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은 나랑 했던 모든 약속을 깼어! 한반도의 분단을 부른 루즈벨트의 대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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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Box TV, [God of War

Everything Box TV, [God of War

5 ай бұрын

원래 스탈린은 히틀러와 같은 편이었습니다.
이들은 1939년 9월, 동서 양쪽에서 폴란드를 같이 침공하는 등
독소 불가침 조약을 맺은 한편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1941년 6월 22일,
바르바로사 작전이 시작되자 소련은 연합국의 일원이 됩니다.
바로 그때부터 미국의 루즈벨트 대통령은 랜드리스를 통해
소련에 어마어마한 물자를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과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은 끝까지 갈 수 없는 운명.
그러나 루즈벨트 대통령은 스탈린을 믿고 우호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1945년 4월, 충분히 베를린을 함락시킬 수 있었던 미군.
하지만 미국은 베를린 점령을 소련 측에 양보하였습니다.
그리고 1945년 2월,
독일과 일본이 패전이 임박했던 이 시기에 얄타회담이 열립니다.
이 자리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다 끝나가는 태평양 전쟁에
부디 소련이 참전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게 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왜 이런 실수를 저질렀던 것일까?
그의 머릿속에 있던 진짜 속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그리고 루즈벨트의 이런 생각이 세계 역사에 미쳤던 엄청난 결과는 어떤 것인가?
※ 6.25 전쟁 컨텐츠 재생목록: • 6.25전쟁 (한국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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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즈벨트#얄타회담#뉴딜정책

Пікірлер: 181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5 ай бұрын
참전 굳이 하려고 안한 스탈린에게 과한 양보를 스스로 하면서 잠재적인 적국을 끌어들이고 일본과 힘든 전쟁을 치르고도 동아시아를 혼자 차지할 복을 스스로 차버린 미련한 루즈벨트. 소련이 대일전 참전을 하지 않았다면 소련은 극동에서 남부 사할린만 돌려받는 선에서 끝났을 것이며 만주와 한반도에 영향력을 끼칠 수 없었을 겁니다
@user-kt3zk9ly6p
@user-kt3zk9ly6p 4 ай бұрын
그런데 왜 우리을 일본으로부터 해방시킨 러시아한테 보상과 고마움이 없나요 싸이코패스들인가요 😂😂😂
@uwho9615
@uwho9615 2 ай бұрын
​@@user-kt3zk9ly6p빨갱이개야 이게 어디서 개소리냐 쏘련 빨갱이 때문에 통일이 안됐는데 먼 짖는 소리냐
@user-dn3fv4wk6h
@user-dn3fv4wk6h 5 ай бұрын
네 정말 좋은 영상입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루즈벨트를 볼 수 있었네요. 그동안 막연하게 루즈벨트를 좋게만 생각했는데, 이렇게 깊게 들어가 보니 우리 한반도에는 큰 비극을 제공한 원인자인 것을 알 수가 있군요. 귀한 식견의 영상 잘 봤습니다. 감사~~^^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이 컨텐츠에 나온 내용은 미국 내에서도 나왔던 이야깁니다. 또한 루즈벨트 스스로가 소련의 스탈린에게 실망감을 나타낸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결국 루즈벨트 후임자인 트루먼은 루즈벨트의 모든 정책을 뒤집고 소련에게 강경책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이 당시에 루즈벨트 대통령의 유화정책이 실패했다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user-iq2dw3vl8o
@user-iq2dw3vl8o 5 ай бұрын
미국과 서구는 소련과 공산주의세력을 너무 우습게 여겼고 그 댓가로 중국,베트남,북한이 공산화됨
@pmike8060
@pmike8060 5 ай бұрын
당시에 미국고위층과 핵심부에 소련스파이가 우굴우굴 했었다고 합니다. 아마 그런 부분이 루즈벨트의 오판에 크게 작용했던거 아닌가 싶습니다ㄷ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충분히 일리가 있는 이야기입니다. 나중에 소련 스파이로 밝혀진 앨저히스는 스탈린과의 여러 차례 회담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을 수행했다고 하는데 루즈벨트는 간첩과 함께 회담을 한 셈입니다.
@kangsj1977
@kangsj1977 5 ай бұрын
맨해튼 프로젝트 팀에도 소련 스파이가 암약중이었죠... 미국은 독일을 물리치기 위해 소련이 필요하긴 했지만 소련을 너무 naive하게 봤던 것이 큰 실수였죠.. 처칠은 그런걸 꿰뚫어봤구요.
@sjyoon0603
@sjyoon0603 5 ай бұрын
전쟁의 신님~ 영상 잘보고 갑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여!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감사드립니다. 2024년 새해 좋은 일 많이 생기시고 복 많이 받으시길 바랍니다.
@kaper6499
@kaper6499 3 ай бұрын
스탈린이 피도 눈물도 없고 계략이 최고인 듯.. 이 인간 때문에 연해주 있던 고려인도 카레인스키로 살아가야만 했고...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5 ай бұрын
추축국과 힘든 전투를 치른 자유 폴란드와 중화민국마저도 전쟁 후 외면한 루즈벨트와 처칠 ㅜㅜ 이 대가로 폴란드는 완전히 공산화 지옥으로 들어가고 중국도 공산화되고 국민당은 대만으로 쫓겨나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죠 ㅜ
@lukejeon8313
@lukejeon8313 5 ай бұрын
항상 질높고 훌륭한 컨탠츠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만물상자님 :)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감사합니다. 2024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앞으로도 뜨거운 성원 부탁드립니다.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5 ай бұрын
역사의 큰 명언은 이겁니다. 당장의 눈앞의 이익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면 그 대가는 반드시 부메랑으로 자신에게 돌아오는 법입니다. 루즈벨트가 소련을 굳이 끌어들이는 대실수를 한 대가로 추후 미국은 중국 공산화,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등으로 대가를 호되게 치렀고 동아시아 전체을 영향력으로 할 기회를 평생 날렸습니다
@AFVFactoryClubWWII
@AFVFactoryClubWWII 5 ай бұрын
패튼장군의 말이 맞습니다!!끝까지 밀고 나가야 했죠!!아이젠하워도 분명 루즈벨트에 대한 충성이 심했죠!!그리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직후 패튼장군을 일선에 밀어 넣었어야 했어요!!
@shanestory3879
@shanestory3879 5 ай бұрын
루즈벨트... 아놔, 내가 그런 인간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단 말인가? 형편없었네 진짜... 만물상자님. 뒤통수를 맞은 느낌입니다. 그가 저지른 짓은 오판이 아니라 멍청함이었네요. 왜 이렇게 소련을 신뢰했던 걸까요 도대체 왜!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루즈벨트가 죽기 1달전에 남긴 후회 어린 말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무래도 스탈린과 함께 일 할 수 없을 것 같애." 현재의 UN 안보리 체제를 만든 것이 루즈벨트 였습니다. 2차대전으로 유럽의 열강들이 몰락하고 이제 남은 것은 미국과 소련인데 두 나라가 잘 합의한다면 세계를 함께 이끌어갈 수 있는 파트너라고 봤던 것 같습니다.
@kiteblack4360
@kiteblack4360 5 ай бұрын
얄타에서 루즈벭트가 조선을 소련한테 넘긴다고 한걸 이승만이 밝혀내고 미언론에 공개해서 워싱턴이 뒤짚어졌다고 하죠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아이젠하워의 초청을 거절했죠. 그러나 이것이 신의 한수 였습니다. 미국은 애초에 상호방위조약도 안 해주려고 했지만 마지못해 해주려던 조약도 뉴질랜드, 호주와 맺었던 자동참전 조항이 없는 조약이었습니다. 초청을 거절한 이승만 대통령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 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의 특혜가 아니다. 그들은 가쓰라 밀약으로 조선을 배신했고 3.1운동 당시에도 민족자결주의 약속을 어겼다. 그리고 38선을 만드는데 일조를 했고 애치슨 선언으로 6.25전쟁이 나도록 만들었다. 조약은 도덕적 의무이지 그들의 특혜가 아니다!
@goldenboy6826
@goldenboy6826 4 ай бұрын
@@war-history 지금 한국의 정치권이 이런 말을 하면 무조건 반미주의자 빨갱이로 몰아가겠죠.무조건 미국에게 숙이고 알아서 기는 것이 국익도 아니고 미국을 비판하는것이 무조건 반미도 아니거늘. 한국의 정치권은 국익이 아닌 프로파간다 진영싸움이 목적일뿐이죠
@user-hl4cz9ti8j
@user-hl4cz9ti8j 5 ай бұрын
스탈린은 한번도 세계 공산화의 야망을 포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다만 2차세계대전 이전에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아직 소련의 힘이 부족했고 스탈린이 서방 강대국 지도자들의 성격을 몰라 이를 실현할 기회가 없었을 뿐이었죠 ㅠ 하지만 2차대전 회담들을 통해 루즈벨트, 처칠 등 지도자들의 허점, 의도를 스탈린은 잘 간파해서 양보하는 척 하면서 엄청난 이득들을 다 챙겼고 서방국들은 스탈린의 이런 의도에 바보같이 말려들어 다 내주었죠 ㅜ 그래서 이로 인해 소련은 초강대국으로 부상했고 소련,투바,몽골 셋에 불과한 공산국가를 세계의 절반 가까이 늘리는 대이득을 얻었습니다
@AFVFactoryClubWWII
@AFVFactoryClubWWII 5 ай бұрын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감사합니다..
@daewookkim4795
@daewookkim4795 5 ай бұрын
과연 루스벨트가 자연사를 했을까요? 저런 소련 우선주의 도와주기에 미국의 힘있는 인사들과 경제권 인사들이 루스벨트가 지 멋대로 막 하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자연사가 아닌 주사를 투여하는 암살을 하지 않았을까요? 독약도 필요없습니다. 혈전선 정맥염 치료제인 헤파린이나 인슐린을 과다투여하기만 해도 되니까 말입니다.
@user-tg2tn3ww3i
@user-tg2tn3ww3i 5 ай бұрын
이 영상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1급 싸움꾼 독일, 싸움꾼 일본을 복날 개 패듯 해서 무릎꿇린 나라가 미국입니다. 스탈린이 아무렴 어마무시한 미국의 힘을 무시할 수는 없죠. .6.25전쟁 때 스탈린이 자국 공군을 중공군 공군으로 위장해 미국 공군을 괴롭힌 것외에 직접 개입을 못한 것도...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스탈린은 6.25전쟁에서 미국과는 직접 부딪히지 않기로 처음부터 확정했습니다 .kzbin.info/www/bejne/e5urkHx5Z992kKM (북한군 지휘부에서 6.25전쟁을 반대한 유일한 인물, 최용건) 일전에 위 컨텐츠에서 스탈린과 김일성의 대화 내용을 다뤘습니다. 이 자리에서 스탈린은 설사 북한군이 밀린다해도 우리는 1도 힘을 보태지 않을 거라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스탈린은 마오쩌둥 동지에게 허락을 받으라고 김일성에게 말함으로써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중국이 소련 대신 참전하도록 준비까지 해놓고 전쟁을 일으키도록 허락했던 것입니다.
@user-gl7xo5lt1p
@user-gl7xo5lt1p 5 ай бұрын
유능한 세작을 통해 일본군 전력을 가장 잘 평가하고 기존 자원을 충분히 활용해서 유능한 전쟁준비를 한 전라좌수사 즉 남해안 1/4만 작전권만을 가진 이순신. 그래서 이긴 전쟁 23전 23승을 거둔 그가 돋보입니다.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맞습니다. 이순신 장군도 언제나 탐망선을 미리 보내어 일본군을 잘 정탐했고 붙잡은 일본의 포로들을 통해서 일본의 정보를 확보하는 등 첩보전에 있어서 일본을 앞섰습니다.
@user-gl7xo5lt1p
@user-gl7xo5lt1p 5 ай бұрын
@@war-history 2차대전 말기 미군의 적에 대한 오판은 뼈아픕니다.
@user-tg2tn3ww3i
@user-tg2tn3ww3i 5 ай бұрын
암튼 스랄린이 히틀러만큼의 배짱은 없었던 거 같습니다. 중공군 공군으로 위장, 한국전에 살짝 개입할 때 조차도 소련공군을 38선 근처에는 절대 가지 않도록 했습니다. 미국도 그정도는 눈감아(?)줄 수 있었고...
@user-ys7to5kq1t
@user-ys7to5kq1t 3 ай бұрын
소련은 공식적으로 625 불참입니다. 그래서 다시 페인트 칠해서 위장한거구요. 비공식적으로는 참전이나 마찬가지죠. 탱크 전투기 각종 화기 지원
@user-rt1xt6qm8u
@user-rt1xt6qm8u 5 ай бұрын
앨저히스 소련 스파이였네요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앨저 히스는 루즈벨트가 스탈린을 만날 때 옆에서 수행했던 국무부 관리였는데 어찌보면 루즈벨트는 스탈린이 보낸 간첩과 스탈린을 같이 만나 회담을 한 셈입니다.
@real2048
@real2048 5 ай бұрын
한국에 대한 몰이해도를 보면 루즈벨트는 도날드 트럼프가 연상되는데 참 진퇴양난입니다.....
@Lee_Sieon
@Lee_Sieon 5 ай бұрын
소련에는 전선이 더 밀리지 않을 정도로만 지원하고, 영국과 자유 프랑스 지원에 집중했어야 했군요.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한 마디로 소련에 대한 환상이었습니다. 2차대전이라는 거대전쟁에서 다른 나라는 모두 망했고 미국과 소련만 남았다고 생각했고 그런 판국에 소련과 손을 잡고 평화를 구가하려고 했던 것이 루즈벨트의 의도였습니다. 하지만 루즈벨트는 스탈린은 히틀러와 다를게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루즈벨트는 죽기 직전에야 그것을 깨닫게 됩니다.
@user-sy9kf9kc7l
@user-sy9kf9kc7l 5 ай бұрын
오늘 한마디로 말해서 승리에 대한 조급함,배신에 대한 두려움으로 볼 수 있으며,솔직히 말해서 독소전쟁 때 더많은 희생을 한 소련에게 양보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루즈벨트의 이런 판단은 오히려 독이 되었다?차라리 소련에 지원을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그게 문제였으면 상황인식을 제대로 하던지 아니면 태평양전쟁이 힘들면 만주,한반도 문제를 소련에 양보하던지 아무튼 루즈벨트의 판단이 냉전을 낳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 2024년 Happy New Year!!좋은 동영상 부탁드립니다!!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감사드립니다!
@user-tg2tn3ww3i
@user-tg2tn3ww3i 5 ай бұрын
스탈린은 영미에 불만이 많았죠. 1943년, 1944년 히틀러의 독일과 혈투를 벌이고 있을때....영미가 프랑스에 제2전선을 늦게 여는 바람에...소련인들이 엄청난 희생을 겪었다면서...스탈린으로서는 "그것 도와준거 가지고 넘 생색내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했을 법도...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사실이 그랬습니다. 미국이 엄청난 물량을 소련에 퍼주었을지 모르지만 소련은 물량대신 인력을 갈아넣어 독일과 싸우는 중이었습니다. 하지만 03:13에 나오듯이 미국이 소련에 제공한 물량은 정말 어마어마 했습니다. 이런 물량을 지원하는 국가를 상대로 싸웠으니 독일이 승리할 수 없었던 것은 어찌보면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영미 연합군도 일부러 제 2전선을 늦게 열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루즈벨트가 스탈린에 경도되어 있었음을 감안하면 일부러 제 2전선을 늦췄다기 보다는 연합국은 1944년 6월 이전엔 도저히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제공권을 잡아야 하는데 연합국이 제공권이 잡은 것이 1944년 들어와서였기 때문입니다.
@kiteblack4360
@kiteblack4360 5 ай бұрын
스탈린은 히틀러랑 같은편먹고 있다가 뒤통수 맞은건데 영미한테 불평할 입장은 아닌듯
@grimreaperkim9433
@grimreaperkim9433 5 ай бұрын
​@@war-history 소련이 초반에 패배한건 스탈린의 삽질도 한 몫했죠. 소련비밀경찰 NKVD와 정치장교 시스템을 이용한 대숙청. 유능한 장교들도 많이 죽임을 당했다네요.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grimreaperkim9433 소련판 전격전의 창시자라고 불렸던 투하체프스키 원수. 소련군의 기갑부대를 활용한 종심이론의 선구자인 투하체프스키 원수를 독일 첩자라며 처형했습니다. 그런데 투하체프스키의 처형에는 독일의 첩보전도 그 역할을 했다고 합니다. kzbin.info/www/bejne/baWsp4Z_gtp-Z6M (천하무적 히틀러, 그가 망하기 시작한 시점은 언제였을까?) 위 컨텐츠에서 그 내용을 다뤘습니다!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kiteblack4360 이 컨텐츠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스탈린은 1939년 11월 30일, 즉 폴란드 침공 직후 핀란드를 불법적으로 공격하여 영토를 빼앗았는데 히틀러가 독소전을 일으키는 바람에 모두 유야무야가 되버렸습니다.
@user-uc9tl1ek9i
@user-uc9tl1ek9i 5 ай бұрын
미국이 소련에게 제공한 물자가 어마무시한데 저 물량을 현 시점에서도 생산가능한 국가가 있긴할까요??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지금의 중국도 아마 저 물량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고로 지금은 지구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user-gu7st3pj5m
@user-gu7st3pj5m 5 ай бұрын
​​​@@war-history참.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렇게 모르고 어떻게 군사를 해요? 1944년 미국의 강철생산량 8132만톤. 2022년 중국의 강철생산량 13.4억톤. 16배의 차이가 납니다. 미뽕이 너무 심하군요. 그리고 독일군의 70%이상 최정예 독일군의 90%이상은 소련이 소멸했고 미국은 마지막에 승리과실만 탈취했습니다. 미국 혼자서는 전혀 독일군을 이길수 없었습니다. 일본도 중국이 일본발목을 잡지 않고 소련이 관동군을 소멸하지 않았다면 미국혼자서 이길수가 전혀 없었습니다.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user-gu7st3pj5m 미국은 1941년 6월, 독소전 직후부터 심지어 2차대전이 끝난 후인 1945년 9월까지 이 컨텐츠에 설명한 물량을 소련에 제공했습니다. 이것은 주장이 아닌 랜드리스 기록이기에 미뽕이라고 따질 수 없는 사실 그대로의 내용입니다. 다만 2차대전 당시 소련의 인력을 갈아넣는 엄청난 희생이 승리에 기여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채널에서는 그 부분에 대한 내용도 심층적으로 다룬 바 있었습니다. kzbin.info/www/bejne/haDIcpqNbdeYps0 (소련군이 없었어도 미군이 독일군을 이길 수 있었을까?)
@user-yy2hk8nm8e
@user-yy2hk8nm8e 5 ай бұрын
랜드리스 규모가 막상 들으니 크게 체감되네요. 많은 양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요.. 역시 국제사회에서는 영원한 동맹도 적도 없다는걸 확인합니다. 타 국가를 함부로 키워주면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걸 지도자가 알았어야 됐는데 안일한 생각을 했군요 맥아더 원수가 선견지명이 있었다는걸 다시 한번 깨닫네요 2차 대전 지도자 중에 스탈린이 가장 자국의 이익을 추구했던거 같습니다 선생님 말씀이 많은 공감이 되는 영상이었습니다.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영상 말미에 루즈벨트가 죽기 1달전에 측근에게 밝힌 얘기는 놀랍습니다. "우리는 스탈린과 함께 일을 못할 것 같애..." 이 말은 루즈벨트가 순진하게 스탈린을 파트너로 봤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또한 이승만이 1942년도에 미 국무부를 찾아가 임시정부를 승인해달라고 사정했더니 앨저히스라는 국무장관 보좌관에게 거절을 당했는데 알고보니 소련 간첩... 이것은 지금은 다 밝혀진 진실들입니다.
@jtk6911
@jtk6911 4 ай бұрын
죄가 있어서 침공당하는게 아니라 약해서 침략당하는 것
@AFVFactoryClubWWII
@AFVFactoryClubWWII 5 ай бұрын
이미 암에 몸에 퍼진 상태라지만...얄타회담서...왜 그랬을까??그로부터 2개월 후 4월12일 사망했죠....그후 트루만이 집권...
@ILOVEJESUS1948
@ILOVEJESUS1948 5 ай бұрын
초반부에미국과소련을민주주의와공산주의로대비하여말씀하셨습니다 민주주의라는표현보다는자유민주주의가정확한표현입니다 공산국가들도형식상민주주의를표방합니다 북한의공식명칭도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입니다 그리고왜이승만이천재인지다시금깨달을수있었습니다 좋은영상감사합니다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1942년 1월이면 미국이 막 태평양 전쟁이 뛰어든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소련의 스탈린에게 무지막지한 자원을 퍼주며 한편이 이제 막 된 상황이었는데 이 때 벌써 한반도에 소련을 끌어들이지말고 우리 임시정부나 인정을 해달라는 요구를 했는데 이 경고는 3년 후에 정확한 경고였음이 드러납니다. 그런데 이승만의 말을 거부했던 앨저히스가 소련의 간첩이었다는 사실은 놀랍습니다.
@user-uk7du8vu9p
@user-uk7du8vu9p 5 ай бұрын
우리가 그 문제를 잘 생각해야 합니다, 쏘련은 나치와 싸우면서 2천만명이 죽었고 스탈린은 굉장히 영악하고 노련한 정치가이자 악당입니다, 다만 스탈린도 원래는 남침을 반대했다고 합니다/루즈벨트 대통령 입장에서는 랜드리스 안해줬다가 쏘련이 나치와 단독강화라도 한다면 골치아프고 단 한명이라도 아메리칸 보이스(미군)를 구하기 위해서 베를린 점령을 양보했다고 합니다(중학생 때, 영어선생님께 들은 이야기~) 일본군이 유황도에서 악착같이 싸우고 원자폭탄을 맞고도 항복 안하니까 루즈벨트 대통령도 마음이 초조해진 거 아닙니까?/그럼 일본군은 왜 항복 안하냐면 멕켈 소령(독일)이 전쟁론 강의하면서 아무리 불리해도 쉽게 항복하면 안된다고 가르쳤기 때문에~😂😢/ 재미있는 영상 감사드립니다
@user-cr9zq8lg1p
@user-cr9zq8lg1p 5 ай бұрын
전후에 베를린이 분단되는거 보면 소련은 베를린 전투에서도 어마어마한 희생을 치뤄가면서 점령했는데 베를린 점령은 어떤 이득이 있었나요?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베를린엔 마음만 먹는다면 미군이 먼저 들어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젠하워는 스탈린과 약속을 했습니다. 스탈린이 베를린을 차지하기로 말입니다. 문제는 2차대전 종전 후 스탈린은 베를린 하나에 만족하지 않고 루즈벨트와의 약속을 모두 깨버리고 동유럽 전체에 마수를 뻗쳤다는 점입니다. 일례로 이 컨텐츠에서 말하고 있는 폴란드입니다. (13:31) 사실 2차대전은 폴란드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영미 연합국은 폴란드만은 양보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스탈린은 폴란드를 소련의 세력권으로 넣게 됩니다.
@user-uc9tl1ek9i
@user-uc9tl1ek9i 5 ай бұрын
​@@war-history폴란드 때문에 일어났다고 하기에는 그 전에 너무 많은일이 있지 않았나요? 대공항과 그 이후의 전체주의 정권의 성립같은 일련의 사건들이요
@user-is4cf5xq7t
@user-is4cf5xq7t 5 ай бұрын
동독의 공산화요.
@ErichLudendorff739
@ErichLudendorff739 5 ай бұрын
미 합참은 도대체 왜 저런 분석을 했던걸까요 그리고 미국은 지정학적으로 독일보다 태평양에서 일본을 상대로 먼저 싸우는게 중요했던거 같은데 왜 독일을 상대로 더 열심히 싸운건지 궁금해요 그 당시 백악관에 소련 스파이가 있었던건지...결국 루스벨트때문에 625때 수많은 미군이 희생하게 되었고 동유럽이 오랫동안 소련에 의해 고통받았네요 그리고 이승만이 머리가 엄청 좋았네요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최고지도자의 의중에 맞춰 움직이는 경향이 하부조직에서 없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루즈벨트 대통령이 명백하게 소련에 대한 비판을 금지한 상황에서 미 합참도 보조를 맞출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미군은 점점 일본 본토로 다가가고 있는 상황임에도 일본군의 저항에 질려갔습니다. 일본의 가마카제 공격은 1944년 10월부터 시작되었는데 이런 류의 공격은 미군들도 처음 겪는 상황이었습니다. 때문에 일본본토 상륙 시 막대한 미군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 전혀 일리 없는 얘기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유럽전선에서 독일군과 싸울 때에는 미군은 이 정도의 인명피해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user-gn6zd9sf8o
@user-gn6zd9sf8o 5 ай бұрын
이승만 대통령이 6.25 때 중공군이나 인민군과 싸우는 것 보다 미국무성 관리와 싸우는 게 더 힘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미국무부 뿐만이 아니라 도처에 소련 스파이가 디글디글 했습니다. 1991년에 소련이 망하면서 베노나 문서가 공개되었을 때 미국에서 매카시 선풍이 일어났던 게 거의 사실로 드러났다고 합니다.
@ErichLudendorff739
@ErichLudendorff739 5 ай бұрын
@@war-history 결국 미 합참도 루스벨트의 뜻을 따른 것이군요 하긴 미국 입장에서 그렇게 판단할 수도 있겠네요 왜 미국은 독일군과 싸울때는 일본군과 싸울때만큼 인명피해를 두려워하지 않은 것이 의문이긴 하네요
@ErichLudendorff739
@ErichLudendorff739 5 ай бұрын
@@user-gn6zd9sf8o 아 미 국무성 관리와 싸우는게 더 힘들었군요 이런 사정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1944년 12월, 벌지전투. 그 전투 하나에서만 미군 사상자가 8만이었습니다 어쩌면 독일보다 일본이야말로 미국은 더 철저하게 짓밟아야 할 명분과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컨텐츠에서 독일군과 싸울 때 미국이 인명피해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역시 원인은 소련이었습니다. 굳이 태평양 전쟁 막판에 소련을 참가시켜준 것 자체가 인명피해만 원인이라고 보기엔 부족합니다.
@sangho9274
@sangho9274 4 ай бұрын
프랑스에 미군정을 실시할려고 했던 영상도 있나요
@war-history
@war-history 4 ай бұрын
웬 프랑스?
@user-de1sg1vt5x
@user-de1sg1vt5x 4 ай бұрын
괜히 소련한테 쓸때없이 잘해주고 양보해줘서 그 부작용으로 그 이후 소련 러시아와 사이가 더 안좋아진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war-history
@war-history 4 ай бұрын
실제로 이 컨텐츠에도 나오지만 루즈벨트는 죽기 1달전에 스탈린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습니다. 또한 당시 미국 내에서도 루즈벨트가 스탈린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user-tp4ct1yh8s
@user-tp4ct1yh8s 5 ай бұрын
이승만이 안목이 뛰어나네요
@user-rt1xt6qm8u
@user-rt1xt6qm8u 5 ай бұрын
만물상자님 루즈벨트 조선 우리나라 🇰🇷 알고있었을까요🤔😠😡😤?!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1943년 2월에 열린 카이로 회담에서 루즈벨트 대통령은 한국의 독립을 언급했는데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user-zu1xp4jp5l
@user-zu1xp4jp5l 2 ай бұрын
스탈린 모택동김일성 부관참시 해야
@user-ze3ey1gm3p
@user-ze3ey1gm3p 5 ай бұрын
소련의 공업력을 보면 저정도 수준의 지원은 낭비인데.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1945년 9월까지 랜드리스가 계속었습니다. 유럽전선은 1945년 5월에 전쟁이 끝난 상황이었습니다. 누가봐도 아낌없이 퍼준 셈입니다.
@user-xn2fs7eq5z
@user-xn2fs7eq5z 5 ай бұрын
멍청한 지도자가 세계를 병들게 했넹...😢
@tv-lz2vg
@tv-lz2vg 5 ай бұрын
멍청한건 아니라고 봅니다. 랜드리스는 전쟁물자를 빌려주고 대리전을 하게 하므로 자국민의 피해를 줄이고.. 군수산업이 늘어나므로 고용을 증대시키고 경기를 활성화 시킵니다. 랜드리스는 달러로 상환하겠죠.. 달러의 기축통화를 더욱 증가시키겠죠.. 실질적으로 랜드리스로 인한 대리전이 훨씬 이득이 많다고 봅니다. 이번에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도 결국 미국은 피해도 없고 나중에 우크라이나에서 랜드리스로 잇권을 챙길겁니다. 미국은 러시아의 힘빼기에 성공했습니다. 러시아 가스가 유럽에서 싸게 구입해서 유럽과 러시아가 동시에 발전하는 계기를 막은것이죠.. 미국이 둘다 잡은겁니다.
@user-kt8yp5ho2y
@user-kt8yp5ho2y Ай бұрын
오죽하면 패튼 장군이 우린 엉뚱한 적과 싸왔다고 했을까요?
@tv-sk4mx
@tv-sk4mx 5 ай бұрын
루즈벨트는 저정도면 이념이 의심될정도네 ㅋㅋㅋ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07:09 에 루즈벨트 대통령의 속 마음에 대해서 언급을 했습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2차 대전이 끝나면 UN이 창설될거고 미국과 소련이 세계 지도 국가로서 서로 좋은 게 좋은거라는 파트너 십을 기대했다고 말입니다.
@tv-sk4mx
@tv-sk4mx 5 ай бұрын
@@war-history 네 그렇지만 너무 관대할 정도라 의심이 가네요 순수했던건지 아님 미국이란 나라에 너무 자만심이 있던건지 ..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tv-sk4mx 그 관대함이 겨우 일주일 간 일본과 싸우고도 한반도 북쪽까지 세력을 넓히는 사태를 낳게 됩니다.
@tv-sk4mx
@tv-sk4mx 5 ай бұрын
@@war-history 미국에 최대약점은 관대함과 오만함이라고 생각하네요 소련을 키워준 실수를 저지르고도 중국까지 키워줬죠 지금도 탈중국한다면서 그 대안이 베트남ㅋㅋ 이쯤되면 공산당키워주고 싶은것같음
@user-zl5gq4sh7u
@user-zl5gq4sh7u 5 ай бұрын
​@@tv-sk4mxㅋㅋㅋ 그것도 맞는말인게 76년 판문점 도끼 사건때도 미국이 단독으로 북진했더라도 소련과 중국이 6.25때 처럼 쉽게 개입 하기도 힘든 상황이였음. 근데 이걸 그냥 좋은게 좋은거라고 넘어가버림 ㅋㅋ 미국은 너무 물러 터져서 문제
@user-ht6is7su5h
@user-ht6is7su5h 22 күн бұрын
2차대전은 사실상 독소전이 거의다라고 봅니다. 아마 미국도 나치 독일과 일대일로는 못이겼을 거라고 봅니다. 왜냐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군대가 무너지면 항복을 하지만 그당시 스탈린의 소련은 모든 국민이 다 죽는다는 생각으로 전쟁해서 그 막강한 나치군을 이겨낼 수 있었죠. 그당시 소련 인민들이 그렇게 악착같이 싸운건 스탈린의 명령도 있었겠지만 나치독일이 소련 사람들을 민족말살급으로 학살을 해서이기도 합니다. 독소전은 단순 영토전쟁이 아니었어요 서로간의 민족말살급 전쟁이었고 소련땅에서 민간인에게 학살과 범죄를 저지른 나치군은 패망 후 소련군에게 그대로 보복을 당하게 되죠....베를린 집단강0도 먼저당했던거에 대한 복수였습니다...독소전은 그런 전쟁이었습니다
@war-history
@war-history 22 күн бұрын
특히 독소전의 지상전 규모는 아마 다시 재현되기 어려운 역사일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흥미로운 컨텐츠가 있는데요. kzbin.info/www/bejne/haDIcpqNbdeYps0 (소련군이 없었어도 연합군이 승리했을까?) 연합군 총사령관 아이젠하워가 소련군의 바그라티온 작전이 없었다면 우리의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없었을 거라는 말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user-kz1sv1lv8e
@user-kz1sv1lv8e Ай бұрын
독일이 미국을 적으로 돌리지만 않았어도 ㅠ
@war-history
@war-history Ай бұрын
히틀러가 의외로 동맹국들에게 의리가 대단했습니다. 일본은 직접적으로 미국을 공격했기에 선전포고가 오고간 것은 당연합니다만 독일과 미국은 직접 교전이 전혀 없었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히틀러가 먼저 미국에게 선전포고를 했습니다. 시기로는 1941년 12월. 추축국 동맹의 의리, 그리고 일본이 소련을 공격해주길 바래서였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히틀러의 소망을 들어줄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kzbin.info/www/bejne/mZCum62ggambj8U (2차대전의 승패를 반전시킨 히틀러와 일본군부의 바보짓)
@tv-lz2vg
@tv-lz2vg 5 ай бұрын
미국의 소련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중국 장제스와 모택동까지 지원하였죠.. 그것이 국공합작이죠.. 장제스가 두려워 한건 일본이 아니라 모택동이었는데 결국 패하여 대만으로..그뿐 아니라 베트남의 호치민도 일제 저항을 위해 미국이 지원을 했다고 합니다.. 큰적을 물리치면 또다른 적이 생겼을뿐이죠.. 미국이 소련없이 독일과 단독으로 싸웠다면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겁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그냥 독소전쟁에 비하면 큰 손실도 아니죠..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2차대전 당시 소련이 독일을 이기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을 부인할 순 없을 것입니다. 특히 1944년 6월 말에 벌어졌던 바그라티온 작전 이후 연합국도 소련의 실력을 인정하기 시작합니다. kzbin.info/www/bejne/haDIcpqNbdeYps0 (소련군이 없었어도 미군이 독일군을 이길 수 있었을까?)
@user-op1ph4wt9w
@user-op1ph4wt9w 5 ай бұрын
히틀러는 극우 우두머리, 스탈린은 극좌 우두머리인데, 원래 같은 편이었다는 것은 좀... 그냥 일시적으로 이해가 맞아 떨어졌다고 봐야지 않습니까.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같은 편이었다고 한 이유는 스탈린이 히틀러에 비해 나을 것이 없는 악당이었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1939년 8월, 독소 불가침 조약 체결 이후 전 세계가 댓글로 말씀하신 그 이유 때문에 놀랬습니다. "두 나라는 이념적으로 상극인 나라인데 어떻게 서로 불가침 조약을 맺고 악수하고 사진찍나?" 마침내 1939년 9월 1일, 폴란드를 두 나라가 같이 공격합니다. 1939년 11월 30일 (겨울전쟁)에는 소련이 핀란드를 공격합니다. 그리고 1941년 6월 22일 독소전이 시작되던 그 시각까지 소련은 히틀러에게 엄청난 자원을 제공해주고 있었습니다. 이쯤되면 같은 편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
@user-op1ph4wt9w
@user-op1ph4wt9w 5 ай бұрын
@@war-history 감사합니다.
@user-mw2vf4ce4s
@user-mw2vf4ce4s 5 ай бұрын
또 민주당이야
@user-wf4wy7mz5z
@user-wf4wy7mz5z 5 ай бұрын
삼촌이 한반도 일본한테 넘긴것처럼 조카도;; 그냥 루스벨트가와 한국은 악연이네요
@kdwni03
@kdwni03 5 ай бұрын
솔직히 북한이지금도 존재하는이유는 운이좋아서그런거임
@kdwni03
@kdwni03 5 ай бұрын
@@user-ob1dg6vn5c 그때 이겼어야했는데......
@kdwni03
@kdwni03 5 ай бұрын
@@user-ob1dg6vn5c 그때 통일되었으면 우리나라는 사기적으로 잘살고 사기적으로 강했었을것같은데요? 마치 사기캐같은느낌
@kdwni03
@kdwni03 5 ай бұрын
@@user-ob1dg6vn5c 님은 한국전쟁 한게나아오 아님 안한게나아요?
@kdwni03
@kdwni03 5 ай бұрын
@@user-ob1dg6vn5c 제말은 1950년에요
@kdwni03
@kdwni03 5 ай бұрын
@@user-ob1dg6vn5c 지금 그말이 아니잖아요
@user-lb4pv6ew6i
@user-lb4pv6ew6i 3 ай бұрын
이런걸보면확실히자주국방만이살길이다국제사회는냉혹하기때문에영원한친구도없고영원한적도없다
@war-history
@war-history 3 ай бұрын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kju42
@kju42 5 ай бұрын
조지c마샬이 제일 먼저 주장하고 맥아더와 니미츠의 다된밥을 왜 그냥 소련한테 주느냐며 극구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관철시키것임 루즈벨트는 전적으로 신뢰하던 마셜의 의견을 따른것이고!
@user-tg2tn3ww3i
@user-tg2tn3ww3i 5 ай бұрын
사실 스탈린은 북한을 지원은 했지만 6.25개전에 그리 적극적이지는 않았어요. 스탈린이 미국의 힘을 잘 알고 있었거든요. 신병(?)이 용감하다고 김일성은 자기 분수도 모르고 무력통일의 꿈에 젖어....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지금 말씀하신 것이 100% 정확합니다. 쉽게 말해 스탈린은 미국과 직접 맞붙는 것만 싫어했지 미국이 6.25전쟁에 빠져들어 한없이 힘이 빠지기를 바라고 바랬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악한이겠지만 정말로 노회한 정치가이자 전략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user-ht2gd3lu8d
@user-ht2gd3lu8d 5 ай бұрын
스딸린...
@any0309
@any0309 5 ай бұрын
전 이 영상에 그다지 동의하지 않습니다 반일성향이 강한 루즈벨트가 미국의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진주만이 있었을지 의문입니다 루즈벨트가 대통령이라 일본과 대립각을 세워 결국 일본 군부가 빡쳐서 진주만을 공격했기에 태평양전쟁이 발발한거고 카이로선언에 따라 한국이 독립할 수 있었던겁니다 루즈벨트가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어쩌면 일본과 미국은 전쟁까진 안했을지도 모르고 그럼 한국은 분단은 안되었을지언정 아마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은 없었을겁니다 물론 루즈벨트가 상대적으로 친소련성향의 인물인건 맞고 대일전 참전요청은 실수한 측면이 있다고 보지만 한국의 독립을 바라는 입장에선 적어도 당시 미국 대통령이 일본을 싫어했던 루즈벨트였던게 행운이 따랐던겁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같이 친일성향의 대통령이면 미국과 일본간 전쟁은 없었을 수도 있었음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런데 일본이 아무리 훨훨 날았어도 나치독일이 독소전에서 죽을 쑤는 상황이라면 일본도 결국은 끈떨어진 연 신세가 될 확률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탁월한 리더십을 갖춘 대통령입니다. 그러나 루즈벨트가 너무나 스탈린에게 저자세로 나갔다는 비판은 이미 저 당시에도 나왔던 비판입니다. 루즈벨트 자체가 죽기 전에 스탈린과 함께 일하기 어렵다는 후회까지 했기 때문에 소련을 다뤘던 방식은 분명 루즈벨트의 실수였습니다.
@sungminhwang1700
@sungminhwang1700 5 ай бұрын
근데, 과연 루즈벨트가 그 정도로 바보였을까란 생각도 들 정도로 이번 컨테츠의 내용은 의문과 부정적인 생각이 드네요. 일단, 아무리 미국이 천조국이라지만 양면전선과 장기간의 전쟁은 여론이나 경제적으로 부담되기 마련이었고 어찌되든 소련의 희생이 있던만큼 양보가 필요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미국에게 있어서 독일이나 일본이며 영국같은 구제국은 견제해야했고 처칠의 의견대로 이탈리아 공격이후 발칸으로 간다는것은 주도권에서 영국이 차지할 수 있죠. 거기다 대일전 준비상황에서 소련을 건들 수 있을까요? 루즈벨트가 소련을 과소평가한 것은 부분적으로 동의하고 공감이 되지만 사회주의에 우호적인건 아니라봅니다 그렇게 따지면 트루먼도 사회주의에 옹호할법한 발언하지 않았을까요? 아직 폴란드침공 당시 독일의 조작이 알려지지 않았고 대일전이 치열한 상황에서 동맹국으로 소련의 입지는 너무 당연했고 보상차원도 필요한데다 전후 체제등을 고려하면 폴란드는 말이 그렇지 사실상 예상되었다봅니다. 루즈벨트가 간과한것은 일본이 너무 빨리 무너졌다는 것일테고 만약 핵무기 개발 완성을 보았다면 바로 입장을 바꾸었을것으로 보입니다. 솔직히 미스터 갈리폴리, 처칠의 언싱커블 작전하기도 그렇죠. 더불어, 노르망디부터 지크프리트 라인까지의 보급선이나 아르덴 공세까지 고려하신건지 모르겠네요. 하여튼 핵이 독점하던 미국의 국제질서 및 소련봉쇄망은 루즈벨트도 같은 생각일겁니다. 어찌되든 정치인으로서 당장의 여론과 경제상황등을 봐야지 예측과 미래만보기 힘드네요. 어찌되든 좋은 컨테츠 감사하고 나중에 처칠의 언싱커블 작전도 보고프네요.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루즈벨트의 리더십은 탑 티어급입니다. 아이젠하워를 연합군 총사령관으로 발탁한 사람도 루즈벨트입니다. 즉 2차대전을 승리로 이끈 연합국 지도자입니다. 컨텐츠에 나온 내용은 사실만 담담히 다뤘을 뿐입니다. 그러나 루즈벨트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트루먼이 대소 정책을 송두리째 바꿔 버린 것으로 보아 이미 답은 나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상 후반부에 나왔듯이 스탈린과 함께 일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user-jd6sg9jw1v
@user-jd6sg9jw1v 5 ай бұрын
전 그래서 루즈벨트를 굉장히 싫어합니다. 루즈벨트가 소련 스파이 아닌가 의심될 정도로 소련 상대로 너무 퍼주고(랜드리스), 양보해주는 등(만주침공 허용) 비정상적으로 소련을 너무 도왔습니다. 이러한 미국의 친소정책 때문에 후에 국공내전으로 중공이 들어서고, 유럽에서는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독일(동독), 그외 동유럽까지 모두 공산화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동유럽은 어쩔 수 없다 쳐도 폴란드, 체코마저 공산화 된 것은 너무 뼈아픈 실책이라 생각하는 바입니다.
@user-jd6sg9jw1v
@user-jd6sg9jw1v 5 ай бұрын
그래서 소신발언 하자면, 연합군은 독일 내 발키리 작전을 적극 지원해 독일을 연합군 소속에 편입시키는 것이 베스트라 생각합니다. 연합국이 똥고집 안 부리고 내부 반란 지원을 했으면 폴란드, 체코는 물론이고 동유럽까지도 공산화를 막을 수 있었을것으로 봅니다.
@user-lb2vm7pj5u
@user-lb2vm7pj5u 5 ай бұрын
동서 양면전이 있었기에 독일패망이 가능했던건 팩트죠. 미국입장에선 인명피해감당해가면서 전쟁수행할 입장이 안됩니다. 반면 소련은 공산주의라 인명피해따윈신경쓰지않으니 가능했던거죠. 미군피해가 소련군 피해정도였음 미국국민들 전쟁반대시위들어갔을듯 합니다.
@user-yo1xr6cz8z
@user-yo1xr6cz8z 5 ай бұрын
루즈벨트가 문재인이지 그저 양보하고 화해할려고 하지. 그것이 문제야 투쟁과 대화가중요해
@war-history
@war-history 5 ай бұрын
정확히 보신 것 같습니다. 사실 지금의 UN 체제를 만든 사람이 루즈벨트입니다. 루즈벨트는 2차대전으로 세상이 다 망했고 미, 소만 남았기에 둘이 또 다시 전쟁을 벌이는 것보다 함께 세계를 이끌어 가는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스탈린이라는 사람을 몰랐던 것 같습니다. 스탈린은 천하의 히틀러와 별로 다를게 없는 사람입니다. 루즈벨트는 그 사실을 죽기 1달전에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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