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결정하신 일의 무게와 인간의 자유의지가 얼마나 미약한지에 대해서 믿고 이해하여야 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로 하나님이 결정하신 일을 바꿀 수 없으며, 인간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서 악행을 벌이지만,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이기고 바꿀 수 있다는 것은 무신론적인 사고에 가깝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바를 끝까지 이루십니다. 애초에 무신론에서 시작된 질문이므로, 질문이 잘못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PARKDONGHUN-md1cq Жыл бұрын
하나님의 예정이 아니면 택함 받지 못 해서 구원에 이르지 못 한다는 말인데... 도덕적 무능력이고 뭐고가 왜 나오나요? 결국에는 구원받지 못 하는 모두는 자연적 무능력 상태이며 책임을 면제 받아야 할 것 같은데요...
@jeonghyeonchoi3530 Жыл бұрын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은 궤변입니다. 자유의지가 없다는 것은 사실상 이성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창 3:22에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다고 하시며 생명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선악과를 따먹고 이성을 잃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지혜로워 선악을 구별할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자유의지가 상실되었는가? 자유의지가 상실 되었다면 그 사람은 바보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선악을 분별할줄 알아 선과 악 중 하나를 택할 수 있는 지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을 선택하지 못하게 자유의지를 통제하는 법을 주신 것입니다. 곧 율법입니다. 그러니 자유의자가 없다면 법이 필요없는 것입니다. 그런 법을 주셨다는 것은 인간에게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입니다.
@원빈-f2r29 күн бұрын
자유의지를 잘 못 이해하고 계신 겁니다. 자유의지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게 자유의지가 아니고, 신학에서 말하는 자유의지는 선을 행 할 수 있는 의지가 자유의지입니다.
@drchoclinic497415 күн бұрын
@@원빈-f2r 만약에 사람에게 선을 행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없다면 그건 로보트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려는 의지를 발동할 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도와 주십니다.
@원빈-f2r15 күн бұрын
@@drchoclinic4974 남을 때리는건 자유라고 할 수 없습니다. 다른 나라에 핵을 떨어 떨어뜨리는 것도 자유일수 없습니다. 자유는 선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고, 최초의 인간은 자유의지 즉, 선을 선택할 수 있는 의지가 있었으나 아담이후로 자유의지를 상실했습니다. 자유의지는 죄와 관계된 용어입니다. 그러니까 자유의지가 상실됐다는던 인간이 선을 선택 할 수 있는 의지를 상실했다는겁니다. 그냥 내 머리속으로 생각하지 마시고 신학자들이 쓰는 용어들이 뭔지 책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drchoclinic497415 күн бұрын
타락한 사람의 형법도 의지적 무능력자에게는 그 죄의 책임을 묻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타락한 사람들 보다 더 난폭한 독재자로 만드는 장로교의 예정론은 기독교인들이 가장 혐오해야 할 교리입니다.
@정성-s7y3 жыл бұрын
하나님은 타락할걸 알고 지으신건가요?
@handle_plz_delete Жыл бұрын
타락할 가능성이 있는 건 알고 지으셨습니다. 우리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잘못될 여지가 전혀 없다고 생각하면서 낳지 않는 것 처럼요 .
@unknownwarrior84852 жыл бұрын
칼빈주의도 맞고 알미니안주의도 모두 맞습니다. 왜 하나님이 이 두가지를 허락하셨다고 생각합니까? 잘 생각해보세요 둘 다 필요하기때문입니다. 하나닝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가 함께하며 구원의 여정을 통하여 마지막까지 달려가서 마칠때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구원은 이루어진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자유의지의 핵심은 인간이 하나님을 선택할수있는 의지, 거부할수 있는 의지를 주셨기때문에 공평하신 하나님이신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지 인간의 자유의지는 하나님의 속성이십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분이시고 스스로 모든것을 하실거나 안하실수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cheolgoo5 ай бұрын
성경은 예수님의 구속사역과 그것을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으로 일관하는데 신학자들이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이것을 난도질 해놨다. 예수님의 구속사역은 은총이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것은 성도의 역할이다. 전적타락으로 믿을수조차 없다느니...그래서 예정되야하고 그렇지 않으면 유기되고...참...누가 이런 괴물같은 사상을 만들어놓았을까...이런것을 변호하려하니 앞뒤가 안맞고 점점더 시궁창으로 빠져든다.
@hoho6370 Жыл бұрын
여기 유튜브 내용들은 일반인에게 어렵고 혼란을 줄수있을법합니다. 유튜부님께서 이걸보시는분들의 신앙적 수준이 다다르고 성숙함이 다 다르다는것은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주시고 가이드라인을 정해주시면 좋겠네요.(성경도 문맥이아닌 몇줄몇줄씩 애기헸다가 문제가 많이생기지않습니까..? ) 이 유튜브 신앙의 후배들에게 추천하기가 어렵겠네요.
@캭하4 жыл бұрын
설득력 없네요. 지식이 있다고 책임이 있다 하는 것은 자유의지를 전제할 때나 성립되는 논리입니다.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자유의지가 없다면 책임은 없습니다. 책임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헷갈려하시는 듯. 결국 책임을 주장하려면 자유가 있어야 하고 자유를 주장하려면 예정론과 신의 전지에 대한 전통적 관념을 수정해야 하는데 보수적인 기독교계는 그러질 못하는 거죠. 아니 모든 것은 다 예정일 수 있어도 구원만큼은 자유의지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양립되려면 말이죠.
@adp-cvyip4 жыл бұрын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단순한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만한 지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개입치 않고 창조만 하셨다면 우리는 창조된대로 사는 것이고 자유의지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개입을 하셨고 자신을 알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영상 뒷부분에서처럼 하나님께서 책임을 묻지 않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아무런 도움도 없는 자들 말입니다. 이들은 전적으로 성경에 따라 타락의 길뿐이 걸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을 속이거나 고집을 피우며 하나님을 스스로 멀리하는 사람에게까지 자비를 베푸시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개입을 하셨고 사람은 선과 악 둘중 하나를 택하도록 자유의지가 주어졌으며 그에 대한 책임은 스스로 져야할 날이 각자에게 존재합니다.
@캭하4 жыл бұрын
@@adp-cvyip 그렇게 단순히 볼 것이 아니라, 이건 신의 전지와 자유의지가 양립불가능하다는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논의에 대한 결론은 신의 전지성 개념에 대한 고전적인 해석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는 걸로 끝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유의지는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 일반론적인 견해니까요.
@TV-pc2tr4 жыл бұрын
@언제나주의 주의님이 말씀하시는 개념은 존파이퍼 목사님의 위의 답변과는 다른 의견입니다
@adp-cvyip4 жыл бұрын
@@캭하 단순히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창조하신 분입니다 시간•공간•물질에 제약을 전혀 받지 않으시고 영원이라는 세계에 존재하시며 이 세상을 복합적으로 이끌어가시는 분입니다 나비효과를 아실 것입니다 나비의 펄럭임으로 저 쪽에서는 태풍이 불 수 있다라는, 아주 작은 원인에 의해 엄청난 결과가 도래될 수 있다는 이론이죠 하나님은 현재에 내가 손가락 하나를 까딱하는 것만으로도, 내가 눈 한번을 껌벅이는 것만으로도 무한정 바뀔 수 있는 미래를 이미 아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하루를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여기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실질적인 시간은 그대로 흐르지만, 누군가는 하루하루가 굉장히 느리게 가는 반면, 누군가는 일년이 벌써 다 갔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여기시는 1분, 1초의 시간은 사람과는 다르며 그 모든 순간들의 결과를 아시는 전지하신 분입니다 모든 요인들의 완전결말적 완성의 미래를 하나님은 전지하시기에 아십니다 그러나 신께서 전지하다고 하셔서 자유의지가 성립될 수 없지 않습니다 사람의 현재의 시점으로는 과거와 미래가 나누어져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과거나 미래가 없고 영원한 현재밖에 없습니다 시간 밖에서 시간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인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한 눈에 보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에게는 현재가 곧바로 과거가 되고, 현재는 발생하지 않은 미래를 마주하는 것으로 여기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입장에서의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전부 영원한 현재의 시점으로 보신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관점으로 살펴보겠습니다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관찰하였더니 자기 집 창문을 걸레로 닦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A가 B의 사실을 인지했다고 해서 B의 자유의지가 없어지지 않으며, B의 행동이 필연적으로 발생한 것도 아닙니다 B의 자유의지대로 집 창문을 닦는 것입니다 A를 하나님으로 바꾸어도 이는 똑같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이 바라보는 현재처럼 모든 순간을 "영원한 현재"의 시점으로 바라보신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이고 이를 신이 미리 안다면 그가 설계해둔 대로 움직이는 것이므로 자유의지와 전지는 양립불가능하다고 얘기하지만, 이것은 사람의 시간이라는 한계적인 부분을 이미 설정하고 내놓은 논리이기에 잘못된 것입니다 신을 우리 차원으로 내려놓고 잘못되었다고 한 것이죠 신은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습니다 그가 창조했기 때문입니다
@캭하4 жыл бұрын
@@adp-cvyip 시간 밖에 있든지 그렇지 않든지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해져 있는 이상 거기에는 자유의지가 없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라는 게 그런 개념인 겁니다. 사실 예정과 예지는 다른 개념이긴 한데 논리필연적으로 예지는 예정을 함의한다고 저는 보는 편입니다. 전지적 시점에서 특정한 값만이 '참'이라면(그렇게 전제했을 때) 반사실적 조건문들(다른 가능성들)은 반드시 '거짓'이어야 합니다 이는 특정한 값이 정해져 있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따라서 논리필연적으로 예지는 예정을 함의합니다. 그리고 특정한 값이 정해져 있는 결정론적 세계에서는 자유의지가 양립할 수 없습니다. 자유의지란 다른 가능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 그런 능력이라고 대부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고 하는 거구요 책임이 자유와 불과분의 관계를 가지는 것은 이러한 까닭입니다. 우리의 행동이 정해져 있고, 우리가 다른 가능성을 선택할 수 없다면 그것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아니라 오토마타인 겁니다. 오토마타에게는 책임을 따질 수 없습니다. 오토마타는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정해져 있는 것만을 택하는 것은 자유가 아닙니다. 그건 오토마타죠. 대부분이 그것을 자유라고 받아들이지 않아요. 놀랍게도 결정론과 자유의지가 양립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무신론 철학자들이 몇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참 흥미로운데요. 기독교인들이 주장하는 자유의지론과 매우 비슷한 주장을 하기 때문입니다. 즉 이 세상은 결정론적이지만 하여튼 자유의지가 있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자유의지론에 진지하게 동의하진 않습니다. 그러한 자유의지를 자유라고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한 자유의지는 자유의지 담론의 보편적인 틀 안에 있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편이라는 거예요. 즉 결정론과 양립시키기 위해 자유의지를 재정의한 것이라고 받아들여지는 편이라는 겁니다. 어쩌면 그러한 자유의지가 자유의지론의 미래적 비전일 순 있습니다. 자유의지에 대한 관념이 바뀔 수 있고 더 나아가 자유에 대한 관념이 바뀔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러한 자유의지는 이제껏 논의되어 왔던 그 자유의지와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이제껏 논의해왔던 자유의지는 궁극적인 자유, 결정되어 있지 않은 자유, 다른 가능성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입니다. 인간을 결코 오토마타라고 할 수 없는 그런 자유라는 거죠. 그러나 결정론과 양립하는 자유의지는 결코 그러한 자유의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신의 전지에 대한 고전적 해석은 결정론을 논리필연적으로 지지합니다. 따라서 저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의 책임을 긍정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자유의지를 주장할 수밖에 없고, 자유의지를 주장하고자 한다면 비결정론을 긍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비결정론을 긍정하는 이상 신의 전지에 대한 고전적 해석은 논리필연적으로 포기할 수밖에 없고, 그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의 전지에 대한 고전적 해석은 수정되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