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국박사님께 무예사 공부나 동호회 수련 문의는 muye24ki.com 로 부탁드립니다^^
@신중용7 ай бұрын
의상은 일본의 하카마를 기반으로 한 검도 도복인가요?
@01dmxufkfj4 ай бұрын
@@신중용아뇨 아마 한복 기반일 겁니다.
@Claymore-chobo Жыл бұрын
게임 개발자나 사극 만드시는 분들은 역사고증이 정말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유레-b8k Жыл бұрын
쌍수도는 군도 :민란의 시대 에서 나온 검이죠... 역사고증 굿~!
@수보리-i6u Жыл бұрын
그분들도 아시지만 타협하시는부분이 여러군데에서 있는거죠. 그게 다 제작비로 들어가니까요
@dezpac4912 Жыл бұрын
장르에 따라 다름
@GuNdAmWiThYoU Жыл бұрын
@@수보리-i6u 2년전에 제 댓글에다 "고증 따질거면 다큐멘터리를 만들지" 라고 말같잖은 망언을 내뱉으시던 어떤 분이 생각나네요. 애초에 사극이란건 고증에 입각해서 인정되는 장르입니다. 고증을 따지는데도 판타지가 들어가고 금전적 타협이라는게 들어갔다면 우리보다도 역사 간수를 잘하고 고증을 잘 지키는 일본, 중국 사극 드라마 및 영화는 어떻게 설명해야 될까요? 제작비 이슈 이전에 먼저 이 나라는 고증과 사극이라는 단어의 사전적인 의미를 처음부터 다시 배울 필요가 있다고 판단됩니다. 게다가 애초에 그 사극이라는 장르를 다루는데 고증을 안 지키고 제작비부터 따지고 있다는건 사극 영화나 드라마를 만들 준비가 전혀 안된 상태라는 뜻이잖습니까.
@PJM-p6k11 ай бұрын
귀찮으니 마법씁시다.
@임진영-m3o Жыл бұрын
이래서 여러 역사 학자들을 통해 교차 검증이 필요한 것임. 아주 유용한 역사적 사실을 알게되어 영양가 만점 방송입니다. 추천.
와.. 이런 건 진짜 박물관이나 궁에만 가서는 알 수가 없는 부분인데, 하나하나 돌려봐야겠네요 검술도 정말 멋집니다..!
@Claymore-chobo Жыл бұрын
신기하네요. 한국에도 서양의 쯔바이핸더급 특대검이 있었네요. 검이라기 보다 정말 창에 가까운데 키큰 거구의 장수가 저 칼 동호인을 들고있으면 위압감이 장난아니었을듯 합니다. 좋은 영상 잘보고갑니다
@유우-f7m11 ай бұрын
저런건 보통 무관급들이 쓰는거죠 ㅎㅎ 머든 싸울때 리치차이가 크잖아요 일반 백성들은 활 장창 쓸가능성이 높아요 단순하고 한가지만 조선은 대부분 징집병이라
@전재희-g3g8 ай бұрын
@@KOREA-16725그 검은 영상과 같은 쌍수도가 아니죠 애초에 임진왜란 이후 무기체계니까요. 그건 정말 그냥 검손잡이를 쥐는 거죠.
@pathesiar5 ай бұрын
그냥 창 쓰고 말죠.
@유우-f7m4 ай бұрын
@@pathesiar일반 병이면 장창이 짱이죠 쉽고 보급하기 쉽고 저런무기는 부사관급(갑사) 이나 특수목적군들이 쓰던거죠 머....
@동쪽별-y5s Жыл бұрын
어차피 전쟁은 대열과 대열의 싸움입니다. 칼은 휘둘러야 하기에 대열을 유지 할 수 없습니다. 대열이 깨지고 뒤로 밀리면 다죽는겁니다. 그래서 전쟁에서는 활과 창이 쓰였고 갑옷을 입은 병사는 칼로 죽이기 쉽지 않기에 도끼나 철퇴로 머리를 찍어 죽였습니다. 칼은 대열이 깨진 상황에서의 각개전을 위한 보조무기였고 그래서 조선은 과하지 않은 전투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적당한 크기의 칼을 주로 썼을 것입니다. 중국도 마찬기지죠. 일본은 전국시대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칼이 발달했고 대규모 전투도 일본 안에서 자기들 끼리만 했기에 서로간의 전술과 무기에 대한 큰 변화를 못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니 몽골군이 넘어갔을 때 탈탈 털렸죠. 조선 원정도 조총이 없었다면 대규모 회전에서는 크게 경쟁력이 없었을 겁니다. 왜군이 대열간 회전에서는 조총을 쓰고 공성전에서도 조총으로 방어선을 무력화 시키고 흩어지면 칼로 각개전투를 하는 방식이였죠. 신식무기인 조총이 핵심이였습니다. 칼과 칼이 싸운다면 일본식의 긴칼이 무조건 유리하지만 조총이 없던 시절 전쟁의 핵심 무기는 칼이 아니었기에 오히려 보조모기로써 전투에 방해가 되지 않는 크기의 효율적인 조선칼이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LrakTitor Жыл бұрын
Great video! I have definitely learned knowledge that I wouldn't have known otherwise. Keep up the good content, watching from the Philippines! ❤
킹덤 시즌3 비밀이라고 하시는거 보니 제작 계획이 있긴 한가보네요 오피셜로는 취소됐다고 하지만 그런 흥행 보증 드라마를 바로 그만두기에는 너무 아까워서
@Randy_Rhoads Жыл бұрын
역시 실제로 같은 물건을 만들어서 사용해 보지 않으면, 상상만으로는 알수 없는 부분이 많다는걸 느끼네요.
@이름없음-w6n Жыл бұрын
협도랑 편곤이 그렇게 왜검(일본도) 킬러였다죠...ㄷㄷ 그리고 사극에서 단골로 나오는 삼지창이 본래는 칼쓰는 병과 상대하려고 만든 특수무기라고 들었어요.
@roka-ssg1157 Жыл бұрын
@@Need_DDong 오히려 반대로 잘못알고 계신것 같습니다. 오히려 창이나 칼, 활보다 농민군을 쉽게 무장시키기 위한 무기가 편곤 이었습니다. 별도의 훈련없이 농번기 도리깨 쓰던 농민들을 쉽게 무장시키기 위해 썼던게 편곤이고 재료 자체도 금속이 아닌 나무가 들어가기 때문에 대량생산하기도 쉬웠구요.. 다루기 힘들다는건 잘못알고 계신겁니다.. 그당시 농민들 여자나 남자나 어린사람이나 나이먹은사람이나 아무나 도리깨 다 쓸줄 알아서 무기중에 가장 쓰기 용이했던게 편곤입니다.
@anim4u1 Жыл бұрын
8명 12명이 진 짜서 겨우 왜검 1명 잡고 막타치는게 편곤이었음... 왜검은 결국 1대1로는 파홰법 못찾아서 카게류 - 음류 검술 비전서 입수해서 명나라 조선 다 자기 실정에 맞게 변화 발전시켰음.
@aviencloud4239 Жыл бұрын
롱소드 개발했으면 왜검 이길 수 있었을텐데
@삐용삐용-s8p Жыл бұрын
누가 그런 말을 하나요? ㅎㅎ 삼지창은 '당파'라는 무기로, 명나라의 척계광이 일본도를 든 왜구를 상대하려고 만든 무기입니다. 그것도 장창, 낭선, 방패 등의 다른 병종과 함께 명나라 군사 10명이 왜구 1명을 상대하는 구조로 짜인 것입니다. 그것이 척계광이 지은 '기효신서'의 원앙진입니다. 그것이 임진왜란 이후 기효신서가 조선 후기 군사, 무기, 무예에 큰 영향을 미치면서 조선의 무기와 무예로 자리를 잡은 것입니다.
@삐용삐용-s8p Жыл бұрын
[DBR/ 전쟁과 경영]왜구 소탕한 명나라 명장 척계광의 전법 [동아일보] “일본도에 대한 두려움을 버려라” 《 16세기 중국 명나라는 왜구로 골머리를 앓았다. 특히 무역과 산업의 중심지인 동남해안 지역 저장 성이 공격을 많이 받았다. 해적은 보통 창고를 털고 사람을 납치하는 게 정상이지만, 저장 성에 침입한 왜구는 아예 비단 생산 단지를 점거하고 주민들에게 비단을 짜게 한 후 그 생산품을 가져갈 정도로 악랄했다. 》 명나라 군인들은 일본도(日本刀)를 두려워했다. 도(刀)는 중국에도 있지만 보통 짧고 한 손으로 쓰던 무기였다. 반면에 일본은 도를 양손 무기로 개량해 사람을 한 번에 동강낼 정도의 위력을 갖추게 했다. 독특한 제련법 덕에 일본도는 중국군이 지닌 그 어떤 무기도 베어버릴 정도로 강하고 예리했다. 명나라의 고민은 바로 이 일본도에 맞설 효과적 전법이 없었다는 데 있었다. 거의 직업적인 전사로 이뤄진 왜구와 달리 명나라 병사들은 대개 징집한 농민병으로 구성됐다. 중국군은 병력 우위를 앞세워 방패와 창을 들고 적을 압박하는 밀집대형 위주로 전술을 운용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집단 전술은 일본군에게 통하지 않았다. 긴 일본도를 휘두르는 왜구는 한 명이 18척(약 5.5m)의 공간을 담당할 수 있었다. 일류 무사는 이 밀집대형의 가운데로 뛰어들어 창과 방패와 몸통을 한 번에 가를 수 있었고, 이로 인해 병사 여럿을 한 번에 쓰러뜨릴 수 있었다. 특히 사쓰마 번(현재의 규슈 가고시마 지역) 검법은 사람을 동강내면서도 정작 무사는 보이지 않고 검만 보였을 정도로 위력적이었다. 일대일 전투 능력, 전술 운영 능력, 전투 경험 등 모든 부분에서 왜구는 명나라 군대를 압도했다. 명나라의 전설적 명장 척계광(戚繼光·1528∼1588)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왜구를 섬멸하기 위해 ‘원앙(鴛鴦)’진법이라는 전술을 창안해 왜구 소탕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원앙진법에서 한 팀은 12명으로 구성됐는데 한 명은 대장, 한명은 취사병이었다. 따라서 실제 진을 구성하는 병사는 10명이다. 척계광은 접전상황과 왜구의 검법을 연구해 10명의 임무와 기능을 아주 세밀하게 재구성했다. 10명 중 1명은 오각형의 큰 방패를, 1명은 둥근 등나무 방패를 휴대하고, 2명은 낭선(사슴뿔 형태의 쇠로 만든 가지가 달린 대나무)을 맡았다. 뒤의 4명은 창을 들고, 뒤의 2명은 당파(삼지창)를 들었다. 이렇듯 병력 편제의 최하부 단위까지 분업화된 집단으로 편성된 원앙진은 매우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왜구와 맞설 수 있게 했다. 우선 첫 번째 충돌에서 방패와 낭선이 일본도의 공격을 저지한다. 낭선은 거의 10층의 가지로 구성돼 있고 수비 범위가 넓어 일본도의 빠른 공격을 저지하는 데 효과적이었다. 일선에서 왜구의 공격을 저지하고 묶어 두면 이 틈을 노려 이선의 창병이 왜구를 공격했다. 4개의 창병이 시간차를 두고 페인트 모션을 적절히 사용하면서 공격했다. 이때도 당파가 같이 붙어서 수비를 담당한다. 당파도 일본도를 막는 데 효과적이다. 방패와 낭선보다는 방호력이 떨어지겠지만 1차 공격이 가장 강력할 것이라는 전제로 보면 공격은 전혀 불가능한 낭선과 달리 공격능력도 보유했다는 게 장점이다. 원앙진은 명군에 그야말로 새로운 효율성을 부여했다. 무엇보다 분업을 통해 최대의 약점, 즉 징집병의 전투 능력 부족을 극복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원앙진이 너무 복잡하고, 10명이 왜구 1, 2명을 상대하는 구조라 낭비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분명히 그런 문제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원앙진의 큰 장점은 일본도의 스피드와 파워에 대항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병사들에게 부여했다는 것이다. 병사들이 왜구와 백병전을 벌일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자 그 외 여러 가지 작전과 과거의 전법들도 힘을 받기 시작했다. 원앙진 같은 분업형 편제는 유사 이래 16세기 이전까지 중국에서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발상이었다. 과거 중국군이 경험한 전투에서 이런 분업형 집단은 비효율적이고 위험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척계광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과거의 역량들을 새롭게 조합해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시했다. 기존 방법론을 답습하는 대신 애초에 그 방법이 효율적일 수 있었던 원리를 파고들어 변화된 상황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해결책을 만들었다. 과거의 성공에 얽매이지 않고 핵심을 꿰뚫어 혁신을 추구하는 자세가 바로 척계광을 전설적인 명장으로 만든 원동력이었다. 촌구석 농민들로 구성된 저장 성 부대는 전문 무사들로 구성된 왜구에 비하면 전력이 10 대 1의 비율도 되지 않는 오합지졸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과거 전술 패러다임과 궤를 달리하는 척계광의 혁신적 진법과 신무기(당파와 낭선)를 통해 정교하고 영리한 싸움을 할 수 있었다. 왜구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 덕분에 그들은 결국 왜구 소탕에 혁혁한 공을 세운 무적 부대로 거듭났다. 임용한 경기도 문화재 전문위원 물론 이 원앙진이 너무 복잡하고, 10명이 왜구 1, 2명을 상대하는 구조라 낭비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이 원앙진이 너무 복잡하고, 10명이 왜구 1, 2명을 상대하는 구조라 낭비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물론 이 원앙진이 너무 복잡하고, 10명이 왜구 1, 2명을 상대하는 구조라 낭비가 많다는 지적도 있다.
@이진건-o8j Жыл бұрын
옛날에는 경당계열 단체들이 많았는데 체육분과 동아리들 인기가 식으면서 많이 없어졌죠....안타까운 일입니다
@mekdev Жыл бұрын
Love this kind of content and interview. I assume sunsengnim is a producer for Kingdom on Netflix?
@신중용7 ай бұрын
왜 선생님이라고 번역되는지 의문이었는데 원문이 sunsengnim....
@bluekb99Ай бұрын
안녕하세요. 비급칼잡이님과 함께 촬영한 무예24기를 수련하고 있는 최형국입니다. 아직도 많이 부족한 실력이지만, 우리 무예의 다양한 모습을 함께 나누고 싶어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이미 미사일이 하늘을 날고, 핵무기가 지배하는 전장에서 창검을 비롯한 단병무예는 그저 전통시대에 대한 추억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무예 안에 담긴 몸철학의 문제, 무예로 풀어갈 수 있는 무예인문학적 고민은 무예수련의 의미를 더 넓힐 수 있으리라 믿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와의 싸움에서 칼을 뽑는 순간, 이미 법에 의해 가중처벌되는 세상입니다. 그저 또 다른 몸살림의 수련으로 무예을 익힙니다. 가장 '야성'적이면서도 가장 '지성'적인 몸짓이 무예에 담겨 있고, 그것을 바탕으로 '영성'의 단계까지 풀어보고 싶기도 합니다. 아직도 공부할 것도, 채울 것도 많아 오늘도 내일도 한결같이 수련할 뿐입니다. 고맙습니다. -무예24기 최형국 드림-
@bluesea833 Жыл бұрын
배워보고싶음!!!!!!
@daehanwoo2579 Жыл бұрын
최고 고수들의 콜라보👍🏻👍🏻👍🏻👍🏻👍🏻👍🏻👍🏻🔥
@gbk3647 Жыл бұрын
갑옷을 보니 2편에서 올려치기를 주로 썼다는 말씀이 더 잘 이해되네요~
@Dominic_Kim3 ай бұрын
3:22 쌍수도... 총검술의 원소격으로 보이네요 ㅎㅎㅎ
@올록orlok_yoon Жыл бұрын
쌍수도는 독일의 쯔바이핸더와 거의 동일하네요!! 일본 대태도의 운용방식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네요.ㅎ 과거기준으로 쌍수도는 쌍수도를 운용할 만한 피지컬을 가진 사람이 사용해야할듯 싶네요.
@omegaalpa3382 Жыл бұрын
Zweihänder 란 말자체가 정확히 쌍수도 입니다 ㅎㅎ
@올록orlok_yoon Жыл бұрын
@@omegaalpa3382 제2외국어를 독어를 했었는데..쯔바이가 독일어로 2라는것을 압니다. 동양과 서양이 나뉘지만 검술운용 또한 동일해보여 글을 적은것인데..
@riverred101 Жыл бұрын
@@올록orlok_yoon투핸디드소드를 독일어로 한게 쯔바이핸더입니다.
@user-rf6sx1ko9h9 ай бұрын
쌍수도랑 대태도 운용차이가 없음 명에서 대태도보고 배낀걸 임진왜란이후 수입한거임
@한대웅-h6q2 ай бұрын
일본 대태도와 같은 운용법이였을겁니다. 일본대태도에 대항할려고 나온 무기니깐요.
@JP-wi1sn Жыл бұрын
갑옷 입으면 머리 위로 검이 안 올라가기 때문에 일본 신토류에서는 어깨 곁으로 검을 빙글 돌려서 휘두르더라고요! 되게 신기합니다 ㅎㅎ
@SQQQ-SHORT Жыл бұрын
와 정말 좋은 내용 방송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했어요 ^^
@단디-o2u Жыл бұрын
와 간지 쩐다. 전에 경복궁 같은 곳에서 저 긴 칼 사용하는 걸 봤는데 진짜 멋졌는데 이렇게 보게 되다니 너무 반갑고 좋다
@DK-cd2tm Жыл бұрын
대박 재밌고 멋있네요 와 ㅋㅋㅋㅋㅋㅋ 다큐멘터리같습니다
@어중간-x7b Жыл бұрын
갑옷을 입고 팔을 높이 올리기가 불편한 상태에서, 전편에서 나온 환도의 올려치기가 유리한 길이..찰떡궁합이네요. 단순히 검만가지고 움직이는게 아니라 사용시 착용복장의 자유도까지 봐야 검의 운용규격이 더 잘 설명되는거같네요. 현실은 , 써보니 너무길쟈나, 한국인은 불편한건 못참아 ㅋㅋ 가 되는거 같기도.농담입니다 ㅋㅋ
@미제드론 Жыл бұрын
애초에 두정갑 같은 저런 포형 갑옷은 궁술에 맞게 제작된 거라서 그렇습니다.
@Conner980710 ай бұрын
내가 이 말 댓글 달라고 했는데 더 잘 정리해 주셨네...ㅋ
@안좌격 Жыл бұрын
저 무기들 중 "편곤" 이 가장 위력이 강력했슬듯하네요. 양쪽군이 대치중 에 방패와 창, 그 안쪽으로 환도수로진을 이루는 형태인데... 편곤부대 로 따로편성했슬때 상대방 진영에 숙달하기 편한 편곤을 휘두르면 적군 뒤통수 뚝배기 깨가며 적 진영 흐트렸슬듯.....
@B.O.P.E-3234 Жыл бұрын
임진왜란때 실제로 왜군 뚝배기 많이 깨졌다고함
@uncle30boy11 ай бұрын
제 생각에도 만약에 바로 징집되서 가는 병사라고 생각한다면 편곤이 제일 겁날거 같습니다. 그냥 칼이든 손목이든 대가리든 후려치면 어디하나 깨지면 뒤질듯요.
@jadeelix5949 ай бұрын
편곤은 따지고 보면 기병무기에 가까웠습니다. 말을 타고 달리며 활로 적 병력을 갉아먹다 돌격 명령이 떨어지면 편곤으로 무기를 바꿔들고 돌격, 말의 주력을 편곤에 그대로 실어 적을 후려쳐 죽이고 이탈 후 재돌격하는 형태였죠.
@김성준-z2o5d5 ай бұрын
도리깨랑 비슷해서 징집된 농민군도 잘 쓸 수 있는 무기였읔
@JM-yl8dt Жыл бұрын
많이 배웠습니다 아주 유익한 영상이네요
@청천고운 Жыл бұрын
비슷한 길이의 창이면 당파가 다른 창에 비해 유리함. 진보된 신형 무기.
@alfarabi739 ай бұрын
Fascinating stuff!
@landwalker69417 ай бұрын
Japanese sword called Katana have a curved blade. On the other hand, Korean swords have straight blade. So the Korean Master in this movie uses Japanese style sword. Regarding how to put on Katana, the grip of sword absolutely points straight ahead. If you point the grip on the backside, an enemy on your backside can easily draw your sword and attack.
@배진호-e2b5 ай бұрын
Korea's long sword also used a curved sword for practical purposes. It did not interfere with archery, so I hung a curved sword on my back. However, Japanese curved blades seem to make grip more comfortable when cutting.
@배진호-e2b5 ай бұрын
Western long sword techniques are shaped like a cross to perform various tricks when closely attached to the sword, but in the end, it is for infantry. In comparison, there are many reasons why oriental swords are bent, but I don't know if it's because cutting is important. Direct swords are also pleasant, but curved swords are better to help the blade slide at an acute angle with the friction surface of the object.
@김한세-n3g10 ай бұрын
쌍수도는 한국 사극에 한번이라도 나오면 좋을텐데…저 간지 나는걸 왜 안쓰나 몰라요
@sepergaming Жыл бұрын
3편 기다렸어요~~
@Adam_Lilith5 ай бұрын
비급님도 그 꾸준성에 대해서 참 대단한 분이고 최형국님도 대단하신 분인듯 합니다. 한가지를 오래 한다는게 참 쉽지가 않죠
@michindal Жыл бұрын
와 너무 멋지십니다. 응원합니다.
@김민수-k4f9z Жыл бұрын
무료교육이라니 너무 좋네요. 전통무예 흥해라!!
@golomoth9734 Жыл бұрын
Very interesting video! Compliments from England
@cardiyred8 ай бұрын
설명이 디테일해서 좋아요
@요툰-p9k Жыл бұрын
쌍수도는 뭔가 서양 롱소드랑 비슷한 느낌이 있네요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ssamorang Жыл бұрын
롱소드 보다는 그레이트소드/쯔바이핸더/플랑베르주에 가깝다고 해야할 듯 합니다.
@창조리-d7f Жыл бұрын
4:50 저 궁금한게 현대와서 소매 폭을 줄인건지 아니면 원래 좁은건지 궁금합니다. 보통 유물 봐도 겨드랑이나 소매 쪽 폭이 넓어서 공간이 여유로울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좁네요. 막상 입게 되면 다르게 되는건지 궁금합니다.
@HI-tg3ji Жыл бұрын
사용자 체형에 맞게 입지 않을까요ㅎ?
@_Tidian9 ай бұрын
오늘 영상이 최고였어요
@longswordparkour511 Жыл бұрын
와 토요일도 되기전에 ㅎㅎ
@ThePds7985 ай бұрын
중학교 때 학교에서 24반무예를 알려 주시던 선생님이 있었는데 그때 많이배웠어야 했네요. 이렇게 귀중한 문화 유산을 당시에 알려 주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Ssangsudo is my favorite Ming/Joseon weapon (even though it wasn't very practical).
@MrLolx2u9 ай бұрын
- Sangsudo isn't designed to be used as a human cleaving weapon. It's used as the same way as the Chinese had intended it to be, the 斬馬刀 (Horse Cleaving Blade) or the 长刀 (Long Blade) which was both used to chop horses and cavalrymen that are on horses. That's why the copper habaki was that long so that you can grab it easier for more leverage and stability. You CAN use it for infantry but it's very impractical. - I think the armour was kinda wrong also cuz I do know that both the Japanese and the Ming Chinese at that point of time were already using steel for their lamellar armour instead of tin. Maybe the Koreans didn't follow it, idk but I think they did considering the close proximity of all 3 nations, especially Ming and Qing dynasties which did influence and even shape some of the weapons and governmental style of the Joseon period government.
@sambudryu5 ай бұрын
Ssangsudo was definitely used against infantry, as it was meant to be used against Japanese soldiers with long blades. It has various records of being used against infantry as well as why they were integrated in to the Joseon(Korean) arsenal. The extended copper habaki also explains this weapon's purpose as a weapon used against infantry, because this not only provides more leverage and stability, but also provides better control and swifter actions, thus making it more capable against infantry targets. The term "Horse Cleaving Blades" were used because the blade was "capable" of chopping down horses, not because they were solely used for that purpose. Moreover, the main strategy used against cavalry back then were focused around pikes, muskets, and cavalry of their own(especially considering that Joseon was better specialized in cavalry compared to Japan), so it's less likely that Ssangsudo was used as an anti-cavalry weapon. The scaled armor showed in the video is called 어린갑(Uh-rin-gab), which means fish-scaled-armor. The protective scales of these armors were made with iron in early-era, but was replaced with lighter materials like hardened leather or brass due to the weight of the armor being too heavy. As a result, the overall protection of the armor was weakened, but it still did it's job and wasn't too much of an issue since these scale armors were normally used by senior officers. The man in the video might have confused brass for tin, because brass in Korean is 두석(Doo-suk) while tin is 주석(Joo-suk). Brass was very normally used for fish-scaled-armors in Joseon, and there were specific names for brass fish-scaled-armors which is 두석린갑(Doo-suk-rin-gab).
@doublej7528 Жыл бұрын
이순신 장군의 쌍룡검도 쌍수검이라고 봐야하나요? 무지하게 길던데..저걸 어떻게 썼나 싶었는데..칼날까지 같이 잡는거 였나요?
@삐용삐용-s8p Жыл бұрын
네 이순신 장군님의 칼도 쌍수도입니다. 일본 오오다치(大太刀)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칼입니다. [천자칼럼] 長刀 두 자루에 담긴 충무공 호국 의지 조선시대의 대표적 전투용 칼은 환도(環刀)였다. 휴대는 물론 말을 타거나 활을 쏘기 편하도록 칼집에 고리(環)를 달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조선 전기에는 환도의 길이가 짧고 직선 형태를 띠었다. 문종실록에 따르면 보병용 환도는 칼날(53.6㎝)을 포함한 총길이가 73.63㎝였다. 하지만 임진왜란 때 왜군과의 단병접전을 겪으면서 칼이 길어지고 칼날 끝도 곡선형을 띠게 됐다. 정조 때 편찬된 에 기록된 환도 규격은 칼날 길이만 3척3촌(약 69㎝)이었다. 일본의 영향으로 새로 쓰게 된 칼도 있다. 칼이 길어서 두 손으로 잡고 사용해야 하는 쌍수도(雙手刀)로, 원래 이름은 장도(長刀)다. 16세기 명나라 장수 척계광이 왜구들이 쓰던 긴 칼 ‘오타치(大太刀)’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 것으로,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조선에도 도입됐다. 기다란 일본도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척계광은 병법서 에서 “(오타치에) 당하게 되면 몸이 두동강 나버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서애 류성용도 에서 왜병이 오타치로 사람과 말을 동시에 베어버렸다고 전했다. 에 기록된 쌍수도의 전체 길이는 6척5촌에 달한다. 충무공의 숭고한 정신이 담긴 두 자루의 쌍수도 ‘이순신 장도’가 국보로 승격된다는 소식이다. 1963년 보물로 지정된 ‘이순신 유물 일괄’에 포함됐던 칼로, 한 자루는 총길이 196.8㎝에 무게 4.32㎏, 또 한 자루는 총길이 197.2㎝에 무게 4.20㎏이다. 나무 칼자루는 물고기 가죽을 감싸고 붉은 칠을 했으며, 칼자루를 잡았을 때 미끄러지지 않도록 가죽끈을 교차해 감았다. 칼자루 속 슴베에는 ‘갑오년(1594년) 4월 태귀련과 이무생이 만들었다’는 명문도 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라고 했던 그 칼일까. 무엇보다 주목되는 건 칼날에 새긴 충무공의 시구(詩句)다. ‘삼척서천산하동색(三尺誓天山河動色: 석 자 칼로 하늘에 맹세하니 산하가 떨고) 일휘소탕혈염산하(一揮掃蕩血染山河: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인다)’ 호국의 달 6월에 장군의 호국 의지를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gerughigiulio9190 Жыл бұрын
이순신 장군의 장검은 칼날의 동호인을 잡을 필요없이 손잡이 자체를 60cm로 길게 했기에 손잡이만 잡고도 충분히 무게중심이 잘 맞춰집니다.
@yoshitsune1184 Жыл бұрын
2:44 Steve Jablonsky - Village Attack 테마 음악을 틀으며 .... 탄금대 앞 달천평야의 단월역 부근에서 일본 소서행장 군과 조선 도성과 도성 인근과 충주에서 길러오던 비밀 병력인 한량나이트들 15000~16000(철기병 반, 궁기병 반) 간에 대회전이 벌어졌는데 일본군이 장창으로 찌르고 후려패고 양옆에서 소오,마츠우라의 조총대 수천이 나타나 조총을 발사하자 조선군이 대혼란이 일어남. 결국 무리한 돌격을 3번 거듭하다가 결국 신립은 뒤편 엄청 멀리 멀찍이 있는 탄금대에는 6~7만의 민방위(한량나이트들의 노비들과 충주 읍의 민간인들)가 있는 목책 진지로 기마병들을 데리고 쏜살같이 후퇴하려고하는데. 갑자기 사람 하나도 없이 분명히 비워놓은 충주읍성과 마을들 쪽에서 삐 삐 삐 소리가 나서 저게 뭐지? 내가 분명 사람들을 전부 탄금대로 대피시켰거늘 하며 보는데 충주읍성 쪽 방면에서 조선 여자 ,소년들이 막 달려옴 저건 뭐야? 조총을 처처척 겨누더니 마구잡이로 쏨 (해적들을 따라 대마도,규슈에 가버렸다가 일본군으로 개조되어서 돌아온) 그리고 그들을 뒤따라 가토군 나베시마군 2000이 괴성을 지르면서 달려와서 빙글 신립군의 후방으로 가더니 노다치를 휘두르며 마구 마구 쳐베고 소서행장,소오,마츠우라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조총을 쏘고 장창을 후려쳐서 패고 찌르고 하니 결국 조선 한량군은 3000의 전사자를 내고 막 도주함 말들에서 낙마한 상태에서 말들을 버리고 도주하거나 말을 타고 도주하다가 노다치에 맞아 말의 다리가 잘려서 낙마하고 급히 일어났다가 조총을 맞고 풀썩 쓰러지고 탄금대 쪽 민간인들은 점점 불안에 떨다가 일본군이 좌,우,중앙을 통해 중요 거점들을 확보 후 천천히 좌는 강을 따라, 우는 산을 따라. 중앙은 충주읍성의 길을 통해 척 척 척 오자 민간인들은 울부짖으며 언덕으로 막 도망가서 절벽에서 다이빙 풍덩 풍덩 풍덩. 어떤 사람들은 여울을 통해 급히 건너려하지만 건너는 사람들을 을지문덕마냥 뒤에서 급하게 치니 막 사람들이 빨리 가 빨리 가 하다가 막 허우적이다가 죽고 그 곳은 여울이 아닌데 막 들어가다가 모조리 물에 빠져 죽고. 결국 싸그리 전멸해서 강을 따라 죽은 사람들이 둥둥 끝없이 떠내려가서 강물의 흐름을 막았다고 조선왕조 선조실록,선조수정실록들에 나온다. (참고 사료 : 프로이스 일본사 , 난중잡록 , 선조실록,다이코기)
@guilhaha9 ай бұрын
아이고 풍후야;;
@kkumus10 ай бұрын
쌍수도는 비슷한 스펙인 전어도를 볼 때 여말선초까지는 한반도에서도 사용되었다가 왜군의 오오타치를 겪고 재도입한 것으로 보입니다. 팽배수가 폐지되었다가 등패수로 부활한 것과 유사해 보입니다.
@Ima184mm2 ай бұрын
고려이후 조선부터는 실전 근접용 칼에 대한 인식이 박하여서 현대의 방어용도로 주로 쓰이는 권총 수준으로 치부 하여서 발전이 없었다고 함. 그러다가 임진왜란때 일본도 위력에 충격 먹어서 기존의 방어용도의 칼을 좀더 성능 개량을 하기로함 당연히 일본도가 많은 참고가 되었겠죠. 아무래도 조선 이전까지는 주로 전쟁상대가 기마족이나 기병으로 이루어진 민족들과 전쟁만 하여서 그렇게 되었던게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습니다.
@dkr874611 ай бұрын
여러 나라 사례를 봐도 양손검은 손잡이가 저렇게 길더라. 폴암과 검의 중간 형태로 일부 문화권에서만 좀 쓰인 것 같음. 양손 다 써야 할 거 같으면 그냥 폴암이 더 길어서 좋지.
@cleandust530 Жыл бұрын
오 두분다 자세가 절도 가 있어세요. 오우야아
@언브레이커블-v4g11 ай бұрын
쌍수도도 앞부분에 칼날받이가 있어야할거같은데 찌르다가 미끄러지면 손 다 나가거나 상대방이 칼날 미끄러뜨리면 앞손베이기 좋겠네요 흠..
@sermeyu11 ай бұрын
정말 신기하네요 동작하나에 이유가 있고, 무기가 왜 탄생했는지, 특히 조선시대땐 왜를 상대하기위해 맞춤으로 상대하기위한 전략이 딱 보이네요 재밋게봤습니다~
@boyaknam11 ай бұрын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86eightysix019 ай бұрын
와.. 해설하시는 분 무기 다루는 폼이 흐트러짐이 하나 없고 딱 딱 맞는게 엄청난 전문가인게 보여집니다
@msmoon6204 Жыл бұрын
이게 그 연장점검 이구나
@손용희-c3t7 ай бұрын
대한민국의 민족성을 이끌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javaxerjack Жыл бұрын
서양의 그레이트소드보다 더 큰 칼이네요. 방패도 없이 적진 한가운데 뛰어 들어 휘두르는 식으로 운용해야 했을 터인데 당시 전술 전략으로 봤을 때 자살행위로 여겨졌을 겁니다. 그렇지만 멋있네요.
@비공개-t5s Жыл бұрын
투핸더를 참고하면 장창 파괴용이 주 용도 라고 생각됩니다. 분명 동양에도 펠렁스 전술 비슷한 것이 있을테니까 요.
@javaxerjack Жыл бұрын
@@비공개-t5s 시범 자세로는 잘 생각 못했는데, 그럴 가능성도 있어 보이네요.
@성이름-m3u Жыл бұрын
실제론 조총수 부무장이었습니다.
@비공개-t5s Жыл бұрын
@@javaxerjack엥. 뭔가 뜬금 없는 느낌이네용.
@준이-n8k Жыл бұрын
@@비공개-t5s 보병 위주로 구성되는 일본군의 경우엔 오오타치 부대를 따로 편성해 대기병 무기로 사용하곤 했습니다. 조총수 부무장이라는 건 명나라 척계광이 왜군 오오타치를 데드카피해서 만든 쌍수장도를 화승총병들에게 지급했다는 기록 때문인데, 아무래도 원거리 보병이 기습적으로 나타나 돌진하는 기병에 대항하기 위한 수단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만 그 하나의 기록 빼고는 조총수에게 지급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jkp999992 ай бұрын
어우 역사학 박사님이시기도 하다니 너무 멋있으시네요 문무 겸비!
@gkdlvj6545 ай бұрын
고등학생당시 18기배우면서 쌍수도 이야기는 들어서 일본도 들고 사용하는줄알았는데 고유의 특색이있는건 처음 알았습니다 이런거만봐고 감동이네여
일본에선 창은 때리는것 칼은 찌르는것 이라 합니다 창은 길수록 유리하지만 길수록 찌르기힘들고 적에게 잡히면안돼니 타작할때처럼 위에서 아래로 때려댑니다 도검은 갑옷을 베지 못하기에 주로 겨드랑이 허벅지 를 노려 찌르는게 보편적이었댑니다 우선은 달려들어 넘어뜨려 목을 노리는게 기본 ㅎ
@sazavytube11 ай бұрын
뭐. 그냥 대검은 필요 자체가 별로 없죠. 그냥 창을 주무기로 쓰고, 보조로 검/도 중 하나 옆구리에 끼고 다니면 되니...
@orchidviolin8 ай бұрын
박사님 동작 엄청 절도있어서 멋있네요
@qndhctsienfklr10 ай бұрын
70년대 피디님이 누명 쓴 것을 벗겨드립니다. 50년대 영화에도 포졸들이 전부 당파를 들고 있더군요. 최소 50년대에 활동한 소품담당자가 범인입니다.
@submarine76756 ай бұрын
와 대나무를 저렇게 깔끔히 정교히 베시다니 초고수시다
@피부암통피 Жыл бұрын
와 조선갑옷 찰갑이랑 두석린갑 멋있다..여러후계자 나왔으면 좋겠다
@무해한녀석-f3t Жыл бұрын
재밌습니다 ^^
@멍멍멍이-o3k6 ай бұрын
최곱니다!
@진한초록-c4g Жыл бұрын
창술 검술 도술 잘봤습니다 고맙습니다
@프링글스-e2v Жыл бұрын
쌍수도는 츠바이핸더 이상이라고 봐도 될 정도의 어마무시한 체급이네요 ㄷㄷ 성인 남성 키를 훌쩍 넘어버리네… 어느 문화권에서나 역시 거대한 검에 대한 열망은 있었나봅니다 ㅋㅋㅋ 근데 저걸 어떻게 안전하게 휴대할 것인가… 전투가 일어났을 때 어떻게 빠르게 꺼내서 대응할 것인가… 집단전투 상황에서 아군을 공격해버릴 위험은 없는가… 이 모든 걸 포함한 검술을 어떻게 병사에게 빠르게 교육할 것인가 등등 한 명의 달인이 쓴다면 모를까 군사용으로는 운용하기 어려운 점이 너무나도 많군요
@gerughigiulio9190 Жыл бұрын
오히려 집단 전투가 되면 무기 휴대성이나 발도의 문제가 완벽히 사라집니다. 애초에 발도술이 나온것 부터 일개 검객이 상대를 기습하거나 기습에 대응하기 위해 만든거라 다수가 맞붙는 전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동작입니다. 그리고 긴 장검을 집단 전투에 쓸때는 동작을 상하 위주로 하는 식으로 얼마든지 수정을 할 수 있기에 아군을 실수로 치는 문제가 생각외로 잘 발생하지 않으며 긴 무기 쓴다고 실수 걱정하면 훨씬 긴 장창이 주류로 쓰일 일이 없었겠지요.
@프링글스-e2v Жыл бұрын
@@gerughigiulio9190 - 서로 진영이 이미 갖춰진 상태라면 맞는 말씀일 지도 모릅니다. 다만 '대응'은 발도술에 대해 언급한 것이 아닙니다. 애초에 저 체급의 도는 일반적인 발도술이 불가능하니 논외라고 보아야... 만약 군부대가 이동중이나 야영 도중에 기습이라도 받게 됐을 때, 저 거대한 검을 출검하는 데에 1~2초가량만 소모한다고 해도 적군 10여 미터를 더 접근하거나, 활시위 한 번을 더 당기고 있을 시간입니다. 제가 얘기하는 '대응력 문제'는 이런 차원의 문제입니다. 서로 어께가 맞닿는 천막에 병사들이 겨우 몸을 뉘여서 쉬고있다가 갑자기 적의 기습을 받아 저만한 쌍수도를 뽑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좁은 곳에서 뽑아서 들고 나가는 것도 곤란하고, 막 뛰어나가는 병사들 사이에서 뽑는 것도 위험하고, 그렇다고 칼집채로 들고 나가서 진영을 갖춘 다른 병사들 사이에서 뽑아내는 것도 어렵습니다. 창병 / 검방패병은 그저 옆에 걸쳐세워둔 무기를 들고 나가기만 해도 전투준비가 끝나는 거에 비하면 대응력이 떨어진다는 거죠. - 물론 아군을 치는 문제가 '절대' 발생하지 않는다면 이점이 꽤 많을 겁니다. 하지만 단순히 비슷하게 길다고 해서 장창하고 비교할 순 없죠. 장창은 진영전투 중에 옆의 아군을 치게 되더라도 살상력이 낮은 봉 부분입니다. 하지만 쌍수도는 높은 확률로 살상능력이 높은 도신이 닿기 때문에 부상 내지 사망에 이를 가능성까지 있고, 이를 피하기 위해 찌르기와 종베기 위주로만 써야 한다면 '굳이' 군사용으로 쌍수도를 쓸 이유가 없죠. 베는 능력은 포기하더라도 집단 전투에서 창의 효율성은 충분히 압도적이고 이건 세계 어느 문명에서나 동일하게 증명해 온 사실이니까요. 애당초 세워들기만 하면 안전한 창과 달리, 아에 하늘 높이 들어올리지 않는 이상 사람의 키 높이에 칼날이 올 수 밖에 없는 쌍수도는... 집단 안에서 발도 상태로 소지하고 있는 것 자체가 위험합니다. 만원 지하철 안에서 옆 사람이 거대한 날붙이를 들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들든 위험하고 불안합니다. 물론 제가 역대 쌍수도 병사의 전투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니, 말씀하신 대로 아군에게 부상을 입히는 사고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위험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상 창의 메리트들을 놔두고 굳이 감수해야 할 리스크는 아닌 것 같습니다. 군사용 무기와 병과가 도태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무기와 병과의 도태는 무장의 제작 비용과 유지관리의 어려움에 비해 전투 효율이 낮다는 무엇보다 명백한 증거죠...
@서기석-k7b8 ай бұрын
사실 카타나 일본도 들고 등패 다시말해 방패들면 상당히 불편함 일본도는 쌍수도법을 쓰기 때문 조선환도는외수(편수)도법 쌍수도법 다 사용하기에 외수도법시 방패(등패) 사용가능 중국 조선은 칼길이 비슷함 일본은 중국이나 우리보다 10~20cm 긴걸로 나옴 왜인들 체격은 작았으니
@Benedicat_me_Dominus. Жыл бұрын
롱소드도 카타나도 갑옷 입고 하는 영상 보면 칼을 높게 못들더라고요. 인간 신체구조 상 갑옷 입으면 어쩔수 없는듯. 그리고 베르세르크의 주인공이 쓰는 대검이 현실성 없는걸 이번 영상 보고도 확인하게 되네요. 그 검보다 칼날이 얇고 길이 짧은 쌍수도도 이리 힘드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이런 무기류를 전쟁터에서 들고 다니면 표적 되겠죠. 눈에 너무 띄어요
@Showmeyourspace6 ай бұрын
군도에서 나온 쌍수도가 나름 고증이 있던 무기네요
@낭만건축이주혁소장9 ай бұрын
참수용 칼이 였던듯. 참수용으로는 참 인간적인 칼이네요. 단번에 고통없이 보내줄 예의.
@sejinJ11 ай бұрын
하얀 얼굴 검은 도포에 검은 갓 쓴 저승사자 이미지도 70년대에 전설의고향 피디님이 창작하신거로 아네요 당파도 비슷하게 이미지가 굳어진듯
@akthfdyd11 ай бұрын
현존하는 무예도보통지 복원무예단체 중에서는 무예24기가 가장 수준이 높은것 같습니다. 지속적으로 수정되기도 하고..
@mosesl31053 ай бұрын
쌍수도 1:1에서는 유리할지 몰라도 전열을 짜서 싸우는 단체 난전에서는 아군이 다칠 위험도 있고 운용이 어려웠을듯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