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보는데, 사장님이 다른 막걸리는 90%가 밀가루로 만든다고 하시길레. 그래서 집에있는 막걸리 보니까 재료가 쌀이네요. 밀가루로 막걸리 만들던건 옛날 얘기고 지금은 모두 쌀로 만드는 거로 알고 있었는데 그말 듣고 놀랐습니다. 어쨌건 가짜뉴스 하면 안됩니다. 부자되세요!
백걸리가 끝맛이 엿기름맛이 나는게 해창이랑 느낌이 비슷하긴해요 근데이거 너무 취향타는듯 백걸리보단 느린마을이 더 맛있는 사람은 해창보단 우곡생주나 담은막걸리가 나음..
@smghdhd3 ай бұрын
차에 비유하자면 쏘나타를 제네시스g80, 롤스로이스 가격에 파는 거죠. 그래서 그런지 영업이익률이 엄청남 ㅋㅋ. 판매전략 대단합니다.
@jihoon190 Жыл бұрын
사장님 손목에 파네라이 골드가 똭!!!!!강렬하네요
@나비효과-f3l Жыл бұрын
3:54 막걸리 재료를 좋은걸 쓰신듯.. 맛이 궁금.. 이마트가면 찾아봐야겠네요
@Haechoolonline Жыл бұрын
차원이 다릅니다
@위환-f1h Жыл бұрын
좋은 막걸리 만들어주시어 고맙습니다 ♡
@뚱가리-n7i Жыл бұрын
막걸른 막주가 이리 비싼가요??증류도 하지않아서 한계가 분명 있을거 같은데
@michaelcho80410 ай бұрын
막걸리 배우고싶음. 공장 해보고 싶네 한김에 막걸리 식초 공장도 해 보고싶음
@형승최-t7g Жыл бұрын
해창막걸리응원합니다
@경선채-n8c Жыл бұрын
대표님이 인성이 좋아보이시네요 돈받이 버세요
@yoon051825 күн бұрын
뇌절은 하지 마세요!!!!ㅠㅠ 아폴론은 진짜 아무리 봐도 뇌절이애요ㅠㅠㅠㅠㅠㅠㅠㅠ 12도 까지가 적당하고 좀 고가전략 나가고 싶우시다면 18도까진 인졍해드리고 싶어요! 일단 해창 12도가 진짜 너어어어어무 막있고 인생 막걸기라서 나오는 말씀입니다!! 아무런 논란 없이 이런 훌륭한 막걸리 평생 만들어 주시길…
@春來不似春3 ай бұрын
사장님 배가 예전보다 홀쭉 해지셨네요 ㅎㅎ 10년 전부터 단골 지금은 해남농협에서 6도 사가지고 가서 주조장 가본지 오랜된 것 같아요 코로나 이후 시음을 안해서 사장님이 반가워하고 술도 잘 챙겨주셨는데 시음하니 조만간 한번 찾아뵙겠습니다 예전에 시음한 보리소주 전통주는 완성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사장님 술 조금만 드시고 건강하세요 해창 사장님 엄청 말술입니다 예전에 같이 대작하여 죽을뻔했습니다 ㅎㅎ
맛은 있습니다! 근데 개인적으로 저 가격에 또 사서 먹기는 망설여지더군요. 첫 병이 마지막 병이 될듯 싶습니다. 차라리 저한텐 저 돈으로 맥주를 더 사서 마시는 게 만족도가 높음!
@soonshin-sam-kwon Жыл бұрын
해창 응원합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 혹은 부정적인 사람들 의견 흘려들으시고 좋은 막걸리 계속 만들어주세요.
@user-rk9np3yi3h Жыл бұрын
해남좋아합니다
@로니콜먼포에버Ай бұрын
전라남도 욕먹이는 짓이다 저딴걸 12만원이라는게 이 댓글알바 씹새끼야
@임강봉 Жыл бұрын
프라이드가 대단하심 해창과 나머지막걸리~~❤
@최미자-y8r Жыл бұрын
최고다
@hahahoho19792 ай бұрын
오바이십니다. 지금 해창막걸리 마시고 있지만 저와는 맞지 않네요. 너무 걸죽해서 금방 배불러버리네요. 저는 그냥 서울 장수막걸리가 딱입니다. 아! 진천의 덕산주조 막거리가 제 인생 막걸리네요. 예전에 회사가 근처에 있어서 행사만 하면 덕산주조 막걸리를 말통으로 받아서 마셨던 기억이 있습니다. 덕산주조는 허영만 식객에도 나오죠.
@근거있는희망4 ай бұрын
한번 먹어보겠습니다. 주세는좀 떨어졌는지?
@코난-w4c Жыл бұрын
저는 양조장에 직접 가서 사서 먹었는데, 지금까지 마셔본 막걸리하고 차원이 달맀어요. 그런데 이틀 놓아두니, 막걸리가 걸죽해지면 맛이 떨어지는것 같더라구요.
@웃자-j4h7 ай бұрын
어떤 막걸리던 양조장에서 갓나온 막걸리가 제일 맛있어요
@heychris475Ай бұрын
해창렬막걸리
@중딩오빠0428 Жыл бұрын
지금 마시고 있는데 진짜 너무 맛있어요!! 좋은술 감사합니다!
@수막새-j1s5 ай бұрын
명주의 기준은 예술과 인생을 논할 수 있는 신명은 올리되 자연물에 가까워 과음되지 아니하며 견공이 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해창 6도가 9도, 12도 대비하여 훨씬 품이 높고 일정한 취기로 과하지 않은 흥과 대화를 이끌게 함에 무척 놀랐던 해창 6도와의 첫대면 기억이 새롭습니다\(^_^)/
@임영철-o9h Жыл бұрын
50,60,70년도까지 막거리맛 👍 최고😂
@manhyunchoi2902 Жыл бұрын
70년대 막걸리는 전부 밀가루 막걸리였어요. 60년대껀 안먹어부ㅏ서 모르겠고, 70년대 막걸리가 맛맀었다는건 저도 인정 ㅎㅎ
해창리 인근소재했던 삼화초는 1950년 6월 삼산 원진리 수림마을에 삼화국민학교라는 명칭으로 개교해 1984년 병설유치원을 개설했다. 1996년 3월 삼화초등학교로 개명한 후 2000년 9월 학생수의 급감으로 삼산초등학교 삼화분교로 격하됐다가 2002년 3월 삼산초등학교에 통합되기까지 47회 2682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해창리 한 마을 친구들이 매년 50명이상 입학함. 거의 1개반 구성
예전에 전라도 광주 태생으로 어떤 형님을 알게 되었었는데 그 분은 현미로만 감미료 없는 막걸리를 만드시던 분이셨는데 저는 그 막걸리가 참으로 좋았었는데.. 그 막걸리로 천연 식초도 같이 만들고.. 지금은 망했는데 왜 그렇게 되었을까.... 안타깝...
@알바하고파 Жыл бұрын
이재용막걸리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김재석-u8i Жыл бұрын
82도 짜리 술은 감기에 상비약으로 집에 사둬야겠습니다.
@박젠트리 Жыл бұрын
막걸리는 10일 지나면 버려야합니다
@user_quantum_jump Жыл бұрын
술은 체내 염증을 유발하는데 몸이 아플 때 상비약으로 먹는 것만큼 미련한 것이 없습니다
@麤驫鑫 Жыл бұрын
해남해창이 고향인 사람들이여!!! 어릴적 술도개집 지나 삼화국교 다니면서 밀가루로 빚은 술밥 냄새에 콧구멍 만족으로 만 행복했던 7,80년대. 가을엔 솔도개집 사방이 탱자나무 울타리에 열린 누런색 탱자를 막대기로 떨어뜨려 걸 먹거나 축구공 대신 그걸 공놀이 했지. 노란색 알루미늄 주전자로 부모님 심부름 하거나, 마을 전화기 귀할때 술도개집에서 손잡이 회전식 검정전화기 사용하단 시절... 지금은 없어진 텃밭, 정원내 연못과 어우러진 누워 자라던 소나무 등.. .. 이 어찌 추억이 깃든 그 옛날을 그리워하지 않을수없지않는가. 해창 울대미, 알대미.. 동쪽, 서쪽, 가운데 길 소재 우물샘, 우굴 샘.. 고천암 간척지 공사 준공 완료로 우리고향은 해싱교통로 요충지 역할을 상실했지. 주황색 선체 색깔의 200톤급 대한통운배가 드나들던 산창가. 정부 도정공장이 있던 배과장 운영 정미소. 그 넓던 염전... 향수에 젖어 눈물이 앞가리네.
적산가옥과 일본식 정원 그리고 해창막걸리의 역사는 10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3년 일본인 시바타 히코헤이(1899~1985)가 정미소를 건립하고 1927년부터 본격 운영했다. 해방이 되자 시바타는 일본으로 돌아가고 해남 삼화초등학교 설립자인 장남문씨가 이곳에서 거주하며 주조장을 운영했다. 이후에는 황의권씨가 인수해 30년 가까이 운영하다가 오대표 부부에게 넘겼다. 주조장과 그 주변에서는 당시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다. 정원 한구석 나무 아래 놓인 비석은 이곳이 제물포조약 당시 조선 대표였던 백파 신헌구(1823∼1902) 선생이 살던 집터였음을 보여준다. 암행어사로 5년간 해남에 머물렀던 그가 한양으로 떠나면서 전답을 마을에 기부하자 주민들이 세운 공덕비다. 일제강점기 상흔도 남아 있다. 황국 신민 서사비는 13년 전 주조장을 인수한 오 대표가 정원을 복원하는 과정에서 발견했다. 1930년대 일제가 조선인들에게 암송을 강요한 일종의 맹세문이다. 비석 옆 안내판에는 '한국과 일본 간에 있었던 뼈아픈 과거사를 삭여 놓은 생생한 역사적 유물을 다 같이 반성하고 참회하는 교육의 지표로 삼기 위해 마당에 보존, 전시한다'고 적혀 있다.
@valkyrieRS5 Жыл бұрын
쌀이 30가마니가 들어간다고 하는데 막걸리는 좋은데 모양이 저질이야 무슨 20만원짜리 공병이 플라스틱이냐 20만원 짜리 술사면 유리잔 까지 주는데 놋그릇은 줘야지 개똥술
3천만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장님 의지는 좋으나 과연
@최미자-y8r Жыл бұрын
형님 존경함니다,
@Youthingking22 сағат бұрын
인터뷰하는 양반도 한잔걸치고 한거같은데?? 혀랑 목소리 왜저럼? ㅋㅋㅋㅋㅋㅋ
@CHE_GAM Жыл бұрын
금을 파는거여 ㅋㅋ 술을 파는거여 ㅋㅋ 순금시세는 알고 계시죠 ? ㅋㅋ
@joseph51469 ай бұрын
막걸리계의 창렬ㅋㅋㅋㅋㅋ 막걸리가 1만원대 넘어가면 일단 거품임. 그리고 해창 12도만 보면 우곡생주보다 두 배 가격인데 우곡생주 퀄리티가 안나옴ㅋㅋㅋㅋ 결론은 편의점에서 3천원초반에 사먹을 수있는 느린마을 막걸리 갑임.
@Pottaii Жыл бұрын
수박인가요
@麤驫鑫 Жыл бұрын
삼촌포 명: 전라남도 해남군 화산면 해창리 인근에 있었던 조선시대 포구. [개설] 삼촌포(三村浦)는 지금의 삼산천의 하류인 화산면 해창리 인근에 있었으며, 조선 초기 기록에 보이는 오래된 포구이다. 해진군(海珍郡)의 관문이자 병선(당시 군함 선박)들의 정박처였고, 제주를 왕래할 때 이용하던 항구였다. 진도가 섬으로 옮겨 간 이후에는 진도군과 소통로 역할을 하였다. [명칭 유래] 조선시대 해남에 들어와 있던 진도군 삼촌면과 진도군 사이를 연결하는 포구였으므로 삼촌포라 하였다. [형성 및 변천] 해진군은 1409년 해남과 진도를 병합한 옛 고을명 이다. 1409년 진도군이 영암군 시종면에서 삼촌면으로 옮겨 오고, 1412년에는 해남현도 현산면 고현에서 삼산면 녹산역 인근으로 옮겨왔다. 이때 삼촌포는 해진군의 관문이었다. 1437년 해남과 진도가 나뉘어 진도가 읍치를 섬으로 옮겨간 이후에도 삼촌면은 1906년까지 진도에 속했다. 이때 삼촌포는 진도와 해남을 연결되는 소통로 구실을 하였다. 삼촌면은 지금 해남군 삼산면의 일부이며 감당, 도토, 목신, 상금, 송정, 용두, 창리, 항리[해남군 삼산면 신흥리 감당마을, 신흥리 상금마을, 송정리 도토마을, 송정리 송정마을, 원진리 목신마을, 창리 용두마을|창리 창리마을] 등 13개 마을이다. 삼촌포에는 어란의 병선들이 정박하였다. 중선 4척과 군사 480명과 뱃사공 4명을 거느렸다 [領中船四艘, 軍四百八十名, 梢工四名]. 15세기 중반 무렵이 되어 병선들은 섬으로 옮겨갔다. 1906년 삼촌면이 해남과 합병되자 진도와 통하였던 삼촌포의 기능도 축소되었다. 그러다가 1988년 화산면 고천암 방조제 공사로 바닷물이 차단되어 포구의 기능도 완전히 소멸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전라도 조에 “어란(於蘭)은 해진군의 남쪽 삼촌포에 있다[於蘭 在海珍郡南三寸浦].”라고 하였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 『해남읍지(海南邑誌)』에서는 “현 남쪽 20리[약 7.85㎞]의 진도와 경계에 있다[三寸浦在縣南二十里珍島郡界].”라고 하였다. 고어란이 해남현에서 남쪽으로 25리[약 9.82㎞]가 떨어져 있었으므로 삼촌포는 상류인 해창리 인근으로 추정된다. 어성포는 삼촌포 상류에 있고 인근에 해창마을이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화인이22 ай бұрын
자신감은 좋은데 시건방진게 무슨 해창이 막걸리계 신이냐?ㅋㅋ사장 자기 막걸리 뽕에 너무 취했네 ㅋㅋ
@사이다-p8j Жыл бұрын
ㅋㅋㅋ 막걸리을 농주라하죠 농사지으며 농민이 먹던술인데 고급스럽진 안겟죠. 고급스럽다는게 앞뒤가 않맞쥬.막걸리는 농주다. 박정희 대통령이 논밭에서 드셧던 술.
백년의 역사로 생산은 현대식 작업은 몸종으로 이런 업장에 최근까지 지게차 한데 업이 작업한데는데 이게 깊은맛이고 단맛입니까~
@jamesjang7967 ай бұрын
그래도 넘 비싸게 판다
@mongsmusic4 ай бұрын
그렇게 막 맛있진 않던데...ㅡ..ㅡ 이게대체 왜 비싼지 영상을봐도 먹어봐도 대체모르겠... 우곡생주가 나음...
@user-sdcf566fcrcvg7 ай бұрын
가격도 비싼데 병을 플라스틱 사용하네 인간적으로 만원 넘어가면 유리병에 담아줘라 ㅉㅉ
@麤驫鑫 Жыл бұрын
해창 막걸리의 시작은 일제 강점기 1923년 일본인 시코타 히코헤이가 이곳에 정미소를 지어 도정한 쌀로 정종을 만들면서 해창 주조장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던 중 1945년 해방이 되어 직원으로 일했던 장남문 씨가 불하 받아 해창의 2대 주인이 되었고 장남문 씨는 돈도 많이 벌어 해남 삼화 초등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1960년대 들어 양조업에 종사하던 황의권 씨가 인수해 30년을 술을 빚어오다 대를 이어갈 형편이 못돼 이곳을 자주 찾던 오 씨 부부와 인연이 되어 해창의 지금이 있게 됐다. 오 씨 부부는 그길로 가양주 대가인 박록담 씨와 배상면주가의 창업주 배상면 씨를 통해 전통 막걸리의 제조법을 전수받고 다양한 주조법까지 배운 뒤 해창 막걸리 살림을 본격적으로 하게 되었다.
@d.hwhite6678 Жыл бұрын
쌀가루는 일반 말걸리,,장수막걸리가 최고야..해창은 금가루로 만드는 모양?? 롤스로이스나 타고다시셈...괜한 방송보고 시간낭비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