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50 정세운 장군 후손입니다. 제사지내기전 부모님과 족보 보면서 조상님 대화할때 억울하게 돌아가셨다만 들었었는데 교과서에서 보지못했던 이야기 너무 감사합니다.
@action_mask2 жыл бұрын
몰랐는데 정세운 장군 본관이 광주였군요. 저도 광주 정씨 22대손입니다.
@성영애-l2r2 жыл бұрын
⁰q
@war.and.peace992 жыл бұрын
누구누구의 후손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하나요? 조선멸망 무렵에 노비가 전국민의 60-80%에 이르렀다고 하고 임진왜란 이후에는 공식적으로 돈을 받고 노비를 해방시켜 주었으며 족보를 돈주고 샀습니다. 그러므로, 족보의 신뢰성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_gwangmang2 жыл бұрын
@@war.and.peace99 6.25 를 거치면서 족보 등 자료가 많이 소실되었다고 해도 모든 족보가 소실된게 아니므로 복원이 가능했음. 족보라는건 파가 적혀있는거니까. 그리고 후손들끼리 얼굴을 알고 있으니 직접적인 확인도 가능했음. 이게 이해가 안 될 수 있기에 당신에게 되레 묻겠음. 당신 외삼촌이 있다면 그 사람이 진짜 당신의 외삼촌인지 어떻게 알음? 이제 ㅇㅋ? 이해가 됨?
@_gwangmang2 жыл бұрын
@@war.and.peace99 그리고 어디가서도 족보가 제로라는 허튼 소리는 제발 닥쳐주길 바람. 그거 남의 조상 헐뜯는거임. 내가 지금 당신 부모 욕하는거랑 다를바 없다는걸 인지 좀 하길. 못 배워처먹은 애들이 부모나 조상 흉보는건데...ㅉㅉ
@indy67832 жыл бұрын
궁예를 보면 경멸하거나 화가 나는 것보다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자신의 버린 신라 왕조를 경멸하는 것이 언뜻보면 사실상 그것에 대한 복수였다는 생각이 드네요. 궁예가 많은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 죽인 사람들이 호족이었다는 사실은 몰랐어요. 그리고 궁예가 끝까지 초심을 잃지 않았더라면 궁예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이 더 많이 남았을 거라는 생각과 궁예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생기네요. 오늘도 역사 잘 알아가고요, 재미있게 설명해 주시는 심용환 작가님 자주 뵙기를 바랍니다.
@하노이봉2 жыл бұрын
전 모 장군과 박모 징군도 사람 죽인것으론 뒤지지 않을 텐데요...
@지긋지긋해-y7y2 жыл бұрын
@@하노이봉 전땅크랑빡통은 서민들을 죽임
@꼬리치레-c6y2 жыл бұрын
견훤 인생이 진짜 세계사에서도 찾기 힘들 정도로 스펙타클하지... 자기 스스로 나라를 세우고 그 나라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skpark10003 жыл бұрын
너무 이야기가 재밌어요. 쏙쏙 빨려드네요.
@오호리3 жыл бұрын
고종과 명성황후는 자신의 지위를 뺏기지 않으려 연연했지 절대 백성과 국가를 위한 왕과 왕비는 아니였다
@루비-e3r3 жыл бұрын
완전팩트.
@theGreatAlexander-jg2fk3 жыл бұрын
이제 다들 명성황후가 아니라 '민비'라는 정식명칭을 씁시다. '민비'가 정식 명칭이라고 함. 황후라는 표현 붙일 자격도 없는 쓰레기...
@남기면-p5i3 жыл бұрын
@@theGreatAlexander-jg2fk 정답임다
@lit3673 жыл бұрын
@@theGreatAlexander-jg2fk 민비만 문제가 아니였으니 걍 민씨로 합시다.
@HolyMolyGuacamoleMonopoly3 жыл бұрын
세계 인류역사상 대중을 위한 지도자는 몇 없었다, 국뽕을 위해 각색해서 이용해먹을 뿐
@짐승-q5k3 жыл бұрын
설강사 자기생각 쇼 강의 보다 이게 훨씬 귀에 잘 들어오고 듣기도 좋음 개인적인 생각도 많이 절제하면서 냉정하게 풀어주는것 같다 역사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잼있게 들을수 있어서 좋은거 같네요~
@리기-z1l2 жыл бұрын
ㅋㅋ 팩폭 금지
@AsIwish-u8v2 жыл бұрын
@@리기-z1l 죄송합니다 ㅋㅋ
@나무아비-b8d2 жыл бұрын
난 그래도 설 좋음
@sugakookie84862 жыл бұрын
설 이후로 진심 연기해가며 썰풀듯 역사얘기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어요..ㅠㅠ 듣기싫어.. 반면 그나마 이분은 듣기가 편하네요
@TheSargent822 жыл бұрын
그 분, 논문 표절하신 분 아닌가요?
@reiner54273 жыл бұрын
역사는 사료를 바탕으로 해석하는 것임. 아무리 유학자가 사실을 바탕으로 기록하는 경향이 있다 할지라도 조선 건국 과정에서 고려왕조에 대한 조작이 없었다고 보긴 힘들다고봄.
@msk-qp6fn2 жыл бұрын
그렇죠. 더불어 당시에는 다 기록했다 한들 후에 후손들이 기록을 훼손하고 조작하지 않었을 거라는 홗신도 없고요.
@yek70782 жыл бұрын
정말 정말 잘 봤어요.!!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꽤 알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의 역사는 드라마 작가들이 만들내는게 아닌가 싶네요. 드라마와 역사적 사실은 구분해야 하는게 맞는데 말이죠. 심용환 작가님 자주 뵙기를 기대합니다.
@mjkim05073 жыл бұрын
좋아하는 역사시간 아주아주 재미있어요
@가자로또-t5k Жыл бұрын
정확한 핵심내용 찍어주시네요~ 현실적이고 객관적으로 고증해주시니 관심있게 보겠습니다.
@jesusishealer272 жыл бұрын
태조왕건 어린 나이에 정말 재밌게봤었는데~ 생각이 나면서 열심히 들었습니다💛
@sodab842 жыл бұрын
너무 재밌고 유익해요 어릴 때 역사 선생님이 셨다면 그 시간 그리 졸지 않았을텐데 ㅎㅎ 대 유 잼
@mirde45592 жыл бұрын
이런 유익하고 깔끔한 강의영상에 조회수에 비해 좋아요가 너무적네요. 1시간 가는줄도모르고 잘봤습니다!!
@sunny23613 жыл бұрын
중간에 자막 잘못된 부분 있네요! 1:11:44 자막은 '조선성리학'인데 설명은 조선성리학이 아니라 불가, 그러니까 '고려 불교'에 대해서 말하고 계시네요ㅎㅎㅎ
@billykim65 Жыл бұрын
귀에 쏙쏙 들어오는 역사강의- 들으면 들을수록 우리가 🇰🇷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we are proud of our Country People 카~ 국뽕에 취한다 주모~ 여기 막걸리 하나만! With North Korea 🇰🇵
@ryanh52422 жыл бұрын
너무 유익한 영상이네요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10년 20년 정도 지나면 대한민국 최근의 현대사도 이런식으로 편향된 관점없이 배울 수 있을까요?
[참고자료] "죽주"는 현재 안성시의 동쪽 3개면인 일죽면, 죽산면, 삼죽면의 옛땅 이름.
@shinjin23192 жыл бұрын
1시간이란 시간이 언제 갔ㄴㅏ 싶을정도로 집중도도 높고 재미있고 유익한 영상이라고 생각하면서 스크롤을 내렸는데 대부분의 댓글들이 쓰레기라 놀람
@이름성-v1u2 жыл бұрын
개인적인 생각인데 궁예에 대한 기록들이 고려시대에 적혀있었으니 궁예를 깎아 내리진 않았을까 싶어요. 왕건도 궁예를 죽이기를 꺼리다가 여러 신하들이 청하니 결국 죽인 내용을 보면 죽인 것 자차에 대해서도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었던 것 같고.. 처음엔 엄청난 민심을 얻었던 궁예이고 어쩌면 그때까지 민심을 조금 잃긴 했어도 백성들의 지지가 꽤 컸기에 주저리 주저리 눈치를 본 느낌이에요. 물론 기득권층을 싫어하던 궁예가 호화스러운 옷을 입은 건 문제가 되지만 적어도 영상에서 나온 호화스러운 생활이라고 부를 만한 요소는 옷 뿐이고, 궁예도 한나라의 왕이니 화려한 옷 정도는 사치라고 부를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호족들을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정도의 위엄을 보이어야 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분명 호족들을 통제하기 위해 공포정치를 했지만, 당시 기득권층에 반발을 가지고 있던 궁예에게 처음에 동조하고 공평한 세상을 꿈꾸던 민중들에게는 그것 자체는 큰 위험이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필리핀 경찰도 마약과의 전쟁 선포하며 일종의 공포정치를 했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이 지지하고 있었던 걸 보면 그것보다 소수인 호족들에 대한 공포정치정도야 싫어하진 않았을 것 같고, 또 궁예가 아예 호족들 전부를 포용을 못하는 인물은 아니었으니 민심을 잃은 결정적인 계기가 될 순 없을 것 같아요. 초심을 잃었다고 할 만한 계기도 아닌 것 같고. 비록 스스로를 미륵이라 칭하는 건 조금 너무 갔지만.. 궁예가 왕건을 이용한 호족들을 이용은 하면서도 자신의 목표인 공평을 위해 어떻게 포용해야 할지를 알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거나, 결국 자신이 집권하고 난 다음에 왕권을 비롯한 호족들을 다 죽이려고 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 무엇보다 강력한 왕권이 필요했었을 것 같고 관심법도 그 선에서 나온 일일거라는 소설을 써보았습니다.
@란-d7b2 жыл бұрын
관심법 등은 호족을 제거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일종의 책략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직접 불경을 짓고 이에 반발한 고승을 때려 죽이는 시점부터는 어떤 대의를 위한 이유를 찾기 힘듭니다. 결정적으로 황후가 궁예의 무도함을 간하자 불에 달군 철퇴로 죽이고 말리던 두 아들마저 죽였다는 사건은 뭐 어떻게 궁리해봐도 죄를 면책할 방법이 없네요. 그 사건 자체가 통째로 허구가 아닌 이상… 즉, 왕건이 궁예를 칠 수 있었던 건 그에 상응하는 명분이 있었기 때문임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물론 고려시대 때 기록이니 궁예에 대해 부정적으로 씌여졌음을 감안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서가드3 жыл бұрын
드라마가 생각보다 훨씬 역사에 충실했다는게 더 놀랍네요
@TaroshinTV2 жыл бұрын
좋은영상 잘보고 갑니다 좋아요 꾸욱 ~^^♡
@김도혜-m2p2 жыл бұрын
넘 잼있고 귀에 쏙쏙 들어오네요~~
@whitecolour13 жыл бұрын
8명의 공신이 죽은 산을 팔공산이라 하고 도망쳐나와서 하늘을 봤는데 반달이었는데 그곳을 반야월이라 말했고, 어느정도 빠져나와서 이제 안심이 된다고 해서 그 지역이 안심이 됨
@봄날매일2 жыл бұрын
백안도 있어요.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는..팔공산 근처 지명이름들이죠
@이불사랑-j9b2 жыл бұрын
왕건은 군사적재능은 떨어진다고 보는 견해도 있음. 기록에 나오는 왕건의 군사적업적은 궁예시절 이뤄진다는것임. 궁예사후 유금필이 없을때 왕건의 전쟁기록을 보면 첨담함. 고려에서 남긴 기록이 그 정도라면 실제론 더 비참하게 패한 경우가 많았겠지. 이런 왕건의 군사적능력을 볼때 왕건이 궁예시절의 전공이 실질적으론 왕건이 주도한건 아닐꺼라고 보는 견해가 있음. 왕건이 참전한 전쟁중 이긴전쟁을 왕건이 주도한 전쟁으로 기록했을 가능성이 높지 않냐는거지.
@socool47355 ай бұрын
이성계도 장군 출신으로 고려 조정에 진출 역성혁명으로 조선을 창업했는데 궁예 대조영 견훤과 같이 나라를 세운 것에 포함이 되지 않을까요?
@삼묘일견 Жыл бұрын
우리는 언제부터 지금의 말을 쓰기 시작했나요? 쓰는건 세종대왕 때부터겠지만 말은 언제부터인지 늘 궁금했습니다
@김소현-b4v6l3 жыл бұрын
이야기를 정말 재밌게 들었어요~시간순삭이었어요:)
@rnclcl123 жыл бұрын
작가님 이야기가 젤 잼있어요
@차림-v8k3 жыл бұрын
수면영상으로 클릭했다가 잼나서 다 보게 됨;
@박졍식2 жыл бұрын
우리선조들의 피와 땀이 헛되질 않았네요 국민교육헌장이 생생하게ㅡ 이러한 선생님들이 강의하고 국난에 대거 대비참여해서 우리의 것을 지킨다면 무엇이두려울까요 다시는 우리의어린이들과 딸들은 과거처럼 되지않을것
@사랑해레너드3 жыл бұрын
허준 이야기 짱 재밌다......
@영지니-q5k2 жыл бұрын
실제로 가담한 사람의 편지가 남아있어서 다행이군요. 가담한 사람이 실행후 친구한테 보낸 편지가 얼마전에 나왔어니.
@alisia57562 жыл бұрын
재밌네요
@강창환-h1l5 ай бұрын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민본주의'를 추구한 조선이 있었기에 21세기 현재도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진짜 '민주주의'를 하는 나라가 한국이다.
@pocketmv3 жыл бұрын
말씀을 정말 재미있게 잘하시네요 내용도 좋고.. 존경합니다! 너므 재밌어요 👍
@mawoo41892 жыл бұрын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은 유학자출신이고 궁예는 승려출신 왕이었음 역사는 승자의기록이고 다양한관점으로 해석해야함
@삡뽀삡뽀삡2 жыл бұрын
20:40 실제로 대구 팔공산 쪽으로 차타고 올라가다보면 신숭겸장군 유적지가 있습니당
@김현자-e5n Жыл бұрын
설명를 넘 빠르게 합니다~~
@tuna5723 жыл бұрын
이성계가 흙수저? 아웃사이더? 전부 아님 존나 다이아수저임 그러고 고려중앙정계로 보면 아웃사이더이긴한데 고려의 전체로 보면 그것도 아님 그러고 개인의 무력도 개쩌는걸 기록을 보면알수있음 추가하자면 동북면(고려때는 없었지만 조선대 편입된지역)이 조선때갑자기 국토에 편입된걸로만 봐도 알수있음 그지역이 이성계 개인영지 같은거였음
@연비-w7l3 жыл бұрын
동북면의 왕같은 존재 ㅋㅋㅋㅋㅋ
@고현경-c6t2 жыл бұрын
정조대왕 같은 신궁 이었다니
@EM-rg9vb2 жыл бұрын
조일신, 김용, 신돈은 다 공민왕이 죽인 겁니다. 그들에게 권력을 줘서 반대세력 혹은 2인자 될 세력 혹은 인물을 제거시킨 후 다시 그들을 제거시키는 방법으로 왕권을 유지시키려 했던거고 마지막에도 그러려다 살해 당한겁니다.
@개그맨정용국3 жыл бұрын
#어쩌다어른 #역사읽어드립니다 이게 제일 좋음ㅋ _나이_ _들어서_ _그런가?_ ㅋㅋㅋㅋㅋ
@sirisiri13882 жыл бұрын
36:05 에 나오는 이성계 족보문제는 종계변무를 말씀하시는거 맞나요? 이건 명나라쪽에서 망명한 반이성계파로 인해 이성계가 이인임의 아들이라고 명나라 태조실록과 대명회전에 것으로 인해서 발생한 외교문제 아닌가요? 이인임은 이성계와 정적이었는데 그 아들로 기록되었으니 수차례 수정을 요구했고 태종때 영락제가 기록잘못한 이들을 처벌하고 고치겠다고 하교한 예부자문을 보내왔습니다. 그러나 실제 개정이 실행되지는 않았죠, 영락제가 개정을 명하기는 했지만, 태조 홍무제의 조훈조장을 우선하지 않을 수 없었고 더욱이 조훈조장 서문에는 ’한 글자라도 바꿀 수 없다.‘라는 문장때문에 따라서 명에서 조선과의 외교적 약속보다 홍무제의 명을 우선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선건국초기 명나라로부터 고명을 받지 못한건 단순히 족보불분명이라고 할수는 없지 않나요??
@강대봉-e9d3 жыл бұрын
청광 등 왕자들이 살아남았고, 그 후손들이 무슨 김씨로 내려온다는 역사스페셜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heeya69552 жыл бұрын
솔방울 맞춘얘기.올림픽에서 활쏘는 양궁경기에서 한국팀이 정중앙에있는 초점카메라 렌즈를 몇번깼을 정도 였고 각종 올림픽에서 수없이 금메달이나 각종 메달을 땄던거 보면 그 얘기가 사실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당시 권문세족이 엄청난 부와 지금보다심한 엘리트주의를 모르셔서그러신 말씀이세요 권문세족에서 볼땐 이성계집안은 변방촌놈정도로 보이는게 맞습니다 다이아금수저들에게는 은수저로도안보였을껍니다
@std37863 жыл бұрын
왕건은 구테타
@kim8305192 жыл бұрын
아니 볼때마다 느끼지만 쌤 손이 너무예뻐서 손만보여요ㅋㅋㅋ
@simonsbedify2 жыл бұрын
공사나 대사가 아닌 선교사에게 100만냥. 당시 조선 정부의 1년 예산의 30%를 때줬는데 그게 외국과의 관계를 중시한거라고요? 그냥 지맘에 드니까 준거고 어찌보면 비자금 만들려고 했다고도 볼수 있는거지
@무명작가의인생강의3 жыл бұрын
그러게 말이에요
@onson이3 жыл бұрын
ㅋ 록시 손바닥에 왕자새매직으로써서 왕된분 게실가요? ㅋㅋ
@Whdtjq122 жыл бұрын
근대 정도전을 보면 모순이 잇던거 아닌가요? 백성을위한 왕이라도 왕권이 쌔야 자기하고싶은데로 백성을 위한 나라를 만들던 자기혼자 해먹던 할텐데 그 어린 방석을 태자로 새우면 그만큼 왕권이 약해질거같은데여 그리고 지금으로 따지면 어차피 정도전이 비선실세가 되는거아닌가요?
@안미혜-q2r2 жыл бұрын
사람은 이빨이 아니고 이아닌가요 동물은 이빨로 알고있는데
@huh05943 жыл бұрын
와.. 허준 정말 깨어있는 사람이었네
@user-Freesoul2 жыл бұрын
깨어있는 사람이라기보다 현실적인 사람인거지
@dlwlrma_solo2 жыл бұрын
여흥민씨는 고려와 조선 두나라를 망국의 길로 이끌었다
@user-dn2uk6rj4g2 жыл бұрын
공산전투에서 전사한 8명의 장군이 누구인가요?
@briansong90882 жыл бұрын
이성계가 흙수저라고 변방이래도 성주의 자식인데 강원도 국회의원 자식은 흙수저,? 중견기업 회장 아들은 흙수저?
@민주-x5s2 жыл бұрын
후궁과 호위무사를 동침하게 한사람은 어떤사람입니까
@ruk92573 жыл бұрын
공민왕은 진짜 안타까운게 고려의 마지막 개혁군주 타이틀 가져가고 아내 생전엔 좋은 왕이었잖아. 아내인 노국공주도 원나라 공주 출신이면서 남편의 편이 되어줬었고. 그 전에 충 자 돌림 고려왕놈들이 한 거 보면 기가 막히는데 공민왕은 개혁한다고 하다가 아내가 자기 애 낳던 중 사망, 후계자가 될 아이도 사망해서 미쳤다는데 유일하게 내 편이던 사람 잃고 미쳤다고하면 동정여론 쌉가능이지. 고려가 망하고 남은 기록이라 신빙성의심도 있다해도 인간으로서는 안타까운 생각이 듦.
@진국이-t8q2 жыл бұрын
똑같이 나누고 공평하게 나누고가 앞뒤가 맞냐?....공에따라 대우를 해 줬다며? 사기지....'위아래가 높이가 같다' 라는 말이 통한다는게 웃긴다.
@uhoon2 жыл бұрын
0:35 바닥에서 시작한 사람 3명 궁예 견훤 대조영 셋뿐이라면서요 😂 34:00 이성계도 바닥부터 시작한 거 아임미까 너무 유익하게 보고 있다가 피식해서 적어봅니다 항상 너무 좋은 영상들 덕에 제 지식도 풍성해지는 느낌 감사합니다 🙏🏻
@김수정-l9h3j2 жыл бұрын
고창전투~~~ 왕건에 의해 이름 지어진 곳이 많네요. 안동도 그렇고 삼태사가 있고
@경마역학개선문3 жыл бұрын
궁예가 남긴 명언.......... 넌 나에게 모욕감을 줬어!!
@redmoon933 жыл бұрын
?
@흑튜3 жыл бұрын
4달라
@user-ps7mh4lz9k3 жыл бұрын
?? : 아니 그거 말고 진짜 이유를 말해봐요
@응천재-d5p2 жыл бұрын
영화대사ㅋ 이병헌이 신민아 좋아해서
@thelibrary59722 жыл бұрын
신돈을 보니 진나라 여불휘가 생각나네요.
@별이아빠뚱이3 жыл бұрын
누구인가?
@3시의신데렐라2 жыл бұрын
제목 썸넬 내용 27:50
@chaelucy48622 жыл бұрын
팔공산이 왜 팔공산인지 몰랐는데 그게 신숭겸 장군이랑 연관이 있었구나…. 신숭겸 장군 동상은 맨날봤지만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는지 몰랐네요
@uiinkim60302 жыл бұрын
야 잘보고 있어요... 재밌네.. 어린애들에게 참 유익하도 하고, 나에게도 유익하기도 하고, 컨셉이 정말 성인이유식 같은...
@관심법-f5p2 жыл бұрын
주몽 온조 박혁거세 등등 어디에 있누
@관심법-f5p3 жыл бұрын
고구려 : 주몽 백제 : 온조 신라 : 박혁거세 가야 : 김수로 어디갔노 그사람들도 온갖 고생 다하면서 나라 건국 했구먼
@흑튜3 жыл бұрын
왕이 아니라 마립간 혹은 그 아래 수준임
@이희수-h1g2 жыл бұрын
내용은 좋은데 해설자의. 발음이 정확치않아 듣는데 조금무리가있습ㄴㄱ다
@명화박-z6b3 жыл бұрын
오이소는 그보이소는 들어본적없음니다 ㆍ^^
@plucky02582 жыл бұрын
민본사상은 고려 멸망에대한 명분이었을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고려의 왕은 천명을 다했으니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건국하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찾게되는 거죠
@대영조-e9t2 жыл бұрын
고려시대 문서 외조는 김용 지금은 김웅 헐... 집안 내력인가 ?
@론샤2 жыл бұрын
27:45=공민왕=쌍화점
@전진환-q6k2 жыл бұрын
전씨 형제도 말 해주세요
@하영이-b1e Жыл бұрын
중이 뭐냐 스님이지
@박재묵-t1u2 жыл бұрын
님의 사각과 내 시각은 차이가 좀 있어요.
@heeya69553 жыл бұрын
민비를 평하는 기록. 일제에의해 살해당한 명성황후 민비에 대한 조선말 역사기록도. 36년간 일본식민지배 받았으니 그 긴 세월.조선말 기록은 일제의 압력으로 조작 기록되었을 가능성있다. 피박당한 희생양의 지금의 그후손들이, 일제가 몰고 가고자했던 방향으로 같이 타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깝다.
@반짝반짝-y7y2 жыл бұрын
허준 진짜 대단하네. 그 시대에 단산까지 생각했다니 지금 돌팔이들은 모두 반성해라.
@ofnoa22 жыл бұрын
정세운...!?...
@간다드래곤볼 Жыл бұрын
영하30도까지 떨어지는 철원으로 천도하고 "누가 기침소리를 내었어?" 하는 궁예스
@user-mq1wd4ht9s3 жыл бұрын
공민왕이 바이섹슈얼이였구낭......
@피닉스473 жыл бұрын
NTR의 역사가 깊구나..
@suhokim14483 жыл бұрын
용환이형 올만에보노
@붕붕이-p4t3 жыл бұрын
제목만 들었을때 쌍화점 인줄
@lsgwon2 жыл бұрын
공민왕이 후사가 없자 불임원인이 자신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정자기부를 받는 방법으로 후사를 얻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당시에도 불임이 지속되면 여성을 절로 보내 1개월 이상 정자기증을 받는 풍습이 만연하고 있었습니다. 불임원인이 남성에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더구나 정자를 주는 기부자는 당시 최고의 지성과 지위계급인 승려이고 요즘으로치면 의대생에게 정자를 받고자 하는 체외수정과 비슷합니다. 공민왕의 성적취향으로 몰고가면 고소한 오징어 씹을거리가 될 수는 있겠지만 후사가 없는 공민왕 입장을 생각하면 가장 합리적 선택 아니었을까요? 후사는 얻고 기증자는 죽이고. 신돈(중) 아들 이야기도 마찬가지. 자제위들 개개인 입장을 고려해도 젊고 똑똑하고 아직 어려서 정치적 사고의 경력도 없고 왕에게 절대 충성을 바칠 수 밖에 없고 설령 죽임을 당해도 사고사로 얼버무리고 자제위 집에 재물과 벼슬을 좀 주어 보상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