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4학년 때였던가?농구하면 슛도사 이충희를 알던 시절 어느날 TV에서 농구경기를 중계해주는데 어떤 선수가 엄청 높게 점프해서 점프슛을 정말 그림같이 넣었지.그 선수의 폼이 너무 나도 깔끔하고 아름다워서 농구라는 스포츠를 좋아하게 되었지.그 선수의 이름이 바로 허재.
@breeze777773 жыл бұрын
그림같은 표현이십니다. 대단했죠 ㅎ
@relive3082 Жыл бұрын
저 당시에 국대경기에서 기아 선수 다섯 명이 뛰는 것도 본 적 있음. 강동희 허재 김유택은 국대 고정 주전. 일찍 은퇴한 유재학이 너무 아까움
요즘 허재감독님 보면 체력 안 좋은 거 같지만 체력 정말 좋으셨음. 요즘은 모르겠는데 예전에는 올림픽 출전 전 전 선수들이 같은 체력 측정을 했다고 함. 구기 종목 선수들은 그 체력 측정에서 높은 순위 없고 권투, 레스링 선수들이 거의 항상 상위권이었다고 하는데... 88년 허재감독님은 그 체력 측정에서 전체 3등인가 했다고 함. 구기 종목선수가 그렇게 높은 순위 나온 경우는 정말 특별한 일이었다고 함.
@승우짱-g2r2 жыл бұрын
허동택. 진짜 환상 조합이고 최강이지만 기아 식스맨이었던 정덕화의 현대전 슛도사 이충희 전담마크로 발을 꽁꽁 묶고 중요한 순간 3점슛도 여러번 꽂아주는 플레이도 멋있었다 은근 매력적인 마스크에~
@unlghzyns25913 жыл бұрын
농구가 한국에 전파된 이래, 전무후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극강의 사기캐릭터 팀... 그들을 이긴 팀은 여럿 있었지만 무너뜨린 팀은 없었다.
@breeze777772 жыл бұрын
엄청났죠 ㄷㄷ
@gwang5504 Жыл бұрын
세월한테 졌죠.. 나이가들어노쇠~
@user-unicorn82682 жыл бұрын
89년 농구라고는 일요일 아침에 하던 어린이 프로 였던 야! 일요일이다 라는 프로에 나오셨던 고 김현준 선수만 알던 국민 학생. 우연히 89~90 가아 대 삼성 경기를 보았는데... 처음에는 고 김현준 선수가 있던 삼성을 응원했지만 상대팀 선수가 계속 멋있다는 생각을 했음. 지금까지 응원하던 팀을 바꾸게 한 선수는 허재감독님 뿐. 룰도 모르던 시절 아무것도 모르는 국민학생 눈에도 뭔가 다른 선수였습니다.
@승연-n7e3 жыл бұрын
추억돋네요.. 강동희 허재 김영만 김유택 한기범 이멤버는 정말 잊을수가 없네요
@breeze777773 жыл бұрын
중앙대와 기아자동차라인으로 이어지는 최강 멤버였죠 ㅎ
@relive3082 Жыл бұрын
서장훈이 김유택 한기범이 젊은 나이일 때 등장했다면 훨씬 더 많이 성장했을 거임. 국제 대회도 성적이 더 좋았을 거고. 한국 농구에 안타까운 점 하나
@나는양말고양이4 жыл бұрын
고딩허재 9:15 와잘생긴거보소
@breeze777773 жыл бұрын
외모가 리즈시절이네요 ㅎ
@김은진-s2y2 жыл бұрын
허재선수 땜에 농구를 지금까지 좋아하고 있네요...허웅선수 허훈선수 홧팅해요^^
@ryan.eagles2 жыл бұрын
중앙대-기아 농구대잔치에서는 환상의 조합이었죠
@팅커-y7q3 жыл бұрын
헐 허재 잘생긴거보소 . 피지컬 장난없네
@joohyunlee76183 жыл бұрын
보고싶은 영상이었는데 넘 감사합니다
@breeze777773 жыл бұрын
허재, 강동희, 김유택 관련 더 재밌는 영상이 많으니 자주 놀러오세요 ㅎ
@newgkotv84853 жыл бұрын
대학때 멤버가 그대로 기아 실업팀이 되었던거구나 ㅎ
@meanmark76393 жыл бұрын
시대따라 모든게 변하듯 사실 강동희는 현대로부터 엄청난액수의 입단계약금을 제시받았다고하죠 삼성전자도 팀창단이래 최고계약금제시했었지만 액수는 현대가 더 크게 질렀고 가정형편이 허재에 비해서 가난했던 강동희가 현대로 간다는게 그당시 정설이였는데 결국 중앙대마피아라 할수있는 기아로 가게되죠
한팀에 특급선수가 너무 몰빵이 되어서 재미가 없어졌던 시기죠. 5연패 - 1년쉬고 - 2연패하면서 기아만의 농구가 되어서 적당히 해도 이기니 기아선수들도 매너리즘에 젖어들었고 그러다가 중대에 한번 무너지고 .. 다시 생각해도 허재와 강동희가 한팀에 간건 농구발전이라는 큰 관점에서도 좋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두 선수가 다른팀이었으면 서로를 이기기 위해서라도 더 발전된 모습을 프로출범이전부터 보였을겁니다. 두 선수는 타팀과의 대결보다 팀내청백전에서 더 열심히 뛰었다고 하죠.
@breeze777773 жыл бұрын
둘이 다른팀이었으면 더 재미있었겠네요
@유키_히힣3 жыл бұрын
기아자동차 팀이 신생팀으로 생기면서 중앙대 5인방 강동희 강정수 허재 김유택 한기범 을 데리고 온건가요 ? 거의뭐 배구계의 삼성 현대급으로 데리고 온건데
@breeze777773 жыл бұрын
그런듯하네요ㅎ
@유니콘스-h5f3 жыл бұрын
기아가 창단하면서 연대, 중대의 졸업생을 모두 데려가게 되어서 중대의 한기범, 강정수에 연대의 유재학, 정덕화를 모두 스카우트했고 이후 허재, 강동희, 김유택이 계속 입단했어요. 그러면서 중대OB의 성격이 짙어지고 무릎부상이 있었던 유재학은 20대의 나이에 조기은퇴하고 .. 국가대표 주전중 1,3,5번이 모두 한팀에 가게 된 케이스죠.
@pacman47353 жыл бұрын
본문에도 있듯이 88년 mvp가 허재가 아닌 유재학입니다. 이때문에 기아팀 내부에서 말들이 있었고, 입단예정인 강동희와 포지션이 겹치는 유재학이 부상을 명분으로 그냥 은퇴해버렸죠. 사실 유재학이 강동희만큼 훌륭한 선수임에도 주전은 강동희로 갈수밖에 없는 구조였죠. 정덕화 선수는 수비에 특화된 선수라 후에도 계속 좋은 활약을 펼치긴 합니다. 유재학과 허재사이가 지금은 어떤지 궁금하긴 합니다.
연대우승시즌에 연대가 토너먼트에 기아이기고 올라간적없음 93~94시즌 8강에서 허재가 전반 억울한 5반칙퇴장으로 중대가올라갔고 96~97은 허재 음주운전징계 출전불가로 포기하고 바로 프로리그개막에 몰두로 거의 꼴찌였음
@cylee29183 жыл бұрын
중대가 기아 이겼는데???
@영에이지심플릿 Жыл бұрын
허동택 트리오 역대 최고인듯ㅋ
@digilog8 Жыл бұрын
앗 저때는 외국농구 몰랐나? 프로가 되서 용병이 올줄은?
@breeze77777 Жыл бұрын
당시만 해도 프로리그가 생겨날지는 몰랐을거에요
@아싸-p2p3 жыл бұрын
유재학 감독님은 너무 빨리 은퇴하셨죠. 만일 더 뛰었더라면 강동희 선수가 기아로 안 갔을텐데요. ㅋㅋ
@유니콘스-h5f3 жыл бұрын
어차피 기아는 중대OB여서 기아로 갔을겁니다. 애당초 기아가 창단할때 중대, 연대라는 두 학교의 졸업생을 몰아준것부터 문제는 있었어요. 팀은 허재의 팀으로 돌아가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그러자면 선배인 유재학보다 후배이고 대학때 손발맞춘 강동희가 허재에게는 더 좋은 파트너였을겁니다. 그런데 당시 최고의 가드3명이 모두 한팀에 갔다는 자체가 훗날 기아의 선수수급문제부터 한팀으로의 지나친 선수몰빵, 그로 인해 기량과 체력모두 절정에 있었던 허재, 강동희, 김유택의 발전은 더뎌지고 역대최고의 재능이 고작 국내대회 5연패말고는 별다른 성과도 내지 못하면서 시간만 보낸거죠. 허,강,김이 서로 다른팀이었으면 프로출범이전에 또다른 어마어마한 농구도 가능했을겁니다. 서로를 이겨야 한다는 목적의식이 뚜렷하니까요.
@아싸-p2p3 жыл бұрын
@@유니콘스-h5f 국내대회 5연패가 아무나 할수 있는건가요? 허재 이외의 강동희 김유택이 과연 허재 만큼의 위력이었는지는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합니다. 당시 허재는 명실공히 최고였지만 강동희와 김유택은 허재 만큼은 아녔습니다. 강동희의 경우 대학 졸업시 랭킹1위도 못따냈습니다.(당시 연세대 강양택이 1위). 개인적인 생각으로 강동희가 타팀에 갔다면 김대의 정도의 수준이었을 거라고 봅니다. 부상당하지 않은 김대의요.(전 김대의 선수 부상만 아녔으면 레전드였을 거라 봅니다) 허재 효과를 누리지 않은 강동희란 존재하기 힘들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김유택도 허재에 비할 존재감은 아닙니다. 당시 삼성의 서대성이나 현대의 김성욱이 김유택과 매치업을 벌이고 다른 선수들이 받쳐주면 기아는 승리를 내준 적도 꽤 됩니다. 강동희 김유택이 훌륭한 선수였던 건 틀림없지만 국내대회 5연패라는 게 초라할 정도는 아닙니다. ~~~^^. 그렇기 때문에 아마도 허재보다 불과 두살 위던 유재학이 오래 뛰었다면 강동희는 자진해서 타팀으로 갔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pacman47353 жыл бұрын
오히려 반대죠. 강동희 입단예정이라 유재학이 은퇴했죠.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중앙대 알력이 작용했을겁니다.
@@jeanlee-miller224 제 글을 제대로 읽고 답해주셨으면 합니다. 유재학과 강동희는 같은 팀에서 뛴적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밀릴 일도 없었습니다. 유재학은 강동희의 기아 입단전에 은퇴했습니다. 강동희는 김대의가 아닌 강양택에게 대학랭킹 1위 자리를 내줬습니다. 당시 중대가 김유택 한기범의 센터진만으로 대학최강팀이었다는 건 수긍하기 어렵네요. 최강이던 시절이 84~86년, 그리고 88년인데요. 이 시절 박경영 허재 강정수 강동희 천정열 등의 외곽이 연고대에 밀리지 않았기에 최강이 가능했습니다. 그럼 이만.
@김우겸-g3x2 жыл бұрын
허재가 저도 팬입니다 용산고에서는 잘 했는데 대학에 연고대를 못간게 아쉽지만 그래도 농구 천재 다워 보인다
@야나두-i3n3 жыл бұрын
8:51
@mhjb00342 жыл бұрын
난 그때 AFKN 에서 중계해주는 보스턴 셀틱스, LA 레이커스 농구를 보고있어서, 한국농구는 재미가 하나도 없었읍니다. 래리 버드의 슛, 매직 존스의 드리볼, 압둘자바의 스카이 훅슛, 등등. 한국의 어느 선수도 슛품이 확실한 선수, 드리볼을 확실하게 하는 선수는 지금까지 한명도 보지 못했읍니다.
신문에서 대 놓고 일본식 한자를 썼네요 12:42 진가 眞價 저 당시에 일본식 한자 많이 썼을 듯 지금도 일본식 한자 쓰는 사람 가끔 있음 절에 가면 문화재 표지판에 佛 자를 일본식 한자 썼음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그런 한자를 썼는지.. 자체 검사도 안 하고 결정하는가 일부러 쓴 것 아닌가 의심이 들기도 함 옛날도 아닌 요즘에 말이 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