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태안군 문양목 생가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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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유적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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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күн бұрын

문양목(文讓穆, 1869~1940)은 태안군 남면 몽산리에서 태어났다. 1894년 동학농민전쟁이 발발하자 적극 참여하여 반봉건·반침략을 목적으로 혁명투쟁을 전개하였으며, 1903년 경기도 인천에서 서당 교사로 활동하면서 민족의식을 고취하던 중 일제의 한국 침탈이 노골화되어 가자, 국권회복운동에 투신할 목적으로 1905년 하와이 사탕수수농장 노동자 모집에 응모하여 하와이로 망명하였다.
1906년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간 그는 1907년 3월 장경·백일규 등과 함께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대동보국회(大同保國會)를 결성하고 1907년 10월 중앙회장에 선임됨과 동시에 동회 기관지인 대동공보사 사장 겸 발행인을 겸직하면서 국내외 동포들을 대상으로 국권회복 의식을 고취시켰다.
1908년 3월 대한제국 외교 고문인 스티븐스가 샌프란시스코에 와서 일제의 한국 침략을 정당화하는 발언과 글을 신문 지상을 통해 발표하자, 그는 스티븐스를 방문하여 그의 발언을 정정 취소할 것을 요구하였으나, 스티븐스가 거절하자 그를 구타하고 돌아와 그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였다.
그 이튿날 전명운·장인환 의사가 스티븐스를 처단하자, 양 의사의 재판후원회를 결성하고 판사전권위원으로 임명되어 양 의사의 재판 후원 및 후원경비 조달, 변호사 교섭 등을 담당하면서 공판 과정을 '독립재판(獨立裁判)'으로 규정하는 등 재판 과정을 통해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구미 각국에 널리 인식시켰다.
1908년 7월에는 미국 덴버에서 박용만(朴容萬)이 개최한 애국동지대표회를 후원하였으며, 박용만이 네브라스카주에 한인소년병학교를 설립하자 이를 적극 후원하였다.
1911년 2월에는 대한인국민회 북미지방총회 회장에 당선되어 군인양성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독립군 기지 개척과 해외 한인의 통합기관을 조직하기 위해 시베리아와 만주 지역에 지방 총회를 설립하기도 하였다. 그는 대한인국민회의 중견 간부로 활동하면서 1940년 12월 25일 사망할 때까지 항일운동에 매진했다.
제공 : 항일영상역사재단(제작 202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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