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이 해전, 미국의 승리는 단순히 운이 좋아서였을까? | 미드웨이 해전 2부

  Рет қаралды 43,316

Everything Box TV, [God of War

Everything Box TV, [God of War

Күн бұрын

1942년 6월 4일,
태평양 전쟁의 운명을 건 미 해군과 일본 해군의 대결은 시작되고...
우선 미드웨이 섬을 폭격하기로 결정한 나구모 제독.
하지만 그때까지 일본해군은 미 항모의 위치를 전혀 모르는 상태.
한창 미드웨이 섬을 폭격하던 중, 나구모 제독에게 들려온 소식.
미 항모가 나타났다!
이렇게 돌발상황이 벌어지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나구모 제독.
"전 함재기를 불러들여라!"
"그리고 일반폭탄을 모두 함선 파괴용 어뢰로 교체하라!"
하지만 이것은 나구모 제독 최악의 선택.
마지막 1대만 남은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 히류호.
그리고 일본 해군의 희망, 야마구치 다몬 제독.
그는 미국의 엔터프라이즈 호를 격침시키기 위한 필사적인 반격을 명령하게 됩니다.
그동안 무패행진을 해왔던 일본 항모 4척이 모두 격침된 이유.
왜 일본은 패배했고 미국은 승리했을까?
✅ 미드웨이 해전 1부: • 미국과 일본의 국민성으로 파헤쳐본 미드웨...
※ 구독하기
👉 / @war-history
※ 태평양 전쟁 재생목록
👉 • 태평양 전쟁
※ [자발적 시청료계좌]: 국민은행 442802-01-064997 (예금주 : 이XX)
※ 비지니스 문의: lwc76@naver.com
💛회원가입을 통한 혜택과 커피한잔 후원💛
👉 / @war-history
00:00 : 하일라이트
00:29 : 미드웨이 해전, 전략부터 잘못된 일본해군.
02:37 : 전투현장에서 원리원칙은 정답이 될 수 없다.
09:34 : 또다른 비극을 불렀던 일본의 경직된 지휘체계.
#사무라이정신#미드웨이해전#롬멜

Пікірлер: 213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미드웨이 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미국과 일본은 너무나도 달랐습니다. 진정한 군기란 과연 어떤 것인지?? kzbin.info/www/bejne/iJfSaXuajJ2So9k (미국과 일본의 국민성으로 파헤쳐본 미드웨이 해전 1부)
@user-ze3ey1gm3p
@user-ze3ey1gm3p 6 ай бұрын
어느 한 국가의 국민의 마인드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영상.
@Hodol_Brick
@Hodol_Brick 6 ай бұрын
정말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응원의 말씀이 힘이 됩니다.
@user-rt1xt6qm8u
@user-rt1xt6qm8u 6 ай бұрын
만물상자님 일본 🇯🇵 미국 🇺🇸 잘못 건드렸네요😡🤬
@rlee4805
@rlee4805 6 ай бұрын
영상 해설 언제나 *감사합니다*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늘 감사드립니다
@user-tg2tn3ww3i
@user-tg2tn3ww3i 6 ай бұрын
감정을 떠나서....그 당시의 일본과 일본군에게 높은 점수를 줍니다. 산업화의 역사도 서양에 비해 턱없이 늦었는 데...벌써 1930년 후반에 저리 강력한 함대를 만들어 콧대높은 미국인(유럽인포함)들과 장대한 해전을 할 수 있었는 지...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실제 러일전쟁 이후 아시아인들 사이에서는 일본이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나라인데도 항공모함을 찍어내고 항공기를 찍어냈으니까요. 그리고 하얀 코쟁이들을 납작하게 해주었다고 말입니다.
@veritasetscientia6567
@veritasetscientia6567 6 ай бұрын
뭔마발이 같은 소릴 하고 있어. 잘못 한 건 잘못 한 거지. 우리는 역사의 결과에서 교훈을 배우면 되는 거다 어느편을 빨 필요 도 없고 과대 포장할 필요도 없다 당시 일본군은 머저리 같은 지휘관들의 유연하지 못한 작전 구사능력 때문에 진 거다. 다시 말하면 현장 임무형 지휘 작전 능력이 아주 많이 모자랐던 거다.
@lukejeon8313
@lukejeon8313 Ай бұрын
크~ 지휘관의 사고방식의 차이가 승패의 기로를 갈랐다니....훌륭한 분석입니다! 감사합니다
@war-history
@war-history Ай бұрын
지휘관의 사고 방식도 그랬고 미군과 일본군의 자체의 사고방식도 매우 차이가 컸습니다. 전사기록에 늘 나오는 얘기가 하나 있습니다. 일본군은 매뉴얼 대로는 정말 잘 싸우는 군대이다. 그러나 돌발상황이 벌어지면 일본군은 어찌할 바를 몰라한다. 이 말이 모든 것을 설명해줍니다. 전쟁은 돌발상황의 연속이기 때문입니다. 미드웨이 해전은 1부도 있습니다. kzbin.info/www/bejne/iJfSaXuajJ2So9k
@user-uc9tl1ek9i
@user-uc9tl1ek9i 6 ай бұрын
??? : 행보관님 왜 꽃밭에 물을 줘야합니까?? ??? : 그건 내가 시켰기 때문이지(비가 내리는 창밖을 가르키며)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
@user-nd4ec7of8r
@user-nd4ec7of8r 6 ай бұрын
책은 읽고 잊으라는 말이 있지요, 그건 그냥 기본이고 그걸 이용해서 상황에 맞게 변화무쌍하게 응용하는 자가 유능한 인재라고 봅니다.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아주 좋은말씀이시네요. 일본은 매뉴얼의 나라답게 매뉴얼대로는 무척 잘합니다만 전쟁은 돌발상황의 연속입니다. 미 해군의 TBD 데버스테이터 뇌격기가 수십대씩 격추당하면서 마치 일본군처럼 돌진했던 것도 근처에 없을거라고 안심했던 미 항모가 갑자기 나타났던 것도 미 항모가 2척 뿐인줄 알았는데 3척이었던 것도 모두 일본을 당황케 만든 돌발상황이었습니다.
@centurionkwk
@centurionkwk 6 ай бұрын
이러한 유연한 사고의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아무나 따라하다가는 망한다는 겁니다. 유연한 사고를 제대로 하는 건 정말 뛰어난 소수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지난 1부에서 나왔던 미 해군의 천재적인 암호해독가와 같은 실무자들도 있어야겠지만 이들을 대상으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유연한 니미츠 제독 같은 리더도 있어야 가능할 것 같습니다.
@user-rt1xt6qm8u
@user-rt1xt6qm8u 6 ай бұрын
나구모 /야마모토 왜 실수를 했을까요 만물상자님 🤔?!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6 ай бұрын
경직된 고정관념이 그런 실수를 하게 되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야마모토도 실수를 한 부분이 항모를 단독으로 앞장세우지 말고 야마토 함대와 같이 움직이게 했다면........... 과연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실제 저 당시 미군은 전함은 다 진주만에 꼬르륵 한 상황이지만 일본은 전함이 6척이나 있는 상황이었으니 전함의 삼식탄같은 산탄형 함포탄으로 화력우산을 만드는 동안 항모가 전함의 원형진 안에서 보호를 받는 식으로 출격을 했다면...........
@kwangyeolpak2157
@kwangyeolpak2157 6 ай бұрын
이미 적이가는방향을 알고있는것만으로도 절반은 먹고들어갔지. 미드웨이해전 최고의 수훈자는 전투사령관이 아니라 암호해독자다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6 ай бұрын
손자의 모공 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번 싸워 위태롭지 않느니라.' 암호해독이 바로 그런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니까요. 적보다 내가 빨리 알아내는 것이야말로 전투의 승패 자체를 좌우하는 거니까 말입니다. 적보다 내가 빨리 발견하면 적은 죽고 나는 산다. 전쟁의 기본 원칙입니다.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1부에서 그 암호해독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다뤘습니다.
@user-dj5bb9of5y
@user-dj5bb9of5y 6 ай бұрын
북아프리카전선은 물론 서부전선에서도 연합국이 우위엿던것도 그 울트라 암호해독이엇던 에니그마 암호엿죠 미국또한 영국못지않게 암호설계능력은 끝내주는 나라엿습니다 전쟁은 역시 정보전이 핵심이라고 말할수있습니다 전쟁막바지까지 정보를 쥐어캔 미국이야말로 일본을상대로 지속적으로 승승장구를 펼칠수있는결과가 나왓죠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6 ай бұрын
@@user-dj5bb9of5y 진짜 아이러니한 부분이라면 12.12도 정보전의 승리라는 점이지요.
@KM-vm3wy
@KM-vm3wy 6 ай бұрын
4:24 진짜 중요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이미 상황이 많이 어려워졌고 그걸 돌이킬 수 없을 때 침착하고 정신 차려서 그 상황에서 최선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일은 쉽게 풀릴 수 있습니다. 전쟁뿐 아니라 인생에서도 마찬가지.... 근데 꼭 나구모 같은 고문관은 배운 거대로..... 자기가 알고 있는 대로 해야된대..... 직장, 학교 등 우리 주변에도 꼭 저런 답답이들이 있죠. 학교에서 이론 원칙 왜 배웠냐.. 이론을 배워서 현실에 참고 삼기 위해서 배우는 거지.... 이론과 원리 그 자체가 중요한 사람들은 대학에서 연구하는 사람들이고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미 항모를 발견하자마자 일반폭탄으로라도 선제공격을 했어야 했다! 이 말은 미드웨이 해전 대패 이후 일본해군 내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아마 미군이었다면 지체없이 그냥 떠서 일반폭탄을 떨어뜨렸을 것입니다. 미 급강하 폭격기의 폭탄 1발! 기억나십니까? (04:37) 그 폭탄 1발이 항모 전체를 날려버렸는데 그 이유는 일본 항모 갑판위에 일반폭탄과 어뢰가 널려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미 해군이 나구모처럼 폭탄을 갈아야한다며 시간을 소비했다면 결코 그 기회를 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지난 1부에서부터 말하고 있는 주제인 것입니다.
@libertybellliberty6096
@libertybellliberty6096 6 ай бұрын
고대 중국 兵書인 孫子兵法 虛實篇에는 그러므로 싸움의 땅을 알고 날을 알면 천리 떨어진 먼 곳에서 싸워도 좋다. 그러나 싸울 곳을 알지 못하고 시기를 알지 못하면 좌측은 우측을 구원하지 못 할 것이고, 우측은 좌측을 구원하지 못 할 것이다. 앞쪽 군사들은 뒤쪽 군사들을 구원 할 수 없고 뒤쪽 군사들은 앞쪽 군사들을 구원할 수 없다. 그런데 하물며 멀리는 수십 리, 가깝다 해도 수 리 밖에 있는 아군에 대해서는 더 말 할 것도 없는 것이다.
@user-uk7du8vu9p
@user-uk7du8vu9p 6 ай бұрын
영상과 해설에 감사드립니다,몇마디 부언하자면 일본해군의 운과 실력이 종합적으로 미해군보다 모자라서 입니다, 그리고 전투기를 이타야 소좌 한사람에만 맡긴 거라든가 워 게임 결과를 무시하고 아무렇게나 작전을 짠 것과 야마모토와 나구모 사이에 조차 의사소통이 안된 것 등 총체적인 부실이 쌓이고 쌓여서 그들은 패배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특히 학습과 반성을 경시하고 군사들의 정신력으로 어떻게 해보겠다는 그 단순한 사고방식은 그들 일본군이 질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원래 일본에 전쟁론을 가르친 멕켈대위(독일)는 정신력이 만능이 아니라고 가르쳤으며, 청일&러일 전쟁에서는 그래도 운도 따르고 상대편보다 우위의 전력과 냉정한 군&외교&정부 수뇌가 있었기에 성공했던 것인데 1930~40년대에 일본은 아주 간이 커져서 세계정세를 싹 무시하고 정신력 만능주의로 돌아서서~)🎉😅😊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미 해군이 확실히 일본 해군보다 운빨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미군의 그 좋았던 운은 미 해군 병사들의 자발성과 창의성에서 나왔습니다. 1부에서도 나왔지만 1,400명의 미 해군 수리병들은 다 죽어가던 요크타운 호를 3일만에 살려내어 미드웨이 해전에 합류시켰습니다. 때문에 4대 2의 항모 싸움에서 4대 3의 항모 싸움이 된 것입니다. 반면 일본해군은 2대의 항모를 수리할 수 있었음에도 수리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2대를 수리해 합류시켰다면 6대 3의 싸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미국의 TBD 데버스테이터 뇌격기 조종사들은 일본 카미카제처럼 달려들어 일본 항모의 제로센 전투기를 유인해냈습니다. 어뢰와 폭탄이 널려있는 일본 항모에 단 1발의 미 해군 급강하 폭격기의 폭탄이 떨어진 대박 행운은 바로 이런 일반병사들의 자발적인 노력에서 나온 것입니다.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6 ай бұрын
일본의 고질적인 문제점은 바로 도상연습에 맞춰서 작전을 짜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돌발적인 상항에 대처하는 것이 너무 느리다고 할 수 있지요. 현대의 해전은 몇 분의 차이로 승패가 갈린다고 할 수 있는데 말입니다. 그것도 항공기로 벌어지는 해전은 비행기가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모든 것이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미군도 완벽하지 못한 것이 뇌격기 공격과 폭격기 공격을 맞추지 못해서 뇌격기 전단은 완전히 전멸하다시피 했으니........ 영화에서는 뇌격기 전단의 희생으로 제로센이 낮은 고도로 내려와 있어서 급강하폭격기 전단의 공격에 대처하지 못했다고 하지만............. 과연 그것이 진짜 사실일까요? 저는 이 부분은 일본군의 자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급강하 폭격기 전단이 뇌격기 전단의 뒤를 이어서 초저공으로 오다가 뇌격기가 뇌격을 하는 동안 급강하 폭격기 전단은 함대 근처에서 갑자기 상승한 뒤 폭격을 할 거라고 생각한 것이 아닌가....... 그러면 그들을 함대 외각에서 기다리다가 오리 잡듯이 다 잡아버리자 하고........ 사실 돈틀레스에는 그 정도 성능은 없었지만 그럴 거라고 착각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만.................
@johnLee-yf7cx
@johnLee-yf7cx 6 ай бұрын
따장 무술영화처럼 상대와 합을 맞춰 싸운다는 식의 섬도라이들과 상황전개의 변화에 따라 적절한 대응의 유연함의 차이... 전쟁에도 전투전개에도 규범이 필요한 섬. 그러다 안돼면 걍 닥치고 돌격...
@darkenbear
@darkenbear 6 ай бұрын
저기 그때 그 상황에 있었다면 누구나 나구모 처럼 했을겁니다. 지금에야 모든 상황을 알고 그때 그 상황에 있었던 사람들을 비난하기는 쉽죠. 그리고 미군도 뇌격기로 닥돌하다가 전멸했습니다. 그 덕에 일본 해군 요격기가 고도가 낮아져있어서 급강하 공격이 제지를 안받은거지요.
@libertybellliberty6096
@libertybellliberty6096 6 ай бұрын
패배를 치욕으로 생각하는 일본군의 사무라이 정신은 1592년 조선과 일본과의 전쟁인 壬辰倭亂 당시에도 있었는데 일본군이 승리한 전투는 비교적 기록으로 남겼으나 자신들이 패배한 전투는 인정하기 싫어서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서 임진왜란사를 연구할때 교차 검증이 어렵고 1598년 11월에 있었던 노량해전에서도 일본 수군의 완패였는데, 기록을 축소 안 남겨서 교차검증을 할 수가 없습니다.
@user-hy3ry7vd8j
@user-hy3ry7vd8j 6 ай бұрын
결국 사무라이 정신은, 패배는 치욕으로 여기면서, 은폐는 수치로 여기지 않는 정신이군요
@user-qh1uc9og8h
@user-qh1uc9og8h 6 ай бұрын
정확히 말하면 지리적인 운이 작용하긴 했지요
@yosemityful
@yosemityful 6 ай бұрын
그건 아님 미드웨이 에서 미해군 이 이겼던 이유 는 우선 연속적 유리한 운 이랄까 우연의 연속 이었슴. 그리고 연이은 일본 의 판단 미스 1 암호 브레이크; 미해군이 우연찬게 암호 브레이크함 2,.. 일본의 미드웨이 공격조 가 미드웨이 에 뱅기 한대도 없는 이상 상황을 인지하고도 전체 공격 함 퍈대 지휘로 여러가지를 상정 고민 하고 행동 할수 있는 다른 방법 을 하지 않음 3. 미해군 정찰기 보다 급강하 폭격기가 정확한 항모 위치 발견 4,일본 해군대응조 가 높은고도 에서 폭격기 대응 5, 고고도 에서 전투가 끝날 즘 미군 초 저고도 어뢰공격기 도착 일본군은 고고도 에서 내려와 미군 대응 할 시간 부족 6 2 의 판단 미스로 나구모는 2의 리턴시간 (재무장), 발견된 미해군 함대 에 대한 출격과 계획되어 있던 미드웨이 로 재출격 간에 대한 시간 상정 과 판단 에 대한 고민 그리고 소요된 5분 이것이 결정 함.
@user-rt1xt6qm8u
@user-rt1xt6qm8u 6 ай бұрын
만물상자님 미드웨이해전 롬멜 차이가 뭘까요?!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롬멜은 돌발상황이 터지면 즉각대처가 빨랐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돌발상황이 터지면 당황했습니다. 03:55가 바로 그 돌발상황입니다. 미 항모가 근처에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미드웨이 섬을 폭격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미 항모가 나타난 순간. 나구모는 바로 이때부터 페이스를 잃었습니다. 한마디로 일본해군은 매뉴얼대로 하는 것은 기가막히게 잘하지만 일단 돌발상황이 터지면 유연하게 대처를 못했습니다. 롬멜 그리고 미 해군이 나구모와 달랐던 점은 이 점입니다.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6 ай бұрын
누가 가장 적을 잘 속이느냐일 겁니다. 롬멜은 허세 단 하나로 수십배의 영국군을 가지고 놀았지만 일본은 정보관리도 제대로 못해서 그나마 가진 것들도 다 털어먹었으니까 말입니다.
@user-un5hv5tu6j
@user-un5hv5tu6j 6 ай бұрын
독일 통일의 과정에서 군사적으로 대활약하며 (군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사실 순수 정치인이었던)비스마르크의 든든한 조력자 역할을 했던 대 몰트케가 한 말이 있죠. '적과의 첫 접촉 이후까지 살아남는 계획은 없다'
@user-wj3ud7lv5n
@user-wj3ud7lv5n 6 ай бұрын
2차 대전 숨은 명장 플레처 제독처럼 미군의 정신을 보여주는 말로, 조지 패튼의 어록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말이 있어 여기에다 적어봅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치지 말고, 적들의 모가지나 더 바치란 말이다! The object of war is not to die for your country, but to make other bastards die for theirs."
@Panorama-memory
@Panorama-memory 6 ай бұрын
존나 마음에 드는 어록 입니다. ㅋㅋㅋ
@yosemityful
@yosemityful 6 ай бұрын
하나 다른 패튼의 일화 패튼은 겁쟁이 와 또라이들울 극협 했음. 다만 그 용맹함 이 또라이짓 을 커버 하고도 남을때는 적극지원 해줬음 1. 전방 순찰 나갔다 십자가 밑에 대공포 설치해 둔거 보고 "저놈들 죽여야 겠다 어느 미친놈이 십자가 아래 타겠 삼으라고 포진지 구축하냐" 며 노발 대발 하고 갔는데 포병장이 "여기서 벌써 뱅기 네대 나 격추했는뎁쇼 " 하니까 "응 알았서 일봐" 하고 훈장 수여 2.바스통에서 101 사단 멕카리프 임시 사단장 이 독일 의 항복 권유 에 넛츠(Nuts)한국말로 의역 하자면 "또라이" 정도로 답함. 이걸 들은 패튼이 흡족해 웃으면서 저런놈 은 구출해 살려줄 필요 가 있다 고 하며 구출작전 을 더욱 더 독려 함.
@yosemityful
@yosemityful 6 ай бұрын
조금더 직설적 으로 올바르게 직번역 하자면 "전쟁의 목적 은 나라를 위해 죽는것이 아니라 저들 호로 자식(아비 없는 자식)들이 지나라를 위해 죽게 하는것이다"
@user-op1ph4wt9w
@user-op1ph4wt9w 6 ай бұрын
100% 동의합니다
@user-ph3yg8db1o
@user-ph3yg8db1o 6 ай бұрын
별도움 안된 알류산열도 키스카섬 점령하러 갔던 일본해군 중형 항모 2척이 미드웨이 쪽으로 같이 갔더라면 ~~ 또 상황이 달라졌을수도 있겠죠 ~~ 뭐 안될놈은 무조건 안될거라서 ㅋㅋ 될놈될 상황이죠 ㅋㅋ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6 ай бұрын
미드웨이 해전 상황을 보면 야마모토 이소로쿠가 무슨 체스나 쇼기를 두는 것처럼 이리저리 말을 움직여서 승리를 하겠다고 하는 것인데 전쟁은 체스나 쇼기가 아닙니다. 복잡한 수를 생각할 수록 오히려 일이 꼬이는 법이 많으니까 말입니다. 군령도 단순하고 번복이 없어야하는 법이니까요.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6 ай бұрын
알루션으로 간 항모는 중형도 아닌 소형 경항모 2척이었죠
@user-qp7kd5pc2f
@user-qp7kd5pc2f 6 ай бұрын
기업도 마찬가지.. 현장에서도 유도리나 융통성을 발휘해서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해서 현장일선에게 일부 권한을 잠시나마 일임하면 하는데 문제는 그 사소한거 하나라도 책임 안 질려고 그놈의 규정이니 형식이니 정도가 있지 너무 과하게 따지고 물어지니 일의 효율성은 떨어지고 시간만 낭비..일 시키는 사람도 일 하는 사람도 서로 답답해서 짜증만 냄..ㅋㅎ😅
@user-wz2mw7tp3t
@user-wz2mw7tp3t 6 ай бұрын
진주만공격에서 3차 공폭을 만류해서 실패를 유도했던 나구모가 미드웨이에서 항모 4대를 잃었죠 결국 태평양전쟁에서 패전을 유도한 나구모가 야스쿠니에 있다는것이 어의 상실!!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맞습니다. 10:33 에서 말씀하신 그 부분을 다뤘습니다. 사실 어떤 컨텐츠에서도 야마구치 다몬에 대해서는 이야길 하지 않더군요. 야마구치 다몬은 야마모토 이소로쿠도 자신의 후계자 감으로 인정하는 일본 해군 내 최고 인재였습니다. 나구모는 진주만 공습 당시에도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였지만 야마구치 다몬은 3차공격을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한번 더 공격해서 미 해군의 유류저장소라도 날려버렸다면 미드웨이 해전도 그렇게 빨리 벌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yhjang2804
@yhjang2804 6 ай бұрын
미해군지휘부의 부단한 노력으로 이긴거야
@yosemityful
@yosemityful 6 ай бұрын
아니죠 순전히 운 이 아니면 우연 의 연속 때문이죠 .
@troller.troller
@troller.troller 6 ай бұрын
저는 미드웨이에서 미국이 이긴 이유의 80% 이상이 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20%는 항모 운영에 미숙한 제독,일본의 해군 교리 등등 여러가지 타 이유가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user-mj3nv8dc9r
@user-mj3nv8dc9r 6 ай бұрын
별거없음. 뛰는놈위에 나는놈있다. 그리고 근대와 현대의 분기점. 군기 정신력 좋아하네. 이래서 미국이 지금도 슈퍼파워인겁니다
@altturbo
@altturbo 6 ай бұрын
6:15 어느 자료를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시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알기론 월드론 소령이 이런 회고를 남길리가 없습니다. 이날 전투에서 전사 했기때문입니다. 그리고 그의 First name도 Jack이 아니고 John입니다. 이날 미군도 삽질이 장난 아니었습니다. 이미 정보를 입수하고 미리 와서 일본함대를 기다리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잘만하면 전력의 집중을 도모할 수도 있었습니다만 이날 여러가지 꼬이는 것이 많아서 아침 부터 점심때까지 산발적인 공격만 끊임없이 이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초반에 미군 조종사들의 희생이 많았던 것이고요. 그런데 이것이 뜻하지 않게 일본 승조원들을 새벽부터 밥도 못먹게 만들고 그야말로 혼을 빼놓게 만듭니다. 그래서 갑판과 그아래 정비데크는 아수라장이 되고 거기에 결정적으로 폭탄을 어뢰로 바꾸라는 명령에 갑판에는 폭탄과 어뢰가 어지러이 널려있게 되는 상황에 엎친데 덮친격으로 미드웨이 섬에 공격나갔던 비행기도 돌아오고 그야말로 난리가 아닌 상황이 되어 버리죠... 그런데 이런 기가막힌 타이밍에 다른 곳을 헤메다가 늦게 도착한 엔터프라이즈 급강하 폭격대가 온 것이고 일본군 호위 전투기는 직전의 월드론 소령편대의 뇌격기 공격을 방어 하느라 저공에 있었고 폭격기 편대가 온 고공에는 그야말로 텅 비어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 폭탄 한발은 마른풀에 불붙이는 격이된겁니다. 미군이 억세게 운이 좋았던 것 맞습니다. 반대로 일본군은 억세게 운이 않좋은 것이었구요... 물론 제일 운이 않좋았던 것은 나구모가 사령관이었다는 것...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6:15 월드론 소령의 발언을 묘사하면서 회고라는 말을 붙여 오해를 낳았네요. 뒤에 이어지는 "이것은 니미츠 제독의 명령이 아니라 그가 부하들에게 한 호소였다."고 한 부분에서 이 말이 그가 살아남은 후 한 말이 아니라 출동 직전 부하들에게 한 이야기임을 아실 수 있습니다.
@johnniesmHan
@johnniesmHan Ай бұрын
그래서 우리는 유능한 지휘관이 필요 한것이죠, 무능한 지휘관은 적 보다 더 무섭다는 사실....
@user-qm4ei8sn3j
@user-qm4ei8sn3j 5 ай бұрын
실론해전이나 산타크루즈해전보면 정찰.철저히 준비된전략이 승패에 어떤영향을 주는지 명확하게 알려주죠
@user-dj5bb9of5y
@user-dj5bb9of5y 6 ай бұрын
교과서는 어디까지나 효율을 중시하는 요소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효율을 생각할 1초조차없습니다 1초하나하나가 급박한게 전쟁이죠 결국전쟁에서 가장중요한건 실행에 빠르게 옮기는거죠 교과서는 많은시간을 요구하지만 전쟁에서는 그렇지않습니다 적은시간안에 목표를 달성해야하는것은 빠른판단이 중요하죠 결국엔 경직됀 자세는 시간이 적은 전쟁이란곳은 무의미하게 변하게돼는군요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빠른 판단, 상황에 따른 유연한 대처. 그래서 이 컨텐츠에서 난데없이 롬멜 이야길 꺼낸 것입니다. 영상 맨 끝에 링크시킨 추천영상, 롬멜만큼 매력있는 88밀리 포 영상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장군님! 아무리 쏴도 안터지는 탱크가 나타났습니다! 라고 부하들이 다급하게 외치는 상황. 후에 롬멜도 이렇게 회고했죠. "솔직히 부하들의 그 말을 듣고 나는 머리가 처음으로 하얘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나 나는 해결책을 내야만 했다."
@wjkim3864
@wjkim3864 6 ай бұрын
임진년에 왜군이 쳐들어오자 선조는 백성들과 종묘사직을 버리고 줄행랑 도망갔는데 야마구치 다몬 멋있다. 일본이 태평양 전쟁때 어리석긴 했어도 한국 따위가 논할 레벨은 아닌듯.
@yosemityful
@yosemityful 6 ай бұрын
머래니 얘는
@user-ji4gl4fr8w
@user-ji4gl4fr8w 6 ай бұрын
학생! 검색창에. 이익주 라고 치고 그분의 임진왜란 강의를 찾아봐! 보고 너무 부끄러워 왜구들 마냥 할복해서 부모님 가슴에 못 박지 말고
@user-tg2tn3ww3i
@user-tg2tn3ww3i 6 ай бұрын
싸움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미군이나 일본군은 손색없는 프로군대였죠. 지휘관부터 병사까지...군사문화의 역사가 길어서인지...거기에 비하면 한국군은 도저히 그 수준에 도달할 수가 없어보입니다. 군사문화의 역사도 별로 없고...민간도 군인에 대해 평가하지도 않고...
@libertybellliberty6096
@libertybellliberty6096 6 ай бұрын
군가에서도 미국인의 정서와 일본인의 정서가 차이가 나는데 일본 군가는 너무 비장하면서 충성과 죽음을 강요하여 전쟁에 죽으로 가는 느낌이고 임무를 완수하지 못하면 전장에서 죽어라. 미국 군가는 자율과 자유 정의를 목표로 임무를 완수하자
@user-ji4gl4fr8w
@user-ji4gl4fr8w 6 ай бұрын
나구모가 욕을 먹는 것은 그가 그자리에 있었기 때문이고 사실 그 가 아닌 다른자가 있었던들 결과가 달라졌을지 의문이 들기는 합니다! 처음부터 작전목표가 불분명했고 모든 것을 항모전단이 하기에는 전력이 너무 모자랐던거 아닙니까? 실제 이 해전 이후 나구모가 처벌받지 않은 것도 이걸 따져봐야죠! 나구모는 단지 시키는데로 너무 잘한것이 죄라면 죄 일 뿐이죠!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지난 1부에서 다뤘지만 kzbin.info/www/bejne/iJfSaXuajJ2So9k 미 해군은 다 망가진 요크타운을 되살려냈습니다. 하지만 일본 해군은 약간의 상처를 입은 2척의 항모를 되살려내지 못하고 출전했습니다. 일본이 2척의 항모를 수리하여 참전했다면 항모 전투는 6대 3의 싸움이 되었을 것이기에 일본이 아무리 삽질을 해도 일본의 승리였을 것입니다.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6 ай бұрын
맞는 말씀입니다 사실 야마구치가 지휘했어도 결과는 별 차이가 안났죠. 오자와 지사부로가 지휘했다면 혹 모를까...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6 ай бұрын
오자와 지사부로 중장은 죽자고 싫어한 야마모토는 또 먼지...
@blue1570k
@blue1570k 6 ай бұрын
글쵸...이미 미국은 정보전으로 승리 했음 많은 물량으로 기다리고 있었는데 누가 지휘를 한들 결과는 같을꺼임
@user-ek5mn7bs6l
@user-ek5mn7bs6l 6 ай бұрын
뭔가 역사와는 다른 내용들이 많네요.. 우선 나구모의경우 미드웨이 공격에 몰빵을 하지 않았습니다. 미드웨이로 출발시킨 항공기수는 절반정도 뿐이였고 나머지는 만약에 대비해 남겨둔 상황이였죠.. 거기다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군 항공기에 가장 많은 피해를 입힌건 일본 항모를 방어하던 제로센들이였고 일본 항모부대 4방향으로 상시 방어를 펼쳐둔 상황이였습니다.. 오히려 일본의 패착은 미항모 찿는다고 정찰기를 고작 8대만 운용했던것과 항공기 무전기의 부재로 방어전술에서 구멍이 발생한거죠.. (거기다 항공기를 절반만 남겨버린게 오히려 일본군의 최대 패착이 되버립니다..미드웨이 공격부대에서 절반을 남긴 이유는 미항모에 대해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건데 미드웨이 공격에서 너무 피해가 심하자 나머지 절반의 부대를 투입 하기위해 무장 교환중 미 항모에서 발진한 항공기들에게 공격당하면서 무장교환중이던 폭탄들의 연쇄폭발로 피해가 심각해져버린거죠)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6 ай бұрын
8대가 아니고 7대요 너무 적었죠. 산호해전때도 5항전은 정찰기를 12대나 동원했건만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나구모가 *거의 모든 공중자원을 쏟아부은* 목표물인 미드웨이 섬은 움직이지도 못하는데다 일본해군을 위협할 만한 전력도 존재하지 않았다." (빅터 데이비드 핸슨, 살육과 문명) "전선의 지휘관으로서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미 항모에 대비하기 위해 *아군병력의 절반을 대기시켜둔다는 것은 말이 쉽지 하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 (G.프레인지, 미드웨이의 기적 215P) 실제 사료에 기록된 내용을 참고한 컨텐츠입니다. 여기서 몇대를 남겨뒀냐를 누가 정확히 알겠습니까? 그것보다는 나구모가 거의 모든 공중자원을 퍼부었다는 점이 팩트입니다.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6 ай бұрын
@@war-history 파셜과 털리가 쓴 Shattered sword는 일본해군이 발행한 1차공간사료를 바탕으로 쓴 저서인데 1차공격대의 구성은 정확하게 나와있습니다 이건 생존파일럿들의 확인을 거쳤고요 잘모른다는 말은 말이 안되고요.
@yosemityful
@yosemityful 6 ай бұрын
남겨둔 뱅기 가 패착 은 아니죠. 그뱅기를 발진 할까 말까를 고민 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 한게 패착 이었죠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6 ай бұрын
@@yosemityful 발진할까말까 고민한적도 없고 그걸 주저하다가 발진을 못한것도 사실이 전혀 아닙니다. 후지다 중좌의 뇌피셜이 그만 정설이 되버린것일뿐 사실과 전혀 다르죠. 팩트는 준비는 다마쳤지만 발진할 짬이 전혀 안난게 가장 직접적인 패인이죠. 게다가 무장과 연료를 만재한 2차공격대가 그대로 격납고안에 대기중인 상태에서 직격탄을 처맞고서 완전 아작이 났고요.
@taeminkim-vg2gq
@taeminkim-vg2gq 6 ай бұрын
이런 미국의 사고방식이 지금의 미국을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답답한 봉건적이고 위계질서적인 사고를 탈피하여 나이와 직급을 불문하고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소통이 가능한 문화가 확립되야 선진국이 될 수 있을겁니다.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05:06 에도 나왔지만 미 해군의 TBD deverstator 뇌격기들의 마치 일본군과도 같은 무모한 돌격은 일본해군의 예측을 자꾸만 흔들어놨습니다. 결국 41대 중 35대 격추. 그리고 어뢰와 일반폭탄이 널려있던 일본 항모 갑판에 떨어진 하나의 폭탄! 누가 봐도 미국이 운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앞서 있었던 뇌격기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이 없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행운이었습니다.
@user-ks9xv8cu9u
@user-ks9xv8cu9u Ай бұрын
미국이 옆에 있는 나라가 아닌이상,, 중국 일본 러시아,, 영향을 많이 받을수밖에없고,, 일제강점기 6.25 이후 일본이 많은 영향을 끼치고 안좋은 문화도 넘겼다는게,,ㅠ 그리고 조선 트롤도 많았다는거,,,
@user-gf8kg4wn1o
@user-gf8kg4wn1o 6 ай бұрын
일본은 메뉴얼 국가죠...전쟁에서도 메뉴얼이 없음 전쟁을 못하죠.문제는 전쟁은 메뉴얼이 필요없다는거죠. 일본인 저승가서도 메뉴얼타령 할겁니다.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맞습니다. 미드웨이 해전을 이야기하면서 롬멜의 이야기가 나온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03:53 이 바로 그 시작입니다. 미 항모가 근처에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안심하고 미드웨이를 폭격하고 있다가 갑자기 미 항모 출현 소식이 들린 후 나구모는 제 페이스를 잃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었고 매뉴얼에 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의 대처방식은 또 다시 매뉴얼대로였는데 즉각 선빵을 날리는 대신 항모 파괴용 어뢰를 장착하도록 지시하게 됩니다.
@taehyeong6594
@taehyeong6594 6 ай бұрын
최고의 컨텐츠! 찬사의 찬사를 보냅니다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응원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위에서 시키지 않아도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자발성과 돌발상황에 대한 유연성. 부하들 뿐 아니라 장군들까지도 미국과 일본은 대조적이었습니다. 항모가 불길에 휩싸이자 구조를 거부하고 불길 속에서 생을 마감한 야마구치 다몬. 그리고 항모가 침몰되자 지휘권 자체를 스플루언스 제독에게 맡겨버린 플레처 제독. 자발적으로 마치 일본군처럼 달려들었던 미 해군의 데버스테이터 뇌격기 조종사들. 그리고 그 덕에 보호해줄 제로센 전투기가 사라지자 미 해군의 급강하폭격기의 폭탄 1발이 어뢰와 폭탄이 널려있는 갑판에 떨어진 사실. 이것은 미 해군이 운도 좋았지만 그 운을 좋게 만든 것은 사람때문이었음을 알게 해줍니다.
@user-de1sg1vt5x
@user-de1sg1vt5x 6 ай бұрын
전국시대 사무라이들은 저렇게 경직되지 않았을텐데 에도시대가 일본인들을 녹슬게한거 같습니다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6 ай бұрын
먼 신박한 헛소린지? 에도시대가 아니라 그냥 전국시대가 이어졌음 메이지 유신은 꿈도 못꾸었을 거다.
@user-de1sg1vt5x
@user-de1sg1vt5x 6 ай бұрын
@@user-zs7eb5uc9r 내가 전국시대였어도 메이지유신 할수있었다는 식으로 말했냐 왜 메이지유신 가지고 나한테 시비거는거냐 내가 한말은 메이지유신하고는 상관없어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6 ай бұрын
@@user-de1sg1vt5x 에도시대가 없었다면 지금의 일본은 없는거나 마찬가지인데 일본인을 녹슬게 하다니 먼 잠꼬대?인지
@user-de1sg1vt5x
@user-de1sg1vt5x 6 ай бұрын
​@@user-zs7eb5uc9r 메이지유신만 했으면 에도시대의 단점이없는거냐 난 경직된 사고방식의 원인을 에도시대로 지목한거고 너는 거기다가 메이지유신 했거든요 뺴액질이나 하는거고 넌 도대체 대가리가 어떻게 된거냐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6 ай бұрын
@@user-de1sg1vt5x 니놈이 멍멍대고 자빠진, 경직된 사고가 에도시대의 산물이라는 근거가 대체 몬데? 근거도 없이 자의로 단정함서 꽥꽥대는 돌댁알이 처달고서 헛소리만 하지말고 에도시대가 사고의 경직을 가져왔다는 증거가 있냐? 있으면 하나라도 좀 대보지? 나는 계속 니놈 개짖음의 근거를 물어보는데 넌 먼 잠꼬대니? 닥치고 근거나 대보시죠. 목위에 돌 얹어놓구서 악만 쓰면 장땡인줄 아네.
@user-dk9gq2jt8t
@user-dk9gq2jt8t 2 ай бұрын
전세계 최대 규모의 해전
@ejoynet
@ejoynet 3 ай бұрын
잘 보았습니다. 그런 전통 때문인지. 요즘 일본 사람들 조차도 자신들의매뉴얼을 가지고 있음을 은근히. 자랑 하더라구요 ㅋ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매뉴얼대로 정해진대로 안하면 불안해하는 민족성.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의 그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1부, 2부를 모두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1942년 6월, 미드웨이 해전 당시 일본해군이 미 해군보다 더 강력했습니다. 혹자는 미국이 운이 좋았다고 하겠지만 승패를 가른 것은 미국과 일본의 이런 국민성 차이였습니다.
@user-yy2hk8nm8e
@user-yy2hk8nm8e 6 ай бұрын
마닐라 전투도 규모가 꽤 됐다고 알고 있는데 이전투는 평가가 비교적 많지 않은거 같은데.. 태평양전선 일본육군의 주력이 가있지 않았나여? 관동군에서 차출된병력 이 주력이었지 않나싶어 문의드립니다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마닐라 전투가 벌어진 루손 섬을 지키던 야마시타 도모유키가 지휘하는 병력이 약 25만명 정도였습니다. 질문하신 일본 관동군에 대해 말하자면 한마디로 일본의 정예부대였습니다. 하지만 관동군은 이미 1943년 하반기부터, 태평양전쟁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하여 계속 차출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1945년 1월, 일본 대본영은 다시 관동군에서 13개사단과 특설한 고도로 기계화된 상비병단을 말씀하신 마닐라 전투가 벌어진 루손으로 보내게 됩니다.
@user-yy2hk8nm8e
@user-yy2hk8nm8e 6 ай бұрын
​​@@war-history 일본 육군 분산배치가 1943~44년에도 각지에 의외로 얼마정도 꽤 있었지만 일본도 병력부족과 보급문제가 심각했고 게다가 자원도 안받쳐주니 .. 44년 이지나면 이미 한계에다다른 상태였다고 봅니다 이때는 그래도 소일 중립조약 덕에 석유는 조금 있었겠지만 미국하고 자원력 과 보급에서 완전 압도당했죠..
@daehanminkuksaram
@daehanminkuksaram 5 ай бұрын
적군보다 더 무섭고 위험한건 뭐다? 무능한 아군 지휘관이다.
@youngcarlo8690
@youngcarlo8690 2 ай бұрын
군함은 '호'가 아니라 '함'으로 불러야 맞습니다. 따라서 요크타운'호'가 아니라 요크타운'함'이 맞겠습니다. 감사합니다.
@war-history
@war-history 2 ай бұрын
뉴스, 사료, 관련 서적, 심지어 인터넷까지 항공모함은 모두 엔터프라이즈 호, 호넷 호, 요크타운 호, 즈이카쿠 호, 렉싱턴 호라고 부릅니다. 항공모함을 함으로 부르는 경우는 없습니다. 다만 전함은 프린즈 오브 웨일즈 함으로 부르기도 하고 호로 부르기도 합니다.
@youngcarlo8690
@youngcarlo8690 2 ай бұрын
@@war-history 우리나라 군에서는 군함의 경우 함으로 부르는 것이 맞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외국 군함의 경우 '호'라고 부르는 것에 대해서는 만물상자님께서 말씀하신 것도 맞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war-history
@war-history 2 ай бұрын
감사드립니다.
@gunchang9026
@gunchang9026 6 ай бұрын
미드웨이해전에서 이겼다해도 시간의 차이일뿐, 어차피 일본패망은 정해진 수순
@yosemityful
@yosemityful 6 ай бұрын
아니죠 이겼으면, 협상으로 갈 명분 과 시간이 만들어 지죠 만약 일본이 이겼다면 미 태평양 해군이 괴멸되고 일본이 진주만 유류물 보관 부두 한번 더 공습 후 1~2년 정도 미 해군의 태평양 전쟁 불가 상태로 만들어 휴전 으로 갔을수도 있었음.
@user-dj5bb9of5y
@user-dj5bb9of5y 6 ай бұрын
일본이 미국 본토에 습격하기만해도 미국한테는 큰위험이 됍니다 롬멜말대로 해안에 기갑부대를 바짝세워놓르면 피해가 너무커진 연합군은 작전이 취소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근대 본토가 습격됏다 미군은 일본군을 상대로 평화협상을 내올수도있습니다 너무많은 피해를 안겨야하는 상황이 올수도있죠 민주주의 국가로서는 이런걸 감안하는게 쉬운게 아님니다
@rgh97
@rgh97 6 ай бұрын
일단 달고 있는 폭탄으로 재빨리 기습 공격해서 소진하고 다시 돌아와서 장착하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미 항모가 나타났다는 소식을 듣고 고지곧대로 함선 파괴용 어뢰로 교체하려고 난리를 칠게 아니라 일반폭탄으로라도 선제공격을 했다면 항공모함 갑판위에 어뢰와 일반폭탄이 널려 있지 않았을테니 연쇄폭발은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오히려 미 해군을 당황하게 하여 적시에 급강하 폭격기를 일본 항모로 날리지 못하게 했을 가능성도 컸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의 공격 페이스를 잃게 하는것입니다. 항공모함 전이야말로 선제타격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더군요.
@nano04386
@nano04386 6 ай бұрын
아니 레이더도 없고 무전기도 없는 일본이 무슨 재주로 이김? 그리고 일본 함상기들은 급강하폭격도 못하더만 나구모는 오직 어뢰밖에 생각 안 했는지
@yosemityful
@yosemityful 6 ай бұрын
그당시 레이다 는 거의 무용지물 이었음 ,. 미군도 일본 도 정찰기가 적 선박 발견함. 그리고 나구모는 어뢰만 생각 한게 아니라 미드웨이 폭격 하고 돌아올 비행기 의 시간 과 다시 출전 할 비행기 의 시간 비교 그리고 대함전 의 전투기능 과 함대 방어를 함께 생각 안할수 없었음. 그 이유는 일본 은 제로센 단종 이었고 미해군 은 다이버 범버( 급하강 폭격기) 와 어뢰 비행기 두종이 있어서 두종의 비행기를 한번에 이륙 시킬수 있었지만, 일본은 한종의 비행기로 폭격 임무, 뢰격 임무 와 전투 임무 3가지를 병행 했어야만 했음. 게다가 미군의 운도 따라 왔던게 다이버 범버 편대 가 일본 함대 를 일본 보다 먼저 발견함. 다이버 범버 는 특성상 높은 고도 에서 부터 급강하 하면서 폭탄 투하 하는 일종의 현재 A-10 기의 탱크에 대한 사격효과 를 바라는 것임. 따라서 일본기 는 미군의 급강하 폭격기 의 높은 고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불리함 속에서 제로센이 감당할수 있는 최고도 까지 올라가 전투 할수밖에 없었음. 그리고 그전투가 끝날즈음, 날아온 미군의 어뢰 전투기, 제로센 은 아래로 내려와 어뢰기에 대한 방어 할 틈이 없었음. 문제는 나구모의 이에 대응 하는 작전 명령에 대한 고민 시간이 길어 졌고 결국 폭탄 에서 어뢰로 바꾸라고 명령한 시간 과 그 명령이 이행 되는데 소비 되는 5분 동안 작살 났던것임,.나구모 가 너무 우유부단 했던거임. 이 미드웨이 전투는 미군도 신이 도왔던 전투라 말하고 있음. 우연, 운 이 연속적으로 미군에게 유리한 쪽으로 만 흘러갔슴. 어쨋던 여기서 얻었던 교훈으로 미 해군은 아직도 정찰 목적 우선 전투기종 과 폭격 목적 우선 전투기종 을 따로 분류 하여 운영 하고 있음.
@five_official_kr
@five_official_kr 6 ай бұрын
나구모가 아닌 오자와 지사부로가 지휘했다면 결과가 달랐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래봐야 미국이 최종 승자가 된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겠지만..
@user-kq3qb7dp1b
@user-kq3qb7dp1b 4 ай бұрын
한국전쟁때 미해병대가 보포스대공포로 개때같이 달려오는 중공군 녹여버림...
@bokhanlee4049
@bokhanlee4049 6 ай бұрын
진주만 미국 항모 못 잡은것이 패전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야마구치 다몬이 확실히 적극적이긴 했습니다.. 그는 이미 진주만 공격 당시에도 나구모와 논쟁을 벌인 바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진주만 공격을 2차례 했는데 야마구치 다몬은 한번 더 공격을 해서 미 해군의 연료저장고라도 날려야 한다고 주장했었습니다.
@Latelz
@Latelz 5 ай бұрын
나구모제독.. 그는 계속해서 삽질을 하게 됩니다. ㅋㅋㅋㅋㅋ...
@user-xu2gs7yu5u
@user-xu2gs7yu5u 6 ай бұрын
일본이 일본이었기에 2차대전에서 패배했다고 봅니다. 활복! 이 자체가 빛나는 경험이든? 수치의 경험이든? 한순간에 버려버리는 거 아닐까요?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싸무라이 정신, 할복. 카미카제 특공. 력을 이렇게 갈아넣는 국가는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woonnambj9356
@woonnambj9356 6 ай бұрын
주식을 하세요 ? 지난걸,알고나면 아주쉽죠...능력부족일뿐이죠.
@user-rt1xt6qm8u
@user-rt1xt6qm8u 6 ай бұрын
엉터리 사무라이 정신
@user-nb7by3fh9o
@user-nb7by3fh9o 25 күн бұрын
현재도 과거와 같은 행동을 하는 일본인들,,,,,변함이 없네,,,,,,,,, 잘됬네,,,,,,,
@altturbo
@altturbo 6 ай бұрын
10:23 다몬제독에게 너무 후한 점수를 주시네요... 물론 일본해군내에서 최고의 항모작전 전문가인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만 이 사람 전략 전술 같은 것은 개나 줘버리고 앞뒤 안가리고 무조건 달려만드는 불나방 같은 사람이라 여기서 살아남았으면 다른 곳에서 엄청 큰 사고를 쳤을 사람입니다. 항모세척이나 잃은 상황에서 야마모토가 철수하라는 지시가 있었는데도 자신의 성질을 제어하지 못하고 이를 어기고 미군 항모쪽으로 접근을 해서 결국 발각이 되고 격침하게 만듭니다. 물론 요크타운을 잡기는 했었습니다만 일본군에겐 금싸라기 같았던 항모 한척을 마저 잃게 만들고 귀하디 귀한 인적자원이었던 노련한 조종사들까지 덩달아 희생을 당해야 했던 것은 정말로 어이없는 처신이었다고 봅니다.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야마구치 다몬에 대한 평가는 미드웨이 해전 이후 일본 측에서 나왔습니다. 실제로 그가 죽기 전에도 야마모토 이소로쿠의 후계자라는 말이 일본 해군에서는 공공연하게 나돌았습니다. 아마 일본 입장에서는 그래도 0패를 모면하게 하여 일본해군의 자존심을 세워준 인물이라고 해서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진주만 공격 당시에도 야마구치 다몬은 추가적인 공격을 주장하여 나구모와 논쟁을 벌였습니다. 확실히 일본해군 지휘관 중에서는 가장 옳은 판단을 한 인물이긴 합니다.
@sungminhwang1700
@sungminhwang1700 6 ай бұрын
​@@war-history확실히 다몬이 일본 지휘관중에는 나은것 같지만 일단 승조원과 조종사 운용에서는 꽝이고 히류라도 온전히 유지하다던 나구모보자도 근시안적인건 분명해보이네요. 어찌보면 일본의 한계일지도...
@sungminhwang1700
@sungminhwang1700 6 ай бұрын
요크타운 공격 이후 조종사들에 대한 조치를 빼더라도 조종사들에 대한 조치라든지 진주만 당시 투입 항모 숫자에 대한 의견에서 항모를 잃을 생각까지한점에서는 마이너스가 들어가죠. 저도 인간성 빼면 그나마 나은것 같단 생각이 들었지만 공부를 더하니 확실히 문제가 있는 지휘관이더군요.
@dongnyeok3566
@dongnyeok3566 6 ай бұрын
요크타운을 지옥길 동무로 데려갔다만..야마구치 제독이 후일을 도모했다면 어쨌을까요 ㅋㅋ 그래도 웬지 군인답단 생각이 드는건 역시 일본군 정신이 살아있는 한국군 출신인 탓일지요ㅠ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항공모함과 함께 최후를 마친다. 미군에게 당했다는 수치심 또는 책임감인가? 아니면 사무라이 정신인가? 같은 해군이지만 미 해군에서 침몰된 항공모함과 일부러 수장되는 제독이 있었단 얘긴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만일 그가 살아남았다면 미 해군과 또 한번의 진검승부를 겨루는 전투가 전사에 기록되었을 것입니다.
@doogon-kim
@doogon-kim 5 күн бұрын
이 썸네일을 한국군이 알아야할텐데 맨날 시나리오대로 저긴 아군이 장악햇다고 가정하고 맨날 적이없으니 도하한다 이러고있고..ㅋㅋㅋ
@sungminhwang1700
@sungminhwang1700 6 ай бұрын
확실히 좋은 영상이지만 과거 영상들에서 롬멜등 독일 미화가 좀 느껴지듯이 야마모토의 실책도 이야기하지만 너무 나구모의 무능이 부각되고 수많은 변수들이 언급되지 않아 오해가 있을것 같습니다. 롬멜도 분명 단점이 크고 그의 오판과 한계가 있는데 이 영상에서는 노르망디외에는 보이지 않으니깐요. 우리는 훗날 역사를 알기에 분석하지만 당대 상황은 알지 못하죠. 솔직히 레이테 해전 당시 홀시가 아이오와급에 탄 것과 그의 오판도 미드웨이 당시 야마토에 있던 야마모토와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미국 역시도 뇌격기들을 호위해야하는 전투기들과의 분리는 분명 실책이죠. m.kzbin.info/www/bejne/d4DJk59jaN-biLc 를 봐서 그런지 야마구치 다몬에 대해 좀 더 부정적이던것 같습니다. 진주만 기습에서도 항모를 버려도 된다는 마인드... 어떤면에서 나구모 판단도 이해하고 그가 수상함 전문가로서 보인 판단도 분석하긴해야겠죠. 그래도 확실히 운도 없지만 경직된것이 사실이고 완벽한 계획에 변수를 보지 않는 일본이라서 패배한것이죠. 그덕에 과다카날에서 충격적인 소모당하며 본격적 패배로 갔죠. 혹시 미드웨이 관련된 시리즈가 있는 영상들이 있는데 여기에 대한 감상이 궁금합니다. m.kzbin.info/aero/PLvOTGhweH_Z751LNLtEpYMUBS240WtZl0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이 컨텐츠의 주제는 미드웨이 해전의 승패를 가른 것은 전력의 격차보다 이를 운용하는 "미국과 일본의 문화와 사고방식의 차이였다." 입니다. 따라서 그 주제를 뒷받침하는 내용만을 언급한 것입니다. 만약 그 주제가 아닌 다른 이야기까지 쭉 다룬다면 뒤죽박죽 엉망이 될 테니까요. 따라서 롬멜에 대한 이야기도 "장군님! 대전차포를 쏴도 안터지는 전차가 나타났습니다." 라는 보고가 들어왔을 때 지체없이 하늘을 조준하던 88밀리 대공포를 탱크에 대고 쏜 롬멜의 순발력을 언급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영상에서 노르망디 이야긴 한 적이 없는데 어디서 노르망디를 봤다는 것인지 궁금하네요.
@sungminhwang1700
@sungminhwang1700 6 ай бұрын
@@war-history 이전 롬멜 컨텐츠를 따로 말씀드렸어야했네요. 오해일으켰다면 죄송합니다
@war-history
@war-history 6 ай бұрын
이해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user-dj5bb9of5y
@user-dj5bb9of5y 6 ай бұрын
전쟁에서 창의성이란것은 곳 승리를 지점하는곳이기도합니다 만물상자님이 말햇던것중 전쟁에서 고정관념은 가장 무서운존재라고 롬멜에 88mm대공포는 탁월햇습니다 그런 창의성과 탁월함이 미군이 확실히 뛰어낫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누구도 미화를 가치가 없습니다 우린 이런 교훈을 삼고 게속해서 연구해 이런 실수가 반복하지않도록 하는게 오늘 우리가 배운 역사에 핵심이죠
@STUNDNULL
@STUNDNULL 6 ай бұрын
허구헌날 까도 남조선보다 선진국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6 ай бұрын
이젠 아님
@bokhanlee4049
@bokhanlee4049 6 ай бұрын
조선은 이때 소달구지가 전부였다
@illilliili8426
@illilliili8426 6 ай бұрын
6.25때도 매뉴얼과 원칙만 아는 일본육사 출신 지휘관보다 변칙적이고 임기응변에 능한 만주군관 출신 지휘관들이 더 잘 싸웠죠 백선엽 장군 같은 분이
@libertybellliberty6096
@libertybellliberty6096 6 ай бұрын
백선엽 박정희 만주군 출신입니다.
@user-zs7eb5uc9r
@user-zs7eb5uc9r 6 ай бұрын
선여비를 이런 대목에서 언급하는 건 존나 웃기지 않나? 백가놈보다 더 잘싸우신분이 천지삐가리다. 그자가 신화가 된건 같이 싸웠던 장성들이 먼저 타계하고서 100살가까이 살았던 때문임. 60년대에 선정된 한국전쟁 10대영웅에도 못낀 백가 선엽이가 무신 명장? 갸는 독일로치면 SS친위대출신이나 마찬가지인 간도특설대 악질 친일부역배란다ㅡ 그런 십짜슥이 명장이라고?약처먹었냐? 김종오 이종찬 김홍일 한신 같은 이름은 들어본적도 없지?
@johnLee-yf7cx
@johnLee-yf7cx 6 ай бұрын
미친...그 전투솜씨가 만주서 독립군 토벌하면서 익힌 경험이고, 625 당시 미군 떵갈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미군이 키운 넘이다. 인천 선인학원도 피난민으로 가득한 무허가 판잣집 동네를 미군이 경계하고 미군공병 불도져로 밀어재껴 새웠다. 가히 시대를 앞선 매국노라 할까~
@Benedictial
@Benedictial 5 ай бұрын
정권이 바뀌건 안바뀌건 정치질하는 군인 때문에 대한민국 군대가 안바뀌는거다.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70여 년전 태평양 전쟁에서 결국 미군에게 완패한 일본군의 모습에 국군이 겹쳐 보이는 씁쓸한 현실입니다.
@Benedictial
@Benedictial 5 ай бұрын
@@war-history 너무 안타깝습니다. 진짜 이 한반도에서 역사는 항싱 반복 되풀이 되는게 너무 안타깝네요.
@parmenideskim9739
@parmenideskim9739 6 ай бұрын
2차대전때 일본군 지휘체계도 경직되 있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더 합니다. 북한 무인기가 용산으로 날라왔을때 군은 대통령에게 격추허가를 내려달라고 거듭 요청했지만 멘붕에 빠진 윤석열이는 천공만 찾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윤석열이는 무슨 일만 생기면 모든 책임을 실무자에게 뒤집어 씌우기 때문에 군은 독자적으로 행동할 여지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윤석열이가 멘붕에 빠져 후우적대는 사이 북한 무인기는 유유히 북한으로...
@user-eq5pw5ei3g
@user-eq5pw5ei3g 6 ай бұрын
뭔개소리~
@user-qq9qg1kh4z
@user-qq9qg1kh4z 6 ай бұрын
대일본제국이 승리했어야 되는데 아깝다 분하다 😢
@parmenideskim9739
@parmenideskim9739 6 ай бұрын
군대 지휘관도 경직된 사고관을 가지고 있으면 저렇게 위험한데 대통령이 경직된 사고관을 가지고 있다면? 지금 우리나라가 그 꼴이고 덕분에 경제건 뭐건 모든 면에서 나라의 국운이 기울고 있습니다.
@user-fk4vv1jx8t
@user-fk4vv1jx8t 6 ай бұрын
저는 오히려 나라가 정성화되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진분들의 생각을 존중합니다.
(30분) 중일 전쟁의 발단! 미국이 끼어든 이유는? | 사피특강
29:55
사피엔스 스튜디오
Рет қаралды 176 М.
Когда на улице Маябрь 😈 #марьяна #шортс
00:17
🍟Best French Fries Homemade #cooking #shorts
00:42
BANKII
Рет қаралды 9 МЛН
[토크멘터리 전쟁史] 20부. 전국시대 통일전쟁
44:47
[토크멘터리 전쟁史] 80부 2차 중동전쟁2
46:10
[토크멘터리 전쟁史] 42부 십자군 전쟁 4편
52:51
Когда на улице Маябрь 😈 #марьяна #шортс
0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