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갈때마다 인정문 인정전 용마루에 박힌 오얏꽃과 인정전 바닥 다다미식 마무를 보는순간 마음이 편치않습니다. 언제쯤 원래대로 복원이 될런지... 영상 감사합니다^^
@신인희-s2m3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의 유네스코 문화유산을 대표할수있는 창덕궁~
@이경혜-b1l2 ай бұрын
❤🎉
@eunjujang9998 Жыл бұрын
박자청 건축가를 알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
@조계호-h1e3 жыл бұрын
와웅
@shchang62026 ай бұрын
동궐도 중간 약간 왼쪽으로 마당에 뭔 토끼 같기도 하고 삽살개 같기도 한 동물이 하나 있는데 그건 뭘까요???
@양숙-g2j Жыл бұрын
명성황후 시해 아닌 살해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라고 들었습니다
@김석봉-l4q12 сағат бұрын
화 : 누가 누를 교화 해 ㅋㅋ
@walterbyun51009 ай бұрын
장음인 단어의 첫 자를 짧게 잘못 바름한 예:현재,밨는데요,한양,경복궁,이 성계,대칭 ,정문,파격적, 장단음 문제가 너무 심가ㄱ하여 더 이상 읽을 수가 없습니다. 달은 강의에 대해 같은 제의한 것 같습니다."한국 어문을 고발함" 을 제발 일독해 주시옵소서. 미국 변 완수 배
@늘푸른샘-s6o2 жыл бұрын
먼저 이리 글을 올려 죄송합니다. 어떤 곳으로도 개인적으로 연락드릴 방법이 없어 이곳에 남겨요. 강의 중 고종의 경복궁 이어한 해를 자꾸 1885년이라 하시네요. 그리고 연표도 오류인듯. 고종 즉위년이 1863년인데 표에는 1855년에 이어했다고 적혀있어요. 1885년을 갑신정변이 일어난 다음 해인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보는 방송이니 정정 설명을 남기셔야 할 듯.
@우리역사바로알기2 жыл бұрын
관심있게 들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한 논문의 캡쳐사진에 1855라고 오타가 있어서 이야기할 때는 1885년 이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조선의 궁궐에는 크고 작은 화재가 끊이지 않아서 여러번 이궁을 했는데요. 특히 승정원의 기록에 1885년 경복궁으로 이어한 내용이 자세하게 나와있어서 논문의 연구자도 특히 1885년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이어한 내용을 기록한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숫자의 오류가 있었나 봅니다. PPT자료에 더 세심하게 신경쓰도록 하겠습니다. [국역 승정원일기] 고종 22년 을유(1885) 1월 17일(정사) 맑음, "상이 경복궁에 있었다. 이어한 뒤에 약방 등이 대전 등에 문안하였다. (중략) 경복궁으로 환어할 때 병조 절목에 따라...." 승정원일기 홈페이지 db.itkc.or.kr/dir/item?itemId=ST#/dir/node?dataId=ITKC_ST_Z0_A22_01A_17A&listType=simple "경복궁을 중건하는 과정에서 1873년과 1876년 두 차례에 걸쳐 큰 화재가 발생하자 1877년에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수리하고 이어하게 된다. 이후 1885년에 경복궁으로 이어할 때까지 왕실은 창덕궁에 머물러 있었다." ([조선왕실의 건축, 창덕궁 학술연구], 2011) 창덕궁 홈페이지 자료실 발간자료 www.cha.go.kr/cop/bbs/selectBoardArticle.do?nttId=21660&bbsId=BBSMSTR_1021&pageIndex=2&pageUnit=10&searchCnd=title&searchWrd=%ec%b0%bd%eb%8d%95%ea%b6%81&ctgryLrcls=&ctgryMdcls=&ctgrySmcls=&ntcStartDt=&ntcEndDt=&searchUseYn=Y&mn=NS_03_08_01
@TheTuyosinoie Жыл бұрын
일제가 말뚝 박아서 조선의 정기를 끊으려고 했다는데, 증거가 있나요? 소위 역사 바로 알기를 설명하는 분이 이렇게 허위사실을 퍼트리면 안되죠. 정신차리고 공부 좀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