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이 중국으로부터 장영실을 보호한 거 같은데? 조선과학발전에 대한 중국의 견제가 장난 아니었음. 신분차가 엄청났지만 두 사람은 둘도 없는 파트너이자 친구이자 동료였음. 애초에 세종은 장영실의 신분 따윈 따지지 않았음. 두 인물 모두 시대를 초월한 천재였거든..
@남과다른2 ай бұрын
니가 어떻게 알음? 그때 살앗음?
@siren70772 ай бұрын
@@남과다른 역사학자, pd는 그때 살았겠니 ㅉ
@남과다른2 ай бұрын
@@siren7077 역사학자 pd는 기록된걸로 말하는거고 니는 ‘두 사람은 둘도 없는 파트너이자 친구이자 동료였음…’ ㅇㅈㄹ 떠니 직접 보고서 말하는거냐고 물어본거지
@siren70772 ай бұрын
@@남과다른 조선시대 실록서 "세종과 관기의 소생 장영실은 동무였다"고 기록했겠냐 빡뇌야? 유추를 해야할 거 아냐.. 이딴 뇌통도 한글 갖고 놀고 있네. 세종만세다
@siren70772 ай бұрын
@@남과다른 그럼 조선시대 실록에 사관들이 라고 기록하겠냐? 유추가 뭔지 몰라?? 어후
@ylllooop2 ай бұрын
이정도면 세계유산 등재시켜야 하는거아님?
@johnjal25252 ай бұрын
대단하다
@htk34452 ай бұрын
기록의 민족 ㄷㄷㄷㄷㄷ
@user-kj9vb5lt7o2 ай бұрын
진짜 기록의 민족이죠 그래서 한국의 문화가 전세계를 휩쓰는 것이구요
@kdachan1168Ай бұрын
저 구슬은 계속 순환하나요? 아니면 구슬 다쓰면 작동을 멈추나요
@snowmochi13732 ай бұрын
그 옛날에 일식시간 예측을 15분 틀렸다고 곤장형?? ㄷㄷㄷ
@msk54722 ай бұрын
소리
@j.svaraba91932 ай бұрын
장영실의 실체는 드라마 퐁당퐁당러브 에서 영싫다 영실 김슬기가 말해줌
@오은총-g1g2 ай бұрын
한국에서는 천재가 나온다면 그건 불행 시기질투
@baek64682 ай бұрын
맞아 맞아 인간들이 질들이 나빠서 그런겁니다
@snowmochi13732 ай бұрын
@@baek6468종특 ㅅㅂ ㅋㅋㅋㅋㅋ
@user-ys2xi8fd6l2 ай бұрын
눈도 안보였음 거의 실명할 정도 였죠
@damdukbc37Ай бұрын
사실 노비출신이어서 양반들로부터 공격을 받았으나, 남이장군처럼 벼락출세를 한 천재들은 신분에 관계없이 시기질투의 대상이되고 희생양이 됨. 특히 한국이나 그리스같은 민족들은 남 유별나게 잘난 거 두고보지 못함.
@에라이-t9r2 ай бұрын
세종이 필요가 없어지니 장영실을 버린거지 천출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하는데 딱 좋은애가 장영실말고 누가 있어 장영실은 먹다버린 껌일 뿐이야 우린 조선이 자꾸 신분제 사회였단걸 깨닫지 못한다
@user-iq7lu2sj2n2 ай бұрын
그게 아니고 세종대왕 타는 수레가 바퀴가 빠져 대왕님이 바닥에 쓰러져 옆관료들이 ㅈㄹ해서 짤린거임
@user-ys2xi8fd6l2 ай бұрын
세종때는 신기전이 있었던 때니까 그만큼 중요한 시기였다
@haun-dz4og2 ай бұрын
그런데 ?.
@htk34452 ай бұрын
책 많이 안읽으면 글을 이렇게 쓰게됩니다 여러분
@user-ys2xi8fd6l2 ай бұрын
@@htk3445 그래서요 ㅋ ㅋ
@user-of2sw4wu7p2 ай бұрын
장영실 부산 동래 출신임
@CheckUSoundАй бұрын
장영실은 실종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장영실과 쿠텐베르크는 동시대 인물입니다. 1. 장영실은 금속활자 제작을 수년간 맡은 적이 있었다. 2. 장영실은 파직 후 독일로 건너갔다. 3. 장영실은 쿠텐베르크를 만나 금속활자 제조 기술을 전수해 주었다. 4. 쿠텐베르크는 구리 주석 안티몬의 합금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5. 조선은 안티몬이 없었고 당시 합금기술은 유럽이 더 뛰어났다. 6. 쿠텐베르크의 금속활자는 1개의 글자가 아니라 대략 8개의 글자를 하나의 활판에 한꺼번에 넣은 형태이다. 7. 이것은 고려의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기술과 동일한 형태이다. 8. 쿠텐베르크는 장영실이 가르쳐준 그대로 제작하였다.
@CheckUSoundАй бұрын
장영실과 구텐베르크는 10~15살 차이가 나는 동시대 인물입니다. 장영실 1385~1390년 출생 구텐베르크 1400년 출생
@Dream2o242 ай бұрын
마차사건은 세종 자기자신이 만든거 같은데요 잘한다 잘한다고만 하고 시간을 안주니 업적만 생각하고 만들었으니마모와부식 지지대 역활까진 생각 못하듯요 그래놓고 누가 날 죽이려 했는가라고 말하면 나같아도 도망쳤을듯
@user-pl7om8gn2s2 ай бұрын
本当に素晴らしい王です。歴史の宝てす。
@user-kj9vb5lt7o2 ай бұрын
왕도 그렇고 그 왕을 모시던 신하와 백성들도 그렇죠?ㅎㅎ
@baek64682 ай бұрын
本当に素晴らしい 王様でした
@찌룽짜룽2 ай бұрын
아... 쇼츠로 봐야겠다....
@baek64682 ай бұрын
저 중국 기술자나 기생 아들 장영실이 없었음 어쩔뻔 했냐? 저런 기술자들을 잘 써먹어 발달된 무기나 만들어내서 저 중국 대륙을 다 대 조선으로 만들었어야는데 ~
@snowmochi13732 ай бұрын
공돌이 대우 제대로 안해주는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음
@user-cu9gs1wk8m2 ай бұрын
나도 질투심때문에 죽인거같음
@Hyuchan10022 ай бұрын
사실 박연과의 고사에서나 장영실의 업적을 두고도 자신이 거의 모든 아이디어를 낸 것처럼 언급하는 부분을 보면 사실 세종은 좀 자뻑하는 성향이 있었던 것 같다 ㅋ 그래서 이 모든 공로는 임금님 덕분입니다를 외치지 않은 장영실은 불경죄에 걸린 것 ㅋ 실제로 가마사건의 주 범죄자들은 모두 훈방 처리됨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