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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365는 인기가수들의 공연, 한국가요 100년의 명곡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옛날을 추억하며 노래로서 그시대의 애환과 사랑을 함께 공유합니다
1935년 말 또는 1936년 초에 시에론레코드를 직접 찾아가 테스트를 받고 선발되어, 1936년 2월에 방송 출연으로 가수로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7월에 데뷔곡인 눈물의 해협 음반이 발매되었으나, 다시 오케레코드로 옮겨 12월에 첫 작품 돈도 싫소 사랑도 싫소, 범벅 서울을 발표했고, 이때부터 본명 대신 남인수라는 예명을 사용하기 시작하였으며. 이후 오케레코드 전속으로 많은 노래를 발표했고, 조선악극단과 오케싱잉팀 소속으로 무대 공연도 활발히 했습니다. 1940년 2월에 이철(李哲)과 불화를 빚어 한때 전속 계약을 해지하는 등 문제가 있었고, 10월에는 지병인 폐결핵 때문에 평양 무대에서 피를 토하고 쓰러지는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1943년까지 오케레코드를 대표하는 정상급 가수로 활하였고. 음반 제작이 중단된 1944년 이후로는 약초(若草)가극단, 남해(南海)이동연예대, 신협(新協)악극대 등에 소속되어 무대에 서기도 했습니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남인수 [南仁樹]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오케레코드와 조선악극단), 2009., 한국콘텐츠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