닌 이상 가짜 족보를 피하긴 어렵지 않겠나 생각함 가난한 양반이 족보를 팔았다는 이야기도 많았으니까
@lxdvskd2636
@lxdvskd2636 Күн бұрын
족보는 아성게 이씨보다 안동권씨들이 먼저 만들었어요.
@isarama9499
@isarama9499 5 күн бұрын
지금의 성씨는 중국 따라하는것 같고 한국만의 개성이 없어요. 본관으로 성씨를 바꿨으면 좋겠어요. 김해 길동, 안동 철수, 전주 아무개 이런식으로요...
@road_star_go_로스고
@road_star_go_로스고 4 күн бұрын
그렇게 하면 지역이 드러나서 선입견을 갖게 되잖아요.
@isarama9499
@isarama9499 4 күн бұрын
@@road_star_go_로스고 먼 옛날 조상의 출신지역인데 뭘 그런걸 선입견을 가져요? 오히려 지역주의를 없앨 수 있다고 봐요. 김대중 전대통령도 전라도 출신이지만 본관은 김해거든요.
@road_star_go_로스고
@road_star_go_로스고 4 күн бұрын
@@isarama9499 제갈대중이잖아요. 원적이 있으니...그 엄마가 결혼 세번 했잖아요.. 첫 애비 기준으로 성씨를 하면 원적이 나오잖아요. 그럼 제갈최김인데 남원전주김해 돼증이 되잖아요. 아유 이게 뭐예요..
@이태영-q5x
@이태영-q5x 4 күн бұрын
말 같지도 않은…;;;
@Itttae
@Itttae 3 күн бұрын
몽골족 원나라 이후부터 동남아 언어뿌리 중국어들이 아주 오래된 한국이름처럼 성1자 이름2자 고려이름 신라이름 방식을 중국인이 뒤늦게 한국식으로 따라하게된 계기를 모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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