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서민 막사발이 일본 국보로 지정된 이유는? [광복50주년특별기획 조선막사발]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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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키타카 MKT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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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үн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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Пікірлер: 48
@myeongcheolsin4552
@myeongcheolsin4552 5 ай бұрын
임진 왜란 침략 전쟁 때 조선 도공 들을 대거 납치하여 일본 도자기 유럽 수출 로 국부를 만들었고 조선의 도자기 기술과 도공은 급감 했다. 통탄할 알이다.
@ldo919
@ldo919 8 ай бұрын
일본욕하기전에 전통을 이으려는 정신부터 배워가야한다 커피일색인 세상 몸도 마음도 다시 지켜라
@Dftegg
@Dftegg 2 жыл бұрын
저 막사발은 토기를 사용할 때 부터 한반도에서 만들어 썻던것같아요 밥상위에 식구 수대로 막사발 놓고 반찬도 막사발에 담고 막 만들어 막쓰던 그릇
@lamp-m7w
@lamp-m7w 10 ай бұрын
요즘은 그들이 이름을 붙인대로 말하는것을 당연하게 받아 들이고 있다.
@air5210
@air5210 10 ай бұрын
기자에몬의 색상이 거무틱틱한것은... 가마 내부 온도가 다 식지 않은 상태에서...300도 선상에서 가마문을 일찍 열었다는 증거다. 산소유입으로.. 그릇 표면에 그으름이 생성침착된 것이다.
@polyonomata
@polyonomata 2 ай бұрын
원래 색은 아닐겁니다. 말차 생활하시는 분들은 상식처럼 알고들 계시겠지만, 말차를 오랫동안 마시다보면 찻물이 그릇의 태토에 스며들어서 점점 짙고 어두운 무늬로 변합니다. 이걸 차심든다고 하는데, 기자에몬 다완도 오랫동안 실제로 쓰였던 그릇이니 차심이 배일반 하지요. 제가 갖고있는 이도다완도 이제 6년 남짓 썼지만 벌써 느낌이 처음 샀을때랑 달리 오래된 느낌이 드는걸요
@307signal
@307signal 3 жыл бұрын
그것도 국보 1호입니다. 복원을 천함봉씨가 했죠 지금은 따님이 만드는데 너무 비싸요 그릇하나 250만원 문경도요
@김흥식-h2u
@김흥식-h2u 2 жыл бұрын
귀중한 영상 감사합니다 영상 마지막 부분의 전통찻집 소재지 알수 없는지요? 부탁드립니다
@307signal
@307signal 3 жыл бұрын
조선 도자기 기술자를 끌고가 일본 근대화의 국부를 쌓았죠. 유럽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죠 유럽도 일본처럼 도자기에 적합한 흙이 없으니 말이죠
@307signal
@307signal 3 жыл бұрын
안쪽은 약간의 비취색이 나네요
@다경-l6k
@다경-l6k 3 жыл бұрын
막사발과 차사발은 처음부터 다른종류의 기물이라 들은것같습니다
@seramickim
@seramickim 3 жыл бұрын
하늘이 내려준 흙과 바람과 불에 소박한 심성으로 지어 냈기에 자연과 너무도 잘 어울립니다 ~
@AthenaWaikiki
@AthenaWaikiki Ай бұрын
무식함으로 인한 오류 투성이. 좀 더 도자기나 일본에 관해 학식이 있는 전문가가 인터뷰나 글을 썼으면 더 수준 높은 다큐가 됐을텐데 너무 아쉽다. 센노리큐의 조선인설이나 야나기 무네요시를 명치유신의 주역이라는 설명은 정말 무식함의 극치다.
@avocado3678
@avocado3678 Жыл бұрын
덕분에 좋은 영상 볼 수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단감-p1r
@단감-p1r 3 жыл бұрын
정말 아쉽습니다 우리 도자기 사랑 도데체 우리는 먼가?
@polyonomata
@polyonomata 4 жыл бұрын
기자에몬 다완 옆에 장식된 무궁화꽃이 인상적입니다. 우리민족의 꽃이기도 하고 또 소박함의 상징인 꽃이라 의미심장하네요.
@jeonghwayoo
@jeonghwayoo 4 жыл бұрын
이제라도 우리 문화재 돌려줘라.
@air5210
@air5210 3 жыл бұрын
한국에 오면 걍.. 쓰레기 ...일본이니까 저리 대접받지...
@oisobagi52
@oisobagi52 3 жыл бұрын
@@air5210 대충 막 만든 그릇이라 막사발이란 이름이고 대량생산하던 그릇. 그당시 일본은 나무그릇 쓰던때라 하늘에서 내린 보물이라 생각함.
@천점분-p6w
@천점분-p6w 3 жыл бұрын
막사발에 대해서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 고향이 문경 입니다.
@anio8885
@anio8885 6 ай бұрын
막 사용하는거라 막사발인대 국보.
@307signal
@307signal 3 жыл бұрын
정확히 일반 막사발이 아닌 2도다완 2도 막사발이죠
@AthenaWaikiki
@AthenaWaikiki Ай бұрын
1960년대 이후 일본에서 비싼 가격으로 사주니까 현재 한국 도자기는 일본인이 선호하는 조선시대 작품의 모방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는 슬픈 현실. 차를 마시는 사람이 없으니 다기도 수요가 없고, 결국은 일본인들 취향에 맞는 자기를 만들 수 밖에. 일본에서 인정 받고 잘 팔리면 한국에서도 비싸게 팔리는 웃픈 현실.
@fijiwater-bh8wy
@fijiwater-bh8wy 5 ай бұрын
아무리 가난한 서민이라도 저런 불균형하고 위태로운 모양을한 그릇을 막쓰려고는 사지않는다..밥이고 국이고 숭늉이고 담았다가 슬쩍만 건드려도 자빠지게 생겼지않은가..막사발이라는 무식한 용어는 자제해라
@307signal
@307signal 3 жыл бұрын
개구리알처럼 생긴건 과도한 열로인해 발생한거죠
@AthenaWaikiki
@AthenaWaikiki Ай бұрын
도입부의 신라차는 거의 사기 수준이라 기가 찼다 ㅋ 12대 사카고라이자에몬에 관한 설명도 오류 투성. 동경대와 동경예술대도 구분 못하는 수준. 왠 인간국보? 금 250돈 모두 틀림
@jeonghwayoo
@jeonghwayoo 4 жыл бұрын
예우하면 뭐해 납치한 주제에
@307signal
@307signal 3 жыл бұрын
일봄ㄴ국보 막사발은 이도 다완에 분청이 아니네요
@AthenaWaikiki
@AthenaWaikiki Ай бұрын
시장에서 파는 사발도 1960년대부터 일본관광객들이 사가니까 대량으로 만든 것들 ㅋㅋ
@이동재-v8m
@이동재-v8m 3 жыл бұрын
고봉암 대이도배견시 일본어 번역이 억만이군 전혀 사발과 관계없는 잘못된 번역들~ 이런 귀중한 문화를 다르면서 자동번역넷을 사용했는지 엉터리요~ㅉㅉ
@treego197243
@treego197243 2 жыл бұрын
훔쳐같다고 말하기에...무리가...
@air5210
@air5210 10 ай бұрын
조선에서 천대받던 도공들..일본에와서.. 장인대우받고.. 잘 살았고... 일본의 실리콘벨리를 이루는데 일조하여...일본의 근대화를 이끌었다.
@쇼콜라user-vy1bh6tr7p
@쇼콜라user-vy1bh6tr7p 8 ай бұрын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정신차려라.
@남장희-e2k
@남장희-e2k 3 жыл бұрын
아름다움의 극치 조선 막사발 ㅋㅋㅋㅋ
@신영철-k2y
@신영철-k2y 2 жыл бұрын
내가 보기에는 막사발은 막사발일뿐... 뭔 잡소리를 그럴듯하게 늘어놓나... 일본의 눈으로 본 아름다움일 뿐이다...
@jgk3198
@jgk3198 3 жыл бұрын
이도다완(생활 그롯)한국에도 몇점있다 8ㆍ15 해방후 일본에서 귀국할때 함게가져온 그롯이 몇점있다 지금은 국내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훗날에 귀한날이 오면 공개되리라고 생각한다""(이도의 고향 은 없다 임란때 피난 하면서 만든그롯이라 매우적고 대부분 임란때일본으로 건너갔다 "창녕 낙동강 상류쪽이 고향이라 짐작된다(그롯성분은 강 뻘로 만든그롯이다""
@나다움-z9f
@나다움-z9f 3 жыл бұрын
뭔가 근거를 가지고 글을 쓰셨으면 더 좋겟습니다
@VitorJKhan
@VitorJKhan Жыл бұрын
신라차? 왠 듣보잡. 1970년대 이전까지 한국에서 거의 차를 마시지 않았어요.
@air5210
@air5210 10 ай бұрын
민초는 밥먹기도 힘들었고... 식후엔 슝늉이나... 손님 접대엔...술 아닌가... 차는 우리 정서나 문화가 아님..
@polyonomata
@polyonomata 4 ай бұрын
기록에 의하면 조선 중기까지도 장흥, 하동 일대에서는 세금으로 차를 납부했다고 하고, 또 조선 왕실에서는 차를 내는 법도가 살아남긴 했습니다. 다만 우리나라 기후에서 차는 일부지역에서만 소량 나는 물건이었고, 숭유억불로 불교에서 수행할때 많이 마시던 차도 배척했기 때문에 민간에선 사라졌을뿐, 차가 나는 남도에서는 여전히 민간에서 차를 음용하는 풍습이 있었고, 절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걸 다시 재발굴하여 부흥시킨게 초의선사였고 그의 다우들인 정약용, 김정희같은 분들이었지요.
@Hongtaigimanchuria
@Hongtaigimanchuria 2 ай бұрын
@@air5210고려시대 이색이 차완이랑 차문화를 찬양한 시도 있는데
@Hongtaigimanchuria
@Hongtaigimanchuria 2 ай бұрын
@@air5210“차는 우리정서나 문화가 아님” 우리 정서 맞음 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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