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저 창신초등학교다닐때 81년?1학년때 애들하고 여기갔던 기억이 있었는데... 여기네요 학교 옆골목 으로 쭉올라간듯.. 너무 신기방기요
@권영선-i4d11 ай бұрын
헐~~ 난 효제 국민학교 다녔는데. 보통은 옛 서울대 동편 언덕에 살던 친구들 하긴 그땐 보통13반 정도는 보통 한반 정원 62~65번 정도 저학년은 3부제 수업 아침반(3시간)~ 점심반(2시간)~오후반 (3시간)하며 교실이 모자라서 체육,미술,은 꼭 야외수업이였음. 숭인 국민학교는 조회를 전학년이 못하여 월-6학년 화-5학년 이런식 이여서 매일첫 시간은 마이크소리에 항상시끄러움. 복도는 마루바닥이고 참1학년 입학이 4월인데 여름방학 전까지는 5학년들이 해주었음.
@kesther310211 ай бұрын
남침땅굴이다.
@drowningcsw36067 ай бұрын
@@kesther3102서울한복판에 ㅋㅋㅋ
@minjeoi4 ай бұрын
81년이 무슨 초딩임 ㅋㅋ 서당아님?
@drowningcsw36064 ай бұрын
@@minjeoi 역사 시간에 잠? ㅋㅋㅋ 서당은 일제강점기 전까지임 ㅋㅋ
@Chanori630811 ай бұрын
70년대에 군생활 할 때 우리 여단 뒷 산에 저 창신동 굴처럼 방공호를 U자로 뚫었는데 그 이유는 일자로 뚫어서 그속에 들어가 있으면 폭탄이 굴 앞에서 터지면 그 압력으로 고막이 터지고 압력으로 큰 피해를 본다고 U자로 뚫어 놓으면 폭탄으로 인한 폭풍이 한쪽으로 들어와서 돌아서 나가기 때문에 피해가 없답니다 .대문을 튼튼하게 만들어 닫아도 다날라가서 꼭U자로 만들어야 됩니다.
@learjet387111 ай бұрын
전문가들보다 정확한것 같네요.
@신기칠11 ай бұрын
정확한말씀 마지막 전문가라는자 채석하기위한것이라는말은 엉터리 깡통
@seyeul-b6p11 ай бұрын
@@신기칠나도 같은 말을 하려고 했는데 먼저 했군요. 누가 들어도 엉터리죠.
@user-gb9dj9fv2i11 ай бұрын
4:28 방공호를 U자로 뚫는건 알겠음. 근데 이건 아니래잖아요ㅋㄱㅋㅋU자로 뚫려있으면 다 방공호인가...국가안보학과 교수가 방공호 하나 못 알아볼까...진짜 ㅈ문가들 널렸네 어휴
@BlueMell-t7y11 ай бұрын
@@user-gb9dj9fv2i여기서 'ㅈ전문가'가 왜 나오냐!? ㅋㅋㅋ 군생활하면서 방공호가 U자로 뚫은 게 창신동 굴이랑 비슷하다고 설명인데.. 창신동 굴이 방공호라고 하지 않았잖아.. ㅋㅋㅋ 전문가가 되기 전에.. 일반적인 글 잘 읽고 해석하는 사람이 되어라~ 어휴~
@MonaPizza-l8w11 ай бұрын
열다섯 되던해 고아원에서 퇴소되서 당장 잘곳도 없어서 지금 저굴에서 지내면서 밥도 지어먹고 하면서 구두닦이로 살다 군대 지원입대 하던 날까지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득하네요
@@start-j2g 전 고아였기에 어디가서 방을 얻을수도 없었어요 당시에는 동네 통장이나 동장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일종의 주민감시가 심했던 박정희 정권 시절이 었습니다 나같은 고아원 출신들은 군대가기도 힘들었습니다
@kky563511 ай бұрын
창신동 채석장 유명하죠. 일제시대때 거기 돌 다깎아서 석조전짓고 총독부건물 올리고했으니. 서울에 강서구 궁산땅굴도 있고 땅굴많아요. 창신동 달동네지만 올라가면 전망좋아서 요즘 맛집들많아짐.
@sundubuzzigaematnam4 ай бұрын
석조전은 대한제국인뎁쇼
@짱이-k4e11 ай бұрын
옛날 생각 나는군요. 태어나고 자란 곳이 종로라 놀러도 다니기도 했는데 당시 인왕산 삼청동 북악산등에 방공호로 파논 동굴들이 있었다. 문등이가 동굴에 거주한다하고 어린애들 간을 빼 먹는다 하여 두려움의 대상이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잔재가 남아 있는 곳이 있나 보군요.
@영애김-p7y11 ай бұрын
저도 대대로 종로 토박이입니다. 모교인 안국동 풍문여고 안에도 방공호가 있어요. 비원 옆에 있던 휘문고까지 연결되어 있다고 들었어요. 성인 서너명이 옆으로 서서 뛰어갈수있는 너비였어요. 가회동 한국미술관 정원안에도 소규모의 굴이 있었어요. 혜화동고개에도 굴이 있었죠. 종로일대는 화강암 지반으로 이루어져 기운이 상서로운곳으로 도읍지가 된곳입니다. 사대문안의 중심이죠. 서울토박이 만나기 쉽지않은데 반갑습니다!
@권영선-i4d11 ай бұрын
구기터널위편 연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2층짜리 아파트 .. 5층짜리 아파트에 복도에 조명등이 없음.
@진호이-g6m11 ай бұрын
지금은 없어졌는지 모르지만 성북구 삼선 국민학교 다녔는데 학교 본관뒤에 굴이 두개 있었어요.
@187cm72kg9 ай бұрын
@@영애김-p7y 풍문여고가 이사가서 교사 한 편에 있던 우물귀신은 어찌됐는지 모르겠네요😮
@ПавелЛии7 ай бұрын
창신동 전체가 일제시대때 채석장이었습니다. 당시 도시근로자들의 주요 거주지이기도 해서 석산, 일본어로 '이시야마'라고 불린 전차정거장도 있었답니다.
@Oh-ub3kp11 ай бұрын
한세대 두세대 넘어가면 있었던 일이 구전되며 없던 일이 되고 미화되고 전설이되고.... 역사를 배우고 잊지말아야 하는 이유는 힘든 과거를 다시 겪지말고 헤쳐나가기 위함 아닌가요?
@지금부터바운스9 ай бұрын
거짓말도 10번 말하면 진실이 된다잖아요..작정하고 역사왜곡하려면 못할것도 없는거 같은..잊지 말아야되는데
@anflada6 ай бұрын
그래서 교수들이 잊지 않고 있잖아요 설마 공교육 과정 중에 안 가르쳤다고 화나신건가요ㅋ
@GTRS-fi2gc11 ай бұрын
창신동 두산아파트 뒤에 저런데가 있었다니..
@박원일-h4e7 ай бұрын
브베 작업장입니다
@rachelkim43614 ай бұрын
@@박원일-h4e브베입니다
@EmileSmithRoweGod3 ай бұрын
그라샤~
@------------------311 ай бұрын
여기 채널에 올라오는거 거으 대부분은 일제강점기 아니면 6.25가 거의 대부분
@candleproducer11 ай бұрын
전쟁때 대피용으로 동네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었지 싶네요.
@기둘리-z7n11 ай бұрын
짭들이 요새화시켰지 ~
@재은이-u8t11 ай бұрын
일제때 방공호로 만든것입니다. 낙산 재정비하기전에 있었던 집에도 방공호가 있었습니다.
@shw86545 ай бұрын
일제시대 지어진 원효로 주택 마당에도 방공호가 있던 기억이 있네요
@방대춘-d3k5 ай бұрын
@@Loohhvb무식하노 뭣도모르고 떠들긴ㅋ 일제강점기 중일전쟁 때 방공법 제정으로 우리나라에 방공호 많이 만듬 에휴 무식하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는 일제 시대도 100년이 넘은 역사가 되었네... 얼마전까지만 해도 두자리로 느꼈는데 말야?
@울산자동차도시11 ай бұрын
73년~75년용두동사대부속중학교때 마이가봤던곳 저곳~창신동 옛날생각나네...
@잠수부-l4n7 ай бұрын
어린시절 숭인동 살적에 왜 저길 몰랐을까? 친구들도 몰랐으니 나도 모르고 지나 간 걸텐데... 신기하네요... 창신동에 저런 곳이 있었다고 하니... 쌍용아파트 지을 적에 발파 소리 듣고, 아파트 거진 다 지어질 땐, 아파트 현장이 놀이터 마냥 저녁때 몰래 가서 뛰어놀던 시절이... 제가 그곳에 마지막으로 살던때가 보문동쪽으로 터널 공사할때였네요... 얼마전에가보니 제가 살던 동네와 친구들 집있는 동네 주변은 싹사라지고 아파트 단지가 생기고... 제가 나왔었던...초등학교로 바뀐 명신은 어린시절땐 참 커보였는데...학교도 싹 바뀌고...그 앞에 있던 문방구도 사라지고...주변이 다 아파트단지로 바뀌고...숭인교회도 건물이 많이 변하고... 기분이 묘했었습니다.
@jesusforan11 ай бұрын
서울시에서 조금 손을 봐서 창신동 동굴들을 설명과 함께 한국 역사 관광 상품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리히팅11 ай бұрын
오래전에 창신동은 무당등 신점을 보는분들이 많이 계셨드랬어요.. 그러나 창신동에 집이 들어서면서 부터 많은 점집들이 미아리고개로 대거 이동을 했었지요.. 낙산의 상징은 청룡으로서 이지역은 음기가 강한곳이라합니다. 제가 듣기로는 사람들이 숨었었다고 들었어요.. 저희 집이네요..ㅋ
@자유민주-m6z11 ай бұрын
50년대 초딩시절 성북구 보문동에도 저런 동굴이 여럿 있던 기억이 납니다.
@MonaPizza-l8w11 ай бұрын
아직도 여럿 남아 있어요 튼튼한 철근으로 막아놨지요
@정광우-x7w4 ай бұрын
분당 서울대학병원 산속에 굴이 한개있는데..사람한명 겨우 기어들어갈수있고 10미터정도 기어들어가면 축구장만한 큰공간이 나옵니다. 그곳에서 6.25때 마을주민들이 들어가서 전쟁끝날때까지 나오지 않아서 피난을 않갔다고 삼촌들이 이야기해주셧어요. 일반인들은 절대로 입구를 찾을수가 없어서 지금도 명절때면 저희 집안 어른들만 구경하러 다녀오시곤하죠
@accountgoogle65593 ай бұрын
저도 데려가주세요~
@hyeon448914 күн бұрын
입구 위치가 어디일까요 ??
@골프신동-d5v11 ай бұрын
옥동자 근황 궁금 했는데 오랜만에 출연했네요ㅎㅎㅎ
@권영선-i4d11 ай бұрын
석재라면 노원구 불암산 상계동 중계동 방향 또한 면목동 동쪽등 .. 지금은 서울시내지만 60~70년대 초반까지도 화강암 석재채취는 흔하게 있었다. 또한 강남역 삼성그룹 사옥 자리에는 전북산 화강암 집하장이였음.(당시 건물 외장재로는 화강암 석재가 최고급이였음.
@김상철-o3t11 ай бұрын
화강암 지대인 창신동은 재개발이 어렵지만, 암반지대라 지진이 나도 피해가 거의 없는 지역. 전망도 좋아 별장으로 좋은 것 같은데...
@yunguckkim660911 ай бұрын
어렸을때 저 바위 위에서 불꽃놀이 구경 잘 했죠 연도 엄청 날렸어요 동내 애들 다 나와서 연 끊어먹기 놀이도 많이 했어요
@user-yeppy200111 ай бұрын
오래전 40년전 중학교 다닐때 국사선생님왈 종로집안에 동굴이 있어서 6.25때 소련군으로 여자들 피신시켰다고 들었던 기억남
@아르누보-g7o8 ай бұрын
옛 목포시청 건물 뒤에도 U자형 동굴이 반공호 목적으로 파저있다. U자 형동굴은 모두다 목적이 반공호로 추정된다
@ssisollee11 ай бұрын
한복입은 여인이 더 범상치 않아 보인다.
@이기자-l1t11 ай бұрын
무당 느낌
@처량한철옥이4 ай бұрын
종로쌍굴 말고 종로쌍뱀도 취재 가능하신가요?
@이장훈-q7y11 ай бұрын
녹번동에도 채석장있었조 일제강점기 때
@parkherenow11 ай бұрын
채석장은 해방이후에도 많이 생겼어요,,,,,,,건축의 한국이니까?
@기둘리-z7n11 ай бұрын
@@parkherenow라고 강아지는 멍멍멍~
@jay-12411 ай бұрын
반일충이구나...그건 해방후에 만든거야....헐
@기둘리-z7n11 ай бұрын
@@jay-124 라고 얼룩 강아지가 멍멍 짖읍니다 ~
@leewlsrjsaka4 ай бұрын
@@기둘리-z7n 그럼 일제시절 이 후 국내 건축 석재는 100퍼 수입일까?
@신경섭대표님화이팅3 ай бұрын
좋아요
@림시아3 ай бұрын
여수 놀러갔을때 산 아래 긴 터널도 저렇게 암석을 깎아서 이은 구조였는데 그 터널도 일제시대때 만들어진 거라고 들었어요 터널인데 벽이 동굴처럼 생겼어요
@ingeung11 ай бұрын
굴안이 우범지대가 될까 봐 주민들이 세간살이나 출입에 방해되는 물건들을 갖다놓아보입니다
@sanhalee586311 ай бұрын
창신동에 동굴 두개 있어요
@odscomoh166111 ай бұрын
다른 건 모르겠고 역시 화강암은 튼튼하네
@유느11 ай бұрын
굴 맛집이네
@daumidsk3 ай бұрын
창신국민학교다닐때 올라가서 구경도하고 놀기도햇던곳인데 별거없엇어요
@Bullko11 ай бұрын
옛날에 일제 시대때 채석장이 저렇게 많았대요
@gilsoosuh224811 ай бұрын
우리 동네에도 지금 그런 유자형 동굴이 여럿 있습니다? 내가 60여년전에 웃어른들에게서 들은 바로는 일본 식민지말기 미군공습을 피하기 위해 판 방공호라 합니다. 전국적으로 이런 형태의 동굴이 많은걸로 짐작되네요.
드릴로 구멍뚫고 화약 장전하고 깃발꽂고 남포요~ 남포요~ 소리지르며 사람들 쫓아낸 후 💥 꽈과광~ 💥💥
@다시가자-k4w11 ай бұрын
남포 틘다 어릴적 듣던소리 아련하네요
@동팔-l4c6 ай бұрын
6:50 100년도 안된 세월 서울에 왜 생겼는지 모를 것들 주변에 머물렀구나
@uwin-rj4rj11 ай бұрын
좋은데요 여름피서로
@haisungkim58063 ай бұрын
일제시대때 만든 방공호겠죠. 서울 안산 국민학교 뒤에도 어마어마하게 큰 굴들이 있었습니다.
@방화급행11 ай бұрын
이걸보니 경기도 고양에 있는 덕은동 쌍굴도 생각나네~
@Jr.Samchi-Jorim4 ай бұрын
종교적인 목적인줄알았는데 알고보니 일제가 할퀴고간 또하나의 상처였군요... 안타깝습니다.
@대끼리-s7f11 ай бұрын
혜화 동소문 고개, 신설동등 석굴암 주점들 생각나네... 오래 전부터 서울에 살아온 사람들은 저런굴 많이 봤슴.
@hkyh214011 ай бұрын
석굴암 주점 아직도 있나요
@hoyoungyoo339811 ай бұрын
그 석굴암, 나도 생각납니다. 참고로 난 72세···
@스끼다시-s6n11 ай бұрын
하왕십리 무학 초등학교에도 있음
@요순-n5zАй бұрын
우리의 소중한 자산들이 속속 나오네요!
@hyochulcha59314 ай бұрын
저렇게 큰 동굴은 다른 목적이 있는 것 같아요.
@오리궁둥이-c4r11 ай бұрын
옛날 방공호 였나봐요
@imkoon6 ай бұрын
예전에 충무로 중부경찰서 뒷편에 살았는데 그 집 안쪽에 저런 동굴이 하나 있었음,
@sgkim351610 ай бұрын
어릴적 살던 동네라 댓글들 읽어 봤는데, 진짜 어메이징하게 다양한 사람들이 있네요. 나쁘게 말하면 정신병자들 천국 같습니다.
@8191-k6y11 ай бұрын
북한이 만약에 서울로 진격해도 빌딩 아파트 수많은 주택가 지하철 동굴 뭐 그런게 많아서 지들도 어디서 튀어 나올지 몰라 ㅎㄷㄷ할 듯
@가우디-e6k11 ай бұрын
오류 수정합니다 1. 3번째 쌍굴은 숭인동(숭인방) 동망봉을 창신동으로 같이 이야기 하셨고 2. 1947년은 이미 해방 후 미군정 시절입니다
@americanjoe976711 ай бұрын
North Korea 🤯
@윤벼락치는소리11 ай бұрын
일반 건축용 돌을 채석 하다 보니 유자형으로 굴이 만들어젔다? 에이~ 그건아니지 그 동굴 입구. 주변을 보면 벽돌같은 형태로 석축을 싸았던 흔적이 보이는데 천연으로 생성된 굴을 옛날 분들이 생활의 목적으로 천연 동굴을 인위 적으로 약간손질해 생활용도로 사용하던 굴로 생긱된다 즉 김치나 된장등 발효식품 보관장소 로 쓰던 장소 같다.
@Lcg-m6d3 ай бұрын
창세기 1장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아 멘 2701
@MrFuturebank4 ай бұрын
혜화동 회전교차로 지나서 삼선동쪽에는 7-80년대에 도로가에 굴속에 술집이 있었음.
@hjkhjk67867fhtuyu7 ай бұрын
누군가에게는 일상이었던 것들이 미스터리가 되고 전설이 되는구나
@OMG-r3j10 ай бұрын
내 기억이 맞으면 저동네 살던 사람들도 6.25때 피난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잘 모름. 80년대쯤에도 토박이가 별로 없다고 했음. 60년대 이전부터 오래 사신 할아버지인테 듣기로는 집 지으려고 캘수 있는 큰 돌은 캐고, 안되는 부분은 창고로 썼다던데 이것도 맞는지는 모르겠음. 저지역은 낙산이라고 화강암산이 있고 사대문 밖이여서 일재도 신경을 안썼다고 했음.
@myoungaekwon813011 ай бұрын
곳곳에 땅굴이 있는게 확인되고 있는데 로봇에 카메라 장착해서 조사하고 하마스 땅굴처럼 소탕작전을 마련해야 될것같네요
@자유는행복입니다2 ай бұрын
우리동네 산이 대한민국에서 2번째 좋은돌이라는데 선ㅊ기업이 수십년 파먹었는데 원산복구는 불가능 공무원잘못 허가내줄때 복구생각했어야지 탁상정책이 알겠어요
@이상호-f2e11 ай бұрын
돌산 밑에 100년전통 절이라는건 거짓말이네
@KyleLee_7 ай бұрын
100년 넘었음 알고 말하쑈
@ytl58085 ай бұрын
바위 위에 지어진 집은 아찔해 보이네. 당연히 건물 지어진 지대는 바위가 아니겠지만.
@jinakim512411 ай бұрын
시골 할머니집 뒷산에도 있는데.
@김윤철-b2u11 ай бұрын
일제.625때. 방공호.겠지
@lIlIllIIlIlIlllIIlI11 ай бұрын
진짜 영상 구성이 어이가 없넼ㅋㅋㅋㅋㅋㅋㅋㅋ 문화해설사 한 번 부르면 다 해결될 걸 무슨 교수까지 불러다가 되도 않는 헛소리로 몇 분을 잡아먹냐?
@탄창-t5v11 ай бұрын
그래야지 스토리가 만들어지지 어쩔수없음 ㅋㅋ 걔네들도 다 알면서 그러는거임
@lIlIllIIlIlIlllIIlI11 ай бұрын
@@탄창-t5v 아니 하다못해 수소문하다하다 어디 진짜 동네 90세 어르신 모셔와서 간신히 이야기 듣고 지하서고 먼지 쌓인 자료 찾아내서 확인하고 이런 스토리면 이해한다 이거야. 짜고치는 것도 최소한의 갬동이라는 게 있어야 할 거 아냐
@buddy471811 ай бұрын
동굴의 목적을 알아야 되니 전문가를 불러서 영상 분량을 늘린거지
@breaseroto855211 ай бұрын
이 영상에선 문화해설사도 U자 동굴 뚫은 이유 말 안 하구만
@lIlIllIIlIlIlllIIlI11 ай бұрын
@@buddy4718 8분 25초 중에 동굴 소개에 2분 본론이 6분부터 절반이 별 되도 않는 이건가 저건가 쓸데없는 소리들인데 작작해야지
@versil38367 ай бұрын
저거 채석장 흔적이에요^^
@지금부터바운스9 ай бұрын
저 돌산이 그대로 있으면 멋있었을텐데 조선총독부 건물 돌들이 아깝네요 그 돌로 다시 다른 건물을 세웠으면 의미 있었을거 같고..위에만 남기고 다 버렸는지..
@지금부터바운스9 ай бұрын
찾아보니 일부는 3.1운동광장 주춧돌로 쓰였나보네요
@gotube07 ай бұрын
신기하네 u자 동굴이 많이 있네요.
@농심디아블로11 ай бұрын
김상민 u 노래 팬이 만든굴인듯
@정미자-p1g11 ай бұрын
동굴이. 크네요
@조사랑권사행복한11 ай бұрын
뭐가안좋은느낌이네
@행복-p9n11 ай бұрын
일본에서 우리나라 정기운을 막기위해 만들지 않했을까요?
@적인걸합리6 ай бұрын
반공호에요 한성여중 동산에도 있었음 u자형 동굴 창신동이나 한성여중은 625 전쟁 당시 엄청 난 전투장이었음 이쪽 낙산 성벽과 미아리 고개에 서로 소련 탱크에 맞서서 치열한 전투 현장이었음 그래서 방공호를 많이 판걸로 알고 있음 조선 총독부 좋아하네요 아니라니까 채석장 개발은 맞겠지만 반공호는 625때임
@꽃차고운꿈Ай бұрын
일제시대 방공호 폭음소리가 나가는 굴도 있어야 한다 우리집에도 있다
@user-ox1vf3gn9k4 ай бұрын
전국에 땅굴이 있어요
@채명환-e6d7 ай бұрын
인천신흥동~기독병원오르는길중간쯤철믄닫힌동굴도있는뎨에지금저80에도잊혀지지안네여~
@정미자-p1g11 ай бұрын
피난처도 아니고. 궁금하군요
@남자송철수11 ай бұрын
노숙자가 좋아할 동굴😢
@jayj337111 ай бұрын
외정때 일본이 파간 금, 6.25~지금까지 나온 금보다 많습니다.
@yongkim582611 ай бұрын
제사상 놋쇠그릇 놋수저까지 전부 수탈해 갔었지요. 그렇게 하고서 생색으로 자기들이 도와서 니네가 경제성장했다고 적반하장이지요.
@chrisst.simmonkang294211 ай бұрын
일본만 퍼간 게 아닙니다. 애초에 조선이 이권을 그냥 막 퍼줬습니다. 일제가 채굴권 전부 회수한 건 태평양전쟁 이후죠.
@이재영-n6r11 ай бұрын
흠, 아관파천 이후 일본만 부설권을 가져갔을까나?
@jayyoo90611 ай бұрын
하수도. 옹관 파이프.
@klee481311 ай бұрын
저기 말고 근처에 또 있는데
@hangjaeshin353811 ай бұрын
석빙고가 아니였을까...
@수김-j1x4 ай бұрын
서울에 이런게 있었구나
@start-j2g11 ай бұрын
저기 지나가면서 늘 마치 채석장으로 쓰다 버린 거같네 했는데 맞구나
@user-ox1vf3gn9k11 ай бұрын
전국에 있습니다
@포도알-n6i6 ай бұрын
저기는 모기의 서식지이죠...
@xiahoudun748911 ай бұрын
모두의 기억속에 일제의 만행은 잊혀져 가고 있지
@Jun-dn2hc11 ай бұрын
모두의 기억속에 북한공산의 만행은 잊혀져 가고 있지 일제의 만행은 너무 잘 기억함 😂
@parkherenow11 ай бұрын
모든건 일제시대 만들어 진거지요? 본인이 재벌 않된것도 일본이 정기을 홰손해서지요? 아들이 천재가 아닌것도 일본놈 때문이고,,,,, 미인 미남으로 태어나서 영화배우 하는걸 방해한것도 일본 놈이,,,,,,,노래을 잘 모수르는것도 일본놈이,,,,,,,,,,,,,본인 뇌가 강아지수준인것도ㅜ일본놈들이 좋으느정자을 다 죽여서 그런거지요? 인체실험해서 인구감소연구을 한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