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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유정난의 공신이며 세조의 최측근이었던 한명회는 세조의 군역제 개편 등 개혁의 방향과 속도에 이견을 내면서 세조와 멀어져갔다.
세조 13년 발생한 함경도 ‘이시애의 난’의 배후로 한명회가 거론되자 세조는 한명회를 옥에 가두기까지 한다. 이 둘 사이의 갈등은 기득권을 지키려는 훈구파의 ‘신권’과 개혁을 통해 국가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려는 ‘왕권’의 충돌로 해석할 수 있다.
역사의 라이벌 27회 - 왕의 정치, 신하의 정치 세조와 한명회 (1995.6.3.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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