료마는 4차원적인 인물인것 같습니다...대체로 넓은 시야를 가진것 같고, 소설로 과장했다손 하더라도... 행동적이면서도 현실과의 타협도 잘 이루는 인재라고 봅니다... 이 분이 모든걸 한것은 아니지만 한 올의 실이 되어서 큰 천을 이어주는 역활을 했다는데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분은 여러 재밌는 삶을 살으셨기에 한번 일생기를 읽어보는 것도 재밌다고 추천드립니다....
@friendwhale80867 ай бұрын
역시 이채널은 울림이 있어요. 씨네모리님의 생각은 비하도 근자감도 아닌 담담함이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됩니다.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daewookkim47957 ай бұрын
이런 영화를 어떻게 찾으시는 겁니까? 진짜 고전영화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진심으로 이 채널은 꼭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될 정도니.............
@Hambak-Island7 ай бұрын
감성팔이, 시체팔이 제가 굉장히 싫어하지만 한국에서는 유독 이런게 먹히는거 같아요. 료마가 간다, 대망 둘다 재밌게 봤는 소설인데 일본사 흥미있으신 분들은 이 소설들 추천드릴게요
@카마치7 ай бұрын
감사히 잘 보겠습니다ㅋ 근데 이런 영화는 어디서 구하시는겁니까ㅋ
@admiralyisoonshin49957 ай бұрын
씨네모리님의 채널을 늘 시청하면서 상세한 설명과 분석에 늘 감탄합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
@riversideu7 ай бұрын
남심을 흔든다고 하면서 자막은 낭심이라고 대놓고 써서 사실과 흐름에 충실한 이 감성을 나는 사랑한다.
@apro13637 ай бұрын
흔들린 낭심이 있다는 것은 남자의 자질이니... 😅
@evenstararwen93676 ай бұрын
사카모토 료마였습니다. 뭐 잠깐 (머리가 안 벗겨졌네?)...... 료마라 치고.
@다사나-x9l7 ай бұрын
4:52 자본이 곧 힘이다. 무서울게 없었던 사무라이들도 결국 자본의 힘앞에 무너지고 메이지 유신을 받아들일수 밖에 없었고 일본은 하나가되어 근대화에 성공함...
@유석민-o4g7 ай бұрын
역시~~ 영상보다 더 재미있는 씨네모리님만이 하실수 있는 식견있는 나레이션 너무 좋네요^^
@형섭김-u5g7 ай бұрын
역시 이 채널의 영화들은 정말 주옥 같습니다. 유튜브 보고 있으면 시간 낭비 같다가도 이런 좋은 채널 보면 그나마 위안이 됩니다. 옛날 일본 영화 보면 지금의 일본 영화나 들마 수준이 믿겨 지지가 않을 정도 입니다. 좋은 영상 감사 합니다.
@LVCIVSBRVTS7 ай бұрын
멋지게 나온 료마만 보다가 진짜 사람 잡아먹게 생긴 도깨비 료마는 처음보니 어색어색하네요 ㅋㅋㅋ
@박진수-d5u1b7 ай бұрын
이게 맞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mpire_KOREA_18977 ай бұрын
11:19~11:46 저렇게 방대한 양을 2시간으로 압축해서 만들려고 하니까 영화에서 빠진 부분이 많았군요.. 어쩐지 리뷰 영상 시청할 때도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있어서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이해가 안되는 것이 정상이었네요. 오늘도 좋은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시청하고 갑니다.
@harrykim53327 ай бұрын
드라마 료마전의 영상도 일부 있네요 료마전을 정말 재밌게 봤었는데 보고나서 씨네모리님 영상을 보니 더 잘 이해되는거 같습니다.
@이지훈-x8d7 ай бұрын
료마같은 토사번의 하급무사들은 원래 희망이 없었습니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토사번의 주인은 동군에 가담했던 야마노우치가 차지했고, 그는 자신이 본래 거느리고 있던 가신단만 중용하고 토사번의 토착 무사들은 학살하거나 말단직에만 고용하였죠. 그래서 토사번의 하급무사들은 늘 기존 질서와 그 상징인 막부에 불만이 많았고, 막부 타도 운동을 주진하게 됩니다.
@starman69647 ай бұрын
일요일 아침에 늦잠자고 일어나서 유튜브 들어오면 올라오는 씨네모리님 영상... 커피 한잔 하며 보는 이게 행복
@taehunlee-rj2cn6 ай бұрын
저 일본 사무라이 계층은 매우 생존력이나 생활력이 비교선상에서 기본으로 갖추고 있었을 것이 분명하고 인구구성비는 늘 점진적으로 증가 해왔습니다. 한편, 이유없는 자본축적이나 자본 주체역 사수 그리고 생명 연장을 노리는 특수 계층은 일부 구역 내부에서 단체로 군집해 지냈었습니다. 지금도 그 특수계층의 인구는 매우 급감 중이고 시대적으로 이유없는 경제성장 지상주의 시대는 잠깐이 될 것으로 전망합니다. 존재 해야만 할 논리성이 부족한 계층을 특수계층으로 칭합니다.
@춤추는로7 ай бұрын
료마가 죽고 보신전쟁이 나서 전 국토가 전쟁의 피해를 입죠 6.25전쟁처럼
@forroom52576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정말 좋은 내용이네요~
@소년20세기2 ай бұрын
씨네모리님 국뽕이나 감정은 거르고 냉정하게 바라보시는게 좋네요 좋아요
@BrightChang-p4h7 ай бұрын
의구심과 무지는 죄가 아님을ᆢ 무릎을 탁 치고 갑니다
@엘랑-m6k7 ай бұрын
일본 근대화 성공에는 조선과의 체급차이도 있죠. 근대화 이전에도 진짜 자본주의 맹아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상업이 발달했기때문에.
@Everglades-h1y7 ай бұрын
사공농상의 최후
@Yanglee1567 ай бұрын
그냥 발전한 고려네
@자룡-q4j7 ай бұрын
@@Everglades-h1y 일본도 조선 못지않게 상업을 천대했습니다. 혹자들은 일본의 대상인들 이야기하는데 당시 조선의 경우 임상옥같은 역사에 이름이 남을 정도의 상인들이 즐비했고요. 일본이 아시아의 넘버원이 된 건 서양과 먼저 교류를 하고 딱히 뜯어먹을 자원이 없었기에 발전한 겁니다. 페리제독이 일본이 아닌 조선으로 뱃머리 돌렸으면 역사가 바뀌었을 겁니다.
@user-ls2lk5xe1p7 ай бұрын
@@자룡-q4j 또 국뽕이야?
@ahamorten74177 ай бұрын
@@자룡-q4j 임상옥은 당시 일본거상이나 중국 거상하고 비교해서도 중견도 될까말까 좆소와 중견 사이입니다 급이 달라요 현대 주식 차트표있죠? 에도시대 나온겁니다 공부하세요
@AppleJimed7 ай бұрын
미디어는 좀 미디어로 봐야 하는데 그게 진짜 역사인줄 알고 매국고 민비나 고종을 무슨 애국지사마냥 떠받드는 국뽕의 무지함과 위험성에 대해 한번더 생각해보게 해주는 좋은 영상이네요
@user-maniaKim7 ай бұрын
감성이 진실을 커버했던 시절 ㅋㅋㅋ 료마도 시대가 변했으니 이젠 다르게 묘사될 필요가 있을 듯 하네여.
@보노보노-z8s7 ай бұрын
부러울뿐 우리는 서태후같은 민비와 저능아고종이 말아먹었지
@얌얌쩝쩝-z6z6 ай бұрын
@@보노보노-z8s 조선은 중앙정부가 너무 막강했음. 일본보다 먼저 왕(덴노)에게 권력이 먼저갔던것도 뭐.. 운기칠삼이라고 노력도 운이 따라와줘야 날개를 다는것. 우리는 너무 공자왈 맹자왈~ 운이 없었음.
@asterial11787 ай бұрын
대한민국 역사에서는 사라진 일본사 1600~1867(메이지 유신). 이시기 일본 상공업 발전등 동아시아 경제 최전성기로 이미 청 경제력을 능가하는 수준임. 일본의 아시아 침탈은 개화를 일찍해서가 아니라 경제에 걸맞는 군대가 이미 조직화 되어 있었기 때문임. 사초동맹의 중심인 사쓰마번(가고시마현)의 해군과 초슈번(야마구치현)의 육군이 이시기에 기반이 닦임.
@ignisilluminati6 ай бұрын
아무리 그래도 청나라는 논외지. 청이 암군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강희제같이 중국사 세종대왕급 군주도 있었는데.. 일본이 잘나갔대봐야 청말 제외하면 청은 세계 GDP 몇십퍼를 가졌던 나라임
@이대순-v4k6 ай бұрын
그렇죠. 영국이 청과의 무역에서 적자나자 마약을 팔았죠. 무역으로 안되니 전쟁으로 해쳐먹은 거죠. @@ignisilluminati
@PrettyT-rex6 ай бұрын
청 경제력에 비비는건 무리지
@이대순-v4k6 ай бұрын
영국이 일본 키웠다구 함. 그래서 일본으로 러시아의 남하를 막음.
@vorstellung38617 ай бұрын
조선과 일본과의 격차는 원래 심했습니다... 농업생산량을 기반으로 중근세 GDP 통계를 내보면 가마쿠라 막부, 그러니까 고려 중기부터 이미 역전됐었고 조선 초중기로 들어가게 되면 조선이 성리학적 교리에 빠져 상공업을 천시하는 동안 일본은 열심히 자기네들끼리 치고받으면서 가뜩이나 국토 크기 차이, 인구 차이로 나던 격차가 더더욱 심해지게 되죠... 애초에 임진왜란으로 바다 건너 타국에 수십만을 동원하고 보급까지 하면서 십수년 전선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국력의 격차를 보여주는 겁니다. 고려말 한국은 육로로 바로 옆동네 요동정벌 한다 만다 하다가 이성계가 안 된다고 뻐팅겨서 징징대고는 쿠데타로 나라 먹은 거랑은 다르죠...근대에 일본이 운 좋아서 갑자기 졸부가 됐다 이런 식의 인식부터 바꿔야 됩니다.
@ignisilluminati7 ай бұрын
고려 중기부터 역전된 건 몽골의 침입 때문입니다. 사실 몽골제국이 너무 과거의 일이라 종종 잊혀지곤 하지만, 여몽전쟁기에 한반도가 입은 타격은 일제강점기나 한국전쟁에서 입은 타격에 비해서도 몇 배는 된다고 봐야 합니다. 기원전부터 한반도(고백신, 남북국, 고려)는 항상 당대 세계의 7~8위 정도에 꼽히는 생산력을 갖춘 지역이었지만, 몽골의 침입 이후 오늘날에 그 지위를 되찾기까지는 거의 천년이 걸렸죠.
@vorstellung38617 ай бұрын
@@ignisilluminati 아 네... 사실 여몽전쟁으로 한국사가 전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습니다. 어쩌면 몽골에게 갖가지 보물과 문화재가 불타고 국토가 황폐화될 때 일본은 가미카제로 넘길 때 양국의 문명적 운명이 정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결국 한국의 막부라고 할 수 있는 무신정권이 망한 것도 몽골 때문이었고, 권문세족 때문에 등장한 신진사대부가 성리학으로 한민족을 한족의 노예로 종속시키는 근본적인 원인도 그것이었으니까요...
@power_lover_ilb7 ай бұрын
@@vorstellung3861 카미카제도 영향을 준거맞는데 일본본토에서 이긴것도 맞음 ㅋ
@DamulStation-vk3hp2 ай бұрын
뭐 단적으로도 일본이 국토가 더 넓습니다. 별 노력 안해도 쌀 생산량이 2배는 됐을 듯. 그리고 역시, 봉건제로 인한 각 번의 경쟁.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니까 말이죠.
@wqlxcrtyzmwqzxf-t1l2 ай бұрын
군사력의 격차는 심했지만 당시 일본 서민들의 삶은 조선 민중들 만큼 힘들었다. 두 나라 뿐 아니라 19세기 전세계가 어땠는지부터 좀 찾아봐... 제발!!!!! 일본은 전쟁하려고 집안에 있는 쇠붙이 다 걷어서 무기 만들던 시절이다. 서민들 등골 빼먹던건 조선이랑 똑같았어. 뭘 좀 알고 떠들자... 일본이 무슨 유토피아인줄아나봐... 표면상으로 노예제도가 폐지됐을 뿐. 철저한 계급사회였고, 뒷골목엔 거지떼가 바글바글 쌀도 없고 군인들 먹여살려야된다고 국민들은 오니기리에 오매부시만 먹고 살았고 그마저도 못먹고 굶어죽은 사람들 천지... 서칭하다보면 나오더라구 ㅠㅠ 그렇게 사느니 조선의 노비가 낫겠더라 ㅠㅠㅠㅠ 일제가 조선 침략했을때 일본의 가난한 노동자들이 우리나라로 일하러 왔었지...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서... 그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일본 제국주의, 천황제 파시즘에 항거하고 조선의 독립을 지지했다. 그건 '반일'이 아니라 '항일 투쟁'이었다. 일본인들 조차 제국주의에 반기를 들었는데 ㅅㅂ 이건 뭐.... 2024년 대한민국에서 제국주의 일본을 빨아재끼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왜이렇게 많은거야.... 니들은 그저 천황숭배론자들에 불과해.... 조선의 탐관오리들 병 ㅅ ㅣㄴ 같은 민비 ㄴ ㅕ ㄴ 돼지 찌 ㄴ ㄸ ㅏ 고 종 욕하는 건 좋은데 일제를 찬양하면 안되지 ^^ 식민사관, 자학사관 좀 버리고 역사 공부 좀 제대로해. 북한 김정은 보다 나쁜 제국주의자들아 ^^
@klausfeuermann38257 ай бұрын
8:55 계속 그렇게 발음하시더니...기어이 이렇게 자막을... ㅋㅋㅋㅋㅋㅋ
@가즈아-s9o7 ай бұрын
저녁먹을때마다 보는데 하루에 한개씩 업로드해주심 안되나여?ㅠㅠ(너무 재밌어서....)
@아카렌가7 ай бұрын
토사번 여행 가보니까 공항 이름부터 사카모토료마공항 ㄷ
@ruind.85117 ай бұрын
일본 개항시기 역사도 되게 재밌죠 에조 공화국도 그렇고 일본도 개항 하나 하려고 그렇게 자기들끼리 싸운 것 같아요 조선도 망조가 들어가던 시기였는데 역성혁명이라도 일어나서 조금이라도 개항에 긍정적이었던 왕이 생겼다면 어땠을까라는 망상도 해봅니다
@곽상준-i7y7 ай бұрын
일본사회가 왜 메뉴얼에 얽메이는지 이역사 보니깐 알겠네 번이라는 일본지역사회부터 철저히 따르는데 근대화이후 현대사회 통합메뉴얼을 철저하게 지킬려고하는것도 마찬가지겠죠 따지고 보면 일본도 미국같은 주 개념을 지들이 먼저 시작했는데 근대화로 저렇게 무너지네
@ignisilluminati7 ай бұрын
일본은 위로부터의 개혁으로 만들어진 나라고 이런 나라들 특징이 매뉴얼에 하늘같은 권위를 부여하는 것.. 유럽도 비슷한 역사적 행로를 따른 독일의 경우 사람들 기계적이고 칼같기로 유명하니. 반대로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주류였던 미국이나 프랑스같은 나라들은 정해진 매뉴얼보다 마을이라든지 소집단 내의 규칙을 융통성있게 해석하는 편
@이대순-v4k6 ай бұрын
번 영주가 주개념이군요. 일왕에게 힘 실어줄려면 영주가 없어져야죠.
@abcdefghi4467 ай бұрын
료마에 대한 다른평가도 있죠. 막말의 탁구공..진짜 흑막들은 속내를 숨기고 료마를 이용해서 여기저기 찔러보며 뒤에서 조정했단 가설인데, 당시 분위기를 보면 가능성있다고 생각합니다. 헌데 료마의 위치에서 할수있는게 많지않으니 필요에의해 서로 이용했다고 생각합니다.
@persono27 ай бұрын
갠적으로 료마는 유신 이후 체제 결속용으로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보나 청소년 권장도서로써는 삼국지 보다 료마가 간다를 추천하게 됩니다. 삼국지 인물들은 국가나 지역 공동체를 소모시켜 출세하려는 넘들이나 1860년대 일본 얘기들은지역공동체나 국가에 대한 애정들은 약간이라도 있는 넘들이 많았음
@jejang45757 ай бұрын
시바료타로의 소설에 의해 부풀려져 있어서 그렇지 료마의 역할이란 것이 그의 스승 가츠가이슈의 행동대원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고 하더군요. 90년대 잃어버리고 잃어 버릴 세월에 대한 젊은이들의 야망에 불을 지펴줄 소설에 의해 료마는 재탄생 되었다고 보는게 맞을 겁니다. 한시대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영웅 만들기는 인간의 역사가 지속 되는 한 영원할 것입니다.
@에르브2 ай бұрын
일본입장에서는 애국자가 맞고 우리입장에서는 정한론자임-북해도랑다케시마(우산국(울릉도)개척하자고 했어요 다만~일찍 암살되어서 그뜻?을 이루지못한것임
@vivalaguerra78737 ай бұрын
사실 료마는 체게바라처럼 실 영향력이 엄청나게 과장된 일개 아이돌에 불과하고 삿쵸동맹이 형성된 이유는 당연 양 번의 이해관계가 일치했기 때문이죠. 에도막부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대정봉환은 일개 하급무사의 탄원이 이유가 아니라 당시 일본 내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존황론에 맞설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고 요시노부는 대정봉환을 단행함으로써 오히려 존황론을 근거로 토막을 주장하던 삿쵸동맹의 명분을 제거해 버리는 정치적 이득을 거두었습니다. 보신전쟁도 궁지에 몰린 삿쵸군의 발악이었는데 토바후시미에서 대규모의 막부군이 어이없게 패배하면서 막부도 어처구니없이 몰락함에 따라 삿쵸동맹이 신의 한수로 결과론적인 평을 받는 것에 가깝습니다
@j86637 ай бұрын
조선에도 료마랑 비슷한 사람이 있다면 김옥균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암살당해 죽었다는것도 같구
@power_lover_ilb7 ай бұрын
고종이 암살함. 근데 아직도 고종을 시대를 잘못탄 왕이라 하는애들 많은데 고종은 김일성 이완용급
@에르브2 ай бұрын
급진개화파이고 주도했던 갑신정변이 3일만에 실패했죠ㅠ 만일 성공했으면 역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할때도 있어요
@소년20세기2 ай бұрын
아무래도 김옥균은 메이지 유신의 주약중 하나인 후쿠자와 유키치의 영향을 마니 받앗고 그를 스승으로 삼기도 햇으니까
@doug-zk3ck6 ай бұрын
중국의 삼국지, 초한지,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스, 료마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어낸 작가들이 정말 부러워요.
@klausfeuermann38257 ай бұрын
료마와 오료라는 이름의 주인공들이 만화에서 상당히 긍정적이거나 진취적이더만...이런 이유가
@snowkwon86836 ай бұрын
그당시 막부는 개국과 서구열강과의 통상에 관심이 있었고, 각각의 번세력은 존왕양이 즉 천왕을 중심으로 외세에 반대하는 입장으로 대립했는데, 이를 통합해 천왕을 지지하며 외국과의 교류로 근대화를 이루는 개혁을 수행하는 기반을 조성한게 소위 "풍운아"료마의 공이고 일본의 행운이죠. 일본역사는 알면 알수록 역동적, 흥미롭고 배울게 있다는....
@BK-im5hp6 ай бұрын
9:08 유격 유격~~ 우리는 근대화가 없기떄문에 일본의 흥망과 패망을 보면서 그리고 중국의 흥망을 보면서 문화의 흥망도 좋고 한강의 기적도 좋지만, 이미 다가온 4차혁명 AI혁명시대에서 살아남기위한 전략 또한 씨네모리님과같은 수많은 갑자기 들이치는 드립의 컨텐츠의 재미를 즐겨야합니다. 아름다운 컨텐츠입니다. 6:40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1 의 아름다운 격투장면에서 나온 수전? 오렌이시이 vs 베아트릭스 키도 격투장면이 생각납니다.
@백성윤-w5s7 ай бұрын
이번에도 영상 재밌게 잘 봤습니다. 그런데 5:08에 가문 문양은 사츠마번의 것으로 사료되는데 아닌가요?
@IKURA_love5 ай бұрын
5:08 쵸슈인데 사쓰마 심볼이 나오네요. 감독이 저런실수를.... 12:24 해정대 --> 해원대
@funhunter1017 ай бұрын
일본 근대화기에 큰 일은 해낸 사람으로 일본에서 오다 노부나가 만큼이나 존경받는 인물이라고 일본은 개화기에 이렇게 갈등이 있었지만 정반합의 논리로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는 것이 조선과는 다른 양상이네요
@vorstellung38617 ай бұрын
조선이 앞선 것처럼 보이는 건 단순히 중국의 문물을 먼저 받아들였기 때문이고 근대 이전까지 중국을 높게 쳐주던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조선으로 대리만족을 하던 것 뿐 실제로는 우키요에가 서구를 휩쓸었죠...
@ytking64277 ай бұрын
NHK 대하드라마 료마전 초강추합니다
@MrJoongwook7 ай бұрын
일본이 군국주의에 물든 제국주의로 나아갔던 것은 물론 잘못된 방향이었으나, 최소한 그들에게, 료마와 같은 뚜렷한 소신과 꿈과 야망을 품은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은 일본인들에게 큰 기회였던 것이 분명하다. 조선인들이 세상 넓은 줄도 모르고, 아까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바다 너머의세상을 배척만 하며 살다가, 아까운 기회를 잃어버렸던 것과는 많이 다르다. 일본인들이 군국주의의 오만함과 오류에 빠진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기는 하나, 최소한 그당시 그들은 미래를 향한 꿈이 강했다! 그때 우리에게 없었던 것이다.
@delideli5877 ай бұрын
료마 한사람으로 인해 시대의 흐름이 바뀌는 것도 아니고, 일본의 막부든 유신파이든 개화에는 공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근대화에 큰 지장은 없지 않았을까요?
@아준정-q9v7 ай бұрын
2010년작 NHK대하드라마 "료마전" 보시길...볼만합니다. 물론 한국대하드라마가 워낙 강약이 강하다보니 료마전이 대비되어 약간은 늘어지고 극적인 재미요소는 적지만 최근의 일본대하드라마중에서는 추천할만한 작품입니다. 료마의 여자 3인방 모두 이쁘구요. 단 거슬리는게 료마의 덧니;;; 꼭 개그맨 정준하의 살빠진 얼굴의 덧니가 떠올라 아쉬움
@이코니코니7 ай бұрын
08:55 낭심을 흔들었으니 료마도 어쩔수 없었던 것이었군요!
@박성빈-e8v7 ай бұрын
잘 보고 갑니다.
@Political-MV7 ай бұрын
10편의 책을 두시간으로??극단적인 압축도 쉬운일은 아닐듯합니다.
@ninehappy83636 ай бұрын
시카모토 료마 드라마를 찾아 보시면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겁니다 (48부작) 미쓰비시 창업자 (이와사키 야타로) 료마의 부인 (우에노 쥬리) 막부가 쓰러지고 백수된 사무라이들이 3만명이 넘었다고 하는데 그들입장에서는 료마가 철천지 원수였겠죠
@iiiiiii41387 ай бұрын
최고의 영화 채널
@jyj1937 ай бұрын
대원위 합하 좀 잘하시지... 언제나 좋은 영상 감사히 봅니다. 꾸벅~~
@buckston2017 ай бұрын
17세기에 이미 유럽의 문물을 경험하고도 상복을 몇년 입어야 맞는건가로 예송논쟁을 벌이던게 조선의 현실이었고 이후 세월이 흘러 1800년대에 접어들어서 아편전쟁이 터졌어도 그렇구나 라고 하면서 동네북이 된 청나라를 상국이라고 떠받들던 나라가 조선의 문화였던것을 본다면 흥선대원군도 나름 최선을 다했다고 봐야 할듯 싶음
@seosSEO6 ай бұрын
@@buckston201 흥선 대원군 이하응이 무슨 얼어죽을 최선을 다 했는데?
@이정재-d2o21 күн бұрын
대원왕 전하입니다만
@SNU_백면서생7 ай бұрын
일요일 아침의 루틴 씨네모리
@ssibjadorayiba93677 ай бұрын
형~사랑해~~❤
@WinchesterLMO7 ай бұрын
게임한판ㅋㅋ 용과같이 유신 극 이 언급되지 않을까 했는데 진짜로 나와서 웃었습니다. 영상 재미있게 봤습니다.
@juliuscaesar77377 ай бұрын
우리가 잘 못 착각하고 있는게 있는데, 에도시대 일본인의 7%였던 사무라이(무사)들이 1600년대말부터 평화가 100여년 유지되자 글공부를 시작,이후 200여년 지나자 무사+글공부로 지금의 교수급 사무라이 학자들이 등장...1700년대 이후 일본은 나가사키를 통해 전세계의 정세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슴...1850년대 요시다쇼인 밑에서 공부한 무사들이 결국 지금의 일본을 만듦...야마구치현(쵸슈번) 하급 무사들...사무라이의 어원은 侍(사무라우) 섬기다는 우리말에서 파생된 말임..
@달로스-h6u7 ай бұрын
서로를 원수대하듯 하는 사츠마 죠슈 를 하나로 묶어 대정봉환까지 이끌어낸 료마처럼 우리나라 진보 보수 의 갈등을 화합시키고 국운을 하나로 모을 사람이 나타날 수는 없는걸까 ㅠㅠ
@ignisilluminati7 ай бұрын
제3지대가 성공해야 하는데 답이 없음 개인적으로 유승민이나 이낙연 정도가 적당하다고 보는데 둘 다 현재 정치하는 상태 보면 어지러움
@scottcello4183 ай бұрын
한국인들이 착각하는건, 일본이 서구문물을 빨리 받아들여 앞서나갔다는 것이다. 중국 조선은 서구의 무기와 산업만 받아들였고, 일본은 사회시스템과 제도도 받아들였다. 그것이 차이.
@scipiom81197 ай бұрын
이건 정말 간략 버전으로...... 토사번은 전국시대에 조소카베가문의 토대이자 이걸 기반으로 일본 사대섬에서 가장 작은 시코큐의 패자가 되죠. 전국 시대 이후 메이지 유신에서 가장 유명한 번국은 모리의 죠슈번,시마즈의 사쓰마,도사의 토사번 이3개가 주도국이며 1개의 번을 추가하지만.... 일본 전국 시대를 알아야 하는데 일본은 메이지 유신전까지 영주가 나라를 다스리를 형태를 취했고.....왕은 허수아비고 때에 따라서 왕을 대신하는 대장군도 허수아비였죠. 그 역사가 수백년을 넘었고 우리가 잘 아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전쟁에서 승장가 되지 못했죠......간단히 말함년 조조....승자는 사마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막부(장군부) 간단히 말해서 고려의 무신정권이 수백년 지속됐다고 보면 됩니다.왕은 허수아비고 대장군이 모든걸 하는 거죠. 일본은 조선과 다르게 서양과 통교를하고 무역도 하고 나름 사람들도 파견하며 아주 무능하지는 않았죠 그런데 시대의 흐름이라는게 서양이 총과 대포와 더 빠른 총과 더 좋은 대포로 압박을 하면? 이게 메이지 시대 전의 일본 상황이죠 잘 돌아가는 영주와 군신관계인데..........내가 저넘을 해먹으면 내가 허수와비 천왕을 높고 대장군이 되서 일본을 다스린다. 이 꿈에 가장 가 까운 나라가(나라죠 이동의 자유도 쉽지않은 곳이라) 사쓰마번과 조슈번이죠. 밀무역하기도 정말 좋은 지리라 돈을 많이 벌기도 하죠. 충성도는 만땅.......... 메이지 유신전까지 과정은 피티귀면서 물밑 교섭이 계속 오가며 나라와 영지간의 교섭도 하지만........ 결국 끝에 가서는 도쿠가와 막부를 무너뜨리겠다는 두 가문 사쓰마와 조슈가보다 외국의 침략이 더 무서운 상황이 닥친거죠 천왕가,도쿠가와 막부,조슈가,사쓰마 다 적이고 스스로 홀로 서길 원하는 집단이죠. 그런데 과거에 다르게 외국의 강력한 힘이 존재하죠. 료마가 없었다면 지금의 일본도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료마는 너무 젊은 나이에 죽었기 때문에.......... 31살에 죽었는데 특별히 아주 크게 태어나지 않았어요. 간단히 말해서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세력을 밀면서 원래 토착세력이자 도요토미와 친한 곳들을 쳤는데 다 죽일 수는 없었죠. 거기에서 살아남은 세력이 여기서 말하는 하급 사무라이이죠. 농부와 다르지는 않고 신분의 변등도 없고 농사만 지어야 하고 칼은 차고 다닐 수 있고...... 그게 토사에서 하급 사무라이라는 다른 지역들도 조금씩은 있지만 아주 다른 특별히 많아서 쉽게 죽일 수도 없고...... 그게 수백년이 이어온거죠. 사쓰마이든 다른 지역이든 다 비슷한 농사만 하는 그렇지만 사무라이....한국의 양반보다는 훨씬 계급이 쌔죠. 거기에서도 가장 하층 사무라이가 뼈저리게 느껴지는 곳이 토사라는 곳이고 사카모토 료마는 거기에서 태어난 하층 사무라이죠. 내가 본 료마와 생각한 료마는 촌뜨기........아무것도 모르는 시골촌놈.....칼 정말 잘쓰는 촌뜨기....여유만만하고 허풍많고. 그런데 그 허풍이 거짓말은 아닌 자기 목숨을 던지니..... 세상을 경험하고 더 큰 세상을 경험하고 료마는 단순한 칼잡이에서 사상가는 아니죠. 그정도 역량이 안됨. 그냥 배우긴 배웠는데 행동하는 실천가.무대포. 이 사람이 없었으면 일본의 혁명은 생겨나지 않았을거다. 아마 일본인들도 동의할걸......이런 이질적인 사람이 없어. 일본인 스럽지 않지.
@amitta51456 ай бұрын
나의 주관적 생각 감정을 빼고 담백하게 있는 사실만 나열하는것이 이 채널의 최고 장점입니다
@lynettebishop95867 ай бұрын
정말 저때의 일본도 참 각부.지지체에 따라 혼란햇군요 ㄷㄷ..
@jhsong36007 ай бұрын
씨네모리님은 역사에 아주 해박하신듯. 특히 일본 역사는 언제 들어도 나는 신박하게 헷갈리는데... 재밋게 보고 있습니다
@rlee48057 ай бұрын
막부말기 영상 해설 감사합니다
@enla94696 ай бұрын
'지식을 이용해 그들과 동등해 질 수 있다' 멋있네
@zazatv89937 ай бұрын
영상에 다나와있네요 감성이 현실을 덮어두지말고 과잉해석해서 자괴감에 빠지지말아야죠 둘다 대단한 격동기를 격은나라입니다 그결과는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살벌한 동아시아 이고요
@꼬망곰-m8l7 ай бұрын
유교나 공산주의가 망한이유는 너무 빠른 사상과 생각이였음 모든 사람이 착하고 모든자원이 충족하는 파라다이스 같은 곳에서 통하는 생각들임
@user-op4ds1np9x5 ай бұрын
근데 유교나 공산주의나 처음에 나올걸 자기 입맛에 다 뜯어고친거에요 특히 공산주의 이론대로라면 김일성,김정은등 다 평등한 동무인데 북한가서 김정은 동지 우리 다같은 동무죠 하는 순간 개작살 납니다
@User-administration5 ай бұрын
이름이 익숙하다 싶었는데, 사무라이들 사이에서 총쏘고다닌 사무라이 만화영화 주인공 모티브구나
@심문선-m8v7 ай бұрын
사카모토 료마 일본위인전 1위라던데 대체 그정도로 료마의 업적이란게 있는건가? 저 사람 일대기 소설덕에 인기 얻는거 같던데
@마태오-o8n7 ай бұрын
그 때...조선은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일본에게 뒤지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하던데...교훈을 삼아 다시는 남에게 병탄을 당하는 일이 없기를
@user-op4ds1np9x5 ай бұрын
안동김씨의 세도 정치
@user-mn8ms9wx8m3 ай бұрын
땅 자체가 일본이 한반도보다 1.7배 크다 그리고 한반도는 중국 옆에 붙어 있어서 중국 똥받이로 살거나 개기다가 짱개한테 잡아먹히거나 운명이 둘 중 하나였기 때문에 짱개한테 기는 운명을 선택했지 애초에 지정학적으로 한국은 일본한테 안 된다 지금도 트럼프가 한국은 버리더라도 일본은 지킬려고 하듯이
@exbcvod7 ай бұрын
옥의 티 1.쵸슈의 문장이 사츠마 문장으로 나옴 2. 해군학교가 해체된건, 금문의 변이 아니라 이케다야 사건에 해군학교 생도가 연루되었기 때문 3. 오료는 테라다야의 여주인이 아니라 그냥 일하던 사람이었음. 여주인은 오토세.
@파닥파닥물고기7 ай бұрын
오랫동안 사카모토 료마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시바 료타로의 "료마가 간다"라는 소설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비로소 료마는 메이지 유신의 1등공신이 됩니다. 유의태가 허준의 스승으로 이땅의 스승의 모범이 된 것처럼. 실제 유의태는 허준과 아무 상관없는 인물이지만 이미 소설은 역사를 대체해버렸지요. 시바 료타로의 작품을 좋아해서 대부분 읽어보았지만, 마치 사마천처럼 (시바 료타로라는 이름은 '사마천처럼 되고싶은놈'이라는 뜻) 현장답사와 충실한 자료 수집을 통해 역사 이상의 소설을 쓰는 게 그의 스타일인데, 역설적으로 역사는 매우 사적인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도 시바 료타로입니다. 료마가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증언하고 작가가 그것을 열심히 발굴하지만, 수시로 그것이 결혼식 주례같은 느낌을 줄 때가 많아요. 아주 거짓말은 아니지만 자리가 자리인만큼 가득 띄워주는? 그런 것만 열심히 찾아낸 것 같은?
@changho87437 ай бұрын
2:31 나니? ㅋㅋㅋ
@margewon37915 ай бұрын
서구 외강 침략 때 덴노 중심으로 뭉칠 수 있었던 일본이 조금 부럽긴하네.... 우린 서로 물어 뜯기 바빴는데
@박씽씽-k4t7 ай бұрын
일본의 근대화는 선각자들의 노력도 있었지만 운도 따랐다고 하던데 미국의 위협은 마침 터진 남북전쟁으로 비껴가고 위치적으로 워낙 변방이어서 유럽열강들이 일본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고 어느학자가 하는 강의를 들었어요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싱하-v7v7 ай бұрын
추한 사람들의 깍아내리기죠 기반없이 되는거는 없습니다
@charlieshin95137 ай бұрын
역사학자는 역사를 역사답게 가르치면 안되고 사실을 가르쳐야 합니다
@johnkim96427 ай бұрын
한마디로 노력한거죠
@revi00837 ай бұрын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보면 한국도 냉전시기 운 좋게 미국 잡아서 베트남 전쟁을 통해 한강의 기적 이뤘다는 소리하고 비슷함. 국민들의 의지가 제일 중요함. 그러니 일본이 한때 세계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한국이 빈민국에서 지금 선진국이 된 거라고 봄.
@user-bf4lt9zi9u7 ай бұрын
일본과 한국의 근대화 모델이었던 이집트(비서구권 최초의 근대화 국가)가 근대화에 성공하고 수단을 식민지로 삼고 에티오피아까지 조졌음에도 결국 어찌 됐는지 생각해보면 운빨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임.
@hanniballecter48747 ай бұрын
댓글 보니까 상공업의 차이 자본의 차이 어쩌고 하는 댓글이 많은데 다 맞는 말인데 가장 중요한건 일본의 숭무정신으로 비롯된 근본적인 정신상태부터가 달랐기에 일본의 열강 진입이 가능한거지뭐 지금 선진국들 봐라 옛날부터 쌈박질 잘하고 호전적인걸로 유명한 국가가 대다수임 (몽골제외₩
@포슈텔른6 ай бұрын
논리에 안 맞으니 몽골은 쓱 제외해버리네 ㅋㅋㅋㅋㅋ
@hanniballecter48746 ай бұрын
@@포슈텔른 몽골에 뭔 숭무정신이 있노 ?ㅋㅋ 설마 땅 많이 점령한 거랑 나라 기조랑 착각하는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