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후반까지는 한일전에 대한 관심이 전쟁수준이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조금 사그라들었고 97년에 펼쳐진 도쿄대첩은 대한민국의 과거 설움까지 씻어주며 국민들에게 찌릿한 쾌감을 안겨주었다 100년이 지나도 길이남을 한일전 최고의 명승부
@byongilkim85915 ай бұрын
송재익아나운서의 한마디가 아직도 기억이난다 후지산이 무너지고있습니다
@tkddjrhrl10 жыл бұрын
이때 한일전하면 지금보다 더 전쟁이었음..완전 국민들 대동단결에 다들 미침..지금은 한일전하면 좀 시큰둥한면이 없지않나 있지만...이때만해도 진짜 목숨걸고 할때
@아메-r5z6 жыл бұрын
더군다나 월드컵최종예선.요즘 아시아지역 티켓이4.5장되고 일본과 한국이 같은 탑시드라 같은조가 안되서 그렇지 만약최종예선에서 만난다면 피튀길듯.98년 본선참가국32개국되고 아시아출전티켓이 늘기전까지 일본은 번번히 최종예선에서 우리에게 밟히고 월드컵 단한번도 출전못함. 94년예선은 우리를 1대0으로 이겼지만 도하의기적으로 좌절되고 일본이 괜히 한국축구를 싫어하는게 아님.이해해줘야함
@경우진신비아파트티비6 жыл бұрын
@@아메-r5z 맞어요 일본이 한국때문에 월드컵 진출못하고 있었지요 일본축구협회에서 한국을 넘어야 월드컵에 진출한다고 타도 한국하면서 이를 갈엿지요
역전골을 넣었던 이민성의 같은 팀 후배였던 안정환의 말 =아~저 양반 왼발 잘 못하는데...얻어걸린거예요!
@soridaizin792 жыл бұрын
97년 9월의 도쿄대첩은 역대 한일전 가운데 가장 양국 국민들의 관심과 열기가 집중되었던 최고의 한일전이 아니었나 싶음. 이 경기 이전의 한일전은 사실 한국이 어느정도 우위에 있다는 것을 가정하고 붙었던 경기였고 일본도 한수 위의 한국에게 도전하는 면이 강했음.. 하지만 90년대 이후 일본축구가 급속히 발전하고 월드컵 유치 등으로 라이벌 의식이 불붙으며 97년의 최종예선전은 양국간의 어마어마한 긴장감과 관심 속에서 진행되었고 진짜 이 경기는 양팀의 진정한 단두대 매치였음 영상에서도 느껴지지만 일단 경기장 분위기부터가 장난아니었음. 이경기에서 패한 후유증으로 일본은 탈락위기까지 몰리면서 감독이 경질되는 등 홍역을 치뤘고 한국은 이후 승승장구하며 월드컵본선을 조기 확정짓고 차범근 사단은 영웅이 되었음 이후에도 수많은 한일전을 치렀지만 이날의 한일전 처럼 양팀이 그야말로 목숨을 걸었다 싶었던 열기는 없었음
@gentleguy575 жыл бұрын
생방으로 봤는데 그어떤약보다 희열을 느켰을테다
@TheHueann7 жыл бұрын
제 기억에 적토마 고정운이 어이없는 실수로 일본에게 첫골 먹히고...그 후 고정운운 대표팀에서 볼수가 없었습니다...ㅠ
@mun82455 жыл бұрын
98월컵 본선에도 못나왓나요 저 실수 하나땜에?
@기리기리보이-n2g5 жыл бұрын
@@mun8245 저 실수라기보단 월드컵을 앞두고 같은 포지션의 고종수가 부상복귀하면서 고종수에게 밀린거죠...
@세눈박이6 жыл бұрын
2차전은 잠실서 발렸답니다. 우린 이미 프랑스행 티켓을 땄지만요. 02년 공동개최국이라 일부로 져줬다는 루머도 있었죠
@아메-r5z6 жыл бұрын
그때 축구 본 사람들 아시겠지만 움직임자체가 별로없었고 부상당하지않기위해 몸을 사렸던것같았음
@RRINA_A8 жыл бұрын
와 이때 큰아빠집에서 다들모여서봤는데 다들 소리지르고난리였지ㅋㅋㅋ
@kangpillrhee51776 жыл бұрын
90년대 한일전 정말 살벌했죠 골 먹히면 분위기 험악해지고....
@인디아나-i4b5 жыл бұрын
내도 당시 라이브로 보다. 도쿄 구장에 태극기를 보라. 마치 적진을 정복한 느낌.
@jyj101212 жыл бұрын
아... 정말 감동이었어요 이날 ㅠㅠ 아마 일요일이었던걸로 기억해요. 하필 시험기간이라 일요일에도 학원에 있었는데 학생중 한명이 워크맨/라디오 들고와서 걔가 점수 스코어 이야기 해주고 그랬었는데 첨에는 지고 있어서 다들 침울해서 공부 못하다가 마지막에 폭풍 역전에 흥분되서 공부 안됐었음 ㅋㅋ 그날 시험 공부 하는둥마는둥 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정말 뉴스마다 난리었었지. 계속 게임 하이라아트 보여주고 티비 앞에 앉아서 본거 또 보고 본거 또 보고 본거 또 보고 또또또또 봐도 계속 감동의 연속이었었음 ㅠㅠ 그게 10년도 더된 일이라니 ㅠㅠ 아련하다.....다시 이 장면 볼수 있어서 좋아요. 감사합니다 :))
@pjy2buy3 жыл бұрын
이제 23년 ㄷㄷㄷㄷ
@fjfjfjxj3 жыл бұрын
@@pjy2buy 참고로 저댓글이 9년전ㅎㄷㄷ
@jgb8505109 жыл бұрын
나는 병원에서 수술 받기 직전 외출 나와서 잠깐 이 경기 봄... 지금 봐도 지린다 ㅠㅠㅠ
@TheHueann7 жыл бұрын
Jun Geunbae 어떤 수술을?..?
@jgb8505107 жыл бұрын
hueann an 다리를 깁스했죠
@supac598 жыл бұрын
2분쯤 나오는 미우라가 지금도 일본리그에서 뛰고있다는 그 미우라인가보다 ㅋㅋㅋ 68년생
@KUDOS-d8e7 жыл бұрын
Supac o 맞음요. 미우라카즈요시
@아메-r5z6 жыл бұрын
미우라이후 일본은 스트라이커계보가 뚝 끈겼죠.미들진은 좀하는 선수들이 나오는데 확실히 마무리지어줄 공격수가 나오지않는게 일본축구의 고질적인 문제가 되었죠.만들긴 잘 만드는네 확실히 마무리해주는 해결사가 없음
@dontshotforinside9 жыл бұрын
ㅋㅋ저때 감독이 차범근이었구나....나 중학교때...생상하게 기억난다...축구만큼 뜨거웠던 응원전....홍명보,이민성,고정운,고종수,이을용,서정원,최용수,유상철....
@hkhjyy8 жыл бұрын
+dontshotforinside 저기 을용이형은 없었는데요
@supac598 жыл бұрын
이을용02요
@김우겸-g3x Жыл бұрын
98년도 월드컵 예선이 그립다^^^
@GTG-jn9ch4 жыл бұрын
화질이 제일 좋은 영상이네요. 일본 소마 나나미의 지독한 좌우돌파로 많이 흔들리기도 했지요. 적토마 고정운 볼 트래핑 하나로 역적이 된 상황에서 서정원 이민성이 고정운을 살렸습니다. 두고두고 고맙다 해야할듯 ㅋㅋ 이후에 잠실에서 2대0으로 패한건 아무리 봐도 이해가 안되는 경기.
@Mikoon33263 жыл бұрын
그때는 동기부여가 일본이 확실했어요... 우리는 본선행 확정이였고 일본은 다 이겨도 본선 po행이였으니... 그때 차범근이 선수들한테 한일전이라는 의미와 홈경기라는 동기부여를 시켜줬어야 했는데 좀 안일했던거죠
@삿갓김-b6f11 жыл бұрын
끝까지 기회를 노릴 필요가 있읍니다. 단 1분이라도 끝나는 마지막 일초라도 기회를 잘잡아야 한다는것을 이경기가 확실히 보여주고 있읍니다.
@그림그리는볼러4 жыл бұрын
이 경기 생생히 기억한다 아마 죽을때까지 잊지 않을듯...군대 상병 이었는데...후반전 30분까지 지고 있는 상화에서 갑자기 병장놈들이 소각장으로 작업을 시켰다 지들 축구보려고...지금 생각하면 아찔한 기억인데...도저히 나머지 경기를 포기하고 작업할수는 없었다 이게 어떤 경기인데...더더군다나 한일전인데...소대에서 나와서 다른 소대로 갔다 나는 3소대였는데 화기소대로 갔다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는 모른다 소각장 간다고 하고는 화기소대 tv로 어깨너머 경기를 봤다 서정원의 동점골 넣었을땐 얼싸안고 환호를 했다 그 이후 그 유명한 이~민성 그 골...진짜 목이 터져라 소리질렀다 화기소대 사람들은 내가 그 시간 소각장에 있어야함을 모르기에 맘껏 소리지르며 그 짜릿한 역전승을 즐겼다 그리고는 소각장으로 가서도 나 혼자 산에 대고 만세를 몇번이나 외쳤는지...ㅋㅋ 소각장에서 캔 짓누르고 쓰레기 태우면서 정말 군생활중 가장 기분좋게 작업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20년이 훌쩍 지났는데도
@유니주니-w9d4 жыл бұрын
저 당시 일본에 어떤 종목이든 어떤 이유든 지기만 하면 브베급으로 욕먹었다 저거 생방 보면서 이민성 선수 이름이 아직까지 잊혀지지 않는다
@회오리-q1g5 жыл бұрын
축덕으로 이끌어준 레전드경기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짜릿하다
@Ellianu11 жыл бұрын
Japan has come a long way - '98 World Cup was the first one they ever qualified for. Of course, it was already the 5th one for Korea and thanks to Korean football sharing its international experience to its Asian neighbours that football in up-and-coming countries like Japan could develop to a decent level of today.
@choongilee78979 жыл бұрын
추억이네요 ~ 97년 9월 28일 인걸로 알고 있는데 ~ 그 때 나이 초등학교 2학년이었는데~ 일본한테 골내줄때는 어린맘에 부들부들 봤다는 ㅋ
@SebumKoo8 жыл бұрын
전 이때 이후로 본격적으로 심하게 축덕으로 빠졌죠.
@jaylay16 жыл бұрын
다시봐도 찡하네 ㅠㅠㅜ
@cho304279 жыл бұрын
오히려 지금보다 이때 축구는 일본보다 우리가 훨씬 앞섰어요. 로페즈는 브라질 국적을 가진 선수였지만 일본으로 귀화해서 국대하던시절 아마 98월드컵 가려고 귀화 추진한듯해요
@dongkyuoh56717 жыл бұрын
우리가 뭘 훨씬앞서 저경기 접전으로 이겼지만 2차전 서울 경기 2:0으로 발린건 모르나
@레슬링-x7i7 жыл бұрын
dongkyu oh 그건 우리가 이미 확정짓고 완전 느슨하게 경기한거고
@TheHueann7 жыл бұрын
이완용죽일놈 92년 다이너스티컵 기준으로 해서 지금까지 경기 결과는 한번 이기면 한번지는 박빙이였고 경기 내용은 일본이 좋을때가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 결과가 박빙이였던건 좋은 스트라이커(황선홍, 안정환, 박지성)와 정신력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dongsubchoi94616 жыл бұрын
이미 94년부터 세세한 패스 플레이는 일본에게 밀리기 시작했음. 중동한테는 특유의 민첩성과 개인기로 고전...
@똥고북8 жыл бұрын
초등학교 6학년때 친구랑 새우깡 먹으면서 본경기
@김우겸-g3x3 жыл бұрын
대한민국과 일본이 경기 하는것 보니 멋지다
@khlee9012 жыл бұрын
이때 삼일절인가 광복절인가 그럴텐데 할튼 공휴일은 확실함 대박이었음 이민성 슛이 다 뒤집어졌음 들어가는 순간
@아뇨뚱인데요-i4j3 жыл бұрын
근데 이땐 해설들이 선수에 대한 준비성도 없었음 이경기만봐도 5:10 공중볼 다툼은 유상철인데 서정원 이라하고 7:01 일본 윙백 3번 소마의 슈팅인데 10번 나나미라고 말함 네덜란드전땐 이동국을 김동국이라 하시고.. 지금 해설진분들 진짜많이 발전하신거 느낌!!
@jinhopark99723 жыл бұрын
민성이형 원래 진리지!
@gwangwonyun46686 жыл бұрын
이때는 지면 일제강점기 다시오는줄알고 뛰던때ㅋㅋ
@pengguin4355 жыл бұрын
이때 명절이었던것 같은데..친척집에서 봤던기억
@soridaizin792 жыл бұрын
역대 축구한일전 순위 (흥행+경기내용) 1. 98월드컵 최종예선 3차전 (도쿄대첩) ------------지면 할복하는 분위기------------- 2. 86월드컵 동아시아예선 결승 3. 2012 런던올림픽 3-4위전 -----------지면 헤엄쳐서 귀국해야 하는 분위기 ---- 4. 94미국월드컵 최종예선 4차전 (도하) 5. 94히로시마아시안게임 8강전 -----------지면 두고두고 까이는 분위기 ------- 6. 2011아시안컵 준결승전 -----------지면 많이 아쉬워 하는 분위기 ------
@박준협-i2c6 жыл бұрын
이 때는 진짜 일본 씹어 먹겠다는 강력한 투지라도 있었는데.
@이제동-f7q4 жыл бұрын
지금은 부잣집아들들 대거포진되어서 몸사림ㅋㅋ
@길범근8 жыл бұрын
지금 봐도 소름돋네
@송지훈-o5q7 жыл бұрын
92년 다이너스티컵 승부차기 패배(A매치) 93년 미국월드컵 최종예선 0대1패(A매치)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8강 3대2승(A매치) 96년 애틀란타 올림픽 아시아예선 결승 2대1 승(올대) 대충 이런 스토리에서 98년 월드컵 예선에서 같은 조에서 붙은거임. 일본은 94년 월드컵에서 도하의 비극으로 한국한테 밀려서 본선에 못나간 상태였고. 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진출을 위해서 한국 타도를 외치던 상황. 그 상황에서 벌어진게 도쿄대첩이었고 결과는 보시다시피. 최근 30년 내 최고의 한일전 TOP1경기.
@SnakePark19424 жыл бұрын
이민성의 역전골의 파급력은 저 당시 상당했는데 카스CF는 물론 애국가 화면에도 쓰임. 한일전은 가위바위보도 지지말라는 말이 저 당시 나온말로 알고 있음.
@daramdaram22Ай бұрын
저경기이후 서울홈경기는 이대영 지구 그후 열렸던 동아시아대횐가 몬가랑 내리 4연패인가 당했었음
@xale23xx9 жыл бұрын
The Asian Derby
@likejaekyu6 жыл бұрын
이겼으니 망정이지..고정운은 저기서 무슨 짓을 한거임...지금 장현수, 김영권도 저러지는 않는다
@idolman736 жыл бұрын
바로 이것이 인터넷에 '도쿄대첩'이라고 치면 나오는 바로 그 경기...
@땅콩-c3m6 жыл бұрын
최용수 헤딩 지린다
@그림그리는볼러4 жыл бұрын
이 경기를 단 한마디로 표현한다면..................이 민 성
@Shootingstorm110 жыл бұрын
LoveLikeChrist 97년 9월말에 있었음 삼일절과는 반년차이
@마동숙-r3y3 жыл бұрын
선배들 라면먹고 한일전이겼는데 이것들이 빠져갖고 지금 패기도없고 절실도없고 자존심도없지
@LoveLikeChrist12 жыл бұрын
삼일절 쪼금 지나고 있던경기였던걸로 기억나네요
@라썰남TV7 жыл бұрын
김평지 공격본능은 여전하구먼.. 앞으로 나와서 또 골먹혔네
@윤성-t7w8 жыл бұрын
명승부였다는데 이땐 아직 축구를 잘 안보던 나이라서ㅜㅜ
@홍석현-u4g9 жыл бұрын
98년생이라서 못본게...
@김인준-v9u3 жыл бұрын
카타르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일본 만나면 이런 역사를 한 번 더 볼 수 있을까???
@justahyundai12 жыл бұрын
whats with the epic intro lol
@고창훈-f3g6 жыл бұрын
이때 일본이 패한 이유는 1대0 상황에서 잠그기 작전으로 공격수 로페즈를 빼고 수비수 아키타를 넣은 바람에 1대2로 패한 이우고 우리나라는 체력이 떨어진 일본을 맞서 투지가 아니 이길려고 하는 마음이 일본보다 더 앞섰다고 생각합니다.
@아메-r5z6 жыл бұрын
그당시 감독의선택이 나빴다고 생각치는 않는데 결과가 안좋으니 언론의 뭇매를 맞았죠.우리에게 홈에서패하고 멘탈이 무너져 이후 카자흐,우주백전도 안좋은 경기결과가 나왔고 결국은 경질.우리가 그때 홈경기 비기거나 이겼으면 아랍에메이트가 조2위하는거였는데 그냥 죽기살기로 이겨버렸어야하는데 지금 생각하면 아쉬워요
@김호치-k4y4 жыл бұрын
나나미 나나나
@jgb8505109 жыл бұрын
본선 E조 멕시코 1 : 3 ( 운 없음..) 네덜란드 0 : 5 (실력차) 벨기에 1 : 1 (제일 잘함)
@속사포랩퍼-n4h2 жыл бұрын
멕시코전이 모가운이없엇냐? 후반가서 개털렷구만
@김광식-d1c7 жыл бұрын
서정원 멋있네
@luckyrupang7 жыл бұрын
송재익 신문선 콤비 절정의 시기
@changchman7 жыл бұрын
럭키루팡 송재익,신문선 비꼬기의달인들 지들이 싫어하는선수는 무조건 까고보는 전형적인 꼰대스타일해설 믿고걸렀지
@koranee41358 жыл бұрын
이때만 해도 일본은 중국과 막상막하 실력임 ..한국은 가장 지원이 없는데도 아주 잘해준편
@KUDOS-d8e7 жыл бұрын
tim jane 그건아니고 90년대축구 잘 아는데 당시 중국은 그냥 쩌리였고 한국,사우디,이란, 일본 걍 4강체재였고 가끔 이라크, 쿠웨이트가 복병이었고 특히 한국이 쿠웨이트한테 약했음. 승보다 패배가 많았던 국가가 쿠웨이트. 일본은 80년대까지는 축구지원 없어서 쩌리였는데 90년대와서 j리그창설되고 졸라 발전했지, 그리고 무슨 그때 한국축구지원이없음? 오히려 일본이 축구지원이 더 없었음. 90년대와서나 지원한거지. 90년대 이후부턴 그 누구도 승리를 장담못함. 이겨도 한골차 승부였고 져도 한골차 승부, 그에비해 중국은.. 말안해도 알거임.
@TheHueann7 жыл бұрын
kora nee 이때 중국은 우리나라를 단 한번도 이긴적이 없었고 일본은 92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와 실력이 비슷해졌고 경기 결과는 5대5였지만 경기내용은 일본이 앞설때가 많았습니다.
@아메-r5z6 жыл бұрын
이경기전까지 90년대이후 전적은 정확히 호각이었음.90년대들어 일본은 아시안컵우승으로 자신감이 절정이었고 심지어 이전 94최종예선에서 우리가0대1로 패배했음.지금은 2002~2010이 우리축구 최고전성기라 90년대이후 전적도 근소하지만 앞서고있죠.그리고 우리는 압박형 선굵은축구고 일본은 패스축구인데 몸싸움을 아주싫어해서 상성상 우리에게 약합니다.스타로치면 테란대저그라고 생각하면됩니다
@drpepperzerosugar5 жыл бұрын
그건 오바고 저 땐 일본축구가 급성장해서 스타플레이어도 나오고 처음으로 한국 넘어서려던 시기였음.
@김건-r1v3 жыл бұрын
이때 중국은 껴주지도 않았음.. 공한증 걸렸을 때라 한국의 밥이였는데 무슨 일본과 막상막하?
@Snowstorm33911 жыл бұрын
It's not Japanese football.... Its called soccer.
@jungtang1817 жыл бұрын
문제는 이 경기이후에 홈으로 불러서 치뤘던 경기는 개털림... 2대0이었던걸로 기억하는데... 내기억으론 거의 미우라하고 로페즈한테 농락당하는 수준이었음...
@레슬링-x7i7 жыл бұрын
개중탕 이미 본선진출 확정 짓고나서 한 경기라 사람들이 신경쓰지도 않았고 대표팀 분위기도 느슨했음
@아메-r5z6 жыл бұрын
2002공동개최로 한국이 일본에게 일부러져준게아니냐고 당시 일본과 2위싸움을하던 uae가 항의했음.그만큼 눈에띄게 그날 우리선수들 움직임이적었고 일본을 늘 때려잡던 강한 몸싸움도 별로 안해줬어요
@Dinger-it8hy3 жыл бұрын
고종훈?? 아니 왜 일본에 공격쪽으로 가져가는지.. 지금 봐도 그래서 띨띨한..
@liuhansung902712 жыл бұрын
뭐야 일본은 저때도 우리한테 발린거야?
@허걱-x7q9 жыл бұрын
일본 첫골 똥파리슛이라고 해서 저거 축구할 때 써먹어보려고 했던 기억이...
@종남점김6 жыл бұрын
그 유명한 도쿄대첩. 이민성은 인생골로. 아직까지 회자됨ㅋㅋㅋㅋ
@geunbaejeon2934 жыл бұрын
나 이경기 6학년때 할머니랑 봤음..
@lakjhlj8 жыл бұрын
ㅋㅋㅋㅋ 고정운 역주행
@siriuso24323 жыл бұрын
ㅅㅂ 제발 한국 유니폼 정체성을 빨-검으로 확립하자. ㅈㄴ강해보인다
@maxchoi63943 жыл бұрын
적토마 정운이형 왜 그랬어 ㅜㅜ 민성이형 중거리는 진짜 뽀록 맞음 ㅋㅋㅋㅋ
@ZizonXJun12311 жыл бұрын
nope, we didnt learn ANYTHING from them and we play different football. We play physical and they dont. Two major football forces of Asia no doubt.
@jeongtaewoo42679 жыл бұрын
이때 일본의나카타를처음봤다
@dakddykim83674 жыл бұрын
다음에 홈에서 했던건 1대0인가 2대0으로 졌던거 같은데
@genesisrevelations742710 жыл бұрын
한국 축구 66위
@만희-w5q4 жыл бұрын
이민서어어어어어어엉~~~~~~~~~~~!!!!
@근육맨-j4j6 жыл бұрын
감독. 차붐. 굳이예요
@CC-wo3nl7 жыл бұрын
도쿄대첩 후에 잠실비극 제기랄...
@huru0012 жыл бұрын
눈물난다... 내 나라 내 조국... 대한민국!!!
@김건-r1v3 жыл бұрын
아직도 기억난다. 차붐이 선수로는 최고였으나 감독으로써는 별로였음. 저 때 멤버가 윙에 서정원 고정운이라는 역대급 야생마 두명에 원톱에는 아시아 한정 공중볼 다 따내는 독수리 최용수가 있었고 무려 홍명보 유상철이 전성기 시절이라 선수빨로 버틴거지, 전술 진짜 이상했음. 3-6-1이 뭐냐. 거기다 하석주 윙백은 공격에 미쳐가지고 수비보다 공격가담을 더하려고 함. 그래서 그 뒷공간 계속 뚫리고
@Mikoon33263 жыл бұрын
인정... 저때 멤버 자체는 차범근의 말대로 8강은 운빨에 맡겨야겠지만 진짜 본선 16강을 비벼볼만한 수준이였는데 전술이...;;; 고정운은 저때의 한순간의 실수로 국대 호출은 영영...
@김영덕-w2w6 жыл бұрын
그런데 바그너 로페즈는 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냐 웬만하면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지
@김민겸-m6t9 жыл бұрын
근데저때우리나라도일본도되게잘햇다....,저때우리나라선수중해외파선수있엇나?
@jgb8505109 жыл бұрын
김민겸 없었어요 ..
@dontshotforinside9 жыл бұрын
+김민겸 저땐 해외파 거의 없었음....그전에 차범근 정도가 있을 뿐이엇고 2000년도 쯤부터 국내일부선수들이 벨기에,네덜란드로 몇명정도가 이적하는 수준이었고....
@hkhjyy8 жыл бұрын
+김민겸 밑에 두분 뭔소리들 하시는지 일본은 해외 아님ㅋㅋ??저때 J리그파가 다수였음
@baki85jin808 жыл бұрын
+박승효 2000년 초반 국대급은 거의j리그 였고,유럽파가 없었지..안정환 이동국 정도가 이태리 독일 이었고
@KUDOS-d8e7 жыл бұрын
dontshotforinside 서정원 프랑스에서 활약했던시기아닌가요? 그건 프랑스월드컵이후였나?? 검색해보니까 맞네요. 92년에 바르셀로나, 레버쿠젠으로부터 영입제의 있었는데 군대문제하고 당시 소속구단 LG가 거절해서 무산, 그리고 이경기 당시 97년 벤피카에서 영입제의 있었으나 대한축구협회에서 미움받아서 못갔다고하는데 자세한 서막은 모르겠네요.
@김현우-n6k9 жыл бұрын
예선이기고 본선에서 참패당함
@jadekim76978 жыл бұрын
아시아는 우물안 개구리 동네 축구 알고 있나요? 프랑스 월드컵 새로운 영웅 오대영 감독 탄생 아이고 차차차차
@MultiJongho4 жыл бұрын
아시아판 엘클라시코 ㅋ
@AK-mt9om11 жыл бұрын
uh......who said...?
@4561-c4t10 жыл бұрын
magunam st//부들부들 하노?
@drpepperzerosugar5 жыл бұрын
저 경기 져서 일본 감독 바로 짤림 ㅋ
@김현식-z3z6 жыл бұрын
이경기후 일본가보슈감독 해고됨
@아메-r5z6 жыл бұрын
두경기 더하고 경질됬어요
@태무영11 жыл бұрын
Korea sports is somehow dramatic
@무려0살차이8 жыл бұрын
일본은 맨날 우리나라한테 지면 월래 안된다는다는데 무조건이겨야되다던데 일본은 아주맨날 쌩쇼를해요
@우웨하라7 жыл бұрын
야마구치 스시메시 인데
@이명훈-c7t5 жыл бұрын
꽁병지보소ㅎㅎ
@Mappagi12313 жыл бұрын
로페스 일본인아닌거같은데 일본에서뛰네?
@magunamst680311 жыл бұрын
일본의 축구는 정말로 훌륭하다. 박선수가 잘 된 것은 일본에서 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은 야구도 강하기 때문에 존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