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unni3081 외부로부터의 기준과 자신만의 기준의 밸런스를 잘 맞추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seaunderthemoonlight3 жыл бұрын
한창 경쟁사회 과도기?때 힐링 열풍이 불면서 자기 자신 그대로를 받아들이자, 내 그대로도 괜찮다 등의 위로 에세이가 인기 많았는데 잠깐 쉬어갈때 가지는 생각이라면 괜찮지만 남은 인생 전반을 그렇게 살아가게 된다면 끊임없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 살아가게 될거라는 걸 요즘 느낍니다. 사람은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존재가 되고싶다는 바람이 항상 마음속 깊이 내재되어 있나봐요. 그냥 이렇게만 살아도 좋다-가 될줄 알았는데 늘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더라구요.
@JH-vz9be3 жыл бұрын
"선을 개념화하는것은 인생에 방향성을 가져다준다" 혼란스러운 제 가치관을 깔끔하게 해주는 문장이네요.
@GUPPYMOMCHANNEL3 жыл бұрын
명 강의 입니다. 구독하고 자주 방문할게요. 집콕한지 1년 넘어가니 유튜브로 진짜 세상 여기저기 소식이랑 만물을 알게되네요ᆢ실천이 걱정입니다ㅎ
@새우깡깡깡-d6s3 жыл бұрын
힘내라는 말보다 제일 힘주는 말인듯
@햇님-g8p6 ай бұрын
존경합니다
@나천기 Жыл бұрын
1) 나를 구하고 싶다면 나를 심판해라. 구원과 심판. 2) 나보다 걔가 낫다.(메타인지=양질의차이) -> 그대로가 낫다(현대적발상->고정마인드셋) 3) 메타인지(양질의차이)를 통해 너가 자기합리화를 하는지 찾아라(자기합리화=악)(선의 개념화) =자신을 심판해라. (더 나아지기위해) 4) 저주받은 사람들= 진짜로 열등감에 찌든 사람들, 양질의차이가 아닌 비꼬는 의미로 "너가 걔보다 안좋은데?ㅋ" 하지만! 너가 너 자신을 심판해라. 선을 개념화시켜. 비꼬는 의미를 한다면 하지말고. 게임을 한다면 게임을 줄여. 7)성장마인드셋을 기반으로 할것.
@saintw.19323 жыл бұрын
인생은 허무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자신만의 의미를 만들어 가는게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ttt-oc5dm3 жыл бұрын
멋진 말이네요
@kkooru94583 жыл бұрын
인생이 허무한걸 받아들이는데 의미를 만들어가라는건 무슨 말인가요?
@UTubeIanK3 жыл бұрын
@@kkooru9458 인생엔 본래 의미가 없기에 생에 본인만의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갈 자유가 있다는 뜻이죠
@rudenddl3 жыл бұрын
허무와 의미가 어떻게 공존하나요.. 허무하면서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게 어불성설 아닌가요?
@rudenddl3 жыл бұрын
허무하다는 건 아무런 욕심을 낼 필요가 없다는 뜻이고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 그것을 쟁취하기 위해 적어도 욕심을 가져야 하는 일인데.. 앞뒤가 안 맞네요
@이무기-e9z3 жыл бұрын
진짜 대단하다.....전 여태 그냥 이정도로 살지 뭐 이런 인생도 나쁘지않아 하며 허무주의에 빠져살며 괴로워했는데 이 생각을 완전히 무너뜨리네요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나천기 Жыл бұрын
결론: 선을 개념화하면 자동으로 나는 구원된다. 게임을 하지않는것이 선이면 나는 게임중독에서 구원된다
@gaonyu3063 жыл бұрын
중학교 생활에서의 마지막 시험이 끝나고 고등학교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럭저럭 하고 있었죠. 근데 번아웃이 온 것처럼 무기력해지고 이 짓을 왜 해야하는지 모르겠고.... 그렇다고 취미활동이나 평소 흥미를 느꼈었고 재미있었던 활동을 해도 이 짓이 더 이상 재미도 없고 오히려 공부에 대한 압박감 같은 것이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이래도 되나 공부해야 하는거 아닌가?' 라는 느낌이 들었지만 저는 공부를 늘리거나 열심히 하지 않았죠. 학교에 가면 그나마, 그나마 나았지만 그 마저도 코로나로 학교도 온라인으로 전환되어 잃게 되었습니다. 온라인으로 하는 것도 없었고 '차라리 고등학교 공부를 하는게 낫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막상 쉬면 하지도 않았습니다. 시간이 많아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머저리처럼 해야 한다는 '생각'만 했지 실행으론 옮기지도 않고 불만만 토해 내고..제가 생각해도 참 바보같습니다. 더 큰 문제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바뀌지 않았다는 것 입니다. 그러면서 속으로는 "이정도는 잘하는거야 괜찮아"라며 위로하는 말을 했죠. 이런 말들로 나 자신을 위로해도 상황은 좋아지지도 나빠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2~3주 정도 지난 지금 이 영상을 보게 되었고 많은 깨달음 얻음으로써 이 글을 쓰며 많은 것들을 반성하며 갑니다. 나는 더 높이 올라가고 싶고 그걸 원하고 욕망한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며 그것은 무조건 나쁘지만은 않다.
@강한-e8l2 жыл бұрын
공감이 가는 내용이네요 저도 현 고2이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싶은 마음이 있으면서도 한편으론 공부에 대한 편견이나 공부를 잘하는것이 별것아닌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복잡한 심정을 겪고있었는데 다시 마음을 다잡게 되네요
@송준-u9l3 жыл бұрын
허무주의가 찾아와 오랫동안 무기력에 빠지신 분들께 위로 말씀과 조언 드리고 싶습니다. 인생은 허무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고 있는, 해왔던, 할 모든 일들을 왜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분명 꽤 괜찮은 답이 나올겁니다. 물론, 인생이라는 복잡한 게임 속 상황을 100%의 확신을 갖고 진행시키는 건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최선, 때로는 차악의 선택을 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입니다. 조던 교수님의 표현 중에 이런 말이 있죠, "Well, 그게 100% 해결책은 아니더라도 damn 0%보단 낫잖아요..!" 여러분 할 수 있습니다! 음..혹시 이게 진부한 표현으로 들리신다면 교수님 화법으로 이렇게 바꿀 수 있겠네요 "무엇을, 왜 해야하는지 알아내세요! 또한, 안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찾으세요"
@나천기 Жыл бұрын
구원을 하려면 심판을 해야하는거네.. 결국엔 심판을 하는 사람은 선의 개념화가 필요하고 그를 통해 선의 평가도 해야함. 또 그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짐. (나쁜 것들을 자신에게서 분리)
@이유진-s6v3g2 жыл бұрын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좀커진포도알3 жыл бұрын
감사합니다
@HJJJz3 жыл бұрын
내가 지금 한심하고 게으르고 아무것도 안하는거를 그저 받아들이고 인정하자.. 인정을 안하니 자꾸만 더 게으르고 한심해지는거같다..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나에게 질문하여 개선해 나가는게 좋을꺼같다..
@홧팅화팅3 жыл бұрын
인정한다고 말하면서도 인정하기싫다...받아들이기싫다
@sal86202 жыл бұрын
자신의 어둠을 보기보다 조던 피터슨이 말하는, 어둠과 상반되는 빛을 보며 살아갈 때 조금이나마 어둠에서 나올 용기와 감동을 얻게 되지 않을까요? ^^
@kaindesert103 жыл бұрын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희생을 해야한다는 말일까요.,,?
@홧팅화팅3 жыл бұрын
@d 와 말잘한다
@다이어트요리하는호수3 жыл бұрын
아니요 자신만의 선 ( 좋은 상태) 의 기준을 세우고, 그것에 부합하지 않는 것들은 쳐내면서 성장하며 앞으로 나아가라는 뜻 같습니다! 인생을 허무하다고 느끼면서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서 안주하면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주장은 오히려 모두를 보상받지 못하는 비참한 상태로 빠지게 만들것이라고 경고하면서요.
@sal86202 жыл бұрын
선을 위한 삶을 살 때 희생이라는,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의 모습이 나온다는 말입니다.
@나천기 Жыл бұрын
양질 차이때문에 나는 불완전할수밖에 없고 그렇기에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모두가 평등해서 가만히 있는다면 다 완전하기때문에 성장할 수 없다.
@ejrjq12r2 ай бұрын
😊
@애버렐3 жыл бұрын
와...마지막에 하신 말씀은 진짜 지금 시대의 모습을 관통하는 말이라고 느껴지네요..
@헤르만-c3o3 жыл бұрын
요즘 딱 제 상태네요
@나천기 Жыл бұрын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너가 지금 불완전하다면 완전하는 과정이 곧 성장이다.
@나천기 Жыл бұрын
예시: 1) 내가 매일 게임을 함. 2) 허무주의, 난 쓸모도 없고 게임도 하는 게으름뱅이 사회악쓰레기임. 3) 메타인지(선의 개념화를 통해 이루어짐) "나를 더 성장하는건 선이다. 그러면 악은 무엇인가?" 이를 통해 게임을 그냥 안함. 게임을 좋게 보는 사람은 메타인지가 떨어짐. 자신을 심판할 수없는 사람은 곧 구원도 할 수 없음 왜? 피터슨이 신을 토대로 그 이유를 설명함. 구원자는 선을 알아야하고(선의개념화) 그를 통해 심판을 하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구원된다(악한 사람을 죽임, 악은 선이 개념화되기에 존재하는것)(그를통해 악이 아닌 사람들은 자동으로 구원됨) 4)중요한건 더 나은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러기위해선 성장마인드셋 항상 목말라야하고 항상 배워야하고 항상 자신을 심판해야함. 5) 선을 제대로 정의할 것. 너가 사람들에게 미움받을만한 이유로 어떠한 행위를 하는데 그게 선일줄 착각하면 안됨. => 예: 걔는 너보다 잘해. (비꼬는 의미 -> 쓰레기인 사람들) 걔는 너보다 잘해.(그러니 너도 좀 노력해) ->메타인지, 진짜로 걔가 너보다 존나 잘하는거임 너는 게임을 왕창하고 허무주의에 빠짐.
그리스도가 가지고 있는 심판자적인 측면과 구세주적인 측면을 깔끔하게 통합시키는게 인상깊었습니다. 이것은 정말...주의 깊게 봐야 합니다. 구세주는 심판자이고, 심판자는 구세주입니다.
@나천기 Жыл бұрын
비교를 당해서 너가 아래에 위치하고 가난하기때문에 부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양질의 차이. 비교를 통해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알 수 있게함(메타인지?
@leezsche75843 жыл бұрын
피터슨을 오랫동안 본 사람은 아니지만, 삶의 방향을 너무 기독교적으로 해석하는 분이네요. 사실 평등으로 가장한 이해할 수 없는 부류들이 사회에 많이 나오긴 한 상황에서 선을 우리 젊은이들에게 방향으로서 제시하는 게 이해가 안되지는 않습니다만, 그게 꼭 기독교적 선이어야 할까요. 이미 철학적 매력과 타당성을 잃은지 오래됐고 과학적으로도 발전을 많이 한 상태에서 종교는 어쩌면 구시대적 인간의 구원요소로 남을 위기에 있습니다. 시대적 진단은 저도 공감하는 바이나 그 해결책은 공감이 가질 않네요. 다른 시대지만 같은 고민을 한 철학자, 니체. 저는 여전히 이 해결책이 더 매력적입니다. 니체의 허무주의는 모든 것을 부정해서 나온 것으로 세계와 존재는 오로지 영원회귀하는 생성만이 있을 뿐입니다.삶은 끊임없이 생성되어 자신의 토대는 끊임없이 흔들려 겪게 되는 회의주의. 니체도 역시 극복방안을 내놓는데 힘을 들였지만 결국 ‘실존적 결단’을 말합니다. 논리적인 타당성이 아니죠. 그저 결단입니다 결단. 용기를 가지세요 여러분. 자신을 옭아매는 허무를 꽉 깨물어 죽여버리세요. 그렇게 죽여보면 유한적 삶은 외부의 한계를 가지지 않는 무한의 삶으로 고양됩니다. 몇 번이라도 좋다 이 지독한 삶이여, 다시! -프리드리히 니체 그리고 아래는 헤밍웨이의 글입니다. 니체적 인간 표본을 잘 그리는 거 같아요. 가치를 스스로 정립하고 한계를 돌파하여 끊임없는 생성을하는 초인. Man can be destroyed but not be defeated -헤밍웨이
@연-k9u2z3 жыл бұрын
간만에 통찰적인 긴 댓글 보기 좋네요. 뭔가 여기서 제가 한평생 느꼈던 인생의 무기력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jaka64703 жыл бұрын
피터슨이 강해할 때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이 기독교, 칼융, 그리고 니체입니다. 이 동영상에서도 절대선을 추구하는 한가지 시대철학을 허무주의적 포스터 모더니즘에 반박하여 언급했을 뿐이지 기독교적 세계관대로 살아가라고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서는 행함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것이라고 했고, 예수는 부자(행동하지 않는 사람)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보다 어려우니 천국에 가려면 가진 것을 모두 내다팔아 이웃을 돕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신을 좇으라고(믿음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 했습니다. 기독교적 세계관은 결국 신이라는 절대선을 좇아 타인을 선도하고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는데 동참하라는 것인데, 니체가 기독교를 그리도 혐오했던 이유는 대다수의 기독교인이 이런 본질을 저버리고 오직 이신칭의만 추구해서 현실의 삶을 도외시했기 때문입니다. 니체가 기독교를 혐오했던 것은 니체가 보아왔던 이신칭의에 매몰되어 삶을 도외시하는 기독교인들의 기독교에 대한 몰지각, 그리고 니체 본인의 기독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결국 아모르 파티라고 말한 니체의 허무주의로부터의 탈피와 예수가 신도들에게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했던 말, 그리고 기독교를 근거로 허무주의적인 이퀄리즘 포스터 모더니즘을 경계한 피터슨의 말은 모두 같은 맥락입니다.
@leezsche75843 жыл бұрын
@@jaka6470 단편적인 피터슨의 강의라 쉽게 속단하기는 어렵겠지만, 기독교적 세계관의 설명을 통해 선을 향해 나아가라는 주장은 어쩔 수 없지 기독교적 세계관을 통해 살아가라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저희가 의견을 나누기 위해선 여기서 말하는 the good의 의미도 더 명확하게 해야하겠네요. 그게 기독교적 the good이냐, 아니면 니체가 말했듯이 자신 내면에서 생기하는 the good이냐. 두 개 중에 피터슨의 의미가 혹시 전자였다면 자카님의 의견과피터슨의 주장은 시대역행적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반면 저기서 말하는 the good이 니체적 good 후자를 말한다면 자카님의 의견에 공감합니다.
@leezsche75843 жыл бұрын
@@jaka6470 영상을 넘어서 기독교와 니체의 관계를 더 끄적여보자면, 니체가 혐오했던 기독교의 모습은 자카님이 설명하신 것들이 맞습니다. 자카님이 설명하신 기독교의 실체도 니체가 모를리가 있었겠나요. 니체같은 철학적 거물이 사실 기독교는 삶을 완전히 버리고 천국만 좇는 패배주의자들이지.. 라고 오해할 리가 없다 이 말입니다. 니체가 기독교를 싫어했던 이유는 삶을 살아내는 방식에서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삶을 긍정하긴 하는데 그것은 오직 형이상학적 피안을 위해 삶을 긍정하라라는 의미에서 삶을 긍정한다는 겁니다. 니체는 이것을 수동적 허무주의라고 부릅니다. 반면 니체는 이러한 삶의 방식에서 나와 인간 스스로가 the good인 자신만의 선에 입각하여 무엇이든지 생성시키는 강한 초인적 삶을 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기독교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무한한 가능성을 맞닥뜨린 적극적 허무주의의 인간 현실에서 삶을 살자는 의지의 결단, 그것을 행하는 인간입니다. 만약 피터슨이 전자의 선을 말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시대역행적이겠고 후자라면 자카님의 의견이 맞겠죠. 제가 전자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너무 자주 기독교적 세계관을 들먹거리기 때문입니다. 어느 영상에서는 개신교신을 두고 어쩔 수 없이 믿는다고 눈물을 흘리기 까지 하던데요. 하지만 이것은 단편적인 피터슨에서 생긴 저의 오해일 수도 있겠네요.
@jaka64703 жыл бұрын
@@leezsche7584 정확히 기독교적 세계관이라는 말을 어떻게 정의하고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개신교 기준으로 66권이나 되는 성경 안의 교리는 단순하게 압축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닌 사람들이 기독교를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선과 기독교 내에서도 팽배한 이신칭의를 모든 것의 명분으로 생각하는 발상, 아니면 니체가 바라봤던 기독교의 암적인 부분, 마치 광신도처럼 기도하고 전도하는 것에만 일생을 다 갖다바치고 죄를 용서받고 천국에 가는 공덕을 위해 전전긍긍하는 그런 모습을 생각하신다면 기독교는 단순히 그런 종교라고 볼수 없습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기독교의 본질은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움직이는데에 있습니다. 기독교의 가장 큰 두가지 계명은 첫째로 절대선의 신을 섬기는것, 둘째는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인데 두가지 모두 유교의 인의나 칸트의 정언명령, 니체의 초인론처럼 무수한 철학자들이 각자의 논리로 추구했던 궁극적인 방향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아닌 이상, 기독교의 교리만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가 될 수 없듯 니체의 사상만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가 될 수 없습니다. 피터슨이 가장 강조하는 부분이 이것입니다. 니체는 망치들고 하는 철학자라고 불렸고 생전에 기독교는 단 한줌의 가치도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니체의 사상이 허무주의와 정반대에 있으면서도 니체가 가장 대표적인 후기 허무주의 철학자로 불리게 된 이유입니다. 기독교가 인류에 어떠한 악영향을 끼친 것과 별개로 서구 문명의 역사는 예수 이후 지금까지도 기독교를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그 가운데는 악덕도 있겠지만 분명히 미덕도 있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자유 민주주의로 법제화된 사회가 구성되기 전 야만의 시대를 가로막은 것은 절대자인 신에 대한 공포였고, 스콜라 철학 이후부터 본격적인 중근대 철학이 발현되었으며, 뉴턴을 비롯한 무수한 과학자들도 신의 창조섭리를 궁금해하며 학문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런데 극단적으로 기독교를 단지 로마의 식민지배를 받던 노예들의 사상으로 만들어진 종교라고 폄하하며 기독교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은 결국 인류역사 전체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니체의 뜻은 그것이 아니었지만 결국 그로 인해 탈권위, 반이성, 해체주의의 포스터 모더니즘이 발현되고 결국 세상에 어떤 의미를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그냥 마음가는 대로, 피터슨의 말마따나 '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만족해, 발전한 필요가 없어' 하는 마음가짐이 현대인에게 만연해지게 되었다. 피터슨은 그것을 경계하며 가장 원론적인 기독교적 세계관을 언급한 것입니다. 기독교인이라면 기독교의 교리대로 살아가고, 기독교인이 아니라면 기독교의 사상중에 옳은 부분만 취사선택하며 본인의 사색적 발전에 더하면 되는 것이지요. 세상에 절대선이 없더라면 절대악도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듯 세살 어린아이에게도 배울 점이 있습니다. 더군다나 서구문명의 문화적 뿌리였으니까요. 그 모든것을 부정하게 되면 결국 남는 것은 허무주의 밖에 없다. 그것이 피터슨이 말하는 핵심이라고 생각됩니다.
@리파-z6d3 жыл бұрын
와드 와드
@roothomez2 жыл бұрын
그렇다고 하더라도 인간이 왜 어제보다 더 나아졌는지를 말하려면, 어디가 더 나은 방향이다라는 것을 정해야될텐데... 성공한다고 더 행복한 것도 아니고, 돈이나 여자가 더 많다고 행복한 것도 아니라서 각자 인생에서 자신의 삶의 방향을 각자 정해야됨. 근데 역설적으로 사람은 주변 인간관계에 영향을 많이 받는 동물이기에 자신의 삶의 방향이 대단히 많이 바뀌게 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면 인생은 허무속에서 허무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게 맞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삶은 허무하다..
@sal86202 жыл бұрын
나아져야 한다는 것은 과정을 말하는 것이며 결과적인 것 궁극적인 것은 선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공한다고, 돈이나 여자가 더 많다고 행복한 것은 사람을 통해서 역사를 통해서 아님이 증명되었으며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선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조던 피터슨을 말해주죠. 선을 위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에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선을 행할때 인간이 가장 큰 가치와 의미를 느낀다는 것에는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 입니다. 그리고 성경에 그 선이라는 것이 위격화 된 신, 아니 어쩌면 그 위격의 정체가 선이기에 말씀에 순종하고 불의와 함께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일 수 있죠. 기본적으로 삶은 허무합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역사속에서 각자의 인생속에서 인생은 허무하지 않으며 가장 큰 가치와 의미인 "선을 행하고 선과 함께 하라"라고 끊임없이 소리치죠
@배경수-v5f3 жыл бұрын
0:34
@totojo51083 жыл бұрын
혹시 이 영상에서 말하고자 하는게 정확히 무엇인지 깔끔하게 요약 설명 해주실분?
@cinnamon10995 ай бұрын
우리 모두가 특별한 존재라면 그 누구도 특별하지 않습니다.
@박기청-t5f3 жыл бұрын
그는 말 꼬아하기의 달인이군요 하지만 저는 그가 어떤맛 사탕을 좋아하는지 알거 같은 걸요
@ussul-d9v3 жыл бұрын
이 영상에서 말하는 내용을 알아 들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공부 해야해요?..
@ussul-d9v3 жыл бұрын
@Peterson says to teeth 음.. 앞으로 신학과를 입학하고 목회자를 목표로 삼는 사람으로서 피터슨 교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싶던 목적이 있습니다! 저도 철학과 세계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구요! 제 목회자로서의 방향이 피터슨 교수님의 사상과 비슷하다면, 어떻게 입문하면 좋을까요?
@arona7728 Жыл бұрын
'12가지 인생의 법칙-조던 피터슨 저' 을 읽어보세요
@나라여행문화영어3 жыл бұрын
피터슨이 기독교 관점에서 토대로 말을하기 떄문에 가끔 털릴떄도 있는데 파이팅할때 90%이상 논리로 처발름.
@이윤재-u1e3 ай бұрын
당신이 날 구했어요
@OD-ee8cm2 жыл бұрын
무엇을 위한 성장인가요...
@alxososnddux Жыл бұрын
그니까 이게 궁극적으로 궁금했던 건데..
@seokjinchoi4613 жыл бұрын
크로커다일 남자훈련소장 영상에 자존감.. 이라는 내용의 영상이 있는데 한번 보시는것을 추천드려요. 저도 예전에 위로받는 책들을 읽으면서 "그래 난 괜찮은 존재야..!" 라고 자기위로 하고는 했는데 그게 정말 허무주의로 이끄는것이였더라고요... 영상 너무나도 감사합니다. 전 지금의 상태에 만족하지 않기에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것입니다..!
@Leonardo_Wilhelm_DiCaprio3 жыл бұрын
와 결과적 평등을 성경의 선을 추구함과 연관지어 말씀하시네요 ㄷㄷ
@TheJake3213 жыл бұрын
You could be way more than you are.
@nitealth3 жыл бұрын
선불교에서는 그냥 있는그대로가 법이고 진리이고 진실이라고 집착하지 않고 현상을 그대로 받아들이라 하는데.... 둘이 싸워라
@gyj32653 жыл бұрын
현재 삶이 불만족스럽다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게 아니죠 이 영상을 보고 더 나은 사람이 되야겠다 싶으면 더 노력하고 이대로가 좋다 싶으면 이대로 사는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있는 그대로 인것 같아요
@Sungerum-f7e8w3 жыл бұрын
정작 부처는 이세상은 완전한 법계로 이루어져있으며 길을 아는자는 방황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앙-f6o3 жыл бұрын
제 주관적 경험상..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행 자체가 피터슨이 말하는 선을 추구하는 노력과 비슷하다고 생각됩니다. 관념없이 사물을 마음에 투영시키는 것..정말 오랜 기간 갈고닦아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 과정자체를 삶의 목적으로 삼고 나아가고있습니다. 어찌보면 같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