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가 한국 최고 전성기인데요. 자영업자들에물어보세요 그시절그리워하는장사하시는분들많습니다
@sang-junlee6561Ай бұрын
노무현때가 제일 살기 좋았다.
@교훈김-e4c7 сағат бұрын
동무들! 잘왔소! 행복하게 사시오!
@k천사-i4n2 жыл бұрын
한국에서는 1975년부터 쌀밥을 배불리먹고있습니다.
@샤라한4 жыл бұрын
70년대 후반부터 이미 시골깡촌에서 조차 쌀밥은 다 먹었죠. 응답하라1988은 극적인 연출을 위해 신파를 많이 가미했죠. 드라마의 모습은 88년이 아니라 70년대에 가깝습니다.
@koutsider82663 жыл бұрын
정답.
@대한민국-g4f2 жыл бұрын
흥미롭게 잘들었습니다 지금 50대로서 70년대 초반까지는 코흘리개시절 보리밥 먹었어요 아버지 밥만 가운데 쌀 많이 넣은거 먹고싶어서 침만 꼴딱꼴딱 했었네요 ㅎㅎ 차츰차츰 쌀을 많이 넣어서 먹었어요 80년도부터는 좋았지요
@이재권-w4y4 жыл бұрын
대한민국88년은 북한에 비할바가.아니죠 그때 올림픽이 있던해인데 올림픽하는나라가 얼마나 되나요? 아시아에서 그때당시 일본 한국뿐입니다 그만큼 국력이 있었지요
@김종수-n1t3 жыл бұрын
ㅁ0ㅁㅎㅇ0ㅇ0ㅇ00ㅁ000ㅅ0ㅅ00ㅇㅅㅅㅁㅅ0ㅅㅇㅆ0ㅎㅅㅇㅅㅇㅆㅇㅎ0ㅇ00ㅅ
@이정훈-n5e2l2 жыл бұрын
나는 1973.4 1976.12월 까지 사병으로 군생활 화천. 당시 매주 금요일 점심 분식으로 건빵1봉, 나머지는 쌀밥이었슴 70년대도 이랬는데, 80년대는 불처럼 경제가 살아나던 때임. 우리는 5대양 6대주를 누비며 환호하던 시절임.
@하립-y2b4 жыл бұрын
80년대 남한은 잘살았어요. 경제가 부글부글 끓고있을 때인데 뭔 소리?
@아그네스-w9d2 жыл бұрын
예쁜 은정씨 수고가 많으시네요 저는 64년생인데요 내가 중학교때가 1977년 때인데 쌀밥만 먹어서 나라에서 밥에 잡곡밥 섞어 먹자는 캠페인이 있었습니다 그때도 지금 북한보다 훨씬 우리 남한이 잘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강은정 티비 재미있게 잘보고 있어요 아버지 어머니도 우리 남한에 와서 더 젊이진거 같아요 행복해 하는 모습들 보고 넘 좋았어요 좋은것 많이 보시고 맛있는것도 많이 먹고 늘 행복 하시길 바래요
@jlee88214 жыл бұрын
80 년대는 오히려 경제적으로 여유로웠던것 같아요. 지금과 비교하면 집값이 소득대비 상대적으로 많이 쌌어요. 물가도 낮았고.. 그리고 나라 경제는 계속 높은 성장을 했고요.
@123carth3 жыл бұрын
지금하고 비교해서 물가가 싼 거지 경제 고속성장은 물가 고속 상승이랑 똑같은 말입니다
@산파람2 жыл бұрын
@@123carth 뭔가 일본을 앞질렀다고 유튜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왜 엔화는 꿈쩍도 안함?
@꼼장어-n6j Жыл бұрын
전두환 시절이 잴 살기 좋았음! 프로야구,가요제...둥 문화도 다양했고 산천방곡 활기 넘쳤움
@박도현-e8p4 жыл бұрын
60년대에도 다 쌀밥 먹고 살았어요.... 80년대에는 한국 경제가 고도성장의 단계에 완전히 접어들어서 길에 자가용이 서서히 넘쳐나던 시기였어요...
@heaven-qn3lq2 жыл бұрын
1959년생인 저도 쌀 없어서 보 리밥 먹은 기억 없어요 우리동네에 초가집은 몇채 있었 고 tv등 가전제품은 동네에 몇집 없었지요
@이-q7g4 жыл бұрын
80년대에도 계란은 너무 쌌어요. 드라마는 70년대의 기억과 80년대 극초반의 기억을 섞어서 만들었던것으로 보여졌습니다. 가난한 집 친구들이 매일 먹었던게 찐계란 이었을 정도로... 계란은 가난한 친구들이 진짜 질리도록 먹었습니다. 더구나 응답하라 1988은 88년도가 주 배경인데... 그때 계란이 없었다는건 정말 거짓말입니다. 남한사람들은 그게 드라마여서 그렇겠거니 하고 넘어가는데 탈북민 보시기엔 진짜 헷갈렸을수도 있겠네요. 명확하게 정리하겠습니다. 88년도에 계란 남아 돌았어요. 값도 무진장 쌌구요.
@이정우-v9t9l2 жыл бұрын
맞는 말씀이네요 ..계란말이가 맞있기는 했지만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해서 먹을수 있는 요리이고 나도 그때 고등학교 졸업을 할때라 80년대 중반에 계란값이 그렇게 비싸지 않았엇어요 계란한판값이 천원조금 넘었던걸로 기억이...그때 노동자 월급이 15만원 정도 였던걸로 생각되는데 지금 물가 상승률로 비교 해보면 계란값이 지금보다는 비쌌던걸로 기억되지만...계란이 귀해서 못먹을 정도는 아니었어요.
@張はな2 жыл бұрын
울 엄마 도시락에 매일 계란후라이~~선생님이 혼분식 도시락 검사했었는데...
@꼼장어-n6j Жыл бұрын
전두환 시절이 잴 살기 좋았음! 프로야구,가요제...둥 문화도 다양했고 산천방곡 활기 넘쳤움! 중산충 많아지던 시절
@이지현-s3i2 жыл бұрын
70년대에도 대한민국은 쌀밥걱정하는 가정 없던데요. 80년대 졸업식때는 졸업축하로 교문 앞에서 밀가루랑 날달걀을 교복에 던지던 시절도 있었지요.교복을 벗는다는 의미로요...
@이성철-v3p4 жыл бұрын
70년대에 도시 변두리 빈민촌에 가난하게 살면서 초중고등학교 다니고 80년대에 대학 나왔지만 배를 곪은 적도 없고 흰쌀밥 없어서 못먹은 날도 없었습니다
@ylogos7824 жыл бұрын
맞습니다. 저도 60년대 70년대 가난한 동네 가난한 집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지만.. 거의 쌀밥으로 먹었으며 자주 돼지고기 동태국 등으로 먹었습니다. 가끔 미군부대 꿀꿀이죽으로도 값싸게 먹고 살았습니다. 지금 보면 처음부터 북한은 김일성 정권이용수단으로 북녘동포들이 전쟁후부터 더 못먹고 못살았던겁니다.
@skymars20694 жыл бұрын
그래도 초등 학교땐 도시락 검사요.ㅋㅋㅋ.저희는 당시 아버님이 중앙부처 공무원이신지라(당시 공무원은 정말 앞뒤가 꽉 막힌..대신에 자부심도 남달랐고 일도 열심히 하셨고 단지 아무한테나 대충 반말...) 쌀을 정부미 사다 먹어서 쌀밥이 특별히 맛있었다는 기억은 별로요.ㅋㅋ
@user-rurallife4 жыл бұрын
62년 범띠 67년도엔가 개떡(보리나 밀기울로 만든 떡) 맛 있게 먹어 본 기억이 있네요.10년 전인가 6.25 때 먹던 떡이라 하여 전시회 열면서 개떡도 시식코너가 있어 먹어봤는데 껄끄러워 목으로 안 넘어가더라구요. 어렸을 때는 어떻게 이걸 맛있게 먹었지!
@김일성-j2j4 жыл бұрын
북한정권은 하루빨리 붕괴되어야 하는데, 같은 민족으로서 독재와 부폐의 사회에 살며 고통받는 인간들이 지구상에 같이 존재한다는게 비극입니다. 한반도의 통일은 남한의 평화통일은 개소리고 북한의 내부 쿠테타가 일어나길 기원합니다!
@user-st3fx5kq1h4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도 요즘 점점 북한화 되는것 같아요 아파트 사려고 하면 자금조달출처 조사하고 은행에 고액 입금하려면 어디서 났냐고 물어보더라구요; 제 기억엔 80년대가 제일 활기와 희망이 넘치고 사람들도 순수했것 같아 그리워요 참고로 저는 80년대 엄마가 도시락 싸기 귀찮을때는 학교에 롯데리아 햄버거 싸가지고 오시고 주변에 밥 굶거나 하는 친구는 본적이 없어요. 아빠도 좋은 차 자주 바꾸시고 브랜드 옷만 입고다녔어요 평범한 중산층이었어요
@김밤말4 жыл бұрын
1953년 휴전, 1960 419의거,1961 516군사혁명, 한국은 휴전후 미국의 안보도움, 일본의 경제기술 도움 덕으로 625전후부터 경제기적이 이루어져 나갔다. 경제성장 60 70년대 년 최고 13%세계최고였다.
@김정태-w4d4 жыл бұрын
@@김밤말 맞는 말씀입니다.
@jhp69594 жыл бұрын
맞아요, 80년대의 그 호황, 장사 잘되고 사람들도 활기차고, 온 도시,골목까지 흥청거리는듯한,그 시대느낌을 확실히 기억합니다.
@clarakim75873 жыл бұрын
그드라마는60년~70년사이모습이네요
@뿡뿡이-b3b2 жыл бұрын
1988드라마는 60년대 후반에서 70녠대 초반 정도 농촌에 살았는데 85년도에 집에 냉장고 세탁기 전화기 까스렌지 있었는데
@바다-x9b Жыл бұрын
80년대 한국은 모두 잘먹고 여유있게 열심히 행복하게 잘살았습니다. 우리 경제가 가장 성당한 시기였습니다. .
(댓글이 자꾸 없어져서 재업) 드라마 속 살림살이 등 소품을 보면 70년대에 가까워요 88년은 상당히 현대적인 모습이어서 지금 그 때로 돌아가서 살라고 해도 살 수 있을거 같음 그 때는 쌀밥이 문제가 아니라 밥 먹기 싫어서 과자, 떡볶이 같은 군것질로 끼니 때우고 밥 잘 안먹는다고 엄마한테 맞으면서 먹었던 기억이...토요일에는 후라이팬에 피자해먹고 ㅋㅋ
드라마1988은 드라마일뿐입니다. 나는 경상도의 대도시가아닌 소도시에 살았었는데 1950년대후반에서 1960년대중후반경엔 그드라마내용과 비슷한삶을 살았다고 할수가 있네요. 1988년도는 고도성장기였고 88올림픽을 치루었고 시골출신인 나는 그당시에 이미 대치동의 아파트에 중대형아파트에 살고있었음.
@장우일-p2d4 жыл бұрын
지금처럼 풍족하진 않아도 70년대에도 쌀밥을 먹었어요. 구멍가게에서 군것질도 하구요. 아!반상회도 있었군요. 그런데 빠져도 상관은 없었습니다.
@루돌프사슴코는빨간코4 жыл бұрын
70년대 국가에서 혼식을 장려했습니다 실제 도시락검사 가끔씩 했구요 80년대 들어와 혼식정책이 폐지되었습니다
@장우일-p2d4 жыл бұрын
@@루돌프사슴코는빨간코 쌀밥을 먹다가 혼식을 장려했죠. 이유는 보리 농사를 지어도 팔데가 없었서 어쩔수 없이 혼식을 장려한 겁니다.
@루돌프사슴코는빨간코4 жыл бұрын
@@장우일-p2d 제기억에는 77년도가되어 쌀이 자급자족 돤걸로 기억합니다 그전에는 쌀이 부족해 막걸리도 밀가루로 만들어 먹었으며 가정에서 쌀로 막걸리 못담궈 먹게 했습니다 막걸리 못담궈먹게 단속도 나오고 그랬구요 보리농사를 지었는데 보리쌀 팔데가 없어 혼식을 장려했다는 소리는 어불성설입니다 80년데 들어와 쌀의 과잉생산과 경제의 급속한 성장으로 보리쌀의 수요부족으로 자연 도태된겁니다.
@heavenhouselove4 жыл бұрын
@@장우일-p2d아 시브레 쌀이 모자라서 보리밥을 장려한 거여 70년대에 무슨 쌀밥을 먹어? 통일벼가 70년대 말에 보급되었는디
@한예슬-x3b3 жыл бұрын
70년대 초중반 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어요 팩트임...
@harunae74154 жыл бұрын
남한은 독재시절에도 북한같은 주민 감시는 없었습니다. 70년대까지도 쌀이 부족해 혼분식을 장려하긴 했어도, 쌀밥에 보리 등을 섞어 먹었을 뿐, 쌀밥을 못 먹지는 않았죠. 나라가 가난해서 해외여행은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여행의 자유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요. 현재의 북한은 한국의 50,60년대만도 못한 듯 합니다.
@호야-n9q5l4 жыл бұрын
86년 아시안, 88년에 올림픽을 했지요. 일본이 64년에... 올림픽은 대부분 나라가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면서 개최하지요. 이때 대한민국 국민소득이 약 5000불 정도였지요. 적지 않았지요. 88년도 대한민국은 잘 살았어요. 문제는 빈부 격차였지만요. 국민들은 너도나도 문화생활을 즐기면서 쌀밥과 각종 고기들로 배불리 먹었지요. 본격적으로 마이 카 시대로 접어들 때였구요. 강은정님과 김지영님이 함께 방송하니 너무 좋아요. 자유북한TV 자주 보지요. 강은정님은 참으로 효녀라고 생각하고, 김지영님의 스스럼 없는 웃음이 참 좋다고 생각했지요. 오늘 하루도 즐겁게 보내세요. 메리크리스마스!!~^^
@jinshoujeong10704 жыл бұрын
당시 국민소득 5천달러 조금 넘어습니다 1만불 시대는 그후 입니다
@호야-n9q5l4 жыл бұрын
@@jinshoujeong1070 맞아요... 그 당시 5000불은 적은 액수가 아니지요. 지금 2020년도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1400불 정도로 추정하니까요.
@jinshoujeong10704 жыл бұрын
@@호야-n9q5l 그렀죠. 당시 대만이6천5백으로 알고있습니다.
@hyungi49244 жыл бұрын
70년대도 쌀밥 먹었어요.
@봄이-u3b4 жыл бұрын
70년도 시골생활을 했시요 가난했지만 밥을못먹고 하지는 안했지요 먹는것은 풍족했시요 북한과 우리의 간난의 개념이 다르지 않을까 합니다
@김영진-s7b Жыл бұрын
은정아ㅡ60년대 쌀밥이었고 큰아버지는 잘사셨는데도 60년대부터 건강을 위해 콩밥 잡곡 섞어 먹으라고 훈계 자주 하셨지ㅡ큰집가면 콩 잡곡 섞은 밥 먹었다
@아는형님-i4u4 жыл бұрын
70년도에도 남한은 정상적으로 먹지못해 죽는사람은 없었습니다 ..............
@ch.mjim.s37244 жыл бұрын
2020년 현재도 한국은 연탄을 난방 연료로 하면서 달동네 연상시키는 분들이 극히 일부 있잖아요 이런것도 역사기록이라고 정부에서 영상기록을 해놀텐데요 먼 훗날 드라마나 다큐멘터리로 방송될 수 도 있거든요 그런 경우 이걸보고 한국의 2020년대는 연탄을 주된 난방연료 사용했다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거 참 뭐라고 해야 될까요? 2020년대 한국사회의 보편적인 모습은 아닐거 같은데요 ㅡ [7번국도] 옛날 티브이 - 80년대 스키장 풍경 MBC강원영동 (유투브) (대관령 기준으로 동쪽 영동지역/ 서쪽 춘천 원주 영서지역 )
@ch.mjim.s37244 жыл бұрын
80년대에 옆집사는 사람과 결혼하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힘들지 않나요 어쩌다 그런 사람도 있긴하겠지만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아주 드문 경우지요 80년대 한국사회의 보편적인은 모습은 아니잖아요 드라마와 현실은 다르지요
@송기성-l4c4 жыл бұрын
@@ch.mjim.s3724 먹을게 없서라기 보다 위에서 착취를 해야 믿에 사람이 못먹는거 같습니다 김정은 군부대 방문하면 있는거 없는거 없이 다나오고 나가면 다시 1년 365일염장무우에 강냉이 밥이지 않습니까
@감생이-s4g3 жыл бұрын
80년대 부산살았는데 이미 아파트에 살았어요 비록 15평 전세아파트지만. 직장생활했는데 퇴근후면 직장동료들과 소주한잔하고 기분좋으면 2차 3차에 나이트까지.... 80년대만해도 세월 좋았어요
@이상우-d5r4 жыл бұрын
88년도 서울에서 올림픽이 열렸습니다. 올림픽은 선진국이나 강대국에서만 열리는 스포츠 경기인데 못살았다면 어떻게 올림픽을 할수 있겠습니까.
@kjs69214 жыл бұрын
맞네요
@마리스텔라-c1y4 жыл бұрын
드라마 배경이 실제로는 60년대(제가 초등학생 시절)에나 있을법하던 상황이예요~~
@김형일-m3s4 жыл бұрын
@@마리스텔라-c1y 60년대가 아니라 그 주인공들 배경이 부유한 계층의 사람이 아니라 일반서민들의 삶을 그린거라 그렇게 보이는거죠..
@이호두-h8l4 жыл бұрын
@@김형일-m3s 일반 서민도 그렇게 안살았어요. 그시절 미아리 수유리 신당동꼭데기 살았거등요
@comocho66914 жыл бұрын
개발 도상국에서 개최된 최초의 올림픽이 서울 올림픽 입니다. 88년을 계기로 우리가 고도로 성장한거지 그당시 김포 공항에서 가는 길거리에 벽을 쳐서 판잣집을 숨기려 했던 적이 있습니다.
@대박템추천4 жыл бұрын
80년대에도 돼지고기 닭고기 소고기도 일반사람들 다먹었는데 무슨 계란이 귀함
@코스모스-l4l4 жыл бұрын
은정씨, 지영씨, 밝은모습 보기좋아요. 제가 지금 60대중반인데, 81년에 결혼을했어요. 시골출신이고 초등학교다닐때 중소도시로 이사와서 살았어요. 그런데 살면서 한번도 식량걱정은 해본적이 없어요. 81년에 결혼을 했는데, 응답하라 1988 보면서 드라마에 나오는 내용이 이해가 안갔습니다. 내가 보기는 드라마가 중산층이 아니라 어려운 동네를 기준으로 한것 같습니다. 마치 그시대에 중산층이 그정도인가 오해하는것같네요.
@angrylee77354 жыл бұрын
60년대에는 배고픈 사람이 많이 있었고, 70년도에는 배고픈 사람과 배부른 사람이 섞여 있었고, 80년도에는 대부분 배부르게 잘 먹었지요.
@kimdia20672 жыл бұрын
80년대가 살기 좋고 아름다운 시절이었죠~ 그때가 그립습니다^^
@user-gihm_lp9fm4 жыл бұрын
대학교 79학번으로 60여 년을 살아온 제가 보기에 드라마 '응답하라1988'은 실제로는 1970년대 초, 중반까지의 모습으로 판단 됩니다. 그 이후로는 드라마에서와 같은 삶의 모습은 거의 없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나 1986년 아시안 게임을 거쳐, 1988년은 서울올림픽이 개최되었던 해입니다. 70년대 고등학교 다닐 때도 애들 대부분 양은이나 스테인레스로 된 도시락 밥 위에 계란 후라이를 얹져 싸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도 잘 살지 못했는데도 거의 매일 반찬외에 밥 위에 요즘 스팸보다 고기질이 더 좋은 네모난 모양의 햄소세지를 후라이팬에 부쳐서 밥 위에 얹져 싸갖고 다녔습니다. 드라마가 시대를 너무 뒤에 두었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무한불성-k7t4 жыл бұрын
저도 79학번인데 말씀에 동감합니다. 1988드라마가 제목은 80년대이지만 실상은 60년대 후반이나 70년대 초를 배경으로 만든거 같습니다.
@user-gihm_lp9fm4 жыл бұрын
@@무한불성-k7t 반갑습니다. Happy new year!!
@herenow14672 жыл бұрын
그렇군요. 저는 74년 생인대 드라마 보면서 우리집이 부자였나... 이상하다... 했네요 ㅎㅎㅎ
@heaven-qn3lq2 жыл бұрын
78학번이 제가 보기에도 그정도 로 낙후되었던 기억은 아닙니다 제가 중학교 다닐때 여의도 개발 해서 대단지 아파트가 생겼지요
@user-gihm_lp9fm2 жыл бұрын
@@heaven-qn3lq 시범아파트는 더 오래 되어ㅓㅆ지만, 76, 7년도 쯤에 삼부아파트, 서울아파트가 건설 된 것으로 기억합니다.
@현호최-y1q2 жыл бұрын
제가 50년도 생인데 60년대에도 각 마을에 논들이 30마지기 정도는 짖고있어 1년에 50가마 정도는 수확을 하고있어 시장에 내다팔고 일년먹을 양식 열가마 정도만 놓아놓고 일년농사짖고 밥은 싫도록 먹고 살았어요
@새싹보리와러블리는한4 жыл бұрын
1남 3녀중 막내로 서울 출생 입니다. 저는 부자로 살지 않은것 같은데 나라가 북한과 비교해 볼때 그보다 못살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왜들 그렇게 탈북민들은 한국과 북한의 경제를 비교하는걸 일삼는지 그런 쓸데없는 그들만의 말씨름에 우리도 북한처럼 못살았네 똑같네 등 말장구를 쳐주는지 모르겠지만 1961년 생으로써 지금의 북한의 모습보다도 60년대 후반에도 한국이 더 여유로운 삶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으며 우리집은 부자로 여유있는 삶은 아니였다는것을 다시 한번 말씀 드리고 드라마 장면 하나에 ㅡ 물론 시대를 대변하고 있지만 그게 현실 전부가 아니 라는것만 말씀 드립니다 .
@경은-q2l Жыл бұрын
네 맞습니다 ㆍ저도 비슷한시기 충청도 시골에서 살았는데 배고프게는 안살았어요 ㆍ저희집은 아버지가 아프셔서 가난한 측에 속했는데 ㆍ흰쌀밥만 먹은건 아니고 보리를 섞어서 ㆍ그래도 배는 안고팠답니다
@이름모를소녀-i6j4 жыл бұрын
73년생으로서............쌀밥에 괴깃국 먹고 자랐씨요~!!!!!!^^ 79년에 돈까스 먹고...80년대....롯데리아 이용했씨요~!!!!!^^ 기냥....씁니다...... ㅎ~~ 인터넷에서 80년대 치면 동영상,사진,기사등 자료 꽤~나올껀데.......1988은 드라마라...80년대를 안다고 하기엔 부족하죠....^^ 덕선이 계란후라이 이야긴 60년대 이야기...^^
@somangg14064 жыл бұрын
80년대는 모든 국민이 쌀밥 먹던 시대. 68년 시골출생인데 보리밥 먹은 기억이 없네요 80년대 후반에는 보통국민들 자가용 타던 시대입니다.
@alphacentauri67613 жыл бұрын
80년대 후반부터 마이카 붐이 일었죠...물론 아무나 자가용 타던 시기는 아니었지만 도시중산층 사이에 붐이 일었죠...
@meunggeunsong28743 жыл бұрын
@@24ca80 88년을 기점으로 폭팔적으로 개인자동차가 늘었습니다. 90년대 초에 들어서는 대학생이 학교에 차몰고와서 문제라고 뉴스에 나왔고, 오렌지족이야기가 나올때죠.
@유수김-c1t2 жыл бұрын
토크 너무 재미 있습니다. 1988 드라마가 우리의 옛날 모습입니다. 사실은 아파트도 이사를 하면 이웃집에 떡을 돌려서 인사 하는 것이 기본 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하는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가 너무 풍족해서 오히려 떡을 돌리는 것이 이웃집을 불편하게 하는것 같아서 안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립습니다. 맛있는 것을 돌리면 받는 사람이 고맙게 생각 해야 하는데 더 맛있는 것이 너무 많으니까 오히려 귀찮게 생각 할수 있으니까 못돌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옆집과 소원해 지는거죠. 어떤면에서는 어쩔수 없는 슬픈 현상 이죠.. 두분은 그런 마음을 계속 가져가시는 것이 좋습니다.
@안예진-u4h4 жыл бұрын
응답하라1988 서울 젤 언덕 달동네를 기준으로 만들어진 드라마 입니다 그당시에도 시내쪽은 지금이나 별 차이 없이 잘 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jinshoujeong10704 жыл бұрын
그렇죠. 쌍문동은 변두리죠 저는 정릉에 살았습니다.
@ohmytrance4 жыл бұрын
지하철 종점도 창동인가 그랫는데 진짜 지방느낌 낫는데 ㅎㅎ
@Trisonss4 жыл бұрын
응8은 변두리 였던 서민들의 삶을 담은 훈훈한 이야기입니다 80년 초반부터 해외유학을 허용해서 해외유학생들이 많이 공부하러 미국영국으로 갔었고 청바지에 팝 뮤직들고 MT 놀러가며 고층아파트 거주의 시작입니다
@티파니-y2y3 жыл бұрын
@@Trisonss 80년 전부터 유학자유롭게 갔었는데요?
@티파니-y2y3 жыл бұрын
80년대에 계란이 귀했다면 전체가 그런게 아니고 많이 못사는 집이었네요 우리는 라면 먹을 때도 꼭 계란 넣었고 삶아 먹는것도 후라이도 잘해 먹었는데~ 밥맛 없을때 계란 반숙하고 참기름 양조간장에 비벼먹으면 밥한그릇 뚝딱했어요 덕선이 아빠가 은행 다녔으면 어렵지는 않았는데 드라마니까ㅋ
80년대는 하루자고 일어나면 빌딩이 우후죽순처럼 들어서고 최대 성장기입니다 삼겹살 문화가 처음 도입된시기라 건강을 지금처럼 신경 안쓰고 자주 술과 고기를 먹고 노래 기타치던 청바지 시대입니다 80년대는 빈부격차가 심히지 않고 중산층이 가장 많은..... 먹거리 볼거리가 풍성한 때입니다
@user-q3894 жыл бұрын
지금 횟감 비싸잖아요? 80년대는 돈 만원들고 어시장에가서 대아에 아주머니들 파는 고기 한마리씩 천원에 한?다섯마리 사고 2천원 주고 상추 깻잎에 초장 사고 3천원 주고 가게 들가면 고기 회쳐주고 술한잔하고 회다먹으면 매운탕도 나오고 돈 만원이 가치가 있었음
70년대에도 쌀밥 먹었어요. 그땐 아파트가 없을때니 이웃들과 정 스럽게 지내며 살았죠. 1988은 더 못살게 그려진거예요.
@sunghyukpark49464 жыл бұрын
80년대가 아니고 68년도 무장공비 사건이 있을때도 남한이 경제적으로 앞서 있었고 74년도 남북공동성명 발표할 때도 북한측에서 남한을 방문했을때 북한 기자가 깜짝 놀라며 일본 같다고 했지요 우스운건 호텔입구에 도착해서 북한 대표단들이 신발벗고 들어가서 우리측에서 신발 벗는거 아니라고 가르쳐 줬지요 후담에 일본같다고 했던 기자가 숙청됐다고 합니다
@사랑행복사랑축복4 жыл бұрын
아이고 불쌍한기자 속으로 말 못하고 그말한마디에 숙청이라니
@SNIPER-XYZ4 жыл бұрын
말한마디로 숙청당하는 나라라니..
@김뮤뮤-n3g4 жыл бұрын
북한을 경제적으로 앞선게, 박정희 대통령이 65년부터 산업화를 진행해서 대충 70년대 초반정도 될꺼예요. 압도적으로 앞선건 80년대 초반부터이구요. 애초에 북한이 남한보다 경제적으로 괜찮았던건 체제때문이 아니라, 구소련의 전폭적인 지원때문이었거든요. 그리고 일본제국 시절 중국을 정벌하기 위해서 북한쪽에 군수 산업시설들을 대량 지어 놓았는데 그걸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미국이 북한지역을 점령했을때 일제때 지어 놓은 비료 공장의 규모를 보고 입이 떡 벌어졌다고 하죠. 비료공장은 화학산업으로 연결이 되거든요. 암튼, 북한이나 쿠바등등이 무너진건 소련이 해체되면서 부터예요. 더이상 무상 석유같은게 없어졌거든요.
@injo3414 жыл бұрын
@@김뮤뮤-n3g 그 소련의 공산주의체제가 해체된게 한국의 성공적인 88올림픽과 경제성장 덕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전쟁으로 최고로가난했던 나라가 불가능해 보이던 자유민주주의 경제체제로 단시간에 성공해내 공산주의 사회주의자들의 생각이 바뀐 계기가 됐다고요...
@meunggeunsong28743 жыл бұрын
@@injo341 그때도 사실 소련의 경제 엉망이었지만 마지막으로 결정타를 맞은게. 체르노빌원전폭발사고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종주국의 마지막여력을 몽땅빨아먹어서 소련자체가 부도가 나버렸죠.
나도 80년대 학교다닐때 항상 엄마께서 도시락 흰쌀밥에 계란후라이 하나 올려주셨지.. 반찬은 두가지
@서혜정-l1w Жыл бұрын
80년대 역동적이었지.열심히들 살았다샴페인 너무일찍터트려. 조금힘들었지만 지금보다지금보다는 그때가 더좋았던거 같네.
@kevinkim31504 жыл бұрын
우리나라 1980년대는 정말 고도 성장 시기죠 대학 4년 졸업전에 거의 취업에다 취업후 5년동안 열심히해서 은행대출 해서 자기집도 살수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없고 살기 좋은 시절입니다
@감생이-s4g3 жыл бұрын
맞아요 나는 군대제대하고 3학년에 복학하여 1976년2월에 졸업하면서도 이미 1975년11월에 직장되어 출근하고있었지요 그때는 박정희시대라 고도성장시대였지요 취직도 잘되었고 열심히 저축하면 은행빛내어 집도 사고 세월좋았지요 그기다 퇴근후에는 직장동료들과 한잔 쭈~욱 제끼는 맛이 사는맛 그게 아닐까요?
@meunggeunsong28743 жыл бұрын
당시에 두달 월급 받아서 집한채씩 사던분도 계셨죠. 특히 무역쪽이나 배타시던 분들 어마어마했습니다.
@지구별여행자-c2s4 жыл бұрын
1인당 국민소득은 1960년대 중반에 남한이 북한을 앞질렀습니다. 하지만...1950년대 1960년대 초반에도 경제규모는 남한이 인구가 훨씬 많아서 더 컸어요.
@ylogos7824 жыл бұрын
잘 생각해보면 남북 모두 전쟁으로 황폐화 되었고 북한에 중공업공장 몇개 남았다해도.. 유엔에서 식량과 전후복구지원으로 논 밭 등 곡물생산이 남쪽이 훨씬 많았고.. 북은 허구의 지표를 낸것으로 봐서는 전쟁후 부터 남이 북보다 훨씬 사정이 낫다고 봅니다.
@문성인-y7d4 жыл бұрын
@@ylogos782 ㄱ
@jhya12083 жыл бұрын
@@ylogos782 6.25 전후 복구시에, 북한에는 중국, 소련등의 지원과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지원을 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북한의 전후 복구 사정이 좋았다고 합니다.
@meunggeunsong28743 жыл бұрын
@@ylogos782 전후 4-5년간은 정말 사정이 안 좋아서 배급소 운영했었습니다.
@산파람2 жыл бұрын
@@ylogos782 지표는 허구가 맞는 것 같고, 그럼에도 소련이 전폭적인 원조로 남한 보다 먹고 사는 것은 잘산듯!
@박토리-s5e4 жыл бұрын
80년대 우리나라는 국운이 승천하던 시절이었죠. 자유가 넘치고 경제초호황에 88올림픽 개최,서민물가가 안정되어 취업잘되던 시절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younghan3294 жыл бұрын
60년대에도 쌀밥은 먹었습니다.
@소라.진영이4 жыл бұрын
한국도 지금에북한생활 다겱고 지나온과정입니다
@해달별로윤3 жыл бұрын
저는 50대 후반이고 서울에서 태어났는데 6-70년대에도 쌀밥이었어요
@sgs66694 жыл бұрын
못살았다는 80년대 그냥 하는 소리겠죠 올림픽과 아시안게임 개최한 시대인데 ..
@daks-sar85344 жыл бұрын
응 못살았어.. 내가 80년생인데.. 나 10살때까지만 해도 바나나는 이모나 사촌누나 월급날때나 먹던거였다.. 지금은 끼니때마다 고기반찬 안올라오는게 이상한거지만.. 그때는 일주일에 고기 한번 먹을까말까였다.
@켄신-w9c4 жыл бұрын
@@daks-sar8534 그냥 니네집이 못살았네.
@daks-sar85344 жыл бұрын
@@켄신-w9c 니네집은 잘살았냥?
@켄신-w9c4 жыл бұрын
@@daks-sar8534 80년생이 바나나 제대로 못먹었으면 냥 니네집이 거지였어.니가 10살때는 이미 한국은 80년대 후반인데 바나나를 못먹었다니 참 깡촌 시골에 살았나보네.
@Freedom-o8m3 жыл бұрын
@@daks-sar8534 바나나 한개 500원 하던 시절이라 비싼건 맞어요. 그런데 쭈쭈바나 새우깡 50원에서 100원으로 인상되는 시기니깐 지금 느낌으로는 바나나가 한개에 약 3000원 느낌이고 명동에 바나나라고 한개씩 팔던시기여서 엄마들이 애들이 사달라고 하면 사주던 시기에요.
@엑스칼리버-m8v4 жыл бұрын
부산 도시 토박이 입니다. 서면근처에서 1980년대에 살았는데 지방이라도 응팔 쌍문동은 저희 1970년대에 더 가까운 분위기 입니다. 좀더 가난하게 묘사되지 않았나 싶네요
@borntosingsing2833 жыл бұрын
쌍문동은 서울에서도 가장 변방이니까요. 도봉산 산자락 아래 쌍문동. 오징어게임 주인공들도 쌍문동 출신들인데.. 다들 부유하지는 않음. 부산으로치면 금정산 산자락 아래 남산동 부잣집 근처 말고, 금정산 북쪽 산아래 느낌이랄까요..
@산파람2 жыл бұрын
아니 서면 살고, 안서면 죽나요 하던 시절인데!
@billybat2984 жыл бұрын
제가 60년생인데 어릴때도 어른들 쌀걱정은 본적이 없는거같아요.물론 70년대엔 학교 에서 사랑의쌀이라는걸 걷긴했지만.. 극히 일부였고 식량걱정은 이미 70년 전후로 거의 타파한걸로 기억함. 드라마1988은 감성자극을 위해 70년대 배경을 많이쓴듯 보입니다. 88올림픽전후론 이미 마이카시대에 돌입 했을때인데..
@andong32694 жыл бұрын
동갑이네요 70년대 시골에서도 쌀은 있는데 보리밥먹었죠 학교에 100프로 쌀밥 도시락 가져가면 흰쌀밥 가져왔다가 엄청맞은기억이 나네요.🤣
@권정미니3 жыл бұрын
제가 80년대생인데도 사랑의쌀은 그때도 걷었습니다 지금도 소외계층 힘든사람 많습니다 운동선수들이 연말에 괸히 사랑의 연탄배달 하는게 아니죠
@산파람2 жыл бұрын
@@andong3269 그렇다고 엄창 맞았다니, 그런 새끼를 선생이라 할 수 있나요?
@옛사랑-r7k2 жыл бұрын
@@산파람 그시절엔 잡곡밥 먹는게 정책으로 되있어서 학교에서 도시락 검사했어요. 부잣집에선 도시락 위에만 살짝 잡곡울 덮어서 가져왔던걸 봤네요 ㅎㅎ
63년도 태어났고 가난한 편에 속했던거 같은데 쌀과 보리를 반반 섞은 밥 먹고 자랐고 군이 아닌 시에서 자라서 인지 내가 기억하는 내내 아궁이 불을 지핀게 아니고 연탄을 사용해서 난방을하고 밥도 하고 연탄 이제 막 갈고 나면 불이 약할때는 보조로 석유곤로가 있어서 그 석유곤로로 밥을 했었지요. 60~70년대에 어려웠지 80년대엔 그래도 많이 좋아졌던 때 같네요.88년도엔 올림픽을 할 때니까 그래도 어렵지는 않았어요.
@김태원-k3o4 жыл бұрын
제가 63년생이라 이분 말이 정확합니다.
@CocoHappyBear4 жыл бұрын
맞아요 64년생인데 서울 80년도 그시절 참 좋았어요
@ogogari4 жыл бұрын
ㅎㅎ 토끼다 토, 가튼... 고구마로 점심 때우고 나무하러 갑니다 오는 길에 꿩이나 토끼라도 한마리 잡아 오면 좋겠는데.... 70년대 궁민 학교시절 촌에서 겨울에는 나무하러 싸 댕겼네요 남한도 시와 촌 수준이 좀 달랐군요 미안해 해 주시면 그 미안함 고맙게 받겠습니다 ㅎ
@산파람2 жыл бұрын
@@ogogari 미안 한 사라에 얼마? 나는 셋방살이로, 무너져 가는 판자집이여도 마이홈 그게 어디임! 자각 합시다.
@이진숙-y3g2 жыл бұрын
1988그 드라마는 가난한 서민층이 배경입니다 70년대도 다 밥먹고 살았습니다
@금비-g8i4 жыл бұрын
80년대 넉넉하게 살었어요. 88올림픽 준비하면서 경제가 초고속으로 성장했어요 1990년대까지 급성장 한거에요. 그때 강은정씨가 한국에 없었다는게 안타깝네요. 돈 엄청 벌었을건데. .
@jeongyoon68943 жыл бұрын
80년대는 이미 잘살던 시대인데. 응답하라는 70년대 후반모습. 울집은 스텔라 승용차도 있었고 .그냥 보통 가정이었는데 ?
한국은 60년대까진 힘들었지만 쌀밥 못먹을정도는 아니였네요 80년대야 잘 살았으니 쌀밥이 뭐예요 그때부턴 거의 다 잘살았죠
@기둥뿌리4 жыл бұрын
80년대 시골과 도시에 살은 사람들중에 각자의 개인 입장있겠지만 60년대부터 제가살던 서울은 비포장도없었고 밥못먹은적은 없었던같습니다...대한민국은 1988서울올림픽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경제급성장을 했습니다...IMF때 잠깐빼구요......응답하라 1988보면 많이상당히 굉장히 고전적으로 드라마를 찍었는데 실제 1988년은 응팔보다 훨씬 더 발전하고 더 세련되었어요.....드라마를 너무 회화적으로 표현한거 같습니다...응팔배경이나 내용보면 70년대 초반 분위기 입니다..은정씨,지영씨 즐거운 성탄절되시고 재미지게 보내세요~~~
@jhp69594 жыл бұрын
지역별로 차이는 있을듯한데, 가난한 동네로 갈수록 옛느낌이 났던것은 맞는듯 합니다.
@CharMing-f3i4 жыл бұрын
지금은 북한이랑 한국을 비교하는건 아프리카 우간다사람이 미국에 와서 우간다와미국 비교하는것이랑 같슴다 ㅋㅋㅋ 지금은 아프리카 우간다보다 북한이 못함 ㅋㅋ
@부엉이형-r8t4 жыл бұрын
경상도 지방에 사는데 80년대 후반에도 비포장 도로있는곳 많았음
@또치마대3 жыл бұрын
충청도도 시골엔 비포장 많았슈 ㅋㅋ
@감생이-s4g3 жыл бұрын
드라마 재미있게하려고 너무 가난하게 보이게했어요 드라마보면 80년대가 아니라 60년대 후반같아요
@잔너비2 жыл бұрын
저도 68생 시골 태생인데 어릴적 먹는거는 구애받지않고 잘 먹고 잘 자랐습니다
@___-et8dr4 жыл бұрын
80년대 보리밥 먹었다 !!! 건강에 좋다고 해서~ ㅋㅋ
@김종운-x8h2 жыл бұрын
이쁜지영씨와똑소리나는효녀은정씨가같이있으니잘어울려요
@morningstar00104 жыл бұрын
제가 어렸던 70년대 초반에도 주변에 쌀밥 못먹는 사람은 없었어요. 요즘처럼 좋은반찬이나 고기는 지금처럼 자주먹지는 못했지만요.70년대 까지는 사회가 좀 어려운면이 있었는데 80년대 부터는 6,70년대들의 성과가 나타나는듯 많이 좋아졌던 기억이 있읍니다.
@dehwankim22692 жыл бұрын
70년대면 한가정에 자녀가 기본 3명에 4, 5명도 많아 입이 지금보다는 아주 월등히 많았는데 지금같이 좋은 반찬을 먹을 수는 없죠..지금은 부자라고 해도 자녀 두 명 이상은 꿈도 못꾸는 시절입니다..물론 무식한 사람이 자식은 많이 낳더군요..
@대한민국-g4f2 жыл бұрын
@@dehwankim2269 네네 그때는 다들 어려웠지요 지나고보니까 추억이 되었지요
@dehwankim22692 жыл бұрын
@@대한민국-g4f 지금은 그때 보다도 정말 어려운 시절인데요 ? 오죽했으면 신생아 숫자가 겨우 25만도 안될까 ? ㅎㅎ
@수윤이 Жыл бұрын
그 드라마는 70년대 우리나라 모습 입니다 80년대는 전두환대통령 시절 모두가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며 풍요럽게 살았습니다 그 드라마는 향수를 자극하며 만든겁니다
저는 좌파는 아니지만 우파들이 박정희를 영웅시하고 치켜세우는 짓을 보면 한숨이 나옵니다. 한국 경제성장의 뒷편에는 님과 같은 분들의 피와 눈물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된다고 다시 통감합니다.
@전대근-r8b4 жыл бұрын
지도자 중요해요 북과 남이 유전자는 같은데 님이 이상하네요 북주민도 일 많이 합니다 결과는?
@김형일-m3s4 жыл бұрын
@@jalopy2005 시대적인 배경도 생각해야죠 ..지금처럼 민주화가 이루어지던 시절과 똑같이 생각하면 안됩니다.. 지금의 좌파분들은 현제와 과거의 배경을 동일시 하니깐 박정희를 독제자 살인자 취급하는거죠.... 강압적이던 뭐든 지금의 토대를 만든건 맞다고 봅니다..
@무한불성-k7t4 жыл бұрын
@@jalopy2005 아버지를 잘못 만나면 자식이 고생하듯 지도자를 잘못만나면 국민이 고생함. 같은 민족인데 북한이 못사는건 김일성 때문인데 박정희의 공이 아니라 우리국민이 잘해서 우리나라가 발전했다고 선동하는게 좌파임. 당시 살아보지도 않고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선동돼 박대통령의 공을 폄하함.
@yedhywi40474 жыл бұрын
@@jalopy2005 아직도 이런 한심한 인간이 있네요. 탈북민들의 북한 생활을 들으면서도 박정희대통령을 폄하하는 너는 김일성 독재정권에서 살아봐야 정신차릴려나.
@최영숙-j4m4 жыл бұрын
힘들게와서 적응하고 잘 사시니고맙습니다
@번개-r9g4 жыл бұрын
1988년이면 남한은 자동차를 제외한 모든 중화학 산업에서 세계를 주름잡던 시절입니다 ! 아직 품질보다는 가격면에서 경쟁력이 막강하던 시절이지만 티비 전자레인지 비디오 냉장고 등 , 대부분의 전자제품이 세계를 장악하뎐 시절이었고 철강 조선 건설 등등의 산업은 세계 톱클라스였던 시절입니다 ! 강남은 화려한 건물들로 꽉 찼었고 강북은 아파트 단지 개발이 한창이었죠 ! 7년후인 1995년에는 국민소득 만달러(지금 가치로 2만 달러)를 돌파하고 모든 첨단산업들이 세계 톱클라스에 오르면서 국제 경제 기구들로부터 선진국 인증을 받습니다 ! 1988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서울토박이 60 대인 내가 보기엔 그 드라마는 서울 영세민 배경으로 만든거 같습니다 ! 1990 년경까지 강북은 대부분 지역에서 연탄에서 보일러로 교체되었읍니다 ! 참고로 1988년부터 마이카 시대가 시작됩니다 !
@김형일-m3s4 жыл бұрын
88년도면 시골에도 기름보일러 들어오던 시절입니다..
@정창훈-k5i4 жыл бұрын
1985년 세계경제15위진입 그후 인구많은 나라가 앞서가고 10위권 비슷한 인구 국가는 우리뒤로가고
@sunnym2964 жыл бұрын
드라마를 안보셔서 그래요. 계란 이야기는 주인공 아버지가 친구 보증을 섰다가 대신 빚을 갚게 되어 월급을 차압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생활비를 아끼는 중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또한 드라마는 서울 중심에서부터 시작한 도시 재개발이 거의 막바지에 이른 상황에서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기 전의 동네 사람들이 살던 모습을 그린 것입니다. 이제는 사라진 이웃사촌문화를 그려낸 것이라 보여집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주인공 집이 밥을 못먹지도 않아요. 다만 갈비찜, 통닭 등과 같이 집안 형편상 풍족하게 먹지 못하는 음식들에 대한 주인공의 식탐이 재미있게 표현되고 있을 뿐입니다.
@갈매나무-y2o4 жыл бұрын
88년에 계란을 못먹지는 않았습니다. 극중 덕선이네 아빠도 한일은행 과장이라 그 정도의 여유는 있는 집인데 보증 잘못서서 빛더미에 앉아서 그렇게 산 것이지요. 나는 촌놈인데 70년대 삶의 모습이 아마도 지금의 평양을 제외한 북의 모습이지 않겠나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기차 화차에 올라타거나 달리는 트럭이 사람도 운송하는 지경은 아니었습니다.
@행복한날2 жыл бұрын
1988의 생활수준은 십년은 뒤로 맞추는게 더 맞을것 같네요. 그시대를 산 사람으로서 ..
@jeongyoon68943 жыл бұрын
79년에 결혼 혼수품으로 냉장고 .세탁기 다 해서 갔는데? 삼성냉장고 220 리터짜리와 세탁기와 탈수기가 합체된 거
@김석-d9t4 жыл бұрын
70년대에도 흰쌀 밥을 먹을 수 있었는데 흰쌀 밥을 먹을 수 있었던건 밥대신 빵을 먹자고 정부에서 캠페인을 벌였기 때문이죠. 정부가 만든 표어 중에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 꼴 못면한다'는 표어도 있었고, 쌀 하고 보리 비율이 7:3 이어야 했구요. 선생님이 점심시간에 돌아다니면서 도시락 검사 하더랬죠.
@김경현-q1d4 жыл бұрын
맞아요!! 은정씨 방송을 통해서 추억 여행을 하네요
@ysms22332 жыл бұрын
시골 산골 초딩시절 80년대 흔하디 흔한게 계란이었음. 초딩시절 반찬이 거의 계란후라이나 계란말이 였음ㅠ 지겹도록 먹던게 콩나물과 두부 계란이었음ㅠ
@박섭치4 жыл бұрын
80년대는 김영란법 없었어요. 당시 선생님 도시락은 반장이나 부반장 학생의 집에서 주로 감당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우보호보 Жыл бұрын
60년대에도 쌀밥 먹었어요 논 한 평 없이 살았어도 진짜 쌀밥 먹었지요
@user4421_lin4 жыл бұрын
아, 옛날이 그립다~~
@김태원-k3o4 жыл бұрын
보니... 북한은 참... 웃기는 곳이군요.. 내가 내 노동으로 잘먹고 잘사는게 왜 감시의 대상이 되는지? 우리나라는 잘먹고 잘사는게 자랑이지 감시 받을 일이 아니죠... 잘먹고 잘 사는게 애국입니다. 그리고 계란반찬이 귀했던건 1970년대 이야기고 1980년대는 아닙니다.. 드라마에 사실과 다른게 좀 있더군요.
@우스우-v6y4 жыл бұрын
지금 당연시 하는자유 이걸 만든게 이승만 이고 배고픔을 잊게 한게 박정희 이죠. 그저는 없지요.
@sangheepark69774 жыл бұрын
70년대 초는 학교 도시락 잡곡 혼식장려 정책을 했지만 중반 이후로는 없어져 쌀밥만 먹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80년대는 풍요로워져 역대16개국에서만 개최한 올림픽 까지했으니 북한은 이미 그때부터 남한과 엄청난 차이가 났다고보면 됩니다
@굼뱅이-e7f4 жыл бұрын
연탄은 육십년도 에도 대다수가 사용 했음 시골에산 우리집도 연탄이였이 였어요
@빛과소금-w7o4 жыл бұрын
70년생,시골 출신이지만,88드라마는 아주 서민적인 모습을 그리다보니,그 당시 시대상을 정확하게 반영하지못함.88년 올림픽때 컬러TV로 방송을 보며,맥주집에서 맥주마시고,놀던 추억을 생각하면 드라마보다 더 보통 서민들도 잘 살았음.연탄은 그때 대부분 사용했으니,그건 정확한 반영이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