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사랑하여 소명이 있는 사람은 사탄이 먼저 알고 방해가 커요 꼭 끝까지 승리하셔요 그리고 하루 주기도문 10번씩외우며 감사기도 드려보세요 이렇게하니까 제 지인들은 초신자인데도 회복되더라구요 힘내세요
@최선열-d6d2 ай бұрын
@@별마을-o6x 넵 알겠습니다
@user-ob4xy5no5z2 ай бұрын
기도하겠습니다. 화이팅!
@최선열-d6d2 ай бұрын
@@user-ob4xy5no5z 고맙습니다 선생님
@최선열-d6d2 ай бұрын
@@별마을-o6x 고맙습니다
@kyungchullpark96622 ай бұрын
예루살램에 올라가 기도하는 바리세인과 세리의 기도예시를 보면 예수님의 구원의미를 알수 있습니다.
@홍경호-u8b2 ай бұрын
만약 믿음의 본질이나 정의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을 벌인다면 아마도 수십가지 이상의 주장이 있을것입니다.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고 봅니다. 우리말 믿다라는 뜻으로 믿고, 그 믿음으로 기도한 우리의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은 그만큼 수많은 응답을 받아왔습니다. 그러면 된거지요
@이상조-l5kАй бұрын
설교자는. 설교한대로살고 장로는 기도한대로살고 교인은 설교듣고 기도듣고 아맨 했으면. 아맨 한대로. 모두 이렇게 사는게 믿음이다
@junder97103 ай бұрын
✞ ... 💧🔥🌈
@salmonwooho2 ай бұрын
그렇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음 자기확신이 아닙니다.
@동천태화29 күн бұрын
결국 비유로 말씀하신 것으로,교회 안팎에서 빛과 소금이 되어 온전한 십일조로 예배드릴 것을 말하고 계시는 거라 봅니다. 십일조 선교구제헌금 등이 교회중심생활을 하게 되면 삶과 물질로 이웃을 섬기게 되는 것이죠.또한 자기만 믿고 전도하지 않는 나태함 교만함을 비유로 설명하신 것이라고 볼수 있습니다.정말 중요한 내용은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ghrue12 ай бұрын
피스티스 믿음(faith)은 저의 말씀 연구 주제이었고 그래서 참 반가웠습니다. 이 단어는 신실함, 충실함, 충성, 신의 등으로 번역됩니다. 용례도 그렇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에서 이 단어의 뜻에 입증함 이라는 뜻도 있다고 하셔서 저는 처음 듣는 것이라 헬라어 사전을 다시 찾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혹시 입증함의 뜻으로 사용된 용례가 있다면 그 구절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피스토스-u6dАй бұрын
부활이 믿을만한 증거가 되었다. 입증이라기보다 증거의 뜻으로 쓰임.
@ghrue1Ай бұрын
@@피스토스-u6d 감사합니다. 찾아보니 부활의 확신을 주었다 라고 번역한 성경이 많군요.
@ghrue1Ай бұрын
@@피스토스-u6d 답글이 지워지네요. 감사합니다.
@ghrue1Ай бұрын
@@피스토스-u6d 믿을만한 증거로 번역했군요. 확신을 주었다고 번역한 것도 많군요.
@TV-uc5ek3 ай бұрын
과연 우리가 주님이 인정하시고 원하시는 신실함으로 살 수 있을까요 그렇게 사시어 기도 응답받으셨나요. ?
@outerlevi62542 ай бұрын
이런 얘기를 니골라당이 사도시대에 질문 많이 했어요. 예수님께서 요한계시록에서 니골라당을 미워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eternalwinner9112 ай бұрын
네
@집밥루시2 ай бұрын
오직 성령께서 우리가 그렇게 되기를 도우시네요 저는
@Oss-z7k3 ай бұрын
레위기 21장 22장에 보며는 시체로 인하여 더럽히지 말라는 율법이 있습니다 또한 더럽혀졌을때 행하는 율법이 있지요 바리새인 레위인 이들은 귀찮아 했을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거의 죽게 되었다 라고 기록되었고 이 사람들 생각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 이었던 것이죠 우리 모두가 이러한 사람들입니다 이기적이고 외식하는 존재들이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오신 성육신 하신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께서는 사랑을 몸소 실천하신 사랑의 하나님 이십니다
@changkim692 ай бұрын
이건 본인이 체험하지못한 것에 대한 변명같음.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다니엘-o6e3 ай бұрын
에무나
@토방-x1w2 ай бұрын
이 보다 더 설교말씀을 전할 수 있을까! 감사합니다!♡
@paul-km3lg3 ай бұрын
목사님 헬라어가 아니라 히브리어 에무나를 설명하시는 것은 아닌가요?
@새벽새벽-o5g3 ай бұрын
헬라어 피스티스나 히브리어 에무나 모두 유사하거나, 같은 의미 아닌가요? 물론 엄격하게 사람에겐 믿음. 하나님과의 관계는 신실이라고 구분해 해석할 곳도 있겠지만..
@johnyu43822 ай бұрын
혹시 강단에서 삭개오라해도 말씀에 아멘이되시면 아멘하셔야죠 ...
@피스토스-u6dАй бұрын
헬라어 피스티스는 충성, 믿음, 신실, 증거 등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Grace-h8e6i2 ай бұрын
존 칼빈이 수많은 저술서가 있음에도 왜 요한계시록의 주석서만 저술하지 못했을까요? 그는 성경전체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그 이론을 바탕으로 장로교신학교의 교수둘이 제대로 된 이론을 배웠을까요? 대부분 한국의 교회가 올바른 성경과 교리가 없어 구원받지도 못하고 종교생활만 열심히 하지요!
@TV-uc5ek3 ай бұрын
이 사마리아 사람 예도 주님이 원하시는 복음적 해석이 아닌것입니다 이 율법자의 질문이 분명히 내가 어떻게해야 영생을 얻을까의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내 이웃을 도와주고 선을배풀면 영생을얻을수 있을까요 행함과 율법으로서의 자기의로서의 구원영생을 얻을수 있을까요? 이것이 참 복음일까요
@daniel-qr5db2 ай бұрын
신실함이 넘치지 않고는 의를 행할수 없습니다 자기 코가 석자니까요 마지막때에 의인은 하나도 없다는 말씀을 묵상해보면 답이 나옵니다
@outerlevi62542 ай бұрын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었다는 말씀은 야고보서에만 있는 게 아니라, 예수님도 말씀하셨어요.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위에 지은 집 비유보세요.
@KimGangSoon2 ай бұрын
단순히 이웃을 돕는것으로 영생을 얻을 수 없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않나요?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이 먼저고 그 사랑을 행하는 것이 다음일거라 생각되요
@DuncanKim2 ай бұрын
'믿음'이 '신실'이라고 하시는데, 헬라어 단어가 그런 뜻이었다면 한국어 성경도 진작 그렇게 바꿨어야 하지 않나요? 헬라어 성경을 번역한 신학자, 번역가들에게 문제가 있었으면, 이제라도 올바른 번역본을 출판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이재철 목사님 혼자서만 그렇게 번역하시는 것은 아닌지요?
@외측광근2 ай бұрын
이재철 목사님의 독단적인 주장은 아니구요. 톰 라이트사 그렇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톰 라이트에 그런 주장에 D. A. 카슨 같은 사람은 비평하기도 하구요. 많이 연구되고 있는 부분이긴한데 구원도 예수를 믿는 우리의 믿음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신실함이다라는 주장도 있으니 찾아보시고 읽어보신 후 생각해보시면 많은 도윰 되실 거 같습니다.
@ABC-kx5gy2 ай бұрын
공감합니다. 아직도 성경은 오역시비, 우리말 어색함 등으로 비난을 받고 있죠. 개역개정이 몇 번이나 나와도 성경 번역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다른 오역의 예를 들면 "부자가 천국가기는 부자가 낙타......." 여기서 낙타는 낙타가 아니라 밧줄일 가능성이 더 큽니다. 사람이 사는 세상은 비슷하거든요. 신학박사, 교수, 목사가 수만명이나 되는 나라에서 왜 성경 하나 제대로 번역을 못할까요?
@swordsman5812 ай бұрын
결국 기도 응답이 신실이라는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는 건가요? 우리 자식들이 미숙하다고 아무것도 요구 사항을 들어주면 안되는건가요? 그런 부모가 있나요? 하나님 께서 우리 기도에 응답 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수준 때문이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된 신분의 변화 때문입니다!
@seokhyunnam8495Ай бұрын
그런 뜻이 아니에요. 좀 더 고민해 보세요.
@종현-k8zАй бұрын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신실함'안에서 구원받는다 라고 성경에 나와있습니다. 즉 율법에 의해서는 신실함에 도달할 수 없지만 오직 신실함 안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 라고 로마서에 써놨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해석하시면 될 거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