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순제 교수의 발해사 강좌 2강 | 연개소문 제거에 실패한 영류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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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үн бұрын

Пікірлер: 21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Ай бұрын
고려의 속주였던 강주는 대명여지도 초기본에서 삭제. 동녕부(쌍성총관부)는 대명여지도 중중기본에서 삭제.
@user-ry6dy3bl7e
@user-ry6dy3bl7e Ай бұрын
이런 정신나간 소리로 도배하는게 너희 식민사학의 전략이지. 일반 사람들이 민족 사학을 혐오하게 만들려고 말야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Ай бұрын
@@user-ry6dy3bl7e 서안평은 대명여지도 중초본에서 이동후에 도착지에서 삭제.[大河(황하)를 건너지 못한것이 문제가 됨]
@waitgold1234
@waitgold1234 Ай бұрын
kzbin.info/www/bejne/hJSWm5WkgNWSra8si=dF-7nvFLICorkGkm 중국역사 명사 요사에 고구려 평양이 북경근처였고, 안동도호부..그래서 무령왕을 안동대장군..그쪽 다스리던 왕 이라 중국에서 작위를 내렸다...강단사학자들 처벌법 만들어야
@osy5871
@osy5871 Ай бұрын
고건무.. 영류왕을 친중파라고 보고 또 영양왕의 자녀가 없다는 기록이 없는데도 동생인 그가 왕위 계승한 것, 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을지문덕.... 고건무가 왕위찬탈과 친중정책을 위해서 제거 했을 수도... 그리고 친중정책을 하다가 연개소문등에게 제거 당했다고 볼수있음..
@user-le6mj3se3t
@user-le6mj3se3t Ай бұрын
1388년 이전의 현재의 만주와 한반도는 그저 조용하고 평화롭고 안전한 고려의 안전지대. 그 이전에도 안전지대, 그 이전에도 안전지대.
@jim5-k6l
@jim5-k6l Ай бұрын
중국 요양박물관에서 거기가 고구려 평양이었다고 박물관에 전시하고 있습니다. 중국도 요양이라고 인정하는 평양을 왜 한반도 평양으로 갖고 왔을까요? 돌궐등이 침공하고 고구려가 쇠약해져서 요양을 포기하고 한반도로 후퇴한 것인가요? 하지만, 요하가 압록수였다고 하고 한사군이 지금의 난하 지역이었다고 이야기 하는건 괜찮습니다. 그리고 아직 불분명하게 발언하지 않은 내용이 있습니다. 당시 요택과 요수의 위치입니다. 압록수가 요하였다면 요수의 위치는 어디인가요?
@davidjeong7675
@davidjeong7675 Ай бұрын
저는 이제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모두다 왜곡된 역사로 학위받아서 생긴 일이죠
@user-nx9ju7kk6s
@user-nx9ju7kk6s Ай бұрын
요택은 지금의 란하 중류 2 개의 승덕이 표시된 지점이고 그 요택 지점을 대요수.황하, 염난수.요하, 요수.혼하 3 물길이 흘러들었습니다. 즉 요동군 주석과 같이 낙양에서 동북쪽으로 3600 리 떨어진 곳은 지금의 요하 하류 유역이 아니라 지금의 란하 중류인 것입니다. 이러한 지리는 전한 시기부터 청이 멸망한 1911 년까지 약 2100 여년 동안 변동이 없었는데, 뜬금없이 1873 년경부터 섬나라 일국 서향융성이 육군참모부를 동원하여 청국의 란하와 황하.요하 2 물길을 란하 1 물길로 변조하고 황하는 동북쪽에 흐르는 당시의 흑룡강을 대체하여 서요하로 표시하고 요하도 동쪽으로 3000 여 리 쯤 떨어진 지금의 요하로 이동.위작한 엉터리 습작지도를 간행.선전하였고 1934 년 만주국지도에서 공식화시켰습니다. 1949 년 건국된 화국도 만주국지도 표시를 습용하여 지금에 이른 것입니다. 그리고 기록에는 요하가 아니라 요수가 일명 압록강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일연국사는 동경도에 설명.기록된 요하가 아니라 혼하를 고려 압록강으로 인식한 것이며 혼하는 에는 현토군 고구려현에 있는 요산에서 발원한 요수였고 송.거란 시기부터 혼하로 개칭된 물길입니다. 그런데 화국이 고구려 평양을 요양이라 하였다고요? 직접적으로는 동경요양부 기록에 근거하였을 것인데, 그 기록은 를 편찬한 몽고 재상 탈탈의 실수입니다. 고구려가 요동 지역에 도읍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에도 평양성은 요동 양평현에서 동남쪽으로 800 리 떨어졌다고 설명.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탈탈은 진국의 홀한주 중경현덕부를 옛평양성이라고도 했는데 이 옛평양성은 고구려 평양성이 아니라 고대부터 전해온 평양.임검성 곧 왕검조선의 아사달을 말하는 것이며 청 시기에는 길림성 쌍양현이 설치된 곳이며 그 위치는 지금의 화국 하북성과 요녕성 경계에 있는 녕성 부근을 말합니다.
@batuu2601
@batuu2601 Ай бұрын
연개소문 때문에 고구려 멸망 당함
@user-lk8zb2us1k
@user-lk8zb2us1k Ай бұрын
오순제교수는 민간사학자들이 제기하는 조선강역에 대해 이주 부정적이든디. 한일왕조적 관계를 연결시키는 뭔가 반일감정을 잠재우려는 것같은 깨림찍한 강의도 그렇고.
@user-ry6dy3bl7e
@user-ry6dy3bl7e Ай бұрын
이런 헛소리로 선동을 하지 말고 구체적으로 주장해라 분탕꾼아
@user-lk8zb2us1k
@user-lk8zb2us1k Ай бұрын
@@user-ry6dy3bl7e 매판역사를 추종하는 강단사학자들의 특징은 저들끼리 동조하는 논문인용과 실증사학에 목메달고 북경에서 구입한 낙랑유물을 북한평앙에 묻어두고 낙랑이 현 평양이라고 유물출처를 날조한 일본학자 세끼노 다다시를 역사대스승으로 삼는다. 그는 북경에 낙랑유물이 무더기로 있더라고 자랑했다.건륭황제의 명으로 편찬한 만주원류고에 낙랑이 북경인근이고 계명대 최춘태 교수도 고죽국은 낙랑이라고 했어도 인정하지 않지. 강단학자들이 흠모하는 이병도교수의 최고 스승이 조선사 편수회 핵심인물로 조선민족은 악질적 不理비道 족이라고 미친소리를 내뱉고 임나일본설을 외친 쓰다 쇼기치를 최고스승으로 모시고 최근에도 이를 추종하는 세력이 밈나일본설을 근거할수있는 가야사를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다 강력한 반발에 주춤되고 있고 모든 곳의 박물관장들도 주류가 이런 사관에 있는 자들이지.
@jim5-k6l
@jim5-k6l Ай бұрын
요택과 요수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으시고 그냥 요하를 가리키면서 당태종이 요택을 지나가서 바로 앞의 요동성에 도착했다고 하는데.. 글쎄요. 요하 가운데에 요택이 있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요하를 압록수라고 설명하신 내용과도 안 맞는 설명입니다. 요하가 압록수라고 하면서 거기를 찍으면서 요택이라고 하시면 안됩니다. 아무튼 요수의 위치에 대해서는 두리뭉실 뱀 넘어가듯 넘어 가시는데요. 그것까지 확실하게 결정해서 말씀해 주시면 금상첨화입니다. 다음을 인정하시는 것에 대해서는 아주 좋은 내용입니다. 1. 요하는 압록수다 2. 한사군은 지금의 난하에 있었다. 3. 임유관은 난하에 있었고 여기에서 강이식장군이 수나라를 격파했다. 이제 마지막 키.. 요수와 요택의 위치를 분명하게 말씀해 주시면 말씀대로 말뚝을 박으실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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