Рет қаралды 2,089
#진달래 #꽃이되어 #웃어본다오
사랑하는 구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보고싶었어요!! 봄이 완연한 4월의 첫번째 주말이예요.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이 봄을 느끼고 계신지요. 그리운 누군가를 떠올리고 있다면 이 노래를 들어보세요. 꽃놀이를 떠나지 않아도 요즘은 걷는 걸음마다 꽃들이 반겨주어 마치 내가 봄날의 주인공으로 환영받는다는 아지랑이같은 착각에 잠시 빠지기도 해요. 헨델의 '파사칼리아' 영상 이후, 새로운 연주로는 오랜만에 뵈어요. 왼손 엄지가 말썽이었는데 그동안 물리치료 열심히 받고 이제 다 나았답니다. 격려하며 기다려주신 마음들 덕분에 오늘입니다. 잊지 않고 찾아주시고 함께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 노래는 아마도 교과서에서 배웠을텐데 그 기억보다는 제게는 더 따뜻하게 연결되어 남아있는 어느 작품의 부분을 아래에 옮겨 놓을게요. 음악과 이야기와 함께하면 마음이 분명 좋아질거예요. 첫부분만 흥얼대다 멈추곤 했던 노래인데 봄의 이야기는 3절까지 이어집니다. 자막을 누르면 가사를 보실 수 있습니다.
--------------------------
봄이 오면 산에 들에 / 오정희 산문집 '내 마음의 무늬' 에서 발췌
30여 년 저쪽의 일로 어느 이른 봄날, 찬바람 속에 강을 건너고 계곡의 잔설을 밟으며 산사를 찾았던 때가 있었다. 스무 살 무렵이었다. 호젓한 암자에 혼자 살고 계시는 스님과 친분이 있는 친구를 따라 나선 길이었다. 현재는 불안하고 미래는 불확실하며 자신이 바로 사랑이자 더 많은 증오의 대상인 젊음의 날들, 턱없이 갈급하고 허덕이는 마음과 청춘의 방황이 뭔가 기댈 곳, 명징한 해답을 찾아 세상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게 했을 것이다.
승가의 법도가 그러한가. 세속의 나이로 갓 마흔을 넘긴 스님은 내방객을 반기지도, 그렇다고 내치지도 않으며 무연한 태도로 차를 끓여 권하셨다. 수도생활을 하는 분들이 대체로 그러하겠지만 유난히 말씀이 적으신 분이었다. 오는 길이 힘들지 않았는가, 바람이 차지 않던가 등등의 의례적인 인사가 끝나자 등을 곧추세운 가부좌의 자세로 조용히 차를 마시는 스님 앞에서 나는 눈치 없이 남의 시간과 생활을 빼앗고 흩뜨리고 있다는 생각에 점차 몸과 마음이 긴장되고 불편해졌다.
수도승의 거처답게 아무런 장식 없이 정결하고 단정한 방은 창호지를 바른 방문으로 비쳐드는 햇살로 환했다. 아낌없는 햇살이 유일하게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침묵이 버거워 허둥대던 눈길이 빈 벽을 더듬다가 흰 종이로 도배된 벽에 붙어 있는 손바닥만한 화선지 조각에 멎었다. 쓰다 남은 자투리 조각인 듯 귀가 맞지 않은 종이에는 세필로 몇 줄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피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내 마음도 함께 따가 주
글보다도 노래로 더 익숙한 멜로디와 애달픈 정서가 마음에 차오르는 그 글을 읽으면서 나는 엄혹한 수행으로 자신을 다스려가는 마음 안의 따뜻하고 외로운 자리,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어떤 가없는 그리움과 설렘의 자리를 본 것 같았다. 그것이 해탈을 향한 것이든 버리고 떠난 것들에 대한 것이든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이었다. 진리를 향한 것이거나 세속의 행복과 아름다움의 추구이거나 그 출발점, 근원은 그 어쩌지 못하는 가없는 그리움과 설렘일 것이고 그 또한 살아 있음의 징표이자 선물이 아니겠는가.
봄날은 오는 듯 머무는 듯 곧 가버릴 것이고 투명 테이프로 벽에 붙여진 글귀는 가는 봄과 더불어 떼어질 것이다.
스님으로서는 아마도 심심파적이었거나 천지간에 피어오르는 봄기운에 잠시 자신을 맡긴 것인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재생과 부활에의 꿈, 징표로 찾아오는 봄을 느끼는 마음에 승속이 무에 그리 크게 다르겠는가. 산에 들에 연연한 붉은빛으로 피어나는 봄꽃, 진달래와 함께 피고 싶은 설렘과 애달픔의 마음이 없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