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용교수님, 박현도교수님, 성해영교수님. 모두 모두 감사드립니다. 솔직히 이렇게 훌륭한 분들을 한자리에 모시고 말씀 들을 수 있다는건 정말 축복입니다. 축복 ! 행운이고요. 이런 자리 마련해주신 김현기자님께도 감사드립니다.
@twou48513 ай бұрын
박현도는 빼자 좌파 반미 폴리페서
@kniferepair34816 ай бұрын
유튜브로 많은것을 배웠지만 아이러니 하지만 유튜브가 나오고부터 인생이 너무 고통스러워졌다. 도파민이란게 행복감과 혐오감이 동시에 들 정도로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거같은데 유튜브를 지우고 딱 1주일 살아보니 고행이 따로 없더라. 진짜 삶이 고요해짐.
@종숙최-m1m8 ай бұрын
오호 … 여기서 강교수님을 뵙네요 감격 !!
@一妄一語7 ай бұрын
"훌륭한 수행자는 너무나도 조심스럽다. 당신이 각고의 노력끝에 만들어 놓은 습관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지,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노력해야 하는지를 뼈저리게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능소화정원주인8 ай бұрын
교수님 감사합니다 😊
@탬버린공화국7 ай бұрын
습관은 카르마다. 습관은 운명을 바꾼다...
@강원익-f5wАй бұрын
인생이 괴로운 것은 생활의 조건이 부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존, 부족을 충족시키지 못해 다른 식의 만족을 찾으나 본질적 해결이 되지 못하게 되어 탐닉하게 되는 것이 중독이다. 깨달음을 위해 철학, 종교, 교양 등 여러 방면의 학구적 열의도 중요하겠으나 자신의 길을 위한 자기 판단이 주요하다. 자신의 길을 걷는 것이 즐거워야 한다.
@Minseok_Ko3 ай бұрын
고통은 스스로 만든 것이니 스스로를 바꿔 그것에서 벗어나라 이야기 했더니 왜 다른 사람은 변하지 않느냐 반문 하는 것이 인간이더라 라는게 불교가 준 최고의 가르침이죠. ㅎㅎㅎ 불교에서 이야기 하는 고민들을 하나로 정리해 보면 결국 없는 것을 있도록 만드는게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능력인데, 문제는 그렇게 한번 있다고 해 버린 것은 다시 없는 것으로 만드는게 어렵다 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렇게 있다고 만들어 놓은 것들 사이에서 인간이 고통 받고 있으니 그걸 다시 없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소리죠. 이건 마치 엔트로피 증가가 우주의 법칙인 것을 과거 시대에 인간에 대한 고찰만 가지고 알아낸 것과 같은 어마어마한 통찰 입니다. 눈 앞에 있는 것들은 본래 없었던 것이니 그걸 버려야 한다. 다만 너도 인간이니 그걸 버리는 것이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끊임없이 공부해서 버릴게 뭔지 알아내라. 그리고 겁나게 노력해서 그것을 다시 지워라. 전 불교의 논리가 끊임없이 타인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특성에서 벗어나자고 이야기 한다는 점에서 상당히 고등한 논리라고 생각 합니다. 물론 그 벗어나는 방법에 대한 논의에서 또 어쩔 수 없이 인간의 특성이 진득하게 반영되는게 한계지만요. ㅎㅎㅎ
강성용 교수님의 논리정연한 설명은 언제 들어도 너무 좋습니다. 그런데 조현 선생님은 갈수록 더 젊어지시는거 같습니다 ㅎㅎㅎ
@사라-m5x8 ай бұрын
강성용 교수님 조현쌤 얼굴빛과 눈빛 보면 젊은이들 같아요 계. 습이 체가 되고 본질이다. 이것이 깨질까봐 매우 조심스러운 것 진짜 귀한 말씀입니다
@nyx26798 ай бұрын
내가 깨달았다고 해서 삼라만상이 바뀌는 것이 아니고 인과율 또 한 바뀌는 것은 아닌데 깨달음이 마치 인과율까지 초월한 초월자로 바라보는 것이 문제죠. 깨닫다는 사물이나 세상의 모든 작용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고 수용하면서 아닌 것은 하지 아는것. 나의 집착을 버리고 본래의 내가 혹은 나라는 게 집착임을 아는 것이죠.. 물론 나는 분명 있는 존재입니다. 깨달았다고 해서 내가 아닌 남이나 너가 되는 것이 아니죠. 다만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정진 하는 것이 최종의 깨달음이지 않을까 합니다. 불교가 타자구제가 아닌 자기구제의 성격이 강한 종교라서 사회문제에 이기적인 모습이 보일 순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교가 타자구제를 마치 방기 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종교인이든 지식인이든 삼가해야 할 문제가 아닐까요? 불교가 사회문제 뛰어들지 않은 것도 아니고 역사상 고난의 시기 불교도 타 종교만큼이 사회문제에 관활 했습니다. 종교란 사람의 삶에 영향을 서로 주고 받기에 사회에서 문제가 생긴다는 것은 종교계에서도 문제가 생긴다는 말과 같죠.. 마치 종교가 모든 것을 구제 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잘못된 것이지 않을까 합니다. 세상의 모든 형상과 작용 이념과 이상은 단순히 종교적 명상이나 이데올로기로 통제되지 않고 역사상 한 번도 종교가 모든 것을 통제 한 적은 없죠 중세 종교시대에도 간섭을 할 지언정 통제했다고 할 수가 없죠..
@June06968 ай бұрын
부처님의 가르침과 근본불교가 다른 종교와의 차이가 자아가 없다는 겁니다. "나라는 것은 실존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시냅스 연결망 원리와 동일하게 만들어진 AI가 자기에 대한 생각을 하기 시작하고 자아의식을 가지면 AI의 실체는 존재하는 걸까요?
@nyx26797 ай бұрын
@@June0696 내가 없으면 지금 자고 입고 먹고 싸고 하는 것이 무엇이면 내일 내가 회사나 학교에 가서 사람과 관계해야 하는 것은 누구입니다. 나입니까. 아님 타입니까. 불교에서 나의 집착을 버리라는 것은 실체인 나를 인정하고 집착과 욕망에서 오는 나 즉 아집과 고집에서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즉 열반이나 깨달음은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닌 본래의 나 집착과 욕망에서 오는 괴로움에서 벗어난 자연 그래로인 나를 말하는 것입니다. 불굔 실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만약 AI가 인성을 가진다면 그것도 인성이 되는 실체입니다.
@nyx26797 ай бұрын
@@June0696 자아가 없으면 현재 존재 하는 나는 무엇입니까 앞에서 말했지만 자아의 유무가 깨달음이 아닙니다. 불교는 실체를 부정하지 않습니다. 실체가 없다면 나는 존재 하지 않는자 즉 현실에 있는 자가 아닌자가 됩니다. 불교가 형이이상학적 담론이 되면서 그 무언가를 자꾸 깨달음으로 생각하는데 나의 실체를 부정하면 불교의 깨달음을 비롯한 모든 것이 없어집니다. 그것은 무위 즉 있다 이전의 나완 다른 애초에 없다는 것이 되기에 이는 불교가 아닌 모든 종교나 철학에서 정의한 나를 부정하는 것이 됩니다. 불교는 자아를 부정하거나 실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아상 즉 집착 고집 편견을 아상이라고 말하고 그것을 부정적으로 봅니다. AI가 실체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AI가 발달이 되어 인간과 같은 데이터 처리와 막대한 네트워크가를 처리 할 수있다면 그 AI도 자아가 있는 실체가 될 것입니다. 불교는 과학이나 실체를 부정한 적이 없습니다. AI를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지극히 서구적 관념이자 일신교적 이념입니다..
@hojun13636 ай бұрын
인생은 이미 통제받는 칩이 심어진 것과 같은 행로를 걸으나 일부분 오류가 나는 만들어진 생물일 뿐인데 뭘 그리 무한한 것처럼 이야기하는 걸까? 인간은 찰나의 만들어진 행로의 구간을 걷는 과정이고 죽으면 다시 태어나 포맷되어 재탄생되는 또 다른 반복되는 과정이며 그 사이 스스로 오류를 수정하게 되면 행로를 이탈, 즉 해탈하게 되고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된다는 우주를 지배하는 프로그래머의 프로그램일뿐.
@nowlive3653 ай бұрын
@@June0696인간처럼 시냅스를 갖게 된다 하더라도, 그것이 자유의지를 가진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자유의지는 단순히 신경망의 복잡성이나 구조로 설명될 수 없는,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경험과 결단의 영역입니다. 자유의지는 단순히 신경망의 기능이 아니라, 경험과 자기 인식, 감정, 목적, 그리고 선택의 주관적 감각이 수반되는 현상입니다. 현재로서는 의식과 자유의지가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발생하는지조차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단순히 시냅스를 모방한다고 해서 얻어질 수 있는 성질이 아닌거죠. 그리고 행위가 프로그램을 통한 목적론적으로 보여지는 행위일수도 있으니깐요? 저는 일례로 이렇게 반문하고 싶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기전 의지를 복사해 기계에다가 그 복사한 의지릉 심으면 그러면 그 로봇이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야 하는지 말이죠?
@종숙최-m1m8 ай бұрын
스며들어 나도 남도 돕는 인생
@spqwmnbvlp3 ай бұрын
부처님 계시던 시절 원래의 말씀과 행하신 일들과 현대의 불교 모습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나아갈 방향을 생각케 하는 선생님들의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괴로움 많은 요즘 세상 사람들을 위해 부처님의 가르침이 각자의 실생활에 스며들어 세상이 좀 덜 괴롭고 살기 좋아지길 바래봅니다
@studiosaltfree18577 ай бұрын
중도는 중용의 의미가 아닙니다, 분별심에서 나오는 '있다 없다' , '옳고 그르다' 에 대한 편견과 삿된 견해로 스스로에게 속지 말라고 말씀한실걸로 저는 들었습니다. 불교는 지식을 배우는 학문의 의미보다 어떻게 하면 나의 마음이 편안한 상태 그리고 참 된 나는 무엇인지 추구하는 것을 스스로를 가르침으로 삼는 집단으로 알고 있습니다. 석가모니불이 말씀을 통해 교단이 생긴것은 사실이지만 금강경 한편에 나온 아승기,나유타 겁 이전에도 부처는 존재 했고, 수많은 윤회속에서 깨달은 이는 많습니다. 저도 이 부분은 공감합니다. 탁발하는 것을 금하는게 된것[사이비와 이단등으로 인해서 조계종에서는 금한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부 신도들의 성역화하여 접근 할 수 없이 절대적인 영역으로 판단하여 그것을 사유하는 것을 스스로 못하게 된것 그래서 기복적인 신앙의 의미로서 불교의 참된 수행 방향을 잃게 있는 모습을 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시대에 따라 방편은 늘 존재했고, 혼란한 대중들 속에서 늘 꽃은 핀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음에 머물필요 없고, 고정된 것이 없다는걸 알면 고통의 이유도 알게 되겠지요, 영상을 보면서 스스로 다시 한 번 사유하게 되었습니다. 종교와 별개로 성불하십시오:)
@ykwang90388 ай бұрын
조샘 건강하게 오래오래 ㅎ❤
@samacsuninjang7 ай бұрын
불광 미디어에서는 편집을 해 놓아서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 영상에서 있는 그대로 다 보여 주셔서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BSA21M8 ай бұрын
내가 말이야~ ㅋㅋㅋㅋㅋ 정말 공감되네요 아상의 극치에 달해있죠, 그리고 다른 온갖 상에도 휩싸여 있어 다른 사람도 못살게 굽니다
@ydgsgegsgdyd46457 ай бұрын
'아상'이 초기불교에서는 maana라고 명명됨. 이것은 탐진치 중에서 '탐' (greed)을 뿌리로 두고 사견 (wrong view)를 동반하기도 하고 동반하지 않기도 함.
@성우정-s4z3 ай бұрын
불교수행이 현실에 적용되어야 한다는 말씀 너무 공감됩니다.
@Think0822 ай бұрын
수행이란 “나”는 점점 없어지고 관찰만 남는것.
@몸마발몸마음발전소4 ай бұрын
저 강교수님 좋아요 명쾌한 해답을 주셔서 행복합니다 탐진치 깊은 헤아림이 느껴져 해탈의 빛을 감지한듯한 착각마저 들게하는 명강의에 경의를 표합니다
@NOWORNEVER-o3p7 ай бұрын
습관이 굳어지면 본인의 본질이 된다..
@장태순-r3g8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
@슈슈슈슈-d5y2 ай бұрын
강성용교수님 감사합니다❤
@macjin-t3l7 ай бұрын
깊은 선정에 들어가지 않아도 내가 나가 아니라는 것을 체험했습니다..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하고 소리를 들어도 메아리 처럼 들리고 내가 세상을 보고 있지만 세상이 3차원 공간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고 일차원 화면으로 보입니다..겉으로는 남들과 웃고 듣고 보고 있지만 마치 제 3자가 보는 것 처럼 모든게 개관화로 보게 됩니다..그래서 내 몸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체험합니다..유식학에서 7식 나라는 말라식이 잠시 사라졌다고 생각이 됩니다...부처님의 말씀은 우리가 그 경지와 체험을 해보지 못한 체 내가 경험한 그 근기만으로 이해 하려니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부처님의 말씀은 진실의 말씀입니다.. 범 우주 차원에서 정신과 물질의 육체를 가진 이 세계 말고도 정신을 몸으로 삼는 세계도 있습니다..몸의 집착이 습관을 형성하고 그 습관이 습이 되고 갈애가 되어 다음생으로 이어지고.. 부처님의 말씀(법)을 머리, 지식으로써 이해하려 하지 말고 진실하고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받아드리고 실천해 나아가야 합니다.. 수행은 나를 해체하는 작업이며 끊임없이 내 내적 번뇌 망상과 싸음이지 밖에 대상과 싸움이 아닙니다..남이 칭찬할때 수행이 잘될때(아만심) 특히 조심하면서 정진해 가야 합니다...강성용 교수님 말씀처럼 습관이 좀처럼 떨어져 나가지 않습니다...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01youngil8 ай бұрын
이 분이 이런 것도 잘 아시는군요. 딴 유튜브 채널에 출연하신 걸 시청했었습니다.
@마하메따까루나8 ай бұрын
불교의가르침을가장쉽게이해하는방법>자기내면을깊이있게들여다볼수있는관찰력이관건임.
@aosldk20028 ай бұрын
너무 재미있습니다.^^
@gosterlee41173 ай бұрын
어떤 일이고 그 순서는 있습니다. 집을 짓는 것을 보면 아래 토대가 완성되어야 위로 건물을 세울수가 있습니다 강교수님 말씀은 그것인데 제가 말하고자 한 바를 돌려서 말하지 않고 바로 말하자면 팔정도는 방법이 아니라 하나의 이정표와 같다고 보는 겁니다.... 그게 방법이라면 아래 제가 말한대로 재가신도는 팔정도의 첫시작인 정견을 완성하기도 전에 세상을 하직할겁니다.. 바로 보는 법! 바로 말하는 법! 바로 사는 법!!.....이 아니라 바로 보는 경지! 바로 말하는 경지! 법 없이 바로 사는 경지!!......의 경지를 득하는 수행진도의 이정표란 겁니다... 유교의 예를 들자면 30세에 자립 40대에 불혹 50대의 지천명 60대의 이순과 같은 이야기로 유교의 수행자의 성장을 나이별로 나열한 것과 같은 것이 8정도이지 8가지 방편이란 건 아래 말한 것 처럼 말이 안된다는겁니다... 우리가 배운 불교는 갈애와 무명으로 인한 16연기로 사성제의 고로 이를 해탈하는 법이 8정도라고 배웠습니다만, 이 말은 생각해보면 틀린 말입니다... 불교에서 말한 8정도가 해탈을 위한 수행법이라면 왜 달마는 중국에 와서 8정도가 아닌 선을 가르쳤습니까??..... 일단 바르게 보는 법부터 가르쳐야 하는데 말이죠... 그건 어떤 수행법이건 그것의 득이 있다면 정견부터 시작되는 불교식 경지에 오른다고 보기에 이를 이룰 방법으로 선이란 수행법을 가르치신거죠..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이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대개는 고로부터 해방이라고 합니다...... 근데 해탈하신 부처님은 노화와 설사병으로 고통속에 돌아가셨습니다....보통의 인간과 별다를 바 없습니다... 즉 틀린 말이란겁니다... 그럼 해탈이 머냐??...팔정도의 끝이 뭡니까?? 정정이죠......그게 해탈이란 것이고 부처님이 지향하시고 이루신 경지가 바로 정정이란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불교는 2천여년이 넘는동안 흐르며 그 본뜻이 왜곡되어져 승가와 승려가 불교의 보배라는 등의 헛소릴 합니다.. 그 중 하나가 우리가 잘아는 잘안다고 믿었던 8정도란 겁니다.... 그냥 현대문명의 세례를 받은 현대인들은 걍 상식적으로 생각만 하여도 알수 있는 겁니다.... 그러나 종교는 우리의 상식적 질문과 사고를 신성모독으로 규정하며 그걸 막아서고 있기에 모든 종교는 없어져야 합니다...
@정우-l6y6 ай бұрын
강성용 교수님좀 많이 인터뷰 해주세요 ㅠㅠㅠ
@빛물-f7o6 ай бұрын
갈애의 끝이 나라는것에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참으로 고마운 말씀입니다.
@medeia.7278 ай бұрын
저 배속을 줄여가며 듣는건 처음인거 깉이요 ㅠㅠ 살려주세요😢
@나무아래농부4 ай бұрын
가르침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키-y4i7 ай бұрын
강교수님 감사합니다~!!
@1Q817257 ай бұрын
나다… 또 한번 깨우침을 얻고 갑니다
@TheTresnoir6 ай бұрын
이게 갑자기 왜 떴나 했더니 강성용 교수님 나오셔서 그런가보네요ㅋㅋㅋ 인도 얘기가 아니라 불교도 흥미로와요. 블교 내부에서도 여러 방향성을 고민했었다는건 첨 알았는데 재미있네요!
@donaldtrumpet1467 ай бұрын
21:45 중독자로서 공감합니다
@bubanbohaeng8 ай бұрын
🙏🙏🙏
@yslee34566 ай бұрын
강교수님..❤
@귀염둥이로이2 ай бұрын
불교에서는 육도윤회라는 시스템을 강조하고 이걸로 사회의 부조리나 권력자의 폭거 등등을 설명합니다 왕이나 대통령 등은 전생에 그만한 복덕을 지었기 때문에 이번생에 왕이나 대통령이 된거다 라는것이지요 대신 이번생에 왕이나 대통령으로서 악행을 일삼고 타인을 괴롭게 한다면 다음생에는 육도윤회시스템에 의거해서 나쁜 세계 나쁜 몸을 받는거죠 간단하죠?😊😊
"상구보리 하화중생" 불교는 철저히 공부를 많이 할수록 "나도 이롭고 남도 이로운 자타일시 성불도" 가 무슨 뜻인지 깊이 깨달음.. 섣불리 논쟁할거면 마치 나무가지에 새들이 한꺼번에 앉아 그 무게에 못이겨 나무가지가 부러져 재각기 흩어져 자기 살 궁리만 하는 것과 같고 궁극에 도달할 하나도 건지지 못하고 시간만 낭비하게 됨
@박제이티2 ай бұрын
강성용 교수님이랑은 제가 토론하고 싶네요
@naturesound61394 ай бұрын
여러 교수님들께 질문 드리고.싶습니다. 만약 부처님이 지금 한국에 살고 계신다면 비정규직문제, 통일문제, 빈부격차문제, 재벌문제, 정경언유착, 동성애문제, 환경문제, 부정부패 등 이런 사회문제에 어떤 입장을 가지시고 대처하실까요?
@황개리-v1w8 ай бұрын
무슨말인지알겠는데 이렇게 정리합시다. 중생은 아상이 없는 부처를 목표로 할 필요가 없다. 윤회를 해서 다음생에 좋은 생에 태어남을 목표로 해야지.. 아니면 보살이 되어서 모든중생이 다 깨달을때까지 윤회를 하는걸 목표로 해야한다.. 자꾸 중생은 누구나 잠시 부처에 이를수는 있지만 머물수는 없기에 모두가 깨달아서 불국토가 이루어질때까지는 보살이 되어서 윤회를 하며 중생과 함께 생과사를 함께 해야 한다. 중생에 고통이 있는한 보살은 중생을 떠나지 않는다. 그러기에 생과사를 떠나지 않고 윤회를 하는것이다. 이렇게 정리합시다.
@June06968 ай бұрын
사이비 요소가 많이 더해진 대승불교를 배우니 이런 괘변이 나오는거
@June06968 ай бұрын
이게 전형적인 사이비 불교 대승불교의 폐단
@황개리-v1w8 ай бұрын
@@June0696 그럼 님은 뭐요 남방 소승불교요 ..출가해서. 탁발하고 다니심. 아니면 중국 선불교. 짜라투스트라요. 분별을 내지마라..
@황개리-v1w8 ай бұрын
@@June0696 대답해라. 무슨. 불교인지. 뭘. 알지도 못하고 입놀리는거 아님..나는. 다 간파한다
강성용 교수님 질문입니다. 22년 기준 인도에 한번도 가보시지 않은게 사실인가요? 네이버 블로그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기순권-m3c6 ай бұрын
플라톤 전공 철학자가 그리스에 가보지 않았다가 최근에 다녀왔댜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재미있네요.
@달천山송림寅2 ай бұрын
성철스님은 인도에 가셨나요 ㅎ
@user-fn8hx8re3o6 ай бұрын
습관도 집착아닌가요? 정해진 일상을 고집하고 그것이 깨지는 것을 싫어한다면 그것도 집착때문 아닐까 의문이 생기네요. 불교 거의 잘몰라요..
@skysmith-o4eАй бұрын
집념이라고 보면 어떨까요? 고행을 통해 경지(좋은 습관)에 이르는 고행
@바람과나-r8u7 ай бұрын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심출가하여 무상함을 체득하고 아만심을 넘어 자리이타하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부처님의 깊은 마음을 잘 말씀해 주시네요. 쏙쏙 이해하기 좋아 넘 좋습니다. 출연하신 분들 감사합니다 ~
@bahkbahksa83397 ай бұрын
실제로 사이비 스타일 본인 과대강조 교주들을 보면 불행한 길을 계속 걸어갑니다. 본인의 생각과 정반대되는 짓을 하는 바보의 표본이죠. 그러나 주변 대중과 더불어 겸손하게 성인의 길을 걷는 종교인들은 반드시 행복한 길을 얻게 되어 있습니다. 이들이 강교수가 말하는 현자죠.
@MindfulMoves_Seonmudo8 ай бұрын
😌
@연미-n2i3 ай бұрын
❤
@초심성8 ай бұрын
사회 분위시,사회 풍토가 바로 사회적 습관인데 현실을 직시하면 자승이 한국사회 풍토와 한국불교에 방점을 찍음.
@김관욱-q2r7 ай бұрын
조회수 치트키 분들이 여기에 계시네요
@차새봄튜브7 ай бұрын
불교에 관점에서 최악의 사람은 없습니다 개인적인의견이라 생각합니다 그럴수 있지요 불교의 철학은 다만 다르다고 표현할뿐입니다
@강강-v3p2 ай бұрын
참된 법은 변하지 않는 것이다 때어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법은 법이라 말할수 없다. 나는 누구인가 참된나는 변하지 않는 것이다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나는 참된 자기 자신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에 위치가 자신이고 자신이 현재에 모습이 자기 자신이라 착각한다 하지만 또 사람이 또 어떻케. 변할지 모르는게 사람이다 한때 잘나가던 사람도 망하기도 하고 또 상황이 나아 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시 각각 변하기 때문 본연에 자기 모습이 아니다 여성이 이쁜 얼굴은 화장발일수도 있고 김건희 처럼 성형 미인일수도 있고. 본연에 그사람이 모습이 아닐수도 있다 또 계속 가꾸면 아름다음을 유지할지 모루지만 아름다음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변하는 것은 참 모습이 아니다. 우리 어릴때 학교 선배 그림자도 밝지 말라는 말이 있었지만 그것이 얼마나 허구인가. 선배라는 계념은 학년을 먹으며.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 참된 진리가 아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고 늙고 병들어 가는것도 참된 자기자신이 아니다 외냐 나에 법은 생각은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어릴때서. 늙어 죽을때 까지에 자기 자신은 그대로인데 눈에 보이는 상이 변햇을 뿐이다 오늘이 내가 나이가 들면 다른 사람으로 변하겟는가 만약 본인이 다른사람으로 변햇다면 거짖이고 기만이다 김건희가 성형햇다고 다른사람으로 바뀌었겟는가? 그것은 사람들에게 착시 효과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bghae8 ай бұрын
팔정도를 개인적인 측면에서만 봐야 할까요? 지극히 개인에만 한정한다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부정 또는 무지가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데... 사회적 측면과 함께 팔정도의 길을 본다면 요즘같은 역사를 거스르는 검찰독재시대에 어찌 사는게 맞는 것인지......?
@ByungJinKim18 ай бұрын
사회적 측면 말씀하시는데, 하나 물어볼께요. 이 나라는 정규직의 과잉보호로 모든 사람들이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 어린시절부터 경쟁하는 시스템인데,, 이거 문제의식은 있으신지요?? 그리고 있으시면 이걸 깰수 있는 방법은 있나요?? 검찰이야 나중에 법바꿔서 기소청으로 바꾸면 끝나는데, 진짜 이 사회의 권력 구조는 전혀 손 못댈꺼 같은데요.
@쥬지스님-d5k8 ай бұрын
전라도 채널 아니랄까봐 이런 개솔 ;
@Lia33498 ай бұрын
불교가 민주화를 안 해요? ;; 그럼 수배자들 절에 숨어 있던 건요? 흐음? 그럼 기독교는 왜들 그러게 정치적으로 구는 경향이 있는지..?
@까망에쎄8 ай бұрын
반갑습니다....8정도는 하나의 수행방법이죠..거기까지는 힌두교 '브라만'에 속해요... 헌데, 8정도에는 '정혜'正慧가 없어요...붓다는 당시에 "정혜"를 직접 전수했고, 지금은 다시 여러 곳에서 발견해야 해요... 작금 종교 지도자, 수행자들의 행실과 외면, 견해를 따라, 지식으로써 쉽게 얻길 기대하는 걸 "문밖에서 구한다"라 해요... 어떤 노력,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직접 문안에서 구해야해요...그게 "심재"고,"일체유심조"이겠죠 ^^
@June06968 ай бұрын
잘 나가다 일체유심조 ;;
@cnqkd7 ай бұрын
AI가 작성한 느낌
@ydgsgegsgdyd46457 ай бұрын
8정도는 힌두교 브라만과 전혀 무관합니다. 8정도의 완성이 '혜'를 이루게 합니다. 그리고 '정혜'라는 단어가 없어요. 혜 (wisdom)라는 단어가 쓰이죠.
@또랑-e4g3 ай бұрын
팔정도 자체가 계정혜인데 무슨말씀인지...
@bkopyohong17667 ай бұрын
바로 부울경이네
@여여부동-q5q7 ай бұрын
백인백색~~보는 만큼 보이는것 아닌가...
@gosterlee41176 ай бұрын
강교수님께 질문있습니다...... 8정도는 단계적 수행을 통해 습관화하여 몰입에 다다라 갈애를 없애 해탈을 이룬다고 말씀하시는데 말씀하신 사회적 죽음을 자처한 출가자도 해탈하기 힘든데 일반 재가자는 해탈은 불가능한데 해탈이 지상목표인 불교에서 이에 도전하는 전문 수행자 말고는 불교신도는 의미없는 일을 하는 거란건가요??? 그럼 부처님은 해탈을 전파하기 위해서 수많은 백성들이 자신의 교단에 들어와야 한다는 조건을 거신거란 건가요??? 불경에서 설하시는 부처님의 말씀들은 해탈을 지향하는 것으로 일반 속세 사람들이 볼 필요없는 마치 공학도가 보는 전문서적과 같은 서적과 같은건가요?? 불교에서 말하는 8정도란 것이 강교수님이 말씀하신 수행적 단계가 아닌 멀티테스킹과 같은 일이라면 바르게 살려고 하고 명상도 하면서 해탈에 도전하는 것이 각각의 상호작용에 의해 해탈의 도를 가는 것이라면 부처님의 설법이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했다면 전문수행자만이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 할수 있는 것이고 가능하지만 전문수행자보단 느리지만 갈수 있기에 말하신게 아닌가요??? 8정도가 말씀하신 단계적 수행법이라면 일반인들에게 말하실 필요도 없는 것이잖슴까??
@srik64136 ай бұрын
제가 수행이란 팔정도의 정어,정업,정명을 실천하여 팔정도의 순환수행의 첫걸음을 딛는 것입니다. 그것이 계고, 정정으로 선정에드는것이 정, 선정에서 깨어나 대상을 보고 느끼는 지혜를 정견,정사유로 여실지견함이 혜 입니다. 계,정,혜는 그렇게 완성되어가는거지요. 제가자 중에서도 유마거사처럼 깨달음을 얻으신 분이 존재하니 제가자는 열심히 노력하고 또 하는 것이지요. 걸어간만큼은 걸어간 것이니까요. 이 생에 해탈이란 또다른 갈애는 그저 수행의 장애물이니 무소의 뿔처럼 혼자 걸어가라는게 부처님의 말씀일겁니다.
@gosterlee41176 ай бұрын
@@srik6413 제 질문은 팔정도가 단계별 수행법이라면???........재가신도는 모두 머리깎고 절로 들어가야 팔정도의 끝인 명상이라도 해볼수 있단겁니다..... 저는 팔정도를 단계별 수행법이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이런 댓글을 남긴것이구요....그걸 다 같이 해야 하는 것이지 바르게 보는 것이 완성될때까지 기다렸다가 바르게 생각하기 완성에 도전하고 그게 완성되면 바르게 말하는 법이 완성될때까지 도전하고......그러니까 예를들어 정견이 앞에 있으니 바르게 보는 것이 완성될때까지 그 다음 단계인 바르게 생각하고 말고는 할 필요가 없단 말과 같은 것인데 그럼 대부분 팔정도에 도전해서 노인세대가 되거나 죽을 때까지 명상 한번 못해보고 살거란거죠..... 이게 합리적 해석입니까??.....라고 묻는겁니다.... 즉 단계별 수헹으로 하나하나 습관으로 고착화시켜가는 건 초딩이 난 대학갈거야....목표를 잡고 국어를 완성할 때까지 초중고 국어를 마스터하고 그게 완성되면 수학을 초중고 수학을 마스터하고.....이렇게 공부하는겁니다....초딩이 고딩 국어 수학을 완성할수 있을거 같아요.....중딩이나 되야 될텐데 그럼 다시 초딩 수학 아니 산수부터 고딩 수학까지 완성하고.....이렇게 각 과목별로 공부해서 언제 대학시험이나 치겠냐는 겁니다......
@srik64136 ай бұрын
@@gosterlee4117 아, 그런 뜻이라면 님의 말이 맞습니다. 계,정,혜는 계 완성 후, 정, 그후 혜 완성이 아니듯 같이 가는 것이 맞습니다. 다만 계,정,혜 순서가 있는 것은 앞의 것이 뒤의 것의 토대가 되기에 완성도 그 순서대로 입니다. 즉, 혜가 완성된후 정이, 정이 완성된후 계의 완성이란 없습니다.
@gosterlee41176 ай бұрын
@@srik6413 고대 한국불교계의 고승으로 신라십성중 한분이신 원효스님은 계율을 어긴 파계승으로도 알려졌습니다.....님이 말하신 계율이란 수행을 위해 필요한 행동가짐입니다.. 그 말은 부처님 시대의 계율과 현대사회의 계율이 다른 이유입니다.....그 말은 또한 신라시대의 계율도 다르기에 원효스님이 파계승이라 말하기 어렵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예를들어 부처님 시대의 계율은 밥을 빌어먹는 것에 대한 것도 있었고 그건 수행자에게 있어 필요요소인 생명유지를 위한 절차로써 그에 대한 게율이며 그리하여 고기든 아니든 가리지 않고 먹었단 겁니다......그런데 현대 불교계율에 고기를 먹을 수 있나요???.....부처님이 정하신 밥을 빌어먹는 계율이 존재나 합니까???.... 팔정도와 계정혜와의 관계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일 뿐입니다.....계율은 행동가짐이지 그것이 바르다 아니다와는 상관없는겁니다..... 게율중에 7집이상 돌아도 밥을 얻지 못하면 돌아오라는게 있는데 그게 정견이나 정사랑 무슨 관계일까요????....불교철학은 말로 말의 성을 쌓아올린 폐해가 있습니다.... 강한 선정력으로 바른 선안이 뚫리는 걸 모르니까 정견에 대한 이상한 말들이 많아지는겁니다.......계율은 계율이고 정견 정사 정어와는 다른 의미입니다... 부처님 시대의 계율의 의미는 정견 정사 정어를 실천하기 위한게 아니라 수행을 제대로 하기 위해 장애물이 될수 있는 걸 걷어버리는 수행자의 행동거지를 말하는 것이지 바른 견해 바른생각 바른 말을 완성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에 팔정도에 계정혜를 얽는건 말의 성을 쌓는 것이라고 봅니다.
@최정은-k5w3 ай бұрын
썸네일보고 왔어요 최악의 인간은 누구인가요
@의사-s3gАй бұрын
내가 최고다 하며 안하무인 하는 인간이 최악이라고 하십니다.
@dd_98Ай бұрын
깨닫고 행동해야지 바뀝니다 ㅎㅎ
@ilwonlee91037 ай бұрын
519
@최윤선-j9t7 ай бұрын
우덜 고향사람들은 기회만 생기면 정치 야기를 그렇게 한당께
@포.청.천8 ай бұрын
탕탕갈비탕
@만시지탄-j1e8 ай бұрын
지금의 견해나 시선으로 부처를 본다는게 이치에 맞나? 난 하나님도 부처님도 '시간' 앞에서는 불완전... 즉 全知的이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ydgsgegsgdyd46457 ай бұрын
시간은 실제로 존재하는게 아닌 개념 (concept)이라서 실체가 없음.
@odysseylee68817 ай бұрын
그렇게 많이 배우신 분이 윤석열이 정권 잡으면 나라가 어케 될줄 뻔히 알면서 침묵/방관 그리고 민주주의 무임승차 . 박종철씨 같은 분에게 빚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여? 배워서 뭘혀유? 바르게 행동하지 않고 그저 돈만 밝히면???
@7chois7837 ай бұрын
리재명이 정권 잡으면 나라가 어케 될줄 알았기에 ㅋㅋ 그리고 돈만 밝힌 사람들은 저쪽에? 바글바늘
@100-cv4bi2 ай бұрын
문가리 보고있나
@100-cv4bi2 ай бұрын
조선민주주의
@jacob-xl8fi7 ай бұрын
박현도 교수님 뭘 그런 질문을 하세요. 수천년간 불교를 믿은 나라들을 보세요. 부조리와 불법이 제거된 나라가 하나라도 있나요?
@ByongjuneChoi7 ай бұрын
어느종교든 다 해결못함
@hoho-iw9yy4 ай бұрын
미국도 마약이 판치고 있는데요😂
@우유-y8z4 ай бұрын
이름 틀린거 아닌가요?
@juyeon2je2164 ай бұрын
이스라엘이나 이란이나.답없긴 마찬가지 원래.종교대로 이룬 국가없음
@박건국-s2g3 ай бұрын
기독교든 이슬람교든 그런 나라는 없음 오히려 아무 종교도 아닌 북유럽 국가들이 반부패지수가 높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