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올라온지 이제 알았어요~ㅜㅜ 일단 인사부터 남기고...영상은 저녁에 볼께요! 설쌤 오늘도 좋은하루 되세요~👍🙆🏻
@white_devil83842 жыл бұрын
역시 설쌤 대단하십니다!
@김강녀-c6b2 жыл бұрын
티브이에서뵈고싶어요우리아이에게큰샘입니다종경합니다
@2603곽다은2 жыл бұрын
선생님 너무 좋아요😊
@행운-v2q2 жыл бұрын
천재설민석
@척살대-f2s2 жыл бұрын
역사학자로서는 최고인듯~~
@Impossibility_Theorem2 жыл бұрын
종종 잘 보고 있습니다:)
@전금례-y3j2 жыл бұрын
역사는 설민석이다 정말 ㅠㅜ 기다렸어욤
@코코-s4x2h2 жыл бұрын
설쌤을 대채할 사람은 없다 제발 다시 예전처럼 자주 뵐수있기를...
@지아닝_구독해줭2 жыл бұрын
설쌤영상 거의 다 보고 있습니다 화이팅!
@박기범-v3y2 жыл бұрын
좋은 설명 감사합니다
@rlangh89162 жыл бұрын
귀에 쏙쏙~~👍👍👍 감사합니다 설쌤~~~~~🤗
@배영희-y2s2 жыл бұрын
딱 맞는 주제입니다. 설쌤 최ㅡㅡㅡ고
@날리면-q8l2 жыл бұрын
설쌤 오랫만이에요!!! 반가워요~~~♡
@shyoo6482 жыл бұрын
설민석님 너무 올만에 뵙네요. 반갑습니다
@랄라로블2 жыл бұрын
설민석 선생님 컴백을 기다리며 열혈 시청 합니다 ^^
@쿠키-d2o2 жыл бұрын
정말 휼륭한 임금이었지만~~ 폄하된 광해군 안타깝네요!! 이제라도 재평가 받는건 참 다행이예요~~ 전 역사는 잘모르지만 설쌤을 만난이후(방송때) 역사에 관심이 많아졌었다는!! 고맙습니다 ~~ 강의가 긔에쏙쏙👍👍
@prettygirl87392 жыл бұрын
아무리 생각해 봐도 외교부문에선 정말 기가 막히게 끝내줬던 인물!!!결국 당파싸움에서 져서 기록엔 패륜아로만 묘사돼서 안타깝기만 하다
@박광순-b8z2 жыл бұрын
미칠 광 아닌가요? 외교적으로 좋게 평가 할 수 있지만 내치에서는 미친짓을 수도 없이 했죠. 김홍립과 1만 조선군을 보내놓고는 식량을 보내지 않아 굶주리게 한것을 업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대동법도 광해가 했다라니요. 그건 조선 유학자들의 업적입니다. 그는 조선의 군왕으로 한참 함량미달입니다.
@역덕후-z1y Жыл бұрын
대동법은 광해군이 즉위한 지 3개월만에 전격 시행했습니다. 조선왕조 건국 216년만에 처음으로 시행되는 조세개혁법(공납제를 토지세로 전환하여 대동미로 부과하는 법)을 한번에 OK했습니다. 광해군이 대동법 시행 초기부터 반대의견냈다고 하는 분들도 계신데, 그런 적 없습니다. 광해군은 오히려 흉년일 때나 대동미를 거두는 시기에 백성들에게 부담을 줄이는 방향으로 의견도 냈으며, 조선왕조 역사상 최초로 시행하는 조세개혁법이니만큼 대동법의 장점뿐만 아니라 부작용에 대한 경계심도 피력하며 전국 확대 시행에 반대했을 뿐입니다. 그뒤 대동법을 전국 8도로 확대시행하자는 건의에 대해 현실적 어려움과 장기적 관점의 부작용을 언급하며 동의하지 않았다고 해서 광해군의 대동법 최초 시행 업적 타이틀이 아닌것이 되나요? 전국 8도로 확대시행 못한 후대임금들(인조, 효종, 현종)에 대해 비판한 학자들이나 사람들 거의 보지 못했는데, 가장 힘들다고 할 수 있는 최초 시행 임금 광해군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신랄하게 비판합니다. 심지어 인조는 호기롭게 충청, 전라, 강원 3개도로 확대했다가 얼마 못가서 충청, 전라는 폐지하고 재위 27년 동안 강원도로 겨우 한걸음 나아갔을 뿐입니다. 원래 줬다 뺐는게 힘없는 사람들에게는 킹받는 일인데 말이죠. 광해군은 그래도 재위기간 내내 경기도지역 대동법 유지했습니다. 폐위되어 광해군의 입장이 실록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것도 억울한데 광해군에게만 엄격하게 이중잣대가 21세기에도 적용되고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전국 확대 실시는 광해군의 최초 시행(1608년)한지 딱 100년만인 1708년 숙종임금 재위 34년에 이루어집니다. 숙종임금도 무려 재위 34년차만에 전국확대가 될만큼 난관과 우여곡절이 많은 것은 그만큼 기득권층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고 세곡 운반의 어려운 현실과 대토지 소유자 등이 반대한 사정이 있는데 그런 내용은 쏙 빼고 그저 광해군 탓으로만 돌리면 인조반정세력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셈이 됩니다. 임란 이후 100년 넘게 서인 세력 내에서도 대동법 확대시행에 대해 찬반논란이 왜 뜨거운 감자가 되었는지 여러 요인을 살펴보면 광해군이 대동법 최초 실시하고 재위기간 내내 유지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