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복 선생님 말씀은 더하는거 빼는거없이 사실에 근거한 말씀만 하시는거 같아서 신뢰가 많이가고 배울점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항상 건강하셔서 우리민족을 위해서 큰일을 하시길 기원합니다
@김광희-c8m28 күн бұрын
성함이 이민복 선생님이었군요 난 이런 분들이 북한전문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우리 북한 전문가 딱지 달고 나온 사람들 보면 하나같이 선입관과 편향적인 생각으로 분석하는 것을 보면 참 옛날 반공사상 교육에서 단 1도 변한게 없구나하는 생각을 합니다
@BK-fm1fd28 күн бұрын
@@김광희-c8m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OK-xe6cx17 күн бұрын
80년대 중반에 서율에 수해 날때 북한에서 수해 물자 온 물품을 받고 담요 쌀 물건들이 여기 수준 하고 비교도 안되게 나쁘고 쌀도 질이 너무 안좋아 밥은 못해 먹고 가래 떡을 빼 먹었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대한민국-j7r29 күн бұрын
60년대 초등학교 시절 우연히 집 마당에 떨어져있던 북한이 보낸 삐라를 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내용을 보니 한가족이 식사하는 사진이 실려있는데 평범한 식단에 사과가 올려져 있는 사진이었어요. 그때 어린 마음에 사과가 뭐라고 그 걸 식단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었나 하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GwangMo21 күн бұрын
60년대에도 사과정도는 그냥 먹었군요 바나나는 귀한거처럼 나와서 과일자체가 다 비쌀줄 알았네요
@김구니-m6h20 күн бұрын
바나나는 생산이 안 되니 비쌌죠
@JHK-vh2rm19 күн бұрын
@@GwangMo 86년도에 어머니가 바나나 1개(1송이 아님)를 1천원 주고 사셨습니다. 그 때 과자 한봉지가 100원하던 시절이니까 거의 바나나 1개를 1만원 주고 사신 셈이죠. 수입산 과일인데다 유통 보관 기술이 떨어지던 시절이니 비쌀 수 밖에요. 귤이나 사과 수박 같은 제철 과일들은 오히려 지금보다 예전이 더 저렴했습니다. 박스로 사다 놓고 먹었던 기억이 나네요.
60년대를 산 사람으로 공감합니다.정확한 분석입니다.남한은 체제 상으로 어렵게 산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열심히 노력하면 대부분은 굶지는 않았습니다.
@박정훈-b9q27 күн бұрын
가난한사람들은 노력하지않는다는거죠??
@jaykay610427 күн бұрын
@@박정훈-b9q 이런넘꼭있더라 ㅋ
@AJ_0085023 күн бұрын
@@박정훈-b9q 본인은 60년대에 사지 멀쩡하고 열심히 노력했는데 굶었나요?
@GwangMo21 күн бұрын
@@박정훈-b9q 틀린말이 아니긴 한게 솔직히 알바만 해도 먹고는 삶 저 분이 말하는건 에초에 굶는걸 말하는거라서 가난하다 이런게 아니라서 ㅠ
@소농익18 күн бұрын
텔레비전 없던시절 1960년대 영화 관람인구가 2000년대 초반보다 많았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아인핑29 күн бұрын
가장 중요한 것은 내꺼가 되는 것인데 북한은 내꺼가 없다. 어떤 놈이 신경써서 일하겠는가.
@대우제우스29 күн бұрын
이분은 참 이야기 재미있고 쉽게 해주셔서 좋아요.
@본명-f4q29 күн бұрын
구조와 원리, 원인과 결과를 잘 설명하시는 것 같습니다. 다른 탈북민들에게 들어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일목요연한 연관성이 알기 쉽게 설명된 것 같아 좋았습니다.
@뽀창29 күн бұрын
역시 북한얘기는 북한에서 살다온 사람이 찐이다
@linlin-fs6bu29 күн бұрын
말을 어쩜 저리 잘하실까요- 잘 이해되고 더 듣고 싶어지네요 너무 신기한 이야기들이에요 북한의 실상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북한이 무너지는건 얼마 남지 않은것 같네요
@upiyo5928 күн бұрын
입담이 참 좋으시네요... 재미있게 듣고 갑니다. 앞으로도 건승 하시길 바랍니다.
@또리또리-k7e28 күн бұрын
진짜 재밌게 말하시네요 시간가는줄 모르고 봤어요
@jaehwanlee330128 күн бұрын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솔직하고 깊이있는 말씀 감사합니다.
@영애이-i7x3 күн бұрын
다맞는말씀이십니다 현명하십니다
@누룩보리28 күн бұрын
21:06 그 때 북한에서 쌀 왔다고 학교에서 애들한테 기념품(?)처럼 일인당 한 주먹 정도씩 줘서 받았던 기억이 나네요. 어린 나이에 보기에도 우리집에 있던 쌀보다 안 좋아 보였는데 집에 와서 식구들한테 보여주고 그냥 버렸던 거 같아요.
@리아-p5v22 күн бұрын
아~~북에서 쌀도 보냈군요..
@younghunkwon550428 күн бұрын
이민복선생님의 말씀에 동감...남한이 6~70년대에 북한보다 못살았다 하는데 그당시의 생활상을 뉴스나 영화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수있다
@user-ss43228 күн бұрын
일제가 물려 준 것 때문에 잠시 공업 계통은 북이 앞섰지만 식량(넓은 땅, 미국 원조)이라든지 이 부분은 한 번도 남한이 북한에 뒤진 적이 없었지요.
@yunsookim89128 күн бұрын
50년생 초등생 3. 4학년때 학교에서 미국 구호품 딱딱한 우유덩어리를배급주었읍니다.그것을쩌서먹었읍니다.
@user-ss43228 күн бұрын
@@yunsookim891 생생하네요
@zerogyok941025 күн бұрын
못살았어여...완전한 역전은 85년입니다. 75년부터 gdp는 역전했어도 인프라가 북한보다 못해서 역전했다고 말할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85년도까지 사는게 비등비등했습니다. 한국이 88올림픽개최한다고 북한이 무리하게 세계청년학생축전한다고 스스로 몰락해서 그때 부터 완전히 역전했죠
@sanmicheal675425 күн бұрын
@@zerogyok9410 웃고갑니다
@plohoho29 күн бұрын
30:34 이민복 선생님 순간 욱해서 욕을ㅋㅋㅋ😂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susanna702723 күн бұрын
이분 엘리트 과학자 말씀을 흥미 진진하게 정말 정말 잘 들었습니다. 피상적으로 겉핧기로만 알았던 것들을 비로소 제대로 잘알게 되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듣게되길 바랍니다고맙습니다❤
@구과자25 күн бұрын
집중해서 30분 순삭이네요. 감사합니다.
@ccozil28 күн бұрын
이런 얘기를 듣고 아직도 친북 좌파 사회주의 떠드는 인간들은 정신 차려라
@Horimjk27 күн бұрын
민노총이 대놓고 북한지령 수행하는 나라가 된 이유는 남 잘되는꼴 보느니 북한으로 회귀하고 싶은 놈들이 많은 거겠져😢
@슈티-m7h23 күн бұрын
60년대. 70년대의 남한과 북한의 분석 놀랍습니다. 너무 이해 잘되게 설명해 주셨네요. 그당시 한국에 사시지도 않았는데, 대단하십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북한이 발전못하는 이유는 이민복선생님같은 훌륭한 분을 탈북하게 만드는 구조때문인것 같습니다. 탈북민들 보면 정말 똑똑한 분이 많은것 같습니다.~~
@정은혜-m6l28 күн бұрын
정말 우리가잘모르는 부분을 훤히아시는 분입니다 통일을위해 힘써주세요 건강하시구요
@starry_forest28 күн бұрын
말씀도 잘하시고 편집도 잘하셔서 그런지 집중해서 끝까지 보게 되네요!! 앞으로도 영상 부탁드립니다😊
@guestindia473128 күн бұрын
선생님 귀한말씀 더많이 듣고싶어요
@gyuhocho319822 күн бұрын
이분 대한민국에서 크게 써도 될분으로 보입니다, 아주 똑똑해 보이고,,,
@김한준-e3h6 күн бұрын
재밋게 말씀하시고..100% 공감. ㅎ
@Dacover-tw5sj29 күн бұрын
믿고 봅니다👍🏻
@세상연구소29 күн бұрын
감사합니다🙌
@정강수-u4n28 күн бұрын
우수 인재를. 숙청 했어요....나라는 인재가 중요해요...❤❤❤
@paulhan100028 күн бұрын
이 민복선생님 분석이 대충 맞는것 같네요. 시골중에서도 산골짜기 같은곳에어 산 사람들을 제외해놓고 1960년대말이나 1970년대초까지 밥을 굶는다던가? 기름 쌀 설탕등을 공급받으면 월급이 축나는 그정도로 못살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지금 73세인데 제가 중고등학교 다닐때도 박정희정부가 쌀수입을 막기위해 혼식을 장려했던 기간은 있었지만 못살아서가 아닙니다. 제가 대학 초년시절인 1970년대 초에는 그 덕분에 쌀먹걸리는 밀주나 동동주로만 먹을 수있었고 밀, 조, 옥수수등으로 만든 막걸리가 유행이었지요. 그때 박정희정부를 많이 욕했고, 데모의 이유중의 하나도 그런것을 통제하고 자유를 억압당했다고 생각했던 대학생들이 학교문을 뛰쳐나온것이지요. 생긱해보면 정부가 각종 게엄령발동해서 탄압하면 할수록 대학생들의 항거는 꺾어지 않았고 결국 1979년 박정희가. 민심을 읽은 측근에 의해 사살되는 사건을 맞게된 것입니다. 물론 개인적 감정도 훗날 개입된게 밝혀졌지만.. 암살자왈 '유신의 원흉인 박정희의 심장을 쐈다'고 최후진술을 했답니다. 내가 중고등학교 다니던 1960대 중반이후도 단 한번도 쌀이 없어서 굶어본적 없으며 고기국이며 각종반찬을 지금은 지겨워서 안먹지만. 당시에는 중산층이상은 다 잘먹고 살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저는 도시 출신이라(광주출신이고 고등학교때 서울로 올라옴) 대부분 저같은 환경이었다고 기억하고 시골 출신들은 좀 더 다른 기억이 있을 수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때나 지금이나 땅, 좋은집갖는것을 원해서 저축을 미덕으로 생각해서 대부분 먹는것에 돈을 사용하지않고 저축을 많이 했던 시절이니까요. 결론적으로 이 선생님 말씀대로 공산주의 시스템은 절대 사유재산을 보장해주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이길 수없다는것은 역사가 증명한 자명한 사실입니다
@인생이레이스화이팅동28 күн бұрын
어떻게든 통일되면 한달 정도 이분 동영상 계속 북한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찐북한사람도 많이 동화될듯
@박병호-o4r29 күн бұрын
1984년 수해물자 쌀을 서울 마포구 망원동 주민들이 받았는데 밥을 지어보니 냄새가 나서 모두 팥앙꼬를 넣어만든 바람떡을 만들어 먹었데요.
@코난-y5v4 күн бұрын
그래도 쌀은 떡 먹었다던가 그냥 먹을만했다 케바케인데 옷이나 콘크리트는 도저히 못쓴다고 버리거나 그냥 보관용으로 썻다고함
@leesmr-t7i28 күн бұрын
잘살긴 뭐가 잘살아. 겨우 배급받아 끼니 때운거지, 그것도 일제의 잔재 덕이지. 지금도 일제가 만들어놓은 철도 그대로니..
@이경재-n9m28 күн бұрын
우리 삼촌은 일제때 굶어 죽었다 지금은 최소한 먹는걸로 걱정은 안한다 이게 자유민주주의 우월성 때문이라고 생각함
@한상철-m6y28 күн бұрын
뇌피셜 쩔고요. 일제 치하에 한반도 인구 2배됨.식량사정이 안좋으면 가능하나?
@이경재-n9m28 күн бұрын
@한상철-m6y 뇌피셜같은 소리하네 그럼 굶어죽는 북한 인구는 계속늘고 있는데 ㅋㅋ 멍청한거 아님 1950년대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증가하고 있는데
@한상철-m6y28 күн бұрын
@@이경재-n9m 35년동안 두배가 늘었는데 식량사정이 부족한 상태에서 가능하나?
@이경재-n9m28 күн бұрын
@@한상철-m6y ㅋㅋ 야이 멍청하네 이런것도 설명해져야 하나 많이죽는 만큼 많이낳지 ㅋㅋ 식량때문에 아니고. 요즘은 인구지리도 안배우나 다산다사 조선시대도 피임했다고 해보지 왜
@이경재-n9m28 күн бұрын
@@한상철-m6y 식량이 없어도 인구는 늘지 많이 낳으면 이걸 꼭 설명해져야 하나 인구증가는 식량하고 별로 상관없다 많이죽으니까 상대적으로 더 많이 낳는거냐 멍청아
@pincasMK21 күн бұрын
84년 수해물자받은 한국에서는 그걸 각 초등학교에 교육용 자료로 배포했었죠...이렇게 질낮은 물건으로 산다고...
@배고픈공룡-o5u28 күн бұрын
70년대부터 확실히 역전 되었을겁니다 80년대부터는 비교 불가 하고요 이시기 부터는 북한은 전투기도 제대로 뜨지도 못해서 북한 영공은 텅 비워져 있었지요
그 쌀로 떡 해먹은 일인입니다. 송파에 살았더랬는데 고2때 담임 선생님 집이 풍납동이셔서 수해를 입어서 1층에 사셨는데 정말 구들장이 주저앉았더라구요... 쌀하고 옷감을 받으셨다고 학교에 가져오셨는데 쌀 색이 너무 검어서 놀랬었고 옷감이 이불 호청으로도 쓰기어려울 정도로 뻣뻣하고 염색이나 무늬 기술도 낮았던 기억이 나네요. 결국 선생님께서 도저히 밥으로 못 먹겠다고 하셔서 저희에게 쌀을 주셔서 그당시 저와 부반장이 어머니들께 부탁해서 백설기해서 반에서 나눠 먹기로 하고 떡을 맡겼는데 어머니가 나중에 말씀 해주셨는데 떡집에서 이렇게만으로는 할 수 없다고 해서 훨씬 많은 백미를 사서 떡을 했는데도 떡 색이 거무튀튀했던 기억이 나네요...학급비 걷어서 떡해먹기로 했는데 어머니들이 더 돈을 들여서 떡 해주셨던 기억이... 역사적이긴 했네요 84년 가을 북한쌀을 서울 한복판에서 먹어봤으니...
@sanmicheal675428 күн бұрын
@@이지영-x6c5e 5년 지난쌀이라 하니 ㅋㅋ 그거 알았으면 아무도 안먹었을듯.. 1984년이면 밥이 아쉬운 시절은 지났을텐데
@이지영-x6c5e28 күн бұрын
@sanmicheal6754 그래도 북한 동포들이 보낸 귀한 쌀이라고 버릴 수는 없다고 하셔서 떡해서 나눠먹자 했던걸로 기억해요~^^넘치는 동포애♡
@Woney_GoodLife27 күн бұрын
저런 북한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체 어떤 정신머리들인지... 😂
@drivingkorea838228 күн бұрын
78년에 초딩 2학년이었는데 그냥 보통동네에 살았는데 고기반찬은 귀했지만 쌀밥은 당연히 먹었고 반에 굶는 아이는 없었다. 한반 70명정도되면 2-3명정도는 집에 포니승용차가 있었고 거의 집집마다 흑백 tv가 있었다. 70년대까지 북한이 더 잘살았다는 개소리에 웃고간다.
@sanmicheal675425 күн бұрын
@@drivingkorea8382 심지어 60년대에도 아버지 식탁에 계란 반찬이 올라가는 집 많았습니다. 계란보고 우와 계란이다!! 하고 환장할 정도가 아니었음. 대한민국이 북한보다 못살았다 하는 사람들 특징보면 1.GDP 차이가 난다 (과연 폐쇄국가 북한 기록이 정확한가요? 그마저도 분배가 제대로 되었는지 위문) 2. 하위 20퍼센트의 예시를 들며 그게 대한민국 전체 모습인냥 말함 3. 경제 지표만 보고 더 낫다 못한다를 떠드는데 사회 분위기, 문화생활, 자유지수 등을 무시함. 북한은 타 사회국가보다 더 폐쇄적이고 그 무시무시한 박정희 독재정권보다 더 미친 애들이었음
@zhfjeidj24 күн бұрын
도시 살아서 그런거지 그때만해도 도시화가 10%나 됐을까? 인구 대부분은 농사지으면서 살던 시절임 시내에 사는 사람은 이해할수가 없음
@myosooksung919128 күн бұрын
이민복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 난 임진강 특수지역에서 살았지요 60년대 중반 부터 흑백티비를 보면 심야 시간이되면 라디오 티비 다 잡혀서 매일 듣고 보았어요 형편없고 어색하고 촌스럽다는 기억이고 자유롭지 않고 틀에찍은것 같은 삶이란 느낌을 받았어요 북쪽이 더 좋았다면 아마도 그때 간첩에게 포섭되고 학생때 이미 발목잡힌 김일성 장학생이 되어서 지금까지도 빨갱이 짓을 했을겁니다 미국 한국 북한을 분명하게 보고 구별하는 사고가 있었기에 지금것 건전하게 국가관이 있습니다 공산국가는 한계점에 도달하게 된다는 구조를 알게된겁니다 이선생님 방송에 자주나오셔서 알려주세요 쏘 탱뀨우.
@홍영택-u1i25 күн бұрын
남한돈으로 지어준 건물을 보란듯이 폭파시키는 것 보고, 이게 현실인지 영화인지 순간 헷갈렸다
@BattleE.29 күн бұрын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이상에 가까움 인간의 이기심은 한계가 없기에 그나마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결합이 합리적 독재를 감시하며 헌법을 준수하는 국가가 선진국이라 하겠죠. 북한이 쉽게 망하진 않겠지만 이대로가면 차이는 더욱 벌어지니 북한주민이 안타까울 뿐
70년대 부산시에서 살아봐서 생생하게 알아요. 도시외곽은 시골에서 돈벌러온 가난한 사람들 임시숙소 개념으로 가난해 보일지언정 그런 임시 마을단위가 곳곳에 있었고 실제 도시는 차를 보유하기 시작했을 시기였음. 쌀밥 먹는건 기본이고 간식과자등 사먹고 전자오락실이 시작될 시점. 전반적으로 70년대 기억으로는 북한보다 많이 잘살은것 같음.도시 외곽의 돈벌러 상경한 막 시작된 마을단위를 보고 판단하면 안되지요.
@sanmicheal675425 күн бұрын
@@엑스칼리버-m8v 부모님께서 경북 예천의 시골에서 사셨는데(55년생) 동네에 몇몇집이 돈이 없어서 고등학교 진학을 못했지만 밥을 못먹어서 굶거나 계란이 귀해서 우와!!! 하던 정도는 아니었다 하셨습니다. 자칭 당시 공업대국이라 주장하는 북한은 계란도 제대로 구경하기 어려웠다는데 그 공업대국으로 번돈 분배도 못하면 그게 어떻게 대한민국 보다 낫다 볼 수 있는지? 백번 양보해서 경제력이 그렇다쳐도 그 이외의 사회 분위기가 다른 사회주의 국가와 비교도 못할 만큼 최악인데 북한이 낫다니 참.. 단순 GDP 기록만 보고 북한이 대한민국보다 잘 살았다는 주장을 하는 애들은 뭘까요?
@엑스칼리버-m8v25 күн бұрын
@sanmicheal6754 GDP 기준은 북한인구수가 작아 그럴수도 있겠지만 북한통계를 믿나요? 그냥 잘산다고 주작한 정신승리 통계였을 겁니다. 전쟁후 한번도 제대로 잘산것 같지는 않아 보입니다.
@이정현-h1i6m23 күн бұрын
@@sanmicheal6754그냥 북한의 인구통계사 gdp가 허위일 가능성이 높음. 평균적으로 남한이 처음부터 끝까지 잘살았음.
@멸공-e2s21 күн бұрын
어릴때 고모가 북한쌀 지원받았다고 우리집에 가져왔었는데 진짜 너무 맛없어서 개밥끓이는 통에 넣고 국수 먹었던 기억이ㅋㅋㅋ 어무이가 전화로 이거 맛대가리 없다고 쌀 맞냐고 개밥끓였다고 하니까 고모가 하는말이 나도 개줬어ㅋㅋㅋㅋㅋㅋ
@lwmanofman26 күн бұрын
이북이 우리보다 잘 살던때는 60년대입니다. 71년쯤부터 북한보다 남한이 잘 살기 시작했어요.
@김광희-c8m28 күн бұрын
이런분이 진짜 북한전문가이다 명판만 북한전문가 학위를 가지고 선입견과 편향적 사고관으로 분석하는 것들을 보면 가관도 아니다
@부룽-x8g28 күн бұрын
자꾸 세월이 지났다고 북한이 우리보다 잘 살았으니 뭐니 하는데 조금 덜 빈천한 때가 잠깐 있었나 모를 정도에 불과 한거 아닙니까 50-60년대 남북한 경제는 미국과 소련(USSR)의 원조 경제에 불과한 시절 이죠 그나마 공산권은 지들끼리 돌려막기 경제에 의존해 약간의 지탱돌이 되었고 당시 북한은 소련의 엄청난 원조를 받았는데 그것은 전세계에서 소련이 지원하는 공산국가중에 쿠바 다음으로 많은 지원을 북한에 했었죠 그러나 그 지원도 점차 줄었고 북한은 이미 70년대 초 보급이 나빠지기 시작하였다고 남북한 7.4공동 성명당시 북한 관리들이 남한 대표단들에게 털어 놓은 적도 있었죠 친분있는 자들이 은밀한 속내들 비췄다고 하죠 그러니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민족의 한쪽이 잘못된 정권이 들어서서 얼마나 민족에 고통을 주고 있습니까 공산권의 가장 모범이며 교과서적이며 가장 부유했던 동독도 서독이 통일하고 보니 인프라나 산업기반이 써 먹을것이 없었죠 무려 30년 이상 사회기반시설부터 공업시설을 싹다 갈아 치웠죠 그 30년동안 막강한 독일 경제가 휘청일정도로 엄청난 재정적으로 함든 통합이었죠
@elephanthwang326628 күн бұрын
북한이 이전에남보다잘산이유는 공장과전기시설이 다 북에잇엇기때문이지 마치 북이 잘해서 그쪽이잘산것으로말하는것은 아닌듯
@코코윈28 күн бұрын
정치가 혼란스러운 대한민국 제발 국민들이여 일하는 국회의원을 뽑으세요 호남인들이여 깨어나라 좌파들이여 깨어나라 우파들이여 도덕적으로 깨어나라 ...
@Gkdm14112 күн бұрын
74년~75년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1인당 경제 수준이 평균적으로 더 잘살았고 74년~75년부터 남한이 북한보다 1인당 경제적 평균 수준이 역전되면서 잘 살기 시작했음.... 국가 규모는 인구가 남한이 북한보다 2배 가량 많아서 그 이전에 이미 앞섰을 뿐... 1인당 경제적 생활 수준은 평균적으로 봤을 때 남한이 역전한 건 74년~75년 정도라 보면 됩니다.
@user-dc4dd1fo6d12 күн бұрын
74년~75년 당시 남한 '보다' 나았던거지 단 한번도 전세계 평균 이상인적이 없었죠. 항상 빈곤했습니다.
@Gkdm14112 күн бұрын
@user-dc4dd1fo6d 전세계 평균하고 비교하게엔 좀 그렇고.... 남한 북한 서로 간에 비교했을 때 기준
@정규태-k7r28 күн бұрын
2008년 개성공단에 일하러가서 내가 본 북조선은 남한의60년대수준이었다!.....북조선이 남한을 앞섰었다고하는데 1960년대 까지는 앞설수있었겠지만 북조선은 거기서 딱 멈춰있다!.....ㅋㅎㅎㅎㅎ
@지쟈스-f1e29 күн бұрын
🎉🎉🎉선생님..행복하시길🎉🎉🎉
@スミヤマ29 күн бұрын
19:57 “공산주의는 공상주의야“로 말씀하셨는데 자막이 잘못됐네요.
@고구마좋아하는사람25 күн бұрын
한국 경제 학자가 그러더 군요 60~70초반 까지 남북한이 다 못살았다고 합니다 한국보다 조금 나은 적은 있었어도 세계적인 기준으로 북한이 잘살았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trinity120322 күн бұрын
그거 믿지 마세요.
@HwanaPARK16 күн бұрын
26:50 진짜 너무 넘쳐서 단백질 위주의 식단도 있죠...ㅎㅎ 저탄고지라는 식단도 있고...ㅎㅎ
@피터팬-d2o29 күн бұрын
해방 이후 태어난 사람들의 남북 신장비교를 하면 남한 사람이 더 큽니다. 해가 지날수록 격차가 커집니다. 50년대, 60년대에 이미 남한 사람들이 대체로 더 잘 먹었으니까 그런 겁니다. 탈북민들 연령별 신장조사한 뉴스가 검색하면 나옵니다. 역시 박사님은 객관적으로 분석하려고 하니 낭설에 휘둘리지 않는군요. 그릇된 인식의 원인분석까지, 매우 좋습니다.
@박승-v8j26 күн бұрын
북한경제가 남한에 역전된 시기는 70년대 초반부터 이미 역전 됐다고 봅니다. 언론에서 80년 초까지 서울홍수, 흉작사태가 나니깐 북한에 긴급구호품 조금 받았다고 그때까지 북한보다 못살았지 않았나 이것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북한에 얻어 먹었다고 못사는 것으로 보는데 전혀 안그렇습니다. 80년대 중반이 아라 70년대 초반부터 북한보다 잘 살기 시작 했습니다. 선생님의 추론이 맞습니다. 제가 올해 나이 46살 이지만 어렸을때도 3끼 다 먹고 자랐으니깐. 물론 두끼 먹는 집들도 좀 있긴 있었어요. 그건 아주 못 사는 사람들이고 거의 대부분은 3끼다 먹고 살았어요.. 지금보다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sanmicheal675425 күн бұрын
@@박승-v8j 70년대 초반도 넉넉히 봐줘서 그럴듯요.
@trinity120322 күн бұрын
70년대 때 북한 보다 못살았네 어쩌네 하는데 70년대 부터는 적어도 남한에서 밥 굶어 죽는 일은 없었습니다. 자가용도 가지기 시작했죠. 제가 77년생인데 제가 태어 날 적이나 80년대 초반만 해도 남한 중산층 보다 좀 못해도 무리를 좀 하면 일반 가정에서 포니 정도는 굴렸습니다. 물론 흔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북한이 잘살았다고 하던 시절보다는 남한이 북한보다 자동차가 더 많았다고 봅니다.
@Gkdm14112 күн бұрын
74년~75년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1인당 경제 수준이 평균적으로 더 잘살았고 74년~75년부터 남한이 북한보다 1인당 경제적 평균 수준이 역전되면서 잘 살기 시작했음....
@zayhun13 күн бұрын
당신이 이민복 이군요.... 덕분에 군생활 힘들게 했습니다... 주말항시대기...
@한상철-m6y28 күн бұрын
그나마 60년대까지 북한이 잘산건 북한이 잘해서도 아님. 일제가 남기고 간 산업시설의 대부분이 북한에 있었기 때문에 이를기반으로 60년대 까진 잘나감
@이진-w8n16 күн бұрын
북한이남한보다. 잘산적이없습니다.
@soon.jee.28 күн бұрын
남쪽보다. 잘살앟ㅇ는게아니라..똑같이 6.25격고 난후 같은입장인상태에서 일본의 문몰들이 많이들어가서입니다.. 그런상황에 박정희대통령께서 일본과의 협의과정에서 엄청난정말어마어마한돈을받아서 경부고속도로를 만들면서부터 북한에 뒤지지 않을려고 엄청나게노력한결과입니다..
@user-ssfgh321dgh5425 күн бұрын
추가로 6.25당시 낙동강방어선의 지역에서 젊은 청년들도 나라지킨다고 하자. 이승만대통령이 너희들은 미래를 위한 사람들이다. 공부해라. 라고 하셧고 전쟁이후 이 청년들을 국비로 미국 독일 일본 영국 등으로 유학 보내엇죠. 박정희대통령 시절 이 유학생들이 공부 마치고 돌아와 도로 빌딩 건설, 철강, 전자, 자동차 등등 분야에서 열심히 일을 햇죠
@soon.jee.24 күн бұрын
@user-ssfgh321dgh54 맞는말씀입니다.
@Horimjk27 күн бұрын
사회주의는 파멸뿐이죠. 그런데도 베네수엘라를 훌륭하다고 하는 대통령 뽑는 국민 수준.
@이해경-p8k27 күн бұрын
국민학교 3학년때 수해가 나서 북한쌀 받았는데 도저히 밥을 해먹을수 없는 질이 낮은 쌀이라서 떡을 해서 이웃들과 나누어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kakaru143223 күн бұрын
북한과 싱가포르를 보면 독재국가의 극과극을 보는 느낌 누가 통치하냐에 따라서 너무나 크게 달라짐
@박피넛16 күн бұрын
일제시절 때 북한에 그 많던 비료공장 공업시설들을 가져놓고도 아무것도 없던 우리랑 시작점부터 다르게 시작했음에도 그걸 활용 못하니.. 😢
@user-ss43228 күн бұрын
일제가 물려 준 것 때문에 공업 계통은 북이 잠시 앞섰지만 식량이라든지 이 부분은 한 번도 남한이 북한에 뒤진 적이 없었지요. 그 증거로 신장(키)를 보면 당시를 살던 분들이 북한 처럼은 작지 않아요. 😀😀😀😀😋😋😛
@SBC_Nomadism29 күн бұрын
개가 짖는 이유는 무서워서.. 진리..
@agm114425 күн бұрын
북한이 남한보다 앞선던 시절은, 북한이 잘살았던게 아니라 당시 남한이 세계 최빈국 수준이였기 때문이였습니다. 북한은 잘살았던 적이 없어요. GDP순위 100위 턱걸이 하던 수준을 벗어나본 적이 없습니다. 60년대까진 대한민국이 그 100위에도 못이를 정도로 바닥을 기다가 70년대 북한을 제치고 이후 격차를 쭉 벌여온겁니다.
@Sk72857 сағат бұрын
그 배급 잘 준다고 할때15일 배급 타면 딱7일 먹기 좋았죠.
@싸나이-t8l29 күн бұрын
기름이라는 게 식용유인가요?
@박원종-m7o24 күн бұрын
정확하고도 예리한 분석에 공감합니다. 60년대, 70년대 북한이 대한민국보다 잘 살았다고 헛소리하는 사람들 많은데 그때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살았던 사람으로서 그 시절에도 저의 집과 주변 사람들은 거의 모두 먹는 것 북한보다 훨씬 잘 먹고 살았어요. 비록 밀가루 막걸리지만 술도 실컷 먹고 안주도 각종 볶음류와 빈대떡, 튀김류 같은 것들도 많이먹었어요. 그 시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한보다 훨씬 잘 살았는데 선생님 말씀대로 일부 극빈층과 비교하여 거짓 선전한 게 맞아요.
@Gkdm14112 күн бұрын
74년~75년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1인당 경제 수준이 평균적으로 더 잘살았고 74년~75년부터 남한이 북한보다 1인당 경제적 평균 수준이 역전되면서 잘 살기 시작했음....
@matthewshin894028 күн бұрын
이민복님 역시 과학자답게 정확한 분석을 하시네요. 69년도에 초교 졸업할 때, 그 때 우리는 이미 학급 동창들 거의 대부분 허기를 몰랐고 70년대부터는 북한과 비교가 안된다고 봅니다.
@aejakammerer702328 күн бұрын
존경하는 이민복 선생님. 모든 설명은 아마 민주주의 나라에선 몽땅 맞고 심리로, 원리로 설명되고, 압니다. 다만 단 한가지 이해못하는것은 : 왜 영웅이 없읍니까 ??? 우린 역사적으로 항상 반대하는 사람이나 , 무리 들이 신라.고구려. 등등.... 잇었고, 그 한사람이 목숨 바쳐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는데.... 그럼 북한엔 목숨바쳐서 애국운동 왜 못했나요? 총살하면 죽고, 죽을수록 애국운동이 더 심하게 됏어야 됄텐데.... 아무리 국민들 교육 못하게 햇어도 . 유전자는 잇었고, 엘리트들이 왜 반항 안했읍니까 ??? 목숨 (?).. 가족 (?).. 우선 나라살릴려는 용감한 사람 없엇나요 ????? 1950 -- 2024년 년 동안 ???? 독일에서 질문합니다. 도통 이문제가 이해못하겠읍니다.
@critical-ee25 күн бұрын
북한이 폭망한게 아니라 그냥 발전없이 그대로 쭈욱 온거 같은데... 남한은 꾸준히 발전해온거고~
@James04010729 күн бұрын
김정은이 한테 우리나라 중2들만 좀 교육하라고 해도 피꺼솟으로 디질 듯.. 솔직히 공산사회가 통제가 잘 되고 다스리기는 쉬울 듯.. 한국은 사람들의 의견만 해도 5천만개가 넘는데.. 마지막 말이 옳으신 듯
@bsKim-jd4or28 күн бұрын
도대체 언제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다는거지? 50년대 전후에는 둘다 사는 게 더럽게 어려웠고 60년대 남한이 결코 북한보다 못살던 시기가 아니고 70년대는 남한이 절대적으로 앞서 나가던 시기다 70년대 누가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대? 당시 경제 지표를 비교나 하고 말하는건가? 80년대 이후로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워낙 차이가 벌어져서.
@jy-jn4cq28 күн бұрын
70년대까지는 북한이 잘산다는 서적들이 많았음. 주로 좌파 입장에서 쓴 서적들이겠지만 객관적으로 자료 수집은 하고 쓴 것임. 그 자료가 북한 주장이 대부분일듯 하지만 자료수집은 한듯. 6,70년대생들은 독재국가시기여서 대학때 반독재 시위를 주로 하다보니 좌파사상이 학교 분위기를 주도하던 시기라 저런 주장이 자연스럽게 사실인줄 자리잡았지.. 공산주의가 워낙 후지고 가난하니 독재정권 없어지니 대학분위기도 좌파사상이 없어지기 시작했고..
@sanmicheal675428 күн бұрын
@@박인호-w6j 1960년대 대한늬우스나 엄마없는 하늘아래 같은 영화를 봐도 복지혜택을 못받은 최빈층정도 되야 못살지 평범한 가정만 되어도 북한보단 나은데 우리가 잘못배운거 같습니다. 먹는것만 봐도 아버지 밥상에 계란 1알은 꼭 올라가던데 북한은 그 계란마저도 특별한날 먹을 수 있다 하니..
@한상철-m6y28 күн бұрын
60년대 초반까진 북한이 더 잘살았음. 65년쯤 부터 역전되기 시작 70년부터는 남한의 우위가 시작
@leopardleopard666427 күн бұрын
70년대 남한 잘살았음 빈곤층 아직 많아서 그렇지 78년 사립도 아닌 공립초등 다닐때 우리반 70명 중 자가용 있는 집이 15명 정도 되었음 사립초등학교는 대부분 자가용 있었음 그런 사립초등학교가 서울에만 30개 넘었음
@이사람-p3h28 күн бұрын
잘 산다는 기준은 국가 총 생산을 인구수로 나눈겄임니다.
@바이킹-o6r29 күн бұрын
북한체재와 김정은돼지정권을 옹호하는자들이 한국에 득실대고 권력잡은 것이 크나큰 문제입니다
@겨울안개-h2r26 күн бұрын
북한이 남한보다 잘 살았다고하는데 그것은 일본 잔재로 남은 사회적 기반때문에 그렇다고하는데 아무리 그래도 남한은 보릿고개 시절빼고 북한보다 훨씬 잘먹었고 잘 살았습니다 60,70,80년대 쌀밥먹었고 북한은 아직도 강냉이죽 먹고있고 쌀이 귀한데 남한이 우월했습니다
@bellajeong226927 күн бұрын
사실은 남한은 단 한순간도 북한 보다 못산적이 없다. 땅땅땅ㆍ
@jgkwak-bt1hn28 күн бұрын
👍👍👍
@Minerva_1320 күн бұрын
07:05 무리죽음 ㅋㅋㅋ 이번에 탄핵찬성 잡회에서 나온 구호에 “오직 무리죽음 뿐이다”가 북한말이라더니 진짜 북한 출신이 쓰시네.
@정성-k8c9 күн бұрын
❤❤❤❤❤❤
@sunglaklak8 күн бұрын
14:34 자막오류
@레온-r2y18 күн бұрын
해외 경제 통계 보면 50년대 까지는 1인당 gdp가 북한이 두배정도 높았던게 사실인데 60년대부터 그 격차를 줄여서 60년대 후반쯤 역전한걸로 나오죠 70년대부터는 사실 격차가 엄청나게 커져갔던 시기이구요
@Gkdm14112 күн бұрын
74년~75년까지는 북한이 남한보다 1인당 경제 수준이 평균적으로 더 잘살았고 74년~75년부터 남한이 북한보다 1인당 경제적 평균 수준이 역전되면서 잘 살기 시작했음....
@이정현-h1i6m23 күн бұрын
공산권 허위 통계나 지방의 생활수준이 아예 안잡히는 것까지 고려하면 북한이 남한을 총합에서 앞섯던 적은 없을겁니다. 인구수 부터가 배 차이가 날거임.
@ganekim28 күн бұрын
초기 1, 2차산업에서의 성장은 입에 풀칠 할 정도지 그 이상도 아니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 법칙이 적용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이 잘 살았다는 허구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달리기시합을 하는데 한 사람은 출발하고 있고 한 사람은 운동복도 입지 않은 상태이기에 누가 더 잘 살고 못 살고 따지는 것은 무의미한거죠. 언론에서 객관적 입장만 보고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틀렸다라고 보기도 어렵지만 중요한건 시기와 기간이죠 얼마나 지속되었느냐.
@dada07128 күн бұрын
국민학교 때 북한에서 보낸 쌀 나눠줬던 기억이 있습니다. 돌이 들어있었고 신기해서 먹거봤던 기억이 있어요
@마봉수-o5h28 күн бұрын
애당초 남쪽이 농사가 더 잘되는데 일제가 남기고간 공업시설이 있었다한들 먹는문제는 남한이 나았겠죠
@고로짱-x3h29 күн бұрын
흡수통일 준비..
@낄끼빠빠-i4y28 күн бұрын
재료공학이 약하군요. 금속의 열처리를 통해서 내구성을 확보해야 하는데 그런 원천적인 기술 없이 겉만 보고 흉내만 내니까 되는 게 없군요.
@낄끼빠빠-i4y28 күн бұрын
84년에 79년 산 쌀을 보냈으니 고고고고고미를 보냈네요. 한국은 검침봉 꽂아서 샘플 채취하고 그걸고 감식하죠. 섬유도 쓸 수준이 안돼서 다 폐기하다시피 했지요. 한국은 쌀은 자급자족하고 남아서 쌀로 막걸리 빚고 있었는데요. 북한 쌀로 떡도 안만들었지요.
@똘총각-r3b28 күн бұрын
70년대에 북이 더 잘살았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빈부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 당시 서울의 대중 교통은 현재의 평양과 비교하지 못한다. 고속도로, 철도, 운송이 엄청났고 가난했어도 노력하여 먹고 싶은 것도 먹었다. 배급하는 경제체제와 비교 대상이 아니다.
@Naruhodo00028 күн бұрын
적화통일은 무슨, 평양 통치하기도 바빠죽겠는데
@ipman244429 күн бұрын
빈 수레가 요란하다
@정병창-y8w29 күн бұрын
그때 수해지원한다고 북한에서 보내준 쌀.. 당시 우리나라 정부미로 밥을 하면 맛이 없다고 군인들이 대민지원 나가면 일반미로 한 밥이 맛있다고 했다는데, 북한에서 온 쌀은 맛이 더 없어서. 하지만 북한이 고향인 피난민 출신 분들은 고향에서 온 쌀이라고 맛보려고 하셨다더군요.
@mooyook229 күн бұрын
대한뉴스에 나오는 당시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이 중산층입니다. 물론 하류층 사람들도 나와서 다니기는 하지요 이동과 거주의 자유가 있으니까요 70년대 초반 북한 영화보면 서울이나 평양이나 큰 차이는 없었던 것 맞아요. 겉에 건물이 아니라 건물들 내부의 인테리어랑 소품들 보면 어떤 것은 남한에도 없는 것들이 인테리어소품들이 배치가 되었더라구요. 반면에 어떤 것들은 가령 호텔이나 최상류층에서는 남한은 화려함에도 북한은 상류층임에도 소박한 것들로 되어 있고. 도시내 높은 빌딩들이 서울이 더 많았지만 내부로 들어가서 동네 건물들은 평양이 서울보다 더 나았습니다. 하층민을 따지자면 북한은 배급제를 하였고. 각종 통조림이 생산되었지만 남한은 실질적 경제 여유에서는 굶주리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즉 남한은 빈부격차의 심화가 북한보다 더 컸습니다. 60~70년대 초반까지는 전체적인 국가 경제 우위는 북한이 더 앞선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상류층급 이상에서는 남한이 북한보다 더 앞서구요. 다만. 50년대부터 이후 지금까지 북한은 이동의 자유와 거주의 자유,직업 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것. 반면에 남한은 이동.거주.직업 선택에 대한 자유가 있고. 이런 이유와 자본주의라는 정치 체제때문에 70년대 중반부터는 중류층의 경제적 삶도 남한이 북한보다 앞서게 되었고. 70년대 후반에 들어서야 하류층의 삶도 남한이 북한보다 앞서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