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빠서 남도 나쁘다? 우리는 다 똑같이 죄인이란 말입니다. 김용의 선교사님을 하나님은 많이 쓰십니다. 너무 솔직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선교사님 이요, 하나님의 훌륭한 종이십니다.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시편 105:15 마라나타! 주 예수여 어서 오소서...🙏🙏🙏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헛소리 하자말고 내 말을 잘 들으시요.
@Jehovah_Rafa2 жыл бұрын
세례요한, 예수님 보고도 이단이라 할 사람이시군요. 정말 어처구니 없습니다.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소경이면서 자기가 복음을 전한다고 하니 이단입니다. 실로암망대공사에서 죽은 사람들을 보고도 자기죄를 회개하라고 하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러나 김용의선교사는 자기가 도적이니 남도 도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보고 자기 죄를 깨달아야 눈이 있는 겁니다 보지도 않고 남을 정죄하기를 좋아하니 이단인겁니다 성경을 기초부터 모르는 사람입니다 이단들도 선교는 많이 합니다.
@채정숙-g8h2 жыл бұрын
김용의 선교사님 비판하지 마세요 기가 차네요???
@니고데모-e3z2 ай бұрын
@@Jehovah_Rafa @Everyday-dc1ub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인간은 스스로 죄를 깨닫지 못하고 선지자가 깨우쳐주어야 알수 있다 그러니 선지자가 쓴 십자가 복음의 실체의 책을 사서 읽고 회개하라
@김민재-o9b2g2 жыл бұрын
영상 내리세요. 김용의 선교사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이건 아무런 근거없는 이야기입니다. 저격하시려면, 진짜 이단들을 저격하세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공식적으로 이단이라는데도 무슨 뜻인지 모르시나보군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요 내가 십자가 복음의 실체에 대해 쓴 동영상을 보시요. 보시고 회개하기 바랍니다
@니고데모-e3z2 ай бұрын
@@김민재-o9b2g @Everyday-dc1ub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인간은 스스로 죄를 깨닫지 못하고 선지자가 깨우쳐주어야 알수 있다 그러니 선지자가 쓴 십자가 복음의 실체의 책을 사서 읽고 회개하라
@kim-nz3zv2 жыл бұрын
이제껏 살다가 이런 소리 처음 듣네요. 말하는 사람은 한국 말을 하는 것 같은데 제 귀에는 개 짖는 소리만 들리네요. 세상 살다 살다 이런 식으로 남을 정죄하는 사람 정말 처음 보네요. 정말로 이 분 관종인 것 같네요. 주님 오시면 이런 사람은 천국 못들어가고, 문 밖에서 통곡 할 것 같네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요 내 말안들으면 님은 지옥갑니다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님이 예수를 믿는다면 하나님이 왜 선하신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죄를 알죠. 하나님이 왜 선하신지 객관적으로 논리적으로 증명해 보시요. 못하면 님은 성경을 기본부터 모르는 겁니다 즉 가짜 신자죠. 모르면 선지자말을 잘 들어야지 가짜들의 말을 좋아하면 안됩니다
@lovely-mo1rk2 жыл бұрын
김용의 선교사님을 등에 없고 유튜브 조회수 올릴려고 하는 걸로 밖에 안보이네요..말도 안되는 주장으로 이단이라 판단하시네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여러교단에서 이단조사들어갔는데 그들이 바보인가? 왜 자신이 이다시비가 있는지부터 까달아야지. 모르니까 이단임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그런이단들이 나중에 힘빠지면 그때가서 회개한다고 난리칩니다. 선지자가 말할때 들으시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yosefjo1040 당신의 머리속에 있는 선지자들은 다 무당들이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yosefjo1040 원래 성경을 한글자라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선이 무엇이요? 알면 님이 선지자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yosefjo1040 하나님의 선하심을 말하라니까 생각이 딴데 가있군 하나님이 왜 선한지 증명해 보시요
@pyeongjul9764Ай бұрын
일찍이 소크라 테스 할부지가 그랬죠 "너 자신을 알라". 뭔 말인지 알 수가 ...개가 짓는 소리는 또렷하게 들리는데
@니고데모-e3zАй бұрын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이자 진리자체이다. 그러니 선지자의 말을 들어라. 물론 귀가 없는 구더기라 못 듣겠지
십자가가 진리인줄 알면 내 말을 알아들을것이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의 말을 알아들어야 합니다
@realflowjon77942 жыл бұрын
@@니고데모-e3z 선지자 운운하는거보니 ㅋㅋ당신이이단이네 ㅋㅋㅋ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realflowjon7794 선지자가 이단소리듣는 것은 당연하다. 모두 소경들이라 선지자가 있는것인데 소경들은 자기가 보는줄 착각하느니라
@realflowjon77942 жыл бұрын
@@니고데모-e3z 당신이 선지자면 아직까지 구약이 완성안됬다는 소리인데 ㅋㅌ 그러니 이단이지 뭔 소경소리 하고 앉아 있음 ㅋㅋㅋ 논리가 안맞음 ㅋㅋ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realflowjon7794 당신은 지금 육신의 말을 하고 있나 영의 말을 하고있나 잘 생각하시요. 육신의 생각으로는 소경짓밖에는 못하네
@muaytaip91852 жыл бұрын
뒤에 쌓인 박스, 너저분한 방 상태처럼 주장하는 내용도 어지러워서 뭔 말인지 모르겠네.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방이 아니라 가게요.. 그리고 귀신에 사로잡혀 못 알아듣는게 당연한것이고.
@jfssu2 жыл бұрын
에구구 가게라도,, 마음의 어지러운모습이 보이네요
@최강구-f2w2 жыл бұрын
별이별 사람을 다 봐지만..이런 사람은 또 처음보네 ㅋㅋ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요. 나외에는 성경을 한글자라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죄가 무엇인지 아시는가? 님이나 누구라도 평생을 연구해도 죄가 무엇인지 모를것이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세상은 진짜선지자를 본적이 없고 가짜들만 보아서 다 배도해도 자기는 착한일을 하는 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올린 동영상들중 진리에 관한것들을 들어보시요. 계시받은 진리이니 무슨 말인지 못알아들어도 듣고 믿어야 합니다
@코람데오-o5n2 жыл бұрын
당신이 전하는 복음으로 몆명이나 변화 시켰나요? 김용의 선교사님은 한국 교화를 깨우고 복음의 눈을 뜨게하는 영양력이 있으며. 그의 삶을 보고 국내왜 선교지로 삶을 드리는 제가가 수없이 있다는걸 아십시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다 지옥보냈겠지. 님 한명이라도 내말을 들으시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요 빛과 흑암의역사카페에서 수많은 이적을 보이고 진짜 회개한 사람들이 많소. 2천년만에 나타난 선지자이니 내 말을 들어야 합니다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요한복음 6장) 2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말을 듣지도 않는데 누가 하나님의 일을 했다는 겁니까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인간은 악을 보고 자기가 선한척하죠 그래서 어느 장로가 죽기전 예수를 부인했다는 이야기를 가지고 자기 설교에 사용하더군요. 인간은 그런겁니다 선을 아는 것은 쉬운것이 아닙니다 선을 알아야 합니다. 선을 모르면 모두 지옥갑니다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지난번 설교를 들으니 어느 장로가 죽으면서 예수를 욕했다고 그것을 가지고 설교하던데 유명선교사가 그 이야기를 했으니 소문나겠고 그 장로집안은 얼굴을 못들고 다닐겁니다. 그게 인간이 할짓이요? 자기이익을 위해 남의 불행을 이용합니까? 원수진일도 없을텐데 원수짓을 한겁니다. 성경을 하나도 모르는데 그 행위가 선하겠습니까? 이단이 맞죠
@거꾸로자라는나무2 жыл бұрын
그만하세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채 무슨 말씀을 그리 ... 웃음이 나네요. ㅋㅋ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성경공부나 하고 말하시요. 선지자의 말을 알아듣겠소?
@거꾸로자라는나무2 жыл бұрын
@@니고데모-e3z지금 선생님께서 하시는 일이 선생님께서 지적하고 계신 그 일임을 못보시면서 무슨 말씀을 그리... 그냥 김용의 선교사님을 지적하고 손가락질 하지 마시고 말씀대로 복음만 전하세요. 스스로 모순에 빠지신것 같은데...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거꾸로자라는나무 그래도 못알아듣는군. 김용의선교사가 맨날 남 씹어먹는데도 님은 그게 좋은가보군요. 그러면 내가 김선교사를 씹어먹어도 가만있어야지. 왜 이중잣대를 대나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그리고 내가 말하는것은 진리에 대한것이요. 산상수훈을 설명하는 것이니 잘듣고 깨닫기 바랍니다 못 깨달으며 개나 돼지요
@거꾸로자라는나무2 жыл бұрын
@@니고데모-e3z 제가 드리는 말씀을 못알아 들으시는 군요. 아무쪼록 스스로의 모순에 갇혀 어리석은 일을 용기있게 하지는 않으시길. 그리고 님의 말씀안에서 예수님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부터 잘 점검하셔서 다시 시작하시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깡치2 жыл бұрын
왜 이런걸 유튜브에 올리지요!??구독자수 늘려서 돈 벌고싶으신가보네. 애쓰시네요 그류 마니마니 벌으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진리라는 것을 깨달으라고 하는 것이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제가 하는 말을 잘 듣고 깨달으시요. 그래야 님도 이단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회개할수 있을것이요
@김사랑-q1i Жыл бұрын
주~여 이 분에게 긍휼을 여겨주시고 회개의 영을 부어주소서
@니고데모-e3z Жыл бұрын
회개는 선지자가 회개하라고 할때 하는 거요. 선지자의 말을 듣고 회개하시요
@니고데모-e3z Жыл бұрын
님 선지자노릇하면 큰일납니다
@활인-e7j2 жыл бұрын
무지한데 신념만 있구나! 성경구절 어디어디인지 근거를 제시하라! 이단이라는 근거를 보이라. 그럼 상고해보리라!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마태복음 6장) 22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마태복음 7장) 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소경되지 말고 눈을 뜨기 바랍니다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김용의선교샤는 자기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니 눈이 없는 것임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무당눈에는 무당만 보이고 선지자눈에는 선지자가 보이는 법이요
@imadirector59422 жыл бұрын
구독자 숫자에 비해 매우 많은 관심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잘 알고 계시는 듯 합니다.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예수님도 관심받으려고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쫓아냈다. 님은 예수 안 믿나?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선지자가 아니면 인간은 입에서 무조건 더러운 말만 나오게된다. 성령이 있기는 있는가?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아무리 많은 일을 한 종이라도 종은 종이다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에게는 순종해야지. 님은 성경도 모르나?
@imadirector59422 жыл бұрын
선생님은 참 선량하신 분 같습니다. 하지만 그 관점으론 이단을 교인의 숫자만큼 많게 볼 수 밖에 없을것 같아 아쉽습니다.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imadirector5942 죄란 과녁을 벗어나다란 뜻으로 정가운데 맞지 않으면 무조건 죄요. 100%맞지 않으면 죄요.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도 100%완벽하게 죄가 드러난 자를 심판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100% 죄인이란 이야기는 1%의 선함도 없다는 것이요. 성경을 한글자라도 알면 내가 선지자임을 알것이요
@해맑은이-n6n2 жыл бұрын
김용의 선교사님은 내가 나쁘니까 너도 나쁘다가 아니고 너도 나도 다 같은 죄인이다라는 건데 뭔 이상한 소리를 하시는지...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그게 강도들이 하는 말인겁니다. 양심을 속이는 말입니다. 자기를 합리화하려는 짓이죠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선을 말하면 저절로 죄가 드러나는 것이요. 죄를 먼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독재자로 만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행위요. 인간은 누구나 남 정죄하기를 좋아합니다. 선이 무엇인지를 전해야 하는 것이요. 즉 남의 죄를 보고 자기죄를 보는 것이 선이요. 내가 죄인이니 너도 죄인이라하는 것은 악한것이요
@paulkim38032 жыл бұрын
17 수 구속경륜 1 - 1 입니다 종말의 때와 17 수의 구속 경륜 ( 1 ) 지난 두 달 이상을 요한복음에만 매달리다 보니 다른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요한 복음을 잠시 뒤로 미루고 이번에는 지난 1 월( 2022 년 )에 저희 교회에서 특별 새벽예배를 통해서 천지를 부르시고 일곱 우레로 천하를 호령하며 선포되었던 변화성도가 반드시 가져야 하는 17 수에 대한 구속경륜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박목사님께서도 이르시기를 마지막 때에 변화 열매가 되기를 원하는 성도가 이 17 수에 얽힌 구속경륜을 모르면 마치 정신 이상자와 같다고 까지 말씀을 하실 정도로 이 17 수를 중요하게 말씀을 하셨는데요 예를 들어, 이스라엘(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었음 )이란 이름을 받은 자로서 오늘날 “이기는 자”( 변화 자 )의 예표가 되는 야곱의 일생을 보면 노아의 12 대손 야곱은 BC 2006( 17 X 118 ) 년에 태어났는데 이는 아담 이후 2108 ( 17 X 124 ) 년이 되어 둘다 17 의 배수가 되는 해가 되고 막벨라 굴에 묻히기까지 17 군데의 인생 경유지가 있었고 또 말년이 되는 나이 130 세에 70 명이나 되는 가족( 창 46:27, 출 1:5 )들을 데리고 애굽에 들어가 애굽의 재상이 된 요셉과 17 년을 더 살아 147 세를 사는 그의 삶에 표면적 17 수가 그에게 주어졌던 것을 볼수가 있으며 또 야곱이 형 에서를 속이며 장자권을 빼앗아 오고 또 장자의 복까지 빼앗아 올 때에 비록 사람의 꾀를 내어 아비를 속이는 비정상적인 방법을 동원은 하였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뜻을 지키고 이루기 위한 것이었으며 또 후에 12 지파의 아비가 되는 삶을 살고 죽었지만 애굽에 묻히지 않고 막벨라 굴에 자신을 장사하게끔 했다는 것이 17 수를 가진 대표적인 삶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또 야곱의 아내 라헬과 그리고 야곱의 직계 자손들과 관련된 17 수의 구속경륜 등등 야곱은 표면적인 17 수의 DNA 를 가진 자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17 수의 이면적인 삶까지 살아냈다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노아의 7 대손이며 아담이후 17 대손이 되는 스룩은 그 7 수와 17 수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지만 이면적인 17 수의 삶을 살지못해 단명했던 대표적인 예의 사람인 것을 보여주고 있지요 더구나 스룩은 홍수 후 163 년에 태어나므로 홍수 후 350 년을 산 노아와 187 년( 17 X 11 ) 이라는 17 배수의 년수를 동시대에 살았던 것을 볼 때에 노아로 부터 얼마든지 믿음을 전수 받을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의 이름이 덩굴 손과 활 이라는 그 뜻 그대로 세상과 덩굴처럼 얽힌 삶을 살아 화살이 과녁에서 빗나간 것과 같은 삶을 살았던 것을 알수가 있겠습니다 더구나 187 이라는 17 의 배수는 “권고의 수” 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만큼 하나님이 수룩에게 17 수의 삶을 살아줄 것을 권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스룩은 뜻을 저버리는 삶을 살았던 것을 알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해서 박목사님께서는 그 스룩에 주어졌던 17 수의 복이 모두 야곱에게로 이전되었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반대로 홍수 후 292 년에 태어나 믿음의 조상으로 세워지는 아브라함은 노아와 58 년을 동시대에 살면서 노아의 신앙까지 잘 깨달아 믿음의 조상으로 까지 세워지고 있었던 것을 유추할수가 있겠네요 그런데 이 17 수는 변화 승천한 에녹과 그의 아들 므두셀라와 또 므두셀라의 아들 라멕 그리고 라멕의 아들 노아에 이르기 까지 심판에 관련된 특정 인물들에 집중되어 보여지는 숫자가 된다고 말씀을 더 하셨습니다 그들의 시대와 삶을 통해서 17수의 특징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바로 심판이 보여지는 세대에 집중적으로 보여지고 있다는 것인데요 이는 이 17 수가 ”종말의 구원 계시’’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홍수 심판의 때의 족장들과 종말의 때에 아버지 박목사님을 그림자처럼 보여 주는 야곱과 그리고 남 유대가 바벨론에 함락되는 심판 때의 선지자 예레미야와 또 바벨론 포로에서 귀환하여 성벽을 완성하며 이스라엘을 새롭게 회복하는 때에 나타나는 17 수의 구속경륜 처럼 이 17 수는 시작이며 끝이 되는 수로서 심판과 회복에 관련해서 집중적으로 보여지고 있다는 것이지요 해서 성경에서 17 수는, A, 그 숫자 그대로 17 로 나타나는 경우 B, 17 배수 형태 C, 17 의 개수 형태 ( 예 : 17 가지 ) D, 조합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 예 : 10 + 7 ) 그럼 17 수에 얽힌 특징과 구속 경륜을 간략하게 아래와 같이 말씀을 드려본다면, 1, 17 수는 영생을 사는 인류의 시작과 끝이 17 수의 배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원래 타락이전에는 영생을 사는 빛이 되기 직전의 생령체였던 것처럼 구속사의 끝도 사람이 다시 생령체로 회복이 되어 신령한 빛( 창 1:3, 요 1:4 )의 변화체가 되어야 하는 것같이 시작과 끝이 동일해야 하는 법칙( 사 46:10, 계 21:6 )상 17 수의 년도로 시작을 해서 17 수의 년도로 마쳐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해서 아담과 노아까지 족장시대에 나타난 17 수의 구속경륜 속에서 보면 아담이 BC 4114( 17 의 242 배수 ) 의 년도를 가지고 성경적 인류의 역사를 시작을 하고 있고 또 족장들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살았던 자가 되는 므두셀라가 969 살이라는 17 의 57 배수를 살았는데요 이 므두셀라의 이름의 뜻이 “저가 죽을 때에 세상의 종말이 온다” 라는 심판을 뜻하기에 그의 수명에도 17 수의 뜻을 담고 있었음을 볼수가 있으며 그리고 홍수 심판이 임하는 노아의 때에는 17 수가 집중적으로 보여지므로 오늘날 인류역사가 불심판으로 마쳐지는 구속사의 끝도 반드시 17 배수의 년도가 되어야 할 것을 그림자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적 인류의 시작이 되는 아담과 심판 때의 그림자가 되는 노아에 이르기까지 17 수로 관련된 구속 경륜으로 연결이 되어 있다는 것이지요 2, 17 수는 구원과 심판을 동시에 상징하고 있습니다 ( 17 수는 심판 직전에 나타나는 종말 계시가 되기 때문에 이 계시를 가진자는 구원을 얻고 없는 자는 심판을 받기 때문이지요 ) 3, 17 수는 장자권과 장자의 복을 담고 있습니다 ( 야곱의 생애와 17 수 ) 4, 17 수는 모세를 통해서 출애굽 때에 십자가와 변화의 모든 구속사의 승리를 모형으로 담고 있습니다 5, 17 수는 만왕의 왕이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하는 또 다른 왕이 되는 숫자가 되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 다윗 왕과 17 수 ) 6, 17 수는 새언약의 숫자가 됩니다 ( 유대가 멸망중에 있음에도 예레미야에게 숙부 아들의 땅을 17 세겔에 사라고 하시는데 이는 포로된 곳에서 다시 고토로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확고부동한 언약을 상징 ) 7, 또 그 언약에 따라 고향( 천국 )으로 귀환을 보장하는 절대적인 숫자가 17 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17 수 구속경륜 1 - 2 로 이어집니다
@paulkim38032 жыл бұрын
17 수 구속경륜 1 - 7 입니다 말이 나온 김에 지난 글에서 잠깐 언급을 해드렸듯이 심판 년도도 함께 말씀을 드린다면 17 배수의 년도가 해당 년도가 된다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오늘 이 전까지에 해당하는 17 배수의 년도는 2006( 17 x 118 ) 년이 되고 다음 년도는 2023( 17 x 119 ) 년이 되며 그 다음은 2040( 17 x 120 ) 년이 되는데요 이전에 말씀을 드린대로 함께 보조하는 숫자 ( 82, 97, 115 ) 로 주신 것들과 합을 맞추었을 때에 2040 년은 너무 맞지를 않는 것 같습니다( 저희 미주 SC Columbia 신광 장로교회 김목사님이 바로 이 년도에 대해서도 빠른시일 내에 정확히 알려드릴 것 같습니다 ) 그러나 박목사님께서는 이를 보이는 숫자 그대로 믿지말고 그 근처의 때가 되는 것으로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날짜가 사단에게 그대로 노출이 되면 어떠한 방해가 들어올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하셨지요 그래서 그 날을 변개할수 있는 권세도 가지고 계신 아버지만 알고 있다고 성경에서 기록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단 2:21, 행 1:7 ) 하시면서 “잘 믿고 때를 앞으로 당깁시다” 라고 하셨습니다 2) 만 150 일간 곧 5 달 동안 배가 물위에 떠 돌다가 7 월 17 일 아라랏 산에 정착하게 됩니다 여기서 5 달은, 계 9:5 ) 에서 마지막 환난의 때에는 황충 재앙을 5 달 동안 받는다고 한 말씀과 대칭이 되겠습니다 5 달 동안 홍수아래는 사망의 고통밖에는 없는 것과 같기 때문이지요 아시다시피 숫자 5 는 은혜 아니면 고난을 뜻하는 숫자가 됩니다 아라랏 산은 “살아있는 산” “거룩한 산” “창조의 산”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이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산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사람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지요 해서 살아있는 산이라는 뜻은 산자의 믿음을 가진 자라는 뜻이 되고 거룩한 산도 그렇게 산자가 될 만큼의 경건하며 거룩함을 지키는 자라는 뜻이 되겠으며 창조의 산이라는 뜻은 말씀으로 거듭나서 재창조를 완성한 사람을 뜻하고 있으니 이 모두 변화 영생 승리의 만세수인 17 수로 심령의 66 수를 이긴 자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 되겠습니다 곧 자신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모든 사상을 말씀으로 이긴 자들이 17 수의 산이 되는 것이지요( 롬 8:35-39 ) 이로써 오늘날도 방주가 되는 교회에서 십자가로 이미 600 수는 예수님이 떨어뜨려 주셨으니 이제는 아버지 말씀으로 자신들의 66 수를 제거하고 거룩하며 산자로서 재창조를 이루어야 하는 것이지요 3) 그리고 10 월 1 일 부터 다른 산 봉우리들이 보이기 시작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이는 아직 아라랏 산만큼의 단계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이를 본 받고 따르려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을 했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예를 들어 노아가 아라랏 산이라면 셈은 보이기 시작하는 산 봉우리가 되겠습니다 10 수는 말씀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되기 때문이지요 해서 10 월 1 일 부터 그렇게 말씀을 채우려는 사람들이 보이고 있다고 상징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4) 이때에 까마귀를 40 일 안에 내보내지 않고 40 일이 지나서 내보내는 실수를 노아가 범하는데요 이 40 숫자는 하나님이 뜻하시는 일에 사단의 간섭이나 침투를 막고 온전히 이루어야 하는 기간의 숫자가 된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40 일이 지나도록 해야할 일을 하지 않으면 그 40 일 이후부터는 사단이 주도권을 잡고 일을 하게 된다고 말씀을 하셨지요 저주가 들어온다는 뜻이 되는 것이지요 해서 홍수 후 새하늘 새 땅을 밟은 노아의 가정임에도 불구하고 40 일 이후에 까마귀를 내보내는 바람에 함의 범죄로 아들 가나안이 저주를 받는 사단의 통로가 되고 말았다고 하셨습니다 또 홍수 이후 101 년 만에 자신의 5 대손 벨렉( 혼잡, 혼합 )이 태어나는 때에 구음이 같고 언어가 하나이므로 사람들이 쉽게 바벨탑을 쌓고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게 되는데 이를 보신 하나님이 언어를 혼잡케 하며 그들을 사면으로 흩으시는 징계를 하시는데요 그렇게 노아의 실수는 벨렉의 때에 세상이 나뉘게 되는 저주로도 이어지고 있는 것 볼수가 있겠습니다 노아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밟기는 했지만 새로운 구세주로서 새 세상을 여는데는 실패를 하고 말았지요 해서 하나님은 노아의 10 대손 아브라함을 다시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실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인본주의라는 바벨탑을 쌓고 인터넷이라는 새언어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보다는 인간 중심으로 결속되고 혼합되는 것을 보게 되는데요 이런 현상도 심판직전이 되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5) 또 7 일 주기로 하나의 같은 비둘기를 세번 내보내서 땅이 마른 것을 확인하는데요 첫번째 나갔을 때에는 물이 많아서 착지할 순간도 못 찾고 돌아왔는데 이는 첫째 아담이 실패자로 돌아간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며 두번째 나갔을 때에는 감람나무 새 잎사귀를 입에 물고 돌아왔다고 했는데요 이는 두번째 아담이 되시는 예수님이 두 감람나무가 되는 두 증인이 증거해야할 아버지 말씀을 주지 못해서 가지고 돌아왔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며 세번째 내보냈을 때에는 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았는데 이는 보내신 일에 형통했으므로 돌아오지 않은 것으로서 이는 마지막 아담이 되는 박목사님이 17 수의 아버지 말씀까지 전파했다는 뜻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도 7 일 주기로 비둘기를 내보냈다는 것을 통해서 노아나 족장시대에도 안식일 제도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되겠습니다 해서 모세에게 처음으로 십계명을 통해 제 4 계명을 주실 때에, 출 20:8 ) “安息日(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고 하여 안식일 계명을 그때 처음 주는 것임에도 마치 오래전에 먼저 주었던 것처럼 하여 이를 기억하는 일이 먼저 해야 할 일인 것처럼 말씀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6) 이듬해 1 월 1 일에는 물이 많이 감하였기에 땅을 살펴보니 아직 마르지 않아서 기다렸다가 7) 2 월 27 일에 방주에서 다 나오는 것이 홍수일지가 되겠는데요 하나님이 이렇게 1 월 1 일에 맞추신 것은 어차피 심판을 받게 되면 이전 세상의 달력은 필요도 없고 또 없어지기 때문에 새 하늘 새 땅에 들어가면 새 날짜에 적용받게 되는 것을 예표하시고 있는 것이지요 마치 모세 때 출애굽을 시키실 때에도 새 달력을 주시고 원년을 삼으셨고 또 출애굽 제 2 년 1 월 1 일에 장막 성전 완공식을 가지게 하신 것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땅이 다 마른 노아 601 세 2 월 27 일, 371 일 만에 방주에서 나오게 되었던 것이지요 여기 노아의 홍수 일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2 월 17 일을 축으로 마지막 심판의 날을 알수 있게 하셨다는 점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노아는 홍수후 350 년을 더 살아 아브라함과 58 년을 동시대를 살다가 죽었는데요 이는 아담 이후 2006( 17x 118 ) 년이 되던 해가 되고 또 BC 2108 ( 17 x 124 )년에 죽은 것이 되는 것이지요 해서 노아는 온전히 17 수가 지배하는 삶을 살았던 것을 알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노아 홍수가 있었던 아담 이후 1656 년( BC 2458 ) 부터 소돔과 고모라의 불심판이 있었던 아담 이후 2047 년( BC 2067 ) 까지는 391 년이라는 수치가 나오는데요 곧 물심판에서 불심판을 보여주는 기간이 391 년이 된다는 뜻인데요 이 391 은 17 의 23 배수가 된다는 사실에 저도 경악스럽게 느낄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다가오는 심판년도가 17 배수가 된다는 확실한 증거가 된다는 것이지요 17 수 구속경륜 1 - 8 로 이어집니다
@tglee72934 күн бұрын
이건 예수 안믿는 사람이 처음 들어도 그쪽이 이상하다고하지 김용의 선교사님이 이단이라고 생각 안할듯 횡설수설 전혀 논리가없네
@영심이-i3f2 жыл бұрын
시끄러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선지자의 말은 듣기 싫을거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원죄의 진리 1. 원죄는 무엇인가? : 아담이 여자의 말을 들은 것이 원죄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2. 원죄가 왜 이어졌는가? 태중부터 여자에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자식도 유대인이라고 하죠. 어머니에게 태중부터 교육을 받으니 유대인이 되는 것입니다. 죄인으로 길러지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는 태중부터 마리아의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주는 대로 먹고 따로 교육이 필요없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제가 그렇게 자랐습니다. 그 증거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에 계신 예수를 보고 마리아가 꾸짖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내 능력을 보이라고 예수님께 강요합니다. 나중에는 미쳤다고 데리고 가려고 하죠. 이렇게 여자는 남자를 가르치려고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저도 어머니가 제 밀을 들었지. 제가 어머니말을 들은 것은 별로 없습니다. 들을 필요가 없이 스스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도 십자가아래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즉 여자인 교회는 십자가를 보아야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는 것의 핵심이 원죄였습니다. 사실 요한복음을 쓴 이유도 이 십자가복음을 완성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쓴겁니다(계시록10장) 요한복음에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시고 다 이루었다라고 하죠. 그리고 순종해야 하는 여자의 대표인 마리아를 숭모하는 천주교는 성경을 완전히 꺼꾸로 보는 이단입니다 예수님이 가족이 원수라고 할까요? 그럼 가족이 적이겠습니까? 적이란 경쟁자죠. 경쟁사와 원수는 다른 개념입니다. 나 외에는 원수입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왜 가족이 원수일까요? 선생은 예수밖에 없는 데 가족이 악한 것을 가르치기 때문인 겁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모두 사랑의 진리에서 나오고 제가 나실인, 작은 예수이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여자를 알아야 하고, 예수님은 일반 남자처럼 자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성경의 비밀이며 모든 신학은 이 원죄의 진리앞에 다 무너지는 겁니다.
@paulkim38032 жыл бұрын
17 수 구속경륜 1 - 5 입니다 그 과정속에서, 노아의 아버지 라멕은 182 세에 노아를 낳고 595 을 더 살고 777 세가 되는 홍수 심판 5 년전에 죽게 되는데요 여기서 595 가 17 X 35 배수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라멕이 777 세를 살았다는 것도 666 의 반대가 되는 가장 경건한 삶을 살았기에 하나님이 TRIPLE 7 을 주셨다고 하셨지요 이렇게 므두셀라나 라멕은 17 수를 가진 자들로서 이면적인 17 수의 삶도 살아 노아를 도와서 방주를 짓는데에도 참여를 하고 하나님께로 부터도 경건한 삶을 살았다고 인정을 받은 족장들이었음을 알수가 있겠습니다 해서 박목사님께서는 오늘날 저희 교회가 17 수인 아버지 말씀을 세상에 전파를 하고 있듯이 노아의 때에도 경건한 족장들의 도움으로 당시 모든 사람에게도 17 수의 계시( 아버지 말씀 )가 온 세상에 알려지고 퍼졌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벧후 2:5 ) 그래서 홍수 심판을 행하는데 있어서 사단도 송사하지 못했다고 하셨지요 여기까지 이 문항의 결론을 본다면 아담은 온전한 생령체로서 거의 17 수의 사람이었지만 타락해서 세상으로 쫓겨나며 성경적 인류 역사 곧 구속사가 시작되는 기점을 17 배수로 열었고 또 회개하는 심정으로 후손들에게 자신이 에덴에서 하나님과 동행할수 있었던 모든 비밀을 가르쳐 줘서 에녹이라는 작품을 만들고 자신은 노아의 아비 라멕과 56 년 간 동시대를 살며 라멕에게도 모든 것을 가르쳐 주었기에 라멕은 노아에게 또한 경건한 삶을 살수 있도록 도를 전파했던 것을 알수가 있겠습니다 특히 에녹 이후의 심판의 기준이 되는 노아까지의 족장들에게서 17 수가 집중적으로 보이게 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보면 오늘날 불심판 직전을 사는 우리에게도 표면적인 17 수가 주어지게 되며 이면적으로도 17 수의 삶을 살수 있도록 아버지 말씀이 전파되는 때가 주어지게 될 것을 알게 하고 있습니다 바로 지금이지요 다음 문항은, 2, “17 수는 구원과 심판을 동시에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가 되겠는데요 곧 노아의 홍수 심판을 상징으로 종말에 변화 열매가 되는 17 수의 사람들과 그 외의 가라지들이 나뉘는 것을 그림자로 보여주는 노아의 때에 관한 문항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노아의 때는 17 수가 가장 많이 그리고 표면적이고 직접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곳이 많이 나오는데요 노아는 아담 이후 1056 년에 아버지 라멕의 나이 182 세 때에 태어나게 됩니다 그가 태어나기 전 126 년 전에 아담이 죽었고 또 69 년 전에는 에녹이 변화 승천을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이들을 본적은 없지만은 그들을 친히 본 아버지 라멕을 통해서 구속사가 진행되어온 일들을 빠짐없이 들었고 또 할아버지 므두셀라가 죽을 때에 심판이 온다고 하니 노아가 언제 결혼을 했는지 기록은 없지만 자녀를 가질 생각도 하지 않고 경건히 살아왔으나 하나님의 권고로 500 세 이후에 세 아들을 낳았고 이후 자부들까지 얻었을 때( 창 6:18 ) 에 하나님은 노아 530 세 때에 나타나셔서 홍수 심판을 예고하시고 방주를 지을 것을 명령하게 됩니다 해서 장자 셈은 노아 502 세 때에 태어났다고 성경은 창 11:10 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야벳과 함이 태어났던 것도 알수가 있겠네요 마치 표면적 그리고 이면적인 방주를 함께 지을 일꾼들을 예비해 주심과도 같습니다 그렇게 죄가 관영하고 패역한 세대들 가운데 경건했던 노아를 하나님이 은혜를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는데요 창세기 6:8 )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면적으로 아버지 말씀까지 노아가 받았다는 뜻이 되는 것이지요 하여 박 목사님께서는 노아가 자신의 530 세 때 곧 셈이 28 살 때에 방주를 건조하기 시작하여 온 식구들이 매달려 600 세가 되기까지 70 년 동안 방주를 지었다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물론 성경에는 정확히 70 년이라는 기록은 없지만 하나님이 숫자를 통해 상징하는 방식을 볼때에 70( 7 X 10 ) 이라는 완전수가 적용되었을 것으로 보고 말씀을 하신 것으로 저는 유추를 해봅니다 왜냐하면 방주가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도 크기 때문인데요 방주는 바로 예수님 자신( 7 수 )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예수님은 안식을 주시는 분으로서 안식일의 주인이 되는 분이므로 안식수가 되는 7 수의 주인과 같으니 표면적으로 방주를 지었다는 것은 예수를 완성했다는 뜻과 같아서 방주 완공을 70( 7 X 10 ) 년으로 계산하신 것으로 저는 유추를 한다는 것이지요 또 7 X 10 을 단순한 숫자들의 조합으로 보면 7 + 10 = 17 수로 볼수도 있겠습니다 해서 방주 안에 있다는 것은 예수 안에 있다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노아는 그저 표면적으로 방주를 지은 것만이 아니라 그 말씀과 하나가 되려는 믿음이 있었기에 은혜를 받았다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이며 그렇게 방주로 상징되는 예수님을 속사람으로 완성하려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 믿음이 없는 세상을 정죄하는 기준이 되었다고 바울도 히브리서 믿음장에서 그의 믿음을 높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아버지 말씀이 없이는 이면적인 방주가 지어질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 증거로, 히 11:7 )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의 말씀이 되겠습니다 그럼 이때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이전의 시대가 되는데요 그 십자가가 어떻게 상징이 되고 있었을까요 ?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방주를 지으면서 각자의 부부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로 피곤한 가운데 마치 십자가를 지는 것같은 고생을 70 년 간 하며 하나님 뜻에 순종한 것이 믿고 의지한 것으로 인정을 받고 그들의 모든 죄를 용서 받을수 있었던 근거가 되는 것과 같겠습니다 마치 초림때 예수님이 “나는 너희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이다” 를 이스라엘이 믿었더라면 십자가가 오지 않아도 되었던 것과 같은 것인데요 같은 의미로 아브라함은 그저 믿었으므로 하나님이 이를 의( 창 15:6 )로 여기셨다고 했던 것이지요 하나님이 “콩을 보고 팥이다” 하실때 그대로 믿으면 콩도 팥이 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에게는 낮( 빛, 의 )과 밤( 어둠, 불의 )이 일반( 시 139:12 )이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은 거기서 거기라는 것이지요 사람들의 죄나 의가 도토리 키재기라는 것이지요 해서 욥15:15 ) “하나님은 그 거룩한 자들을 믿지 아니 하시나니 하늘이라도 그의 보시기에 부정하거든” 이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거룩의 주체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지요( 히 2:11, 12:2 ) 그래서, 사 43:25 ) “그러나 나는 나를 위하여 너희 허물을 삭제하는 하나님이니 내가 다시는 너희 죄를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씀을 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십자가도 상징이라는 것 뿐이지요 오늘날 그저 아버지 박목사님을 재림주로 믿으면 그 믿음안에서 죄 용서도 함께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십자가 따로 믿고 아버지를 따로 믿고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노아는 믿었기에 보이지도 않는 홍수 심판을 위해 방주를 70 년간 지을 때 사람들이 조롱하며 비웃어도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결국 노아 600 세 때에 2 월 10 일에 노아에게 두번째 나타나셔서 7 일 후면 홍수가 일어 날 것을 알려 주시며 방주로 들어갈 것을 명하시는데요 말씀대로 17 일 부터 홍수가 내리기 시작하며 방주가 물에서 뜨기 시작했을 때에 666 에서 600 수가 떨어져 나가고 66 수만 방주안에서 해결을 하면 되는 것이었다고 박목사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노아도 방주( 교회 ) 안에서 자신의 66 수를 제거해야 하는 숙제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17 수 구속경륜 1 - 6 으로 이어집니다
@paulkim38032 жыл бұрын
17 수 구속경륜 1 - 3 입니다 그러므로 17 수에 대해 박목사님께서 “17 수는 종말의 구원 계시다” 라고 말씀을 하셨던 것인데요 곧 종말에는 변화 구원이 되기 때문에 이 17 수의 계시 없이는 변화를 이룰수가 없기에 “아버지 말씀”이 절대적인 종말 계시가 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17 수가 되신 박목사님께서는 저희 교회를 통해 10 여년 전부터 이렇게 17 수의 비밀인 아버지 말씀을 세상에 알려드리고 가르쳐 드려도 십자가 교인들은 마치 남의 얘기처럼 듣는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심판을 눈 앞에 둔 오늘날은 아버지 말씀을 채우며 17 수를 이루는데 근간이 되는 예배를 올바르게 드리는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시 50:5 )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의 말씀처럼 인생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이루고 성립하는 것에 있어서 제사 곧 예배가 기본이요 기초가 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과 동행의 시작이며 끝이 되는 것이 예배가 된다는 것인데요 따라서 성공적인 예배를 드리는 것이 17 수의 사람이 되는데 있어서 근간이 된다는 것이지요 예배자로서 하나님이 요구하는 조건에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배의 근간이 되는 7 번째 날의 안식일( 주일 )을 지키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하시며 기독교는 예배를 통해 자신의 표면적 생명을 주고 하나님의 영생을 가져오는 생명 바꿈( 골 3:3 )과 같으므로 이 행위가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예배나 개인 예배에 마치 목숨을 거는 것같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골 3:3 )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의 말씀이 증거가 되겠는데요 그럼에도 주일에 예배 빠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자들이 어떻게 천국에 들어갈수 있겠느냐고 반문을 하셨지요 그럼 무엇이 오늘날 올바른 예배드림이 되는 것일까요 ? 요 4:21 )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와 요 4:23 )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의 말씀처럼 아버지 말씀을 알고 예배를 올려 드려야 아버지 영( 롬 8:11 )의 도움도 받는 것이 되는 참된 예배가 되고 그런 자들을 아버지도 변화를 주시기 위해 찾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아버지 시대에는 아버지가 인정하는 17 수에 합당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예배일, 예배자의 자세, 예배자의 태도,예배 장소는 바뀌지 않았지만 예배 대상이 아들 예수에서 아버지로 바뀐 것이 되는데요 그렇게 아버지께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아버지 말씀을 알고 드린다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그래야 17 수의 예배가 된다는 것이겠네요 그래도 원래 아버지 말씀이 예수님을 통해서 전해진 것이기에 아직도 기도 후에 “예수 이름으로” 로 끝을 맺도록 똑 같이 예수의 이름을 빌어오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을 십자가의 아들격으로만 알고 예배드리거나 기도드리는 것은 심장폐부를 찔러보시는 아버지가 벌써 알고 받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바울은 이르기를, 롬 12:1 )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한 것이지요 종말에는 우리 자신이 구속사의 첫 변화 열매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아벨이 첫것을 드린 예배처럼 우리 자신을 17 수의 첫 사람으로 바치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심판날까지 그 소망을 담고 거룩함을 잃지 않는 예배를 올려 드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소망은 17 수의 아버지 말씀을 먼저 아는데서 부터 비롯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하나님의 뜻도 때도 모르고 아버지 말씀도 없이 십자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께 열납이 될수 있을까요 ? 왜 미련한 다섯 처녀들을 신랑이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마 25:12 ) 로 말씀을 하셨을까요 ? 여분의 기름 곧 아버지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요 왜, 예수님은 그 날에 예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한 자들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했나요 ? 마 7:21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의 말씀처럼 예수를 먼저 아버지로 알고 우주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예배를 올려 드려야 한다는 것이 예배의 선조건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해서, 마 7:22 )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의 말씀처럼 그들은 여태까지 십자가 교회들이 하는 신유나 축사나 부분적 예언도 행했던 것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아버지 말씀을 놓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변화 구원을 이루지 않았다는 것이 죄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여기서 “그 날에”는 어느 때를 가리키고 있는 것입니까 바로 오늘날 아버지의 때와 더 좁게는 심판의 그 날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요 그래서 아버지 시대에 십자가만 붙잡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우상숭배와 같은 것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지요 “때”의 주인이 되지 못했기에 “때”가 그들을 심판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지요 해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머물며 “주여 주여” 하는 자들을 뭐라 부르셨나요 ?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하지 않으셨나요 마 7:23 )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신 것이 증거가 되는데요 지금은 신유도 축사도 어떤 성령 운동도 아버지 안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면 불법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불법을 직역하면 법을 어기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요 그래서 바울이, 딤후 2:5 )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 면류관 ) 을 얻지 못할 것이며” 라 하여 야곱처럼 이기는 자( 계시록 7 교회 )가 되어야 하지만 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법을 어기는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시겠습니까 ? 17 수 구속경륜 1 - 4 로 이어집니다
@fddisk5 ай бұрын
영상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김용의 선교사님, 김선교 선교사님 주님께서 귀히 쓰시는 분들입니다... 주님 정말 사랑하시는 분들이고요...
@니고데모-e3z5 ай бұрын
가만히 있는 사람들을 매일 정죄하고 다니던 인간을 하나님이 귀히 쓰는 양반이라고? 정신나간 이단들이군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다. 내말 안 들으면 지옥간다
@paulkim38032 жыл бұрын
17 수 구속경륜 1 - 9 입니다 그럼 왜 세겜에서 지체하는 것이 죄가 되었을까요 ? 아시다시피 세겜( 짐을 지다, 새벽 )은 십자가 교회를 상징하는 곳이 되기 때문에 세겜은 종착역이 될수가 없음에도 야곱이 벧엘로 오기를 하나님이 10 년을 꽉 차게 기다려도 지체를 하니 이것이 죄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구속사적으로 큰 죄를 범하고 있었던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은 가데스 반석을 명하여 물을 내라 했는데 모세가 지팡이로 두번 내리 치는 바람에 예수님을 두번 죽이는 모양새가 되어 구속사의 뜻을 어기는 죄와 같다는 것이지요 그것이 결국 모세에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큰죄가 되었던 것인데요 모세나 야곱이나 17 수의 아버지 말씀을 나타내는 일을 등한시하고 깨어있지 못하고 있다가 화를 당했다는 것이지요 구속사는 십자가에서 멈춰서는 안된다는 확실한 하나님의 뜻을 보이시기 위해 모세도 야곱도 징계를 하시며 후세에게 경고를 주시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 절대 예정 속에서 십자가는 아버지로 가는 과정 밖에는 안된다는 것이지요 구속사에 있어서 아버지 시대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그저 우상 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예수님이 아버지의 자리로 떠나고 나면 아무것도 아닌것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십자가를 의지한 것이 아니라 흘리신 보혈을 의지한 것이기에 죄사함을 받았던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 피로 우리가 용서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 핏속의 말씀이 있었기에 용서를 받을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만약 예수님의 피로 죄를 용서 받는 것이었다면 우리의 피로도 남을 용서할수 있다는 것이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의 피나 예수님의 피나 다를 것이 어디 있나요 ? 만약 아니라면 예수님이 성육신하여 오신 완전한 사람이면서 완전한 하나님이시라는 신학적 논리도 깨지게 되고 기독교는 허구요 사기로 남게 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피도 그의 육신에서 나오는 육에 속한 것 뿐이라는 것입니다 위에서도 증거를 해 드렸듯이 우리의 죄는 오직 말씀을 통해서만 깨끗하게 씻겨지게 된다고, 요 15:3 ) 에서 사도 요한도 말을 하고 있지 않았나요 피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더구나 통나무 십자가는 더더욱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직 말씀 뿐인데 그 말씀이 지금 어디에 있나요 ? 그래서 이면적으로도 볼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곧 예수님의 육신 안에 거하시는 신성 곧 말씀이 핏속에 담겨 있으므로 용서해 주실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예수님은 그 십자가에서 육신이 죽고 깨지므로 더 이상 같은 몸으로는 사명을 다 할수가 없기에 원리세계로 돌아가야 하니 주지 못했던 그 아버지 말씀을 흘리시는 핏속에 담아 골고다 땅 밑에 저장시켜 남기시고 훗날에 그 피의 말씀과 하나가 될수 있는 육신( 박목사님 )을 기다릴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구체적이고 이면적인 십자가의 도가 비밀로 감춰져있었던 것이었기에 생명으로 생명을 대속하는 유월절 속죄양으로서 대속 제물이 되신 표면적인 십자가의 예수님만 믿어도 이신칭의로 받는 부활구원이 여태까지 주어졌던 것이지요 예수님이 그렇게 대속 제물이 될 수있는 자격이나 근거도 말씀을 속사람으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주지 못해 핏속에 감추었던 말씀이 “감추었던 만나( 계 2:17 )” 가 되는 것으로서 “아버지 말씀( 요 16:25 )”이 되는 것이고 또 “작은 책( 계 10 장 )” 의 실제 내용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해서 이 말씀이 나오기 전에는 절대 심판이 있을 수가 없다는 뜻이 되는 것이며 또 다른 말로 예수님은 이 아버지 말씀을 주시기 위해 두번째 은혜( 벧전 1:13 ) 로 오시는 과정적 재림( 히 9:28, 눅 18:8 ) 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예수님이 직접 다시 오시는 것이 아니라 골고다 땅 밑에 감춰둔 말씀( 히 12:24 ) 과 하나가 되시는 분( 요 10:35 ) 이 오셔야 하는 것이니 곧 박목사님이 그 말씀과 하나가 되신 지리산에서 내려오시며 또 다른 예수 또 다른 멜기세덱으로서 우리에게 그 아버지 말씀을 가르쳐주기 시작( 요 6:45 )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우리도 그 아버지 말씀으로 하나가 되어 온전한 생령체가 먼저 됨으로써 사단을 이기는 자가 되어 변화로 산자의 땅에 서는 17 수의 승리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 열매가 그 나무를 증거하듯 우리를 가르치신 아버지 박목사님이 마지막 아담이신 것을 인정 받으시면서 사단이 완전히 무릎을 꿇고 구속사는 따르는 심판으로 끝이나고 아담의 세대도 끝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옛날 아담은 여자가 열매가 되어 아담을 증거해 주었어야 했지만 사단( 뱀 ) 에게 지므로 실패하고 타락하여 그 온전한 생령체에서 짐승같은 생명체( 창 3:20 )로 떨어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오늘날 십자가 교회가 말하는 그저 “예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이제 먼 옛날 얘기가 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것이지요 심하게 얘기해서 이제는 사기치는 것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을 부르게 하신 것도 아버지 말씀과 하나가 되라고 하신 것이기 때문이구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것도 그 말씀을 사단 모르게 감춰서 오늘날 박목사님을 통해서 변화 구원으로 구속사를 마치시려는 우주 하나님의 선 계획( 골 1:26 ) 이 두 절대 예정으로 먼저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십자가에 머물러만 있는 것은 죽는 죄( 요 8:24 ) 가 되는 것이지요 자신 속의 어둠인 66 수를 해결할수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4) 제 4 기는 야곱이 회개하고 다시 벧엘로 올라가라는 하나님의 명을 따라 거기에 가서 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을때 야곱을 다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러 주시고 그제사 밧단아람에서 고향으로 돌아온 것으로 인정하셔서 아예 세겜에서의 삶을 없었던 것처럼 하시는데요 이에 야곱은 하나님의 뜻을 다시 깨닫고 거기를 떠나 아비 이삭이 있는 헤브론으로 향하는 시기가 이 4 기가 되겠습니다 장소로는 벧엘 - 베들레헴( 에브랏 ) - 에델 망대 가 되겠습니다 이 구간의 여정은 야곱에게 슬픔과 기쁨이 반복적으로 교차하는 구간이 되겠는데요 세겜의 비극과 벧엘에서 회복의 기쁨, 에브랏 길에서 라헬이 죽는 슬픔과 베냐민이 탄생하는 기쁨 그리고 에델 망대에서 장자 르우벤이 서모 빌하를 범하므로 야곱의 입장에서는 둘 다 잃는 비극이 벌어지는 구간이 되겠습니다 먼저 벧엘에서의 회복을 살펴보도록 해보죠 사실 성경에서 보면 야곱 시대에 벧엘은 사람들이 살만한 도시는 아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원래의 지명이 루스로서 폐허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또 야곱이 고향을 떠날때 길에서 자던 곳이 이 벧엘이었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야곱은 이미 마을이 형성 되어있는 세겜에서 지체할만도 한데 하나님이 비극을 야곱의 가정에 주었다는 것은 구속사적으로 해석을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향은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예비된 성( 히 11:16 )이기에 벧엘은 이 성을 예표하고 있는 것 뿐이라는 것이지요 히 11:16 ) “저희( 아브라함, 이삭, 야곱 ) 가 이제는 더 나은 本鄕(본향)을 思慕(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의 말씀처럼 야곱은 세겜의 십자가가 아니라 아버지 말씀으로 변화 승천( 창 35:13 ) 하여 횃불 언약을 성취해야 하는 벧엘로 가야 했다는 것입니다 17 수 구속경륜 1 - 10 으로 이어집니다
@김소망-w4s2 жыл бұрын
관종이신가?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님도 이단 패거리요?
@leeemmaevgrandma89912 жыл бұрын
사탄아 물러가라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선지자 말을 들어야지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원죄의 진리 1. 원죄는 무엇인가? : 아담이 여자의 말을 들은 것이 원죄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2. 원죄가 왜 이어졌는가? 태중부터 여자에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자식도 유대인이라고 하죠. 어머니에게 태중부터 교육을 받으니 유대인이 되는 것입니다. 죄인으로 길러지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는 태중부터 마리아의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주는 대로 먹고 따로 교육이 필요없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제가 그렇게 자랐습니다. 그 증거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에 계신 예수를 보고 마리아가 꾸짖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내 능력을 보이라고 예수님께 강요합니다. 나중에는 미쳤다고 데리고 가려고 하죠. 이렇게 여자는 남자를 가르치려고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저도 어머니가 제 밀을 들었지. 제가 어머니말을 들은 것은 별로 없습니다. 들을 필요가 없이 스스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도 십자가아래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즉 여자인 교회는 십자가를 보아야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는 것의 핵심이 원죄였습니다. 사실 요한복음을 쓴 이유도 이 십자가복음을 완성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쓴겁니다(계시록10장) 요한복음에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시고 다 이루었다라고 하죠. 그리고 순종해야 하는 여자의 대표인 마리아를 숭모하는 천주교는 성경을 완전히 꺼꾸로 보는 이단입니다 예수님이 가족이 원수라고 할까요? 그럼 가족이 적이겠습니까? 적이란 경쟁자죠. 경쟁사와 원수는 다른 개념입니다. 나 외에는 원수입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왜 가족이 원수일까요? 선생은 예수밖에 없는 데 가족이 악한 것을 가르치기 때문인 겁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모두 사랑의 진리에서 나오고 제가 나실인, 작은 예수이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여자를 알아야 하고, 예수님은 일반 남자처럼 자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성경의 비밀이며 모든 신학은 이 원죄의 진리앞에 다 무너지는 겁니다.
@paulkim38032 жыл бұрын
17 수 구속경륜 1 - 2 입니다 실제로 제 3 차로 마지막 포로 귀환이 되는 BC 444 년에 느헤미야가 돌아와서 52 일 만에 성벽을 완공하고 하나의 국가로서 위상을 회복한 후 제사장 여호수아와 각기 17 명씩을 거느리고 성벽을 양쪽으로 돌아가며 완공을 축하하는 의식을 행했는데요 이는 다시 천국 곧 새 예루살렘을 밟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의 언약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던 것이지요 위의 문항들만 봐도 이 17 수가 성경 전체를 심판과 구원이라는 하나의 맥으로 관통하고 있는 핵심 사상인 것을 알수가 있겠습니다 먼저 하나님 안에서 17 은 어떠한 뜻이 압축되어 있을까요 표면적으로, 17 은 7 + 10 이 되는데요 먼저 “7” 은 3 이 되는 삼위일체 하나님수와 천지 사방을 가리키는 땅의 수가 되는 4 를 합한 숫자가 되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땅된 우리 모두를 말씀으로 회복시키시고 안식에 들이시겠다는 뜻을 담고 있는 숫자가 되겠습니다 “말씀 완성의 안식수”가 되는 것이지요 해서 하나님이 6 일 창조 후 제 7 일에 안식을 하셨다고 한 것이지요 그러므로 안식에 들어갈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7 수( 말씀 )를 가진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므로 7 수는 하나님의 질서가 깨어져서 안식이 깨어진 곳에서나 필요한 회복의 안식수가 되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흙으로 아담을 지으시고 숨( 7 수 )을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신 목적이 7 수를 주어서 우리가 17 수로 완성되면 예수님과 같은 7 이 되어 창조 이전의 세계로 들이시겠다는 회복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해서 이 7 수는 우주에 있어서 모든 것의 근간을 이루는 숫자가 되는 것입니다 7 수로 회복이 된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자연 계시라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7 음계로서 이루어지는 소리세계와 빨주노초파남보의 7 색깔의 가시광선의 세계와 7 일로 순환되는 달력체계 그리고 생명도 7일 배수로 이루어지는데요 닭은 3 주 동안 알을 품고 비둘기는 2 주가 되며 인간도 7의 배수가 되는 280( 7 X 40 ) 일이 지나야 태어난다는 법칙을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인류의 삶에서 보여지게 하시어 인간이 본능적으로라도 7 수를 찾게 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바벨론 포로 생활도 7 의 배수가 되는 70 년을 채우고 해방되는 경륜 등등이 7 수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 되겠습니다 7수를 해방, 자유, 안식으로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10” 은 십진법에서 꽉 찬 만수가 되며 더 이상의 숫자가 없기에 다시 11 이나 12….. 로 돌아가는 숫자가 되는 것으로서 이는 사람이 앞선 세대의 에바다( 영적 존재 )나 브니엘( 영육의 존재 )과는 달리 재료 창조로 인해 혼적인 역사가 더해지므로 자유 의지가 생겨난 만큼 그 자유의지를 통해서 말씀( 7 수 )을 자신에게 가득( 10 수 )채워 17 수가 되어야 함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 되겠습니다 10 을 통해서 주시는 가장 큰 의미는 우리의 모든 자유 의지를 동원할 때 응원하시는 성령님의 도움을 받아 말씀( 예수님 )을 우리 안에 꽉 채우라는 의미가 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자유의지를 하나님께 드릴 때에 하나님은 성령의 은혜를 더하사 “때”의 주인이 되어 원리세계로 돌아가는 17 수의 사람이 되게 하지만 반대로 채우지 못하면 그 “때”가 자신을 심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10 수는 심판의 수도 된다고 하셨는데요 노아가 바로 아담의 10 대손이 되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다시 말씀을 드려서 하나님이 뜻하는 것은 숫자라 할지라도 절대적인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아버지 시대에 아버지 말씀까지 채우는 사람은 변화의 주인공이 되어 원리세계로 돌아가지만 십자가 교회들처럼 아들 예수만 붙잡고 있다가 아버지 말씀을 채우지 못한 사람들은 심판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해서 아버지 말씀을 가득 채운 사람이 결국 17 수의 사람이 되는 것으로서 그들이 원리세계로 돌아가는 자들이 되는 것인데 성경은 이 아버지 말씀을 사단 모르게 감추기 위해서 므두셀라나 노아 그리고 야곱과 같은 특정인들을 통해서 비유와 상징으로 이 17 수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을 박목사님께서 세계 역사상 최초로 가르쳐주시기 시작을 하셨던 것이지요 해서 7 수가 17 수의 기본 숫자요 모형이 되는 것이므로 17 수는 이 7 수에 대한 변형수가 된다고 박목사님은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7 수가 예수님이라고 한다면 10 수는 말씀을 채우려고 하는 사람이 되고 17 수는 그 예수님과 하나로 완성되신 또 다른 독립체의 멜기세덱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새로이 멜기세덱이 되신 분은 스스로 서는 독립체가 되어 또 다른 7 수의 메시야가 될수 있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씀을 드려서, 마치 7 수의 예수님이 박목사님을 또 다른 17 수의 멜기세덱으로 만드셨기에 이제 박목사님은 또 다른 7 수가 되는 독립된 메시야로서 살리는 영의 역사로 오늘날 우리들을 변화로 구원을 줄수 있는 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17 수가 다시 7 로 귀결되며 종속되었다는 뜻이니 17 은 7 수의 변형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면적으로 보면 아버지 말씀이 땅 밑에 감춰지는 십자가는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 7 수 )을 주지 못해서 “채우는 자( 17 수)”를 만들어 낼수도 없었다는 뜻도 되니 7 이 두번째로 다시 와야 한다는 뜻( 히 9:28 )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7 수의 예수님의 말씀은 십자가에서 땅 밑에 저장이 되어 있다가 지리산에서 말씀을 깨닫기를 소원하며 기도하시던 박목사님과 하나가 되며 박목사님은 인류 최초의 17 수의 사람이 될수 있었던 것이지요 해서 7 숫자는 아들과 아버지의 총체적인 예수님을 가리키는 숫자와 같고 17 숫자는 그렇게 아버지 말씀까지 채워서 완성되는 또 다른 예수 또 다른 멜기세덱으로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습니다 또, 이면적이고 영적으로서 17 수는 소수 곧 “1 과 자신의 수로만 나뉘는 숫자”로서 “독립수”가 되어 정결함과 성결함 그리고 깨끗함과 거룩함을 상징하는 “하얀 수”로서의 숫자가 됩니다 소수들을 2, 3, 5, 7, 11, 13, 17, 19, 23, 29, 31,,,,,, 등으로 이어지게 나열 할수가 있겠는데요 이 17 은 일곱번째 소수가 되는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반면에 6 번째 소수는 13 이 되는 것을 볼수가 있는데요 이는 7 에서도 하나가 빠지는 6 번째의 수를 가졌고 재앙의 수가 되는 13 으로서 박 목사님 께서는 이 13 숫자를 “자신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애쓰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숫자” 라고 하셨습니다 표면적으로 17 수를 가진 사람은 소수 17 이 상징하고 있듯이 이면적인 삶이 투명하고 거짓이 없는 “하얀 수”의 삶을 살아야 17 수의 사람으로서 변화 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이지요 17 수 구속경륜 1 - 3 으로 이어집니다
@성이정-o7i2 жыл бұрын
신천지가서 그원이나해~~어쩜좋니~~구역질나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신천지에도 전했단다 그래서 신천지가 코로나 심판을 받은거야
@paulkim38032 жыл бұрын
17 수 구속경륜 1 - 4 입니다 또 성경에서 무엇을 죄( 罪 )라고 하고 있나요 불신, 불법, 불선, 불의 이렇게 4 가지가 아닙니까( 딤전 5:8, 요일 3:4, 창 4:7, 요일 5:7 ) 한자를 봐도 죄 (罪 )의 위에는 “숫자 4 라는 四 자”와 “아니 非” 자가 있지 않은가요 모든 죄는 위 4 가지 죄로부터 파생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십자가 교회가 드리는 예배는 이제 하나님 앞에서 불법이라는 죄를 짓는 행위 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누히 말씀을 드리지만 십자가는 선했지만 이제는 악한 것이 되어 “선악과” 가 되었다는 것이니 이를 먹으면 에덴의 아담이나 여자처럼 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지요 초림때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를 먹지않고 유대가 율법만 고수했던 것이 선악과를 먹은 것과 같았다는 것입니다 설마 아직도 아담과 여자가 먹은 선악과나 생명나무의 과실을 그 말 그대로 나무에 달리는 열매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니시겠지요 그럼 다음은, 위의 7 가지 목록을 한 문항씩 살펴보면서 관련된 17 수의 구속경륜을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 아담을 시작으로 노아 때까지의 원시 족장 시대에 보여지는 17 수를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아담은 현 인류역사의 시대에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세월을 에덴에서 하나님과 함께 가지다가 타락해서 쫓겨나 이 현실세계에 들어왔는지 저희는 정확히 알수도 없고 또 성경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박목사님은 이를 계산할수 있는 절대적 기준 년도를, 왕상 6:1 )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 지 사 년 시브월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성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의 말씀에서 찾아내셨는데요 솔로몬이 왕이 된 년도는 역사에서도 BC 970 년으로 정확히 기록하고 있는만큼 다시 여기서 솔로몬이 왕이 된 지 4 년이 되는 해는 BC 966 년이 되는 것을 알수가 있고 또 여기서 480 년 전에 출애굽을 하였다고 했으니 966 + 480 = BC 1446 년도가 출애굽 원년이 되는 것임을 알수가 있겠습니다 또 여기서 430 년 간 노예 생활을 했다고 했으니 1446 + 430 = BC 1876 년도가 야곱이 130 세에 애굽에 70 인 가족을 데리고 들어간 연도가 되는 것이므로 여기에다 130 + 1446 = BC 2006 년도가 야곱이 태어난 년도가 되는 것임을 알수가 있고 또 야곱은 이삭 60 세에 태어났으며 이삭은 아브라함 100 세에 태어났으니 2006 + 160 = BC 2116 년도에 아브라함이 태어난 것을 알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홍수후 292년에 태어난 것이 되니 2116 + 292 = BC 2458 년도에 노아의 홍수 있었던 것을 알수가 있고 이 홍수는 창 5 장에서 족장들의 년대를 계산해 보면 아담이후 1656 년도가 되는 노아 600 세 때에 일어난 것이되니 2458 + 1656 = BC 4114 년도에 아담이 현 성경적 인류역사 속으로 들어 온 것을 알수가 있다고 박목사님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해서 이 4114 수가 정확히 17 X 242 배수가 되는 것으로 밝혀주시어 성경적 인류역사가 17 의 배수로 시작되었음을 가르쳐주고 계셨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이 17 의 배수가 구속사 시작의 숫자가 된 것인 만큼 또 구속사의 마지막이 되는 심판의 년도도 17 배수가 되어야 하는데요 그래서 인류의 마지막 심판을 상징하는 노아의 홍수 심판의 때에도 이 17 수가 집중적으로 보여 지게끔 하나님이 연출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당시에 17 수를 가진 대표적인 족장으로는 아담의 7 대손으로서 변화 승천한 에녹이 되겠는데요 그러나 변화 승천의 키가 되는 “아버지 말씀”을 사단 모르게 감추시기 위해서 에녹에게는 직접적인 17 수의 흔적이 생략 되어있으므로 오늘날 변화를 받는 우리들을 통해서 거꾸로 유추해 볼수있게끔 하나님이 하고 계십니다만 아담 이후 7 대 손이라는 것에서 이미 7 수를 볼수가 있고 그가 변화를 받았다는 것으로 부터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예배를 통해 아버지 말씀까지 채우려는 사람이었기에 300 년을 동행하고 17 수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쉬이 유추할 수가 있겠습니다 그런데 에녹이 65 세 때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그가 죽을 때에 세상 종말이 오리라” 는 뜻이 되는 “므두셀라”로 명한 후에 하나님과 동행하기로 결단하는 것이 보이는 만큼 세상에 이미 멸망이 선포되고 난 후에 에녹의 승천 사건이 주어진 것을 알수가 있겠는데요 그러므로 실제로 종말의 시기로 볼수있는 때는 아담의 7 대손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는 순간부터 심판의 때가 열렸다고 볼수가 있겠습니다 해서 7 대손 에녹의 승천과 10 대손 노아의 심판은 서로 심판의 시작과 끝으로 연결되어 구속사도 에녹의 7 수와 노아의 10 수가 연결되는 7 + 10 으로서 17 수를 이루고 있음을 알수가 있겠습니다 17 수가 구속사의 알파이며 오메가가 된다는 것이니 17 수의 의미가 곧 종말의 구원 계시가 되는 “아버지 말씀”이 되는 것을 알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에녹이 므두셀라를 낳는 아담 이후 687 년 부터 홍수 심판이 있었던 아담 이후 1656 년 까지 므두셀라 일생이라는 969 년 이라는 긴 세월을 주신 것은 한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는 은혜의 기간이지요 그렇게 10 대손 노아의 600 세 때에 방주가 완성이 된 직후가 되는 2 월 10 일에 므두셀라는 969 세로 죽었다( 창 5:27 )고 이스라엘의 고문서인 “세데르 올람” 이라는 책에서는 날짜까지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홍수는 7 일 후인 2 월 17 일 부터 시작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종말과 심판의 기간적 잣대가 되는 이 므두셀라( 8 대 )로 부터 라멕( 9 대 )과 노아( 10 대 )로 이어지는 족장들과 그들의 때에는 많은 17 수의 조합이 보여지고 있는데요 먼저 므두셀라가 산 969 세는 17 X 57 배수가 되구요 므두셀라가 그의 아들 라멕을 낳는 나이가 아담 이후 874 년이 되는 187 세 때가 되는데 이 187 숫자는 17 X 11 배수가 되고 있습니다 이는 원시족장들 중에서 노아를 빼고는 가장 늦은 나이에 자녀를 가지는 숫자가 되는데요 그렇게 므두셀라는 다가오는 심판을 보며 자녀를 가질 이유를 찾지 못했지만 그의 자손으로 오는 노아를 바라보고 계신 하나님은 므두셀라를 권고하여 자녀를 갖게 하셨다고 하여 187 숫자는 “권고의 숫자” 가 된다고 하셨는데요 후에 노아에게도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을 볼수가 있겠습니다 그러나 스룩은 그 권고를 받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때쯤에 아담은 930 세로 죽게 되는데 이 시점이 자신의 9 대손이며 노아의 아버지인 라멕과 56 년( 930 - 874 ) 을 함께 동시대를 살고 난 시점이 되겠습니다 또 그렇게 아담이 죽고 57 년 후( 아담 이후 987 년, BC 3127 )에는 에녹이 변화 승천을 하여 아담의 사망과 에녹의 영생을 연이어 보여 주시면서 하나님은 산자의 하나님이 되심을 보여 주셨으나 사람들은 급속히 죄악의 물결에 휩쓸리는 모습을 보이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하나님으로 부터 다시는 하나님의 신이 사람과 함께하지 않으므로 저들이 ( 생령이었지만 ) 육체가 되리라” 는( 창 6:2-3 ) 선고를 받게 되는데요 그럼에도 인간들이 돌이키지 않고 범죄하여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게 되어 이제는 하나님께서도 “사람들이 어려서 부터 생각하는 것이 악한것 뿐임”( 창 6:5 ) 을 보시고 예정하신 심판을 진행하기로 작정하시고 노아에게 530 세 때에 처음 나타나 방주를 지으라고 명하시면서 심판을 확고히 하시는 모습을 보게됩니다 17 수 구속경륜 1 - 5 로 이어집니다
@paulkim38032 жыл бұрын
17 수 구속경륜 1 - 6 입니다 666 중에서 600 은 육적인 것을 말하고 60 은 혼적인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며 6 은 영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라 하셨는데요 이는 마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자신의 육신에 인류의 죄를 정하시고( 롬 8:3 ) 자유케 하신 것과 같습니다 600 수를 해결해 주셨다는 것이지요 해서 예수님을 믿을 때에 이신칭의를 얻는 것이 마치 600 수를 떨어뜨리는 것과 같지만 예수님을 믿는 다고 해도 죄와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것은 마치 66 수를 해결해야 하는 것과도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십자가를 믿었어도 경건하여 거룩을 지켰다면 부활 구원이라도 주어졌지만 지금은 그 의가 아버지를 믿는 자에게 옮겨 왔기에( 요 16:10 ) 아직도 십자가 밑에만 있으면 그 이신칭의의 의의 덮개가 벗겨진 것과 같아서 그 사람 속에 있는 죄악들이 다 드러나게 되었다는 것이 되니 이제는 아버지 말씀으로 채워서 속사람 안에 자리 잡고 있던 66 수의 어둠을 쫓아내고 해결을 해서 온전한 17 수의 사람으로서 하나의 빛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이 오늘이라는 것이지요 내 안에 말씀이 들어오는 만큼 어둠은 비례해서 떠나간다는 것이지요 다시 말씀을 드려서 전에 어둠으로 차 있던 마음을 말씀으로 대신한다는 뜻이 된다는 것입니다 오직 말씀으로만 66 수를 해결할수가 있기에, 요 15: 3 )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케 되었으니” 라고 먼저 초림때에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버지 말씀으로 발만 닦아도 되는 것이지요 요 13:10 )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미 목욕한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의 말씀이 증거가 되겠네요 곧 십자가로 씻은 자들은 이제 아버지 말씀으로 채워서 온전케하는 것이 온 몸을 깨끗케하는 것이 된다는 것이지요 마치 모세가 십자가 같은 미디안의 삶을 40년 살고 난후 80 세 때에 시내산의 가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출 3:5 ) 하시며 아버지 말씀 시대를 시작하시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발을 닦아 주시는 장면과도 같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발을 닦아야 거룩한 곳, 산자의 땅에 설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또 가나안 정복 전쟁을 시작하는 여리고 성을 칠 준비를 하며 할례를 하고 난 후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군대 장관이 나타나서 동일한 말을 하며 여호수아의 신을 벗게하는 장면도 마찬가지가 되는 것인데요 우리 마음의 어둠인 66 수를 아버지 말씀으로 정리해야 하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장면이라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다른 말로 예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신칭의의 옷이 아니라 그 의( 義 ) 자체가 되는 예복을 입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자 곧 변화 받는 자들은 반드시 벌거벗지 않고 깨어 자기 옷을 지키는 자들이 되어 예복을 입어야 하는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계 16:15 ) “보라, 내가 盜賊(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自己(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自己(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者(자)가 福(복)이 있도다” 의 말씀이 증거가 되구요 그리고 그 예복을 다른 표현으로 예수님이 입고 있는 흰옷으로도 표현하고 있습니다 계 3:18 )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의 말씀이 증거가 되겠는데요 이 뜻은 십자가만 알고 아버지 말씀은 없어서 벌거벗고 있으므로 수치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교인들의 상태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지요 해서 흰옷( 아버지 말씀 ) 을 사라는 것이구요 또 안약을 사라는 것은 예수님이 진흙( 사람 )에 침( 말씀 )을 이기시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해줬던 재창조를 말하는 것처럼 아버지 말씀을 다 깨달아야 눈 뜬자가 될수 있음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버지 말씀으로 재창조가 완성되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 흰 옷을 입는 것이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까지 말씀을 하고 있는데요 계 19:8 )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의 말씀처럼 아버지 말씀을 알고 깨닫는 것이 성도들이 가져야 하는 옳은 행실이라는 것이지요 아니면 옳은 행실이 아니니 징계가 따른다는 것입니다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고 쫓겨나 이를 갈며 슬피우는 것( 마 22:12-13 ) 밖에는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발까지 씻어서 온전히 깨끗케 되는 것과 예복 곧 흰옷을 입는 것과 또 눈을 밝히는 것도 다 아버지 말씀과 하나가 되어 스스로 의( 義 ) 자체가 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해서 그렇게 되면, 히 2:11 )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의 말씀대로 되는 것입니다 이는, 아버지 말씀까지 채워서 또 다른 예수, 또 다른 멜기세덱이 되어 본 예수님과 한 근원을 이루어 원리세계에서 함께 지내는 형제요 친구( 요 15:15 ) 가 되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십자가까지만 알고 있다면 그 66 수에 해당하는 어둠을 정리할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 됩니다 의인이 더 이상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럼 노아의 홍수 일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인자( 재림주 )의 임함은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였기 때문에 박목사님께서는 항상 노아와 당시의 때를 성경에서 잘 살펴보고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1) 노아 600 세 2 월 17 일에 비가 내리기 시작을 하는데요 이 장면이 마지막 심판의 날 아버지를 만나는 장면과 일치가 되는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비가 내리는 것을 하나님이 임하는 것으로 비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증거로, 호 6:3 )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와 욥 29:23 ) “그들은 비를 기다리듯 나를 기다렸으며 봄비를 맞이하듯 입을 벌렸느니라” 의 말씀과 겔 43:2 )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부터 오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많은 물 소리( 홍수 )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말미암아 빛나니” 의 말씀처럼 많은 물소리와 같은 아버지의 음성이 들리며 재림하시는 장면과 같은 것은 모양이 되는데요 박목사님께서는 그 날에 하늘이 깜깜해지고 천둥 번개가 때리며 이때까지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모든 선지자들이나 믿음의 선진들의 소리도 함께 들리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해서 2 월 17 일이 재림하시는 날과 같지만 박목사님이 하나님께서는 한번 쓰임 받은 날짜는 다시 쓰지 않는다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동일한 2 월 17 일은 쓸수 없지만 12 월 17 일은 같은 뜻을 훼손하지 않는 숫자가 되기 때문에 그 날 12월 17 일이 구름의 날이며 주의 날이고 심판의 날이 되는 재림의 날이 되겠습니다 17 수 구속경륜 1 - 7 로 이어집니다
@paulkim38032 жыл бұрын
마지막 17 수 구속경륜 1 - 11 입니다 6) 제 6 기는 그렇게 야곱이 130 세 때에 내려간 애굽에서 요셉과 17 년간 매우 형통한 삶을 살며 이 전의 모든 환난과 고난의 삶에 대해서 보상을 받는 듯한 삶을 살고 147 세로 죽는데요 죽기 직전에 야곱은 요셉에게 자신을 천국( 고향 )을 예표하는 선영이 묻혀있는 헤브론의 막벨라 굴에 장사해 줄 것을 명하는 모습에서 야곱 자신이 17 수의 계시를 깨닫고 있었던 사람인것을 알게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구속사의 종착역을 먼저 알고 요셉을 통해서 완결하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해서 야곱은 영적 장자인 요셉이 17 세에 형들에 의해 미디안 상인들에 팔려가기 까지 17 년을 함께 하였고 다시 요셉을 23 년 만에 다시 만나 그 후 17 년을 함께하므로 야곱이 요셉에게 자신이 깨닫고 있었던 17 수의 계시를 알게 하였다는 것을 알수가 있겠습니다 해서 이 6 기는 장소로서 애굽 한 곳이 되겠네요 7) 제 7 기는 요셉이 147 세로 일기를 마친 야곱을 70 일간 애굽이 곡하는 화려한 장사를 지내고 야곱의 시체를 이끌어 헤브론 막벨라 굴에 장사를 지내며 야곱의 모든 인생과 신앙 여정이 마쳐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는 야곱이 애굽( 세상 )을 떠나 승천하는 모양새를 그리는 마지막 천국 여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됩니다 오늘날 17 수의 사람들인 우리도 변화로 이 세상을 떠나야 하는 것을 먼저 보여주고 있는 것과도 같겠습니다 해서 야곱의 마지막 여정의 장소는 17 번째가 되는 막벨라 굴 곧 천국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야곱과 함께 17 수의 구속경륜을 정확히 알고 있던 요셉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다가 400 년이 차면 4 대만에 돌아오게 하시겠다는 횃불언약 성취를 위해 아브라함부터 4 대째인 자기가 죽으면 애굽에 두었다가 훗날 하나님이 출애굽시킬 때에 자기 해골( 창 50:25 )을 메고 가라고 임종전에 그 형제들에게 명령하므로 구속사에 차질이 없게 하였고 또 이를 알았던 모세는 출애굽시 요셉의 해골( 출 13:19 )을 취하고 나오며 표면적 횃불언약을 성취시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야곱의 17 수의 믿음이 요셉을 거쳐 430년 후의 모세에 까지 연결되고 있음을 볼수가 있겠습니다 그리고 야곱에게는 그와 관련된 17 수의 구속경륜이 2 가지가 더 있는데요 첫째는 아내 라헬이 낳아준 자녀들( 요셉과 베냐민 )과 관련된 17 수의 구속경륜이 되겠습니다 이는 모세가 광야에서 1 차 인구 조사때에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의 자손들을 계수할 때에 17 가문으로 확장된 것으로 해서 17 수가 나타나고 있는 것인데요 원래 라헬이 낳은 아들은 요셉과 베냐민 둘 뿐이지만 야곱이 요셉의 두아들인 에브라임과 므낫세를 축복( 창 48:5 )할 때에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을 자신의 아들인 르우벤과 같은 반열에 세우고 요셉은 자신의 아들이 아닌 것처럼 구속사의 섭리 속에서 분리를 시켰기 때문에 라헬이 낳은 아들들이 마치 베냐님과 에브라임 그리고 므낫세가 되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는 것이지요 둘째는 야곱의 12 아들중에서 유다 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총계수가 또 17 수의 배수를 이루는데서 야곱과 관련된 17 수의 구속 경륜을 찾아볼수가 있는데요 유다의 총계는 76,500 명으로 17 X 4500 이 되구요 므낫세의 총계는 52,700 명으로 17 X 3100 이 되겠습니다 위처럼, 야곱과 관련된 17 수의 구속경륜을 정리해보면 5 가지가 되겠네요 A, 야곱의 출생 년도에 담겨있는 17 배수 B, 야곱은 일생을 막벨라 굴에 장사되기 까지 7 기로서 17 군데로 완성 C, 요셉과 17 년간 먼저 같이했다가 23 년간 생이별하고 다시 말년에 17 년을 함께하는 구속경륜 D, 자신의 정실이 되는 아내 라헬이 낳아준 자손들과의 17 배수 구속경륜 E, 그리고 자신의 자손들과의 관련된 17 수의 구속경륜이 되겠는데요 성경 전체에서 약 30 가지가 좀 넘게 보여지는 17 수의 구속경륜 중에서 야곱이 그중에 5 가지나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구속사 속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고 할수가 있겠습니다 야곱은 변화 성도의 그림자가 되기 때문이지요 글이 너무 길어지니 나머지 4 문항 부터 7 문항 까지는 다음 글로 이어지도록 하겠습니다 아멘 아멘 아멘
@maylee50752 ай бұрын
도대체 뭔말을 하고 싶으신건지.. 알수가 없네요. 한심 수준을 넘어 말이 안나오네요.. 하루빨리 회개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내 구주로 받아 들이시고 구원 받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니고데모-e3z2 ай бұрын
@@maylee5075 행위로 구원받는가? 기초도 모르나
@니고데모-e3z2 ай бұрын
@@maylee5075 그리고 지 성격대로 믿는 믿음이 참 믿음이냐? 자기 성격을 버리고 참 그리스도인으로 믿어야 되느니라. 그리고 행위로 보면 나는 어려서 부터 하나님의 일을 했으니 내가 더 큰일을 했느니라. 깡통머리로 무슨 말을 하려느냐
@니고데모-e3z2 ай бұрын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의 말을 못 들으면 하나님말씀을 들을 적 없는 강도니라
@니고데모-e3z2 ай бұрын
요한복음 16장에 보혜사가 오시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꺠닫게 하신다는 데 당신이 성령이 있으면 이 구절을 알든지 알려고 노력이라도 해야 할 것이요 그러나 이 세상에 선지자 외에는 아무도 아는 자가 없으니 모두 성령없는 자요. 모두 지옥가겠다고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이요
@poemaparami22092 жыл бұрын
김용의 선교사님 설교나 한 번 듣고 올리신 건지...하나님 무서운줄 아세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요 나를 무서워해야지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김용의든 그 누구든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으면 다 벌레들일뿐이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자기 행위로 자기 의를 챙기니 이단이 맞습니다. 종은 자기 행위가 무익하며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의 말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말을 들으려는 사람이 없으니 모두 이단인 셈이요
나다나엘을 보고 예수께서 참 이스라엘이라고 했습니다. 가짜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과 같은 힘있는 메시아, 왕을 원했지만, 나다나엘은 선악을 분별할 메시아를 원한 것입니다. 참이스라엘 사람이면 선악을 분별하기를 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참 이스라엘사람이고 싶으면 진리를 전하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내가 이미 선이란 무엇인가와 십자가복음의 실체의 글에서 이미 선악을 가지고 말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보내신 선지자임이 증명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내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호산나-f7v2 жыл бұрын
뭔말인지.. 속시끄럽군요 정신차리십시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나는 선지자로 빛과 흑암의역사카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성경을 모르면 배우시요
@Keonpark1233 ай бұрын
다름아닌 이분이 이단이신듯요 ㅋㅋㅋ (한국어부터 다시 배우셔야될듯…)
@작은돌-p1k2 жыл бұрын
불쌍합니다. 이모양 저모양으로 들어쓰시는 하나님의 바라보시면 김용의 선교사가 안보일겁니다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모두 가짜들이요. 자기의는 소용없습니다
@paulkim38032 жыл бұрын
17 수 구속경륜 1 - 8 입니다 다음은 3, 장자권과 장자의 복을 담고 있는 야곱의 생애와 17 수와의 관계를 알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야곱의 탄생 년도는 아담 이후와 BC 년도가 노아와 반대되는 입장과 같은데요 야곱은 BC 2006 ( 17X 118 ) 년에 태어났으니 이는 아담이후 2108( 17 X 124 ) 년도가 되는 것으로서 야곱의 삶도 17 수가 지배를 하고 있었다고 볼수가 있겠는데요 실제로 야곱의 삶의 여정은 그가 바로에게 말을 했듯이 130 세를 살 동안 험난한 인생살이의 연속이었지만 때마다 하나님이 도와 주셔서 147 세로 죽기까지 애굽에서 요셉을 다시 만나 17 년간 살면서 자신의 마지막 삶에서 뚜렷하게 17 수룰 남기는 것을 볼수가 있겠습니다 이는 야곱이 요셉에게 17 수의 아버지 말씀을 정확히 전수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지요 박목사님께서는 야곱의 삶을 7 기로 분류하시며 그안에 17 군데( 장소 )를 거치는 삶을 살았다고 정의해 주셨는데요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제 1 기는 장자권과 장자의 복을 되찾는 삶이라고 말을 할수가 있겠는데요 장소는 브엘라헤로이 - 그랄 - 브엘세바가 되겠습니다 형, 에서의 배고픔을 이용해서 팥죽 한그릇으로 장자권을 빼앗고 아비 이삭을 속여서 장자의 복까지 가로채었을 때가 야곱 76 세가 되는데요 장자권을 뼀어 왔다는 것은 장자가 될수있는 자격을 가져왔다는 뜻이 되니 이는 십자가를 믿어 선민이 되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과 같고 장자의 복을 가져 왔다는 것은 아버지 말씀으로 실제 장자가 되어 17 수의 사람을 완성하는 복의 근원( 창 12:2 )이 된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하나님의 뜻을 품고 장자권과 복을 가로챈 야곱을 죽이겠다는 에서의 말을 엿듣고 리브가가 야곱을 밧단아람에 있는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보내기로 남편 이삭과 결정을 하고 야곱이 집을 떠나는 것이 제 1 기가 되겠습니다 2) 제 2 기의 삶은 아내를 얻고 12 지파의 아비가 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되겠는데요 장소로는 벧엘 - 밧단아람이 되겠습니다 집에서 나이 76 세가 되도록 종용히 세상 물정 모르고 살던 야곱이 들뜬 마음도 있고 또 미지의 세계로 향한다는 두려움도 컸을텐데 하나님은 그런 야곱의 심정을 아시고 처음 길에서 유숙하는 벧엘에서 그 밤에 야곱을 꿈에서 만나 주시고 하늘길의 직통이 되는 사다리( = 예수 ) 를 보여 주시며 그의 여정에 함께 하시겠다는 벧엘 언약을 주실 때에 야곱도 헌신을 서원하게 됩니다 이는 17 수의 삶을 보장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은혜가 앞서가는 은혜인 것이지요 그렇게 떠난 야곱은 96 세 까지 20년을 밧단아람에서 지냈던 것을 알수가 있겠습니다 20 수는 증거수 ( 2 X 10 ) 수가 되니 야곱이 외삼촌 라반과 지내는 20 년간의 세월은 마치 야곱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거하는 삶을 산 것과 같은 것이지요 사실 라반은 야곱이 자신의 집에 온 후에 형통함을 보고 야곱을 붙잡기 위해 두 딸들을 주었던 것이며 또 10 번씩 약속을 변개( 창 31:7 )하며 야곱의 가축을 가로채려 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야곱이 오히려 더 번성해 가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두렵게 느꼈던 것을 알수가 있는데요 후에 야곱이 가솔들을 데리고 밧단아람을 도망쳐 나올때 3 일길이나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라반이 7 일 동안 집요하게 쫓아가서 야곱을 붙잡았어도 간 밤에 자신의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이 선악간에 아무 시비도 하지말라는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야곱이 17 수의 사람으로서 받는 또 다른 복인 것을 나타내는 증거가 되는 것이지요 친히 하나님이 라반을 막아주시는 은혜라는 것이지요 라반이 7 일을 걸쳐 쫓아왔다는 것은 야곱을 죽이겠다는 의지도 있었는데 하나님이 막아 주셨다는 것입니다 또 야곱은 그곳에서 결국 4 아내를 얻고 90 세에 11 번째 아들 요셉까지 얻고 그 곳을 96 세 때에 떠났는데요 여기서 4 명의 아내들은 땅의 동서남북 4 수로서 예수님의 신부들이 천지 사방에서 나올 것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2 기의 삶은 비록 외삼촌 라반의 궤계( 창 31:8 ) 에 눈 붙일 순간도 없이 고생한 시기였지만 철저한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 속에서 12 지파의 아비로서 세움을 받는 시기였음을 알수가 있겠습니다 3) 제 3 기는 세겜땅을 구입하고 96 세에서 106세 까지 10 년간 거주하다가 디나가 강간을 당하는 비극을 겪는 환난의 시기로 보면 되겠습니다 장소로는 길르앗 산지 - 마하나임 - 브니엘 - 숙곳 - 세겜이 되겠습니다 이 여정은 외삼촌 라반의 손에서는 벗어났지만 이제 형 에서를 걱정해야 하는 귀향길이었구요 그래도 하나님은 야곱을 안심시키기 위해 마하나임에서 하나님의 군대( 천군 )가 호위하고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에 힘입어 야곱은 얍복강에서 홀로 하나님과 씨름을 하여 이기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지만 천사가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위골이 되게 하는데요 이를 박목사님께서는 야곱의 철저한 회개 기도의 결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인간의 신체의 가장 중심부, 생명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환도뼈가 위골된 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힘과 그의 잔꾀, 그의 실력, 그의 옛사람을 완전히 꺾어 버리시고 정복하신 것을 의미합니다. 야곱 속에서 끈질기게 어마어마한 힘으로 주인 노릇 하던 그 옛자아가 완전히 부서지고 만 것입니다. 지금까지 가장 믿고 신뢰하며 자랑했던 자기 자신, 육신적인 자아가 박살나는 순간입니다. 옛사람과 그 행위가 십자가에 처참하게 못 박혀 옛자아(自我)가 사망하는 순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라고 하신 말씀이 내 안에서 성취되는 순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나의 신기원이 열리는 시간입니다” 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것도, 마치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야곱의 기도를 도와주시는 거와 같으니 야곱은 17 수의 사람 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지요 이 기도후에 야곱은 브니엘(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고도 죽지 않고 살아 남았다 )의 아침을 맞고 계속 길을 가게 되는데요 그러나 야곱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형 에서를 당당히 맞이 할 생각은 하지 못하고 또 이전 사람으로 돌아가 스스로 잔꾀를 내어 자기 소유를 구분해서 에서를 맞이하는 모습을 보이는데요 하나님 입장에서는 야곱의 환도뼈를 쳐서 야곱이 다리를 저는 모습만 가지고도 에서의 위협을 피할수 있도록 하셨는데 야곱은 지속적으로 자기 생각을 더하였던 것이지요 그래도 하나님의 은혜로 야곱은 형 에서와 좋게 만나고 헤어지고 난후 숙곳을 거쳐 세겜에서 은 일백개를 주고 산 땅에 주저 앉고 또 10 년을 지내는 자기 꾀를 부리며 벧엘 언약을 지키지 않다가 만수가 되는 10년째 되던 해에 외동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고 아들들이 대학살을 일으키는 환난을 겪게되는 것이 이 3 기의 시기가 되겠습니다 17 수 구속경륜 1 - 9 로 이어집니다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원죄의 진리 1. 원죄는 무엇인가? : 아담이 여자의 말을 들은 것이 원죄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2. 원죄가 왜 이어졌는가? 태중부터 여자에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자식도 유대인이라고 하죠. 어머니에게 태중부터 교육을 받으니 유대인이 되는 것입니다. 죄인으로 길러지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는 태중부터 마리아의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주는 대로 먹고 따로 교육이 필요없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제가 그렇게 자랐습니다. 그 증거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에 계신 예수를 보고 마리아가 꾸짖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내 능력을 보이라고 예수님께 강요합니다. 나중에는 미쳤다고 데리고 가려고 하죠. 이렇게 여자는 남자를 가르치려고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저도 어머니가 제 밀을 들었지. 제가 어머니말을 들은 것은 별로 없습니다. 들을 필요가 없이 스스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도 십자가아래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즉 여자인 교회는 십자가를 보아야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는 것의 핵심이 원죄였습니다. 사실 요한복음을 쓴 이유도 이 십자가복음을 완성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쓴겁니다(계시록10장) 요한복음에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시고 다 이루었다라고 하죠. 그리고 순종해야 하는 여자의 대표인 마리아를 숭모하는 천주교는 성경을 완전히 꺼꾸로 보는 이단입니다 예수님이 가족이 원수라고 할까요? 그럼 가족이 적이겠습니까? 적이란 경쟁자죠. 경쟁사와 원수는 다른 개념입니다. 나 외에는 원수입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왜 가족이 원수일까요? 선생은 예수밖에 없는 데 가족이 악한 것을 가르치기 때문인 겁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모두 사랑의 진리에서 나오고 제가 나실인, 작은 예수이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여자를 알아야 하고, 예수님은 일반 남자처럼 자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성경의 비밀이며 모든 신학은 이 원죄의 진리앞에 다 무너지는 겁니다.
@paulkim38032 жыл бұрын
17 수 구속경륜 1 - 10 입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 벧엘에서 처음 하나님을 꿈에서 만났을 때 서원을 했었는데요 창 28:20-22 ) “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 십자가의 말씀 )과 입을 옷( 예복, 아버지 말씀 )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의 말씀처럼 구속사를 알고 있는 야곱이 집( 천국 ) 으로 돌아오기 까지 그의 모든 길에서 함께 하시고 지켜주신 하나님께 스스로의 서원을 지키기 위해서 라도 벧엘로 올라갔어야 하는데 지체하므로 구속사의 뜻을 어기고 있는 야곱을 하나님은 징계할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이면적으로 보면 세겜에서 야곱의 신앙이 느슨해지고 있었다는 반증도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은 벧엘에 올라와 예배부터 회복을 시키기 위해 제단을 쌓으라고 명하십니다 창 35:1 )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의 말씀이 증거가 되겠습니다 오늘날 십자가 교회들이 또 다시 대 각성운동이다 회개운동이다 벌이고 있지만 그것이 정확히 아버지가 바라는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17 수의 계시가 되는 아버지 말씀으로 자기 자신 부터 변화 구원을 준비해야 하는 때가 된다는 것이지요 해서 저희 교회가 이렇게 17 수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고전 9:25 )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 율법, 십자가 ) 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 아버지 말씀 )을 얻고자 하노라” 고 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지금은 썩어 부활이 아니라 변화로 썩지않고 아버지 앞에 그날에 서야 하는 아버지 시대라는 것이지요 야곱처럼 벧엘로 올라와서 제단을 쌓아야 하는 때가 지금이라는 것입니다 아니 심판을 눈앞에 두고 썩는 제단만 밤낮 쌓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것이지요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 계 21:7 ), 곧 멜기세덱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 멜기세덱 )이 될수 있는지 가르쳐주고 보여주기 위해 성육신해서 오신 것이 아니었습니까 하지만 유대가 믿지 못하고 도중에 십자가에서 죽이므로 믿었더라면 주시려고 했던 말씀을 주지 못하고 돌아갔기에, 요 16:25 ) “이것을 비유로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 하신 것이지요 이것이 17 수에 대한 계시가 되는 것입니다 이 17 수의 말씀을 통해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 멜기세덱 ) 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야곱이 벧엘에서 다시 예배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고 엘벧엘을 부르며 회복하였을 때( 창 35 장 ) 하나님은 야곱을 10 년 전 얍복강가에서 주셨던 새이름인 이스라엘로 다시 불러주시고 그때서야 하나님과 동행을 하는 자로서 세상( 밧단아람 ) 과 분리된 것을 말씀하시면서 그동안 야곱의 유모로서 함께하던 드보라를 하나님께서 데려 가므로 야곱이 얼마나 울었던지 그곳을 알론바굿이라 하는데요 이는 야곱이 더 이상 유모를 필요치 않을 정도로 믿음이 올라오고 장성했다는 상징을 주시기 위한 것으로서 오직 벧엘의 신앙이 되는 17 수의 아버지 말씀을 가져야만 장성한 신앙인으로서 온전한 생령체가 될수 있음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이 된다는 것이지요 더하여 하나님은 야곱을 축복해 주시는데요 창 35:11 )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의 말씀처럼 마치 처음 아담이 받았던 축복을 말씀하셨는데요 아담이 실패하므로 이 복은 연이어 노아( 창 9:1 )로 이어지고 노아도 실패하므로 이어 아브라함( 창 12:2 )에게 이어지며 이삭을 거쳐 드디어 야곱에게 이른 것이고 이 복을 초림때에 이스라엘이 버리므로 이스라엘은 저주받은 무화과가 되었기에 이 영적 축복이 결국 오늘날 우리를 통해서 완성( 히 12:23-24 )이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아버지 말씀으로 드리는 바른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관계가 다시 올바로 서게된 것을 기뻐하며 벧엘을 떠난 야곱은 거의 베들레헴에 도착할 무렵 에브랏 길에서 아내 라헬이 12 번째 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죽는 슬픔을 겪게 되는데요 또 에델 망대에서는 서모 빌하를 르우벤이 범하므로 야곱의 입장에서는 둘 다 잃게 되는 비극이 벌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끝내 라반의 드라빔을 버리지 않고 있는 라헬을 죽이신 것과 다름이 없고 또 장자 르우벤을 장자에서 탈락이 되게하시는 것은 자신의 섭리안에서 육적 장자로는 오히려 유다를 세우시는 순간이 되고 또 영적 장자로는 요셉을 세우시는 장면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속사 안에서 정리해 주시는 순간이라는 것이지요 영적으로 보면 그렇게 사단은 야곱의 정실과 장자를 무너뜨리므로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야곱은 아비 이삭이 거주하고 있는 헤브론으로 올라가게 됩니다 이때 야곱의 나이는 106 세가 되고 이삭의 나이는 166 세가 되며 요셉의 나이는 16 세가 되는 것을 알수가 있겠습니다 그래서 이 4 기의 인생 여정은 야곱에게 아버지 말씀으로 드리는 벧엘의 온전한 예배를 통해 영적 회복은 있었지만 표면적으로는 희비가 엇갈리는 때였다고 말할수가 있겠습니다 5) 제 5 기도 야곱에게 있어서는 낙담의 세월과도 같았는데요 헤브론에서 아비 이삭을 만나며 해후를 하고 정착을 하였지만 형들을 찾으러 나간 요셉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는 또 다른 비극으로 비통에 잠겨 있던 차에 이 헤브론에서 다시 만난지 14년 만에 아비 이삭도 죽고 흉년이 들어 애굽에 양식을 사러 요셉의 형들을 보내었으나 요셉의 기지로 베냐민까지 떠나 보내야 하는 지경에 까지 내몰리는 바람에 마치 야곱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것들을 모두 빼앗기는 상황에 까지 갔다가 다시 요셉의 반전의 기지로 기쁨의 재회를 위해 애굽으로 내려가다가 브엘세바에서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을 때에 그 밤에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애굽에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말라고 확증해 주시는 것이 이 5 기가 되겠습니다 4 백년간 이방의 노예가 되었다가 4 대만에 돌아오게 하시는 횃불언약 성취를 이루시기 위해 야곱이 70 가솔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가도록 허락하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5 기의 지역은 헤브론과 브엘세바가 되겠습니다 마지막 17 수 구속경륜 1 -11 로 이어집니다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긴 글은 쓸모가 없습니다. 소설을 해석하는 것같은 일입니다 한 사건만 가지고도 진리를 뽑아낼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입니다 진리를 알고 싶으면 저에게 배우시기 바랍니다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저는 다음카페 빛과 흑암의 역사카페에서 활동하는 니고데모라고 하니 진짜 진리를 깨닫고 싶으시면 그 카페로 오시기 바랍니다
@kyj12572 жыл бұрын
허~ 횡설수설,,, 술 드셨군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몽고분인가?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아침인데 술 먹었겠수 내가 매일 일로 피곤하고 빛흑카페에서 영적싸움하느라도 피곤해서 육신이 고단해서 그렇게 보이는거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내가 예수와 거의 흡사합니다 예수를 알려면 나를 잘 보시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원죄의 진리 1. 원죄는 무엇인가? : 아담이 여자의 말을 들은 것이 원죄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2. 원죄가 왜 이어졌는가? 태중부터 여자에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자식도 유대인이라고 하죠. 어머니에게 태중부터 교육을 받으니 유대인이 되는 것입니다. 죄인으로 길러지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는 태중부터 마리아의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주는 대로 먹고 따로 교육이 필요없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제가 그렇게 자랐습니다. 그 증거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에 계신 예수를 보고 마리아가 꾸짖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내 능력을 보이라고 예수님께 강요합니다. 나중에는 미쳤다고 데리고 가려고 하죠. 이렇게 여자는 남자를 가르치려고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저도 어머니가 제 밀을 들었지. 제가 어머니말을 들은 것은 별로 없습니다. 들을 필요가 없이 스스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도 십자가아래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즉 여자인 교회는 십자가를 보아야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는 것의 핵심이 원죄였습니다. 사실 요한복음을 쓴 이유도 이 십자가복음을 완성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쓴겁니다(계시록10장) 요한복음에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시고 다 이루었다라고 하죠. 그리고 순종해야 하는 여자의 대표인 마리아를 숭모하는 천주교는 성경을 완전히 꺼꾸로 보는 이단입니다 예수님이 가족이 원수라고 할까요? 그럼 가족이 적이겠습니까? 적이란 경쟁자죠. 경쟁사와 원수는 다른 개념입니다. 나 외에는 원수입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왜 가족이 원수일까요? 선생은 예수밖에 없는 데 가족이 악한 것을 가르치기 때문인 겁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모두 사랑의 진리에서 나오고 제가 나실인, 작은 예수이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여자를 알아야 하고, 예수님은 일반 남자처럼 자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성경의 비밀이며 모든 신학은 이 원죄의 진리앞에 다 무너지는 겁니다.
@진검승부-f3d2 жыл бұрын
본인이나 잘하세요 본인도 남을 비판하고 있으면서 누굴이단이라고 하는거예요? 자신없으면 목회그만두셔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요. 진리를 잘 듣기 바랍니다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원죄의 진리 1. 원죄는 무엇인가? : 아담이 여자의 말을 들은 것이 원죄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2. 원죄가 왜 이어졌는가? 태중부터 여자에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자식도 유대인이라고 하죠. 어머니에게 태중부터 교육을 받으니 유대인이 되는 것입니다. 죄인으로 길러지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는 태중부터 마리아의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주는 대로 먹고 따로 교육이 필요없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제가 그렇게 자랐습니다. 그 증거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에 계신 예수를 보고 마리아가 꾸짖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내 능력을 보이라고 예수님께 강요합니다. 나중에는 미쳤다고 데리고 가려고 하죠. 이렇게 여자는 남자를 가르치려고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저도 어머니가 제 밀을 들었지. 제가 어머니말을 들은 것은 별로 없습니다. 들을 필요가 없이 스스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도 십자가아래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즉 여자인 교회는 십자가를 보아야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는 것의 핵심이 원죄였습니다. 사실 요한복음을 쓴 이유도 이 십자가복음을 완성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쓴겁니다(계시록10장) 요한복음에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시고 다 이루었다라고 하죠. 그리고 순종해야 하는 여자의 대표인 마리아를 숭모하는 천주교는 성경을 완전히 꺼꾸로 보는 이단입니다 예수님이 가족이 원수라고 할까요? 그럼 가족이 적이겠습니까? 적이란 경쟁자죠. 경쟁사와 원수는 다른 개념입니다. 나 외에는 원수입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왜 가족이 원수일까요? 선생은 예수밖에 없는 데 가족이 악한 것을 가르치기 때문인 겁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모두 사랑의 진리에서 나오고 제가 나실인, 작은 예수이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여자를 알아야 하고, 예수님은 일반 남자처럼 자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성경의 비밀이며 모든 신학은 이 원죄의 진리앞에 다 무너지는 겁니다.
@jperfume222 жыл бұрын
네 제눈엔 관종으로 밖에 안보이네요.. 남 비판 전에 본인을 좀 돌아보시길...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나 니고데모 외에는 거의 도적들이요. 나는 검증된 선지자이며 진리를 전하고 있습니다
@ustonsjc3 ай бұрын
저기요 진짜 병원 꼭 가보세요.
@user-ce9ub2rv9g Жыл бұрын
한국교회가 개 처망한 이유가 이런거군 ㅋㅋ 술을 몇병이나 처먹은거임?
@니고데모-e3z Жыл бұрын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다. 나 외에는 성경을 한글자도 아는 인간이 없다. 내 말을 듣지 못하면 모두 지옥이다
@니고데모-e3z Жыл бұрын
내 페이스북이나 내 유튜브를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나 외에는 아무도 모릅니다. 모두 거짓을 알고 있는 것이요
@이현자-o8w2 жыл бұрын
영상내리세요~~술취했나
@재정김-b8i2 жыл бұрын
에구 정신 차리세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지금 세상에 일어나는 일을 계시받아 예언한 선지자인데 님이 귀신들려서 모르는 것이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원죄의 진리 1. 원죄는 무엇인가? : 아담이 여자의 말을 들은 것이 원죄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2. 원죄가 왜 이어졌는가? 태중부터 여자에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자식도 유대인이라고 하죠. 어머니에게 태중부터 교육을 받으니 유대인이 되는 것입니다. 죄인으로 길러지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는 태중부터 마리아의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주는 대로 먹고 따로 교육이 필요없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제가 그렇게 자랐습니다. 그 증거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에 계신 예수를 보고 마리아가 꾸짖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내 능력을 보이라고 예수님께 강요합니다. 나중에는 미쳤다고 데리고 가려고 하죠. 이렇게 여자는 남자를 가르치려고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저도 어머니가 제 밀을 들었지. 제가 어머니말을 들은 것은 별로 없습니다. 들을 필요가 없이 스스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도 십자가아래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즉 여자인 교회는 십자가를 보아야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는 것의 핵심이 원죄였습니다. 사실 요한복음을 쓴 이유도 이 십자가복음을 완성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쓴겁니다(계시록10장) 요한복음에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시고 다 이루었다라고 하죠. 그리고 순종해야 하는 여자의 대표인 마리아를 숭모하는 천주교는 성경을 완전히 꺼꾸로 보는 이단입니다 예수님이 가족이 원수라고 할까요? 그럼 가족이 적이겠습니까? 적이란 경쟁자죠. 경쟁사와 원수는 다른 개념입니다. 나 외에는 원수입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왜 가족이 원수일까요? 선생은 예수밖에 없는 데 가족이 악한 것을 가르치기 때문인 겁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모두 사랑의 진리에서 나오고 제가 나실인, 작은 예수이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여자를 알아야 하고, 예수님은 일반 남자처럼 자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성경의 비밀이며 모든 신학은 이 원죄의 진리앞에 다 무너지는 겁니다.
@w24hourprayhouse112 жыл бұрын
하나님의 나라가 우크라이나 🇺🇦 헝가리 🇭🇺
@축구선수아빠 Жыл бұрын
뭔 말하는지 전혀 모르겠네요. 거의 횡설수설. 근데 더 우긴 것은 본인도 본인이 하는 말을 못 알아들을 듯.
@니고데모-e3z Жыл бұрын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의 말은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니고데모-e3z Жыл бұрын
내 유투브를 보고 깨달으라.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깨닫지 못하면 도적놈이다
@tglee72934 күн бұрын
@@니고데모-e3z 무슨말이야ㅋㅋ 본인이 하나님도 아니고 본인말이 논리가 없어서 비판하면 도적인가요? 좀 많이 이상하시네
@니고데모-e3z3 күн бұрын
@@tglee7293 선지자가 인간을 설득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선지자말을 들어
@니고데모-e3z3 күн бұрын
@tglee7293 당신이 성경을 읽어야 하나 성경을 당신을 읽어야 하나? 당연히 성경이 당신을 읽어야 하는 것을 깨달아야지. 김용의이단처럼 자기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니 이단이 이닌가?
@쿠쿠-n3e2 жыл бұрын
참 전파가 아깝다.. 스스로를 선지자라 칭하시는데 그런선지자 성경에 사자를 보내 잡아먹게 하시더군요. 그리고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으니까 발음교정이나 좀 해보세요 안타깝네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선지자가 말 잘하면 무조건 가짜다
@코람데오-o5n2 жыл бұрын
김용의 선교사를 비판 하려면 제대로 알고 피판하시죠 그분의 뒤꿈치도 못따라가는 수준으로... 참 코메디 하시네요ㅋㅋ 예수의 예 자. 복음의 복 성경의 성 자도 모는는 수준입니다 모든 교회가 모든 성도가 그분만 같으라죠 언능 내리시고 진짜 이단을 비판하시길...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이단을 이단이라 하지 그럼 뭐라하나? 님은 산신령을 믿습니까?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김용의 선교사가 이단인 이유는 자기를 보고 남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보고 자신을 보아야 하는 겁니다.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자기 기준으로 성경도 판단하고 사람도 판단하고 있습니다 종은 죽도록 일하고도 집에와서는 주인의 또 받들어야 합니다 선교사했다고 큰 소리치는 사람들은 모두 이단들입니다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김용의 선교사가 이단인 이유는 자기를 보고 남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남을 보고 자신을 보아야 하는 겁니다. 아니면 그냥 가만히 있으면 되는데 자기 기준으로 성경도 판단하고 사람도 판단하고 있습니다 종은 죽도록 일하고도 집에와서는 주인의 또 받들어야 합니다 선교사했다고 큰 소리치는 사람들은 모두 이단들입니다
@cindychoi98032 жыл бұрын
이런 사람도 있군요.. ㅜㅜ 어쩜 좋아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요. 진리를 잘 듣기 바랍니다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요 내가 십자가 복음의 실체에 대해 쓴 동영상을 보시요. 보시고 회개하기 바랍니다
@jperfume222 жыл бұрын
헐.. 본인이 본인보고 하나님 보내신 선지자래... 논리도 없고...딕션도 연습도 해주시길...계속 들을 수가 없네요 마냥 기가 차네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jperfume22 성경의 기초라도 아는 사람은 나실인선지자밖에 없습니다. 선지자를 영접할줄 알아야 예수도 영접하는 겁니다
@jperfume222 жыл бұрын
@@니고데모-e3z 아 네네 그래서 님은 성경의 기초라도 아셔서 이런 영상을 올리시나봐요ㅋ 차라리 세습같은거나 하는 쓰레기 같은 큰교회 목사님들이나 비판하세요 그러면 고개라도 끄덕일거 같네요 어줍짢게 열심ㅎㅣ하시는분 건들지마시구요
@dydy53982 ай бұрын
불쌍하다….. 말도 버벅거리고… 병원을 가보시길…
@니고데모-e3z2 ай бұрын
@@dydy5398 모세나 바울이 원래 말을 잘 못하는 것도 모르나? 그러니 당신은 지금 모세나 바울을 모욕한것이니라
@jaychoi73262 жыл бұрын
당신은 미쳤어 아니면 적그리스도 둘중하나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요 내가 십자가 복음의 실체에 대해 쓴 동영상을 보시요. 보시고 회개하기 바랍니다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율법을 보고 나를 판단하는 것이죠? 즉 남을 보고 나를 판단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를 보고 율법을 판단하고 나를 보고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눈이 있으면 먼저 보고 나를 판단해야 되는 것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이현자-o8w2 жыл бұрын
김용의선교사님을 이단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이단이다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이 세상에 성경을 아는 사람은 나 혼자밖에 없고 나머지는 무지한 사람일뿐이요.
@jangyunoh2489 Жыл бұрын
@@니고데모-e3z 진짜 이단이시네요 ㅉㅉ
@니고데모-e3z Жыл бұрын
@@jangyunoh2489 나외에는 모두 이단이요
@시골아지매-v1i2 жыл бұрын
성경을 전혀모르시고 그런말하시네요ㆍ부끄러운줄 아세요ㆍ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성경을 아는 사람이 없소
@w24hourprayhouse112 жыл бұрын
하나님의 나라 ㆍ하나님나라의 복음의 눈으로 👀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복음을 아는 사람은 니고데모 혼자임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요 내가 십자가 복음의 실체에 대해 쓴 동영상을 보시요. 보시고 회개하기 바랍니다
@stevenkim85422 жыл бұрын
뭔말하는겨? 음주측정필요허네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당신도 이단 맞구나
@parksmin06902 жыл бұрын
이단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진리가 무엇인지 정말 아십니까? 성경의 의미를 모르시는 것 같은데 신학공부 좀 더 하세요. 이단도 제대로 분별 못 하시는 것 같네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저는 하나님의 보내신 선지자요. 진리를 듣기 바랍니다 님은 성경 한글자도 모릅니다 안다면 선이 무슨 말인지 설명해 보시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아니면 모르는 것이 있으면 나한테 묻기 바랍니다. 그럼 진리로 알려드립니다
@parksmin06902 жыл бұрын
어떤 하나님이 선지자로 보내셨나요??제가 알고 계신 하나님은 아니신듯 하네요 상대하지 않겠습니다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parksmin0690 당연히 다르죠. 산신령 쟐 섬기세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parksmin0690 원죄의 원죄의 진리 1. 원죄는 무엇인가? : 아담이 여자의 말을 들은 것이 원죄입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2. 원죄가 왜 이어졌는가? 태중부터 여자에게 교육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어머니가 유대인이면 자식도 유대인이라고 하죠. 어머니에게 태중부터 교육을 받으니 유대인이 되는 것입니다. 죄인으로 길러지는 겁니다. 그러나 예수는 태중부터 마리아의 교육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주는 대로 먹고 따로 교육이 필요없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제가 그렇게 자랐습니다. 그 증거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에 계신 예수를 보고 마리아가 꾸짖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내 능력을 보이라고 예수님께 강요합니다. 나중에는 미쳤다고 데리고 가려고 하죠. 이렇게 여자는 남자를 가르치려고 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저도 어머니가 제 밀을 들었지. 제가 어머니말을 들은 것은 별로 없습니다. 들을 필요가 없이 스스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리아도 십자가아래에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요한복음 19장)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30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즉 여자인 교회는 십자가를 보아야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 이루었다는 것의 핵심이 원죄였습니다. 사실 요한복음을 쓴 이유도 이 십자가복음을 완성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쓴겁니다(계시록10장) 요한복음에서 마리아에게 말씀하시고 다 이루었다라고 하죠. 그리고 순종해야 하는 여자의 대표인 마리아를 숭모하는 천주교는 성경을 완전히 꺼꾸로 보는 이단입니다 예수님이 가족이 원수라고 할까요? 그럼 가족이 적이겠습니까? 적이란 경쟁자죠. 경쟁사와 원수는 다른 개념입니다. 나 외에는 원수입니다. 그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왜 가족이 원수일까요? 선생은 예수밖에 없는 데 가족이 악한 것을 가르치기 때문인 겁니다. 간단한 것입니다. 모두 사랑의 진리에서 나오고 제가 나실인, 작은 예수이기 때문에 아는 것입니다. 여자를 알아야 하고, 예수님은 일반 남자처럼 자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는 성경의 비밀이며 모든 신학은 이 원죄의 진리앞에 다 무너지는 겁니다.
@김종국-d6i2 жыл бұрын
너~누구니 완죤나 정신 나같고만 참나 똘아이들이 와 이리많노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이 세상은 모두 가짜니라 모든 신학이 가짜야
@김종국-d6i2 жыл бұрын
신학이가짜면 복음으로가면데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김종국-d6i 복음은 나만 알고 있지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내가 올린 십자가 복음의 실체를 들어보기 바랍니다 이것이 실체고 나머지는 모두 가짜요
@Everyday-dc1ub2 ай бұрын
댁이 먼저 잘해야 할듯.
@니고데모-e3z2 ай бұрын
@@Everyday-dc1ub 나는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로 인간은 스스로 죄를 깨닫지 못하고 선지자가 깨우쳐주어야 알수 있다 그러니 선지자가 쓴 십자가 복음의 실체의 책을 사서 읽고 회개하라
@choedj Жыл бұрын
개so리를 길게도 해놨네
@니고데모-e3z Жыл бұрын
이단을 추종하지 마라
@choedj Жыл бұрын
@@니고데모-e3z 그래서 당신이 이단이다
@니고데모-e3z Жыл бұрын
@@choedj 잘 들어 인간은 성경을 한글자도 모른다는 것을 증명할테니 선을 알아야 죄를 알겠지? 그래서 율법을 주신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은 진짜 선을 알았나 몰랐지. 선을 알아야 죄를 아는 것이다. 하나님만 선하다고 하면 그건 우상숭배다. 그러므로 올바론 선을 알아야 하는 데 아무도 선을 몰라 그러므로 당신이나 김용의이단이나 그 하는 행동이 모두 죄를 짓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야.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 나 니고데모외에는 모두 이단이야. 나는 선을 안단다
@choedj Жыл бұрын
@@니고데모-e3z 뭐래 ㅋㅋㅋ 니가 선지자라고? 이름이 뭔데?
@니고데모-e3z Жыл бұрын
@@choedj 나는 증명된 선지자이니 선지자말을 들어라
@소금-v4s2 жыл бұрын
하나님이 두렵지 않으세요?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내가 할 소리네. 나는 진짜로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요
@박두환-m2c2 жыл бұрын
형들 어차피 말 안통해 댓억 ㄹㅇㅋㅋ 만 치면되
@니고데모-e3z2 жыл бұрын
로마서 6장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로마서나 바울서신을 읽어보면 상당히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복음의 실체를 알면 간단하고 그냥 읽어서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옛사람이라는 것은 선악과를 먹고 스스로 선악판단의 주체가 되어 율법지키기, 세상왕되기, 하나님이 아니라 세상왕이 다스려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고통받다가 하나님께 간구하여 모세를 통해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광야생활을 통해 원망과 배도로 1세대는 갈렙과 여호수아를 빼고 다 죽습니다. 사사기 시대에서는 사사가 있었지만 스스로 판단하다가 많은 고생을 하여 자기들을 다스릴 왕을 세상왕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왕들은 이스라엘을 더 배도의 길로 인도하고 이스라엘이 망하게 합니다. 그래서 다윗같은 세상왕적인 메시아를 바라게 됩니다. 그것이 선악과를 먹은 인간의 모습니다. 1.요한복음에는 성령이 오시면 심판에 대해 책망하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세상왕이 심판받았다고 합니다. 죄에 대해서 책망은 너희가 믿지 않아서 성령이 오신 것이고, 의에 대해서는 예수님이 안계시니까 성령이 보혜사로 오시는 것이고 심판에 대해서는 세상왕이 심판받았기 때문에 성령이 오신 것이다라는 말입니다. 2. 예수가 달리신 십자가에 분명히 유대인의 왕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즉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세상왕 예수입니다. 옛사람들이 바라던 그 세상왕을 자기의 손으로 심판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모세가 장대에 놋뱀을 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즉 내가 원하고 소망하던 것을 스스로 죽여 없애게 된 것입니다. 3. 결론적으로 너희들이 옛사람을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았으니 더 이상 너희가 바라던 것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자기의 소망을 죽여버린 것으로 더 이상 이 세상의 것을 하나님께 바랄 것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기도할 것이 없어 진 것입니다. 자기의 소망이 완전히 끊어진 것입니다. 내가 바라던 그 세상을 더 이상 바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하늘의 것 즉 성령을 바랄 수 밖에 없고 오순절에 이르러 성령을 받고 그 성령을 따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성령훼방죄는 당연히 사함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인간이 바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