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사 최대 미스터리 - 한성백제의 왕성은 어디인가? (KBS_2002.05.11.방송)

  Рет қаралды 100,584

KBS역사저널 그날

KBS역사저널 그날

2 ай бұрын

◼︎ 1396년 2월 26일, 이성계는 한양에 도성을 축조하였다. 그러나 이전에 한양을 수도로 삼았던 나라가 있었으니 바로 백제였다. 위례성이라 불리는 백제왕조의 도성은 한성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렇다면 조선의 한성과 백제의 한성은 과연 같은 곳이었을까?
삼국사기에 따르면 위례성은 서울의 한강 이남 지역이었다. 이를 토대로 왕성이 있었던 곳으로 추측되는 곳을 추려보면 이성산성, 몽촌토성, 풍납토성 정도이다. 그런데 풍납토성 근처에서 발굴된 백제기와 전돌, 토제 10각 초석 등은 한성 백제의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왕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학계의 의견이다.
#한국사 #역사 #역사스페셜 #역사저널

Пікірлер: 247
@user-km3yh9cr4t
@user-km3yh9cr4t 2 ай бұрын
잠잘땐 최고다 역시 동영상은 고전이지
@user-eu7ck9lv5i
@user-eu7ck9lv5i 2 ай бұрын
너무 재밌어용!!
@MX_Korea
@MX_Korea 2 ай бұрын
진짜 역사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서 댓글 남깁니다. 의문투성이인 한민족의 역사.. 진짜 한민족의 역사에 다가가시고 싶으신 분들은 Sumin Park님과 책보고님 영상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백제의 중심은 북경과 산동 반도 쪽이 맞고 백제 귀족 성씨 8개 중 대다수가 현 산동 반도에 있습니다. 천문학으로 당시 고대 수도 위치 기록 보면 고구려는 몽골쪽, 백제는 북경쪽, 신라는 초기 신라 중국 동부 양자강 일대, 후기 신라 한반도로 나옵니다. 백제 패망 후 열도로 건너가 신라+가야+빙하기 전 건너온 고대 한반도인을 통합해 만든 게 일본입니다. 당시 일본 열도는 가장 쎘던 세력이 신라, 가야의 철기병이었는데 여기에 건너온 백제인들은 철기+철기마병까지 운용해서 백제가 지배 세력이 됐습니다. 교토 쪽에 있는 '나라'현도 우연이 아닙니다. '나라'는 신라어고 '국'은 백제어입니다. 이 나라현은 신라 세력이 지배하다 열도로 온 백제에게 넘어갔어요. 일본어는 백제어가 뿌리고. 대륙과 한반도에 사는 우리 한민족은 신라어를 쓰게 됐고 조선의 한글 창제와 교류 없이 살다보니 말 안 통하는 현재까지 왔습니다. 추가로 역사서 고려사에서 고려는 동서가 2000리 남북은 1500리로 동서가 남북보다 길다고 합니다. 근데 현 교과서에선 남북이 더 길다고 가르치죠. 고려 역시도 진짜 강역은 한반도와 만주 일대는 말할 것도 없고 북경과 산동 이남까지였습니다. 우리 한민족(동이족)은 고대로부터 동아시아에서 한족과 북방 민족에 밀리지 않는 우리만의 고유한 역사를 가진 민족입니다. 자부심을 가지며 살아도 됩니다. 일본, 현 중국에 사는 한민족(특히 산동 반도와 만주 근처), 조선족, 고려인도 물론 우리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또 몽골과는 진정한 형제국으로 통일 후 가장 유대감을 가져야 할 나라입니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어느 나라 사람으로 태어날지는 모르겠지만 진짜 역사를 알고 있는 이상 올바른 역사를 알리려는 노력은 해봅니다. 대한민국 만세.
@Threebread
@Threebread Ай бұрын
재밌네로 긁히신분 프사로 재밌다고 하시니...정말 재밌으셨나봐요
@user-eu7ck9lv5i
@user-eu7ck9lv5i Ай бұрын
@@Threebread 그게 몽말이에영? 긁혓다니? 프사로 재밌다니?
@choiyoung2579
@choiyoung2579 2 ай бұрын
이병도 사학은 식민사관에 기인한다.
@user-yy2wp2si4j
@user-yy2wp2si4j 2 ай бұрын
[중국사료]"백제는 서쪽으로 바다를 건너 월주에 이르고...백제는 동과 서에 왕성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백제가 한강이남 위례성에 터를 잡은 이래로 서해를 장악하여 고조선유민들이 살고 있는 차이나동해안지역을 통치했다는 의미다.그리고 산동지역에도 백제왕성이 있었다는 의미가 된다.
@user-zl5cr6st6j
@user-zl5cr6st6j 2 ай бұрын
그래봤자 백제는 일본과 더 가까운 나라였습니다. 일본인들의 대다수가 백제계 성씨라고 하네요.
@user-by6xz8eg3u
@user-by6xz8eg3u 2 ай бұрын
그거 백가제해라는 말을 후대에 만들어서 견강부회하며 써놓은 겁니다. 기존 백제 건국 설화를 보면 바다를 건넜다는 소리가 없어요.
@MX_Korea
@MX_Korea 2 ай бұрын
@@user-zl5cr6st6j 백제 귀족 성씨 8개가 대부분 산동 반도에 있다는 건 아세요?
@user-vb8jq9iq5t
@user-vb8jq9iq5t 2 ай бұрын
훈민정음 해례본에 중국은 천자국 조선황제가 계신곳이라고 기록? “선서문. 나는 적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야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야 ​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대한민국 14년 4월26일 선서인 윤봉길 한인애국단 앞.” 독립운동가 윤봉길(1908~1932) 의사는 지난 1932년 4월 이 같은 선서문을 손수 적고 백범 김구가 이끄는 한인애국단에 입단했다. ​그 사흘 뒤인 4월29일 윤 의사는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열린 천장절(天長節·일왕 탄생기념일) 겸 전승축하기념식에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일으켜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가와 요시노리 등 일본의 군 수뇌부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현장에서 검거된 윤 의사는 군법재판 단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1월 일본으로 이송돼 그해 12월19일 일본 오사카 이수형무소에서 24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보물 제568호는 윤 의사의 유품들을 포괄하는데 그 중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568-1호 친필 선서문으로 크기는 가로 21.5㎝, 세로 27㎝이다. 한반도를 침략한 적의 장교를 도륙하는게 아니라, 중국을 침략한 적의 장교를 도륙한다고 선서문에 기록? 중공 역사는 1912년 중화민국 부터 시작.. 중국에 한족은 없다 유전자 조사 발표 ㅡ 다음 검색
@user-iz2wc4ci6m
@user-iz2wc4ci6m 2 ай бұрын
옳은 말씀이십니다.
@user-th8sj5ki2o
@user-th8sj5ki2o 2 ай бұрын
한강인근의 풍납,몽촌토성은 건너편 아차산에서 조람이 가능해서 방어가 불리하고 홍수로 한강 범람가능성때문에 도성으로 삼기에는 불리하고, 위 토성들은 남한산부근의 도성의 방위를 위한 것으로 보는게 타당하다. 남한산이 부아악이어야,시각적표현인 북대한수란 말이 적용된다 할것이다.
@theresiap.6428
@theresiap.6428 Ай бұрын
한성백제궁터를 하남에서 찾았는데 아파트 수익에 눈먼 인간들이 불도저로 밀어버렸다네요!!! 우리역사바로알기 오ㅜㄴ제교수 영상에서 찾아보세요
@pijareu7173
@pijareu7173 2 ай бұрын
고서를 앞에선 마스크를 착용했으면 좋았을텐데..
@user-rg5cf2jl5o
@user-rg5cf2jl5o 2 ай бұрын
모든아파트를 철골조화를해야 300년간 안전하게살수가있다 그래야 철광석광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줄수가있다
@user-rs6or5ih2b
@user-rs6or5ih2b Ай бұрын
화려한 금관이 나왔다 해도 옥문화가 발달했다해도 1미터를 넘지않고 같혀있게 만들면 더이상 클수가 없으며 작은것을 크게 키우고 웅장한 모습을 후대들에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으며 집의 기둥이나 건축의 포인트 벽화나 이런 멋진 곳에 충분히 활용할수 있고 누구나 귀한자식 고관대작 가문이 훌륭한 자손이다. 그런 자긍심을 갖게 해야합니다. 중정한 덕을 가지고 천운에 순응하던 민족임을 가르쳐야 알게 됩니다.우리는 군자의 법도를 배운민족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어디를 가도 공명정대한 기운이 있어 사방팔방 통하지 않은곳이 없던 민족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늘 부정하고 안되는 일만 신경쓰고 역사의 싸움을 가르쳐선 안됩니다. 경쟁을 부추기는것이 국민성이 되어온 결과입니다. 화합하는 역사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 융숭한 포상과 학문에 근거함이 어디냐 하는것과 큰 마음을 가르쳐 기상을 갖게하는것을 목적하여야 합니다.
@TheParkjunhwa
@TheParkjunhwa Ай бұрын
예전 정보고 현재는 구체적으로 밝혀졌어요~
@user-tt1qr6bp6o
@user-tt1qr6bp6o Ай бұрын
도읍을 3번이나 옮겼다는것은 국력이 강한것도 있을수 있지만, 그만큼 나라가 안정적이지 못했었다는 반면이 있었을듯하다.
@Gogury
@Gogury Ай бұрын
사비라는 뜻이. 네개의 물길이 만난다는 뜻인데 부여를 사비라고 추정하는데 부여엔강이 하나밖에 없어요 백제 왕성은. 산둥반도. 제남시에 있었을겁니다
@dufwjd
@dufwjd Ай бұрын
조선왕조실록 세종편만 보아도 지금의 웅진 사비 평양은 백제 고구려 수도가 아니라는것을 알수가 있다 세종이 신하에게 이르길 신라의 수도는 있는데 왜 백제와 고구려 도읍지는 없는것인가 찾아보아라 일렀는데 신하가 백제와 고구려의 수도는 알수 없다고 했음
@user-ss2gh6ny9d
@user-ss2gh6ny9d 2 ай бұрын
백운대 (삼각산 부아악)에 오르면 한강은 남녁에 있고 책은 한강이 북쪽에 흐르다고 했으니, 삼각산은 부아악이 아니다.
@llillllii
@llillllii 2 ай бұрын
부아악에서 바라본 도읍지를 기준으로 동서남북을 설명한겁니다. 부아악을 기준으로 방위를 설명한게 아닙니다.
@user-nl8ph8dz2w
@user-nl8ph8dz2w 2 ай бұрын
???: 부와아아악
@user-dx7zt5gw2t
@user-dx7zt5gw2t 2 ай бұрын
어떤 뇌를 가지면 그렇게 듣고 보일까. 신기하다.
@user-wd2ze9bt9p
@user-wd2ze9bt9p Ай бұрын
어디긴 풍납동 성내동쪽이지
@user-id3se6bw1v
@user-id3se6bw1v 13 күн бұрын
kbs가 고인물이네
@user-rh4ex4tm8b
@user-rh4ex4tm8b 2 ай бұрын
초기 백제도 고구려가 위치하던 북경아래 쪽에 있지 않았을까요
@soosoosoo1234
@soosoosoo1234 23 күн бұрын
응 아냐
@johnathanha9340
@johnathanha9340 2 ай бұрын
아직도 후보로 거론된 다른 성들에 대한 연구와 유물 발굴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풍납토성을 근거로 삼기에는 너무 미약합니다.
@user-tp7ph4mb7n
@user-tp7ph4mb7n Ай бұрын
맨날 반도에서 찾는척, 반도를 벗어나질 않음
@user-do4nm6nw8j
@user-do4nm6nw8j 2 ай бұрын
고대의 평양이 현재 중국 요양이고 고대의 한성이 현재 북한 평양임. 조선건국과 함께 우리의 영토는 반도이남으로 축소되었음.
@user-tx2pq8xi2s
@user-tx2pq8xi2s 2 ай бұрын
남평양은 지금의 산동
@user-tt6qd4np4p
@user-tt6qd4np4p Ай бұрын
중국 전체가 고구려의 영토이고 요서지역 모두가 백제땅이었다고 그냥 우기지요. 뭐. 고구려는 이미 장수왕 때 요동을 떠나 평양 안악으로 천도했고 당고종이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킬 때 청천강 이남만 신라에 할양했고 이후 통일신라와 고려초에도 압록강 근방에도 진출하지 못했는데 서희 덕분에 겨우 강동6주인 의주지역을 얻고 조선 세종 때 4군6진책으로 여진족이 차지하고 있던 함경도 지역을 확보한 기록은 실록과 사서에 넘쳐나게 있습니다. 고구려 요동방어선이 북쪽의 신성부터 서쪽 요동반도의 비사성까지 연결된 건 맞습니다만 수도가 집안 국내성에서 평양성으로 남하한 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인걸요.
@user-kl7uy6op4q
@user-kl7uy6op4q Ай бұрын
한성이 500년. 웅진 사비성은 고작 200년이 채 안됨. 한수.또는 황하. 대산. 등이 가까워야하고. 토성이 아닌 석성이 많아야합니다.
@theresiap.6428
@theresiap.6428 Ай бұрын
한성백제궁터를 하남에서 찾았는데 아파트 수익에 눈먼 인간들이 불도저로 밀어버렸다네요!!! 우리역사바로알기 오ㅜㄴ제교수 영상에서 찾아보세요
@super-JEI
@super-JEI Ай бұрын
한성백제에서 한성 한강이 어디인지 알아야 한다. 한강은 황하이다. 백제가 처름 나라를 세운곳이 황하를 건너서 위례성에서 나라를 세웠다. 한성백제는 산동성쪽 황하 아래에서 찾아야 한다.
@user-rs6or5ih2b
@user-rs6or5ih2b Ай бұрын
우리나라는 대표하는 문양이 무엇인가 그것이 태극기에 있는데 여덟가지 자연을 돌리는 힘이며 그것을 넓고 크게 활용할수 있게 하고 대표되는 문양으로 3.1절만 중요시 할께아니라 금장으로 찍어 대표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늘 자신이 천지를 재단을 기운을 타고났음을 알고있어야 그 기운이들어 나라가 부강해 집니다. 기운이 어디서 옵니까? 자질이 뛰어나도 지혜가 뛰어나도 기가 있어야 되는것입니다. 화랑의 정신이깃들었다면 그 화랑정신을 적극활용하여 경마를 할께아니라 말을 기본으로 익히고 크게크게 자손들을 키우고 한강이든 어디든 자연을 만끽하게 하고 고관 대작으로써 땅과집을 크게 쓰게하는 정신이 필요로 하는것입니다. 취할것은 역사를 배우고 적극활용하여 우리의 정신을 이어가게 하여야 합니다. 작은것이 가고 큰것이 오게해야 하는데 점수나따지고 시험만 치는 이제도를 바꾸지 않으면 백년천년 졸장부를 만드는 것입니다. 누가하나 머리를 들고 우리가 민족 정신을 이어나갈수 있게 대폭 시정을 해야 우리가 남부럽지 않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hinova77
@hinova77 25 күн бұрын
고구려에도 한성이 있었다
@user-nz5ie7zj1w
@user-nz5ie7zj1w 2 ай бұрын
엄한데다 백제 한성수도 비정하고 꼴갑들을 해요!
@danieljin2098
@danieljin2098 2 ай бұрын
여긴 새로 만드는 컨텐츠는 없는건가? 역사계에도 20년 넘게 새로 업데이트라는게 있었을건데 줄기차게 2천년대 컨텐츠만 올라오네 우리고 우려서 이젠 뼈도 없을거 같은 사골 국물만 끓이지 말고 새로운 걸 좀 가져와봐라 케백쓰야..
@user-lh8cz6bw4n
@user-lh8cz6bw4n 2 ай бұрын
ㅎㅎ 새로운 주제를 설정 하기가 방송진 에서도 어려워서 못하는 겁니다..
@health-korea
@health-korea 2 ай бұрын
역사라는 분야가 참 ㅜ ㅜ
@user-ls7tz2ei6q
@user-ls7tz2ei6q 2 ай бұрын
중국자본땜에 눈치보여서 못만듬
@user-by6xz8eg3u
@user-by6xz8eg3u 2 ай бұрын
아카이빙이니까요. 그날이 방송하고 있는데 같은 분야의 새로운 걸 만든다니, 그게 얼마나 말이 안 되는 일인지 알고 계시지 않나요? 재원이 한정적이라 스스로는 만들기 어렵고, 외주를 맡기면 불안한 부분이 생기니 관리가 힘들죠. 그래서 일단 화질 수정을 해서 아카이빙으로 떼우는 겁니다.
@user-vb8jq9iq5t
@user-vb8jq9iq5t 2 ай бұрын
훈민정음 해례본에 중국은 천자국 조선황제가 계신곳이라고 기록? “선서문. 나는 적성으로써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회복하기 위하야 한인애국단의 일원이 되야 ​ 중국을 침략하는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하나이다. 대한민국 14년 4월26일 선서인 윤봉길 한인애국단 앞.” 독립운동가 윤봉길(1908~1932) 의사는 지난 1932년 4월 이 같은 선서문을 손수 적고 백범 김구가 이끄는 한인애국단에 입단했다. ​그 사흘 뒤인 4월29일 윤 의사는 상하이 훙커우공원에서 열린 천장절(天長節·일왕 탄생기념일) 겸 전승축하기념식에 폭탄을 투척하는 의거를 일으켜 일본군 총사령관 시라가와 요시노리 등 일본의 군 수뇌부를 제거하는 데 성공했다. 현장에서 검거된 윤 의사는 군법재판 단심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1월 일본으로 이송돼 그해 12월19일 일본 오사카 이수형무소에서 24세의 나이로 순국했다. 보물 제568호는 윤 의사의 유품들을 포괄하는데 그 중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568-1호 친필 선서문으로 크기는 가로 21.5㎝, 세로 27㎝이다. 한반도를 침략한 적의 장교를 도륙하는게 아니라, 중국을 침략한 적의 장교를 도륙한다고 선서문에 기록? 중공 역사는 1912년 중화민국 부터 시작.. 중국에 한족은 없다 유전자 조사 발표 ㅡ 다음 검색
@user-dl7ur9yl4z
@user-dl7ur9yl4z 2 ай бұрын
국력이 강하면 역사왜곡 한다.중국 땅이 우리나라 땅이다!
@user-dd6cm1ns9i
@user-dd6cm1ns9i Ай бұрын
백제 초기 수도가 서울이라는 걸 모르는거면 얼마나 댕청한거냐?
@user-ws9wq3pk4s
@user-ws9wq3pk4s 2 ай бұрын
백제의 왕성은 중국대륙에 있다
@user-jr8xm3ri9f
@user-jr8xm3ri9f 2 ай бұрын
북한산 어릴때 삼각산. 부모님들이 그리불럿고.
@user-cv8zi3ow3y
@user-cv8zi3ow3y 11 күн бұрын
프로그램이 완전 판타지 네요 딱봐도 한성백제는 지금 서울이 아닌데 공공프로그램이 1시간동안 날조로 역사를 도배합니까
@MrTaffybon
@MrTaffybon 2 ай бұрын
찬란한 문화를 접한 신라가 통일후 백제 지우기를 실현한것. 관련 서적 문물은 모두 폐기함.
@ongochian
@ongochian 2 ай бұрын
이성계는 고려의 역사 서적을 다 불태움
@thoven800
@thoven800 Ай бұрын
이때에도 신라인 지금의 경상도것들은 야비하고 오만했군요~~ 백제하고 한강이남 이북을 나눠 갖기로 하고 고구려와 싸워 이겼는데 신라 진흥왕이 약속을 어기고 지가 다해먹음~~
@stickyricecake8967
@stickyricecake8967 2 ай бұрын
울나라 대법원 판례에 서울은 관습법상 서울이라 이전 불가라 했는데.......얼마나 역사를 몰랐으면 그런 어처구니 없는 판례를 남겼을까싶다.....대륙 삼국과 통일신라 고려까지 수도가 중국본토에 있었단걸 꿈에도 생각 못한거지.....우리 관습법상 서울은 중국본토 어디인거지 ㅋㅋ
@theresiap.6428
@theresiap.6428 Ай бұрын
한성백제 궁터를 하남에서 찾았는데 아파트 수익에 눈먼 인간들이 불도저로 밀어버렸다네요!!! 우리역사바로알기 오순제 교수 영상에서 찾아보세요 중국의 동해안과 일본에는 담로 경영
@user-rf3gm5ky6y
@user-rf3gm5ky6y 2 ай бұрын
보세요,,,고려랑 조선을 뭘로 보는지 모르지만 일천년을 그냥 모르고 지낸다는게 말이 되나요??? 그전에 통일신라가 저리 냅둔다???? 적당히 하세요,,,,
@user-ny6ie9xp6m
@user-ny6ie9xp6m 2 ай бұрын
풍납토성에는 토성의 길이와 맞먹는 해자가 있었다. 그런데 토성은 발굴 조사를 하면서도 해자는 발굴 조사를 하지 않는다. 해자 바닥을 파보면 빼박 유물들이 나올 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왕궁터라면 왕궁이 있던 자리가 나와야 하는데 아직도 왕궁의 주춧돌 하나 찾지 못하고 있다.
@user-by6xz8eg3u
@user-by6xz8eg3u 2 ай бұрын
​@@Silla_Gates55.5정작 한국 사료에 남은 백제 건국 설화는 백가제해 장면이 없습니다. 비류가 나오든 말든 그렇습니다. 저 백가제해라는 근거도 없는 말이 나오면서부터 중원에서 건너왔다는 헛소리까지 나오게 되었으니 해악이 이루 말할 수 없지요. 애초에 고구려 중심지가 지금의 둥베이산청 지역인데, 산넘어 내려오기만 해도 닿을 수 있는 곳을 굳이 건조 기간도 오래 걸리고 재물의 소비도 많은 선박을 만들어 내려온다고요? 그 급박한 정치적 상황에서요? 구라는 적당히 칩시다. 북은 물이 땅을 두르듯 하고, 서쪽은 바다이며, 남쪽은 드넓은 벌판이고, 동쪽은 산으로 막혀 있다. 풍납토성이 대체로 맞겠죠. 구라를 치자면, 고구려 한성이 있었던 황해도 재령강 하류 일대(대동강 하류와 서해의 만이 지금보다 더 남쪽인 재령평야 북부까지 들어왔습니다)에 자리 잡은 海頭國이 곧 옥저로서의 백제의 시작이지만, 서울계 1호인 東夫餘가 망할 때 빠져나온 일파에 의해 공격을 받고 동쪽 권역의 영향력을 잃으며 금방 힘이 약해지고, 부여 연맹의 본조인 고구려와의 마찰까지 일어나 누란의 위기가 닥쳐오자 지금의 풍납토성 자리로 내려온 것이라고 해야지요. 더불어 저 시기의 역사까지를 묻어버리기 위해서 비류라는 인물을 만든 것이죠. 漢水라는 건 수도 주변을 흐르고 있는 큰 가람에 붙는 보통 명사로 보고요. 온조는 국가로서의 옥저이고 그것의 다른 훈차 표기가 百濟였다고 구라를 쳐야 그럴듯합니다. 즉, 지금의 서울백제가 가마구룬(河南慰禮城, 곧 固麻城=漢城)에서 옮겼다는 한성인 것입니다. 이렇게 구라를 만들어야 한 번쯤 혹할 기회라도 있지요.
@isjoo6501
@isjoo6501 Ай бұрын
주춧돌이 없이 기둥을 땅에 박았다는 것은 상습침수 지역이였다는 것이고 한강을 북으로 강변에 위치 한다는건 한겨울 북풍과 강바람을 바로 받는다는 이야기죠 한나라의 수도를 우기철에는 물에 침수되고 겨울엔 바람에 노출되는 만들까요 더구나 습지대라 봄부터 각종 해충이 가을까지 기승을 부리죠 풍납토성은 항구적 성격이 강하다 보아야죠 해군 무역 상업 조운 창고 수공업의 중심지가 아닌지 생각됩니다
@user-by6xz8eg3u
@user-by6xz8eg3u Ай бұрын
@@isjoo6501 현재 만주-한반도 일원의 청동기에서 초기 철기로 넘어오는 시기의 건물터 유지에서 주초 쪽은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완숙한 철기 문명이 되는 3세기 전후 시기부터 서서히 궁궐 같은 대형 건물터에 주춧돌이 보이고 성곽도 석축이 보고되기 시작하죠. 그 전까지는 주류가 수혈식 주거라 그런지 주춧돌이 나온 사례를 찾기 어렵고, 성곽 조차 판축 기법을 이용한 토성이 일반적이었습니다(겉을 돌로 감싸는 것도 2세기 말은 가야 보일랑 말랑 할 거고요). 다만, 기와를 얹었다는 해석을 한성백제 박물관에서 한 모양인데, 높지 않은 1층 짜리 굴립주 건물이 견딜 수 있는 무게가 아니라는 부분을 감안하더라도 궁성일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은 편입니다. 한국사 고대 국가 대부분이 건국 초기엔 이 나라 저 나라 할 것 없이 초옥을 짓고 보는 일이 잦게 나타나므로, 기와의 도입 시기를 늦춘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죠. 저도 한 때는 이진희 교수 측 주장에 귀를 기울였지만, 초기 철기 전반기의 건국 신화에서 임시로 초옥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발견된다는 점을 감안해서, 물증이 나오기 전까지는 신뢰도가 낮은 말로 간주하려 합니다.
@sungyongbae4173
@sungyongbae4173 2 ай бұрын
위례 웅진 사비 왕성이 한곳이라도 남아있나? 있지도 않은 한반도에서 찾으니 있을턱이 있나. 핵전쟁이 있었던것도 아니고.우리나라 역사학자들 쪽팔린지 알어라
@user-rg5cf2jl5o
@user-rg5cf2jl5o 2 ай бұрын
6륜차량의 국고보조금화로 일반국민들이 백만대이상보유해야 전쟁시에 징집해서 미사일이나로켓포를 바로장착해서 사용할수가있다 그래야 진짜국토방위하는것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2 ай бұрын
~~~ 공민왕 중반기 까지의 대동강 大河가 흘러서 同에서 모였다가 다시 흐름. (6600리 ) ~~~ 공민왕 후반기 '우왕대의 大同江 大江이 흘러서 洞에서 모였다가 다시 흐름. (5500리 )..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2 ай бұрын
@@MX_Korea 좋은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1388년 이후의 지도와 자료들은 북경과 산동, 남경 부근으로 이동된 자료들을 확인하는 과정입니다. 그것을 책보고님과 많은 분들이 확인하는 과정이니 많은 시간이 필요할 뿐입니다. 아직까지는 이동된 것을 보고 있는것이니 침착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soosoosoo1234
@soosoosoo1234 23 күн бұрын
​@@user-le6mj3se3tㅋㅋㅋㅋㅋㅋㄱ 중국자료는 못믿는다고하더니 정작 중국자료보고 대륙삼국설 주장하는 도라이들??
@user-hq7gu1fv9w
@user-hq7gu1fv9w 12 сағат бұрын
백제의 국토는 신라와 말갈에 편입되었다는 태평환우기의 기록이 만주원류고에 나온다.한반도 백제의 일부를 말갈이 언제 차지했는가? 중국에 있어야 가능히다.
@eugenehwang808
@eugenehwang808 2 ай бұрын
백제의 한성과 조선의 한성은 다르지... 백제는 송파 쪽이고, 조선은 종로 쪽이었으니... 근데 지금은 둘 다 서울 땅이 되어버렸지만... 확실히 20년전 방송이어서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서울을 백제의 수도였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네 지금도 물론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지만... 부디 서울 사람들은 자부심을 가집시다... 서울은 2000년 전부터 백제의 수도였던 유구한 역사를 지닌 도시라는 사실을...
@Seoul_Korea_
@Seoul_Korea_ 2 ай бұрын
그렇네요. 지금의 123층 롯데타워가 우뚝 선 잠실 근방이 백제의 수도였네요.
@user-yf3xv3gc4e
@user-yf3xv3gc4e 2 ай бұрын
​@@Seoul_Korea_거긴 땅이 없었음요. 개간한 것임. 그나마 있던건 누에꼬치밭이었음. 그래서 잠실이지.
@hansranda3205
@hansranda3205 2 ай бұрын
다 틀렸음 본토 백제땅은 중국에 있었다
@iiillii625
@iiillii625 Ай бұрын
자부심이 생기네요
@dufwjd
@dufwjd Ай бұрын
그건 개소리구요 ㅋㅋㅋ 조선왕조실록에서 세종편을 보면 세종이 신하에게 백제와 고구리 수도를 찾아보라고했는데 신하들이 못찾았다고 알수 없다고 기록이 남겨져있음 한마디로 백제 고구려 수도는 한반도에 없음요 지금 백제 고구려 수도는 일제시대때 조선사편수회가 만든 허구임 쓰다소키치 외 일본 사학자와 일제 똘마니 매국노 이병도의 제자들이 만든것임
@KoreaFirst
@KoreaFirst 2 ай бұрын
신라에게 당한 국가말고 신라의 정복사에 대해서 자세히 중점으로 다뤄야할듯 합니다.
@user-cv8zi3ow3y
@user-cv8zi3ow3y 12 күн бұрын
반신라주의가 이미 한국에 너무 퍼져서 심각합니다 80년대부터 시작된 반신라 선동 ㅉㅉㅉ
@user-xt2wr7ox9p
@user-xt2wr7ox9p Ай бұрын
땅만파면 옛유물이나오는나라..
@user-xb4hq9wf9q
@user-xb4hq9wf9q 26 күн бұрын
백제위례성은 한강30리남쪽에위치하며운중동운중산에있고 운중산높이는일천척이요 운중산에는 뽕나무가많고팽ㅆ집성촌이있다이곳이온조의위례산성이다/(무명고서에서발췌)
@user-cv8zi3ow3y
@user-cv8zi3ow3y 9 күн бұрын
@user-cv8zi3ow3y 0초 전 평양이 낙랑이고 서울이 백제 한성이 아니고 시간이나 사건 장소를 전부 맞게 재배치하면 낙랑이 멸망한뒤 거기에 고구려 평양이 수도가 된다면 백제한성(서울)과 거리가 너무 가깝다 이건 불가능한 시나리오 이고.... 나의 추측으로는 낙랑의 위치는 중국 요동이고 현 평양이 백제의 수도 한성이라고 본다 475년 백제 한성(평양)이 함락되고 백제는 망했다고 본다 백제 한성(평양)을 고구려가 차지하고 백제는 남쪽으로 웅진사비까지 내려온것이다.. 현재 평양에서 한성 글자가 적힌 돌이 발견되었다 평양에는 중국식 유물이나 묘제가 많다 백제의 유물이라 본다
@ll-tg7xz
@ll-tg7xz 2 ай бұрын
백제 역사의 대부분은 서울인데...;;; 참 안타깝죠.
@user-zl5cr6st6j
@user-zl5cr6st6j 2 ай бұрын
​@@Silla_Gates55.5중국사는 아닌것 같네요 신라가 삼국통일했다는 천년을 이어온 역사적 주장이 가짜일까요?투르크계 신라와 몽골계 백제 고구려는 혼인을 통해 서로 혈연 관계일수 있어요 신라의 초기 왕호인 거서간 마립간 이런 용어들이 고대 몽골어입니다 조선상고사 번역하신 박기봉 교수님 책에 있어요. 우리 한씨 족보에 마한이 신라 고구려 연합군에 멸망하고 마지막 왕자 세명이 신라 한씨 백제 기씨 고구려 선우씨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어요. 😊
@osmir5997
@osmir5997 2 ай бұрын
@@Silla_Gates55.5 맞춤법 봐라...ㅋㅋ 한국인 아닌 게 티 많이 난다.
@yoonsehyeon
@yoonsehyeon 2 ай бұрын
유물만봐도 송파구랑 강동구 여기가 백제 수도임
@user-ss2gh6ny9d
@user-ss2gh6ny9d 2 ай бұрын
남한산성에 오르면 한강은 북쪽에 흐르고 책은 한강이 북쪽에 흐르다고 했으니, 남한산성산은 부아악이다.
@etymologist1976
@etymologist1976 2 ай бұрын
대한제국 백제지역은 인도계열지역 조선은 아메리카에 있었던 대한제국의 조선총독부로 아메리카를 관활하였고 실라지역은 슬라브 지역으로 유럽을 의미합니다. 만주는 지금의 중동지역이며 터기주변까지 확대됩니다 중앙아시아 아랄해 아므르강이 암르캉 압록강입니다.
@user-cv8zi3ow3y
@user-cv8zi3ow3y 11 күн бұрын
백제 한성은 지금 황해도 개성이나 북한 평양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아니면 황해도 인근이나 평안도 부근 입니다 유물이 많아요 ..서울을 한성백제에 갇다 억지로 매칭할려고 하는데 코메디 찍습니까?? 유물이 전혀 없고 규모도 안되고 1시간 내내 코메디 찍습니까
@sirwonjin9616
@sirwonjin9616 2 ай бұрын
백제는 중국대륙 동쪽에만 있었다. 의자왕과 흑치상지가 상여를 할때 부르는 북망산에 묻혀있다. 북망산이 백제땅이었다. 백제 왕들 무덤이 어디에 있는가? 중국에 있다.
@user-qo2ls5wt1z
@user-qo2ls5wt1z 2 ай бұрын
의자왕 부여융 등은 백제 멸망해서 당나라로 압송당해서 거기서 묻힌거자나요... 그럼 공주에 무령왕릉은 어쩌실꺼?
@sirwonjin9616
@sirwonjin9616 2 ай бұрын
@@user-qo2ls5wt1z 당나라로 압송당한적 없소. 의자왕은 항복했기에 자신이 살던 땅에서 살다 죽었소. 그리고 백제왕릉에서 무령왕릉만 한국에 있는데 그게 동해(황해)를 건너 한국에 온 까닭은 온라인에서 알아보소(많은 사람이 설명했음)
@dufwjd
@dufwjd Ай бұрын
@@user-qo2ls5wt1z 공주에 있는 릉이 무령왕릉이라는 증거는? 비정 추정한거지 확실한게 아님 세상천지 왕릉인데 누구의 무덤이다 비석 세워서 주인을 알려 업적을 기리는것이 없음 한국에만 이런릉이 있고 추정하고 비정해서 백제왕릉이다 이러고 있음 조선왕릉 빼고 널려있음 전부다 추정 비정임
@user-qo2ls5wt1z
@user-qo2ls5wt1z Ай бұрын
@@sirwonjin9616 삼국사기에도 중국사서에도 기록이 있고, 중국에서 부여융과 손녀들 무덤도 확인되었는데 여기서 살다죽었다하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user-qo2ls5wt1z
@user-qo2ls5wt1z Ай бұрын
@@dufwjd 무령왕릉 존재도 모르다가 배수로 공사하다 우연히 발굴되었습니다. 덕분에 도굴이 안되어 있었고, 발굴된 무덤안에서 당시 무덤 조성과 관련된 묘지석이 나왔죠. 누구에게 땅을 샀고 얼마간 장례를 해서 백제 사마왕이 여기 뭍혔다 적혀있습니다. 멀지도 않아요 박정희대통령 당시 발굴되었습니다
@user-lv1hy8kk3r
@user-lv1hy8kk3r 2 ай бұрын
맨 처음 인터뷰. 한동훈 아냐?
@user-vn6bc4ct8h
@user-vn6bc4ct8h Ай бұрын
유인촌나와 안본다..
@user-pu2li3jz6t
@user-pu2li3jz6t 2 ай бұрын
백제 초기 수도는 한강 이남이지. 그 당시는 고구려를 적국으로 여겼으니까. 고려나 조선은 한강 이북에 성을 쌓았지. 남쪽 세력을 더 의식했으니까.
@user-wj2wh3je3k
@user-wj2wh3je3k 2 ай бұрын
참 웃기는 얘기죠. 3국사기 초기의 3국 건국이 서력 기원전후인데, 우리가 그 때에 국가를 세우지 못했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겁니까? 이집트 로마 메소포타미아 등은 그 보다 몇쳔년전에 국가를 이루었는데, 우린 미개인 병신같은 족속였다는 소린가요? 참 말도 안되죠. 우리는 그 때 왕검조선과 대부여 북부여를 거쳐서 3국시대에 있었던 것입니다.
@ongochian
@ongochian 2 ай бұрын
한반도는 당시 국가개념이 없었음
@user-xt2wr7ox9p
@user-xt2wr7ox9p Ай бұрын
저런곳은 다시복구해서 역사성을 알려야하는데 그냥나둔것으루보면.이해가안간다 경상도인이 대통령해서그런가 박정희때부터 백제문화제는안보인다..
@user-lk9dg4iy6u
@user-lk9dg4iy6u 2 ай бұрын
나으 수면제
@user-wt7oe8zh1e
@user-wt7oe8zh1e 2 ай бұрын
백제는 송파지역 한성백제와 인천지역 비류백제가 연합하여 웅진(공주)로 남진한게 백제 다.
@user-by9mj6dt7n
@user-by9mj6dt7n 22 күн бұрын
비류백제 일본으로 감.
@user-be7ky5mj2c
@user-be7ky5mj2c 2 ай бұрын
이야기도 웃기네... 우리역사서는 믿지못하고 중국의 뻥이 잔뜩인 삼국지는 믿는거야??? 개 같은 사대인건지....
@user-rg5cf2jl5o
@user-rg5cf2jl5o 2 ай бұрын
국방비를 이웃강대국수준으로해야 침략안당한다 안보는모든것보다 소중하다 중국수준의국방비만이 중국의침략을 원천봉쇄시킨다 그래야 모든국민들이 안전하게살수가있다
@TheTruthComesOut.
@TheTruthComesOut. 2 ай бұрын
우리 역사는 대륙에도 있다!!! 신라,백제,고구리도!!! 역사학자들은 식민사학 자료를 좀 버리고 새롭게 좀 공부해라!!
@user-on4if3hb9i
@user-on4if3hb9i 13 күн бұрын
풍납토성은 백제의 왕터가 아니다 일부다
@TheLanfu
@TheLanfu 2 ай бұрын
다른건 모르겠고 서울이나 어딘가 땅속깊은곳에 1500년전 백제의 역사가 음각된 석판들이 다량 발견되었으면 좋겠음. 광개토대왕릉비처럼 그때당시 백제의 비밀을 밝혀줄 당대사료가 나온다면 아마 대한민국 전역이 발칵 뒤집힐만큼 역사적인 사건이 될것. 1500년전 백제의 고대사의 비밀이 하루빨리 밝혀졌으면 좋겠음.
@deathcides
@deathcides 2 ай бұрын
아파트 짓다가 나왔는데 쉬쉬하면 묻었을 수도 있음
@michaelkim6097
@michaelkim6097 2 ай бұрын
충청도에 있는 위례산이란 곳이 있는데 고려시대에 백제의 수도로 알려진 곳이라네요. 최소한 초기 백제와 밀접환 연관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user-rh1gv8ib1w
@user-rh1gv8ib1w 2 ай бұрын
직산의 옛이름이 고려초기까지도 위례성이었죠 직산에도 왕궁터가 있지요
@mochacream57
@mochacream57 2 ай бұрын
@@user-rh1gv8ib1w 직산이 천안 일부인데 그건 마한의 종주국이던 목지국이 천안에 있어서 그럴걸요. 어차피 백제가 마한 복속한게 개국 수백년 후라서
@user-ls7tz2ei6q
@user-ls7tz2ei6q 2 ай бұрын
대륙백제에서 넘어와서 후기백제만 전라도에 간간히 출토됨 초기백제유적은 없다시피 하는 이유가 대륙이였음
@user-ky4tj8xf5q
@user-ky4tj8xf5q 25 күн бұрын
자 타칭 사학자란 사람들도 그렇고... 개비스는 코메디 앵무새 . . . 현실은 두손 다소곳이 셰 셰 . . .
@user-rg5cf2jl5o
@user-rg5cf2jl5o 2 ай бұрын
궁동이 왕궁터가있는곳일수도,,,
@user-ur8vz9cf1x
@user-ur8vz9cf1x 2 ай бұрын
백제는 한강이 아니다 유리땅에 있는강이 아니다 일본도 아니고 바다건너 있는것이다 부아악이 이땅이냐 한심한 사람들
@user-dt8hr4cb1l
@user-dt8hr4cb1l Ай бұрын
유인촌은 이때 이렇게 잘해놓고 왜 나이 먹고 추해졌냐
@jesusforan
@jesusforan 2 ай бұрын
역사를 한반도 안에서만 찾고 논하는 것은 일제의 식민사관의 잔재입니다.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은 수많은 제후국들을 거느린 황제국으로 광대한 강역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user-hb9fr5em6t
@user-hb9fr5em6t 2 ай бұрын
네 다음 환빠
@user-zl5cr6st6j
@user-zl5cr6st6j 2 ай бұрын
이왕이면 신라를 맨 처음에 써주세요 고구려를 먼저 쓰는것도 식민사관입니다 신라 고구려 백제.
@user-sj5wc3uq5y
@user-sj5wc3uq5y 2 ай бұрын
@@user-hb9fr5em6t 너같은게 진정한 식민사관에 처박힌 애지
@user-tx2pq8xi2s
@user-tx2pq8xi2s 2 ай бұрын
훠훠훠 중국대륙에 있는게 백제인데 뭔 개소리냐
@user-rg5cf2jl5o
@user-rg5cf2jl5o 2 ай бұрын
한선거구에10명선출하는대선거구제화로 다양한일꾼을 지역감정없는세상 진짜풀뿌리민주주의세상 공천비리철수 정치꼭두각시졸업 정치독제당도졸업 정치꼭두각시도졸업 돈봉투선거도 졸업하는세상 정치출발점이 공평한세상
@user-rg5cf2jl5o
@user-rg5cf2jl5o 2 ай бұрын
1세부터24세까지군대가는대한민국이되어야 자식을 많이낳아도돈한푼도안들어가는 살기좋은대한민국대한민국 모든국민들이 무료로대학교를 졸업하는세상 사회출발점이 공평한세상 진짜 여성해방시대 미성년자사고없는세상 대한민국 그래야 경제가춤을춘다 소상공인들의살길 홍익인간세상 효도정권이된다 시속30키로길도 확줄어들어서 국민들의 시간을 돌려주는것 학생들이라도 지방으로이주시켜야 핵전쟁시의 국민몰살에서 살아남을수가있다
@user-wg4tg2df3f
@user-wg4tg2df3f 2 ай бұрын
유인촌이 장관되니 이걸 내보내나? 유인촌 땜에 보기 싫네…
@thoven800
@thoven800 Ай бұрын
유인촌 완전비호감 꼴도보기 싫다~~
@jkim949
@jkim949 2 ай бұрын
서울은 백제 수도 아님...인천쪽이지...고구려에게 쳐 맞고 밑으로 내려온거...
@user-kp6pw5iw1h
@user-kp6pw5iw1h 2 ай бұрын
장관님 진행도 잘하셨네 훗
@user-rg5cf2jl5o
@user-rg5cf2jl5o 2 ай бұрын
국회의원이나 시의원들이나 대통령이나 임기를 이년화를해야하고 한번은 남자만뽑고 이년후에는 여자만뽑는선거화를해야 남녀차별없는 대한민국이되어야 공평한세상 진짜 차별없는세상 공정한세상 홍익인간세상
@user-zl5cr6st6j
@user-zl5cr6st6j 2 ай бұрын
흑치상지 귀실복신 사마상여 부여사마 이게 한국인 이름이에요? KBS 댓글 지우지 말고 각성하세요. 무령왕도 일본 큐슈 사마현 출생이고 전라도 지역의 백제시대 지명에도 현이 들어가고 신라의 삼국통일후 현재의 지명으로 바뀐거에요.
@user-by6xz8eg3u
@user-by6xz8eg3u 2 ай бұрын
백제는 열도다, 그 말씀입니까? 현은 18세기 중엽 메이지 유신 이후에 폐번치현으로 본격적으로 나옵니다. 전근대 일본의 행정구역 단위로 주로 등장하는 건 國ㆍ郡ㆍ町ㆍ村 따위죠. 그리고 복성 말인데요. 사마씨 연원이 중원 춘추시대에 관직명으로부터 기원하는 건 알고 계신가요? 그리고 기자동래설에서 근거를 찾고 있는 성씨이긴 하지만, 奇씨나 韓씨와 같은 대상을 시조로 삼고 있는 鮮于씨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본디 중원의 왕실 종친을 이르던 말에서 나온 南宮씨는요? 많은 복성들이 한 글자로 줄이거나 멸족 당하는 등 사라져서 그렇지, 한국에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어요. 그걸 부정해선 안 되지요. 더욱이 부여씨족은 일본에 건너가서는 쿠다라노키시우지百濟王氏였는데 어떻게 열도에서 기원한 성씨이겠습니까. 기본적으로 성씨 제도의 수입이 빨라도 삼국 말기라는 이야기가 있긴 하지만, 앞당겨서 생각해본다 하더라도 엄연히 한민족 고유 성씨입니다. 중원에서조차 夫=扶가 앞에 오는 건 미사여구로 봐서 성에서 잘라내버리고 기록하는데, 백제 왕실의 씨가 부여씨라고 하는 데가 여기 말고 어디에 있죠? 혼재되어 씨가 우세해진 다음에 받아들였다곤 하지만, 기본적으로 氏는 태생이 정착한 땅의 지명에 기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씨족명을 함부로 타국 출신이라고 넘겨 짚는 건 삼가기를 부탁드립니다.
@maple4801
@maple4801 Ай бұрын
그럼 을지문덕은 한국 이름인가? 삼국시대 때는 한국식 성이 있었으나 이것이 통일신라와 고려를 거치면서 중국식 성으로 바뀌어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MX_Korea
@MX_Korea Ай бұрын
@@maple4801 '중국식 성'?은 어디서 나오는 근거인가? 현 중국에 있다고 해서 중국식 성이 되는 건가? 백제 귀족 성씨가 산동 반도에 다 있는데 백제 귀족 성씨도 '중국식 성'씨가 되나?
@maple4801
@maple4801 Ай бұрын
@@MX_Korea 지금 쓰는 김씨 이씨 이거 다 중국식 성이라고요 이 양반아. 백제에서 쓰던 부여씨 복실씨 이건 한국식 성이고
@MX_Korea
@MX_Korea Ай бұрын
@@maple4801 그니까 중국식 성이라는 근거가 어디서 나오냐고? ㅋㅋ 근거 다 가져와봐 한족이 역사왜곡 한 거 말고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2 ай бұрын
chin_na = 秦na = chinna.秦(진) ~ n 이 하나더 있음. chi_na = 濟na = china. 濟 (제) ~ 660년간 오수전을 발행하고 관리한 주체가 순수한 의미의 동양의 주인.
@soosoosoo1234
@soosoosoo1234 2 ай бұрын
ㅋㅋㅋ 영어??? ㅋㅋ그시대 명칭을 영어로??ㄲㅋㅋ
@user-lo3nm9xr1p
@user-lo3nm9xr1p 2 ай бұрын
시진핑핑이 마오쩌뚱땡이 😢😢😢 천안문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요? 😢😢😢
@jesusforan
@jesusforan 2 ай бұрын
China는 신라를 의미합니다. 신라는 나(Na), 백제는 제(Je) 입니다. 사서속의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니라 바로 조선의 수도를 의미합니다.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2 ай бұрын
@@jesusforan 개인적인 의견으로 보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과거의 지도에서 영문표기를 기준으로 하였고 유럽과 동양에서 그렇게 표기한데에는 이유가 이었을 것임으로 올린글에 불과했습니다. 많은 이해를 바랍니다. 그리고, 과거의 영문표기는 je가 아니고 chi입니다. 또한, na는 나라를 의미합니다.
@TheTruthComesOut.
@TheTruthComesOut. 2 ай бұрын
ㄴ 위에 놈 딱 조선족 발언일세
KBS 역사스페셜 - 후백제 대왕 견훤, 왜 몰락했는가
57:32
KBS역사저널 그날
Рет қаралды 1,1 МЛН
Cute Barbie gadgets 🩷💛
01:00
TheSoul Music Family
Рет қаралды 67 МЛН
Super sport🤯
00:15
Lexa_Merin
Рет қаралды 19 МЛН
Did you find it?! 🤔✨✍️ #funnyart
00:11
Artistomg
Рет қаралды 119 МЛН
Follow @karina-kola please 🙏🥺
00:21
Andrey Grechka
Рет қаралды 25 МЛН
고려와 원의 국제결혼, 세기의 사랑을 만들다 (KBS_2001/2008.방송)
1:46:43
Cute Barbie gadgets 🩷💛
01:00
TheSoul Music Family
Рет қаралды 67 МЛ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