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누르다 보니 법상스님 을 법상쉼 이라하시는데 어떤 다른 뜻이 있는지 궁금해져서 댓글 써봅니다^^
@BeautifulToday_OlnyThisMoment2 жыл бұрын
@@털뭉치-n4v 학생들이 선생님을 '쌤'이라고 불러서 요즈음은 선생님들 본인들도 학부모님들도 다들 선생님을 쌤이라고 부르잖아요. 스님께서 군대에 군승으로 계실때 젊은 군인들이 '스님'이라는 단어를 '쌤''처럼 줄여서 '쉼'이라고 불렀다고 스님께서 말씀하셔서 그렇게 쓰신겁니다.^^ '스님'이라는 단어를 빠르게 계속 발음하면 '쉼'으로 발음됩니다. 참 잘 지었다 생각되요. 글자 그대로 스님께서는 우리들의 마음에 쉼을 주시니까요.
@털뭉치-n4v2 жыл бұрын
네 그랬군요 ^^
@수현-p7v2 жыл бұрын
스님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최영상-e9k2 жыл бұрын
설법 고맙고 감사합니다.
@청정-b6y2 жыл бұрын
🙏🙏🙏
@박영신-i8l2 жыл бұрын
그냥 이대로 살아갈뿐입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Songjuk1252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스님 __((()))__
@평온-q7i2 жыл бұрын
법상스님 오늘도 깨우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말숙-q7w2 жыл бұрын
스님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
@zen63552 жыл бұрын
스님 감로법문을 새기며 날마다 정진하고있습니다.
@TinhHoaPhatPhapVietNam2 жыл бұрын
Nam Mô A Di Đà Phật 🙏🌷 Nam Mô A Di Đà Phật 🙏 Nam Mô A Di Đà Phật 🙏
🙏법상스님 감사합니다 🙏🙏🙏2 🈳육조혜능대사/본래무일물 🌈일체만법이 제 성품을 떠나지 않음을 알고~~ *어찌 제성품이 본래 청정함을 알았으니까. *어찌 제성품이 본래 나고 죽지 않음을 알았으니까. *어찌 제성품이 본래 구족함을 알았으니까. *어찌 제성품이 본래 흔들림 없음을 알았으니까. *어찌 제성품이 본래 능히 만법을 냄을 알았으니까.
@한창헌-u8o Жыл бұрын
말씀중에 광고가 너무 많아요~ 광고 좀 없는 설법 안될까요~
@BeautifulToday_OlnyThisMoment2 жыл бұрын
넵! 스님! 지금 잘 나갑니다.! 스님과 함께 하는 지금이 제일 잘 나갑니다. 잘 나갔던 때라고 스스로 생각하면 그것은 자신의 분별일뿐 못 나갔던 때라고 스스로 생각하면 그것도 자신의 분별일뿐 자세히 알지 못하면서 다른 이의 겉모습만을 보고 어떤 때가 그가 잘 나갔던 때라는 말한다면 그것은 말하는 이의 분별에서 말하는 분별일뿐 어떤 때가 그가 못 나갔던 때라고 말한다면 그것도 역시 말하는 이의 분별에서 말하는 그저 분별일뿐 잘 나갔던 그때가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것도 분별일뿐 지금이 잘 나가는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도 분별일뿐 잘 나가는 때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지금이 잘 나가는 때일 수도 있는 것. 잘 나가는 때와 못 나가는 때를 따로 구분하는 것은 분별일뿐 분별없이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살뿐. 🌲 살아온 내 나이의 세월만큼 켭켭이 쌓이고 쌓이고 또 쌓여있던 분별심들. 스님의 법비로 분별들이 하나씩, 하나씩 녹아내리고 분별이 끊어진 자리, 생각이 끊어진 곳에서 이 자리를 확인했고 그리고 이렇게 빨리 한 바퀴를 돌아 마음까지 쉬어져 이제는 작은 바람에는 물결이 일어나지 않음을, 조금 큰바람에는 금새 잔잔해지는 물결들을 봅니다. 스님의 말씀대로 공적영지하고 성성적적한 그 자리를 한 물건이라고 부르든, 본래심이라고 부르든, 무아라고 부르든, 참나라고 부르든, 진여라고 부르든 그 어떤 말로 불러도 그 어떤 이름을 붙여도 그 모든 이름들은 그저 이 자리를 언어로써 표현하기 위해 분별에서 이름지어진 것일 뿐 그 어떤 이름으로도 정확한 표현이 될 수 없음을 이제는 압니다. '손'이라고 부르는 손을 손등과 손바닥으로 나누어 어느 한 쪽만을 손이라고 말할 수 없듯이, '동전'이라고 부르는 동전을 동전의 앞면과 동전의 뒷면으로 나누어 어느 한 쪽만을 동전이라고 말할 수 없듯이, '접시'라고 부르는 접시의 앞면과 뒷면을 나누어 어느 한쪽만을 접시라고 말할 수 없듯이 부처와 중생을 따로 나누어 어느 한 쪽만을 부처다 중생이다라고 나누어 말할 수 없으며 다만 이 자리를 드러내기 위해 쓰여진 방편일뿐임을, 부처와 중생이 따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하나의 자리에 있음을 이제는 압니다. 모두가 이 자리까지 이끌어 주신 스님의 은혜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스님께서 청안하시기를 모든 분들이 스님께서 말씀하신 '눈부신 오늘'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happiness-y8j2 жыл бұрын
수행을 평가하고 분별하는 것도 법상임을 알고 고치려는 습관을 내려 놓습니다. 이런 식으로 분별심이 에고를 강화시키는 행동인 것을 깨닫고 조작하려는 마음 쉽니다. 지금 이순간, 이미 펼쳐진 삶을 수용하고 무분별의 지혜에 완전히 내맡깁니다.
@정희변-y5l2 жыл бұрын
코찔찔이가 찾던게 무엇일까..生命의實相,에픽테투스,마하리쉬,老子,도마복음서,크리쉬나무르티,오쇼..물고 뜯고 버리고 다시 떠나기를 거듭했던 지난것들을 감사 한다..눈물바가지 쏟으며 스님 법문을 들으며 부처님손바닥을 한치도 벗어날 수 없었던 오공이 처럼 이 늙은이도, 바다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니모와 다르지 않다..눈물도 많아지고 파대웃음도 많아진 只今...니모인들~파도인들~...감사할 뿐입니다()
@최정미-r9e2 жыл бұрын
스님 귀하신 법문 감사드립니다.🙏🙏🙏
@johnpark32162 жыл бұрын
처음엔 여기 이자리가 뭔지 모르고 헤매다가 공부가 계속되어 근기가 성장함에따라 아하 그렇구나 하고 깨달음에 이를수있다고…..
@Astara_Moon2 жыл бұрын
한국 스님들 법문이나 한국 심리상담 관련 채널보면 한국의 특성이 느껴집니다. 맨날 잘사네 못사네, 잘났네 못났네, 능력있네 없네...그런 걸로 고민하는 내용이 압도적으로 많네요. 그만큼 비교경쟁차별이 인식, 정서의 근간을 이루고있는 한국사회임을 실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