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나무는 원어로는 두 그루가 아니라 한 그루라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지요. 전자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상태)라면, 후자는 그것을 모르는 나무(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동전의 앞면이 위로 올라오면 앞면만 보이고, 뒷면이 올라오면 뒷면만 보이듯이, 선과 악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그러나 동전은 하나이듯이 선과 악도 하나라는 것을 아는 상태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은 것이 아니라 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은 상태이고, 이 상태가 되어야 진정한 생명을 얻은 상태(구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허무한 흙으로 만들었지만,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면 생령이 되는 것입니다. 출발은 허무이지만, 그 끝은 생령 즉 하나님 그 자체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조물주)이 세상과 우리를 창조한 이유이고요. 그러나 이것은 엄청 어렵습니다. 그래서 화염검으로 지킨다고 하는 것이고, 지킨다는 것은 누군가는 뚫고 들어가서 그것을 먹으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돼지처럼 땅의 것만 먹고 살려는 사람에겐 막아야 하지만(돼지에게 진주를 던지지 마라), 인간(공중 나는 새)이 되어서 하늘을 보며(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사는 사람에겐 자기를 죽이고 들어가면 먹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화염검을 뚫으려면 자기를 불에 태워(번제로 드림) 죽여야 하니까요(나는 날마다 죽노라. 날마다 산 제사로 드린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간다). 화염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말씀을 제대로 깨닫아야 뚫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막는 것도 말씀이지만, 들어가게 하는 것도 말씀입니다. 말씀을 통해 자기를 죽이는 것이 안식의 시작입니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선과 악을 구별하는 법을 배웁니다. 갓난아기는 스스로 살 수 없기 때문에 어머니(하와)로부터 생존하는 방법을 배우는데, 아기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받아들이고 해가 되는 것은 거부하는 것입니다. 보통 해가 되는 짓을 하면 “지지~~” 하면서 가르치지요. 아기는 모든 것을 가리지 않고 입으로 넣는데, 엄마(하와)로부터 선과 악을 구별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하고, 자라면서 점점 부모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람과 사회와 가치관을 구별하는 방법을 배웁니다. 어떤 사람이 내편이고 어떤 사람을 피해야 하는지, 어떤 사회의 관습이 옳은지를 배웁니다. 그래서 모든 인간은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이 거의 본능적입니다. 이것을 선악과를 먹었다고 하는 것이고, 이것이 원죄라면 원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살아 있는 동안 여기서 벗어나는 것이 구원입니다.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은 어릴 때의 생존엔 도움이 되지만, 자라서는 행복한 삶을 사는데 굉장히 방해가 됩니다. 커서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에서 인간의 모든 분쟁과 괴로움과 두려움이 생깁니다. 선과 악으로 구별하는 것은 거의 자동적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매사에 선과 악으로 구별(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음)하지 말고, 그것을 하나로 보라(생명나무의 실과를 먹음)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구별하면 내 영혼이 죽는다는 것입니다. 불교의 가르침도 비슷하고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등 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창세기 1장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하는데, 저는 태초를 인간이 처음으로 선과 악을 구별하기 시작한 때로, 하나님을 나 자신으로 해석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모든 인간은 선(하늘)과 악(땅)을 구별한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태어났을 때는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혼돈(흑암) 상태였지만, 처음으로 선과 악을 구별하면서 빛과 어둠이 나에게 생기고, 천체와 같은 복잡한 사고가 생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내가 생각을 통한 말로써 창조하고 구별하기 시작합니다. 각종 채소와 동물, 그리고 동물을 이름을 지어 구별하듯이 모든 것을 구별(창조)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내(=하나님)가 보기에 좋아 보입니다. 일체유심조라고, 내가 내 생각으로 모든 것을 창조할 수 있어서 하나님 같고, 내가 구별한 모든 행위만 선하게 보입니다. 반면에 다른 사람이 한 것은 모두 악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창조의 최종 목적지는 안식입니다.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창조한 후, 그런 과정을 거쳐 마침내 안식하는 것 즉, 선과 악을 구별하는 삶에서 구별하지 않고 안식하는 상태가 되는 것이 인간이 창조된 목적입니다. 흙으로 만들어진 인간에게 하나님의 영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선악과 이후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인간이 자기 생각대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며(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여기서 벗어나 안식 상태에 있는 인간의 모습을 구약에서는 야곱처럼 백발이 성성하다거나 열조와 함께 잠들었다고 하고, 신약에서는 공중 나는 새라고 하고 예수라고 합니다. 예수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은 후(마가복음1장11절)부터 하나님의 아들(하나님과 하나)로 살아갔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에서 최후의 기도로 자기와 하나님이 하나인 것처럼 우리도 하나가 되길 기도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으면 이웃도 하나님입니다. 그런 내가 이웃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됩니다(율법의 완성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나와 너를 구별하는 것이 인간이 선과 악을 구별하는 것인데, 이것을 구별하지 않으면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온전한 사랑은 나와 너를 구별한 상태의 인간이 할 수 없고 하나님과 하나님 사이에만 가능한데, 내가 곧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나와 너를 구별하는 사람은 이웃 사랑에도 의도와 목적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이 퍼주더라도 얻는 것이 있기 때문에 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은 자기 상을 이미 받은 것입니다. 소자(예수)에게 작은 일을 행한 사람은 자기들이 무엇을 했는지 몰랐습니다. 나와 이웃과 하나님이 하나인 것을 깨닫은 상태가 바로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않고 생명나무를 먹은 것이며, 안식하는 것입니다. 나와 너를 구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선과 악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창조의 목적이고 구원입니다.
@박영훈-t2mКүн бұрын
잘 들었습니다 창세기 1장은 지구촌 창조가 아닙니다 우주는 몇백억년 이고 지구는 46억년 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또한 창세기 2~3장에서 말하는 나무는 사람을 말 하는것 입니다 마13:34~35 마13:31~32 계22:1~3 요15:1~ 사5:1~7 겔28장 마7장 등등 하여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가진 하나님 소속의 목자 이며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영생하는 말 이 됩니다 요6:63 눅12:49 마23장 계13장 계17장 계18장 선악나무는 하나님의 소속에서 마귀 소속이된 마귀 목자 입니다 뱀 또한 선의 하나님의 말씀과 자기 생각인 마귀의 말을(악)을 가진 마귀 목자 입니다 신32:32~33~ 마23:33~ 계13장 계16:13 하여 에덴동산 또한 육적인 산 이 아닙니다 사2:1~4 계14:1~4 그러므로 나무도 육적인 나무가 아니니 실과도 육적인 실과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배워서 가르쳐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선생들의 심판이 더 크다 하셨습니다 성경 66권을 가감하면 천국에 못 들어가고 저주를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계22: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