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륵사지석탑은 7층탑이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9층탑으로 만들었으니 가운데 목조탑은 9층탑이 아니라 12층탑 또는 13층탑으로 만들어야죠.
@luvstars23 жыл бұрын
익산이 백제의 수도였을까? 생각하게 되네요
@손경석-s9h2 жыл бұрын
당연 아니지요 책보고 유트브 한번 보세요
@Hyuchan10022 жыл бұрын
아니오 ㅋ 옮길까 생각은 해본 듯 ㅋ
@maple48012 жыл бұрын
무왕이 천도를 계획한 것 까진 맞는 것 같지만 실행에는 옮기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TheTeewriter Жыл бұрын
@@손경석-s9h 학계에서 아직 논쟁 중인 것을 당연 아니라고 단정하듯 주장. '나는 다 안다'는 듯이 가르치려는 거만한 어투. 두 요소를 보며 '환빠인가?' 싶었는데... 다른 댓글 보니 예상이 틀리지 않았네요ㅎ
@TheTeewriter Жыл бұрын
백제 수도에서 나오는 '수부' 찍힌 기와가 익산에서 발견되고, 왕궁터와 무왕릉, 미륵사가 있고... 익산 천도설이 결코 근거없는 말은 아닙니다. 옮길까 생각은 해본 것일 수도 있고, 옮기려다 실패한 것일 수도 있고, 제2수도였을 수도 있고.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니 여러 가능성을 생각하면 좋겠네요.
@0897-be5cz2 ай бұрын
부여에 살아남은 백제 사찰이 한개가 없네
@wa85143 жыл бұрын
일본이 36년간 도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아있었던 무령왕능은 기적입니다.…♡
@황인철-v9j4 ай бұрын
송산리 고분과 고분사이에 있어서 도굴을 피할수 있었다 하네요..다만 무덤 입구를 벽돌로 막아놨는데 상단부분이 좀 조잡해서 한번정도 침입한 흔적이 있다고 합니다..
@binglo.6 ай бұрын
소중한 문화제에 철저한 관리를 부탁드립니다 ㅠ
@이명진-u8n Жыл бұрын
학자라는 인간들이 무슨 문화재만 연구했다 하면 어디서 왔나 중국 어디를 본받았나 하는 생각만 하니… 세계 최초 기술이 그렇게 많은데 독창적일 거라는 생각은 못하지. 금관도 북방 유목민한테서 유래되었다는 헛소리를 하는 인간들이니 말해 무엇하랴만…
@박인순-s8j3 жыл бұрын
공주 무녕왕릉에서 매우 가까운 천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 보안의 이유로 인해 혼자서 갈 수가 없으니 매우 답답합니다. 버스롤 타야 하고 위치도 정확히 모르기 때문이지요. 백제인의 후예를 자처하는 제가 공주를 가보지도 못하다니, 말도 안되지요.
@손경석-s9h2 жыл бұрын
공주는 웅진성이 아닙니다 책보고 유튜브 함 보세요
@TheJinNK2 жыл бұрын
박씨가 무슨 백제의 후예입니까;
@유태현-b9h2 жыл бұрын
@@손경석-s9h 일부 유사사학자가 충분한 고고학적 뒷받침 없이 주장하는 걸 정설처럼 말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웅진이 공주가 아니라는 주장의 근거보다, 웅진이 공주가 맞다는게 근거가 차고 넘치기 때문에 정설인 겁니다.
@maple4801 Жыл бұрын
무령왕릉에 못 들어가는 건 보안 때문이 아니라 문화재 보호 때문입니다. 실물 복제품은 멀쩡히 들어갈 수 있는데 뭔 소리하십니까? 저도 천안사람인데 공주 바람 쐬러도 가고 운전연수 받을 때도 천안 두정동에서 공주까지 가봤습니다. 내가 아는 천안이 아닌가?
@가을호수-b7x9 ай бұрын
이상한 말씀. 무녕왕릉 모형릉 잘 전시되어 있어 언제든 가서 보고 배울 수 있습니다. 의지가 없는 분.
@jinuk63103 жыл бұрын
정림사지 석탑 꽤 크더라구요 석탑에 당나라 장수가 새긴 백제 정복했다 대충 이런게 있습니다 조롱대는 듯한 익산 미륵사지는 쇠퇴해가는 백제를 일으키기 위한 무왕 승부수가 아니였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무왕은 왕족이 아닌 익산쪽 지방 호족 세력이었기에 먼가의 명분같은게 필요 했을거라 생각됩니다 국민들을 다시 결속시키기 위한 것 아니였나 싶습니다
@jinuk63103 жыл бұрын
영상 다 보기전에 영상달았는데 뒤에 교수님들이 설명해주시네요 ㅎ
@jiwonpark49873 жыл бұрын
호족은 아니라 '왕족은 맞는데 왕족인 부여씨의 방계가문이고, 그만큼 원래는 왕위 계승과는 거리가 있었던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가 현재의 학계 유력 추정입니다. 조카인 복신의 성씨가 귀실씨라서 정황 상 귀실씨였다가 왕이 되면서 다시 부여씨로 환원된거 아니냐는 설을 본 적 있네요.
@영찬김-i9w9 ай бұрын
귀갑면이라 하지 말고 치우상이라고 합시다. 지금가지 내려온 모든 도깨비 면은 치우 천제 입니다. 우리의 역사에서 도는 지금 부르고 잇는 지명을 모두 우리 이름으로 불러야 합니다. 저희 동네만 해도 뱀골(뱅골)이라고 지금도 나이가 많으신 어르신들 계서는 뱅골이라고 부르는데. 일제 시대에 한자식으로 바꿔서 불럿던 이름은 사동.
익산은 왕궁과 제석사, 미륵사 사리 봉양기등 왕궁의 사찰,각종 기록, 쌍릉에서 발견된 무왕의 유구~~~ 그래도 수도가 아니고??? 도데체 이 처럼 확실한게 어딨는데???
@scarssiel3 жыл бұрын
참 답답한 현실입니다. 백제가 반도에만 있었다는 일제의 역사 왜곡과 강단의 식민사학자들 때문에 백제(반도땅의 백제)가 중국(중국땅의 백제)의 영향을 받았다는 말도 안돼는 해설이나 들어야하니.. 중국얘들이 동북공정에 성공하면 우리 후손들은 영원히 그런줄알겠지요. 아 가슴이 미어터집니다.
@박똘-n1p3 жыл бұрын
환뽕,국뽕,일베. 대한민국 3대 버러지들.
@gemem333 жыл бұрын
환빠들과 같이 말하기도 싫지만 제발 깨어나세요. 중국애들이 하는 역사왜곡과 뭐가 다릅니까.
@scarssiel3 жыл бұрын
우리가 이웃나라인 중국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려는게 결코 아닙니다. 중국과 우리는 고대부터 모계제/부계제적 혈연의 뿌리와 문화의 원형들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어느 시점에 혈연적 문화적으로 확연히 갈리진 이후로도 아다시피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지요. 중요한건 우리가 처음부터 이 반도에만 정주하며 대륙의 중국과 교류한 정도는 아니란 점입니다. 과거에는 우리도 대륙의 지분을 가지고(더 고대에는 주인으로서) 그들과 치열하게 다투고 영향을 주고 받았지요. 지금은 쪼그라들어 한반도 그것도 좁은 남쪽땅으로 밀려나 웅크리고 있다고해서, 우리의 뿌리를 반도에만 국한하고 찾으려는 것은 우매한 짓이고 후손들에게도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겠지요. ※ 밑에 환단고기를 폄하하시는 분들의 흔한 오해는, 진서/위서 여부를 떠나 그것이 우리 반도인만의 역사인양(국뽕?)하는 일부 주장 때문일텐데.. 거슬러 올라갈수록 동북아인, 유라시아인의 근원과 역사에 대해 의미심장한 기록을 담은 책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시면, 이를 편협하게 배척할 이유도 없을 겁니다.
@gemem333 жыл бұрын
@@scarssiel 근거도 없는 이야기 길게 늘여쓰지말고 확실한 팩트만 말하쇼. 환단고기가 위서라는 건 팩트고 위서를 근거로 논하면서 편협하게 보지말라니 이게 말입니까. 역사왜곡이지. 당신 혼자 그렇게 믿고 사세요. 곡학아세하지 마시고.
@scarssiel3 жыл бұрын
@@gemem33근거들이야 쌘것 같은데... 같은 유투브 상에 있으니 관심있으면 한번 보슈. 하필 이 문제에 꼽혀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 유투버도 참 안됐다 싶긴한데^^ kzbin.info/www/bejne/b3bdYn6iaZxqmZY
@수쿠르2 жыл бұрын
고구려가 없었으면 백제,신라 가야가 있었을까요? ~~~영상 나름 잘 만들었는데.... 다소 과장은 있는 것 같다
@가을호수-b7x9 ай бұрын
뭔 엉뚱한 말씀? 고구려 존재를 부정하는 부분은 하나도 없는데.. 왜?
@개구리야옹9 ай бұрын
와 목관은 딱봐도 일본식 같네요
@황인철-v9j4 ай бұрын
무령왕릉 목관이 금송이라고 중국 절강성> 여기하고 일본 특정지역에서만 난다고 합니다.. 한국산이 아니라고....
@동호-o9n2 жыл бұрын
한반도는 중국과 3천년간 싸워 온 나라임...!!!!!... 거슬리면...??????????
@maple48012 жыл бұрын
그리고 털렸지 ㅋㅋ
@동호-o9n Жыл бұрын
@@maple4801 양측간에 지도상 오차가 큼
@ldo919 Жыл бұрын
백제를 소개하며 첼로?
@송명호-d1f2 ай бұрын
언제까지나 검이불루 화이불치나 읊조릴래. 바보들아. 백제는 화려하고 사치스러웠다. 금동향로나 무녕왕의 왕관을 보라. 백제는 돌이라든가 구리라는 질료에 탑이라든가 향로라는 형상을 창조해 내었다. 그리고 그들은 끝없이 스스로의 목적을 높은 단계로 이행하였다.
@미쿡살아욥9 ай бұрын
뽕짝 먹방 그만좀하고 이런 프로그램 많이 만들면 좋겠다
@Cutiepies-w1t7 ай бұрын
세계인을 사로잡아!? 세계인의 99.999% 는 백제가 무었인줄도 모른다. 난 많은 외속인들과 교류를 하지만 백제를 아는 외국인 단 한명도 못만났다.
@eastsea50213 жыл бұрын
중국문물을 받아들여…….?? 개 소리 .. 백제가 그 곳에 있었음..!!
@jayj21112 жыл бұрын
이게정답임 산동성 해안가쪽은 우리땅이엿음 백제의땅 우린 동이족의후손임 동쪽에사는 동이족
@손경석-s9h2 жыл бұрын
정딥입니다
@maple48012 жыл бұрын
뭔 백제가 그곳에 있어. 백제가 받아들인 거 맞지.
@SIRAGI_JP Жыл бұрын
그럼 위례성은 어디에 있죠 아조씨..?
@eastsea5021 Жыл бұрын
@@SIRAGI_JP 아가야 ..너무많은거알려하면 다친다. 그냥 너 답게 살어..
@0897-be5cz2 ай бұрын
목관이 뭔가 일본 느낌이.....조선시대는 아니고
@실크로드다시보기10 ай бұрын
사마.한자가 원본체가 아니고 왜 일본서기 한자형이에요? 백제는 한반도 아니에요. 동명ㅡ덕안ㅡ금련 등 지명을 5도독부 찾아보세요. 아직도 대륙에 있어요. 여긴 동신라땅이었어요. 신라의 유물과 같은 양식이네요. ㄱ
@동호-o9n2 жыл бұрын
고구려... 자리를 잘 못 잡았어... 마치, 다 덤벼...!!! 그래도, 내가 이긴다 같은 허풍스럼...???
@user-ww6sn4wu7g8 ай бұрын
그 마약쟁이들이?
@corea. Жыл бұрын
고구려 유적지 무덤은 엄청 많은데 백제는 너무 초라하긴 함 600년 버텼는데 호족 귀족들 왕릉도 많이 안 보임 도굴 했다고 해도 내부는 그대로 있었어야죠 무령왕릉 내부처럼 10개 넘게 있나요? 백제왕릉 터도 먼가 약해보이긴 함
@황인철-v9j4 ай бұрын
중국에도 백제 뭐 뭐 이런 지명 엄청 많아요.. 저 한자 쓰는 중국 마을도 있구요.. 제가 보기엔 뭔가 분산되어 유적이 분포되어 있음..
@corea.4 ай бұрын
@@황인철-v9j 조사 연구를 해야하는데 중국이 막고 있으니 힘들 거 같네요 분명 백제 유민들은 중국땅에 살았을 거 같음
@doodaebal3 ай бұрын
백제 멸망시 의자왕과 배신한 장수를 비롯 약 1만5천 가량 백성들을 중국으로 데려가 중국에 정착시켰음
관이 일본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일본이 영향받은거겠죠? 근데 금송을 일본으로부터 받았다는 건 어떻게 알게 된거죠? 아무튼 유적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는건 너무나 안타까운 일입니다.
@tpK-kx8lc2 жыл бұрын
관에 쓰인 금송이 일본에서만 자라는 금송이라고 합니다.
@손경석-s9h2 жыл бұрын
금송은 중국 동남부에도 있어요 근거도 있구요 일본게 아니에요 본백제는 중국이구요 거기서 온 나무립니다 책보고 유튜브 함 보세요
@유태현-b9h2 жыл бұрын
@@손경석-s9h 비유를 한다면 마치 위서인 환단고기, 화랑세기에 근거로 유사사학자가 자기 주장을 정설처럼 말하는 것과 같은 가설도 아니고 그냥 잡설입니다. 백제가 중국대륙에 진출한 건 중국의 문헌기록(신 당서였나 뭐였나) 으로 유추할 수 있으나, 어느정도를 언제부터 언제까지 점유했는지, 그게 신라방같은 유형의 세력같은건지, 영토적 개념인지도 확실하지 않은데다,무엇보다도 본백제가 중국에 있었으면 고고학적인 유물이 중국에서 쏟아져야하고 문헌사료인 여러 역사서에서도 더많이 언급되었어야하며, 그리고 왕의 무덤도 중국에 있어야 합니다. 문헌기록과 다른 문헌기록, 문헌기록과 고고학적 발굴이 교차검증되어 역사지. 유튜브나 유사사학자가 쓴 추리소설같은 책보고 주장하는게 역사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