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낙청 공부길 103] 신이 필요한 인간의 영적 욕구 채워준 원불교 법신불 ‘사은’의 의미 [개벽사상과 종교공부] 백민정 교수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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Күн бұрын

Пікірлер: 11
@김정순-y2u7r
@김정순-y2u7r 6 ай бұрын
백낙천교수님.존경합니다. 힘내세요. 건강하세요.🙏
@MementoMori-sz4su
@MementoMori-sz4su 6 ай бұрын
선생님 건강하셔야합니다
@정미연-r6y
@정미연-r6y 6 ай бұрын
백민정교수님의 차분하신 목소리가 귀에 쏙쏙 들어옵니다 오늘도 두분 어른말씀에 귀기울여봅니다
@현진권-u3u
@현진권-u3u 6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
@하연수-f1g
@하연수-f1g 6 ай бұрын
좋은 정보 항상 감사합니다. 요즘 날씨가 무덥습니다. 선생님 건강 유의하세요. 전북대 이강오 교수의 증언) 박중빈(朴重彬, 1891∼1943). 원불교(圓佛敎)의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은 보천교 대흥리 시절에 지방 조직의 조직원이었고, 그 후 보천교 간부 임경호의 12임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원불교 2대 교주, 송규(宋奎, 1900∼1962). 호는 정산(鼎山).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출생하였고 경상도 가야산에서 보천교 교단의 신도들로부터 ‘큰공부를 하려면 정읍 대흥리 교단에 가서 배워야 한다.’는 말을 듣고 찾아가게 됩니다. 그러나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송찬오(宋贊五, 1849∼1934)는 지금의 원평 새마을 금고 근처에서 엿방을 하며 증산 상제님을 신앙하다가 상제님의 목침을 얻게 됩니다. 그 후 10년 뒤에 원불교의 개창자 박중빈에게 신표로 바치게 됩니다. 송찬오는 증산 상제님을 독실하게 신앙했으나 결국 등을 돌리고 박중빈 교단에 들어가 추종하다가 불교 일색으로 나가자 결별을 하게 됩니다. 그 후 원평 안암리(安岩里)로 들어가 살다가 자손 없이 죽었습니다.
@byung-gohnchoo5733
@byung-gohnchoo5733 6 ай бұрын
추천합니다
@이광웅-f3q
@이광웅-f3q 6 ай бұрын
평천하를 위하여 서민들의 지혜로움과 열정적인 삶이 중요하지만 지도자들이 보다 치열하게 윤리학을 공부하고 실행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살고자 합니다.감사합니다 .
@박용애-p4l
@박용애-p4l 6 ай бұрын
소태산 박중빈은 대흥리 도장 시절에 신앙한 지방 조직의 조직원이었고(원광대 원로 교수의 증언), 그 후 보천교 간부 임경호의 12임 중의 한 사람이었다.(전북대 이강오 교수의 증언)
@soyi8090
@soyi8090 6 ай бұры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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