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Mercy)는 동정과 어떻게 다른가요? 우리가 행하는 '자비'가 동정이나 과시의 한 부분은 아닐까요? 자비의 열매가 우리에게 가득 나타나기를 진심으로 기도합니다. 톨스토이의 "아시리아의 왕 아사르하돈"이라는 단편과 블라디미르 마코프스키의 그림으로 "자비"를 이해합니다. #성령의열매 #성령의열매자비 #블라디미르마코프스키
Пікірлер: 26
@조상원-d5j5 ай бұрын
인내가 참아내는 사랑이라면 자비는 행동하는 사랑일겁니다 오늘 작은자비라도 행해볼게요😂
@church_education5 ай бұрын
감사해요.^^
@shalom03655 ай бұрын
강화도 앞 볼음도로 향하는 배안에서 함께합니다^^ 문득 예수님의 가르침이 떠오르네요.. 네 이웃을 네 몸과같이 사랑하라. 한없이 부끄러울 뿐입니다ㅜㅜ 목사님 오늘도울림의 말씀 감사합니다~~^^;;
@church_education5 ай бұрын
아!!! 항해하셨군요. 다녀오는 여정이 아름다운 발걸음이기를 빕니다.^^
@shalom03655 ай бұрын
@@church_education 네~~~ㅎㅎ 산넘고 바다건너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있는 아름다운 청년들을 만났다고나할까요ㅎ
@김태히-w5b5 ай бұрын
언제나 감사한마음으로 모든 강의 잘듣고있습니다 중간사수업 책으로 어서받아보길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church_education5 ай бұрын
고맙습니다. 다음 주 정도에 인쇄 들어간다고 하는데 일정이 확정되면 공지 올릴깨요.^^
@까페골목5 ай бұрын
타인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면 지금처럼 살아서는 안되는 것이쵸 베려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넉넉히 나누어 주고ᆢ
@church_education5 ай бұрын
고맙습니다.^^
@김혜진-b6s8i5 ай бұрын
좋으신 하나님. 귀한 수고에 이 아침 아름다운 선물을 받습니다. 감사해요❤❤❤
@김영미-n5h5 ай бұрын
아멘 감사합니다!
@연탄-d9l5 ай бұрын
공감은 타인이 있는 자리에 내가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시며 우리의 자리에 함께 계십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느끼며 시작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목사님^^
@church_education5 ай бұрын
참 와 닿는 글입니다. 무척 고맙습니다.
@박정상-l3e5 ай бұрын
🙏
@nocrossnocrown91435 ай бұрын
너무 좋습니다~~❤
@church_education5 ай бұрын
정말 고맙습니다. 닉네임 아이디가 참 좋습니다.^^
@여상운-u2g5 ай бұрын
자비 =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 "괴로움을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복음이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 기꺼이 그들과 더불어 고난을 받으며 짐을 나누어야 한다. ••• 아무런 부담을 지지 않고 이웃의 아픔을 공유하는 게 가능하겠는가?" _ 조나단 에드워즈 [The Duty of Charity to the Poor] 설교 중에서 p.s. 에코효과 좋았습니다 👍
@church_education5 ай бұрын
흑흑흑 늘 고맙습니다 ♥️
@김진설-i2h5 ай бұрын
동정이라는 의미가 왜 변질되었을까요? 본래 같은 감정이 동정인데 말입니다. 동정의 마음 동정심이 없다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겠어요?
@church_education5 ай бұрын
아… 동정심 자체는 좋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동정과 과시는 다르고요. 그렇지만 자비와 동정도 좀 다르지 않나요?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공감까지 포함될 때 동정을 넘어설 수 있으니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동정하고 그친 것이 아니라 해결 방법까지 주셨기 때문에 이 두 개념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이재필-f8s5 ай бұрын
중간사수업 언제 나오나요?
@church_education5 ай бұрын
기다리게 해 드려서 넘넘 죄송해요. 다음주에 인쇄 들어갈 것 같은데 확정되면 공지 올리려고 해요 ㅠㅠ
@Lee.jae-hyung5 ай бұрын
어느 교회신가요? 한번 방문하게요
@church_education5 ай бұрын
안녕하십니까. 저는 삼일교회 협동목사로 있고요, 교회를 시무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jethrokim11245 ай бұрын
자비를 단순히 불쌍한 사람에게 연민을 가지거나 은혜를 베푸는 뜻으로만 새길 때에는 ‘아시리아의 왕 아사르하돈’의 내용의 모든 생명은 하나이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의 의미가 반감된다고 생각됩니다. 히브리어로 자비는 ‘라훔, 라하밈’이라고 하는데 유대인들의 경우, ‘레헴(모태, 자궁)’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라훔’이라는 단어를 자연스럽게 연상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것은 두 단어가 같은 어근에서 파생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어머니와 뱃속의 태아와 탯줄로 연결된 상태, 그리고 그 어머니의 모성애가 하나님의 자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자비를 전하는 세상 곳곳에 전달하기 위한 하나님의 활동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즉, 성도의 선교적 사명입니다. 우리는 타인을 내가 뱃속에 품은 자식처럼 사랑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태(품)에 속해있고 서로 연결되어 있으니 서로 하나님의 자비를 나누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