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은 문학사에 남긴 업적과는 별개로, 정치적 활동 면에서는 그다지 좋지 않은 족적을 남긴지라 복잡한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RMZEU4 ай бұрын
와 .. 근데 송강 정철 대감 .. . 가사문학의 대가라고 얘기는 들었는데 문장력이 진짜 어마어마했던 모양이네 .. . ㅡ.,ㅡ 뭘 어떻게 썼길래 와
@JasonScottLee-r1v4 ай бұрын
7:24 전원일기 할배3인방 중 1명이네!
@gerughigiulio91904 ай бұрын
1591년 1월 29일 건저문제 및 정철 등 서인 세력 일거에 실각 2월 4일 원균 전라좌수사 파직 2월 13일 이순신 전라좌수사 임명 항상 건저문제와 이순신의 전라좌수사 임명을 별개로 봐서 모르고 넘어가는 일이지만 건저문제 한 방에 동서 세력이 뒤바뀌면서 그 이후에 이어진 인사문제에 영향이 있을 수 밖에 없었음... 서인 세력이 실각하면서 서인의 거두 윤두수의 비호를 받는 원균이 바로 성적도 안되면서 전라좌수사에 임명된게 사간원에게 바로 적발되어 파직되었고 이로인해 이순신이 전라좌수사가 될 수 있었음... 정철은 분명 기축옥사를 조장해 반대파 누명씌워 때려잡은 죄로 실각했음에도 박종화 등 서인빠 소설가들이 마치 억울하게 당한듯 포장을 해놨는데 정작 이때 정철을 쳐내지 못했다면 임진왜란 발발 이후 정말 큰일날뻔했음...
@Jonhs-op9ng4 ай бұрын
85-86 년 겨울 클라스 보소. 눈이 회차마다 짙게 깔렸으니 이게 진정한 겨울이 아니던가?
@아카렌가4 ай бұрын
명나라 말 틀린게 없긴하네 ㅋㅋ
@고래-q4b4 ай бұрын
용눈 심효생 대감 4:00
@gerughigiulio91904 ай бұрын
이분 외모 때문인지 항상 무능하고 허술한 인물 배역을 전담하는데 예외가 삼국기의 원효대사 역...
@갓유주-o7m4 ай бұрын
40되도록 세자 안 세운다고 말했다 미움받고 쫓겨난 양반 아닐가요
@gerughigiulio91904 ай бұрын
건저문제 당시만 해도 선조가 광해군을 미워하지는 않았고 선조가 정철을 쳐낸 목적은 기축옥사가 계속되다보니 동인 측 인사가 너무 죽어나가 서인의 세력이 강해지는거 직감하고 이참에 아무거나 구실삼아 서인 세력을 때려잡을 발상에서 벌인 일입니다. 선조가 점차 광해군을 미워하게 된 계기는 임진왜란 도중에 광해군은 공을 세우고 자기는 실책만 반복하니 위협을 느낀 뒤부터입니다.
@잇팁-u7t4 ай бұрын
ㅋㅋㅋㅋ 여기 100퍼센트 이 때 선조가 퇴위하고 광해가 즉위했어야 한다는 댓글 달림 ㅋㅋㅋㅋ 역사를 그저 한쪽 눈으로만 보고 해석하는 사람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불-w1k4 ай бұрын
선조는 왜란을 막지 못한 책임을 져야 마땅하지 국가 경영을 어떻게 했기에 전국토 반이상을 젯더미로 만들고 이런 실책을 한 사람이 최고 지도자 자리에 있을수가 있나 전란 수습은 지가 아닌 아들이 대리청정으로 다 하고
@weonheechang984Ай бұрын
@@가불-w1k히데요시는 책임을 졌냐?
@가불-w1kАй бұрын
@@weonheechang984 생전에 책임을 묻지 못해도 사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히데요시에 책임 물었지 히데요시의 처와 아들을 죽이고 히데요시의 무덤을 폭파시킨 점 그리고 조선과 통신사 교역을 재개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