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친구중에 의경간 사람 두명 있는데요 각각 유도, 검도 유단자였고 사회성도 꽤 좋았습니다. 그런데 의경 갔다온 뒤엔 사람들과 연락을 끊었을 뿐만 아니라 대학 복학도 제때 못할 정도로 의경생활중에 정신적 고통을 많이 받았습니다. 지금은 어찌어찌해서 직업 갖고 잘 살긴 한데 의경을 안했으면 지금보다 행복하게 살았을거란 아쉬움이 들기도 합니다.
@꽃달고달려보자 Жыл бұрын
@first-one_shot @first-one_shot 4분 전 방금 로이인 재접하더니 사진이 다없어졌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추리 울산에서 인천 방순대애들 갔다가 리어카에 죽창들고 찔러서 실명사건이 젤유명한데 ㅋㅋㅋㅋㅋㅋㅋ 답글 @first-one_shot @first-one_shot 6분 전 와 어찌 울산 울산현대중공업파업이 안나와 왜 안나오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04년도엔 전안 맞나? 부안 핵폐기물로 1톤차가 의경돌진해서 뉴스에 크게나왔는데 답글닉없는게 삭제된글입니다
@모름-m2w5 ай бұрын
그 짓거리의 피해자가 약자나 소수이니까 아무런 뒤탈이 없을꺼라는 멍청한 민족. 그 약자나 소수자에게 드러낸 자신들의 밑바닥 때문에 서로간의 호감과 신뢰도를 떨어뜨리고 예민한 사회를 만든다 생각을 못함. 무지성으로 분위기나 유행에만 민감하게 따르지 사회지능이 낮아 자신들의 행동이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낳는지 계산이 안되니까 업보청산 해야 할때 받아들이지 못함.
@모름-m2w5 ай бұрын
영상만 봐도 죽은 고인의 성격탓으로 몰아감ㅋㅋㅋㅋ 조선놈들 특이 그래요. 내가 만만한 쟤한테 무슨 짓거리를 했는 지가 중요한게 아니라 쟤가 어떤 인간이고 어떻게 하느냐 해주느냐만 따집니다.
@winterson69384 ай бұрын
@@모름-m2w 개같은 종특이죠
@울랄라1009 Жыл бұрын
96군번 , 특기대 제대했고요. 연대사태 등 아무런 부상없이 제대한 제가 너무 자랑스럽네요.
@kkkdk Жыл бұрын
그걸 말이라거 하냐 나이를 헛되게 처먹어서 자랑스러운가보다
@taehoonpark89 Жыл бұрын
@@kkkdk다행이라곶말하는겁니다 오해 ㄴㄴ
@jaesungim35028 ай бұрын
95 3월군번입니다 .1기동대
@대방어-m5w7 ай бұрын
특기대 ㅋㅋ특수한 나가리부대 ㅋㅋ
@김정호-n5n7 ай бұрын
그땐 교기대도 데모가 한두 많아 데모를 막았죠 1대3대 교기대중 데모 잘 막은 중대가 있었는데 생각이 오락가락
@강아지3대-l4w2 жыл бұрын
우리조카도 의경 갔다가 뇌전증과 실어증만 얻어 의가사 제대하고 지금까지 집에만 있네요 나이 48세가 되었어도 살아가는게 사는게 아닙니다 철저히 조사해서 구타하는 인간들 강력한 처벌 바랍니다
@정-s2k Жыл бұрын
@@Assuming-p8j 제대… 너무 안타깝네요 긴 고생 끝에 벗어날 기회를 얻으셨음에도 얼마나 힘드셨으면…
@강아지3대-l4w Жыл бұрын
@@Assuming-p8j 얼마나 힘이 들었으면 어려운 선택을 했을까요 휴~~ 안타가워요
@꽃달고달려보자 Жыл бұрын
@first-one_shot @first-one_shot 4분 전 방금 로이인 재접하더니 사진이 다없어졌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추리 울산에서 인천 방순대애들 갔다가 리어카에 죽창들고 찔러서 실명사건이 젤유명한데 ㅋㅋㅋㅋㅋㅋㅋ 답글 @first-one_shot @first-one_shot 6분 전 와 어찌 울산 울산현대중공업파업이 안나와 왜 안나오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04년도엔 전안 맞나? 부안 핵폐기물로 1톤차가 의경돌진해서 뉴스에 크게나왔는데 답글 그런 영상들이 지워지고있습니다
@gwback8615 Жыл бұрын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정말 안타깝습니다... 구타가혹행위가 정말.... 안믿을정도로 심할때니까... 진짜 너무 안타깝네요
@delllllllllllllta11 ай бұрын
아... 진짜 너무 화가난다
@아햏햏-o2j Жыл бұрын
솔직히 경찰직원들 기동대 오는 이유가 승진공부 할려고 여기 오지 애들 관리가 아님!! 애들이 밥 차려오지 애들끼리 관리하지 애들끼리 지휘관 챙겨주지!! 경찰직원은 고참 의경만 잘 챙기고 진급시험 잘 보고 간다. 그거다.
@어디가세요-j3m11 ай бұрын
ㄹㅇ ㅋㅋㅋㅋㅋ
@김정호-n5n5 ай бұрын
@@아햏햏-o2j 솔직히 기동대 직원이 최고의 꿀보직이였죠 밑에 야들이 구두 닦아 줘 빨레해줘 옷 다려줘 밥챙겨줘 라면 끊여줘 상황만 아니면 개꿀보직
85년 12월달에 입대했는데 6주 훈련 다 마치고 전경으로 차출되서 서울에서 근무했었는데 구타가 얼마나 심했던지 내무반에 있는거 보다 24시간 365일 화염병 짱돌이 난무하는 시위현장에서 데모진압 하는게 훨씬 좋겟다고 동기하고 얘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조아요아조마룡과 Жыл бұрын
시대상으로는 당시엔 민주화가 진행되던 때라 확실히 폭력시위가 많았죠. 독재는 피를 먹고 성장한다 하더군요
@아름다운백도11 ай бұрын
고생하셨습니다
@찔레네 Жыл бұрын
99년 제대했는데 이제까지 재입대하는꿈만 5번 정도 꾼거같다. 진짜 자다가 울음
@비와미진이이야기5 ай бұрын
내 칭구는 대모 진압 잘해서 특박에다 포상휴가 자주나와서 집에서 뭔느무 군생활이 휴가를 자주나온다고 집에 그만좀 와라... ㅋㅋㅋㅋㅋ 특박 포상휴가도 그 칭구 능력이져
@grbc62042 жыл бұрын
전의경 폭력 근절 한거 조현오 청장이 큰일 했지. 여러 사람 살렸다
@grbc62042 жыл бұрын
조현오 청장이 악폐습 있는 전의경 부대는 해체 해버렸죠. 최근 의경 근무환경은 조현오청장 업적입니다.
@ddll5732 жыл бұрын
부대해체뿐 아니라 관련 직원들 짤라버려서 그뒤로 직원들도 구타 방조 안했죠 사실 전의경구타가 근절이 안되는 이유가 직원들 관리소흘이 가장크죠
@스위트홈-e9u Жыл бұрын
의경의 아버지..ㅋㅋ
@POLICE. Жыл бұрын
의버지 현오햄....
@seansong758 ай бұрын
좌파들에게는 거의 주적에 가까운 조현오 청장님
@찰나-v8j Жыл бұрын
95군번입니다 이렇게 힘들게 복무하고 제대하면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없는 군대라는 겁니다.. 정말 e편한 군대갔다왔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 많다는거죠.. 남들 군 얘기할때 넌 전의경 나왔자나.. ㅋㅋ 이렇게 말 못할 얘기할때 정말 서글픕니다..
@worldusa5452 Жыл бұрын
전 97군번입니다.친구들 사이나 사회에선 의경도 군대냐 이럽니다 보통 할말이 없네요
@TV-ps3pi4 ай бұрын
99군번입니다 딱맞는말씀이네요 진짜 개같이 처맞았었는데 김포공항에서 ㅜㅜ
@eormarkdans26002 жыл бұрын
96군번 전경 출신입니다 안타까운 죽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투명에가까운블루 Жыл бұрын
고생많으셨습니다 선배님
@김영훈-o8h Жыл бұрын
순직된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신바람-x5f2 жыл бұрын
99군번 전경출신입니다. 지금 나이가 40중반인데 그때 받았던 구타 가혹행위들이 아직도 꿈에 나타날정도 입니다. 그냥 지옥같은 2년이었습니다.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인간답게살아보자 Жыл бұрын
전 너무 맞다가 ... 내가 죽을 것 같아서...고참들 패서 기율대와 영창 다 가고... 전출 당했네요....
@셀-y4p Жыл бұрын
저는 고참2명 팼어요 ㅎ
@jjun608 Жыл бұрын
@@인간답게살아보자 저도 하도 맞다가 고참이랑 다이다이 떠서 고참 전출보내고 기율대,영창 갔다가 전 운이좋아서 본 부대에서 전역했네여.. 20년 이상이 지난 지금도 밑 기수들이랑 잘 만나서 술한잔씩 하면서 지내고있습니다!
@인간답게살아보자 Жыл бұрын
@@jjun608 진짜 2000년대 이후로는 모르겠는데 8-90년대 진압경찰은 정말 고생했지요... 여름 겨울에 제일 날씨 안좋으면 진압검열에 하루가 멀다하고 폭력시위가 일어나고, 구타에 갈취에 가혹행위에 말로 다 못하겠어요.
@인간답게살아보자 Жыл бұрын
@@jjun608 고참이랑 다이다이...^^ 그냥 같이 필수 있느냐고... 유인하면서 둘 만 있을 수 있는 공간에서 죽이는 게 나았죠... 내가 죽을것 같은데... 매일 맞지... 월급 빼앗기지... 가혹행위에 호모 새끼가 요구하면 아......ㅠㅠㅠㅠㅠㅠㅠㅠ 저는 차라리 내가 맞아 죽을것 같아서 죽기 전에 그 놈을 쳐 바르고, 기율대, 영창, 그 후에 전출 갔죠....
@이원전-g9g2 жыл бұрын
이제 의경 없어졌는데.... 제가 94년 기동대 제대했는데.. 그래도 우리부대는 잠은 잘 재웠는데... 물론 때리고 그랬기는 하지만 저 죽은 일경 잠도 안재우고 참 고참이라는 것들 악질적이내요....이게 징집제도의 문제죠... 온갖성격의 사람들이 들어와있는데 예민하거나, 마음이 여린 사람들을 갑자기 저런 맨날 구타 하는곳에 24시간 가둬놓으니 사고가 안터질수가 없죠.... 구타가 없더라도 말로도 수없이 갈구죠...
@포비야-m7h Жыл бұрын
저희 아빠도 92군번 전경출신이었다네요.
@김태윤-k4g Жыл бұрын
94년이면 그래도 나은게 민주화운동끝나고 문민정부때라....시위가 간헐적이있어요 운동권이 소셜포지션이 애매할때라 운동권 386이 제도권내로 들어온게 김대중때부터였거든요 그래서 시위하는사람들이 끗발이 생기기시작할무렵이 98년이후부터였죠 끗발이생긴이후 반미시위하고 반전시위하는게 국가의 사명인양 불특정다수인들에게 강요받던 시절이 2002년이후였죠 그래서 2000년이후 시위가 사실 80년대이후만큼 다른형태로 빡셌습니다.
@wp5066 Жыл бұрын
어떤 중대 혹은 소대에서는 베게도 안주고 목들고 자라는 쓰레기들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대부분 구타들이 심했겠지만, 케바케도 많은 듯 합니다.
@cnc11496165 ай бұрын
95년 용산 32중대인데 혹시? 32중대?
@ddll5732 жыл бұрын
07년 자대배치 받기전 직원이 데리러 왔는데 그때 부관이 창밖본다고 눈깔 파버린다고 정면 뚫으라고 안그럼 톱으로 두개골 반으로 갈라버린다고 했던말 듣고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고 자대배치 받고 눈뜨고 눈감기 전까지 가혹행위 와 구타 똥도 오줌도 못싸게하고 물도 못먹게하고 밥은 고봉밥주고 1분식사 시키고 식판은 혀로 설거지하듯이 다 핥아 먹어야 하며 심지어 케첩도 조금이라도 남기면 패고 대가리 박게하고 훈련중 물안주고 열외들만 먹고 우리는 물 안주고 땅에다 물 버려버렸죠 니들줄 물 없다고 그리고 잠도 안재우고 매일 괴롭혔죠 그리고 상황나가서 졸면 깨스에 구타에 등등 너무 많아요 매일매일 지옥이었죠 지옥입니다 직원들이 방조하고 그런말 하는거 보고 여긴 정말 지옥이다 생각했습죠 심지어 기수도 꼬여서 수경달고도 깨스타고 걸레빨고 에효 시벌
@투명에가까운블루 Жыл бұрын
07년 작전 3126기 전경입니다.. 훈련, 시위보다 더 힘들었던게 숨막힐듯한 내무반에서의 악습이었죠.. 저도 기수 꼬여서 수경달고 걸레질 했었는데ㅠㅠ 그래도 동기가 많았어서 저희선에서 악폐습은 없앴던 기억이 나네요.. 그 당시엔 신병들 들어오면 상상도 못할것들이 눈앞에 펼쳐져서 이걸 참는게 많나..싶다가도 십수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군생활중 가장 후회없는 결단이었다 생각합니다.. 보일러실, 샤워실에서 진짜 너무 힘들었는데 그래도 후임들은 안겪어서 다행입니다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네요ㅎㅎ 고생하셨습니다 정말
@ddll573 Жыл бұрын
@@투명에가까운블루 감사합니다 님도 육군지원했는데 원치않게 전경생활하시고도 잘 참으셨네요 저는 의경인데 의경에선 보기 드물게 개때기수라 저도 동기들때문에 서로 의지 많이 했네요 고생하셨어요~
@seonic4750 Жыл бұрын
전 전경 1756기 입니다. 고생하셨어요
@taehoonpark89 Жыл бұрын
악폐습을 없애고 제대한 08군번입니다 제대하고나니 상상하지도 못한 순한 후임들이 악습으로 타부대로 날라가더라구요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고민 했습니다
87군번 전경출신입니다. 길거리에 휴식 중 화염병에 머리 맞아 2도 화상을 입었으나 화상 치료외에 아무것도 없이 제대하였습니다. 짜박 훈련과 진압 전 훈련은 너무 잔혹하게 구타를 받아 참 힘들었습니다.
@lcy030511 ай бұрын
87군번이면 1987년에 입대하셨다는 말인데 그때는 군대에서 다치거나 구타당하고 죽어도 아무 문제없던 시절이었죠. 게다가 1994년 이전이라 군대 사건사고 보도가 금지되었던 시대였습니다.
@아름다운백도11 ай бұрын
우와 1987부터 3년이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운 나쁜 전경기수네요..ㅠ 고생하셨습니다
@청하-c9c8 ай бұрын
선배님 고생많으셨습니다
@chankwonjeon72047 ай бұрын
저도 87년 잠실 56중대
@나야나-y9r Жыл бұрын
05군번 전의경입니다. 육군으로 지원해서 전경으로 착출되서 서러웠는데 구타 가혹행위도 너무 심했어요. 우리 자식들 군대 생활은 그런게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하상근-e4u Жыл бұрын
저랑 동년군번이시군요 반갑습니다ㅎ
@고고씽-v6h Жыл бұрын
05, 국103격대, 수고하세요
@pdhj00 Жыл бұрын
ㅇㅇ 이제 의경은 없어요 사라졌다네옷
@양나미-b9b Жыл бұрын
와 저는 05년 1월 군번입니다. 작전 3009기 반갑네요
@용.선이네4남매 Жыл бұрын
저도 의경 05년 8월 군번인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오늘의운세-r2p2 жыл бұрын
00년도 전투경찰 은 사단훈련소 에서도 무작위착출해감 ㅜㅜ 앞침상 동기들 전투 경찰 ㅜ전날밤 호명해줬던 조교도 부디 가서 몸조심하라고 하는대 표정이 씁쓸 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네요
@아이러브잇슈 Жыл бұрын
전경..씨발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 첫 구타가 더블빽깔때 육군냄새난다고 바로 싸대기 후려치더라 때리면서 몸 닿았는데 관등성명 안나온다고 바로 명치 발로 존나쌔게 차고. 진짜 많이 맞았는데 그 중에서도 첫구타가 진짜 안잊혀짐 "아씨;발 이게 전의경 구타구나.. " 그러면 열외기수가 와서 야~신병 보안 교육되면 때려~~ 하고. 그럼 또 받대기기수가 "신병 이라고 나왔는데 관등성명안대? 씨발있다가 보자" 하고 끌고감.. 귀에다가 대고 "야 씹새꺄 너 나한테 찍혔다. 2년동안 존나 죽여버린다. 자살하고 싶게 만들어버린다" 개폭언.기본. 잠잘대 깍지끼고 각잡고자야하는데 자다가 조금만 삐뚤어지면 주먹으로 자는대 깜.. 그리고 다음날 내 아래로 니 위로 다대리고 와라. 하고 앉아있으라고 하고 선임들 싸대기치고 주먹으로 까고.. ㅆㅂ..ㅋㅋ 멍들면 안돼니까 근무설때 끼는 스키장갑같은 두꺼운 장갑끼고 목 길게 빼라고 한다음에 주먹으로 존나쌔게치면, 겉으로는 티 안나는데 식도가 부어가지고 말도잘 안나오고 침뱉으면 피섞여나옴.. 일주일동안 밥도 안넘어가서 못먹음.. 내가 군대에서 적응하게된 계기가. 근접기수중에 착했던 선임이.. 그냥 자신을 노예라고 생각하라더라, 지배계급이 맘에안들면 바로 죽일수도있는 노예. 그러면 군생활잘하게된다고.. 그러고 나서 내부생활 인정받음.. 내부생활보다 차라리 시위막는게 더 편했지
@delllllllllllllta11 ай бұрын
아.. 너무 끔찍하고 역겹다.. 버티다버티다 못해 인간성을 잃어버려서 저렇게까지 된건지 와..
저두 전경출신인데 전경 부대 내림 이라는 게 있었던거 같아요. 그 부대 역사 라는게 있는 거 같어요. 어떤 부대는 그 내림이 너무나도 가혹하고 쉽지가 않다는 겁니다. 제대해도 그때 당시 느꼈던 심적 부담감이 큰 트라우마로 남게 되는 것이다. 내가 했던 고생이 내 쫄병한테로 이어져 내려가는 거에요. 저두 여린 제 쫄병한테 잘해주려 했지만 [내가 고생한 만큼 너도 고생해야 해]하는 마음이 있어서 제가 알고 있는 침상 정리를 쉽게 하는 편하게 하는 방법을 지름길을 가르쳐 주지 못했습니다. 갸가 한동안 답답한 괴로운 가혹한 시간을 보냈어야 했다 생각하니 저두 가슴이 아픕니다.
@Sam_Sung_Car2 жыл бұрын
전경 및 의경들의 군기 확립 문화의 고발은 S본부 뉴스추적 기자들께서 처음 고발했다고 해요.
@jjun608 Жыл бұрын
01군번 진압전담 전경대 출신임! 지금 숨쉬고 잘 살고있는거에 감사하며 살고있습니다.. 징역보다 못한곳이 전의경입니다!!
@jintaelee401111 ай бұрын
청바지에 청자켓을 입고 사복체포조 백골단은 훈련도 그렇고 아주 살벌하다고 들었습니다 주로 특전사나 해병대출신들이 많았다고
@POLICE.6 ай бұрын
@@jintaelee4011그건 직원중대일겁니다
@아카징키-w3nАй бұрын
01군번 의경 기동대 출신입니다. 백골단 없어지고 진사복 중대에 있었네요..요즘 생각해보면 크게 안다치고 몸성하게 전역한거에 정말 감사하네요
@조정현-v8o Жыл бұрын
97군번 전경 출신입니다 정말 전경.의경은 없어진게 잘된거라 생각합니다 나의 26개월 전경생활은 생각하고 싶지도 않고 진짜 진짜 최악의 생활이었습니다 거짓말 하나도 안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구타당하고 점심에 구타 당하고 저녁에 또 구타 당하고 자기전에 점호때 구타 당하고 잘때 깨워서 구타 당하고 진짜 욕나옵니다 18 같은 전경생활 지옥이 따로 없었습니다 ㅡ.ㅡ 거짓말 하나 안하고 고참되서 저는 후임들 단 한번도 구타한적 없습니다 하늘에 맹세코 ㅡ.ㅡ ㅜㅜ
@악플핑-h3q Жыл бұрын
우와 틀닥이당
@조정현-v8o Жыл бұрын
@오 레 수고하셨습니다 군대는 안갈수 있으면 않가는게 이익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조정현-v8o Жыл бұрын
@@악플핑-h3q 딱 닉네임 같은 댓글이네 ㅋㅋ 악플맨 ^.^관심 받아라 어이 옛따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셀-y4p Жыл бұрын
열외되면 대신 왕생활 하고 놀다가 제대
@와룡선생-h7z Жыл бұрын
선배님~저는 2590기입니다.. 참으로 고생많으셨습니다
@핫체리-v5q2 жыл бұрын
전 육군 지원했다가 전경으로끌려가 진짜 수도없이 구타당한 사람입니다!! 옥상에서 빨래널다가 아!! 뛰어내리면 오늘 안맞아도 되겠구나 라고까지 생각이듭니다!! 시대가 바뀌어서 구타는 요즘 많이 사라진듯보입니다!! 그래도 자살하지않코 잘 버텨준 내자신에게 고맙다!! 칭찬해주고 싶은 하루내요~~*^^*
@레시피도둑 Жыл бұрын
전경은 그래도 대모는 거의 안막았자나 ㅋ
@tenderness3362 Жыл бұрын
@@레시피도둑 의경은 pc방가고 부럽더라 ㅋ
@후후냠 Жыл бұрын
@@tenderness3362 pc 못 갔음~ 가면 누가 신고함~
@wp5066 Жыл бұрын
@@레시피도둑 전경도 나름입니다. 시설 경비가 대부분이지만, 운 나쁘면 기동대 배치되어 의경이나, 전경이나 생활이 똑같고, 상황 시엔, 선봉입니다.. 다만, 전시 위험이 발생하면, 완전군장에 출동 대기입니다. 그리고 1년에 1~2번 유격 하고 사격하는 거가 차이가 날겁니다.
@@IlilIIIIII-o4u 타는 듯한 날씨에 물 안 주는 깨스 기상시각부터 취침점호까지 화장실 못 가게 하는 깨스 고참 잘 때까지 pt 자세로 잠 안 재우는 깨스 구타는 덤
@MKGA_2025s Жыл бұрын
이 방송 이후부터 10여년 이상이 지나고 난 뒤에 온갖 구타 부조리들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23년 4월을 기점으로 전의경들이 완전 소멸했다고 하였다... 참 오래도 걸렸다 늬미..
@agora98582 жыл бұрын
전두환 노태우때까지 전경 외에도 일반 타군에도 구타 및 가혹행위 많았었죠.. 내무실에서는 병장 외에 상병 이하는 숨소리도 못내고 살았습니다. 매일 뚜드려 맞아도 동기와 서로 위로하며 모두 정신력으로 버텻습니다...
@chihunchoe2171 Жыл бұрын
이 다큐가 나왔던 당시 의경으로 서울 기동대에 배치받고 근무를 시작하여 05년 6월에 전역하였습니다. 당시 의경의 내무생활 및 시위진압 내용들이 이 영상에 고스란히 담겨있네요. 아직도 그때 2년이 끝났다는 것이 꿈만같습니다. 군생활 2년이라는 것도 힘들었지만 내무실 군기와 구타는 정말 상상을 초월했죠. 저는 그들처럼 구타를 하진 않았으나 저 역시 살려고 그런 악습에 대항 못하고 편승했으니 면목은 없습니다. 하지만 전부 한 개개인으로 살아보려고 하는 몸부림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물론 나쁜악습이라는데 부정하진 않습니다. 전의경 생활에서의 구타가 발생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시위에서 위험에 대비해서 대원들이 긴장하고 빠릿빠릿하게 대응하기 위함이라지만 그런 것들의 악영향으로 몇몇은 내무활동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시위진압에서 시위대에게 풀려하는 대원들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당시 진압때 시위대나 대원들이 다치거나 심하게는 일이 종종 발생했었죠. 시위대가 위험한 흉기를 사용하는 것에 대응하고자 철방패 모서리를 갈아서 휘두르곤 했죠. 저 역시도 억지로 끝내 버텨서 전역은 했지만 지금도 한번씩 사람들과 마찰에 자제하지 못하고 쉽게 폭발할때 내 자신에 많이 안타깝습니다. 그 모든것이 정당화 될 순 없습니다. 그 당시 함께 생활했던 선후임과 상해를 입거나 다친 시위대분들에 심심한 위로를 보냅니다.
@seansong75 Жыл бұрын
05년1월에 입대하여 인천 맥아더공원 출동나갔을때 정말 죽고싶었던 기억만 나네요
@kimdavid787411 ай бұрын
부안 많이가셨겠어요 나랑 비슷한 기수시네
@chihunchoe217111 ай бұрын
@@kimdavid7874 넵ㅋ 입대하고 6개월 정도 네번정도 내려갔습니다. 부식이 많이 나와 좋더라구요ㅋ
@지성강-z9m2 жыл бұрын
피투성인체로 쓰러져 있다는건 누군가에 의해 된거지 그 대장을 구속하고 그만큼 잘못을 알때까지 교육과 훈계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04년 전의경 출신인데 이뉴스를 20년만에 처음봤네;; 이걸 모르고 끌려간 내가 레전드..
@이동엽-j3w5 ай бұрын
전 집앞에 전의경 부대가 있었어요!! 밤만 되면 밖으로 집합해서 얼마나 때려데던지 동네사람들이 밤만되면 시끄러워서 잠을 못자겠다고 경찰청에 민원넣고 날리를 피웠더니 부대를 통채로 산속으로 옮기더라구요!! 그때 친구를 애기를 들어보면 육군이나 일반군인은 상상도 못할 구타가 가혹행위가 만연한게 전의경부대!! 저두 친구따라 전의경부대 가려다 않가고 육군으로 가길 얼마나 잘했던지~~^^* 국방부 소속이 아니라 구타및 가혹행위 근절에 사각지대 였던게 전의경부대 였습니다!! 경찰의 비리를 어데다 하소연할때도 없었고~~~
@나코-c2h Жыл бұрын
99군번 전경출신 입니다 전라남도 장성군 에서 군생활 했는데~~ 구타 정말 심했습니다~~ 그때 개같이 굴던 고참들은 사회나와서 얼마나 착한척하고 살고있을지~~~
@인간답게살아보자 Жыл бұрын
611 나오셨나요?
@jeheeshin8192 жыл бұрын
대한민국 군대가 위험수위를 넘은지 오래인데 정부에선 그저 바라만본다. 앞으로 군대갈 청춘들은 이대로 당하지 말고 뭉처서 정부에 항의해라.
@oneshot.. Жыл бұрын
02군번 서울 기동대 출신입니다 야간점호 끝나고 매일 화장실서 흐르는 코피를 씻던 옆 소대 신병이 생각 나네요 그놈은 잘살고 있으려나 매일 패던 그놈을 찾아 복수 했으려나... 전의경은 가장 큰 문제가 실전과 간부들이 앞장서 구타 했었음 진압하다 뚫리면 부대 복귀 후 밤새 소대장실에서 수경들 싸대기 맞는 소리가 들림 운나쁘면 빠따질 당하고 그럼 뭐 상경 일경 이경은 뒤졌다고 봐야지...
@amaton10-j5o Жыл бұрын
07군번 서울3기동대출신인데,소대장실가서 맞았다는건 쫌 충격이네요 헐 진짜 고생하셨어요. 살벌하네요
@Bitcoin7772211 ай бұрын
@@amaton10-j5o나도 소대장한테 싸대기맞고 프런트킥으로 배때기 자주 까였었음
@user-4d9307 ай бұрын
소대장이면 경위 아닙니까? 안그래도 구타 많기로 언론에 나오는데 근절해야 되는 위치인데 구타에 앞장서고 있으니
@김경모-j9l5f7 ай бұрын
@@user-4d930 경찰대학에서 선배들한테 그렇게 맞았다고 수경열외킬러가되서 집중적으로 패죠 수경들만
@byk-d4v5 ай бұрын
난 무릎꿇고 열중쉰 상태에서 군화발 풀스윙을 가슴을 중심으로 25대맞고나서 7박8일동안 숨쉬기가 힘들었고 58살이된 지금도 그날의 비참함을 잊을수가없다
95년 입대 의경 453기 입니다. 당시에 구타는 상상을 초월하죠. 구타, 고문등 지금 생각해도 치가 떨립니다. 지금 제 나이가 49살인데도 어제 일처럼 구타 당한거 생생하네요. 짐마,내무반,상황,근무,진압훈련등 시간,장소 안가리고 구타 당했죠. 가슴에 피멍이 들어서 숨도 못쉬고 진압봉에 머리를 맞아서 피가 흐른적도 많고 제대후 성격까지 바뀌고 대인기피증과 분노심만 생기고 성격 다버립니다.
@Mr.son- Жыл бұрын
의경 427 기 미안했다 ..
@Daejeon-1 Жыл бұрын
여기서 53기 동기를 만날줄이야... 반갑다 동기야~ 안좋은 글에 답글 다는게 맞나 싶지만.... 우리 군생활 고생 엄청했다.. 95년 8월7일 56사단 훈련소 입소 충주 중앙경찰학교 거쳐서 난 서울청 기동단 4기동대 55중대 자대배치 받아갔을때 한 선임이 너희들 구타의 천국에 왔다고.. 각오하라고 했을때...진짜 눈앞이 깜깜했었지 진짜 매일매일 쳐맞는게 일상이었고 잠 안재우며 갈구림에..어휴.. 고생많았다! 앞으론 밝은날만 있으시길~^^
@꽃달고달려보자 Жыл бұрын
@first-one_shot @first-one_shot 4분 전 방금 로이인 재접하더니 사진이 다없어졌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대추리 울산에서 인천 방순대애들 갔다가 리어카에 죽창들고 찔러서 실명사건이 젤유명한데 ㅋㅋㅋㅋㅋㅋㅋ 답글 @first-one_shot @first-one_shot 6분 전 와 어찌 울산 울산현대중공업파업이 안나와 왜 안나오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04년도엔 전안 맞나? 부안 핵폐기물로 1톤차가 의경돌진해서 뉴스에 크게나왔는데 답글그런 영상들이 없어지고 있습니다
@yonghyunyoun10 ай бұрын
고생 많었습니다
@손미르-s8n10 ай бұрын
와 저도 453기 입니다 그당시. 구타 정말 심했죠. 고생 많았겠네요! 그래도 수방사 56사단 훈련소와 경찰학교 생활은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반승환-d4w Жыл бұрын
95군번 대구 1002. 행정 489기 입니다. 정말 많이 맞고, 기합에. 15개월은 편하게 쉬지도. 자지도. 먹지도 못했던것 같네요. 그럼에도 대부분은 무사히 제대했고, 그중에 한명이었던게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이윤선-d7v Жыл бұрын
안녕하세요 95년6월5일 의경입대 447기.경기기동1011 위 말씀과 거의 비슷했네요
@아름슬기 Жыл бұрын
너도 방관자야
@인간답게살아보자 Жыл бұрын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진짜 전경 차출 당하고 1년 동안 월급을 빼았겼 습니다. 그게 전경 중대의 말도 안되는 전통이었죠. 구타는 기본이고... 중대장이 지나가는데도 구타를 해도 중대장은 "야, 너네 뭐하냐?" 정도만 물어보고 아무 문제도 안 삼았죠. 처음 중대에 배치 받았을 때, 중대원들 3분의 1 이상이 깁스를 하거나 목발을 짚고 다녔습니다. 저는 90년대 초반 전경... 그 당시에 다른 부대들이 이렇게 하고 다녔나요?
@아름다운백도11 ай бұрын
저는 의경 입니다 90년대 초반이면 저랑 같은시기네요 전경 600대기수 정도 되시나요? 정말 고생 하셨습니다 서울대 상황가보면 27장막에서 전경중대들 화장실뒤 산에서 엄청 맞는거 많이 봐왔습니다 의경들은 구타근절 한답시고 각소대에 소대장들이(경위.경사)가 같이 생활하게 만들어 놨었습니다 그런데..점호끝나면 나가버립니다 그냥 뭐 패라 이거죠 옥상에서.식당옆에서.짐차에서.창고에서 징글징글 합니다,.
@strausdetailing901311 ай бұрын
저희중대도 비슷한일 있었는데 말년휴가때 당한애들이 작심하고 간부한테 우르르 몰려가 말씀드렸는데 당시 행정반장님(해병대 수색대출신)이 제대로 열받으셔서 돈안갚으면 이제는 수사들어간다고 빨간줄 긋게 만든다고 엄포놓고 집에 부모님한테도 전화해서 다 받아내고 사과하면서 없어진거로 알고있습니다
@sanglee78772 жыл бұрын
군필자들 특히 전의경 출신들 다 엄청난 피해를 본 사람들이죠 그런데 보상도 명예도 없어요 뭐 이런 나라가 있나 싶네요
@윤서연-q3s2 жыл бұрын
의경들이 구타에 몾견뎌 자살하는경우 국가에서 유죽한태 상당한 보상을 해야합니다 도대체 그 그부대에,고참을,체포하셔야함니다 죽은마당에,거짓말하겠어요 오죽하면 죽겠어요 거짓입니다 부대에서 위선에서 시켰을겁니다
@p준수 Жыл бұрын
폭력데모대는. 민주열사로. 보상들 다해주던데 이렇게 고생한 전 의경들은 그들을 짓누러고. 민주를 저해한 자들로 숨기고싶은 건가봐요
@agarlicsorbet64829 ай бұрын
@@p준수 어디 어떤 폭력 데모대가 민주화 열사로 보상을 받아? 말 똑바로 안하냐 80년 광주 말하는 거면 그냥 접시물 받아라 작전세력 명령 받은 대한민국 특전사 공수부대한테 선빵으로 대검이랑 곤봉 맞는 거랑 그냥 일반 경찰 나부랭이한테 최루탄 맞는 게 같냐 전의경 나왔단 것들도 뭐 지들이 상경인지 수경인지 계급 달고 나서는 영상 나오는 것처럼 밑에 애들 안 보호하고 자기가 당한 그대로 복수하듯 조지면서 심적 보상 받을 거 다 받았을 텐데. 뭐가 그렇게 억울하냐? 너 예비역 의경이야? 밑에 애들 인도적으러 대해줬냐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라
@@user-111ymp 근데 이게 학폭과는 결이 다른게... 학폭은 보면 한번 가해자는 영원히 가해자고 한번 피해자는 영원히 피해자인 경우가 대부분 이지만, 군대 가혹 행위는, 가해자도 피해자 였던시절이 있었으며, 피해자도 추후 가해자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학폭과 다르게, 군기라는 명목 아래 간부들이 그런식의 분위기를 몰아가는 경우도 많습니다. 학폭과는 또 다른 관점에서 접근을 해야하는 문제인듯
@조자룡-z4x4 ай бұрын
복수를 하세요. 댓글로 분노를 표해봣자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못합니다
@chunjiin8883 Жыл бұрын
저도 의경생활할때 고문관이라고 많이 맞았네요 구타.많았지요
@지성강-z9m2 жыл бұрын
못된놈들 깡패기질이 있는 인간은 감옥에서 교육을 철저히 해야지 그러한 인간들을 감옥에서도 놔두니까 억울하고 힘없는 사람은 죽는것이다.
@정의란무엇인가 Жыл бұрын
부산 기동 1중대 출신입니다. 제대한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까지 의경 생활을 생각하면 이가 갈립니다. ㅡㅡ
2003년에 방송되었네. 저때만 해도 의경이라 하면 가혹행위 구타가 잔혹할 정도라서 완전 기피 보직이었는지라 육군 일반병을 지원했는데 의경으로 차출된 경우도 많았음. 심지어는 그냥 신청만 해도 장애인이나 조현병이 아닌이상 합격했을 정도. 2011년에 조현오 당시 경찰청장의 개혁으로 가혹행위가 사라졌음.
@stanleytazo10 ай бұрын
댓글 보면 신기한게, 전의경 가서 맞은 사람은 잔뜩 있는데, 때린놈은 한명도 안보여 ㅋㅋㅋㅋ 신기하다 정말. 다들 맞은 것만 기억나고, 후임들 두드려팬거는 다 잊어버리는건가? ㅋㅋ
@듀플-u3k7 ай бұрын
그러게요 다들 당한 것만 생각나나 봅니다
@sosohappy80657 ай бұрын
피해자들이자 가해자들
@user-ue2dz8oc5u6 ай бұрын
내가 후임들 안때리고 안괴롭혓는데 직원이 하극상 부추기더군요 제대 한달남은 수경고참한테 일경후임이 와서 소대장이름걸고 비아냥거리고 조롱하더라구요 어릴때부터 학교에서 괴롭힘당하고 집에서 욕먹고 맞으면서 자라서 자존감 같은거 가져본적도 없어서 무난하게 참았엇네요
@user-4d9305 ай бұрын
사실 당한 게 가장 생각이 많이 나고 억울한 게 크죠
@DuRuWow5 ай бұрын
미필임? 때리는 놈, 갈구는 놈은 실상 한 둘 임.
@taewoonkim2521 Жыл бұрын
96년 490기 의경기동대 출신입니다…. 진압 마치고 부대 복귀 후 생활관 건물 뒷쪽애서 막내들끼리 군화 손질하면서 다음주에 신병온다더라… 조용히 이야기 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고참이 우연히 듣게되서… 그당시 군기담당인 삼석들에게… 요즘 애들 군기가 빠져서.. 신병이 오네 마네.. 한다고.. 한마디 했는데…. 그날 전반 근무 마치고 밤 12시 복귀하자 마자 저랑 바로 윗기수 고참이랑 둘이서 구타를 딩하다 당하다.. 다 맞고 내무반 들어오니…2시…. 내 나이 48…. 아직도 치가 떨린다…
98군번 대구1001 기동대 제대했네요. 구타 가혹행위에 치가 떨릴만큼 힘들었던거 같습니다. 의경이 육군보다 더 힘든건 시위진압 즉 현장에서 실전 싸움입니다.육군은 훈련위주고.. 그러다보니 고참들은 더 빡센 군기를 가르치고 쫄병들을 괴롭힌건 사실이죠. 시위대에게 사망하는경우도 많았기에 군대에서 불구가 되거나 죽으면 본인 손해이기에 어쩌면 더 강력한 규율로 다스렸던 같아요. 현재는 의경이 방패막이 해야하는건 이제 완전사라져서 다행이고 90년대처럼 화염병 던지는 그런 시위분위기도 사라졌고, 무엇보다 구타,가혹행위가 사라져서 다행입니다.
@재밌는쇼츠52524 ай бұрын
3:15 임마 이거 방송국 카메라 앞에서도 정신 못 차리고 말 하는 거 보소? 때려도 되는 놈이 있고 안 되는 놈이 있어? 그것도 놈? 이거 완전 답 없는 지휘관이네;;
@강23 Жыл бұрын
제주동부서 방순대 08군번 의경출신입니다. 선배님들 명복을 빕니다. 저 또한 극단적인 생각 여러번 했었는데.. 하,
@김시현-i2d Жыл бұрын
동부서 3소대 자살 한거 진짜죠 선배님?
@김형섭-n3k Жыл бұрын
저 동부방순대 12군번인데 3소대 빨래놔두는방? 거기 불 계속 켜둔다고 했다고 들었는데
@KRoadYou2 жыл бұрын
공익 널널하게 군기없이 보낸거 감사합니다
@희-f6d2 ай бұрын
95군번 의경입니다 제 바로 밑 후임은 불침번 서다가 너무 가혹행위가 심해서 농약먹고 자살시도까지 했습니다 운이 좋아 발견되어서 살렸습니다 말이 경찰이지 경찰서에 먹고자는 깡패소굴이였죠 밥먹고 설거지할때 단체로 맞고 점호할때 쳐맞고 소대장 중대장에게 구타당한다고 말 하라고요? 말하는 순간 비밀유지가 안돼서 중대 고참들에게 맞아 죽을까봐 구타당한다는말 중대장 소대장에게 말 못합니다
@Keanu_wind-hu3en Жыл бұрын
02군번 기동대 출신임. 저당시 가혹행위 없었다는건 개소리임.
@worldusa5452 Жыл бұрын
난97년도에 고딩졸업하고 병무청에 땅개 지원했더니 imf터져서 땅개갈려면 1년이나 기달려야 된다고 하더라 그래서 하루라도 빨리 갈려고 여기저기 알아봤더니 의경은 지원하면 바로 입대 가능하대.. 그래서 지원해서 나보고 유도3단이라고 경찰학교에서 서울 기동대 사복중대(옛 백골단)로 보내버리더만..자대로 가자마자 이유없이 존나빠졌다고 존나게 쳐맞았지. 맨날 시위진압에 철야근무에 잠2~3시간자고 그러다 닭장차에서 잠깐졸면 고참들 주먹,발이 내면상으로 마구잡이로 날라왔지..그러고 나도 고참되서 고참들이 했던짓 똑같이 하고 지옥같은 26개월 마쳤음
@코나남 Жыл бұрын
2011년 이전까지의 전의경은 가혹행위는 거의 구 일본군 수준이였다는 말도 있었으니까... 말 다했죠.....
@김성동-i8l Жыл бұрын
군기 구타도 어느정도야지 그 선을 어느정도인지를 모르는사람이 대부분이다
@방탄아미바라기 Жыл бұрын
전의경 가혹행위 없애려 노력한 조현오 청장이 진짜 레전드였지
@리키-z8v9 ай бұрын
92년 군산2506 매일 구타 매일 집합 매일 짐차 집합 매일 진압
@허니랑6 ай бұрын
ㅋㅋㅋ2506 2709 2308 생각나네
@기대마 Жыл бұрын
2000년 1월부터 2002년 3월까지 서울청 기동단 진압중대 중에서 선봉중대에서 제대했습니다.그때 당시 격한 폭력시위가 엄청 많고 지방 큰 시위에도 엄청 투입되었습니다.정말 군기 쎄고 구타도 많음. 그런데 약간 틀린점은 빡쎈 중대가 그나마 구타 갈굼이 덜합니다. 서로 힘들고 피곤함. 친구가 시설중대였는데 저도 듣고 깜짝놀랬습니다. 그래도 좋은 추억도 많고 고생하셨습니다. 제 1기동대 제 2기동대 제 3기동대 제 4기동대 특수기동대! 서울청 기동단 화이팅입니다^^
@southpawkim662 Жыл бұрын
1001중대인가요 존경합니다.. 185이상에 미친구보에..
@신왕라인 Жыл бұрын
선봉! 흑곰인사올립니다 선배님^^기억하실려나 ㅎㅎ
@신왕라인 Жыл бұрын
벌써 다들 나이대가 40을넘어 세월이 많이 흘럿네요~
@포비야-m7h Жыл бұрын
그때까진 화염병시위도 많았죠
@taehoonpark89 Жыл бұрын
시설중대라 함은 방범대인가요? 미군부대 경비업무인가요 저도 15년 전이지만 헷갈리네요 선배님
@박지현-n1k2g Жыл бұрын
군대는 안 갈 수 있으면 안 가는 게 장땡이다
@뮨월 Жыл бұрын
의 경 갔다와서 경찰이라는 조직이 얼마나썩었는지 알게됨. 영상에 우리부대도 나오네 본인들 부대에서 자살자나온걸 마치 자랑하둣이 말하면서 겁을 줬었는데 ㅋㅋ개같은 선임놈들 기억나네 ㅋㅋ소대장이라는놈은 매일 부대에 BMW에 치킨사들고오는 조폭놈이랑 친구먹고있고 ㅋ ㅋㅋㅋ지금생각하면 개역겹네. 부관이란 셋기는 매일 내무반에 선임들 불러놓고 술파티 ㅅㅂ 어이없음 다들 부끄러운줄 알고 잘못한것들은 천벌 받으며 살길.
@달과500냥6 ай бұрын
01군번 서울 기동대 21중대였는데 우린 그래도 구타 있긴했어도 심하진 않았는데 다들 고생 많으셨네요 고참들이 구타 없앨라고 노력한 편이었어요 전 아직도 연락하고 만나네요 어디가나 사람이 중요한거 같애요
@4335-e3w5 ай бұрын
청룡21~ㅎ 99군번입니다. 개인적인 갈굼.구타는 거의없었죠~
@와룡선생-h7z Жыл бұрын
02군번 전경입니다.. 전경 해체해주신것은 참으로 잘한 결정입니다
@l잼민펀치l3 ай бұрын
저는 의경04군번에 울산 금속플랜트 노조, 여의도 FTA, 포항 포스코본사점거, 평택 대추리 미군기지이전...진짜진짜 힘들었습니다...열받아서 제대하고 이 환경대로 가보자해서 바로 공부해서 경시치고 09년도에 합격해서 지금 경위가 되었는데 그때 의경복무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사람들의 상상이상으로 힘든 생활이었습니다ㅠ
@user-4d9307 ай бұрын
의경 725기입니다 저 얘기는 아니지만 오죽했으면 제대 후 전역한 고참 다니던 대학교를 알아낸 후 정문에서 기다리다 싸우는 경우도 있었고 지하철에서 자기 괴롭힌 고참하고 우연히 마주쳤는데 얼굴보자마자 싸대기 날렸다는 일화도 있었습니다 전.의경 없어진 건 잘 된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스라이팅 당하며 군생활 한 것 같아요. 당연한 줄 알았던 거죠
@아름다운백도11 ай бұрын
서울청 299co.2p의경 241기 1990년 초 당시 완전 쫄다구때 아침점호 전 예비점호 시간에 사각으로된 침상모서리에 대가리 박어 시켜놓고 성경책 읽어주던 소대 중간기수 163기 유갈구리 어느날 아침 느닷없이 행정반에서 방송했다 ''지금부터 호명하는 대원들은 따블백에 모든 개인용품 넣고 행정반앞으로 집합한다,, 그날 진짜 하느님이 보우하사 유 갈구리님 새로 신설된 4기동대 54중대로 전출. 내 인생에서 가장 기쁜날중 하나였음..
@권종하-e6s Жыл бұрын
90년대 의경들 소대구성이 각각 수경 분대장4명.챙기는 기수상경(챙)이라고도 함 .받이는 기수상경(받). 나머지 인원 이경.일경 의무경찰도 기수로 함.후임 구타 담당은 챙.받 중간 기수들이 구타 담당임. 의경은 보안 이라고 있는데 이번 구타에도 병들한테 보안이다 라고 했을 것이다. 그래서 구타 없었다고 했을거다.의무경찰 구타 엄청 심 합니다.
@markcho1212 Жыл бұрын
맞네요. 그 놈의 암기사항은 뭐 그리 많은지 ㅠㅠ
@Bitcoin7772211 ай бұрын
오랜만에 듣네요 받때기
@아름다운백도11 ай бұрын
@@markcho1212 저는 아직도 그 관용차량들 번호 관넌부서 전화번호들을 안잊고 다는 아니지만 상당수를 기억하고 있음.. ㅎ 그리고 그 징그런 중간기수 오랜만에 들어보네요 ㅎㅎ
@sungwoncho193210 ай бұрын
05군번...구타 가혹행위 진짜 많았고...사실상 저거 얘기하는 용자는 없슴. 구타나 가혹행위 (부)소, 중 대장한테 보고하는 순간 월권행위로 내리갈굼 시작. 구타가 싫어서 중대장 면담 때 한 번 얘기했더니 소문 쫙~퍼짐. 중대장실이 행정반 안쪽이라 행정반 근무자들이 다 듣고 얘기함. 비밀자체가 없음. 내가 내무반장 되고서는 구타가 싫어서 밑에 애들한테 손가락하나 안대고 전역함. 후임들이 하자는거 내 능력 안이면 다 해줌. 좋게 해도 돌아가는데 왜 그리 구타를 했는지 모르겠음. 훈련 기간이나 분위기 엄하게 할 때는 하되 풀어줄 때는 풀면 되는데 중간기수들은 위에서 갈굼시작되니 본인도 살아야해서 구타나 가혹행위가 많음. 젤 위에서 내리 갈굼만 자제하면 좋은데 그게 안되죠...
@lcy030511 ай бұрын
3:40 동료들이 진심으로 구타 없다고 뻥치는게 아님. 선임같은 상부에서 압박이 내려온거. 저때는 동료 병사가 선임한테 구타당하는걸 목격했어도 방관할 수밖에 없는 시대였음. 소원수리하면 폭로한 병사만 고문관 취급받고 선임한테 구타당했고 동료 병사들도 폭로한 병사를 벌레보듯이 바라봤음.
94군번 전의경 충남지방경찰청 기동2중대 출신입니다. 정말 지옥같은 2년이였습니다. 구타 가혹행위는 마치 전통처럼 되물림 내려왔고 상관 들은 알면서도 모르는척 본인을의 편의를 위해 눈감아주기 일상이였습니다. 나라에서 강제로 끌려가서 한달에 6만원 받고 강제노역 당하며 지옥같은 하루 하루였습니다.
@jbl200011 Жыл бұрын
93군번 2중대 출신입니다 반갑습니다
@jbl200011 Жыл бұрын
중대본부
@지성강-z9m2 жыл бұрын
다잡아야지. 계속이런일이 생기면 서로 죽이려는것만 생긴다. 잡아야 한다.
@jaylee61282 жыл бұрын
제주도 성산 초소 제가 08년도 전경근무하던 곳인데, 03년에 자살사건 있던 곳인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제가 있을 때도 부당한 지시들 많았지만 그래도 구타까지는 없었는데 사건 이후로 자체적으로 좀 개선이 있었나봅니다. 삼가고인이 되신 선배님들의 명복을 빕니다.
@인간답게살아보자 Жыл бұрын
근데 그 시절에 얼마나 데모가 많았는지... 혹은 중대 분위기, 그리고 지역 별로 다를거라 생각해요.
@별달-j9u Жыл бұрын
전 04군번 막내때 온평초소에서 근무했었는데 성산 근무갈때 고참들이 작년에 자살사건 있었다고 이야기했던게 생각나네요
@cnrwlqjq Жыл бұрын
93년 2월 군번 서울 3기동대 였습니다. 고참들 아직 죽이고싶고 후임들 아직 미안합니다.
@레시피도둑 Жыл бұрын
전 37중대 정백삼이었습니다 ㅎ
@Bitcoin7772211 ай бұрын
난 정백둘
@낭만-e9z7 ай бұрын
그때도 그 송파 수서역 근처에 판넬로 만든 생활관 있였을까요?저는 거기서 1년간 생활후 상병 3 4호봉중 옆에 새건물로 이사가 전역을해 궁금해서 물어봅니다 선배님
@cnrwlqjq7 ай бұрын
@@낭만-e9z 맞는거 같네요. 강남쪽이었는데 자대배치전에 1주일 있었던 기억입니다. ㅊ성~
@샷건-l1w2 жыл бұрын
04군번 서울 기동대 출신입니다... 구타 가혹행위 일상이고 육군으로 치면 소대장인사람이 각목으로 하이바 치고 이러는데... 대가리 박기는 뭐 일상이었죠 뭐..
42:16 유가족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현재 저출산은 대한민국의 과거가 만든 오늘이라는것을
@실바노 Жыл бұрын
면담도 다 가라였지.. ㅆㅂ ㅈ같음 육군훈련소 가서 차출되서 전경대로 끌려가서 개같이 당하고만 옴 ㅠㅠ 진짜 생각도.하기싫음 참고로 우리부대는 조현오가 개혁할때 없어진 부대중 하나임😊
@DSKIM-zg6cs9 ай бұрын
받때기 챙 들 겁나무섭고 깨스걸리면 맨날 미싱하고 밥도 젖가락 하나로 먹고 걸어다닐때 손붙이고다니고 맨날 식기장에서 온갖가혹행위와 폭행들 ㅠㅠ 무전 빵꾸나면 깨스 근무 빵구나면 깨스 이경때부터 받때기까지 입안에 상처가 아무는 날이 없었죠 기대마(경찰버스)에선 또 어찌나 심한지 ㅠ 내무반은 말도 못하죠 01군번인데 지금생각해보면 어떻게 생활했나싶네요 더군다나 저흰시설부대라 폭행이랑 가혹행이가 더심했죠 의경 전경 나오신분들 전부 대단하죠
@icpolice84 Жыл бұрын
04군번이었고 나는 맞았어도 말년휴가 나갈 때 후임들이었던 형 친구 동생들이 때리지 않고 잘해줘서 고마웠고 욕은 했어도 기분 나쁜 욕이 아니었고 쓸데없는 거 안시켜서 좋았고 고마웠다 라는 말이 아직도 생각나네요... 평소에도 설거지 할 때 가서 가끔씩 도와주기도 했지만 휴가 전날 빨래담당한테 가서 같이 빨래해서 옷 개워놓고 자기 옷들 찾아서 자리에 놔주고 휴가 날 출동 나가는데 다치지 말라고 했던것도 생각나고...지금도 가끔식 연락하는 애들이 이런 거 보면 제 생각 난다고 하는게 그래도 내가 생활은 잘 하고 나왔구나 라고 자부심이 생기기도 하네요..
@delllllllllllllta11 ай бұрын
와.. 극한의 상황 속에서도 인간성을 유지하고 오히려 더 발휘하는 사람은 세상에 정말정말 드물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대단하고 멋있는 사람. 인격적으로 본받고 싶은 분이네요.
@lana0923able Жыл бұрын
1개소대 30~40명 내무반생활 특히 이경,일경생활 힘들었던 기억이 차라리 상황때가 더 좋았던 다들아시죠 무탈히 전역하신분들 감사드리며, 지금은 없어진 전의경 화이팅~
@써니데이-j3l2 жыл бұрын
내 때렸던 세끼들 기억나네 ㅋㅋ 잘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네 얼굴 졸라 보고싶네
@김기환-n3e Жыл бұрын
강한자만이 살아남는 그곳..
@nomooneulbo Жыл бұрын
옛날 경찰들 ㅈㄴ 무식한 사람들 많았던듯
@tuiontu41945 ай бұрын
구구단 못외우는 것들도 경찰하던 시절이었지
@홍성주-q3t9 ай бұрын
이게 이것만 이런게 아니라 우리나라 전반에 남아있다 악습 및 조직생활의 형태로
@헨리-j9p8 ай бұрын
어머니가 불쌍하고 난 제일 미스터리한 게 자유롭고 좀 별난 성격의 기안84가 저 시절 의경을 무사히 끝마쳤다는 거임. 나혼산에서 이거 입으면 자신감 생긴다고(아마 열외 때 기억?) 의경복도 입더만. 전혀 트라우마도 없었는 듯.
@user-ue2dz8oc5u6 ай бұрын
웹툰 보시면 아시겠지만 동기 잘만나서 묻혀간거임 하극상 벌인 권투배운 동기가 후임들 관리 다하고 고문관 동기가 상대적으로 다른 동기들 언급안되게 만들어줌
@완타치-z8q2 жыл бұрын
저 당시 서울전경출신 입니다 자대배치받고 아무이유없이 고참이 뒤지게 때리더니 잘맞는다고 넌 방패 못맞는애들 봉 잡으라고 선정해줌 ㅋㅋ 가혹행위 진짜 종류가 여러가지임 여름훈련에 물안주기. 버스안에서 앞만보기(하루종일).밥1분안에 먹기. 상황대기때 화장실금지.종류별로 아주다양함
94년 의경기수 469기 입니다. 기동대 근무했습니다. 30년전인데 아직도 그때가 기억이 납니다. 진압차 안에서 구타가 많았죠. 완전진압복 입고 맞으면 충격은 그대로인데 흔적은 없죠.... 그래서 군기는 바짝들었던 시절입니다. 지금도 가끔씩 군대 꿈을 꿉니다.ㅜㅜ. 때렸던 고참이나 맞았던 후임이나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잘 들 살고 있겠죠? 어려운 시대를 잘 지내왔네요.
@user-hl1uh8sy2w Жыл бұрын
01:00 저거 미친놈이네? 목 꺾이면 어떡하려고 머리 위로 뛰어내려?
@한영준-x7z Жыл бұрын
저런 악질들은 기본입니다 하이바 잡아당겨서 대원분 하이바 끈으로 목 졸리게 하는 시위대도 있었고 죽창갖고 눈 찌르고 쇠파이프로 머리 내려치고 당시 대원분들 부상당한건 영상 보도가 없어서 맨날 전의경 분들만 폭력경찰 소리 들었죠... 안타까운 현실이었고요
솔직히 8-90년대 선임 진압경찰들 입장에서 잘은 모르겠군,,, 후임들도 고생한건 알지만, '라떼는' 이 아니라, 이때는 그리 폭력시위가 상대적으로 많지는 않았지.
@cheejoonok2863 Жыл бұрын
의경 94군번입니다. 전의경은 근무지가 도심지라 군기 빠진다고 일부러 군기 잡고, 그리고 하는 일이 맨날 데모 진압, 혼잡 경비를 많이 하다 보니, 아무리 진압을 잘 해도 완벽할 수 없으니, 항상 부대 복귀하는 닭장차안에서부터 군기 잡고, 부대 복귀후에도 취침전까지 계속 공포 분위기였던 기억이 나네요... 아무튼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