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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진송씨대종가
恩津宋氏大宗家
Eun Jin Song's Great Singing Song
원일당(源一堂)
Wonildang Hall
원일당 기문(記文)에 의하면
“지난 임자(壬子 1912)년에 17세 사손(嗣孫) 석구 치홍 씨가
또 중건하니 안팎 여러 자손들이 다 돈을 내어 기꺼이 따랐다.
前後(壬子 1432년과 1912 壬子)년이 마침 우연히 맞으니
또한 하나의 기이한 일이다.
얼마 후에 치홍이가 중수운(重修韻)의 시를 받아 낙성하였다.
정산(靖山)일가 호곤(鎬坤 : 호는 恒齋로 충순위공 13대손,
1919년 족형 貞窩 송호기와 함께 자주독립청원서 파리장서에
서명 날인한 애국지사로, 2005년 3월 1일 건국포장 추서되었다.
문집 정산집이 있다.
그 당의 이름을 원일(源一)이라 하고,
나 달용(達用 감역공 8대손)에게 기문에다
원일의 뜻을 지으라고 부탁하였다.
사양하여도 되지 않아 공경히 절하고 회답하기를
공은 일찍이 저 물(水)을 보지 않았는가?
열 가닥 만 갈래가 한 근원이다. 유독 물만이 그러한가?
천도(天道)의 근원도 하나이며 인물의 근원도 하나인 것이다.
무릇 사람의 씨족도 비록 종파(宗派)와 지파(支派)의 구분과 멀고
가까운 것 같지 않음은 있을지라도 동시 근원은 하나이고
갈래는 만이나 된다.
그렇다면 원일(源一)의 뜻이 어찌 알기가 어렵다고 하겠는가?
다만 알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실행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근본은 삼친(三親 부자·부모·형제, 혹은 부계·모계·처계)에서
나왔으나 물질에 인색하여 일가 간에 서로 돕지 않고,
일가 간에 서로 화목하지 않고 다투므로 눈을 흘기어
골육(骨肉 골육지친)보기를 원수같이 하는 자 있으니,
다 이 뜻(源一)의 소치를 체험하지 않은 것이다.
(『恩津宋氏先蹟史』, 「원일당기」, 226쪽)
즉 유조비 쌍청당의 후손된 모든 사람들은
지금은 촌수가 멀어졌고, 사는 곳이 다르긴 하지만
근원이 하나임을 깨달아 서로 화목하고 단결해서
문중의 발전을 이룩하자는 뜻에서
원일당(源一堂)이라고 한 것이다.
회은당(懷恩堂)
Hoi-Eun-dang
대지 760평 위에 안채 회은당(懷恩堂) 43.75평,
바깥채 원일당 33.8평, 별채 28.54평, 창고 8.84평,
육각정인 봉무정(鳳舞亭) 3평, 대문인 수재문(修齋門) 6평 등
총 123.93평의 조선 전통양식 목조와즙 한옥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안채 회은당(懷恩堂)은 조상의 음덕을 품고 있다는
뜻이 담겨 있는 당호(堂號)이며,
원일당(源一堂)은 은진송 씨 여러 자손들이
한결 같이 종가를 근원(根源)으로 하여
영원히 번창해야 한다는 뜻으로 송달용 씨가
1912년에 지은 당호이다.
종가 후편에는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좌측에는
1432년에 쌍청당께서 명사들과 도학을 강론하던
쌍청당(雙淸堂 : 지방문화재 2호)이 있으며,
동편 500m 소공원에 유형문화재 제25호인
고흥유씨정려(高興柳氏旌閭)가 있다.
대전 대덕구 쌍청당로 17
17, Ssangcheongdang-ro, Daedeok-gu, Daejeon
2024-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