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의 저 멤버가 최고의 멤버였는데. 김현준, 신동찬, 오세웅, 박인규, 김진... 이 5 명이 삼성 역대 최고의 멤버였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슈팅력을 갖고 있고, 이 때 가장 화려했던 것 같습니다. 이 밖에 조동우, 임정명, 김윤호 센터라인이 있었고요. 지금 삼성의 모습을 보시죠. 프랜차이즈 스타 전멸에, 새 감독이 와서, 팀을 개혁하는게 아니라, 한물 간 이정현 선수 데려오고, 슛 성공율 20% 대 보여주는.. 앞 날이 깜깜합니다.
84~85시즌 챔피언결정전. 당시 초딩이었지만, 삼성의 열혈팬으로서 기쁨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양팀 대부분의 선수와 코칭스탭. 그리고 황태석해설위원까지.. 이름과 얼굴 다 기억나네요. 영상 덕분에 추억소환 잘 했네요. 당시 덩크슛이 무척 귀하던 시절 간간히 덩크슛을 뽐내던 삼성의 195 장신센터 조동우선수가 안보여 조금 아쉽습니다.
@아싸-p2p2 жыл бұрын
조동우 선수 대단한 센터였는데 당시 잦은 부상에 간염에 몸이 말이 아녔죠. 선수생활 내내 부상에 시달리던 불운한 선수였습니다.
@hunkbae Жыл бұрын
천잰데? 그게 다 기억 나다니. 그머리로 공부를 했으면 서울대 갔을텐데
@d1t2r3t4m52 жыл бұрын
아, 가슴이 아프다. 고 김현준 님이 당시 우리 집 바로 근처서 사고로 돌아가신 바람에 거기를 지날 때마다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나네요.
@michaels35202 жыл бұрын
心 腸...
@최우영-x7f3 жыл бұрын
고인이 된 이원우 김현준 선수를 보니 아련하네요.
@hunkbae Жыл бұрын
이원우도 죽었어?
@시몬-v6s Жыл бұрын
@@hunkbae 그래임마
@hunkbae Жыл бұрын
@@시몬-v6s 왜 죽었대? 첨 알았네
@시몬-v6s Жыл бұрын
@@hunkbae 알고다녀라 이놈아 콱개
@hunkbae Жыл бұрын
@@시몬-v6s 우째 남 죽은걸 다 알고 댕기겠노
@해바라기-f1j2 жыл бұрын
벌써 37년전의 일이라니 놀랍네요... 정말 오랜만에 농구대잔치를 다시 봤는데, 이충희의 현대가 지는 경기라서 아쉽네요...
@hunkbae Жыл бұрын
기아가 현대한테는 강했고 삼성한테는 약했고 삼성은 현대한테 약했고
@훈-y1e6 ай бұрын
농구중계는 볼을 중심으로 전개되니까 슈터들이 부각되는데, 그 시절 농구대잔치를 보러 가서 볼보다 임정명 선수의 움직임을 주로 봤던 적이 있습니다. 진짜 수비, 리바운드, 몸싸움 최고 였습니다. NBA로 본다면 로드맨 같은~~ 몸사리지 않고 하는데 상남자 그 자체였습니다.
@youngkim91013 жыл бұрын
고인이된 3점슛터 김현준
@Kimdojinaah6 ай бұрын
김현준선수 왕팬이였어요 그립네요
@살다보면-h6u6 ай бұрын
정말 김현준 슛의달인 중학교때 나의 우상이었는데.. 아깝게 일찍 가셔서 마음이 아프네요..
@변성우-i3x Жыл бұрын
이때 농구가 제일 좋아요
@송태석-w3j Жыл бұрын
이때만 해도 정말 농구 잼 있게 봤는데 ㅋㅎ 세열이 이리 흐르다니 ㅠㅠ 이충희 정말 대단한 선수임 농구 천재는 이충희임
@오영학-y1s Жыл бұрын
선천적 타고난 컴퓨터슈터 이충희VS노력하면서 실력쌓은 후천적 전자슈터 고김현준!^^
@톨레랑스-c9m Жыл бұрын
농구는 허재
@부산갈매기-m7t11 ай бұрын
이충희는 그냥 슛만잘쏘는 슛도사 농구천재는 허재고
@이광희-x1k4 ай бұрын
이충희경기를다보구얘기를해야지 80년대이충희인기실력 농구자체였음
@clap-bx3ho3 жыл бұрын
3점라인, 3점없을때 귀한 영상
@michaels35202 жыл бұрын
3점 없을 때가 맞군요... 저도 84년, 85년 이 무렵이 3점 라인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가물가물했었는데...
@주화-d4n2 жыл бұрын
이충희는 거의 3점이네요
@김영동-e4k Жыл бұрын
역시 전자슈터 김 현준~~~^^
@플레야데스2 жыл бұрын
김현준 이원우는 이 세상에 없네 ㅠㅠ
@김우겸-g3x Жыл бұрын
현대전자와 삼성전자가 대결하니 그때가 좋았고 멌있었다!!!
@randmboy5 ай бұрын
캬... 3점슛라인 없는거 정말 오랜만에 보네요...ㅎㅎ
@뚱스-e8z2 жыл бұрын
저 때 농구는 진짜 인기 있었지. 난 개인적으로 삼성 팬이었다. 특히 김현준! 그외도 임정명, 박인규, 조동우, 신동찬, 오세웅, 김진, 김윤호 등등
@아싸-p2p2 жыл бұрын
그외 안준호 진효준 윤득영 이영근 등의 선수들도 모두 국가대표 출신들이었죠. ㅋㅋ
@콴탄타 Жыл бұрын
박상관. 이창수
@ianlee61332 жыл бұрын
그냥 슛은 이충희 !!! 저시절은 슛도 이충희 농구도 이충희
@김영만-j7y5p2 жыл бұрын
아 김현준
@Polar_bear19742 жыл бұрын
삼성 주장이 아마 진효준 선수(전 골드뱅크 감독, 전 고려대 감독) 인 것 같고, 신동찬, 박인규, 김현준, 임정명, 오세웅 요 라인업이 베스트5네요. 삼성, 현대 라인업은 당시 사실상 국대 라인업이었습니다. 요 라인업으로 82년 뉴델리 아시안게임에서 중공을 이기고 금메달을 땄었죠. 백업에 안준호, 김진, 조동우 선수 보이고... 주무(트레이너)에는 이광재 선수 아버지인 이왕돈씨, 이왕돈씨 쓰러지고 나서 전창진 감독이 주무를 맡았죠. 시간이 많이 흘렀네요. 기존 실업리그에서 점보시리즈가 창설되면서 현대-삼성의 라이벌 구도가 농구의 1차 부흥기를 이끌었습니다. 말안해도 아시겠지만 이후 중앙대에서 파생된 기아자동차가 가세하고, 고대-연대 라이벌구도가 펼쳐지며 농구의 중흥기가 있었고, 이후 프로화가 되게 됩니다.
@나야나-x8w5t6 ай бұрын
김현준이 슛은 더 정확했지
@goodquddns97292 жыл бұрын
남자것만 올리지시지 말고 80년대 여자부경기도 올려주세요..박찬숙 김영희의 대결, 최경희 신기화의 대결 보고 싶어요
@rockyguyda Жыл бұрын
이충희 나의 소년시절 우상
@l10097103 жыл бұрын
ㅋㅂㅅ박물관❤️
@piesunny Жыл бұрын
슛도사 이충희 선수 vs. 전자슈터 김현준 선수
@이승현-b6u2 жыл бұрын
이충희 왕팬이었지 농구하면 이충희지
@김우겸-g3x2 жыл бұрын
현대전자와 삼성전자가 대결하니 대단하다
@윤유원-v7b Жыл бұрын
현대는건설이었어요. 나중에전자로바뀌었어요
@디펜딩챔피온4 ай бұрын
현대건설 삼성전자 나중에바뀜@@윤유원-v7b
@오영학-y1s2 ай бұрын
허동택범 완숙기전 88년까진 삼성전자,현대의 양강체제였던 국내 남자농구!간간히 양팀을 혼쭐내던 최철권이란 이충희,고김현준과 국내 3대슈터 보유했던 기업은행이 도깨비팀이었고~^^!
@hanjw797 Жыл бұрын
중앙대가 없던 시절... 중앙대가 두각을 나타내고 허재,한기범,김유택 등 졸업생들이 기아 창단맴버로 들어가면서 농구 대잔치는 점점 재밌어지죠..
역전 당하는 경기이려나 하면서 끝까지 봤더니 삼성 우승일세 ㅎㅎ 어린 시절 토욜에 농구대잔치 보던 기억이 새록새록.. 저 시절 김인건 감독님이랑 전자슈터 김현준 선수.. 정말 좋아했더랬죠 ㅜㅜ
@knature98076 ай бұрын
저 당시 난 현대전자 광팬이였고 이충희가 진짜 슈터였지. 대단한 이충희. 그리고 이원우도 대단했고 박수교도.
@-mcr-kickthedoor98206 ай бұрын
현대 박수교의 부상만 없었다면...아마 현대가 이때 우승하면서 전인미답의 점보시리즈 4연패를 이뤘을텐데...
@황재석-t9x7 ай бұрын
영원한 우상 김현준선수
@billiejean_is_not_my_lover Жыл бұрын
1999년 10월 1일자로 기억하는데 신문 보고 김현준 선수 사고 사망 소식 접하고 2주간 거의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네요. 학창시절 겨울방학때 김현준 선수 응원하러 잠실학생체육관 찾았던 시절이 그립네요. 어떤 자세에도 늘 정확한 슛을 구사했던 슛쟁이 이충희 선수가 늘 부럽다고 했던 김현준은 이충희에 가려 늘 2인자에 머물더니 이충희 은퇴 후엔 중앙대 허동택 라인이 그대로 기아차로 옮겨 허재 인기에 또 가렸죠. 다행히도 득점왕은 늘 김현준 선수 차지였죠. 그 후 삼성물산 재직중이던 김현준 선수 동생 헬기 사망사고까지 접하며 세상은 참 공평치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충희 김현준 자유투 성공률은 어쩌면 기네스북에도 올라야할 만큼 백발백중이었죠. 시즌 자유투 성공률 98%를 기록했던 김현준이었으니까요.
@AFKorea91 Жыл бұрын
고 김현준 선수 좋아했지만 시즌 자유투는 85~92퍼 정도로 기억합니다. 98퍼인 시즌이 언제인가요?
@billiejean_is_not_my_lover Жыл бұрын
@@AFKorea91 시즌 자유투 성공률도 공개하나요? 보통 자유투 던질때 성공률이 자막으로 제공되는데 시즌 중후반에도 98% 찍는 경우 종종 봤어요. 특히 이충희 은퇴후에요. 허재는 70% 중후반에서 80% 초 찍었던 걸로 기억해요.
@정의맨-f6f3 жыл бұрын
조춘재 캐스터, 최동철 기자도 반갑습니다.
@kiwonyi62625 ай бұрын
허재를 마이클 조던에 비유한다면, 이충희 김현준은 마이클 조던 시대 이전에 NBA를 양분했던 매직 존슨과 래리 버드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농구대잔치 리턴즈] 1993-1994 여자부 개막전 현대산업개발 vs 한국화장품 요청합니다,
@Park-YoungJin Жыл бұрын
4:45 캐치앤슛을 어떻게 하는지 보면 앵클 브레이커가 따로 없다
@Polar_bear197410 күн бұрын
그 당시 엘 클라시코 같은 경기였지요 삼성 현대전
@jylee20g2 жыл бұрын
삼성 5번이 바로 삼성전자 프랜차이즈이자 향후 KBL 프로농구 출범 이후 동양 오리온스 창단멤버였던 김진 코치였습니다 ㅎㅎ 보통 농구인 김진을 보면 동양 오리온스의 통합우승과 LG 세이커스의 창단 첫 정규리그 우승 그리고 2002 아시안게임 대표팀 금메달 사령탑이었던 김진 감독님으로 많이 기억하죠 ㅎㅎ 현역 시절 고려대를 동경했는데 마침내 고려대 농구부에 진학했죠 ㅎㅎ 대학 선수 시절 당시 모교 대선배였던 이충희의 백업 슈터였습니다 ㅎㅎ 김진 감독님은 명선수는 명장이 되지 못하는 속설을 깨뜨렸습니다 ㅎㅎ OB 농구인들(농구 선배) 대다수가 놀라워했네요 ㅎㅎ 그 속에 UCLA 전지훈련 때 선진농구를 접하면서 NBA에서 전술과 전략의 아이디어를 얻으면서 KBL에 런앤건을 만들어냈죠 ㅎㅎ 전 삼성전자의 김진 선수는 백넘버 12번(이후 전창진 감독님과 강동희 감독님과 친한 후배인 김승기 감독님)의 주인공이자 90년대 주장이었습니다 ㅎㅎ 이 시절 김진 선수는 신인(루키)이었는데 그것도 백넘버 5번이 오늘임을 뒤늦게 알았네요 ㅎㅎ 당시 12번이 장신 포인트 가드였던 신동찬이었네요 ㅎㅎ 보통 이충희와 김현준의 라이벌 구도에 주목하지만 그 사이에 후배 김진이 있는게 놀랍네요 ㅎㅎ 이런 자료에 감사합니다 ^^
@mrk52187 ай бұрын
솔직히 농구대잔치는 김현준 독무대였다 4년 연속 득점왕 게다가 삼성은 김현준 원맨팀이라 전부 김현준만 마크해서 쉬운 득점은 없었다
당시에는 이충희때문에 수비전문선수가 유행이었음. 대표적인 선수가 기아의 정덕화선수, 삼성의 신동찬도 이충희를 잘막았음
@byongilkim8591 Жыл бұрын
3점슛제도가 없던시대네요 ㅎㅎ
@hwanshincho99342 жыл бұрын
예전 이시절에 현대아파트 살던 사람인데 65동에 이 선수들 다 같이 살면서 운동하는 모습도 보고 오락실에서 오락하고 탁구 치는 모습도 봤는데..ㅋㅋ오래전일이네요
@nesta5420 Жыл бұрын
저도 그당시 62동 살았어요 ㅋㅋ 65동 직원용 아파트 ㅋㅋ
@seungkilee60223 ай бұрын
이충희가 농구계 오빠부대의 원조라고 하는데 김현준도 여성팬들은 있었을 것 같고 둘은 대표팀 동료이기도 했지만 친한 사이는 아니었음.
@호수-w1t2 жыл бұрын
김현준 선수 삼성 입단전까지 현대의 라이벌이 아니었죠 그전까지는 처참하다 싶을 정도로 현대에게 발렸는데 김현준 선수가 입단하면서 현대 삼성의 라이벌 구도가 완성됐지요 허재의 기아가 나타나기 전까지 이충희 김현준의 현대 삼성이 우리나라 농구를 책임졌지요
@K偶然 Жыл бұрын
무슨 모르는 소리ᆢ 김현준 오기전에도 삼성이 현대보다 위였어요
@오정우-r8h7 ай бұрын
현대가 압도했지요. 박수교,신선우,이충희 라인인데, 삼성은 신동찬,박인규 비교가 안됐어요
@hwangj.h68212 жыл бұрын
아 삼성 현대가 이때도 있었음
@myyee8791 Жыл бұрын
이충희는 nba급
@이초록-s4z2 жыл бұрын
허재 중앙대학 1학년때 이후 허재 활약으로 중앙대 전성기 시절됨
@빅맨-y2l Жыл бұрын
야 그 시절에는 현대 삼성이 농구 잘하는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이충희 김현준 빼고는 점퍼 하나 제대로 넣는 선수가 없네요. 파이널 마지막 경기니 체력이야 바닥 났겠지만 집중력은 최고조 일텐데 두선수 제외하고 점퍼가 하나도 없는건 충격이네요. 이러니 허재가 나와서 다 쓸어버린게 당연하다 생각되는 경기내용 입니다.
@user-cj7qe4zn6p2 жыл бұрын
중학교때생각납니다
@jadekang74176 ай бұрын
삼성은 유리몸이 유난히 많았던 기억이 납니다. 정상이면 삼성의 전력이 약간 우세했지만 주전급이던 조동우와 임정명,오세웅.진효준,박인규는 항상 부상을 달고 다녀서 못볼때가 참 많았죠. 신동찬과 김현준이 그나마 큰 부상 없이 고군분투했고 반면 현대는 박종천을 빼면 유리몸이라고 할만한 선수가 별로 없어서 양팀 매치업에서 유리한 경우가 많았고 이긴적도 더 많았던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조동우와 임정명이 정상이면 삼성이 이기는 경기가 많았고요.
@김딸배-w9m Жыл бұрын
이충희 선수도 잘했지만 김현준팬 이였던것은 슛폼이 멋있었죠.
@jehyeonlee7402 Жыл бұрын
3점이 없었구나 있었으면 더 재미있었을텐데
@BongBong02196 ай бұрын
3점 라인이 없네요.ㅠ
@이방섭-d9p2 жыл бұрын
삼성전자 보다는 현대전자가 선수 구성이 좋아지요 삼성은 김현준 슛터에거 많이 의존했다고봐야죠
@우주인-c9g Жыл бұрын
당시 현대가 센터만 뛰어났으면 기아차,중앙대 상대가 안됐지 현대천하가 될수도 이충희,이원우,박수교 대단한 슛도사들 ㅎㅎ
@kimdos Жыл бұрын
김성욱이 센터였으니
@아싸-p2p2 жыл бұрын
신일고 출신 임정명 김진. 아마 김진이 신일고 농구부의 마지막 레전드급 선수인 걸로 기억. 농구부 해체하면서 야구부 창단했다죠.
@오아시스-m9k Жыл бұрын
김현준이 득점 3위라 저 당시에 재야의 득점왕 한국은행의 오동근이 있었음 현대 삼성은 다른 슈터들이 좀 있었던 반면에 한은은 오동근 슛 점유가 월등해서
@jinseoksohn91711 ай бұрын
한국은행이 아니고 산업은행 아닌가요
@오아시스-m9k11 ай бұрын
@@jinseoksohn917 산은엔 장철진이라는 다른 슈터가 있었어요
@tv-ox6kk Жыл бұрын
이때는 3점슛이 없었나요 라인이 없네요
@조영삼-i9r Жыл бұрын
이때 삼성전자 주식좀사놨더라면 ㅠㅠ
@박정진-k5n6 ай бұрын
직관했던 기억이
@사필귀정-d7w2 жыл бұрын
허재더러 농구 대통령이라 한다지만 , 진정한 농구 황제는 바로 이충희다 ㅎ ㅎ . 허재와 비슷한 선수는 또 나올 수 있지만 , 이충희는 그 근처에나마 갈 수 있을만한 선수조차도 다시는 나올 수 없다 . 그게 바로 이충희와 허재의 레벨 차이다 . 허재가 인간계 최고라면 , 이충희는 이미 신계에 있는 존재다 . 그런 이충희에 가장 근접했던 이가 바로 김현준이고 . 중거리 슛 능력에 있어서는 허재는 이충희는 고사하고 김현준에게도 한참 못미친다 . 물론 허재는 이것 저것 전천후로 골고루 잘하긴 하지만 ㅎ ㅎ . 전성기 시절 실력이라면 , 슛팅 능력 면에 있어서만큼은 이충희가 단순히 한국 최고만이 아닌 세계 최고의 실력자였다고 확신한다 ㅎ ㅎ .
@차돌이123 Жыл бұрын
진짜 이충희는 정말 정말 대단했어요
@톨스토이-s5w Жыл бұрын
허재는 한기범,김유택이 있어서 우승이 가능한거였죠~~
@윤유원-v7b Жыл бұрын
이충희 고대시절 실업팀다이김. 허재 그멤버로. 실업팀 한번도못이김. 님말이정답
@briannickyhong35099 ай бұрын
이충희 한물 갔네요 ㅠㅠ 예전에는 잘했었는데
@appetite4214 Жыл бұрын
김현준이 다음해 상무 입대를 하고 ,상무 소속으로 삼성에 일격을 가해 ,삼성은 결승 진출에 실패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