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상륙작전이 결정된 작전회의 (찬성 맥아더 1명, 반대 9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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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Box TV, [God of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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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ай бұрын

맥아더 혼자서 찬성했던 작전.
심지어 맥아더의 부하들까지 모두 반대했던 작전.
그것이 바로 인천상륙작전이었습니다.
때문에 맥아더 장군에게는 상륙작전 그 자체보다도
오히려 미군 내 반대자들을 설득하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웠습니다.
직책상 자신보다 높은 미 합동참모본부, 그리고 미 해군, 해병대까지
모두 설득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낙동강 방어전투에서 한국의 운명이 경각에 달려있던 그 시기.
미 합동참모본부에서는 인천상륙작전을 못하게 하기 위해 맥아더의 사령부를 찾아왔습니다.
일시: 1950년 8월 23일, 장소: 도쿄 극동사령부 회의실.
마침내 시작된 찬성 1과 반대 9의 말배틀.
이 당시 오갔던 대화 내용은 드라마도 이런 드라마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날 극동 사령부 회의실에서는 어떤 말들이 오고갔을까?
한국의 운명이 달려있었던 그날의 감동의 현장으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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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인천상륙작전#낙동강전투

Пікірлер: 276
@war-history
@war-history 2 ай бұрын
이 컨텐츠의 회의 내용은 당시 회의 기록과 회고 내용을 인용했습니다. 09:51 에 나오는 인천에 상륙한 부대가 모루고 남쪽의 워커가 이 모루 위에 망치를 힘껏 내려치게 하자는 맥아더 발언. 실제 전황을 보면 작전을 구상한 맥아더의 이 말대로 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워커장군은 낙동강 전선을 뚫고 북쪽으로 치고 올라오는 망치역할을 했고 1950년 9월 27일, 오산에서 맥아더의 10군단과 랑데뷰를 하게 됩니다.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Ай бұрын
실제로 맥아더 원수가 인천상륙작전을 이야기 했을 때 맥아더 원수의 참모 전원이 제2의 디에프 상륙작전을 벌일 거냐고 강하게 반대했는데 그 때 맥아더 원수는 이렇게 말해서 참모 전원을 대꿀멍시켰다고 합니다. 그 말은 '너희들도 다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는데 북한도 너희들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부정(마이너스)에 부정을 더하면 긍정(플러스)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 부분에서 맥아더 원수의 모습을 보면 손자병법의 이 말이 생각이 납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도 99번 성공해도 1번은 실패하는 법이고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도 99번 실패해도 1번은 성공하는 법이다.' 사실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운 이고 나폴레옹도 자신의 장교를 장군으로 진급시킬 때 반드시 묻는 질문이 '그 장교가 운이 따르는 장교인가?' 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진짜 맥아더 원수는 대한민국이 진짜 절체절명의 순간에 빠졌을 때 그가 가지고 있는 운 전부를 몰빵해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지 않았을까......... 그래서 지금도 미국의 장성 중 유일하게 한국에서 동상까지 세워줄 정도로 감사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daewookkim4795 광무군 이좌거 슬기로운 사람도 천 번 생각하다 한 번의 실수가 있을 수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천 번 생각하면 한번은 맞을 수 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daewookkim4795 손자병법 勇將(용장)보다 智將(지장)이 낫고 智將(지장)보다 德將(덕장)이 낫고 德將(덕장)보다 福將(복장)이 낫다. 운이 따르는 장수는 결코 이길 수 없으니 도망가라. 將必擇其福厚者(장필택기복후자) : 장수를 택할 때에는 반드시 복이 많은 사람을 택해야 된다.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Ай бұрын
@@user-lk5te3dt4f 감사합니다. 잘못 알고 있던 부분을 친절하게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korea-china
@korea-china Ай бұрын
한국인에게는 맥아더가 정말 은인입니다.
@user-hx8do8oq7y
@user-hx8do8oq7y Ай бұрын
맥아더장군은 구국의 아버지네
@k200pop
@k200pop Ай бұрын
장군님 존경합니다 자유공원에 가면 항상 인사드리고 옵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먼저 존경해야 할 것은 맥아더를 그렇게 끌어 들인 이승만입니다.
@yukyung4889
@yukyung4889 2 күн бұрын
맥아더와 이승만은 그 전부터 친밀한 관계였습니다
@user-pe3tb6ql7v
@user-pe3tb6ql7v Ай бұрын
미국과 유엔군을 보내준 깊은 뜻에 감사드립니다. 특히 많은 미국의 아들들이 이땅에서 희생되었습니다. 그분들의 희생 위에 재건국된 대한민국입니다. 고맙습니다.
@17park19
@17park19 Ай бұрын
킹 갓 제너럴 맥아더
@davidkim1807
@davidkim1807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맥아더 장군님❤
@rlee4805
@rlee4805 Ай бұрын
최고 👍👍👍
@war-history
@war-history Ай бұрын
응원의 말씀에 감사드립니다!
@user-ze3ey1gm3p
@user-ze3ey1gm3p Ай бұрын
맥아더 같은 뚝심 있는 장군이 있었기에 작전이 성공 할 수 있다.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Ай бұрын
인천상륙작전은 사실 성공 가능성이 매우매우 낮았기에 애초에 반대 의견들이 우세했습니다. 그러나 전략과 전술을 통해 가능성을 내다본 맥아더는 낮은 확률을 감수하고 상륙작전이라는 모험을 기행했고 이것이 성공했습니다. 상륙작전도 인천이 아닌 군산 등 다른 도시가 더 낫지 않냐는 의견들이 있었지만 낙동강방어선과 양쪽에서 북한군을 고립시켜 없애고 그리고 상륙 후 북진하기에 인천이 가장 최적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시행했죠 ㅋ
@kellyj8011
@kellyj8011 Ай бұрын
성공가능성낮은건 개소리임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kellyj8011 낮은거 맞습니다만? 물론... 조선인민군이 전혀 대비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님 말이 맞을 수는 있지만 인천 방어 시스템이 강력히 구축되어 있는 상태라면 100% 실패할 작전이었습니다.
@weonheechang984
@weonheechang984 Ай бұрын
​@@user-lk5te3dt4f100퍼센트란말을 쉽게 하지 마세요;;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weonheechang984 노르망디도 저런 갯벌은 없었습니다. 100% 라고 하는게 맞습니다.
@weonheechang984
@weonheechang984 Ай бұрын
​@@user-lk5te3dt4f뻔히 성공한거 알면서도 백퍼라고 장담하십니까
@user-tt7kh9zq2m
@user-tt7kh9zq2m Ай бұрын
자유대한 화이팅!! 맥아더 대한민국건국공신
@user-ko3xw5sb1u
@user-ko3xw5sb1u Ай бұрын
감사드립니다.
@sjyoon0603
@sjyoon0603 Ай бұрын
감동 만땅! 구독자도 5만 5천명 상회하네여. 전쟁의 신님 축하드립니다!
@war-history
@war-history Ай бұрын
응원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10:22 부분이 개인적으로도 가장 감동스러웠습니다. 맥아더가 내 판단이 틀릴 경우 그 자리에서 철수명령을 내리겠다고 하자 그때까지 반대했던 해군이 우리는 철수라는 것은 할 줄 모릅니다. 라고 한 순간입니다. 맥아더 장군의 그 유명한 인천상륙작전 사진을 보면 맥아더 뒤에서 망원경을 들고 웃는 사람이 바로 도일 제독입니다.
@hojunglee3684
@hojunglee3684 Ай бұрын
피의 전선으로 병력을 밀어넣는 것에 책임을 지지않겠다 맥아더에게는 승리을 쟁취하기위한 핵심을 알고있다
@war-history
@war-history Ай бұрын
피의 바다를 이루며 싸우고 있는 낙동강에 미 해병대를 보내는 짓은 절대 안하겠다는 의지였습니다. 대신에 북한군의 보급을 끊어놓아 희생을 줄이며 승리하겠다는 맥장군의 의지였습니다.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Ай бұрын
상륙작전이 이렇게 책과 영상으로 보고 배우니 쉬워보이지 실제 상륙은 육지에서 그냥 진격하는 것에 비해 더 난이도가 크답니다. 기존 적이 매복해 장비, 병력을 갖춘 육지로 해군,공군의 도움으로 직접 병력이 새롭게 땅을 디뎌 점령하는 것이므로 더 모험적인 면이 강하죠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그것은 노르망디, 칼레 처럼 방어 진지를 단단히 구축한 상태에서의 이야기 입니다. 조선인민군은 당시 낙동강에 몰빵 하고 있었고 서울/인천 지역에는 제대로 정비된 부대도 없었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이 발생하자 김일성은 다급히 긴급 병력을 구축하였으나 그 병력 조차도 2만명이 되지 않았습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급히 끌어 모은 제대로 훈련도 안된 2만명으로 강력한 화력을 자랑하는 미 합중국 연방군 7만5천명을 상대한다는 것은 미칀 행위 입니다.
@snowbellk1166
@snowbellk1166 Ай бұрын
감동 감동 감동
@war-history
@war-history Ай бұрын
정말 개인적으로도 감동이더군요. 인천상륙작전을 하기 위해서는 미 합참도 설득해야 했지만 미 해군을 설득해야 했습니다. 그 운명적인 회의에서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비판하는 말을 그저 듣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막판 맥아더의 발언이 끝나자 해군 관련 장군들은 자신감 100%로 돌변했습니다. 결국 미 합참까지도 승낙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엄청난 용기였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한국을 마지못해 돕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실패했다면 맥아더는 미군 희생에 대한 책임을 독박 써야 했을 것입니다.
@kimsway412
@kimsway412 29 күн бұрын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당신이 구세주입니다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Ай бұрын
맥아더 장군이 북진한 후 워낙 병크인 부분들이 많아서 두고두고 욕먹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2차대전 등을 통해 많은 경험을 가지고 전략과 전술에 뛰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맥아더의 결단이 없었다면 낙동강 방어선으로 겨우 힘들게 버티던 대한민국이 적화통일되었거나 혹은 이겨내고 북진했다고 해도 실제보다 더 오래 걸렸을 겁니다. 물론 군인은 완벽하지 못하고 북진 이후 보여준 여러 전략,전술들의 실패는 비판하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합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38선 이남 수복까지는 맥아더의 유능함을 보여 주었죠. 38선 돌파 이후에는 월튼 워커의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아쉽네요.
@han9000
@han9000 11 күн бұрын
이걸보면 얄수 있듯이 다수결이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리더가 중요합니다.
@631rainbow7
@631rainbow7 Ай бұрын
당시 미합참의장이 4스타인데 UN사령관이 5스타라 좀 이해가 안되는 시스템이네요 ㅋㅋ
@war-history
@war-history Ай бұрын
6.25 전쟁 기간 중 의외로 콜린스 대장이라는 사람이 상당히 많이 등장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 육군의 수장인 육군참모총장이었기 때문입니다. 06:28 부분이 그래서 흥미롭습니다. 육군참모총장이 지역사령관에게 경례를 붙이는 장면. 흥미로운 것은 맥아더가 육사교장이었을 때 콜린스는 갓 육사를 졸업한 사람이었다는 점. 이렇게 된 이유는 맥아더가 너무나 나이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원수 계급장을 받은 상태에서 1950년에 현역으로 남아있는 사람은 맥아더가 유일했습니다.
@shahhin11
@shahhin11 Ай бұрын
원래 미군에는 오성장군(원수) 계급이 없었고 명예직으로만 있었다가, 2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들과 연합작전을 하는데 (특히 영국) 사성장군이 다른 나라 원수들을 휘하에 두는 껄끄러운 상황이 발생하자 미국 내에서 우리도 계급 좀 올리자는 여론이 우세해져서 1944년에 전시임시계급으로 원수 계급을 만들었죠. 맥아더도 그때 원수 계급을 받은거고. 그런데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국전쟁 때는 더 이상 원수계급을 받을 장군이 없는데다 원래 합참의장, 참모총장 보직의 계급은 대장(사성장군)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중앙 최고 보직자가 지역사령관 보다 계급이 낮은 웃픈 현실이 발생했습니다ㅋ 한번 올려준 계급을 다시 까지도 못해서 맥아더, 브래들리, 니미츠, 아이젠하워 등은 종신 원수가 된거죠. 단, 맥아더가 계급 서열 상으로는 상급이었지만 엄연히 군 명령계통 상의 서열은 합참의장-참모총장-지역사령관 순이었기 때문에 하급자로서 저들을 설득해야 했지요.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Ай бұрын
만약 인천이 아닌 군산으로 상륙작전을 시행했다면 똑같이 성공이야 했을 거지만 대신 호남 및 경상도 남부의 북한군까지만 포위해서 섬멸할 수 있었을 것이며 충청도,경북북부,중부지방의 공산군을 포위해 섬멸하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군산으로부터 북진해야 했기 때문에 실제에 비해 북진할 거리도 훨씬 늘어나고 북진 시간 및 난이도도 더 높아졌기에 애초에 청천강 이북으로 북진하는 것도 훨씬 어렵거나 불가능했을 겁니다
@war-history
@war-history Ай бұрын
군산에 상륙하면 어찌되었을지 맥아더의 발언 중에 나옵니다. (09:06) 그 정도로는 북한군에게 큰 타격을 줄 수가 없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그보다 핵심은 보급/수송 시스템 입니다. 경부선/경의선을 차단하지 못한다면 조선인민군이 그리 쉽게 와해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user-tp3mk8io6m
@user-tp3mk8io6m 23 күн бұрын
근데 브래들리 합참의장의 저 발언은 나중에 중공군 개입시에는 나름 의미있는 발언이었을수도 있는데 그것보다도 이정재와 리암 니슨의 주연영화 인천상륙작전에 보면 각색인지 모르겠지만 극동사령관 더글라스 맥아더 원수와 밴 플리트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에 대한 논쟁이 나오는데 당시 맥아더 장군의 작전설명에 밴 플리트 장군이 "장군! 저는 워싱턴으로 돌아가 용기와 해안을 넘을 사다리만 있으면 이 작전은 성공할 거라고 보고하겠습니다"는 말이 나오는데 진짜 밴 플리트 장군과의 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밴 플리트 장군도 맥아더에 반대했던 걸로 알고 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만물님 영상처럼 사실상 맥아더 VS 다수의 미장성들의 엄청난 싸움이었다고 합니다
@war-history
@war-history 23 күн бұрын
그 영화에 나오는 사람은 밴 플리트가 아닙니다. 밴 플리트 장군은 1951년 4월에 한국과 인연을 맺습니다. 인천상륙작전을 논했던 사람은 미 합동참모본부와 미 해군 관련자들이었습니다. 밴 플리트가 낄 위치가 아니었죠. 그리고 밴 플리트 성향은 맥아더와 똑같은데 반대할 리도 없고요. 그 영화에서 묘사된 사람은 밴 플리트가 아니라 미 육군참모총장 콜린스 대장입니다. 이 컨텐츠에서 군산상륙작전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로 그 사람입니다. 영화에서도 군산 상륙작전을 해야 한다는 대사를 하더군요.
@user-tp3mk8io6m
@user-tp3mk8io6m 23 күн бұрын
@@war-history 만물님 말씀 감사합니다 영상과 말씀 듣고 정확한 파악이 됐습니다 (_ _) 언제나 좋은 영상에 전쟁사 파악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war-history
@war-history 23 күн бұрын
@@user-tp3mk8io6m 이 컨텐츠의 예고를 했던 커뮤니티 게시물 kzbin.infoUgkxdE4YEM9rdGOdH3pZLiZa6cB1487vL56u 사진이 두개가 있는데 화살표 버튼을 눌러 두번째 사진을 봐야 더욱 실감이 날 것입니다. 리암니슨이 팔짱을 끼고 있는 두 사람 말입니다. 그들이 바로 육군참모총장과 해군참모총장 두명이었습니다. 영화상에서도 이 부분은 고증을 하느라 한 셈입니다. 맥아더가 이러는 이유는 인천상륙작전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user-wh3pz7fh5e
@user-wh3pz7fh5e 14 күн бұрын
유럽에선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불해협의 노르망디 해안 상륙작전(맥아더의 부관을 지낸 아이젠하워 유럽 연합군 사령관 지휘) 그 5, 6년 뒤 극동에선 최대 악조건을 무릅쓴 5000대 1의 가능성 한반도 서부 해안 인천 상륙작전의 감행이 있었네요...그 70여년 뒤, 오늘날 쭝국은 대만해협의 상륙작전을 감행하려 하고 있죠. 성공 가능성은 얼마일까요...?!
@suwhalcha5034
@suwhalcha5034 Ай бұрын
크로마이트 작전 성공 확률 50000/1
@JW-wq7vq
@JW-wq7vq Ай бұрын
미친자가 더 미친자에게 GG 친 꼴인듯 미친자는 미 합참및 북한 수뇌부들이고 더 미친자는 맥아더라 ... 음 이덕분에 10만명의 생명을 살린 명작전중 하나였다는 사실이죠
@kdwni03
@kdwni03 Ай бұрын
서울에 북한군 보급로가가까이있으니까 인천으로 상륙할려는거구나
@war-history
@war-history Ай бұрын
09:31에 나오듯이 서울 자체가 평양에서 낙동강까지 내려오는 북한군 보급로가 지나는 곳이었습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한반도의 철도는 경인선 부터 시작해서 일본이 놓은 철도입니다. 일본은 한반도 전역을 장악한 이후에 만주로 진군하여 만주 관동군에 대한 보급/수송 계획으로 한반도에 철도를 가설하여 완전한 보급/수송 계획을 구축한 것입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요동반도로의 공급선을 위하여 경부선-경의선을 가설하였고 두만강/연해주 방면으로 동해선을 가설하여 1944년 까지 80% 이상 완성되었지만 1945년 태평양 전쟁 패전으로 인하여 가설이 중단되어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그래서 사실상 당시 북조선 인민군의 철도 보급/수송 시스템의 핵심 기지가 서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반면 UN군과 한국군은 남쪽으로 퇴각하면서 전라도를 포기하고 부산으로 집결한 것도 보급/수송 때문이었습니다. 부산항에서는 하루 1만톤의 전쟁 물자가 하역되었으며 이렇게 하역된 군수품들은 남해선, 경부선, 동해남부선을 통하여 낙동강 전선의 최전선 부대에게 빠르게 공급되었습니다. 이러한 철도와 부산항이 존재했기 때문에 낙동강 전선을 사수할 수 있었습니다.
@user-tg2tn3ww3i
@user-tg2tn3ww3i Ай бұрын
1950년 9월이면 북한군의 낙동강전선 돌파는 불가능....병력도 우위에 있었고 항공력 등 압도력 화력을 가진 미군 및 국군에게 인천상륙작전자체가 필요했는 지는 많이 얘기해 볼만 합니다. 이미 북한군 전력은 고갈됐고 보급선은 두절됐으며...
@war-history
@war-history Ай бұрын
일전 컨텐츠에서 낙동강 전투를 매우 자세히 다뤘습니다. kzbin.info/www/bejne/bZ7Op4Wgds2BhdE (잘 싸우던 북한군은 왜 낙동강 방어선을 넘지 못했을까?) 위 컨텐츠에서 1950년 9월 12일에 북한군은 공세 여력을 상실했다고 밝혔습니다만 여전히 인천에 있는 병력보다는 막강했습니다. 인천에 있는 병력은 남한에서 대거 징집한 2선급이었는데 반해 낙동강에 있던 병력은 그때까지도 북한군의 제1급 병사들이었다고 합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소련/china로 부터 막대한 전쟁 물자가 공급되고 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강제로 병력을 징집해 버리면 사람들을 갈아 넣게 됩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낙동강 전선에서도 최후로 인해전술을 기획했지만 미국 태평양 공군의 왜관 융단 폭격을 목격한 인민군이 겁을 먹고 탈영을 하기 시작합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인천상륙작전 이후에 무조건 북진을 하던 낙동강 방어 병력들에 대해서 뒤에서 재정비한 몇몇 인민군 사단들이 재정비를 통하여 후방 교란 작전이 진행된 케이스가 많습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이 때문에 지리산 토벌전 같은 전투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이것이 학살이라는 비판이 고개를 처들어서 요즘 이승만 대통령을 악마화 하는 원인으로 동작하고 있습니다.
@user-qi6uu7on7d
@user-qi6uu7on7d Ай бұрын
미군은 성공 가능성이 낮은 작전은 하지않는다. 북한군 주력은 이미 낙동강에서 소모되어 인천 상륙 날짜를 알고 있었다고 해도 북한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대응할 방법이 없어. 미합참은 좁은 한반도에서 무슨 얼어 죽을 상륙전이냐는 입장이었지만 누구도 맥아더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속만 끓이고 있었댜. 그 전력을 낙동강에 투입해 북한군 주력을 소탕하면서 경부선으로 걸어가는게 더싸게 치이고 빠르고 나중에 공비토벌에 크게 신경 쓸 필요도 없었다. 맥아더는 태평양전 추억에 젖어있어서 유럽전 출신이 주축인 미함참에서는 골치덩어리였다. 인천상륙은 한반도에서는 비정상적인 전술이야. 8군 사령관 워커는 휘하 병력의 3분의1이 상륙작전한답시고 전선에서 빠져 하릴 없이 바다위에 둥둥 떠있는 꼴을 보고 뚜껑이 열리나 어쩔 도리가 없었고 미합참도 속만 끓이고 있었다. 그짧은 시간에 상륙작전을 지원해야 하는 미해군은 호떡집에 불나나 거의 완벽하게 상륙을 지원해준다. 미해군 첩보부대가 투입되어 사전 정찰도 완료한다. 미해군 공적이야. 덧 어떤 군대든 성공한다는 방안이 서야 작전이 승인된다. 군대는 모험을 하지않는다. 영화, 소설 개망상이야. 다만 성공할 거라는 판단으로 작전을 했는데 적이 한 수 더빨라 혼돈에 처한 것 뿐이다. 어떤 군대도 성공 가능성이 희박한 작전은 하지 않는단다. 다 나름 해결방안을 만들어 놓고 시작하는거야. 그게 계획대로 안되는게 문제지. 헌데 미군은 그걸 절대우세의 전력을 투입해 커버친다. 설혹 적이 아무리 대응을 잘한다고 해도 되돌릴 수 없는 절대우세의 전력으로 밀어버리는 아주 간단하면서도 아무나 못하는 전술. 인천상륙도 그런 절대 우세의 전력으로 밀어 실패 가능성은 처음부터 제로였다. 북한군으로서는 대응할 방도가 없었다. 그게 팩트다. 나머지 전부 영화 이야기란다.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Ай бұрын
실제로 맥아더 원수가 인천상륙작전을 이야기 했을 때 맥아더 원수의 참모 전원이 제2의 디에프 상륙작전을 벌일 거냐고 강하게 반대했는데 그 때 맥아더 원수는 이렇게 말해서 참모 전원을 대꿀멍시켰다고 합니다. 그 말은 '너희들도 다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는데 북한도 너희들처럼 생각하지 않을까? 부정(마이너스)에 부정을 더하면 긍정(플러스)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그런 부분에서 맥아더 원수의 모습을 보면 손자병법의 이 말이 생각이 납니다.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도 99번 성공해도 1번은 실패하는 법이고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도 99번 실패해도 1번은 성공하는 법이다.' 사실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운 이고 나폴레옹도 자신의 장교를 장군으로 진급시킬 때 반드시 묻는 질문이 '그 장교가 운이 따르는 장교인가?' 였다는 것을 감안하면 진짜 맥아더 원수는 대한민국이 진짜 절체절명의 순간에 빠졌을 때 그가 가지고 있는 운 전부를 몰빵해서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지 않았을까......... 그래서 지금도 미국의 장성 중 유일하게 한국에서 동상까지 세워줄 정도로 감사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상륙작전에서 해군의 공적이 없는 케이스가 있습니까?
@weonheechang984
@weonheechang984 Ай бұрын
뻔히 성공하고 나서도 이렇게 물고 늘어지는데 얼마나 작전하기가 힘들었을지 상상이 간다
@user-qi6uu7on7d
@user-qi6uu7on7d Ай бұрын
@@user-lk5te3dt4f 태평양전 군단급 상륙작전 입안에서 실행까지 보통 수개월 걸린다. 모든게 준비된 전쟁 통에도.., 당시는 대부분의 미해군도 해체되고 함정 대부분 도크에 치장되어 있었다. 특히 상륙장비는 대부분 도크에 치장되어 있었다. 크로마이트작전은 8월28일 최종 승인되고 9월13일 실행된다. 불과 보름만에 미해군은 거의 완벽하게 작전을 지원한다. 호떡집에 불났다. 초딩들은 맥아더 밖에 모르지만 진짜는 맥아더가 아니라 뒤에서 혼신의 힘을 다한 미해군이 있었다는 사실을 안다. 미해군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었던 작전이란다. 미해군은 흥남에서도 동원 가능한 모든 선박을 총동원해 (글자 그대로 다끌어 모은다) 미10군단, 한국1군단 10만의 피난민을 퇴각시키는 무훈을 세워 사실상 한국을 살린다. 흥남에서 퇴각하지 못했으면 미국은 패배를 인정하고 한국을 포기해야 했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user-qi6uu7on7d 지금 내가 모른다고 말한게 아닌데? 왜 동문서답을 하는 거죠?
@user-qi6uu7on7d
@user-qi6uu7on7d Ай бұрын
결론적으로 보면 낙동강에서 북한군 주력을 소탕하면서 차근차근 진격하는게 추후 중공군과의 전투에서도 유리했다. 한국군도 그로 인해 더많은 전투 경험을 쌓게 되며 미군도 좀더 한반도 상황에 적응할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8군 병력의 3분의 1을 빼내 맥아더가 직접 지휘하는 행위는 실제로는 월권행위다. 미군에서는 유례가 없었던 일이다. 그러니 미합참은 부글부글 끓는다. 하지만 누구도 맥아더에게 대놓고 불평하지 못했다, 결국 미국 국민이 뽑은 최고 사령관에게 개긴 미군 역사상 유례가 없는 놈으로 낙인찍혀 자신의 말대로 사라져 미군에서도 지워져버린다. 한국애들만 맥아더, 인천상륙 노래부른다. 트루먼은 전후 세계 질서를 만들고 전쟁 중에도 개기는 군바리 맥아더를 잘라 문민우위 전통을 유지한 공로로 미국 지식인들이 꼽는 유능한 미국 대통령 3위에 등극한다. 미군 지휘관 누구도 맥아더를 변호하지 않는다. 이것도 유례가 없었는 일이다. 사후에는 좋게 말해주는 전통이 있거든. 군법에 회부시킨 반항아 미첼도 결국 복권시켜 주고 B25에 이름도 올려즌다. 사람 이름이 들어간 유일한 미군 전술기다.
@war-history
@war-history Ай бұрын
낙동강에서 차근차근 진격했다면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컨텐츠에서 맥아더가 장군들에게 했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바로 엄청난 사상자 수입니다. 북한군이 타격을 입긴했지만 최고의 1급 병사들은 모두 낙동강에 있었습니다. 이들을 밀고 서울까지 올라온다면 아마 미국 국내에서 그만두자는 말이 빗발쳤을 겁니다. 실제로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고 며칠이 지나서야 낙동강 방어선이 뚫렸습니다.
@user-qi6uu7on7d
@user-qi6uu7on7d Ай бұрын
@@war-history 기동전 개념을 모르니 그런 소리하지. 그 개념이 바로 신작계 5027이라는거다. 본토 미군이 증원오기 전에 최대한 적을 소모시키고 증웓부대 전개후 중앙돌파 포위섬멸전 소탕 진격. 걸프전의 사막의 폭풍작전. 맥아더와 미해병애들은 기동전 문외한이거든. 그러니 미합참이 속이 끓지. 이미 낙동강에서 북한군 주력은 소모된 상태야. 거기에 상륙에 투입된 자원을 낙동강으로 돌렸으면 더쉽고 간단하게 돌파 포위섬멸전을 하며 북진했다. 맥아더가 병력 3분의 1을 빼갔다는 사실을 인지해라. 한국군이 중공군 보기도 전에 토낀게 패전 주요인이지만 맥아더의 설레발이도 한몫했다는건 사실이야. 미합참은 처음부터 미10군단을 맥아더가 직접 지휘하는데 우려를 금치못했고 원산 상륙도 이해할 수가 없었고 미10군단을 함경도로 분리해 작전하는데 우려를 표명했다, 결과적으로 미합참의 우려를 중공군이 정확하게 찌르고 들어왔다. 근본 맥아더같은 월권행위는 미군 역사상 유례가 없었는 일이었다. 그래서 맥아더는 미군 역사에서 완전하게 지워진다. 자신의 말대로 정말 사라져버린다.
@user-qi6uu7on7d
@user-qi6uu7on7d Ай бұрын
@@war-history 원산상륙은 코메디였다. 걸어간 한국1군단이 상륙작전 구경하고 있었다. 이것도 미10군단을 그냥 북진시켜 청천강 우측을 방어하고 한국군을 함경도로 보냈으면 그런 패퇴는 없었다. 8군을 지꼴리는대로 떼내서 분리해 지휘한거 자체가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이야. 그러니 워커가 속이 터지지. 미합참은 야마가 돌고 미군 수뇌들 전부 맥아더에게 등을 돌린다. 트루만이 자르기 전에 미합참에서 저거 잘라야 한다는 결심을 하고있었다는거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user-qi6uu7on7d 6.25 당시에 기동전이 사용된 케이스는 없습니다. 북조선 인민군이 3일 만에 서울을 점령한 전술은 소련군이 즐겨 쓰던 '종심 타격 전술' 입니다. 지금 만물상자가 거론한 망치/모루 라는 표현이 재밌는데요. 실상.... 그게 '종심 타격 이론'의 핵심 입니다.
@user-lk5te3dt4f
@user-lk5te3dt4f Ай бұрын
@@user-qi6uu7on7d 종심 타격 전술을 기동전이라 칭하지는 않습니다. 기동전이라는 것은 빠른 공격으로 적을 헤집고 다니며 적진을 파괴하는 전술로 이는 2차대전 당시에 유럽 전선에서 연합군 제 3군 사령관 조지 패튼이 구사한 전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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