휼륭한 영어 설교들이 많아서 자녀들과 함께 볼수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다양한 목사님들에 설교를 들으며 배우고 갑니다. 앞으로도 계속 좋은 미국 목사님들에 설교 부탁드립니다. 구독과 좋아요 하고 갑니다. 매 영상 볼떄마다 좋아요도 누르구요. 감사합니다😀
@GodBlessYou347127 ай бұрын
은혜를 입고 싶습니다... 자꾸만 사람을 정죄하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주님... 제게 은혜를 베푸소서... 진짜 크리스천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튜브유-x2h6 ай бұрын
주님 죄인임을 시인합니다.. 오만함과 의심을 없애주세요.. 믿음과 지혜를 알게 깨우쳐주세요.. 미움에 없도록 저를 채찍질 해주세요… 주님.. 저는 다 알지 못합니다..
@Jinhyang_ish8 ай бұрын
후자로 살길 원하지만 결국 지금 난 너무나도 전자로 살고 있다는걸 너무 깨닫게 해주신 말씀이네요.. 지금 이걸 보게 하신 이유도 있으시겠죠 감사합니다 진짜
@날마다감사-o2o8 ай бұрын
복음을 깨닫고 영이 거듭나면 내안에 계신분을 믿으며 댓가를 바라지 않고 사랑함으로 예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알고 믿기 때문이죠.
@jjjapan20028 ай бұрын
답은 목사님 말씀에서가 아니라 성경에만 있습니다. 목사님 말씀은 참고만 하고 마태복음 5장을 읽으니 포스트 모더니즘의 크리스천으로 사는 답이 명확하네요. 한국어 성경은 어려워서 영어로 읽고 다시 들으니 와 닿는 부분이 많습니다.
@sermonforworker5 ай бұрын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는 순종합니다❤️
@seungjaeyune20088 ай бұрын
대부분의 교인들은 칼빈적 시각을 깨닫지 못하고 지나가게 됩니다. 시각이 달라도 모두 은혜이고 주님은 찬양받기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tlvus228 ай бұрын
아멘 감사합니다 행위가 아닌 행함이다. 바리새인이 아닌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과 동기를 다시금 확인하는 유익한 영상입니다.
@Haerang97 ай бұрын
정말 감사합니다.
@유앙겔리온6 ай бұрын
아멘! 크리스천! 할렐루야!
@귀찬-k7v8 ай бұрын
가장 중요한 걸 생각도 못했네요...감사합니다
@ggamishi8 ай бұрын
오직 십자가
@hoeinjeong30318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말씀강해 유익한 내용이 있어 크리스천분들과 같이 나눕니다 kzbin.info/aero/PLmLimuQ4hQGfqOndfDwiuehwrZhfVfQvU&si=S64dRWbORAujrIao kzbin.info/aero/PLmLimuQ4hQGeIkWIJoEMbuJbxAoRqp09P&si=5gy-gtaotvhZfwjy
@minjeongjoo74208 ай бұрын
1편부터 4편까지 봤는데요 한번 보고는 완전히 이해가 불가능하고 가지고 있는 믿음의 중심이 옳은 것으로 이루어져있는지 체크해야할것같고 말씀을 듣는 아이들에게 혼돈을 가져다주지않기위해 공부하고 준비해서 전해야할 것같아요 머리가 아픔... 우리는 크리스찬이니까 선하고 도덕적이어야되 라고 아이들한테 전한게 걸리네요...
@joohlee77028 ай бұрын
아이들을 잘 가르치시네요. 언젠가는 아이들이 깨달을 날이 올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크리스쳔이라 라는 인식은 결국 아이들이 커가는 도중에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받아들여야 하는것으로 부모님에게서 물려받는 것이 아니라고 봐요. 다만 지금 하신 모든 교육들이 아이들을 하나님께 인도하고 하나님 믿은 후에도 큰 힘이 될것은 분명합니다. 잘 하고 계신것 같아요.
@OJCKYG8 ай бұрын
믿음과 순종은 같은 말인데...
@Dmnmn3 ай бұрын
같은 단어도 문맥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죠. 심지어 성경 조차도 믿음만으로 구원 받는다는 말씀과, 믿음만으로는 아니라는 말씀이 있으니까요. 여기서 말한 순종은 ‘눈에 보이는’ 순종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전혀 다른 두 동기로 순종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죠. 님께서 말씀하신 의미의 참된 순종을 사용해서 이해해보자면, 크리스천은 순종한 것이고 바리새인은 순종한 척한 것입니다.
@좋은남편8 ай бұрын
그리고 위 영상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부분은 “어떤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이 그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2분 15초)라고 생각합니다. 일면 틀린 말씀은 아니겠지만 역시 전제는 회개와 순종일 수밖에 없습니다. 회개하지 않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이 변함없다고 설교한다면 구원파와 다를 것이 하나 없게 됩니다. 실제로 이것이 ‘한 번 구원은 영원하다’는 칼빈의 비성경적인 견인의 교리로 인해 교회 안에 들어온 방종의 교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칼빈은 성화 없는 구원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 한 번 구원 영원 구원의 교리는 철저한 거룩과 순종을 강조하지 않을 경우 얼마든지 방종으로 이어지기 쉬운 교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팀 켈러 목사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신 직후에 바로 균형을 잡지 않으면 어떤 사람들에는 자칫 그 말씀이 방종의 수단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부작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경에서 이를테면 (롬 8:37-39)처럼 구원의 확실성을 말하는 구절이 있지만, 그것은 “보장”이 아니라 “확신”으로 이해하는 것이 맞습니다. 무슨 말씀이냐면, 핍박 가운데서도 배교하지 않는 신실한 성도들을 대상으로 “확신과 격려”를 주는 맥락이지(곧 ‘너희가 그런 식으로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순종한다면 반드시 천국에 갈 것이다’), 맹목적으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보장”의 의미가 아닙니다. 칼빈주의자들이 놓친 부분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지면이 길어졌지만, 한 번 구원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은 다른 세 가지 말씀만으로도 의심의 여지가 없게 됩니다. (롬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바울이 쓴 로마서는 수신자들이 불신자가 아닌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런 성도들을 대상으로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했다는 것은, 구원받은 자도 타락하거나 배교하면 얼마든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다음 구절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빌 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상식적으로도 100% 보장된 구원을 두고 버림당할까 두려워하거나 또는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룬다는 것은 굉장한 모순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구원받은 자도 버림받는 것이 가능하기에 이러한“두렵고 떨림”이 전혀 이상하지 않게 되는 것이고 오히려 지극히 바람직한 태도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히브리서에서도 이 점이 잘 나타나있습니다. (히 6:4-6) “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이 구절이 참된 신자가 아닌 어차피 명목상의 신자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교리에 끼워 맞춘 궤변일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같은 성경을 보면서 그렇게 해석할 수 있다는 게 더 신기합니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여기서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라는 말씀에 주목해본다면, “다시”라는 말 자체가 “이미 한 번 회개하여 새롭게 된 적이 있는 사람”임을 전제하는 표현입니다. 모든 것이 처음인 사람에게 “다시”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내 사상의 굵은 물줄기 중 하나가 “배교에 대한 경고”입니다. 배교라는 것 역시 비록 연약한 믿음일지라도 참된 믿음을 가졌던 사람이 믿음을 저버렸을 때의 표현이지 결코 믿음이 없거나 가짜 믿음인 경우까지 총칭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그래서 국내의 실력 있는 학자분인 김세윤 교수님, 권연경 교수님, 홍인규 교수님, 최갑종 교수님 등도 구원을 과거-현재-미래의 서정으로 봅니다. 실제로 성경에서 구원의 시제는 정확히 이 세 가지로 이루어져 있씁니다, 즉, 이미 받은 구원(엡 2:8)-현재적으로 이루어가는 구원(빌 2:12)-미래에 완성될 구원(딤후 4:18)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김세윤 교수님께서도 자주 강조하신 것처럼 “현재적인 순종을 통해” 구원 안에 “머무름”이 있어야 장차 궁극적인 구원을 받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구원에서 탈락하게 된다는 것이 성경을 관통하는 진리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은혜 또는 십자가 공로를 훼손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의 표현을 빌리자면, 적지 않은 분들이 마치 ‘공로 결벽주의’에라도 걸린 것처럼 자유의지적인 선택이나 순종조차도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와 은혜를 훼손하는 것처럼 말하고 사람 편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는 것처럼 주장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이것은 구원파적인 이단 사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사람 편에서의 자유의지적인 선택에 대해 분명히 말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 선택에 대한 책임 역시도 사람에게 묻습니다. 그리고 자유의지로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온 것이나 믿음과 순종과 거룩 역시도 성령님의 은혜입니다. 따라서 실은 이 역시도 오히려 은혜에 대한 증거인 만큼 마땅히 구원받은 자로서 가지고 있어야할 구원의 증거이지 결코 은혜를 훼손하면 안 된다는 명분으로 배척해야 할 증거들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더욱 자신의 행위를 자랑할 수 없게 됩니다. 즉, 성령님께서 죄인 됨에 대한 자각을 주시고, 하나님께로 이끄시며, 또한 거듭난 이후에는 내주하심으로써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말 그대로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모든 은혜는 “돕는 은혜”이지 불가항력적인 은혜란 없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히 4:16)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제 요지는, 구원은 하나님 편에서의 도우시는 은혜와 인간 편에서의 자유의지적인 선택이 맞물려서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이 성경의 통전적인 진리라는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인간 편에서의 선택과 회개와 믿음과 순종을 스스로 조금도 자랑할 수 없는 이유는 그 자체가 구원의 능력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조차도 성령님의 은혜로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오직 구원의 능력은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가령 거지가 배고파서 살고자 구걸하기로 선택하고 누군가에게 나아와서 식량을 얻고 살아났다면, 여기서 거지가 자신의 자유의지적인 선택과 구걸 행위를 자랑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 구걸 행위를 자신의 공로로 자랑하는 그런 자기 의에 도취된 걸인을 저는 지금껏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정리해서 말씀드리면, 천국 가기 위해 순종하는 사람은 바리새적인 사람이고, 겸손하지 않은 사람이고, 다른 이들을 정죄하는 사람이라는 팀 켈러 목사님의 말씀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겠지만, 제가 이미 말씀드렸듯이 자신의 그러한 순종조차 은혜의 결과임을 잘 알기에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 않고 긍휼히 여기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또한 만일 천국 가기 위해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고 종교적이고 바리새적인 것이라면 사도 바울 역시 그런 사람일 수밖에 없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바울은 바리새인이 아닌 예수님을 가장 많이 닮은 사람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다만 그 중에서 “자기 의”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의 문제로만 국한하는 것이 맞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Courteous08098 ай бұрын
아멘 귀한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괜히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남겨주신 것이 아니죠. 이 말씀이 단순히 자주 기도하라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항상 주님을 의식하고 소통하며 자신의 삶을 점검하여 거룩함을 유지하고 자신의 삶을 말씀에서 떠나게 하지 말라는 뜻과도 같은 말씀이시죠. 그리고 주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이 믿음이죠. 말로만 믿는다고 하고 나 예수님 믿습니다라고 말하는 게 믿음이 아니죠. 교리 위에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에 비추어 자신들의 교리와 설교에 문제가 있다면 반드시 회개하고 수정하여 잘못된 설교에 영향 받은 성도들에게 정정해주어야 합니다.
@좋은남편8 ай бұрын
@@Courteous0809맞습니다! 교리 위에 성경이 있습니다~ 오직 성경을 기준으로 직접 분별하지 않으면 미혹당하기 너무도 쉽습니다,, 죄에 종 노릇하고 싶거나 그런 자신을 두둔하기 위해 본인의 기호에 맞는 교리를 덮썩 무는 건인데도 자신들만 올바르게 분별하는 줄로 착각하는 경우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겸손하게 성령님 의지하시고 공정한 마음으로 무엇이 진리인지 분별해오셨기에 지금과 같은 성경적인 구원론을 갖게 되신 거라고 생각합니다^^ 화이팅이십니다~!!
@Courteous08098 ай бұрын
@@좋은남편 감사합니다.. 저야 감사할 따름이죠 제 성격도 영향을 받았고요ㅠ 하지만 너무나 부끄럽게도 저는 무엇이 옳은지 알면서도 실천하는 삶을 살지는 못하고 있습니다..ㅠㅠ 어렵습니다.. 알기만 하는 것도 큰 죄인데.. 생각나시면 기도부탁드립니다 전도사님ㅠㅠ
@예디-q8w8 ай бұрын
천국을 어떻게 목적하느냐의 차이 아닐까요? 1. “내가” 더 이상 고통과 아픔이 없는 천국을 누리고 싶어서인지 2. 사랑하는 “주님” 계시는 곳이 천국이기에 그곳을 소망하는 것인지.. 바리새인은 1번 바울은 천국은 도구일 뿐 주님을 소망하기에 주님 계신 곳에 함께 거하고 싶은 거였을거같아요
@Courteous08098 ай бұрын
@@예디-q8w 해주신 말씀은 맞는 말씀이지만 지금 대댓글 달아주신 원댓글을 포함해서 여러 댓글들에서는 그걸 문제삼는 게 아니고 원댓글처럼 성경과 맞지 않는 2분 15초의 발언에 대해서 성경구절들을 통해 문제가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에요
@fgfgfd75028 ай бұрын
미묘한 차이인데 두 유형이 상호보완적인 면도 있어요. 이미 구원 받아서 감사한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도 맞지만, 계속 죄를 짓고도 자신의 죄조차 망각하는 경우가 대다수여서 회개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죠. 이게 설명하기 상당히 어려운 부분인데 이미 자신이 구원 받았다는 전제 때문에 죄를 아니하게 생각하고 순종은 커녕 멋대로 해도 용서 받는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아서 신중하고 조심해야 되요
@Courteous08098 ай бұрын
동의합니다.. 전세계 수많은 교회들에서 한 번 구원이 영원할 거라는 잘못된 믿음들이 선포되고 전파되고 있습니다.. 성경에 절대 그렇게 나오지 않고 이런 자들은 저런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난 너희들은 모른다고 하신 말씀들이 너무나 많은데 한 번 티켓 끊으면 자유이용권인 줄 아는 분들이 너무 많습니다. 오히려 거짓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성경 말씀대로 지으면 안되는 죄들을 계속 회개하며 거룩하기 위해 애쓰는 성도들에게 바리새인이라고 하는 것이 정말 웃긴 일이죠 2:15에서 어떤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목사님에 대해 잘은 모르지만 이 부분만 봐도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누가복음 13장 23절~27절까지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그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의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그가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 정말로 어떤 문제가 있어도 상관이 없다면 주와 함께 하고 먹고 마시고 배웠다고 하는 자들을 예수님께서 누군지 모르신다고 하시겠습니까? 마태복음 7장 21~23절에서도 말씀하셨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런 말씀들을 다 무시하고 목사님들이 하는 설교만 믿고 있으면 미혹당합니다. 이 글을 보게 될 성도분들 언제나 성경 말씀에 매달리고 믿으셔야 합니다. 한 번 구원이 영원한 구원이라면 절대 좁은 문도 아니고 좁은 길도 아닙니다. 항상 깨어 있고 말씀을 분별하지 않으면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을 말씀을 왜곡하고 대적하는 편에 서있을 것입니다. 현대의 이런 잘못된 구원관이 교회에서 수많은 범죄와 구설수가 나오게 만든 원인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어차피 구원은 보장되어 있으니 세상에서 이리저리 수많은 유혹에 넘어가고 빛과 소금이 되어 이웃을 사랑하고 말씀을 전해야 할 대상자들이 어떻게 바라보든 생각하든 상관 없이 자신들 욕망을 채우기 바쁩니다. 개독이라는 말이 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더 늦기 전에 정신 차립시다 여러분.. 저도 주제 넘게 이런 말을 하지만 저부터가 하나님을 더욱 더 사랑하고 심각하게 노력 많이 해야 합니다. 함께 힘냅시다. 마태복음 10장 38~39절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dreyfushubert67268 ай бұрын
@@Courteous0809 예정론으로 인해서 교리적으로 필연적인 논리구조로 한구영구가 맞고요 한구영구라고 해서 막사는 건 구원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고요/한구영구라는 바른 교리를 받아들여도 막살지 않을 수 있습니다
@Courteous08098 ай бұрын
@@dreyfushubert6726 예정론으로 인해서...요? 성경 말씀으로 인해서 판단을 하셔야죠 교리가 뭔 상관입니까 예정론은 문제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하신 것이지 모든 것을 다 정해 놓으시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신 게 아니죠. 그리고 성경의 수많은 교훈과 삶의 지침이 될 말씀들을 왜 주셨습니까? 어차피 다 정해 놓으셨으면? 운명론은 불교나 사주팔자 같은 곳에서 나오는 얘기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택하신 나실인 삼손이나 기름 부으신 사울, 여디디야 솔로몬의 타락과 반역도 그 사람들의 미혹에 빠짐과 욕망에 넘어가거나 거룩함 삶을 잃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시고도 그렇게 타락하도록 예정하셔서 그랬다는 겁니까? 이스라엘 민족의 수많은 반역과 회개의 반복도 하나님이 장난질하신 거고요...? 저는 도저히 그런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본인께서도 '한구영구'라면서 구원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인데 구원 받지 못했을 가능성.. 일단 논리부터가 안 맞잖아요 게다가 예정론을 믿으시는 분들은 한구영구랑 상관이 없죠 어차피 정해져 있는데.. 구원 못 받을 것으로 정해진 사람들은 구원 자체랑 상관이 없잖아요. 무슨 말씀을 하신 건지 천천히 생각해보세요. 그리고 제가 올려드린 말씀 말고도 한구영구는 말이 안되는 구절이 많습니다. 왜 성경 말씀은 무시하시고 교리니 뭐니 하십니까 하나님 말씀이 오직 진리이고 절대적인 것 아닙니까? 말씀은 뒷전에 두고 교리로 왈가왈부하면 종교 개혁 전의 카톨릭의 상태랑 뭐가 다릅니까? 부디 심사숙고 부탁 드립니다...
@dreyfushubert67268 ай бұрын
@@Courteous0809 하.. 이런거 너무 많이 말해서 지치네요 교리가 무오한건 아니지만 성경에 근거한거고요.. 본인도 지금 교리와 신학을 하고 있는거에요 꼭 신학을 모르면 나는 성경을 읽지 신학은 안한다 라고들 말하는데 성경관을 가진게 신학입니다.. 그러면 님말대로 라면 자유의지로 구원을 뗐다 붙였다할 수 있는 것이 있으니 구원은 더이상 은혜가 아니고 선물도 아니겠네요? 원래 자유의지와 하나님의 절대주권적 예정하심은 섞일 수 없습니다. 구원에 있어서는 오직은혜입니다. 인간의 공로가 개입됧수 없습니다. 이미 신학사에 예정론에 대한 토론이 많았고 예정론이 인정받고 거부하면 이단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제가 너무 많이 말해서 지쳤는데 꼭 공부해보세요.. 지금 님이 하는 주장은 펠라기우스 입니다. 이해가 안돼서 글을 쓰신거겠지만요
@dreyfushubert67268 ай бұрын
@@Courteous0809 운명론과 예정론 다른 겁니다 구원과 삶에서 적용되는 것을 다르게 생각해야합니다
@byebyebye5148 ай бұрын
구원 받았다고 믿으며 방종하는 자 자신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도달하려는 자 또는 예배를 제사로 사용하는 자 이것들이 모두 잘못된 방식의 종교행위입니다
@좋은남편8 ай бұрын
팀 켈러 목사님의 말씀 중 몇 가지 반론을 좀 드려야할 것 같습니다. ‘내가 순종했으니까 천국에 갈거야.’ 이러한 생각이 자칫 바리새적인 자기 의가 되기 쉽다는 데 저도 동의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 순종해도 하나님의 완전한 의에 이를 수가 없고 오직 은혜로만 천국에 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팀 켈러 목사님의 취지, 곧 ‘바리새적인 자기 의로는 천국에 갈 수 없다’는 말씀에 공감하고 저 역시 경계해야 마땅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몇 가지 교묘하면서도 결코 작지 않은 심각한 문제점들이 보입니다. 먼저, ‘천국 가기 위해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란 말에는 전혀 동의하기 어렵습니다(1분 18초). 그 말은 성경의 관점, 즉 예수님과 사도들의 관점과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과 사도들은 성경 여러 곳에서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가기 위해 죄를 끊어버리라고, 즉 순종하라고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다음 예수님의 말씀이 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 18:8-9) “8.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9.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예수님의 말씀의 요지는 너무도 분명합니다.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갈 목적으로 죄를 끊어버리고 순종하라는 것” 바로 이것입니다. 또 만일 팀 켈러 목사님의 논리대로 천국 가기 위해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라면, 천국 가기 위해 믿는 것 역시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날까요? 저는 솔직히 차이점을 모르겠습니다.. 둘 다 천국이라는 목적을 위해 하나는 믿음이고, 또 하나는 순종인데,, 그런 논리라면 둘 다 이용하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그럴 수 없다고 봅니다. 게다가 어차피 믿음과 순종은 불가분의 관계이고 하나입니다. 성경은 분명히 구원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성경 어디에도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을 얻기 위해 또는 천국을 얻기 위해 순종하라는 것도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다음 구절은 ‘영생을 얻기 위해 믿는 것’과 ‘영생을 얻기 위해 순종하는 것’을 동의어처럼 교호적으로 사용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 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래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자면, 이처럼 영생을 얻기 위해 아들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영생을 얻기 위해 순종하는 것 또한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 말씀의 핵심이 영생을 얻기 위해 믿고 또한 “순종하라”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또한 팀 켈러 목사님의 말씀 중 ‘천국에 가려고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천국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순종한다.’라는 말이 일면 맞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천국에 가기 위해 의지적으로 순종하는 것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 역시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천국, 곧 궁극적인 구원을 얻기 위해서 “힘써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 오히려 성경의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히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분명히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어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종합하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불순종하던 자들을 본받지 말고 힘써 순종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천국에 가기 위해 순종하는 것이 바리새적인 신앙이고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라니 납득이 안 갑니다. 또 마찬가지로 바울은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역시 한 마디로 버림당하지 않고 “천국에 가기 위해 복종(순종)한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이 구절이 포함된 문맥 전체가 이것을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팀 켈러 목사님의 논리대로라면 여기서도 바울이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 가기 위해 복종(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인데,, 절대 그럴 리가 없지요;; 물론 바울은 예수님을 누구보다 사랑했고 예수님을 아는 지식을 가장 고상한 것으로 여겼습니다(빌 3:8). 그래서 그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여서 더 열심을 내어 순종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성경에 의하면 바울이 궁극적인 구원, 곧 천국을 얻기 위해 자기 몸을 쳐 복종(순종)했다는 말도 맞습니다. 이 부분을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두 가지는 결코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닙니다. 공존할 수 있으며 오히려 공존할 때 더욱 영적인 시너지효과를 발휘하게 됩니다. 즉,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순종하고, 또한 버림당하지 않고 반드시 천국에 가기 위해 또한 더욱 순종하게 됩니다. 바울도 천국에 가기 위해 두 가지 동기 모두 사용했습니다. 게다가 천국에 가기 위해 순종하는 것도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함뿐 아니라 결국엔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을 뵈면서 사랑하기 위함 아닐까요? 그런데 천국 가기 위해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이용하는 것이라니요,, 단지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버림당할까 두려워 자기 몸을 쳐서 열심히 순종하여 천국에 가고자 했을 뿐인데, 그런 사람들의 귀한 순종을 두고 바리새적인 의이고 천국에 갈 수 없는 의라고 규정한다면, 팀 켈러 목사님께서 이 부분은 한참 엇나가신 부분이라고 저는 감히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실제로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만으로 죄를 이기며 순종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바울 자신도 버림당할까봐 두려워 순종했는데.. 실제로 죄에 대한 유혹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보다 강하게 작용하여서 순간 그 사람을 사로잡아 죄 짓게 만드는 경우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참으로 고상하지만 성경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만으로 죄를 이기며 순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성경은 분명히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동기뿐 아니라 “죽지 않고 살기 위한 목적으로 순종해야 할 것” 또한 여러 곳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 구절만 더 인용해드리려고 합니다. (롬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여기서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이 바로 순종과 같은 개념입니다. 그러니 역시 죽지 않고 실기 위해서 순종하라는 말씀이지요,, (다음)
@Courteous08098 ай бұрын
평소 묵상하지 못했던 다른 많은 말씀들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살면서 성경완독을 최소 두 번 이상 했다고 해도 처음 보는 듯한 구절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붙잡고 주야로 섭취해야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겠죠~ 성경에서 멀어지고 목회자 말만 들으면 중세 타락한 교황청이 다스리던 시대의 신앙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일반 성도들은 성경을 구하기도 어렵고 구해도 라틴어를 모르면 읽을 수조차 없고 전적으로 성직자들의 설명과 지도에 의지해야 했지만 현재 우리들은 감사하게도 모국어를 비롯해 여러 언어로 직접 읽으며 언제든 공부하고 은혜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히려 성경 말씀으로 목회자들의 잘못된 설교를 구분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예언된 바 거짓선지자들이 믿는자들까지도 미혹한다는 말씀을 잊지 않고 항상 바른 말씀을 구별하며 거룩함을 유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잘못된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말씀하셨던 사도 바울 같이 거룩하기 위해 매일매일 자아를 죽이며 하나님으로 채우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게 되고 구원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뉴스에 안 좋은 일로 나와 안 믿는 자들에게도 조롱 받고 비웃음 당하는 몇몇 목회자들과 교회처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복음을 전하기는커녕 오히려 영광을 가리고 복음전파를 더 어렵게만 만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세상의 빛과 소금임을 잊지 맙시다.
@Clazi8 ай бұрын
바울이 버림받을까 두려워서 자기 몸을 쳐서 순종했다니...아이고 ㅠ 성경 다시 읽어보세요. ㅎㅎ
@좋은남편8 ай бұрын
@@Clazi본인께서 바울의 말씀 그대로 읊조리셨으면서 아이구.. 라니요,, 그건 마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그대로 읇조리면서 '아이구.. 주 예수를 믿으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는다니요..'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불성설입니다. 이미" 받은 구원과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구원 간의 긴장감 속에서 살아야 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다는 것이 바울의 요지이고 국내 실력 있는 학자분들의 공통된 견해이기도 합니다(김세윤, 권연경, 양용의, 최갑종, 이민규, 이한수, 홍인규 교수 등). 성경에서 "두렵고 떨림", "두려워하라"는 명제는 모두 받은 구원을 상실하거나 순종 없는 믿음으로 궁극적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것과 상관 있습니다. 성경을 다시 읽어보세요.
@좋은남편8 ай бұрын
@@Courteous0809전적으로 동의가 되는 말씀만 계속 하시네요^^ 사실 제가 이곳에서 이렇게까지 긴 장문들로 반론들을 쓰게 된 두 가지 이유가 있는데요, 먼저는 저는 구원론을 집중적으로 다루는 국내에서 잘 알려진 중대형교회에서 약 5년간 사역한 전도사입니다. 그래서 물론 팀 켈러 목사님께서 여러 훌륭하시고 탁월하신 부분들이 있으시지만, 이런 논지에 대한 반론은 제가 정리해서 갖고 있으면 좋을 것 같아 시간을 내본 것이구요, 다음으로는 성도님처럼 바르게 잘 알고 계시는 분을 뵈니 참 귀하시고 반가운 마음 때문입니다.. 분별 기준은 유명한 목회자나 실력 있는 신학자가 아니라 오직 성경이고, 더 나아가 성경의 문맥이고 자자의 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쪼록 앞으로도 진리의 말씀을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 의지하시면서 잘 분별하시고 반드시 이기는 자가 되셔서 끝까지 구원을 잘 이루어가게 되시길 축복합니다^^
@좋은남편8 ай бұрын
@@user-yg6wc4kl9h맞습니다~ 본인이 직접 성경으로 분별하지 않으면 소경된 학자들과 목회자들 또는 부분적으로 그러한 사람들 따라가다가 자신도 구렁텅이에 빠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합니다;;
@proverb08048 ай бұрын
개신교에서 구원의교리를 이해시키고 설교하시는 대다수의 목사님들은 요한계시록설교를 굉장히 지양하는 편입니다. 윗님들처럼 교리의 갈랫길에 사로잡혀 갑론을박이 하나님께대한 신앙생활을 방해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로마서 성경공부하던 대학생때 성경공부 주관하시는 목사님과 격렬한 설전을 벌였던 기억이 나네요. 다름아닌 예정론부분에서요 그때 전 뭐 이런 잔인하고 지극히 이기적인 하나님이 다 있냐. 내가 믿는 하나님이 이런분이시라면 교회 안다니겠다 라고 용기있게 내 뱉었었더랬죠 ㅎㅎ 그때 저는 2가지가 신앙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1. 구원은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다. 2. 신앙생활은 논리요 과학이요 인본주의요 민주주의가 아닌 절대적인 신본주의다. 한구영구에서 머물지 않고 나를 쳐서 지속적으로 성화되어가고 마침내 구원의 여정의 종착지에서 감격적으로 예수님 품에 안기는 성도들 되시어서 역시 돌아보니 은혜가 아닌게 없더라 라는 감격적 항복의 외침이 나오시는 신앙생활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ISPark-bl4tu8 ай бұрын
5.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요한계시록 3:5 33.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출애굽기 32:33
@Kim-s3b7z8 ай бұрын
헷갈리시는 분들을 위해 글을 남깁니다. 구원확정 (천국행)이라고 생각하면 그만큼 긴장감이 없이 죄를 짓고 살 것이고, 회개도 잘 안한다는, 구원의 한 가지 조건을 행동으로 보시는 분들이 계셔서 이해가 가지 않아 답글을 남깁니다. 이것은 구원과 믿음의 순서와 정확한 의미를 자칫 혼동함으로 발생하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단어의 명확한 의미도 포함됩니다) 죄와 존재론적 타락 죄라는 것이 먼저 무엇인지 명확히 아셔야할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의미하는 죄는 하나님과의 분리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인간의 자기중심적인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그 상태로 인하여 발생하고, 나타는 모든 행동, 마음, 태도, 가치관, 생각 등을 내포합니다. (그 행위가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 당장 선해보이는 것도 말입니다. 선한 것이 선한 것이 아니라, 주님되신 기준들이 선한 것 입니다.) 즉, 그러한 죄로 인하여 내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 입니다. 즉, 이것은 한 ‘인격체’의 전적이고, 존재론적인 타락을 의미합니다. 구원 구원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로 인하여, 그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죄인된 모습 즉, ‘존재론적인, 인격적인 타락한 상태’를 주님께서 오직 그리스도의 보혈로 인하여, (여기서 놀라운 점은) 우리의 모든 죄를 (과거, 현재, 미래) 완전히 씻기고, 우리 ‘자체’를 받아들여주신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주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된 놀라운 은혜로 구원을 얻고, 경험한 사람이라면 죄에 대해서 구원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긴장감 없이 살아가거나, 회개의 의미도 모른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내가 어떤 행위던지 구원을 받을 만한 사람이었다고 여기거나, 내가 죄인인지 깨닫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은혜는 완전히 망각할 수 없습니다, 살아가다보면 모든 사람이 때와 시기가 다르지만, 분명 다시 돌아오게 되며 구원을 얻은 자는 정도의 차이지만, 그 성화의 과정을 이어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구원(천국행)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의 핏값을 대신하여 전적으로 ‘선물’하신 일방적인 은혜이며 (이신칭의), 우리의 어떤 자력으로, 공로, 노력, 태도, 봉사, 선한 행위 등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행칭의)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이후에, 나타나는 믿음들은 값진 구원의 은혜에 대한 반응들입니다. 회개 다만, 우리가 천국에 가기 전까지 옛자아의 흔적으로 인하여 그 힘에 대해서 반자동적으로 주님과의 관계의 마음 상태가 멀어지는 상황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이 보장되었기 때문에, 무언가 인간이 조금 더 행함으로 구원에 이르는 생각이 없다면, 아무 생각이나 거리낌 없이 살아갈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부분을 명확히 아셔야합니다. 성령님의 내주하심으로 삶에서 짓는 죄들로 인하여 개인적인 양심의 찔림이나, 영적 눌림이 분명이 동반되기에 구원을 받은 자라면 언젠가 분명 회개하는 마음 상태에 이르를 수 밖에 없게 됩니다. 즉, 돌아올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만약, 그렇지 아니하고, 그가 거리낌없이 죄를 짓거나, 반복적 습관적으로 죄를 짓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는 처음부터 믿지 않았거나 순전한 마음으로 믿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이후로 짓는 죄들의 ‘유무’로 인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은혜가 ‘취소’되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이 부분을 헷갈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이 자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격 없이 주어진 ‘일방적’인 은혜이자, 선물인 것입니다. 자격없이 주어진 부분이기에, 인간의 어떠한 조건이나, 상태로 다시 취소되는 것이 절대 아닙니다. 만약,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의 기준에 합격할 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징계와 성화 구원 이후에 짓는 모든 죄에 민감하여지기 때문에 크고 작은 죄를 지은 후, 회개하는 마음 상태로 자연스럽게 갈 수 밖에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됩니다. 다만, 우리가 살면서 짓는 모든 작은 죄에 대해서 회개하지 않는다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을 결코 취소하지 않으시나, 다만, 하나님께서는 심판이 아니라 징계는 주실 수 있습니다. (다만 징계의 시기와 방법은 전적으로 주님께 속하여 있습니다). 아들이 잘못한 부분이 대해서 아버지가 아들을 훈계할 수 있으나, 크고 작은 잘못한 부분들로 아들로서 받아들인 자식을 , 자식이 아니라 내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여기는 아들과 아들의 비유지만, 약속에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두 말이 필요 없습니다) 그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성화‘ 되는 과정을 지나며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본성과 그 힘에서 자유로워지려는 씨름으로 믿은 후 일생 동안 신자가 성령의 인도를 받되 자신이 책임지고 계속적으로 행해야 할 일입니다.(free from the power of sin). 그렇기에 바울이 빌립보서에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2:12)고 말한 까닭입니다. (복종하는 이유가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아서가 아닙니다) 회심으로서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 받았지만, 그 형벌(심판)에서 면제된 것이지 구체적 죄를 계속 지으면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때와 방식으로 구원이 취소되는 것이 아니라, 앞서 이야기한 징계는 여전히 받습니다. --추가 고린도전서6:9-11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討索)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전6:10) 본문만 보면 마치 예수 믿고 죄를 지으면 구원이 취소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바로 이어지는 구절에서 그런 해석이 잘못되었음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11절) 교회 안에 온갖 죄를 상습적으로 짓던 자들이 있었는데 성령의 씻음으로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고 합니다. 그 전에는 성령의 거듭남이 없이 머리로만 예수를 믿다가 이제 새사람으로 변화되고선 그런 죄를 짓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거듭난 자의 구원 취소는 없습니다. 인용, whyjesusonly
@좋은남편8 ай бұрын
시간 관계상 단 한 가지만 말씀드리면, 마지막에 인용하신 부분은 신자가 아닌 불신자의 회개에 대한 부분도 맞습니다. 하지만 그런 신자들조차도 그와 같이 불의한 일을 계속적으로 행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것 또한 바울의 논지가 맞습니다. 물론 그들은 과거의 망령된 행실을 버리고 의롭게 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당시 그들에게도 단회적으로(또는 몇 차례) 형제 간에 불의를 행했기에 현재적으로 '진행 중인 불의'가 있었던 상황입니다. 물론 아직은 그 죄가 반복적이지 않아 여전히 바울로부터 '형제'라 칭함을 받지만, 만일 그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불의한 자로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 바울의 요지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의 정체성, 곧 '죄 씻음 받고 거듭나고 의롭게 된 사람'임을 "상기"시키며 그에 걸맞게 살아가야 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외에도 다른 수많은 구절들에서 명백히 신자들을 대상으로 버림받음 또는 멸망을 직접적으로 경고하고 있습니다. 정말 딱 한 구절만 인용해드리면, (히 10:26-29) "26.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27.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28.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이 구절에서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지는 그 인접문맥에서 빼도 박도 못하게 "참된 신자"임이 밝히 드러나 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신자가 심판이 아닌 징계만 받는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럼 여기서도 그런 "우리"가 단지 징계를 받는다는 말씀인가요..?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지 않습니까? 이런 종류의 징계가 과연 존재할까요? 징계가 영원하다면 그건 징계가 아닌 심판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거듭난 자는 절대 구원이 취소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지 저야말로 이해불가입니다. 회심할 때 미래의 죄까지 다 용서받고 어떤 죄를 지어도 징계만 있을 뿐 버림받지 않는다는 선생님의 주장은 정확히 구원파의 교리입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진리를 제대로 알고 분별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헷갈리는 분들'이라고 표현하신 부분은 너무 자의적인 부분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위에서 한 번 구원 영원한 구원이 아닌 것 등에 대해 성경적으로 최대한 일부 간략히나마, 하지만 장문으로 설명해드렸습니다. 그 모든 걸 반론하시면서 설득해주시면 납득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바에는 저는 단연코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 거듭난 자의 구원은 취소될 수 없다는 그 교리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단지 교리 문제가 아니라 성경이 전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신서들을 보면 명백히 신자들을 대상으로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 "너희가 선 줄로 생각하지 말고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길 것이다", "뒤로 물러나면 영혼이 멸망할 것이다", "한 번 진리에 눈을 뜨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본 사람이 타락하면 다시 회개케 할 수 없다" 등 타락과 배교로 인한 구원의 상실을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성경에서 '구원의 확실성'을 말하는 구절들조차 그 문맥을 조금만 유심히 들여다봐도 '보장'이 아닌 "확신을 심어주는 격려"임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즉, 핍박에도 불구하고 배교하지 않는 신실한 성도들에게 '너희에게서 나타나는 그 정도의 견고한 믿음이라면 그 어떤 것도 너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와 같은 확신이자 격려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진짜 구원받은 사람은 버림받을 수 없다며 불가항력적인 성도의 견인을 주장하는 칼빈조차도 예외적으로 배교로 인한 구원의 취소만큼은 인정했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라는 교리는 칼빈 안에서도 이미 자체모순이 발생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저는 정통 칼빈의 교리는 성화 없는 칭의를 인정하지 않는 만큼 그래도 구원파적인 신앙주의보다는 다행스럽다고 여기는 입장입니다만, 그럼에도 저는 성경에서 그렇게나 구원의 탈락을 경고하는 수많은 직,간접적인 구절들이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것들을 교리의 렌즈로 묵살하는 해석들을 볼 때,, 참으로 어린아이 같이 겸손하고 공정하고 배우려는 사람들에게만 진리의 빛이 계시된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조목조목 시간 내서 더 반론을 드리고 싶지만, 시간 관계상 저의 반론은 위에서 제가 쓴 댓글과 그 안의 답글들로 대신해야할 것 같습니다.
@좋은남편8 ай бұрын
@@user-yg6wc4kl9h이 분 말씀이 맞습니다.
@달냇8 ай бұрын
순종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유형 1, 구원 받은 은혜에 대한 감사와 기쁨으로 순종하는 유형 2. 둘 다 순종하지만 작동원리가 다르다. 하지만 제가 요즘 고민하는 것은 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날 구원해주셨다는 것을 믿는데 왜 순종하지 않는가(또는 순종하지 못하는가)입니다. 그렇다면 내 믿음은 제대로 된 믿음이 아닌가?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고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어서 구원의 완성까지 날 이끌어주신다면 왜 난 순종하지 못하는가? 난 구원 받은게 아닌가? 순종하고 있지는 못하지만 제가 순종하려는 동기를 살펴보면, 의무로 생각하는 마음이 크고 감사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동기는 작은 것 같습니다.
@tlvus228 ай бұрын
로마서 7,8장을 읽어보시면 도움이 되실겁니다. 아래는 새번역 버전입니다. [롬7:14-25, 새번역] 14 우리는 율법이 신령한 것인 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육정에 매인 존재로서, 죄 아래에 팔린 몸입니다. 15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16 내가 그런 일을 하면서도 그것을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것은, 곧 율법이 선하다는 사실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17 그렇다면, 그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18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19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20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23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롬8:1-6, 새번역]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4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5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6 육신에 속한 생각은 죽음입니다. 그러나 성령에 속한 생각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Courteous08098 ай бұрын
출32: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겔33:31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치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은 이욕을 좇음이라 마5:17-20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마8:34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갈5:16-2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고전15:31-35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내가 사람의 방법으로 에베소에서 맹수와 더불어 싸웠다면 내게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빌2: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빌4:9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Courteous08098 ай бұрын
요3:36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히3:12-14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고후11: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갈6:7-9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딤후3:1-5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딤후 4:6-8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살후2:1-12 멸망하는 자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그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이 일을 너희에게 말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느냐 너희는 지금 그로 하여금 그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이 있는 것을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은 그것을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겨질 때까지 하리라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그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미혹의 역사를 그들에게 보내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딤전4: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약 1:22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약1:25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Courteous08098 ай бұрын
약2:14-26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창세기22:15-18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롬2:12-13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 앞에서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롬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8:12-13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히10:26-29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태울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은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벧후1:10-11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딛1:16 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계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2:2-5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Courteous08098 ай бұрын
부분 구절만 보면 한 번 구원 받으면 자유이용권 끊은 것처럼 안심이 되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감사하면서 노력은 하지만 불완전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인간은 연약하고 사탄이 계속 미혹을 하고 다니기에 (특히 사탄은 믿음이 좋은 사람들을 특히나 더 맹렬히 공격하고 시험합니다.) 사도 바울의 말처럼 날마다 죽지 않으면(자아를 죽이고 육체의 온갖 욕구를 죽이지 않으면) 거룩함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수많은 성경 구절에서 성경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적으로 죄를 지으면 사망하고 멸망하게 된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선악과 사건도 반드시 죽게 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뱀이 죽지는 않을 거라는 뀜으로부터 일어나게 되었죠. 이 절대불변의 원칙은 예수님의 십자가 매달리심으로 변경되지 않습니다. 그 누구라도 예수님의 보혈을 믿고 따르면 모든 죄를 씻어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지 구원 직행 티켓을 발행해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고되고 아무나 할 수 없고 매우 좁은 길이라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한 번 구원이 영원하다면 그것이 뭐가 고되고 좁습니까? 구원 이후의 삶이 상급만 영향을 받고 구원 자체는 상관 없다면 우리는 엄밀히 말해서는 성경 말씀대로 살 필요가 없습니다. 약간 하나님 보시기에 괘씸하게 살아도 어차피 구원은 보장되어 있으며 살면서 벌 좀 받고 구원 받고 상급은 포기만 하면 되는 것이죠. 이런 괴상한 메시지가 성경적이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 같으십니까?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중보자 예수님께서 죄를 깨끗이 씻어주셔서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것이지 죄를 다시 짓는다면 거룩하디 거룩하신 하나님께 다가갈 수가 없습니다. 이 것은 성경 전체에서 말하는 바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바가 바로 이겁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과 저들이 말하는 믿음이 다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은 반드시 실천이 일치된 형태입니다. 올려드린 말씀들을 꼭 여러 번 묵상해보시길 권유 드립니다. 약2:14-26 말씀처럼 행함이 없는 말로만 하고 지켜지지 않는 믿음은 죽은 겁니다. 구약 내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통해 보여주셨습니다. 이들은 지금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님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카톨릭은 어떻습니까? 하나님도 믿고 예수님도 삼위일체도 믿는다고 하지만(그럼 구원은 받긴 한 거죠?) 인간인 마리아에게 기도하며 마찬가지로 인간인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해서 죄를 용서 받는 하나님 보시기에 기가 막히실 일들을 합니다. 이들이 믿음이 아무리 강하고 신실하게 예배를 드리고 여러 사역과 선교를 한 듯 구원을 받을까요? 구원보장도 잘못되었지만 믿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진리와 벗어난 것을 믿으면 아무 소용 없습니다. 바른 진리를 찾아 믿고 실천해야 할 것을 선택하려면 오직 성경과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수 밖에 없습니다. 지체님이 올려주신 글처럼 그런 고민을 주시는 것도 성령님입니다. 그런 의문이 옳은 말씀을 찾아가게 만들고 또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알게 인도하시는 과정입니다. 올려드린 말씀 말고도 우리에게 주신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바들을 연구해보시고 무엇이 내 삶을 바칠 만한 진정한 메시지인지 직접 찾아보셔야 합니다. 진정으로 마음을 다하여 바른 말씀 찾기를 기도하시고 성경을 읽으신다면 지체님에게 반드시 답을 주실 겁니다. 야고보서 2:19 처럼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꼭 깊이 숙고해보시면서 한 번 얻은 구원이 영원하다는 주장이 얼마나 위험한지, 왜 초대교회 성도들과 사도들, 예수님의 제자들이 사람의 기준으로 보면 어떻게 그렇게 비참하고 힘든 삶을 살았고 어떤 최후들을 맞았는지 왜 끝까지 깨어있으라고 하셨는지(영원한 구원이 사실이라면 솔직히 구원 받아 놓고 언제든 자고 있어도 무방합니다.) 꼭 묵상해보시길 원합니다.
@aidinthedream8 ай бұрын
댓글 보니 한국교회 수준이 나오죠...
@James-fw9hl8 ай бұрын
아브라함은 왜 하나님께 순종했나? 복때문에 바울은 왜 순종했나? 부활때문에 순종이 곧 믿음이고 사랑이다. 행위가 순종은 아닐 수 있지만, 순종은 행함이다. 낭만에 빠지지 말자. 구원의 확신이 있더라도,우린 여전히 죄인이니까
@아아-y3u4s8 ай бұрын
교리를 떠나서 여러분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묻고 싶내요 예수님이 그랬어요 제자 베드로에게 나를 사랑하느냐? 이것이 정답입니다.
@genoark28 ай бұрын
미국에서 이렇게 엉터리로 가르쳐 놓으니까 막 살고 막 죄짓고도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삽니다. 지옥가는줄도 모르고. 지금은 아주 썩어서 동성애자들 아이들 자유로 성기도 잘라버리죠. 그리스도인들은 쉬쉬하고 소돔과 고모라꼴인데 망하는줄도 모르고 이런 헛소리나 가르치고 있으니. 구원은 두렵고 떨림으로 이루어나가야 하는것이고 사랑하기때문에 순종하는것이지, 이미 천국티켔따놓았는데 누가 그렇게 열심히 순종 하겠습니까? 착각하지마세요. 이건 꿈같은 이상적인 이론일뿐이지 실상의 사람의 마음은 극악해서 한번구원받았다고 생각하면 교회부터 다른이유로 빼먹기시작하고.. 서슴없이 죄짓게 되고 "괜찮아 구원이야" 하며 아예 지속적으로 죄짓게 됩니다. 저도 그랬고요 제 가족도 그랬고요. 주님께서 꿈에서 마태복음 5:20절 말씀해서 깜짝놀라 회개하며 정신차리게 되었습니다. 한번구원 영원하지 않습니다. 심판날에 교회부터 성도부터 심판합니다.
@좋은남편8 ай бұрын
백번 옳은 말씀입니다~
@lifeseek8338 ай бұрын
그럼 그건 유대교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이유가 뭔가요? 그런 구원의 두려움으로 인해 바리새인이 생기는겁니다. 기독교는 그 굴레를 반대하는거구요. 구원에 대한 두려움 당연히 필요하죠. 그걸 모르면 애초에 하나님을 믿는다고 볼수 없는거구요. 두려움 다음에 자유가 있냐없냐가 중요한거고. 자유가 있다면 구원의 두려움이 동기가 되서 사는 사람과 열매가 다르다는겁니다.
@jusmusic26008 ай бұрын
구원의 탈락과 같은 교리 논란이 있지만 본질은 간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이 있는가? 하나님을 사랑하는가? 예수님의 대속하심으로 구원받음을 믿는가? 선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하는가. 주를 사랑하기에 말씀에도 순종해야함이 마땅합니다. 순서야 어찌 됐든.. 믿음과 순종 다 같이 가야할 부분이겠죠. 순종이 없는자 믿음이 있다 할 수 있을까? 믿음없고 말씀에 대한 행함만 있다면 구원이 있을까? 다른이들을 판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본인 스스로는 이부분을 체크해보면 어느정도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의외로 간단한 문제일지도
@Jna-xg2gj8 ай бұрын
댓글 읽어보니 생각 차이가 보여서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 같네요. 성경 구절도 보는 시각에 따라 다르게 해석 되기도 하고 좀 혼란스럽네요
@ykim52628 ай бұрын
제 말씀 한번 들어보세요. 주님은 거듭나게 하심에 감사함으로 순종하는 것도 기뻐하시지만, 그보다 더 기뻐하시는 것은 순종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님을 간절히 붙들고 두려운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을 더 기뻐하신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은혜받고 내적인 기쁨으로 충만해서 순종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자연스럽고 쉽습니다. 예를들어 내 이웃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정도의 것 말이죠. 그런데 그렇게 자연스럽게 되지 않는 부분도 있더군요. 중독되게 하는 죄같은 것들, 내게 없으면 안되는 세상의 쾌락들, 돈과 명예와 세상 가치관의 우상숭배들. 그래서 예수님이 죄 짓게하거든 눈 뽑아버리고 손을 잘라버리라는 말씀을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만약에 정말 순종하기 때문에 내가 천국에 갈 자격이 있다고 확신한다면 그것 자체가 이미 순종하고 있지 못하고 성령님과 깊이 동행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라고 봅니다. 그런 확신은 내 신앙적 열심과 과거에 뜨거웠던 순종의 행위에 기반한 자기 기만적 "안심"이므로 성령님이 주시는 깊은 평안은 없는 상태일 것입니다. 그러나 잘 안되어도 힘겹게 기도로 성령님을 붙들고 순종하게 된다면,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과 성령님이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우리 안에서 깊이 계시하여 주시고, 계속 그 길로 걸어가라- 라는 잔잔한 확신을 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류의 확신은 "주님 구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땅에서 누리고 내가 행복하길 원하십니다 -"라고 말하며 세상 것들에 대해 하나둘씩 살아가게 되는, 감정적이고 가벼운 확신이 절대 아니라고 봅니다. 그저 웃는 얼굴로 말하고 긍정적인 마인드와 말로 살아가는 수준이 아니라, 내가 죽일 죄인이며 나의 순종을 가능하게 하는 분은 예수님 밖에 없구나- 라고 더욱더 철저히 회개하며 두렵지만 주님을 따라가려는 강한 결단이 동반되는 확신입니다. 그것을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그 모습을 보며 "저 사람은 늘 불안하고 두려워서 순종하고, 구원을 얻어내기 위해 하나님께 종교적으로 살아가는 구나"라고 생각 할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신앙생활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요. 그러나 그런식으로 구원을 얻어내는건 애당초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불안감을 잠재우기 위해 몇가지 종교적 행위 리스트를 잘 지켜가면서 스스로를 위안 한다면 사단에게 이미 마음과 생각이 점령당한 상태일 것입니다. 속사람을 거듭나게 하는 분은 하나님 한분이시기에 진정한 순종의 열매가 맺힐 때까지 주님께만 매달리고 의지해야 할 뿐입니다. 개인적으로 하나님은 구원의 탈락이 있는지 없는지 정확히 못박아서 성경에 얘기해주지 않으셨다고 봅니다. 그러나 구원받았던 자가 탈락되었든, 애당초 거듭나지 못한 것이 드러난 것에 불과하든 간에 ... 다들 뜨거운 주님의 사람이었는데 정말 배교자 처럼 변질된 사람이 있는 것을 실제로 많이 보셔 왔으리라 믿습니다. 하나님만이 아시겠죠, 진짜 하나님의 백성인지, 흰옷입은 어린양의 신부인지... 그래서 삶의 시련이 있을때, 내 삶이 끝났다고 느껴질때, 혼자있을때, 아무도 보지 않을때,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을때, 내가 사랑할수 없을 것 같을 때,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을때, 포기하고 싶을 때, 낙심되고 병들어 있으며 연약해져 있을 때, 아무런 소망이 없는 것 같이 보일 때.... 그 때가 하나님께서 내 진짜 믿음의 진위를 판별하시는 때인 것 같습니다.
@clever.winner8 ай бұрын
이단은 닥쳐라.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너혼자 의심하고 불안해라. 성경을 제대로 읽어라. 너같은 것들이 지옥간다. 여전히 죄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두려워한다는건 진짜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